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곡의 「巫山一段雲」(次鄭仲孚蔚州八詠)사40)는 정포의 「巫山一段雲
」8首「蔚州八詠」을 次韻한 것으로 역시 이곡이 관동지방을 유람할 때 지은 것이다. 이곡은 충정왕1년(1349)에 관동유람에 올라 관동의 북 쪽관문이었던 철령에서부터 平海에 이르는 1,200여 리를 8월 14일부 터 9월 21일까지 유람하였는데 「巫山一段雲」8首는 여정의 말미인 9 월 19일 울진에 이르러 쓴 것이다. 정포와 마찬가지로 「蔚州八詠」을 副題로 삼아 그 경치를 보고 느끼는 감회를 노래했다. 그의 「巫山一 段雲」8수를 차례대로 살펴본다.
40) 뺷新增東國輿地勝覽뺸에는 울주 팔영이 실려 있다. 고려 말에 울주군수로 좌 천되어 온 정포와 학자인 이곡(李穀)이 울주의 풍경을 읊은 여덟 편씩의 詞 가 그것이다. 詞의 소재가 된 경승지는 태화사 앞의 平遠閣(평원각), 망해사 의 望海臺(망해대), 삼산의 碧波亭(벽파정), 남산의 隱月峯(은월봉), 황룡연 위의 太和樓(태화루), 은월봉과 황룡연 사이의 언덕 藏春塢(장춘오), 오늘의 연암동에 있는 바위 白蓮岩(백연암), 처용설화에 나타나는 開雲浦(개운포) 등 여덟 곳이다.
「大和樓」41)
鐵騎排江岸. 철기 뒤끓는 듯한 창칼소리 강 언덕에 늘어섰고, 紅旗出郭門. 붉은 깃발은 성문에서 나오네.
遨頭來此送賓軒. 고을 원님도 여기 와서 손님 전송하는데, 賓從亦何繁. 손님 수행원은 어찌 저리도 분주한가.
水色搖歌扇. 물빛은 노래하는 부채처럼 일렁이며, 花香撲酒尊. 꽃향기는 술잔에 넘쳐 그윽하네.
但無過客鬧42)晨昏. 다만 아침저녁으로 시끄러운 과객만 없다면, 淳朴好山村. 순박하고 좋은 산촌이겠네.
태화루는 오늘날의 울산 태화강 강변에 있던 누각으로 김극기의 태화루시서(太和樓詩序)나 권근의 태화루기(太和樓記)에서도 그 기록 을 살펴볼 수 있는데43) 이곡의 작품 속에서는 당시의 이 누각 주변 즉 태화강 강변에서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사람들 이 강변에서 떠나거나 이곡 자신이 떠남에 강변의 모습을 묘사한 것 으로 볼 수 있겠는데 첫 구절의 ‘鐵騎’에서 창칼 부딪히는 것 같은 비 파의 악기소리44)가 언덕에서 들려오고 붉은 깃발아래 손님을 보내는
41) 흥례부(興禮府: 현 울산) 서남쪽 5리 지점에 있는 누각. 임진왜란 때 불타버려 현재는 남아있지 않고 울산시가 2011년까지 복원예정이다. 태화루는 고려명 종 때의 한림학사 김극기의 태화루시서(太和樓詩序)에서 보이는데 김극기는 서기 1209년에 졸한 사람으로 그로부터 3백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신 라 말의 사실을 말한 것으로 보여 진다. 이렇게 김극기의 글을 통하여 태화 루의 세워진 연대를 신라 말기 때로 잡아볼 수 있다. 또 권근(權近)의 태화루 기(太和樓記)에서도 누의 기록에 관한 것이 있는데 이를 보면, 뺷신라 때에 비 로소 절을 이 藏春塢 북쪽 언덕에 세우고 태화(太和)라 하였는데 서ㆍ남쪽으 로 누각을 이루었고 아래로는 못에 임했으며 … 그 남쪽 누각이 이미 허물어 진 것과 서쪽 역시 썩어 기울어진 것을 보고 사절을 머물고 주저하여 바라보 다가 탄식하던 끝에 개연히 새로 지을 뜻을 가졌다.뺸라 하였다. 이를 본다면 누의 기루연대는 태화사의 창건과 같이 역시 신라 때인 것을 알 수 있다.
