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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볼

문서에서 샹클리를 말하다 (페이지 167-196)

올드 스완 소방서 리버풀 안녕하세요, 톰

제가 형제들하고 사촌들과 함께 안필드로 가서 축구 경기를 볼 만큼 크기 전 저는 제 집 가까이에 있었던 잔디밭에서 축구를 하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집으로 와서 텔레비전으로 최종 스코어를 확인한 다음에는 다시 잔디밭으로 가서 계속 축구를 하면서 샹클리가 웨스트 더비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가기위해 운전을 하 면서 우리 집 앞을 지나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가 나타나면 그에게 손을 흔들 곤 했습니다.

제가 여덟 살이 되자 제 형들은 저를 경기장으로 데려가기로 하였습니다. 난 생 처음 경기를 보러 가게 되었는데 그날 경기는 리버플 대 코벤트리 1973의 경기였습니다. 우리는 처음에는 '어린이 구역'에 있다가 후반전 중반쯤 돼서는 콥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앞이 가려서 경기를 볼 수는 없었지만 개의치 않았습 니다. 리버풀은 경기에서 이겼고 우리는 열광하는 콥의 관중들 한 가운데에 있게 된 것이었습니다.

종료 휘슬이 울리자 모든 사람들이 돌아서서는 출입구를 향해 몰려가기 시작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기에 저는 인파에 휩쓸리고 말았습 니다. 제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호주머니에 경기 프로그램이 쑤셔 넣어져 있는 청바지들, 신발들 그리고 엉덩이들뿐이었습니다. 저는 계단으로 떠밀려서 어느덧 경기장 밖까지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 형제 들은 어디에 있는지 또 집으로 가려면 어느 쪽으로 걸어가야 하는지 전혀 알 수 가 없었습니다. 저는 혹시 아는 얼굴을 만날 수 있지 않을 까 해서 경기장 주변 을 돌아다녔지만 아무도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진짜 말 그대로 완전히 길 을 잃어 버렸고 점점 불안해지고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빌 샹클리가 저희 집 가는 방향을 알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샹클리라면 저희 집 쪽 으로 가는 길을 제대로 가르쳐 줄 거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경기 장 프런트 쪽으로 가서 기다렸습니다. 빌이 경기장 밖으로 나왔을 때 그는 자신 의 형과 함께 있었으며 둘 다 하얀색 레인코트를 입고 있었습니다.

사인을 받으려는 사람들과 격려의 말을 전하려는 사람들이 다 가고 난 뒤 저

는 그에게 다가가서 '실례합니다. 빌'이라고 운을 뗀 뒤 제가 처한 난처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저는 단지 그가 저에게 어느 방향으로 가면 되는지만 얘기해 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베이지 색 마크 1 카프리의 문을 열 더니 좌석을 앞쪽으로 당기고는 '타거라'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앞으로는 아무 문제도 없을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샹클리 문을 빠져 나오면서 그가 말했습니다. '집 근처에 가까이 가게 되면 얘기하려무나. 얘야.'

우리가 파인허스트 가를 지나갈 때 제가 샹클리에게 리스번 가에 산다고 얘 기했습니다. 그 말에 그가 대답했습니다. '네가 항상 축구를 하면서 내가 지나갈 때면 나에게 손을 흔들어 주는 그 꼬마니?'

'예,' 제가 대답했습니다. '그게 바로 저에요.' 그리고 차에 탄 우리 셋은 모두 웃었습니다. 그가 나를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이 무척 놀라웠습니다.

우리가 리스번 가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차로 저희 집 앞까지 갔습니다. 언제 나 그랬듯이 제 형들과 친구들, 사촌들은 잔디밭에서 축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우리 쪽으로 달려와서 손을 흔들고 빌 샹클리의 이름을 불렀습 니다. 하지만 제가 차에서 내리면서 '고맙습니다, 빌'이라고 외치자 모두들 놀라 서 얼어붙은 듯 조요해졌습니다. 그들은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희는 모두 집으로 달려가서 엄마에게 빌 샹클리 덕분에 제가 무사히 집으로 올 수 있었다고 얘기해 주었습니다.

