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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시적 특질과 문학사적 위치

2. 시문학사적 위치

형식에는 연작시 형식이 있다. 그는 「속의 바다」, 「마카로니웨스턴」, 「말」, 「의식」,

「6․25」등의 연작시를 썼다. 이렇게 전봉건은 일생을 거쳐 형식적 기법적 실험에 몰두하였으며, 그 실험에 성공한 시인임을 알 수 있다.

넷째, 전봉건의 시의 흐름을 살펴보면 주체 중심의 시에서 객체, 언어, 분열된 주 체가 각각 중심이 되는 실험적인 시로 이동하였다가 다시 주체 중심의 시로 회귀하 는 양상을 보인다. 이는 시의 본령이 의미이며, 화자의 정서라는 시인의 시관을 드 러내는 것이다.

그의 시가 매우 실험적인 양상을 지님에도 불구하고 극단적인 즉물시의 형태나 언어를 완전히 해체한 기호적 상징형의 작품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는 그가 끊임없 는 실험을 하면서도 시의 본령인 의미나 화자의 기본적인 정서를 완전히 배제하지 는 않았음을 의미한다. 이를 통하여 그가 ‘시는 서정이다’라는 자각을 지니고 있는 서정시인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그의 의식은 한국 전통 서정시의 맥을 잇는 것이라 하겠다.

기준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박남수, 김춘수, 김종삼, 전봉건 등의 시인이다. 물론 이들을 두고 유파적 의미를 넘어 나름의 고유한 시학을 확립한 시인으로 규정40)하 는 이들도 있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한국의 현대 시사가 특히 50년대 이후의 시 사는 이처럼 특정 논리에 의한 양분법으로 설명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이는 특히 전봉건의 시세계와 그 시학을 밝혀내는 데 있어 그대로 적용된다. 다 시 말해 6․25의 시인, 초현실주의적인 테크니시앙, 휴머니스틱한 스타일리스트, 에로티시즘의 시인 등 다양한 평가를 받은 전봉건의 경우, 위의 두 분류 모두에 속 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우선, 음악성과 서정성을 바탕으로 고향의 상실과 회귀의 정조를 지속적으로 노래하였다는 점에서 그는 전통파와 같은 선상에 서 논의될 수 있다. 그러나 후반기 동인들에 버금가는 기법적 실험, 다양한 이미지 들의 몽타주식 결합 등을 꾀하였다는 점에 있어서는 언어파 곧 실험파에 해당할 수 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쟁 체험을 주로 노래한 초기의 시 세계와 이후 다수의 실험적 시편들 사이의 내재적 관계, 그리고 그 시적 욕망의 궁극적인 발아지점을 해명하기 위해서는 전쟁체험 뿐 아니라 작품 하나 하나에 대한 보다 세밀한 시선이 요구된다.

그리하여 전봉건의 시적 방향은 단순히 전쟁 체험 세대의 문학에서 공통적으로 보 유되어 있는 죽음의식 뿐 아니라 그 전쟁의 상흔을 일생을 통하여 다양한 시적 수단 을 매개로 하여 지속적으로 풀어나가려 했다는 점에서 여타 동시대 시인들과 다르게 논의될 수 있다. 전봉건의 시가 전쟁 체험의 시를 넘어 초현실주의적인 테크니시앙, 스타일리스트 등의 명칭으로 불리우는 것은 그의 시에 담겨있는 이미지와 화자 등 기법적 변주에서 기여받는 바가 크다. 전봉건의 시 세계의 변모양상은 전후 현실 속 에서 시적 자아가 놓인 상황적 맥락 속에서 그것의 수용과 극복 등을 다양한 수단으 로 모색하였다. 특히 통시적 맥락에 따른 시적 화자의 변모과정은 시적 자아의 현실 대응방식을 대변해주는 것으로서 전봉건 특유의 서정성의 발효기제라 말할 수 있다.

40) 이광호, 「폐허의 세계와 관능의 형식」, 1950년대의 시인들 , 송하춘․이남호 편, 나남, 1994. pp.265∼

266.

더구나 전쟁으로 인한 죽음의식을 거쳐 그것의 극복 대안으로서의 생명의식 추구와 그 좌절 그리고 그것이 다시 고향회귀로의 낙원의식으로 수렴된다는 점에 있어서 고 향회귀, 모성회귀라는 우리 시의 기본 서정을 획득하고 있다.

이러한 도정은 전봉건을 단순히 전쟁 체험의 시인이나 에로티시즘의 시인 혹은 테크니시앙으로 규정하는 것이 얼마나 단편적이고 국부적인 평가인가를 반증한다.

뿐만 아니라 전봉건의 시세계에 있어 중요한 것은 전쟁 체험과 전후파 시인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전쟁 체험을 촉매로 그것의 시적인 변용을 얼마나 다양하고 얼마나 부단하게 시도하였는가가 사실임을 시사해준다. 전봉건은 전통 서정의 세계를 기반 으로 순수 지향의 내면 의식을 지향하는 작품을 쓰면서 동시에 극단적인 실험 정신 을 보여주며 이러한 양 극단을 성공적으로 통합한 시인으로 50년대 이후 한국 현대 시사의 흐름을 잘 보여준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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