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진행된 보건의료에 관한 연구는 크게 두 가지 주제로 시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는 북한의 보건의료정책 및 제도에 관한 연구이고, 다른 하나는 북한 주민의 건강 상태에 관한 연구이다. 따라서 이 두 가지 주제에 관한 연구결과물을 수집, 검토하였다.
먼저, 북한의 보건의료정책 및 제도에 대한 선행연구결과를 살펴보면, 대표적인 예로써 이혜경, 최영인, 양은혜는 북한의 보건의료정책 및 제도 설립에 중점을 두고 연구하였다.
이혜경은 「북한의 '보건일군 h ' 양성정책 연구: 체제수호 전위양성을 중심으로」에서 북한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보건일군’이 양성되는지 구체적으로 기술하였다. 이 연구에서 1945 년 인구 1 만 명당 의사 수 0.9 명의 의료적 빈곤국 상태에서 현재 1 만 명당 의사수 32.9(02)명으로 발전한 북한의 보건일군 양성과정을 설명하였다. 북한의 보건의료제도 운용에 필요한 인력양성 정책과 시스템들을 분석하고, 구체적인 ‘보건일군’양성 프로그램을 살펴봄으로써 보건의료 교육의 정치성을 조명하였다. 북한의 ‘보건일군’
양성과정을 통해 보건사업이 사회주의 체제의 우월성에 대한 선전과 선동의 도구로 활용되며 이를 위해 보건일군들을 ‘정성운동i’으로 독려한다는 점을 지적하였으며, ‘전위 양성’의 특성을 평가하였다.23)
최영인은 「’정성운동’이 북한 보건의료에 미친 영향」에서‘정성운동’에 초점을 두었다. 여기서‘정성운동’이 보건의료인들의 정치적 사상성을 강화하여 북한 체제에 적합한 보건의료인을 양성하는 역할과 더불어 북한 보건의료의 핵심 요소들을 관철하는 유력한 방안으로 작용했다고 설명한다. 북한 의료체계의 물적
h 북한에서 보건의료 부문의 종사자를 일컫는 용어
i 보건의료 계통에 종사하는 의료인을 공산주의의 사상으로 무장하고 의료부문을 발전 시키기 위한 북한의 대중적 혁신운동의 한 종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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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대가 크게 파괴됨에 따라 ‘무상치료제’도 상당히 훼손되었으나 보건의료인들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크게 떨어지지 않은 것에 대하여
‘정성운동’이 기여했다고 주장하였다.24)
이렇듯 이혜경과 최영인이 북한의 보건의료인 또는 보건 일군의 사상적 배경에 초점을 맞춘 반면, 양은혜는 「남북한 보건의료체계 비교 연구」에서 북한의 보건의료체계의 설립과 유지에 주목하였다. 양은혜는 북한의 보건의료법이
‘국가와 환자’의 관계를 규정하려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보건의료 행정조직, 보건의료 인력은 모두 국가의 지시에 따라 행동하며 이에 따라 예방, 치료 등 보건의료서비스를 포함하여 모든 보건의료 업무가 중앙정부에 의해 기획되고 지방 또는 일선 의료기관에 의해 분산되어 일사분란하게 집행된다고 설명한다. 동시에 당과 각급 정부조직에 의하여 이중적으로 통제되는 체제를 주목하였다. 더불어 북한의 의료인 양성과정과 의료자원 조달체계를 설명하였다.
그러나
1990 년 중반 이후부터 계속된 북한의 경제상황 악화로 인하여 북한의 보건의료체 계가 붕괴 직전에 놓여있음을 지적하였다.25)
추가적인 문헌조사에 따르면, 김진숙, 김민정, 엄주현, 현기석, 이서희, 김흥석, 이혜경은 이런 과정을 통하여 형성된 북한의 보건의료가 어떻게 변화해 갔는지를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김진숙은 「북한 '약학부문사업' 과 보건의료 연구」에서 북한의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약학부문 사업과 보건의료 상황을 보여준다. 북한의 ‘보건의료 4 대 방침’이라 일컬어지는 ‘무상치료제’, ‘예방의학’, ‘의사담당구역제’,
‘고려의학과 신의학의 배합’등의 보건의료정책을 설명하면서 김일성 주석이 무상치료제의 성과적 실현을 위한 ‘기본 물질적 수단’이자 ‘필수적 요구’로써 의약품의 생산과 공급을 중심으로 한 ‘약학부문 사업’을 강조했음을 설명한다.
