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의료제도가 가지는 특징 중 하나는 의과(醫科)와 함께 전통의 학인 한의과(韓醫科)가 국가의 공식적인 의료체계에 포함되어 있으면서, 면허제도에 의해 상호배타적으로 서비스가 제공되는 의료이원화(醫療二 元化)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의료이원화 전통은 1951년 ‘국민의료법’ 제정 당시부터 유지되고 있는데, 지금도 의(醫)-한 의(韓醫)를 별도의 면허제도로 운영하면서 해당 면허에 따라 상대 직역에 속하는 처방이나 시술을 엄격히 제한하는 체계를 고수하고 있다.
의료이원화 체계는 현행 의료법 조항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현행 의 료법(법률 제10387호) 제2조(의료인)는 의사의 임무를 ‘의료와 보건지 도’로, 한의사의 임무를 ‘한방의료와 한방 보건지도’로 규정하면서 별도 의 면허제도를 규정하고 있으며(제5조), 제33조(의료기관의 개설)는 복수 면허 소지자의 의원급 의료기관 개설‧운영을 제외하고는 의료인으로 하여 금 둘 이상의 의료기관 개설을 금지하고 있다. 따라서 복수면허자가 아닌 의사는 종합병원‧병원‧요양병원‧의원만을, 한의사는 한방병원‧요양병원‧한 의원만을 개설할 수 있도록 제한된다(제33조제2항). 이러한 배타적인 면 허제도를 침해하는 행위는 법적인 처벌의 대상이 된다(제87조). 의료인이 라 할지라도 해당 면허를 소지하지 않은 자가 처방‧처치‧시술을 행할 경우 는 모두 무면허의료행위로 간주되는 것인데, 이는 제27조(무면허 의료행 위 등 금지)에서 ‘의료인도 면허행위 이외의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는 규 정에 반영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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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이원화된 의료서비스 전달체계를 도입하여 운영하는 취지는 의료인들의 행위1)를 면허에 의해 분명하게 구분함으로써 무자격자에 의 한 소비자 피해를 차단하고, 직종별 전문성을 최대한 보장함으로써 국민 들에게 높은 수준의 서비스를 안정적으로 제공하는 한편, 소비자들의 선 택 폭을 확대하기 위함이다. 아울러 의학과 한의학이라는 각 학문의 특성 을 유지한 상태에서 각각의 학문 발전과 직역별 전문성을 보장한다는 의 미도 가지고 있다.
의료이원화 체계의 긍정적 도입 취지에도 불구하고 최근에는 이의 단 점을 지적하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예를 들어 전문적인 의학적 지식을 갖추지 못한 소비자 입장에서는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의료행위 주체 선 택에 혼란이 발생할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중복진료 및 의료비 지출 증 가의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공급자 측면에서는 의사와 한의사 인력의 별도 공급으로 인해 의료인력 과잉공급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 다는 지적이 가능하다. 또한 과학적 지식이 심화되고 의료기술이 발달하 면서 영역간 교류‧융합이라는 학문적‧사회적 변화에도 유연하게 대응하기 어려운 체계라는 단점도 있다. 그렇지만 의료이원화 체계와 관련하여 가 장 큰 단점으로 지적되는 것은 각각의 의료직역별로 허용된 면허범위가 어디까지인가에 관한 해석을 둘러싸고 의료인들간의 갈등이 발생할 경우 이를 조정하기 쉽지 않다는 점에 있다. 특히 우리나라 의료법의 경우 의 료행위와 한방의료행위를 구별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정의 기준이 없는 상 태에서 모호하게 규정되어 있고, 갈등이 발생하여도 이를 조정할 기제가
1) ‘의료행위’는 광의로 해석할 경우에는 의료법 제2조에 규정된 의료인(의사, 치과의사, 한 의사, 조산사, 간호사)이 행하는 의료기술을 총칭하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으나, 여기서는 의료인 가운데 의사 직역에 속하는 의료인이 행하는 최협의의 개념으로 정의하고자 함(노 태헌, 2010). 참고로 과거 일부 연구에서는 ‘양방의료행위’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하였 으나, 이는 한방의료행위에 대한 대응개념이라는 편의적 성격이 강하므로 본 연구에서는 활용하지 않고자 함.
