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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이미지의 유기적 추상표현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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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행 작가 연구

가. 바실리 칸딘스키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1866~1944)는 20세기 현대회화를 개척한 앙 리 마티스와 파블로 피카소, 마르셀 뒤샹과 함께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미술가 중 한 사람으로 화가이자 예술이론가이다. 무엇보다 그는 모든 대상에서 탈피한 완벽한 ‘추 상’을 정립한 대예술가다. 특히 “회화도 음악과 같은 에너지를 낼 수 있다”며 화폭에 점과 선과 면, 색채로 음악의 리듬을 표현하고, 유기적인 형태와 기하학적 형태로 내 면을 표출한 추상화가다.

칸딘스키는 1866년 12월 16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차 무역업을 하는 부모에게 태 어났다. 어려서부터 색의 상징과 심리에 매료되었다. 1886년 모스크바 대학에 입학하 여 법학과 경제학을 공부하고 도르파트 대학에 법학 교수로 초빙되었다. 그러나 1889 년 에르미타주 미술관에서 보았던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1669)의 그림과 1895년 모스크바 푸시킨 미술관에서 보았던 클로드 모네 (Claude Monet, 1840~1926)에 크게 감명 받으면서 미술에 흥미를 갖기 시작하였다.

특히, 모네의 그림 <건초더미(Meule)>[도 43]에서 그 표현 대상과는 다른 색채로 표 현한 인상주의 화풍에 감동하여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고, 훗날 칸딘스키는 자신의 추

[도 43] 모네 <건초더미> 1890~1

상회화도 이 그림 덕분에 시작할 수 있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이렇게 시작된 칸딘스키의 회화세계는 크게 독일 및 러시아 시기와 프랑스 시기 둘 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독일 및 러시아 시기는 1896년 뮌헨 아카데미에서 미술공 부를 하면서부터 나치스의 예술탄압이 이루어진 1933년까지인데, 그 사이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한 1914년부터 1920년까지의 러시아 시기가 포함되어 있다. 프랑스 시기 는 나치스의 탄압을 피해 파리로 떠난 1934년부터 사망한 1944년까지이다.

(1) 유기적 추상화의 실현

칸딘스키는 렘브란트와 모네의 그림에 영감을 받아 1896년 독일로 떠나 뮌헨의 아 카데미에서 안톤 아즈베(Anton Azbe, 1862~1905)와 프란츠 폰 슈투크(Franz von Stuck, 1863~1928)에게 그림을 배운 뒤 화가가 되어 1901년 팔랑크스(Phanlax) 미술 학교를 설립하여 11세 연하의 여성제자인 가브리엘 뮌터(Gabriele Munter, 1877~1962)123)를 만나 연인이자 동료로서 10년 이상 프랑스·이탈리아·튀지니·네덜란 드 등 여러 지역을 함께 여행하면서 서로의 작품세계를 확장시켜 나갔다. 처음에는 다 양한 색채를 이용한 서정적인 풍경화를 즐겨 그렸으나 독일의 아르누보 양식인 유겐트 슈틸(Jugendstil)과 인상주의, 상징주의, 야수주의 등의 여러 양식들을 두루 흡수하여 논리적인 방식으로 추상회화를 향해 나아갔다.

1901년에 칸딘스키가 그린 <맑은 하늘>[도 44]은 5년 전 뮌헨 아카데미에서 공부 했던 아카데믹한 화풍이 보이는 고전적인 양식의 작품이다. 공원에서 여인들이 양산을 쓰고 산책하는 장면을 그린 이 그림은 칸딘스키가 1889년에 푸시킨 미술관에서 보고 충격 받았던 모네의 작품 <건초더미>와 같은 화려한 색채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후 칸딘스키는 형태와 색채에 대한 다양한 가능성을 실험하면서 자신의 회화세계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는 강렬한 원색을 이용해 야수주의를 연상시키는 강렬한 작품을 제작하면서 점차 추상회화로 이어지는 작품들을 제작했다.