42) 시끄럽다.
43) 뺷신증동국여지승람뺸22권 경산도, 울산군.
전송단의 모습도 보인다. 그 무리 가운데 고을 현령도 보이고 사람들 이 이리저리 분주하다. 이곡은 前段에서 태화루 주변 나루터의 모습 을 멀리서 가까운 곳으로 시선을 옮겨가며 묘사하고 있고 이러한 태 화루의 분주한 정경은 이곡이 次韻한 정포 詞의 “喧闐車騎送歸軒, 歌 吹日來繁(시끄러운 수레와 말소리 동헌으로 돌려보내니, 노래 소리 날마다 끊이지 않네)”구절에서도 비슷하게 드러나고 있다. 後段에선 이제 배가 떠나가는데 배가 앞으로 나아가니, 물살이 노래하고 춤추는 부채처럼 일렁이고, 술잔에는 향긋한 꽃향기 가득하다. 이곡은 後段을 통해 분주하게 진행되던 송별의 모습이 사라지고 다시 고요한 산촌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정경을 묘사하고 있는데 전ㆍ후단을 통해 시각과 청각ㆍ후각의 감각을 고루 사용하여 한 폭의 그림을 보듯 한편의 이야 기를 듣듯 자연과 사람들의 정경을 조화롭게 묘사해내고 있다.
「藏春塢」45)
是處花多少. 이 곳에 꽃이 많았던가 적었던가
44) 白居易의 「琵琶行」시에 심양강(尋陽江) 저문 날에 손을 보내는 것으로 “銀 甁乍破水漿進, 鐵騎突出刀槍鳴.(은병이 깨져 쏟아지는 물소리, 철기가 뒤끓 어 창칼 쓰는 소리)”라고 되어 있다. 여기서 鐵騎는 악기소리이다. 여기서도 鐵騎는 송별 시에 연주하였던 비파의 소리로 보인다. 뺷古代漢語辭典뺸에 鐵 騎의 예문으로 백거이의 「琵琶行」을 언급하고 있다.(뺷古代漢語辭典뺸, 北京:
商務印書館出版, 2006年, 1555쪽)
45) 장춘오(藏春塢; 봄을 감춘 둑이라는 뜻): 현재 울산 신정동 서쪽 태화강 가의 언덕에 있는 마을, 양지발라 봄날씨처럼 따뜻하다. 지금은 없어지고 그 옆에 는 이휴정(二休亭)이 우뚝 서 있다. 이 장춘오는 권근(勸近)의 태화루기문(太 和樓記文)에 그 특성이 잘 나타나 「고을 서쪽에 수리되는 곳에 큰 내가 남 쪽으로 흐르다가 동으로 꺾이어 바다로 들어간다. 그 내(川)가 바다로 꺾이 는 곳에 물이 더울 넓고 깊으니 이곳을 황룡연(黃龍淵) 그 북쪽에 들 언덕이 깎은 듯이 있고 물이 다시 남으로 구부러지고 동으로 도는 곳에 산이(隱月 峯)이 높다랗게 있어 물 남쪽에 버티고 섰는데 이름있는 꽃과 이상한 풀 해 죽(海竹)과 산다(山茶)가 겨울에도 무성하여 이를 장춘오(藏春塢)라고 하였 다.」 이러한 태화루기의 내용을 본다면 장춘오라는 말은 겨울에도 봄을 감 춘 언덕이라는 것이 된다.(출처: 뺷울산 지명사뺸, 울산문화원편찬)
君家酒有無. 자네 집에 술이 있던가 없던가 人間紅紫已難留. 인간사 청춘시절 잡아두기 어려운 일 曾見襯庭隅. 그 옛날 어린시절 마당가에서 보았지.
世事將頭白. 세상사에 시달려 머리도 희끗희끗해지려 하니, 餘生業舌柔. 남은 생애 혀 부드럽게 하여.
携壺日日渡溪流. 술병차고 날마다 시내를 건너가니, 藜杖不須扶. 지팡이는 없어도 좋으리.
