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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간인식의 복합체적 의미구조

문서에서 이찬 시 연구 (페이지 137-148)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이찬 시에 드러나는 시간과 공간 인식의 특성은 대 체로 부정적인 외부조건으로부터 일탈하려는 단절의지로부터 비롯된다.그의 단절 의지는 대단히 독특한 방식으로 구현되는데,그는 자신을 거부하는 세계를 스스로 거부하려는 일종의 의도적 단절형식을 취하기 때문이다.이렇게 볼 때,세계와의 불화와 갈등을 보여주는 그의 인식은 현실적 타협이나 참여나 관심을 스스로 거부 하는 그의 독특한 사유방식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시인과 세계가 불화의 관계에 놓이게 된 핵심 요인은 식민지라고 하는 시대적 특수성에 있다.그런데 이와 관련하여 이찬 시가 갖는 특징은 다른 시인들과는 달 리 식민지의 폭력성을 자본에 두고 있다는 점이다.따라서 그의 시에는 ‘총’,‘칼’보 다는 ‘아편’,‘웨딩마치’와 같은 근대 자본의 산물들이 자주 등장한다.이와 같은 식 민지 자본의 산물들은 표면적으로 발전하고 양질의 삶을 보여주는 듯하지만 사실 은 인간의 삶을 억압하는 모순적 요소로 작용하는 것으로,이를 읽어내는 시인의 통찰력은 매우 섬세하며 날카롭기까지 하다.

이와 맞물려 시인의 현실 또한 그의 비극적 세계관의 한 요인으로 작용한다.그 의 삶은 ‘조혼’,‘가난’,‘수감’등 식민지 자본의 상징들과는 극히 반대되는 것들로 점철되어 있는데,이는 스스로를 ‘이 세계와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소외의식 을 갖게 되는 요인이 된다.하지만 이는 한편으로는 그가 시라고 하는 문학에 집중 할 수 있었던 요인이 되기도 한다.즉 그에게 이 비극적인 세계를 벗어나는 길은 문학만이 유일한 방법이었던 것이다.그렇다고 그가 시에 현실과는 극히 동떨어진

세계를 그려 넣었던 것은 아니다.바로 이러한 차별성이 이찬의 시가 갖는 문학사 적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으며,이는 그의 시에 나타난 시공간을 분석함으로써 밝 힐 수 있다.

이찬의 시간인식은 과거,현재,미래 등 모든 시간을 포괄한다.특히 그는 과거 와 미래에서 현재를 벗어날 수 있는 무언가를 찾고자 한다.하지만 ‘가난’과 그로 인한 이른 ‘조혼’은 그에게 편안한 유년을 허락하지 않는다.또한 가난한 탓에 늘 술과 갈비를 팔아야 했던 ‘어머니’,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이 그렇게 원하 는 공부조차 시켜줄 수 없었던 ‘무능한 어머니’가 있는 유년은 그에게는 없는 것이 나 마찬가지이다.즉 그에게 유년은 부재한 시간이다.

미래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과거에서 위안을 받지 못한 시인은 이제 미래에서 위로 받고자 한다.하지만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아무런 변화도 없었던 시간 이었던 까닭에 미래에 대해서도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이러한 시간인식은 극단적 인 원죄의식과 죽음의식을 낳는데,하지만 그는 죽음으로부터도 거절당하고 만다.

이는 시인이 당연히 받아들여야 할 원죄에 대해 의심을 품고 거부하였기 때문인데, 이러한 죄의식은 다른 시인들과 이찬을 구별해주는 특징이 되기도 한다.이처럼 그 에게는 유년도,현재도,미래도 모두 부재하다.아니 ‘있었지만 잃어버린 것’그래서

‘있어도 없는 것’과 같은 그러한 시간들일 뿐이다.따라서 이제 시인은 시간을 떠나 공간으로 눈을 돌린다.