칸딘스키가 1903년에 푸른색 망토를 걸치고 들판을 백마를 타고 질주하는 기사의 모습을 그린 <청기사(Blaue Reiter)>[도 45]는 모네의 인상주의 화풍이 느껴질 만큼 색채가 다양하고 강하다. 기사는 작은 크기로 대충 그려졌지만, 그림 대부분을 차지하

123) 가브리엘 뮌터Gabriele Munter, 1877~1962)는 독일 출신의 표현주의 및 청기사파 화가로 색 을 부여하고 형태를 단순화한 인물이다. 1901년 팔랑크스 미술학교에서 스승 칸딘스키를 만나 연인 이 되어 1903~8년 튀니지·이탈리아·프랑스·네덜란드 등 많은 도시를 함께 여행하며 동지로서 작품 활동을 했고, 1911년 칸딘스키와 마르크 등이 주도해 창립한 ‘청기사파’의 일원으로 활동했으나,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칸딘스키와 헤어져 1915년 잠깐 만난 뒤 다시는 재회하지 못했다.

는 초록빛 언덕에서 자유로워 보인다. 하늘에는 두 개의 구름이 떠 있고, 언덕 위의 자작나무가 하늘을 가리고 있다. 그러나 앞뒤 다리를 동시에 길게 뻗어 힘차게 달리는 말의 자세는 비현실적이다.

칸딘스키는 어려서부터 음악을 좋아해 소리를 들으면 색을 떠올리고, 색을 보면 소 리를 연상하는 특별한 재능을 보였다. 그는 1903년 모스크바 국립극장에서 공연된 바 그너(Wilhelm Richard Wagner, 1813~1883) 작곡의 오페라 ‘로엔그린(Lohengrin)’124) (1850)을 관람하면서 머릿속에서 아는 모든 색들을 보았고, 그 색들이 춤을 추며 그림 이 되는 기이한 경험을 했다고 회고하였다. 또한 그는 “바이올린, 베이스, 관악기의 깊 은 울림이 나의 가슴 속으로 밀려 들어와 내 영혼을 통하여 각기 화려한 빛으로 변화 됐으며 그 색깔들이 내 눈앞에 있었다. 야성적이며 거의 미칠 것 같은 색과 선이 눈앞 에 그려졌다. 분명한 것은 예술이란 내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활기차며, 회화는 음악 같은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이다”라고 음악과 회화의 연관성을 인식했다. 그는 관 현악을 들으면서 음악은 그림이 되고, 그림은 음악이 되는 영감을 받았다. 또한 색채 와 소리, 그림과 음악이 관념을 떠나 실재하는 실체로 느꼈다.

피아노와 첼로를 연주하는 음악가이기도 했던 칸딘스키는 “색깔은 심성에 직접적으 로 영향을 미친다. 색깔은 피아노의 건반이요, 눈은 줄을 때리는 망치요, 심성은 여러 개의 선율을 가진 피아노다”라면서 회화의 효과를 피아노에 즐겨 비유했다. 그리고

“색채 대신에 형태를 넣어보면 예술가는 여기저기 건반(형태)을 누름으로써 인간의 심 성을 합목적적으로 진동시키는 손이다”라고 말했다.125)

124) 로엔그린(Lohengrin)은 리하르트 바그너가 작곡하고 대본을 작성한 3막의 악극 양식의 오페라 이다. 바그너는 백조 기사를 소재로 한 볼프람 폰 에센바흐의 《파르치팔》과 중세 독일 낭만 소설 인 《로엔그린》 을 기초로 독일어 대본을 완성하였다. 이 오페라는 1850년 8월 28일 바이마르에서 프란츠 리스트의 지휘로 초연되었다.(위키백과, 로엔그린)