藏春塢는 봄은 감춘 언덕이라는 뜻으로 강 가운데 있는 작은 섬 인데 이 지역은 겨울에도 봄 날씨처럼 따뜻하였다고 한다. 가정이 이곳에 와서는 한산 고향의 어린 시절을 떠올린 듯한데 아마도 고 향 땅의 아름다운 정경과 흡사함에 그리움이 밀려왔던 것 같다. 그 리하여 前段에서는 이런 곳에 와보니 예전의 삶이 아득하게 느껴지 고 젊은 시절 언젠가 보았던 듯한 아름다운 광경에 인생의 무상함 을 느낀다. 그렇게 後段에 가면 세상사에 시달려 이제 머리 희끗해 지는 노년에 이르렀으니 인생살이 ‘舌柔’의 처세로 여생을 살아가리 라 다짐하는 것이다. ‘舌柔’의 처세란 노자의 뺷道德經뺸에서 언급하 고 있는 것처럼 부드러운 것으로 항상 온전함을 유지하겠다는 것인 데,46) 이곡이 당시의 신세에서 이러한 감회는 충분히 연상이 가능 한 것이다.
「平遠閣」
有客登仙閣. 어떤 나그네 신선각에 오르니, 何人棹酒船. 누군가 술 실은 배 노 저어 오는구나.
宦遊不覺到天邊. 벼슬길 떠도느라 하늘가에 온줄 깨닫지 못하고,
46) 뺷道德經뺸: “柔能勝剛 弱能勝强 故 舌柔常存 齒剛則折.(부드러운 것이 억센 것을 이기고,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 그러므로 혀는 부드러워 항상 온 전하고, 이는 단단해서 부러지는 것이다.)”
江路草芊芊. 강둑엔 잡초만 무성하구나.
極浦低紅日. 포구 저 멀리 붉은 해 나직한데, 孤村起碧煙. 외딴 마을에 푸른 연기 올라오네.
離情詩思共悠然. 이별의 정으로 시의 흥취가 모두 가득하고, 歲月似奔川. 세월은 냇물처럼 달아나는구나!
平遠閣은 태화사 앞에 있던 누각으로 태화루와 마찬가지로 비교적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이곳에 오르면 강가와 멀리 바닷길까 지 볼 수 있었다. 이곡은 이 누각을 신선의 누각이라 부르며 그곳에 올라 멀리 강가에 노 저어 오는 배를 보니 이곳이 신선들이 사는 하 늘 끝인 듯한 느낌이 든다고 고백한다. 前段 마지막 구절에서는 그렇 게 버려둔 자연에 대한 무심함을 멀리 강둑의 무성한 잡초로 드러내 고 있는데 이는 陶淵明의<歸去來辭>의 첫 구절에서 보이는 “歸去來 兮, 田園將蕪胡不歸.(돌아가리라 정원이 장차 황폐하게 될 것이니 어 찌 돌아가지 않겠는가)”라는 구절과도 통하는 것으로47) 작자는 벼슬 길 하느라 자연의 아름다움을 모르고 살았던 그동안의 삶에 아쉬움 을 드러내고 있다. 後段으로 가면 멀리 포구 근처에서 붉은 해가 나 직이 저물어가고 외딴마을에서는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른다. 고향 을 떠나 그곳에 있던 이곡에게 이러한 정경은 자연스레 그의 가족을 떠올리게 하였을 것이다. 그리하여 가족들과 이별하고 있는 슬픔에 詩情이 피어오르고 결국엔 모두 다 잊고 고향으로 돌아가고픈 마음 에 ‘세월이 냇물 같은 것인데’ 하고 ‘歸去來’의 이유를 갈구해본다. 전 체적으로는 그의 紀行詩 대부분에서 드러나고 있는 서정이 압축되어 있다. 아름다운 정경으로 인한 자연에의 감흥과 객지에 떠나 있음으 47) 이곡의 시에는 歸去來의 정서가 많이 드러나고 있는데 이곡의 시를 연구한
황재국의 見에 따르면 그의 시에서 드러나는 歸去來의 정서는 순수한 전원 에 대한 애착과 개인의 이상이 혼탁한 현실과 일치되지 않는 갈등에서 기인 하게 된다고 하였다.
로 인한 고향과 가족의 그리움, 또 쉼 없이 흐르는 세월의 무상함 등 이 그러하다.
「望海臺」48)
「望海臺」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