그의 시에서 공간은 내부로서의 ‘집’,‘술’,‘공백’,‘강(물)’등과 외부로서의 ‘바 다’,‘산’등,그리고 이상의 세계로서의 ‘꿈’,‘이국(異國)’등으로 나눌 수 있는데,이 들은 모두 도피를 위한 공간이라는 특징을 지닌다.이는 세계와 타협할 수 없는 시 인이 그 공간들로 숨어들어 현실과의 관계를 단절하고자 하기 때문이다.하지만 역 시 그 어디에도 시인이 숨을 만한 곳,그래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은 없다.그 공간들은 모두 ‘아편처’처럼 식민지 자본에 물들었거나,‘술’이나 ‘꿈’과 같이 일시적 인 환각 또는 환상의 공간일 뿐이다.단지 현실과 경계지어줄 뿐,깨고 나면 이곳 은 또 다시 현실이다.따라서 그의 시에서는 공간들 역시 결코 평화로운 모습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시공간인식에서 우리는 다른 시인들과는 차별화되는 특징이자 시인의 날카로운 현실인식을 엿볼 수 있다.즉 비록 그의 시가 전반적으로 도피적 인 성격을 띠고는 있지만,그가 그러한 시공간을 현실과 다름없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은 지금-여기의 세계가 얼마나 비극적인 것인가를 냉철하게 바라보고 있 기 때문이다.즉 여기에는 현실을 시를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시인의 의도 또한 숨 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Ⅳ.결 론

지금까지 본 논문은 이찬의 시를 대상으로 그의 시에 나타난 시간과 공간인식 의 시적 특징과 그 의미구조를 살펴보았다.이찬은 식민지 사회의 모순과 투옥 등 특히 1930년대 시대적·정치적 혼란과 위기의식을 온 몸으로 체험하면서 근대의 여 러 양상을 섭렵한 시인이다.따라서 그의 문학적 특질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이 러한 체험적 시공간의 영향 속에서 생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이찬의 경우,이러한 시대성과 사회성을 발 빠르게 거치면서 자신만의 다채롭고 다양한 시세계를 구축 해 왔다.그러나 그의 작품 속에 나타난 시간과 공간인식의 근원을 살펴보면,도피 적·단절적 이며 부정적 허무와 죽음의식에 노출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시간과 공간은 시인의 의식 세계와 시정신을 담아내는 일종의 그릇과 같다.따 라서 작품을 분석함에 있어 그 시인이 살았던 시대적·개인적 역사성을 배제할 수 없음은 자명한 사실이다.본 논문은 이 점에 주의하면서 그의 시간과 공간인식의 시적 의미구조를 분석하고자 했다.그의 시에 함축된 역사적 맥락과 개인적 토대를 따라가다 보면,그의 시에 내포된 시간과 공간 인식의 특성과 시적 의미망을 내밀 하게 분석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찬 시의 시간과 공간은 크게 현실인식의 측면과 그 현실인식에서 오는 부정 적인 인식세계를 벗어나려는 일종의 현실대응의 구도로 대별해 볼 수 있다.시간인 식은 ‘단절과 지속’이라는 시간의 형태로,공간인식은 ‘도피와 귀환’이라는 공간의 형태로 그 의미와 지향점이 제시된다.그의 현실인식은 세계와 자아의 시적 반응을 구성하는 토대이고,현실대응은 이러한 반응을 토대로 단절,도피,초월,귀환이라 는 시적 여정을 담아낸다.이찬 시의 시간과 공간은 어느 한 시점에 편중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과거·현재·미래의 시간과 공간을 두루 아우르고 있다.이는 그의 시간 과 공간인식의 토대가 현재 시점으로부터 과거의 시·공간에 대한 회상,미래의 시·

공간에 대한 예측이라는 구도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따라서 그의 시간과 공간 은 과거·현재·미래라는 세 개의 시·공간적 범주가 상호 연속되고 영향을 미치면서 그 의미구조를 형성해 간다.

