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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적 공간으로서 도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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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하림이 초기시에서는 향수의 공간인 고향에 머물러 있었다면 이 시기로 이동하면서, 부터는 외부로 시선을 돌려 현실과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현실적 공간인 도시 에 위치하게 된다 물론 앞선 시기에서도 시인은 서울에서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 ’ . ,

이러한 공간의식에 대한 변화는 시인이 시간을 어떻게 의식하고 있느냐 하는 문제와 함 께 변하게 된 것이라 볼 수 있다.

69) 에드문트 후설 같은 책, , 43 .쪽

번 버스를 타고 저녁 시 우이동 기슭에 들어서면 아직도 저녁 햇

7 7

살이 터널처럼 자욱하게 끼어 있다 거리는 비단결 같다. . (…중략…) 사일구공원이나 한신대 골목에서 페퍼포그가 터질 때면 온 마을은 페퍼포그 냄새에 싸여서 쿨룩거리고 주민들은 사일구나 한신대가 주, 체스러워 툴툴거리고 페퍼포그가 사라지면 다시 원상으로 돌아가 저, 공원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몰라요 정말이에요 저 공원이 마을의 자랑 이에요 수다를 떤다. (…중략…)

오늘도 비가 내린다 나의 거리에 비가 내린다 나는 아이들과 아내. . 에게 키스를 하고 우산을 들고 장화를 신고 거리로 나간다 집들에 가. , 로수에 길바닥에 뒹구는 돌멩이에도 안녕 안녕 인사를 하며, , .

나는 거리로 나간다 나의 거리에 비가 내린다 비가 내린다. . .

비가 내린다 부분

─ 「 」

나는 살고 숨 쉬고, , 꿈처럼 본다 하늘에서, 요란스레 꽃들이 피고,

피가 흐르고 천사들이 나팔 불고, , 진압군이 몰려온다 거리가 구부러지고, 무너지면서 심장이 터질 듯한 나는, , 얼마나 손잡고 웃고 있는가 땀 흘리고, , 있는가 고요히 플라타너스 이것은 최루탄, , , , 이것은 민주주의 이것은 방패 하면서, , , 일렁이는 햇빛의 파도 속에서

흐르는 육체의 신선함으로, 신선함으로,

우리는 손잡고 기다리고 있었네 전문,

─ 「 」

골목에는 띄엄띄엄 병사들이 늘어서고 어둠이 소리 없이 밤으로 기 어 들어갔다 밤밖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검은 벽면에 등. .

을 붙이고 서 있었다 시간들이 우수수 떨어지고 시간들은 골목과 골. , 목으로 토네이도처럼 쓸고 갔다.

베드로 부분

─ 「 」

도시 전체가 사건에 질려서 창백한 빛깔로 변조되어가는 것 같습니 다 그해엔 또 무지무지하게 비가 많이 내리고 햇빛까지도 엄청나게. 맑아서 사건들이 일종의 혼란 속의 명료성까지도 띠어가는 것 같습니, 다.

말 부분

─ 「 」

위의 인용된 시편들에서는 시인이 위치하고 있는 도시와 거리 모습이 구체적으로 잘 나타난다 중기시가 쓰인. 1980년대는 페퍼포그 최루탄을 발사하는 차량 가 진압군이 병( ) , , 사들이 거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시인의 거리에는 비가 내리고 어둠밖에. , 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시인은 이러한 현실을 올바름과 그릇됨이 혼재한 장. “ ”70)이라 고 정의하며 이러한 도시에서 새로움과 역동성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

쩡쩡 울리는 목소리로 누군가 내게 말했다 개처럼 짖어라 짖을 힘도 없다면

너는 정말 길들여진 개일 것이니 그리하여 나는 짖었다

이 골목 저 거리에서 들판에서 고속도로에서 보리밭과 저녁 산 가파른 언덕바지에서 숨도 쉬지 않고

고통의 문지방 부분

─ 「 」

시인은 일상적 행위 현실 과 제도적 관습 현실 이라는 이중적 현실을 아울러 겪고 있‘ ’ ‘ ’ 70) 최하림 겨울꽃 판화시선, ( ) , 풀빛, 1985, 130~131 .쪽

는 이중적 존재이다 그리고 그 둘의 거리를 좁히고 넓히려는 노력이 숱한 시적 현실을. 마련하도록 이끄는데71), 그 노력은 위의 시 고통의 문지방 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시「 」 . 인은 억압된 세상에 길들여진 개 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이 골목 저 거리에서 들판“ ” “ 에서 고속도로에서 보리밭과 저녁 산 가파른 언덕바지에서 숨도 쉬지 않고 짖는다” .

