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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표현과 공간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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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 회화의 조형방법은 서로 다르다. 서양화의 조형은 빛과 명암 단계의 채용함 으로써 표현 대상의 특징을 표현한다. 그러나 동양화는 조형적인 요소들이 필묵의 선과 여백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여백은 자연적인 여백과 의도되어진 여백으로 나 누어지는데 자연적 여백이란 여백에 대한 여하의 관념이나 의식 없이 행위의 부산 물로 나타나는 자연발생적인 것을 말한다. 의도되어진 여백은 비어 있는 공간을 예 상하여 그것을 의도적으로 남기고 행위가 가해진 부분과 동등한 의미를 갖는 여백 이다. 화면에 있어서 선에서의 비백이나 산수의 표현에 있어서 안개, 돌, 구름 등의 표현에서 볼 수 있다. 이러한 의도되어진 여백은 다시 대상으로서의 여백과 추상공 간으로서의 여백으로 분류되며 대상으로서의 여백은 안개나 물, 구름, 하늘, 눈 대 신 여백 자체로써 대상화하는 것을 말한다.

이와 같이 동양 사람들은 사물의 외형적인 모습을 맹목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 라 즉, 대상 가운데 주제와 사상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본질적인 부분만을 선 택과 버림 또는 생략과 과장의 운용방법을 통하여 대상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화 면의 예술적 효과를 이끌어 내었다.

동양화의 여러 특징 가운데, 특히 여백(餘白)의 표현은 산점투시와 관련된 것으로 서 구도를 융통성 있게 안배 할 수 있기 때문에 유모취선(遺貌取神)적 관찰 내용을 화면에 그대로 표현할 수 있다. 즉 대상 가운데 주제와 사상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본질적인 부분만을 취하고, 주제와 관계없는 부분을 화면에서 제거하게 됨으 로 여백이 생기게 된 것이다.

이러한 여백은 하늘일 수도 있고 땅일 수도 있으며, 혹은 화면에서 제거된 기타 여러 가지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여백은 단순히 비어 있는 공간은 아니므로 주제 를 돋보이게 할 뿐 아니라 동시에 화면의 의경(意境)을 확대시켜 준다.

당(唐)나라 때 백거이(白居易)는 비파행(琵琶行)34) 이하는 유명한 시(時)에서 악곡 이 쉬는 부분을 묘사할 때, “이 때에는 소리를 내지 않는 것이 소리를 내는 것보다 더 낫다(此時無聲勝有聲)”라고 하였다. 여기서 일시적으로 쉬는 것, 무성(無聲)은 악 곡 선율의 연속인데, 이는 “뜻은 다 달았으되 붓이 닿지 않은(意到筆不到)것” 과 같 은 뜻이다.

또한 “물줄기 얼어붙은 듯 비파 현이 굳어지고, 굳어 응결된 비파 소리 내지 못하 고 잠시 죽은 듯, 그 사이에 새삼 가슴깊이 묻혔던 슬픔과 원한이 북받쳐 올라오는 가, 죽은 듯 소리 없는 이 순간, 비파소리 울릴 때 보다 더 깊은 여운을 주네(水泉 冷澁絃凝結, 凝結不通聲暫歇,別有幽愁闇恨生,此時無聲勝有聲)”라고 하였다.

이것은 그가 비파 현을 대신하여 진실한 감정을 시로서 읍소한 것이다. 그러나 소 리는 다함이 있고, 말도 한계가 있으므로, 마음속의 깊고 진실 된 원한을 읇어 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비파 현 바깥의 소리 없는 가락 즉 여백을 이끌어 와서 자신의 무수한 마음을 기탁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작품상의 여백은 그림 중에서 필묵의 흔적이 닿지 않은 곳으로서 이를 문장에서는 언외지의(言外之意), 음악에서는 휴지부호(休止符號)의 뜻이라 하겠다.

또한 이것은 보는 이의 상상력을 발휘 할 수 있는 여지를 더 많이 가질 수 있고, 동시에 작품의 공감대를 확대하게 된다.

추상적 공간으로서 여백이란 어느 특정한 대상으로 귀속되는 것이 아닌 그저 막연 한 상황의 여백으로 표현 형체가 갖는 여백 이외의 화면상의 한 요소로서 등장한 다, 이러한 여백의 성에 따른 분류는 회화가 갖는 여백의 의미를 더욱 분명하게 해 주고 있으며 여백을 행위의 부산물이 아닌 의도적인 것으로 봄으로써 여백 자체에 나타내어진 부분과 동등한 가치를 두고 있다.

34) 백거이(白居易,772~846): 중당(中唐)때의 시인이며, 자는 낙천(樂天)이고 호는 향산거사(香山居士)이다.

비파행도는 백거이가 구강군(九江君) 사마(司馬)로 격하된 이듬해 816년 가을에 양자강 기슭에서 손님을 떠나보낼 때에, 정처 없이 떠돌던 가엽은 한기녀의 사정 얘기를 듣고 또 그 비파소리에 감동하여 지은

<비파행>의 시의(時意)를 형상화한 그림이다.

동양의 미의식은 화면상의 공간표현을 순수하게 영구한 것으로 실체가 없는 쪽을 택하여 직관과 상상력을 통해 자연의 기운과 작가의 마음을 강조함으로써, 신비적 인 것과 불가(不可)한 것 이해하기 어려운 의미심장한 것으로 이끌어 갔다. 따라서 동양에서는 형태와 형태 너머에 있는 어떤 신비한 힘을 함축시킨 표현에 있어서 그 저 담담하고 정지된 여백을 취하는 것이다.

여백은 넓은 상상의 세계를 보여주는 상징적이고 함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처럼 여백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완성이 아닌 시발점으로써의 의미를 갖게 되 는 것이다.

이러한 공간에 대한 특별한 방식은 무한한 우주 만물(萬物)의 법칙성을 따르는 것 이며 미완성의 공간으로 보지 않고 완성된 하나의 그림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현대 추상회화에서의 공간 개념은 동·서의 구분이 상호 투명성을 띄게 되는데, 그것은 대 상의 재현 목적이 아니라 작가의 독창성과 자율성, 순수성을 바탕을 두고 있기 때 문에 새로운 방법으로의 공간 해석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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