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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KAS 편집위원장 최철성 드림

문서에서 사단법인 한 국 천 문 학 회 (페이지 153-157)

한국천문학회 편집위원회가 2010년부터 JKAS 편집위원회와 PKAS 편집위원회로

분리되어 운영되고 있습니다.

PKAS 편집위원회는 금년 1월에 구성되어 그동안 개선(안) 마련과 함께 4건의 관련 규정과 지침을 제/개정 하였고, 천문학 회 홈페이지 내 PKAS 관련 부분을 개편하였습니다. 자세한 사 항은 학회 홈페이지를 참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2010년 도 3월호(25권 1호)에 대한 편집과 출간을 끝마쳤습니다.

PKAS는 투고된 논문 수에 따라 매년 2회 이상(3월 31일, 6월 30일, 9월 30일, 12월 31일)발행될 예정입니다.

회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기대합니다.

- PKAS 편집위원장 최철성 드림

조경철 선생님을 보내며……

잊어버릴 수가 없습니다.

1969년 7월 21일 오전 11시 56분 20초, 마침내 아폴로 11호의 우주인 암스트롱의 발이 월 면에 닿았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일입니다. 화질도 형편없는 흑백 TV 화면에서도 암스트롱의 발은 뚜렷이 보였습니다. 집에 TV가 없어 남의 집에 가서 보다가 점심시간이 돼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 때 처음으로 뵈었던 조경철 선생님! 이리하여 선생님은 서울대 명예교수이신 현정준 선생님과 함께 초등학교 때부터 제 우상이 되셨습니다(현 선생님의 존함은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부터 잡지에서 보고 알았습니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당시 학원사에서 출판한 원색과학대사전 1권 우주편을 구입하게 됐 습니다. 제 우상인 두 분 말고도 심운택, 유경로, 이은성 선생님이 편집하신 책입니다. 집 필자 명단에는 우종옥, 이시우, 주광희, 이철주 선생님도 계셨습니다. 이 책은 제 인생의 나침반이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습니다. 대전 촌놈인 제가 서울대 입학과 함께 서울로 오게 됐고 2학 년이 돼서 드디어 선생님을 직접 뵙게 됐습니다! 그 극적인 순간들이 지금도 뇌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요즘 어린이들은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누며 저와 만납니다.

“아저씨가 박석재 박사님이에요?”

“응.”

“박사님이 블랙홀을 잘 아신다면서요?”

“조금 알지.”

“그럼 뭐 물어봐도 돼요?”

“그래, 알면 가르쳐줄게.”

이럴 때마다 선생님을 처음 뵙던 그 때가 그리워지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저는 그 어린이 들에게 선생님만큼 극적인 순간을 제공했을까요?

한 어린이의 질문이 이어집니다.

“박사님, 블랙홀과 화이트홀이 합쳐지면 뭐가 돼요?”

“음, 그게…, 그러니까….”

대답을 망설이는 제가 보기에 딱했던지 다른 어린이가 질문한 어린이의 머리를 한 대 갈 기며 대신 대답합니다.

“그레이홀, 자식아! 그레이홀!”

저는 늘 훌륭한 답변을 주신 선생님의 반도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선생님, 이러고도 저는 좋은 선생님이라고 우길 수 있을까요? 세계에서 가장 똑똑할 지도 모르는 송유근 어린이를 지도할 자격이 있을까요?

천문학과에서의 4년은 훌쩍 지나갔습니다. 조경철 선생님은 연세대 교수님이셨기 때문에 사실 제가 대학시절 정식으로 강의를 들은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한국아마추어천문가회(한 국아마추어천문학회의 전신) 일을 하면서 간간히 뵙고 많은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선생님은 저에게 천문학만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인생을 멋있게 살 수 있는지 가르쳐주 셨습니다.

그 가르침과 격려가 없었더라면 저는 아마추어 천문학 일을 계속 하지 않았을 것이고 천 문학 홍보의 중요성을 깨닫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오늘날 제가 한국천문연구원장직을 수행 하며 이 분야에 나름대로 소신을 가지고 일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선생님 덕분입니다. 선 생님은 외우기 힘든 제 이름을 분명히 기억하시고 늘 ‘박석재!’ 하고 불러주셨습니다. 젊 은 임시직 후배들 이름도 다 외우지 못하고 기관장을 하고 있는 저를 늘 혼내고 계신 셈입 니다.

오래 전 아마추어 천문학 후배가 저에게 한 말입니다.

“형, 알아? 조경철 박사님이 거의 카 레이서래.”

“그래?”

“새로 나오는 차는 거의 다 시승하신대!”

현재 대학의 화학과 교수로 있는 그 후배는 지금도 선생님을 부러워하며 존경하고 있습니 다. 선생님 삶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예입니다.

제가 원장 연임이 결정된 직후 선생님께서는 축하선물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런데 선물보 다 거기에 붙어 있는 메모지가 제 눈을 끌었습니다. 붓글씨로 정성들여 쓰시고 낙관까지 찍 어서 보내주신 그 메모지를 저는 지금도 잘 보관하고 있습니다(사진). 선생님, 저도 그런 선물을 보낼 줄 아는 선배가 되겠습니다.

“음~, 여기는 다 좋은데 말이지~, 심심하단 말씀이야!~”

선생님 목소리 다 들립니다. 먼저 가신 분들과 저승천문학회나 만들어 놓으세요. 그리고 심심하시더라도 조금만(?) 기다리세요. 거기서 선생님과 무슨 사업을 어떻게 벌일 것인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선생님, 보고 싶습니다.

2010년 춘분날

가짜 제자 박석재 곡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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