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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서사무가의 중세성

문서에서 제주 서사무가의 문화수용 양상 (페이지 51-66)

4.1 중세서사시의 전승

<세경본풀이>는 남녀의 간절한 애정을 노래했다. <세경본풀이>는 창세서사시에서 보이는 하늘에서 하강한 남성과 지상 여성의 결연을 재현한다.

<세경본풀이>는 대단히 장편이다. 기자정성에 의한 출생, 연애와 결혼, 부모로부터의 추방, 죽은 남편을 살려내는 영웅적 행위, 신으로의 좌정이라는 주인공의 행적은 영웅의 일대기 구조로 손색이 없다. 무속서사시 가운데 남녀간의 애정담으로서, 또 하나의 전형적인 여성구 비서사시라고 할 수 있다.120)

주인공 자청비는 여성 영웅의 모습을 보여 준다. 그 이유가 단지 자청비가 남성신보다 뛰 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다거나, 그의 행적이 영웅의 일대기 형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 니다. 자청비의 애정성취가 갖는 의미를 농경신의 성격과 연결지어서 오곡의 풍농을 기원하 는 주술적인 성격으로 해석한 것은 타당하지만,121)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여성의 삶이라는 점 또한 중요한 성격을 지닌다.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옛날 옛적 김진국 대감과 자지국 부인이 살았는데 집안이 부유하나 늙도록 자식이 없어 탄식하고 있 었다. 하루는 시주를 받으러 온 중이 절에 불공을 드리면 자식을 낳는다고 하자 불공을 드렸는데 제물 이 조금 모자라 딸을 낳게 되어 자청비라 하였다. 자청비가 열다섯 살이 되었을 때 하녀를 따라 빨래 하러 나갔다가 하늘에서 글공부하러 내려온 문도령을 보고 반하여 남장을 하고 그를 따라가 함께 3년 간 글공부를 한다. 그러다 문도령이 결혼하라는 아버지 하늘옥황의 편지를 받고 하늘로 돌아가게 되 니, 자청비 역시 글공부를 그만두고 같이 집으로 돌아가다 자신이 여자임을 밝히고 자청비의 집에서 인연을 맺은 후 문도령은 하늘로 올라간다. 그 후 문도령을 그리워하던 자청비는 종 정수남이가 문도 령을 보았다고 거짓말을 하자 정수남이를 따라 산으로 갔다가 겁탈을 당할 위기에 놓이나 지혜를 발 휘하여 그를 죽이고 돌아온다. 자청비가 부모에게 종을 죽인 일을 고하자 그녀의 부모는 종의 일을 시 키는데 일이 고된 나머지 남장을 하여 집을 나온다. 집에서 나온 자청비는 황세곤간 서천꽃밭의 부엉 이를 잡아 주고 황세곤간의 셋째 사위가 된 뒤, 서천꽃밭에서 환생꽃을 구해 죽은 정수남이를 살려 집 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사람을 죽였다 살렸다 하니 집안을 망칠 년이라 하여 부모에 의해 쫓겨나며, 주모할머니를 만나 수양딸이 되어 살아가게 되고, 문도령 혼사비단을 짜며 자신의 이름을 새긴다. 이 를 본 문도령은 자청비를 만나러 오지만, 자청비는 손가락을 문틈으로 내밀라 하여 바늘로 손가락을 찌르고 문도령은 이에 돌아가 버린다. 그리고 이 일로 인해 주모할머니에게도 쫓겨난 자청비는 자청비 와 같이 목욕하던 물을 길어 오라는 문도령의 심부름을 온 궁녀를 만나, 궁녀를 도와주고 같이 하늘로 올라간다. 하늘에서 문도령과 재회한 자청비는 문도령과의 회포를 풀고, 며느리가 되기 위한 시험을 통과하여 문도령과 결혼한다. 그러나 금슬 좋은 그들 부부를 시기하는 무리가 있어 문도령을 죽이고 자청비를 푸대쌈하려는 모의가 진행된다. 이를 안 자청비는 문도령을 황세곤간 셋째딸에게 보내 자신

120) 이경하, 위의 논문, 14쪽.

121) 이수자 「농경기원신화에 나타난 여성인식과 의의」, 이화어문논집 제11집, 이화여자대학교 한국어문학연구 소, 1990.

대신 보름을 살고 오라고 하는데, 문도령은 그만 기한을 잊는다. 이에 자청비가 편지를 보내니 문도령 이 바삐 돌아온다. 궁에서 잔치가 열리고 흉계에 빠진 문도령은 죽고 만다. 자청비는 자신을 푸대쌈하 러 온 무리들을 지혜를 발휘하여 퇴치하고, 서천꽃밭 도환생꽃을 따다가 문도령을 살려낸다. 그리고 하늘의 변란을 평정하여 상으로 오곡 종자를 받아 문도령과 더불어 지상으로 내려와 문도령은 상세경, 자청비는 중세경, 정수남이는 하세경이 되어 신으로 좌정한다.122)

자청비의 영웅성은 시련의 극복이라는 점에서 두드러진다. 그리고 자청비의 시련은 남성과 의 관계, 특히 문도령과의 이별과 그 후의 결합의 과정에서 주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자 청비는 문도령과의 결합을 위해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행동하는 주체적 성격으로 그려진 다.

첫 번째 시련은 하늘옥황으로부터 문도령에게 장가들러 오라는 편지가 오며 시작된다. 한 눈에 사모하게 되어 남장을 하고 글공부하는 곳까지 따라왔지만, 사랑하는 님을 잃게 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그러나 자청비는 훈장선생을 작별하고 돌아오는 길에 문도령에게 스스 로 여자임을 밝힘으로서, 두 사람의 결합이 이루어진다. 사랑하는 남성과 이별하게 된 상황 에서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자신을 드러냄으로 인해 문도령과의 결합을 성취하게 되는 것 이다.