[도 44] 칸딘스키 <맑은 하늘> 1901 [도 45] 칸딘스키 <청기사> 1903

이라한 칸딘스키의 음악적 회화를 예고한 작품은 1903년에 제작한 목판화 <가수 (Singer)>다. 빨간 꽃다발을 든 여자가수가 검정 줄무늬가 장식된 분홍빛 드레스를 입 고 있으며, 그녀 뒤로 피아노를 치는 까만 옷을 남자의 모습이 보이는 작품이다. 칸딘 스키는 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 나무를 깎아 새기면서 온몸에서 ​울려 퍼지는 황홀한 음 악을 느꼈다고 한다. 판화이긴 하지만, 형태와 색채가 과감하게 단순화해서 추상화로 나아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어려서부터 피아노와 첼로를 연주했던 까닭에 자 연스럽게 음악을 소재로 표현할 수 있었다. 그런 까닭에 앞서의 <청기사>보다 형태가 단순화되고 평면적인 공간성을 보인다. 칸딘스키는 이러한 선과 형태의 단순화를 통한 조화를 ‘내적 필연성(interal necessity)’이라고 불렀다.

칸딘스키는 "밝은 푸른색은 플롯과 유사하고 어두운 푸른색은 첼로와 짙은 색조는 콘트라베이스와 유사하다. 그리고 깊고 장중한 형식을 갖춘 푸른색은 파이프오르간의 음향과 비교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색과 형태의 조화로운 조합이 있어야만 '내적 필연성'을 이끌어낼 수 있다"126)고 보았다. 여기서 내적 필연성은 정신의 비물질적인 상태를 말한다.

예술작품을 이루는 내적인 요소와 외적인 요소 가운데 내적인 요소가 상대적으로 중 요하고, 무엇보다 예술작품의 질(質)이 중요한데, 이는 내적 필연성에 의해 결정된다.

오로지 내적 필연성만이 형태를 정당화할 수 있기 때문에 예술의 형태는 예술가의 내 적인 감정에 의해 좌우된다. 그런데 내면적인 요소는 감정으로서만 존재하기 때문에 예술작품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구체적 요소로서 외적 요소가 필연적으로 이용될 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 예술작품의 형식은 예술가의 억제할 수 없는 내적인 힘에 의해 결정된다. 이렇듯 감각을 통해서 영혼은 감동을 받으며 감정 또한 감각적으로 자각된 것에 의해 유발된다. 따라서 감각된 것은 비물질적인 관계로써 외적 요소인 예술작품 의 외형을 만들고, 이것은 관람함으로써 ‘감각’하는 관람자의 감정에 물결을 일으키게 된다. 따라서 내적 필연성의 원칙은 칸딘스키의 예술적 창작세계뿐만 아니라 그의 삶 에서도 가장 중요한 기본개념이 된다.

당시 칸딘스키는 무엇보다 자연에는 추상적이고 창조적 정신이 숨겨져 있으며, 자연 에 내재하는 정신은 물질을 통해서 인간의 영혼에 호소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칸딘스 키의 자연관과 추상적 창조성에 대한 인식은 칸딘스키와 마르크가 함께 활동했던 뮌헨 에서 성장한 빌헬름 보링거(Wilhelm Worringer, 1881~1965)가 1907년에 썼던 박사학

125) 진중권, 「예술가 내면세계 캔버스로 말하다」, 『주간동아』, 동아일보사. 2006.4.28.

126) 칸딘스키, 권영필 역, 『예술에 있어서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 열화당, 1979. p.43.

위 논문 『추상과 감정 이입(感情移入, Abstraktion und Finfühlung)』을 통해서도 확인 된다.

보링거는 이 책에서 예술 욕구는 ‘감정 이입 충동(Einfühlungsdrang)’과 ‘추상 충동 (Abstraktionsdrang)’의 두 가지 형태로 나뉜다고 설명했다. ‘감정 이입’은 주로 자연의 아름다움을 모방하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미적 체험이다. 인간의 예술 욕구가 감정 이 입으로 표현되면 자연의 아름다움을 재현하는 ‘자연주의 미술 양식’이 나타난다. 그러 나 자연은 항상 이렇게 조화로운 것만은 아니다. 미지의 자연, 무한한 공간에 대한 공 포와 두려움을 경험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불안한 내적 체험에서 ‘추상 충동’이 생겨난 다. 결국 인간이 자연에서 소외되면 추상 충동을 느끼며, 자연과 편안하게 합일하면 감정 이입이 생긴다는 것이다. 또한 보링거는 “순수한 추상은 복잡하고 어렴풋한 이미 지의 세계에서 휴식을 주는 유일한 가능성”인데, 그 복잡한 이미지의 세계가 “필연적 이며 자연발생적인 기하학적 추상”을 만들어낸다고도 주장했다. 이것이 칸딘스키가 열 망하던 추상화다.127)