미흡한 상황이다(조형원 외, 2005; 이백휴‧이평수, 2011). 따라서 업무 영역을 둘러싼 의료전문직간의 갈등이 그대로 사회적 부담의 증가로 귀 결되며, 국민들로부터의 신뢰를 하락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의과와 한의과의 업무영역을 둘러싼 갈등과 논쟁은 상당히 뿌리가 깊 은 것이지만, 최근 들어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른 융합‧통합적 성격을 가진 서비스 수요가 높아지고 소비자 요구가 다양화되면서 갈등 발생이 더욱 빈번해지고, 본격화되는 추세이다. 특히 2011년 7월 개정된 한의약육성 법(법률 제10852호)에서 한의약을 ‘과학적으로 응용‧개발한 한방의료행 위’까지 확대규정한2) 것을 계기로 하여 현재는 한의사의 서양의학을 기 초로 한 의료기기 사용 여부, 의사의 IMS 및 IPL 시술, 한의사의 의료기 사 지도권 인정, 천연물신약 처방권 문제, 한의계의 ‘독립한의약법’ 발의 등이 직역간 갈등 영역으로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며, 이와 같은 갈등으로 발생한 상호 고소‧고발, 법적 분쟁은 상대 직역에 대한 불신과 감정적 대립을 심화시키고 있다.
의료계와 한의계의 대립과 갈등은 적지 않은 사회적 비용 부담을 요구 하는 것이며, 정부 역시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3). 그러나 문제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모호하고 포괄적인 현재의 보건의료 법령체계 및 배타적으로 이원화된 면허체계 내에서는 의-한의 간 업무 영역 갈등을 근본적으로 해소하기에는 한계가 존재한다는 점이 다. 다양화‧융합화하는 경향의 학문과 기술 발전은 기존의 의-한의 업무 영역이 중첩되는 서비스 영역을 계속하여 창출하고 있고, 소비자들의 요 구 역시 그와 같은 서비스를 선호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와 같은 상호배
2) 한의약육성법 제2조에서 ‘한의약’은 ‘우리 선조들로부터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한의학을 기초로 한 한방의료행위와 이를 기초로 하여 과학적으로 응용‧개발한 한방의료행위(이하
“한방의료”라 한다) 및 한약사(韓藥事)’로 정의되었음.
3) 보건복지부는 이와 같은 보건의료 분야 직능간 갈등 조정과 해소를 위해 ‘보건의료직능발 전위원회’를 구성‧운영하고 있음.
타적인 면허를 바탕으로 하는 이원화된 의료서비스 제공체계에 대한 고 민이 없다면, 설령 하나의 사안에 대한 갈등을 해결한다고 하더라도 언제 든지 그 내용만 바뀐 채 본질적으로는 달라지지 않은 새로운 문제가 제기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하겠다.
결국 의-한의 업무영역의 합리적 설정은 우리 사회가 부담해야 할 사 회적 비용을 줄이고, 전문 직종간 신뢰체계를 구축함으로써 궁극적으로 는 국민들이 누려야 할 편익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점에서 중요도가 높은 과제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공급자인 의료인 입장에서도 날로 증가하 고 있는 상호간의 고소‧고발‧법적 분쟁으로 야기되는 서로간의 대립과 반 목을 해소하는 한편, 의학발전과 국민적 신뢰회복의 출발점이 된다는 점 에서 중요성이 높은 주제이다.
이에 따라 본 연구에서는 의과와 한의과의 업무영역을 둘러싸고 발생 하는 갈등을 살펴보고, 이를 합리적으로 중장기적으로 조정하기 위한 방 법을 모색하는 것을 연구의 목적으로 삼았다. 이와 같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십년간 이어져 온 의료서비스 전달체계에 대한 고찰이 필요 하다는 점에서 몇 가지가 전제되어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
첫 번째로 현재 의(醫)-한의(韓醫) 학문 영역이 가지고 있는 특징과 구 분체계를 살펴보는 한편, 업무영역을 둘러싼 갈등관계 현황을 조망해야 한다. 두 의학체계가 이론적으로, 법률적으로 어떻게 구분되어 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향후 업무범위 조정의 단초가 마련되면서 서비스 전달체계 조정의 사회적 합의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직역간 업무 범위와 체계에 대한 중장기적인 정책방향을 수립하는 데에 있어서 의료 인 양성과정(교육과정), 면허 취득 및 유지 과정 등이 종합적으로 검토되 어야 한다. 셋째, 의-한의간 업무영역의 합리적 조정은 장기적으로는 두 직역의 통합 및 의료일원화에 대한 검토를 필요로 한다. 앞서 언급한 바
와 같이 현재의 의-한의 직역간 갈등의 가장 근본적인 요인이 의료이원화 (醫療二元化) 체계라면, 사안별 접근(예를 들어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 용권, 천연물 신약 처방권 등)은 일시적이고 단기적인 대책이 될 가능성 이 높다. 따라서 이러한 단기대책과 더불어 근본적인 대안으로서 두 의학 체계의 일원화를 고려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일 것으로 사료된다. 물론 의 료일원화에 대해서는 찬반 의견에서부터 그 수준과 방법을 둘러싸고 다 양한 의견이 존재하고 있어서 단기적으로 합의에 도달하기에는 어려움이 적지 않을 것이나, 본격적인 사회적 논의의 시작은 필요하리라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