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사람들, 음향 담당자만 해고하라고 할까요? 방송국 문 닫아도 할 말 없는 겁니다.”
5. 결론 및 논의
다문화주의가 ‘정치적 올바름’의 한 형태로 받아들여진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2000년대 이후 다문화주의를 정책적으로 추진하면서 빠르게 사회의 중심 담론으로 발전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논리는 ‘다문화주의’의 반대 개념을
‘인종주의’로 명명한 것이었다. 의미의 싸움에서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한 담론이 주도적 담 론이 되기는 어렵다. 그러나 과연 한국 사회의 다문화 담론은 그러면 공고하게 뿌리 내린 주도적 담론이라 말할 수 있을까? <비정상회담>이 야기한 ‘기미가요’ 논란이라는 하나의
담론적 사건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긍정적일 수 없음을 시사한다.
비판적 담론 분석을 활용하여 이 담론적 사건을 분석하였다. 바꿔 말하면, 최근 한국 의 미디어들에 의해 수용 양상이 확대되고 대중의 호응을 얻고 있는 다문화적 요소들과 다 문화주의적 시선들이 경쟁적인 담론들과 맞닿았을 때 변화하는 양상에 대해서 알아보았 다. 본 연구는 <비정상회담> 17회에서 배경음악으로 삽입된 기미가요가 불러일으킨 논란 의 의미를 파악하고자 한 일종의 사례 연구지만, 이 과정을 통해 담론 간의 경쟁, 지배적 담 론의 균열, 그리고 전체 담론 구조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 즉, 다문화주의를 표방하는 인기 예능오락 프로그램이 특정 사건으로 인해 수용자들의 비난을 받는 국면을 들여다봄 으로써 다문화 담론이 우리 사회에 뿌리 내린 정도를 알아볼 수 있었다는 의미를 갖는다.
기미가요는 한국 사회에서 ‘침략자들의 상징’이란 기호로도 활용되지만, 동시에 한국 이 50년 전 외교 관계를 재수립한 일본의 공식 국가라는 기호로도 활용되기 때문에 이중적 인 성격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다문화주의적 관점에서 상대 문화에 대한 존중을 강 조한다면 전자가 후자를 쉽게 압도하는 상황으로 이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다문 화주의가 그만큼 공고하게 자리 잡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본 연구의 분석 결과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 다문화주의는 주류 담론을 생산하는 대중, 언론, 정부의 취사적 선택에 의해 제 한적으로만 받아들여지며, 그나마 돌발적 상황에 의해 언제든지 변할 수 있는 취약성을 지 닌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미디어는 다문화 담론의 착근과 확대에 기여하지만, 동시에 다문화 현상을 오락적 가치라는 기준으로 평가하고 활용하는 경향이 분명히 있다. 대중들 은 다문화주의가 정치적으로 올바른 가치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고 있지만(강진구, 2014) 언제든지 다른 논리를 동원하여 다문화주의를 공격할 준비가 되어 있다.
<비정상회담>의 기획 의도나 구성 방식을 고려할 때, 이 프로그램의 다문화주의는 동 화주의적 시선을 최소화하면서 문화적 다원주의로 나아갔다고 평가할 수 있다. 혹은 기획 의도가 만족스러울 정도로 성취되었다고 판단할 근거가 없다는 점을 강조할 수도 있다.21) 하지만 이 프로그램이 한국 사회의 다문화주의에 대한 ‘이야기꺼리’를 던져주었다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리고 ‘기미가요’ 논란을 통해 알 수 있었던 것은 시청자 게시글들과 언 론 보도, 그리고 제도적 조치들이 거의 반론을 허용하지 않는 수준의 반일 담론을 구성함 으로써 다문화주의의 확대 여지가 일시적으로나마 봉쇄되었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수 용자들은 다문화가 주는 ‘다름’이라는 흥미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다른 담론들과 경쟁하고 갈등할 때 선택적으로 수용할 뿐만 아니라, 민족주의나 역사 등 국가 정체성과 같은 주류
21) 물론 이 가정들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공동체의 문화적 요소들과 부딪혔을 때에는 ‘다문화’에 대한 관심과 선호를 상당 부분 포기 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외시적이고 명백한 것은 아니다. 개별적인 수용자 입장에서 는 민족을 중시하고 반일을 강조한다고 해서 다문화주의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 다. 예를 들어 민족주의가 다문화주의보다 상대적 우위에 있는 경쟁적 이념이라고 생각한 다기보다는, 둘은 전혀 다른 차원이거나 심지어 별 관계가 없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민족주의에 대한 결정적 집착이 결과적으로 다문화 담론에 균열을 가져왔다는 점 이 중요하다. 균열의 원인이 되는 경쟁 담론들은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으며, 특히 반일 민 족주의라는 매우 예민한 정서 변수가 개입할 때 그 파괴력은 더 크다. 다문화주의가 ‘정치 적으로 올바른’ 이념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을지는 몰라도, 정작 그 믿음은 사회 내에 굳 건하지 뿌리 내리지 못했기 때문에 특정 계기에 의해 심하게 흔들릴 수 있다. 본 연구에서 제시한 계기는 민족(중심)주의나 반일 감정이었으나, 아마도 다른 많은 잠재적 계기들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연구의 결과와 의의에도 불구하고 본 연구는 몇 가지 분명한 한계를 갖는다.
먼저, 특정한 국면에서 하나의 대항 담론을 중심으로 제한적인 담론 분석을 수행한 것이기 때문에 사례 연구 이상의 보편적 설명력이 약한 한계를 갖는다. 특히 한일 관계나 반일 감 정은 다른 사례와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특수성이 크기 때문에 ‘담론 간의 경쟁’으로만 설 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단, 한국 사회의 담론을 설명하는 데에는 여전히 유효성을 가질 수 있다. 따라서 한국 사회에서 윤리적 정당성을 확보한 것으로 보이는 다른 주요 담론, 이 를테면 성평등 담론이나 탈특권 담론 등의 안정성이나 균열 가능성을 연구하는 것은 흥미 로운 후속 연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로는 방법론적 미진함을 들 수 있다. CDA의 부분적 차용을 선언하긴 했으나, 정치한 언어 분석이나 기호학적 분석이 수반되지 않았기 때문에 연구 결과의 타당성이 의심받을 수도 있다. 후속 연구에서 엄밀한 도구적 절차와 분석을 활용한다면 더 설득력 있는 결론을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사회적 실천’에 대한 분석이 피상적인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는 한계가 있다. 본 연구에서 는 언어 텍스트 분석을 중심으로 하고 텍스트 외적인 담론 요소에 대한 분석을 보조적으로 하였으나, 향후에는 후자에 더 무게를 둔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젠더, 자본, 인종, 교육, 지역 등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담론들과의 상관관계를 조망하는 후속 연구 가 이어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