나는 나 를 보고 싶다 이 나 를 본다는 일은 나와 역사의 연계를 확실히< > . < >

하는 일이 될 것이고 나를 객관화하는 일이 될 것이다 최하림. ( , 詩와 否定의 정신 책머리에, )

틀림없이 하나의 시 한 시대의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시의 정신이 되, 고 표현이 되며 충동이 되는 시대정신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며 그 시, 대 정신을 성립시킨 내외 조건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중략…) 시 를 관념화하고 전문화하려는 경향을 배격하고 인간이 살아가는 가운데서 행해 지고 부딪치는 부단한 경험 정서로서 시 그것을 이해하려고 해야 한다 최하. ( 림, 詩와 否定의 정신 , 296~297 )쪽

최하림은 1939년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6·25전쟁을 겪었으며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였, 다 이후에도 민주화운동을 비롯한 현대사의 격동을 본인의 삶으로 통과하고 역사의 현. , 장을 목도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역사가 개인에게 의식화되어 가는 과정은 바로. “ 그렇게 역사를 사는 개인의 고통을 통해서이고 그 의식은 성서의 밀알처럼 끊임없는 자, 기부정을 거쳐서 변증법적 삶을 얻게 되는 것 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시인은 진정한 나” . “ 를 보기 위해서는 나와 역사의 연계를 확실히 해야 하며 한 시대의 시를 이해하기 위해, 서는 그 시대정신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고 피력한다 이러한 역사의식은 아래 인” . 용된 시에 잘 나타나는데 시인은 도시의 거리를 둘러봄으로써 우리에게 축적된 역사가, 무엇인지 확인한다.

광무(光武) 1년에 그 거리엔 어둠이 진선미처럼 내리고 봄 가을이

모습을 바꾸면서 얼마나 신속하게 지나갔던지 장안 사람들은 점심을 싸가지고

71) 박태일 한국 근대시의 공간과 장소 소명, , , 1999, 223 .쪽

전차 구경을 갈 때처럼 종로 네거리로 나갔다.

갑오경장을 시발로 해서 아관파천(俄館播遷) 만민공동회 을사보호조약이 지나가고

운동도 신간회도 문인보국회도 지나가고 3·1

찬탁 반탁의 무리들도 줄지어 지나갔다.

처음엔 문명의 속도에 경탄하여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고 있었으나

무엇에 질린 것인지 하나 둘 골목으로 슬슬 꽁무니를 빼기 시작하였다.

와 후퇴 때에는 아무도 대문 밖으로 6·25 1·4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어떤 늙은이가. 어느 날 세상이 얼마나 변했는지 보려고 상체를 내밀었다가 깜짝 놀랐다.

한말에도 왜놈 시절에도 해방 때도 떵떵거리며 차를 타고 다니던 놈 나라를 팔아먹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던 놈 그놈이 가고 있었다 가롯 유다보다도 더러운 놈. .

얼마나 세상이 변했는가 전문

─ 「 」

위의 시는 광무(光武) 1년인 1897년부터 한국 근현대사를 나열하며 도시와 거리의 역, 사성을 보여주고 있다 작품에서 제시되는 공간은 단순히 지리적 위치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의 사회적 정신적 배경을 포함하고 있다 그렇게 긴 시간이 흘렀지만 그, · . 도시의 구성원이 변하지 않은 사실은, “나라를 팔아먹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던 놈 가롯 유다보다도 더러운 놈 이 거리를 지나가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는 어떤 늙은이의 모습을” 통해 나타난다 역설적이게도 세상과 이 도시의 거리는 변하지 않은 것이다. .

나는 길 위에서 서성거린다 나는 나의 가난한 마을을 일요일마다. 서성거리고 금남로에 데모행렬이 지나갈 때도 데모대 주변을 서성거린 다 나는 서성거린다 나와 남 새에서 내 집과 거리에서 나의 아이들. . , , 가운데서 서성거림이 현재의 내 존재양식이고 갈등양식이고 내 시의, 기본요소이다 최하림. ( , 숲이 아름다운 것은 그곳이 비어 있기 때문이 다 , 34 , 122 )쪽 쪽

이렇듯 정체된 도시와 거리에서 서성거리며 새로움과 역동성을 찾고자 하는 시인의 의 지는 새 를 통해 표출된다 최하림의 시에서 새는 자유나 희망을 나타내는데 새는 폭력‘ ’ . , 적이고 억압된 현실적 공간을 벗어날 수 있는 존재이다.