이찬의 현실인식과 대응은 “불온함”과 “불쾌”그리고 “불규율”을 안겨주는 시 공간인식으로부터 시작된다.먼저,시간인식에 대해 살펴 본대로 그의 단절과 지속 의 시간은 식민지 사회의 부조리하고 억압적인 속성과 유랑과 이산이라는 역사적 사건과의 맥락에서 생성된다.식민지 사회는 현실인식의 척도로 지목되는 상징물로 서 “이러진 화원”,“북쪽나라의 눈벌판”등으로 상징화 된다.이는 다시 수많은 결 빙기,북방도,아편처 등으로 변용되어 나타난다.요컨대 이러한 황폐한 식민지자본 사회 속에서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없다는 게 그의 인식이다.식민지 사회는

보이지 않는 굴욕과 살상을 유도하고 민족의 자유를 억압한다고 보고 있는데,여기 에는 식민지 자본 사회에 포섭되지 못한 시인의 소외의식이 내포되어 있다.이는

“이러진 화원”과 “두더지”와의 관계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꽃이 피지 않는 화원 은 삭막한 화원으로 빛이 비추지 않는 깜깜한 공간이다.이 어두운 화원을 두더지 가 되어서라도 꽃이 피고 찬란한 햇빛이 비추는 화원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맨몸 으로 땅 속을 파헤치겠다는 두더지의 모습에서 그의 현실인식의 원천과 자아인식 의 근원을 엿볼 수 있다.

이찬의 식민지 사회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비극적 자아인식은 곧 그에게 주어 진 모든 시간을 부재로 이끄는 계기를 만든다.이찬의 부재의식은 유년부재,청년 부재,과거부재,현실부재,미래부재 등 모든 시공간적 배경을 지배한다.그의 부재 의식은 가난과 조혼과 이혼,카프 해체에 따른 이념의 공백,투옥,한 분뿐인 어머 니마저 잃고 난 슬픔 등 그의 현실적 불운함과 상처 등에 기인하고 있다.이는 ‘세 계의 중심’에 자신이 서있지 않다는 철저한 소외의식에서 비롯된다.이러한 부재의 식은 시인으로 하여금 스스로 ‘죄가 많다’는 ‘죄의식’의 세계로 접어들게 한다.요컨 대 자신에게 부여된 보든 부정적인 시간적 요소들이 자신의 ‘죄’때문이라는 인식 을 갖게 되는 것이다.그의 ‘죄의식’은 곧 자기 응징적 죽음의식을 유도하는 계기가 된다.이러한 부정적 사유는 즉,식민지 사회와 부재의식,죄의식과 죽음의식 등이 이찬 시에 나타난 시간의 단절을 유도하는 현실인식의 근원이 된다.

이찬 시의 ‘지속의 시간’은 식민지 자본 사회의 한 단면인 유랑민들을 통한 이 산을 중심으로 그 내적 의미가 구성된다.이러한 시간은 그의 부정적 현실인식을 유도하는 근원으로 단절하려하지만 단절되지 않는 기억의 지속성을 보여준다.여기 에는 지울 수 없는 정신적·현실적 ‘상처와(trauma)와 울음’이 매개되어 있기 때문 이다.따라서 과거인식은 통해 드러나는 과거 체험적 시간은 ‘상처와 울음의 지속’

이라는 형태로 현실적 시간을 지배한다.이찬의 식민지 체험을 바탕으로 한 시편들 에는 주로 국경부근의 어촌마을과 주점,노동현장인 공장이나 부두에서 일어나는 절박하고 비극적인 상황과 피지배계층의 억압된 모습들이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이찬은 식민지 사회의 비극성을 ‘학대’와 ‘억압’과 ‘인간부재’에 두고 있다.식민지 사회의 폭력성,부조리성,무의미성은 한 개인의 역사성을 넘어 인간 보편적 비극성을 함유한다.

유랑 즉 이산은 소외계층에 대한 관심과 연민의식 또한 식민지 자본 사회와 관련해서 생성되는 시적 소재들이다.이찬의 가난과 투옥,죄의식,방황으로 이어지 는 불우한 현실적 삶은 엄밀히 말해서 식민지 모순 사회에서 생성된다.감옥에서의 해후 장면,어릴 때의 소꿉놀이에 대한 그리움,어머니와 아내에 대한 죄의식,그의

“술”에 대한 사연 등은 방황의 토대에서 그 설명이 가능하다.이찬의 연민의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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