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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적 위치

문서에서 金洙暎 詩 硏究 (페이지 60-63)

우리 문학사에서 모더니즘의 출발은 1930년대 김기림이 주도한 모더니즘 시운 동에서 시작하여 해방이후 《신시론》동인들을 중심으로 한 모더니즘과 그 뒤에 나온 50년대 《후반기》동인으로 이어지면서 전개된다. 그 과정에서 김수영은 중 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1930년대 김기림이 주도한 모더니즘은 영미 주지주의 신비평을 도입해 현대적 감수성을 획득하려고 했지만 표현방식 만을 강조하는 데서 정신의 부재라는 문제 를 안게 된다. 해방 후 《신시론》동인들을 중심으로 한 모더니즘은 30년대를 계 승하는 위치에 서 있었지만 그들 역시 형식과 포즈만을 취하는 한계를 가질 수밖 에 없었다. 당시에 박인환, 김경린 등이 주도한 모더니즘은 일본의 모더니스트들 에게서 배운 영미 모더니즘으로 이 땅의 현실을 직시하지 못해 스스로 파탄에 놓 이게 된다. 이 같은 한계를 가장 먼저 간파한 이는 김수영으로 동료들에게 ‘낡았

다’는 수모를 당한 처녀작 「묘정의 노래」를 발표한 이후 그 수치감을 벗기 위 해 서구의 새로운 문학이론들을 섭렵하면서 다양한 변모의 모습을 보인다. 이론 에만 치중하는 한계를 넘어서려고 현실 참여의 모습과, 전통을 거부하기 보다는 전통을 이해하는 방향으로 자신을 변모시킨다. 한편 그에게 영향을 준 신비평의 주자 테이트에서도 벗어나려고 한다. 테이트의 긴장 이론을 신뢰하는데도 그것이 검사도구로 그친다는 걸 깨닫고, 인간의 구원을 담은 새로운 문학이론을 찾게 된 것이다. 그 와중에 50년대 이미 접하기 시작한 하이데거에 새롭게 눈 뜨면서 ‘시 의 본질’과 ‘언어의 본질’을 담은 문학 이론인 그의 예술론을 문학의 이론적 근거 로 삼게 된다.

한편 시사(詩史)에 있어서 60년대 또한 중요한 시기로 신동엽, 김춘수 등이 왕 성한 활동을 하면서 후배 세대라고 할 수 있는 4․19세대57)에게 문학적 자극과 작가 의식을 심어주는데 노력했다. 신동엽, 김춘수 등은 4․19세대의 바로 앞 세 대에 속하면서 이들과 동시대를 공유하고 있던 문인들이다. 이들은 4․19세대보 다 이전에 문학적 출발을 하였다고는 하지만 이들 역시 혁명을 체험한 세대로 각 자 독특한 예술론을 전개한다. 신동엽은 과거라는 역사적 시간이 유토피아적 미 래를 향하여 끊임없이 유보되는 것이라고 보았다면, 김춘수는 4․19세대가 품고 있는 역사의식의 강박에서 벗어나는 길을 「무의미시」에서 찾으려했다. 그런데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60년대라는 시대 속에서 추구하려했던 것이 문학의 영원성 이라는 보편적 인식을 추구하려 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위치에 함께 섰던 김수영의 역할은 그만큼 중요해진다.

4월 혁명을 겪고 난 뒤 김수영은 지식인의 역할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이는 혁명의 실패에 대한 반성과 더불어 지식인들 내부에는 사르트르의 지식인론58)

57) 419세대는 419를 체험하고, 『문학과 지성』,『창작과 비평』이라는 두 계간지의 창간을 일구어내는 새로운 세대들이다. 동인지 『산문시대』의 ‘태초와 같은 어둠’으로 현실을 은유한 선언문에서 보이듯 그들은 전 세대와는 다른 문학적 출발을 희구했다. (박지영, 앞의 논문 34쪽, 참조.)

58) 4월 혁명의 체험으로 다져졌던 비판적 참여 지식인상은 60년대 지식인들의 중요한 정체성으로 다시금 자리 잡게 된다. 이들은 사르트르의 지식인론 등의 영향으로 지식인의 현실참여의 결단 을 요구받게 된다. 사르트르는 지식인은 현실적으로 보편적 진리탐구와 출신계급의 특수성 차이 의 모순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이지만 부단한 보편성의 추구야말로 지식인의 궁극적 목표여야 한 다고 주장한다. (강수택, 앞의 책, 196-214쪽, 참조.)

확산되고 있던 사회 분위기와 맞물려 나온 것이다. 그 기저에는 김수영 자신이 지닌 윤리의식도 함께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김수영은 ‘인류의 문제를 자기의 문 제처럼 생각하고, 인류의 고민을 자기의 고민처럼 고민하는 사람’59)을 진정한 지 식인상으로 제시한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지식인의 모습은 곧 자신을 포함한 시인의 모습이기도 하다. 즉 그가 생각하는 시인의 모습은 인류의 고민을 짊어진 존재라는 의미와도 통한다. 이러한 그의 사상은 후기에 와서는 자아 중심이 아닌 자아를 벗어난 타자의식60)을 취하게 된다.

이상으로 문학사에서 김수영의 위치를 가늠해 본 바, 김수영은 모더니스트로 출발해 영미 신비평이론들을 철저히 받아들였으나 거기서 벗어나 하이데거 예술 론에 안착한 셈이다. 이 같은 변모 과정에 대한 이해가 뒤따를 때 그를 모더니스 트나 민중 시인으로만 파악하는 오류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여겨진다. 따라서 그 를 형식에만 치중하는 모더니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모더니즘의 정신을 철저 히 이행했던 시인으로 봐야할 것이다.

59) 전집2, 88쪽.

60) 김수영은 한 산문에서 “이 욕심을 없앨 때 내 시에도 진경이 있을 것이다. 딴 사람의 시 같이 될 것이다. 딴사람-참 좋은 말이다. 나는 이 말에 입을 맞춘다.”라고 말한다. 그만큼 욕심이나 욕망의 집착에서 벗어나고자 애썼다. 그것은 자신과 거리를 두려는 이러한 의식이 타자에 대한 관심과 사랑으로 바뀌길 기대한 것이다.(전집 2권, 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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