인간의 사고나 감정과는 상관없이 봄 하늘에 날개를 그리고 있는 새 를 보면서 새의 눈을 새의 부리를 새의 날갯짓을 보면서 새의 과거, , , , 와 현재까지도 생각해보면서 그 낱낱의 것들이 어울려 이루는 새의 전 체상을 그려보면서 불현 듯 나는 새를 우리 현대사와 비교해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러니까 현대사라는 새가 리드미컬하게 경사를 그리. 며 달려 내려가 날카로운 발톱으로 박종철을 채가고 이한열을 채가면 서 포박과 비상의 균형을 이루는 그 생존과 질서의 반복!

지금은 북한산 너머에서 커다란 일몰이 몰아온다 새는 나무숲으로 아무 의문 없이 사라져가고 다른 새들이 무리지어 나타났다가 다시 사 라져간다.

나는 나도 모르는 새에 제기럴 이민이나 가까부다고 씨부렁거린다.

그러자 갑자기 놀랠 일이라도 일어난 듯이 마음의 평화의 새들이 푸르 고 푸른 하늘을 날아 아메리카로 알래스카로 아이슬란드로 날아가고 새의 그림자만 슬프게 남는다.

날아가버린 새여 너는 아름답구나 너의 하늘은 바다는 여자들은, , , , 날아가버린 새여 너는 아름답고 나는 슬프지만 슬픔으로 우리 또한, , , 아름답구나

새 전문

─ 「 」

위의 시에서 화자는 불현 듯 새를 우리 현대사와 비교해보고 싶은 충동 을 느낀다“ ” . 화자는 새의 전체상을 통해 1987년 월 항쟁의 시작과 끝의 희생자인 박종철과 이한열6 을 떠올린다 그리고 우리 현대사의 격정적 흐름을 새가 그리는 리드미컬한 경사 로. “ ” , 그 폭압적인 상황을 새의 날카로운 발톱 으로 비유한다 이처럼 포박과 비상의 균형“ ” . “ ”

을 지닌 새의 모습은 곧, “생존과 질서의 반복 인 우리 역사의 현실인 것이다 이후 이” . 새는 우리의 마음에 평화의 그림자만 슬프게 남기고 사라진다 화자는 물리적 공간에 자. 신의 육체성이 얽매어 있는 존재이지만 새는 푸른 하늘 그 무한한 공간으로 향하면서, “ ” 지리적 경계와 물리적 공간 육체의 한계를 넘어서는 아름다운 존재가 된다, “ ” .72)

기억들은 행복하다 우리들이 걸었던 길의 고통의 시간 속에서 같은 동작을 반복하며 아침마다 눈부신 햇덩이로 솟아오르고, 이슬을 털고 바지런한 애인들이 길을 가고 농부들이 간다, 빛을 뿜어라 떵떵 울려라

더욱 높이 사랑의 새들이 오르고 푸른 풀잎에서 이슬이 떨어지고 애인들이 순간 걸음을 멈칫한다

우리들이 걸었던 길의 고통의 시간 속에서

─ 「 」

새를 통해 현실적 공간에서 벗어나 새로움과 역동성을 찾고자 하는 시인은 우리들이“ 걸었던 길의 고통의 시간 속에서” “사랑의 새 들이 날아오르길 기대한다” . “역사적 이상 은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패배 속에서 새로운 꿈꾸는 것”73)이기 때문이다.

72) 새들이 우리의 상상력에 위대한 도약의 기회를 허락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그 새들이 가진“ 화려한 색깔 때문이 아니다 새에 있어서 아름다운 것은 원초적으로 새의 비상이다 역동적 상상력. . 에 있어서 비상은 으뜸가는 아름다움인 것이다.” 가스통 바슐라르 정영란 옮김, , 공기와 꿈 , 이학 사, 2000, 133 .쪽

73) 최하림 겨울꽃 판화시선집, ( ) , 풀빛, 1985, 131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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