칸딘스키는 1906~7년 어두운 저녁에 한 마리의 말 위에 두 남녀가 부둥켜안은 모 습이 담긴 <승마 커플(Riding Couple)>[도 46]을 그렸는데, 어두운 땅과 푸른 하늘, 찬란한 색채로 반짝이는 점으로 음악적 리듬을 시도하면서 인상주의 화풍에서 벗어나 그만의 작품세계가 시작되었다.

칸딘스키의 1908~9년 작품 <푸른 산>[도 47]은 커다란 나무 두 그루가 좌우에 서 있고, 그 사이로 세 명의 기사가 말을 타고 푸른 삼각형의 산을 배경으로 질주하는 장

127) 김광우, 『칸딘스키와 클레의 추상미술』, 미술문화, 2007, p.79.

[도 46] 칸딘스키 <승마 커플>

1906~7

[도 47] 칸딘스키 <푸른 산>

1908~9

면을 그린 유화다. 이전의 작품보다 과감한 구도와 강한 색채, 단순화한 형태가 눈에 띈다. 세 면을 크게 분할한 빨강·파랑·노랑 삼원색은 다가올 칸딘스키 그림의 변화를 예고한다. 아래쪽에는 원경의 푸른 산을 배경으로 질주하는 군마의 역동적인 형태가 인상적으로 표현되었고, 크고 작은 수많은 점들로 그려진 점묘법은 장식적이면서도 강 렬한 원색의 대비를 이룬다. 이 작품에서도 점은 음악적 표현의 일환이다.

1909년에 그린 <코헬 풍경>[도 48]은 이전의 그림보다 훨씬 더 대상의 형태와 색 채가 단순화되었고, 점들도 몇 개만 나타냈을 뿐 상당한 추상화(抽象化) 과정을 보여 주는 작품이다. 길과 나무, 집, 산, 땅 등의 대상이 과감하게 생략되었고, 특히 가로수 잎의 갈색 색점과 땅의 크고 작은 면 분할을 통해 음악적 요소가 부분적으로 드러나 다른 작가들과의 차이를 보여준다.

칸딘스키는 1909년부터 자신의 그림을 세 가지로 분류하여 재목을 붙였다. 먼저 ‘즉 흥’ 연작은 의식의 통제 없이 자유롭게 표현한 그림이고, ‘인상’ 연작은 평면적으로 녹 여진 형태가 드러난 그림이다. 그리고 세 번째의 ‘구성’ 연작은 기하학적 형태를 의식 적으로 배열한 작품이다. 이 가운데 ‘즉흥’ 연작은 1913년까지 4년간 34점 제작했다.

1909년도의 작품 <즉흥 3>[도 49]은 표현 대상인 자연이 여전히 완전한 추상으로 는 이행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다. 화면 가운데에는 건물이 있고, 그 앞의 언덕을 붉은 망토를 두른 사람이 말을 타고 올라가고 있다. 말이 걸어가고 있는 언덕은 녹색 뿐만 아니라 파란색, 하늘색, 흰색 등이 동시에 칠해져 있으며, 노란색 건물에도 녹색, 파란색, 흰색이 섞인 음영이나 갑작스럽게 나타나는 갈색처럼 예기치 못한 색채들이 대상에 나타나 있다.

칸딘스키는 1910년 어느 날 저녁, “나는 데생을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작업 실 문을 열었는데, 그때 형언하기 어려운 아름다움을 지닌 그림 한 폭이 눈에 띄었다.

[도 48] 칸딘스키 <코헬 풍경> 1909 [도 49] 칸딘스키 <즉흥 3>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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