어느 소방관이

37 더햄 로드 시포쓰 리버풀 친애하는 더비씨

리버풀 에코 지에 실린 빌 샹클리에 대한 이야기나 일화 등을 찾는 당신의 기 사를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이야기가 당신에게 흥미가 있을지도 모 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빌 샹클리가 리버풀 감독직을 그만 둔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빌 샹클리 - 자 기 시대의 영웅 이라는 책이 출판되었습니다. 그 책은 한정판이었고 내 어머니 로라 블랙번은 - 광적인 리버풀 FC의 팬 - 간신히 그 책을 구할 수 있었습니 다. 그 책에는 당시에 활약하던 리버풀 선수들과 구단 직원들 그리고 시의 유명 인사들이 샹클리에 대해 쓴 헌사들이 실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헌사들이 실 리 페이지 아래에는 사인을 받을 수 있는 공란이 있었습니다. 얼마간의 시간동안 제 어머니는 선수들의 헌사가 실린 페이지에 해당 선수들의 사인을 모두 받을 수 있었습니다 - 심지어 어머니는 존 스미스 (리버풀 구단의 회장)의 사인까지 도 받았습니다. 마침내 모든 사인을 다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 어머니는 그것으로 만족하실 수가 없었습니다. 완벽한 책을 위해서는 빌 샹클리가 맨 앞장 에다가 사인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빌에게 편지를 썼습니다(리버풀 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가 벨레필드에 살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습니 다 ― 농담으로 말하길 그것이 그가 '적을 염탐하는 방법'이라고도 했습니다 ― 그곳에는 에버턴 팀의 훈련장이 있었으니까요). 그녀는 언제 어디서라도 그를 만 날 용의가 있다고 썼으며 그의 회신을 기다렸습니다.

빌은 몇 번 전화를 해서 우리 집으로 오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정확히 우리 가 어디에 사는지를 몰랐기 때문에 우리 집의 위치를 알아보고 있는 중이었습니 다. 어쨌든(저한테는 다행스럽게도) 저의 학기 중의 짧은 방학 기간에 전화가 울 렸습니다. 제가 수화기를 들었을 때 상대편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누군 인지 모를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로라씨 인가요?'

'아니요,' 제가 대답했습니다, '저는 그녀의 딸 쉴라에요.'

'오!' 빌이 말했습니다. '나는 빌 샹클리란다...엄마에게 한 30분쯤 있다가 내 가 집으로 방문하겠노라고 좀 전해줄래?' 그리고는 인사를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 다.

제 엄마와 제가 얼마나 당황했는지를 보셨어야 했는데! 한참 청소를 하고 있 던 중이었는데 모든 것을 다시 제자리도 돌려놔야했고 30분 안에 손님 맞을 단 장도 해야만 했습니다! 현관 초인종이 울렸을 때에는 간신히 어느 정도 정리를 할 수 있었고 내가 문을 열었습니다. 빌이 걸어 들어와서 나를 덥석 안더니 뺨에 다가 키스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엄마하고도 같은 식으로 인사를 하였습니다...전 에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사람들끼리의 만남이 아니라 마치 친척이나 오랜 친구들 끼리 만나는 것 같았습니다.

빌은 의자에 앉아서 저희 모녀와 약 한 시간 반 정도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빌은 어머니의 책에 빨간색 펠트펜으로 사인을 해 주었고 저를 위해서 사진에다 가도 사인을 해 주었습니다. 그와 얘기를 나누는 일은 정말로 멋진 경험이었습니 다...그는 저희에게 그가 처음 부임했을 때 안필드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몇 년이 지난 리버풀 경기들에 관한 여러 가지 일화들을 아주 자세하게 말해주었는데 심 지어 그 경기에 온 관중 수까지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곧 흘러서 그가 떠나야 할 때가 되었고 어머니는 거실 앞에 선 그의 모습과 나와 같이 팔걸이의자에 앉아있는 그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습니다.