우리는 옛 시대의 여성이라고 하면 흔히 수동적인 존재로 생각하기 쉽다. 그리고 그 시대 의 여성들은 주체적 결정 없이 부모가 정해주는 배우자와 혼인하는 것으로 인식한다. 그러 나 자청비는 자신의 사랑 앞에서 현대 여성 못지않은 능동성을 보여 주고 있으며, 남성 역 시 자신이 스스로 선택한다. 자칫 사랑하는 대상을 잃을지도 모르는 위기 상황에서 적극적 으로 행동하여 일시적이긴 하지만 결합을 성취해낸 것이다.

문도령과의 이별 후 맞는 시련 역시, 남성으로 인해 생기게 된다. 종인 정수남이가 원인인 데 아름다운 자청비를 사모한 정수남이는 자청비를 겁탈하려 한다. 옛 연애담에 흔히 등장 하는 사랑의 방해꾼 역할을 하는 것이다. 우리 고전 소설 <춘향전>에서의 변사또와 비슷한 역할이다. 그러나 자신의 삶을 적극적으로 개척해 가는 자청비의 능동성은 여기서도 발휘된 다. 춘향은 강한 의지로 묵묵히 자신에게 닥친 시련을 견디는 데 비하여 자청비는 스스로의 기지로 위기를 벗어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내용들은 인물들 간의 신분 설정에서 온 것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하여 자청비의 능동성을 과소평가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자청비는 마음대로 사람을 죽이고 살린다 하여 집에서 쫓겨난다. 이 시련은 주모할 머니의 수양딸이 되어 간단히 해결된다. 영웅담에는 영웅을 돕는 구출자가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이 주모할머니 역시 갈 곳 없는 자청비를 구제해 주고 문도령 혼사에 쓸 비단을 맡아 자청비에게 짜게 하여 자청비와 문도령이 재회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준다는 점에서 구 출자의 성격을 지닌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구출자는 얼핏 보면 철저하게 구출자 의 임무를 수행하지 않는 듯이 보인다. 문도령을 화나게 하여 돌아가게 만든 자청비를 쫓아 낸 것이다. 그러나 이 축출 역시 구출자로서 영웅을 돕는 행위이다. 자청비는 쫓겨난 후 문 도령이 심부름을 보낸 궁녀를 만나 결국 문도령과 재회하게 된다. 이미 문도령은 주모할머 니 집으로 자청비를 만나러 왔다 돌아갔으므로 서사구조 상 그 집에 있는 한 문도령과 만날 수 없다. 이미 자청비의 곤경을 구해주고 문도령과의 재회를 주선해줬던 주모할머니는 스스 로 재회의 기회를 버린 자청비를 축출함으로 인해 직접 문도령을 찾아갈 수 있는 기회를 제 공해 준 것이다.

122) 현용준·현승환, 위의 책, 197-259쪽 참고.

고전 서사물에는 우연적 요소가 많다. 자청비의 경우는 주모할머니나 궁녀와의 만남이 그 예에 들어간다 할 것인데, 결정적으로 궁녀를 만남으로 인하여 하늘로 올라가 문도령과 재 회한다. 그러나 궁녀와의 만남이라는 우연이 발생하기 위해서는 주모할머니의 집에서 나와 야 한다. 이 우연의 계기를 마련해 주는 존재가 주모할머니로서 구출자의 역할을 충실히 수 행했다 평가할 수 있다.

그리고 하늘로 올라간 자청비는 하늘옥황이 부과한 시험을 모두 통과하여 결국 문도령과의 혼인을 허락받음으로써 자신의 사랑을 성취한다.

그러나 사랑의 성취 이후에도 시련은 끝나지 않는다. 문도령이 모략에 빠져 죽게 된 것이 다. 그러나 死別에 임해서도 자청비는 문도령을 포기하지 않는다. 자청비는 죽은 문도령을 자는 것처럼 꾸미고, 푸대쌈(보쌈)하러 찾아온 자들을 거꾸로 골탕을 먹여 내쫓고, 환생꽃을 구해 결국 죽은 문도령을 살린다. 그 후 자청비는 하늘에서 五穀 種子를 받아 농사를 관장 하는 세경신이 된다.

이처럼 자청비의 영웅성은 시련의 극복에서 찾을 수 있다. 자청비에게 시련은 문도령과의 관계에서 비롯된다. 문도령과의 ‘분리-결합’은 자청비에게는 즉 ‘시련-시련극복’의 과정이라 는 등식이 성립하는 것이다. 자청비가 영웅인 이유는 이러한 시련을 극복하고 문도령과의 관계를 지키기 위해 온갖 역경을 무릅쓴다는 데 있다. 이처럼 자청비가 갖고 있는 영웅으로 서의 비범한 능력은 단순한 미모나 재주라기보다는 문도령과의 관계를 포기하지 않는 굳은

이처럼 자청비의 영웅성은 시련의 극복에서 찾을 수 있다. 자청비에게 시련은 문도령과의 관계에서 비롯된다. 문도령과의 ‘분리-결합’은 자청비에게는 즉 ‘시련-시련극복’의 과정이라 는 등식이 성립하는 것이다. 자청비가 영웅인 이유는 이러한 시련을 극복하고 문도령과의 관계를 지키기 위해 온갖 역경을 무릅쓴다는 데 있다. 이처럼 자청비가 갖고 있는 영웅으로 서의 비범한 능력은 단순한 미모나 재주라기보다는 문도령과의 관계를 포기하지 않는 굳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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