이 날의 기억은 1977년 그 일이 있은 후 지금까지 계속해서 저의 머릿속에 남아 있으며 지금도 저는 빌 샹클리가 우리 집을 방문해서 차와 비스킷을 들고 갔다는 사실을 자랑스레 얘기하곤 합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사람들은 여전히 내 얘기에 흠뻑 빠져들곤 하지요...어떤 사람들은 빌 샹클리를 만나봤다는 이유 로 제 손을 만져 봐도 되는 지 물어보기도 한답니다...그럴 정도로 샹클리에 대 한 사랑과 존경은 끝이 없습니다.

만약 빌과 제가 같이 찍은 사진이 필요하시다면 제가 한 장 보내드릴 수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날 빌의 방문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신 게 있으시다면 주 저하지 마시고 저에게 연락해 주십시오. 제 어머니는 올해 초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머니를 대신해서 이 이야기를 전합니다. 어머니가 없었더라면 제 가 이렇게 그날 빌 샹클리와의 만남을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 해 줄 일도 생기

지 않았을 테니까요.

저는 당신이 이 이야기를 책에 쓸 수 있었으면 합니다. 설사 그렇게 되지 않 는다 하더라도 저는 당신의 책을 재미있게 읽을 것입니다. 그리고 책을 집필하고 출판하는 일이 성공적으로 잘 진행되기를 바랍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S.J. 로빈슨 (부인)

417 스토링톤 헤이즈 스토링톤 가 크록스테스 리버플 안녕하세요, 톰.

리버풀 사람 론입니다. 제가 전에 보낸 편지를 받으셨길 바랍니다. 저는 편지 에 제 집 주소를 써서 보내지 못하는데 왜냐하면 가족들 가운데 몇 명은 에버턴 팬들이고 그들이 만약 이 사실을 안다면 틀림없이 나를 '못살게 굴 것이고' - 에 버턴 팬으로서 아마 정신이 나가 버릴 것입니다. 동의하시죠? 그러나 저한테 편 지를 보내실 생각이시라면 위에 있는 주소를 이용하세요. 제 친구 롭 존스의 주 소입니다 (저기, 같은 이름의 리버풀 수비수는 아니에요, 톰)

지금부터 '샹클리주의'에 관련된 몇 가지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리버풀이 홈경기를 앞두고 강팀과 붙게 되었는데 한 기자가 샹클리에게 물었 습니다. '저쪽 감독과 얘기를 해 봤는데 감독 말이 오늘 경기에서 좋은 결과를 확신한다고 하더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샹클리는 으르렁 거렸습니다. '그가 안필드에서 대접받을 거라고는 차 한 잔 과 전반전이 끝나고 나서의 중간 휴식시간 뿐이오.'

기자들은 샹클리와 인터뷰하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는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 으면서도 재치 있는 입담과 나름의 자기 철학을 잘 표현했는데 - 이러한 것은 저에게 그가 텅빈 콥의 테라스 앞에서 한 인터뷰를 생각나게 하는군요. 인터뷰하 는 사람이 샹클리에게 물었습니다. '제가 듣기로 이 도시에서는 축구가 일종의 종교라면서요? 말하자면 삶과 죽음에 관한 문제라고나 할까요?'

샹클리가 대답했습니다. '아니, 그렇지 않소, 젊은 양반.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라오.'

그는 가끔씩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캐그니'로도 불리곤 했습니다. 저는 상상이 됩니다. 그가 최고의 명성을 누리고 있을 무렵 콥의 지붕위에 올라가서 두 팔을 펼치고 '엄마, 세상에서 제일 높은 곳에 올라왔어요!' 라고 외치는 그의 모습을 (캐그니가 나오는 영화 보셨으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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