그러나 1990 년대 소련의 붕괴와 ‘고난의 행군’으로 북한의 의약품 생산 인프라는 거의 ‘붕괴’되었다 할 만큼 수준이 열악해졌다고 그 변화의 결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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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한다. 북한의 경제정책 전략인‘자력갱생’,‘중공업 우선 발전’,
‘중앙집권적 계획제도’, ‘정신적 자극’등은 약학부문 사업에 부정적으로 작용하였고 이에 따라 ‘보건의료 4 대 방침’은 제대로 작동하지 못 했을 뿐 아니라 기초 항생제와 예방백신 등 ‘필수의약품’조차 외부지원에 의존하게 되었다고 해석한다.8)
김민정은 「’고난의 행군기’ 북한 보건의료제도에 관한 연구:
「로동신문j 」기사분석을 중심으로」에서 고난의 행군기와 함께 어떻게 북한 보건의료제도가 변화했는지를 보여준다. 북한의 공식 언론매체인 「로동신문」을 중심으로 ‘고난의 행군기’의 북한 내 보건의료제도의 발전과정과 특징들을 정리하였다. 김민정은 북한의 보건의료제도가 붕괴되기 시작한 것은 심각한 경제난으로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던 시기와 맞물려 있다고 보았다. 90 년대 초부터 시작된 경제적 어려움은 1994 년 김일성 주석의 사망과 연이은 자연재해로 인해 극심한 식량난, 에너지난, 경제난이 초래되었고 사회 전반적으로 모든 물자가 부족해진 상황은 보건의료부문에 보다 큰 악영향을 미쳤다. 이는 의약품과 의료기구의 절대부족이란 결과를 초래했고, 노후화된 시설을 제때 교체하지 못하여 보건의료서비스의 질이 크게 저하되었다.‘고난의 행군기’에도 북한 정권은 표면적으로는 보건의료제도의 운용에 있어 무상치료와 예방의학을 계속 강조했으며, 의사담당구역제를 더 공고히 실시할 것과 고려의학의 비중을 높일 것을 강요하였다. 특히 의약품의 부족 사태는 고려치료의 비중을 높이고 고려약의 처방을 강조하는 분위기로 이어졌고 보건의료 일군들(의료진)에게는 환자 치료에 필요하지만 절대 부족한 의료품들은 ‘사랑과 정성’으로 채우도록 독려하였으며, 의료기관 및 제약공장에서는 기존의 설비들을 자체적으로 개조, 보수하고, 과학기술적 방법으로써 새로운 기구들을 창안, 제작하여 생산계획을 완수하도록 하였다.26)
j 북한의 대외적 입장을 공식 대변하는 대표적인 신문. 1945년 11월 1일에 창간되어 발행부수가 150만 부인 북한 최대의 신문이며, 6면 발행의 조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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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주현은「『김일성저작집 k 』을 통해 본 북한의 보건의료 인식과 체계의 구축 」에서 보건의료체계 구축과정을 재분석하였다. 북한이 사회주의 보건의료의 기본원칙인 국가에 의한 서비스, 대상의 보편성, 예방의료, 무료 서비스 등을 수립하기 위해 대대적인 병원 건설과 보건의료인 양성을 통해 무상치료제를 추진하는 등 기반 구축에는 성공했으나,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보건의료체계를 운영하기 위한 의약품과 의료기구 등의 물적 토대의 구축에는 성공하지 못했다고 서술하였다.27)
현기석은 「북한 사회복지제도 연구: 보건의료 분야를 중심으로」에서 북한의 보건의료제도 설립과 그 변화상을 보여주었다. 북한은 해방 직후부터 어려운 경제상황 하에서도 막대한 자금을 보건의료분야에 투자함으로써 의료시설과 인력을 급속히 확충하였을 뿐 아니라 독자적인 보건의료체계 확립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러나 경제난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1990 년대부터 의료장비의 부족과 노후화 및 의료기술의 낙후, 의약품의 공급부족 등으로 점차 마비상태에 빠지고, 평균수명과 영∙유아 사망률 등 주요 보건의료 지표는 국제 순위에서 최하위권에 머물 뿐 아니라, 주민들이 각종 질병의 위험에 노출되었으며 전반적인 영양상태까지 매우 심각한 상황을 초래하였다.28)
이서희는 「북한의 새로운 의료보장제도에 관한 분석: 2002 년 이후 경제특구 지역을 중심으로」에서 북한이 2002 년부터 실시한 경제특구지역 중 신의주 특구와 개성공단을 중심으로 한 의료복지제도를 조명하였다. 경제특구의 의료복지체제가 자본주의 이념모형인 잔여적 모형과 사회주의 이념모형인 구조적 모형의 특징이 혼재되어 있다는 것과 제도적으로도 자본주의 제도의 특성이 나타났다고 분석하였다.29)
김흥석은「북한보건의료제도에서 '무상치료제'의 함의」에서 북한측 자료와 국내 주요 기관에서 나온 각종 연구보고서를 토대로‘무상치료제’의 형성 및
k 평양 조선 로동당 출판사에서 1979년~1998년 총 50책으로 발간한 김일성 우상화를 위한 선전물로서 소련의 역할을 부정하고 김일성의 항일관계 문건을 수록한 저작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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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과정을 북한의 정치적, 사회적 변화에 맞추어 분석하였다. 먼저 무상치료제가 선언되고 완성되는 과정을 설명하였으며, 이후 1980 년대 점차 힘들어져 가던 북한의 경제적 어려움이 동유럽 공산주의 국가들의 붕괴와 1991 년 소련의 붕괴를 거치면서 점차 곤란해졌고, 1994 년 7 월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 1995 년 유례없는 대홍수를 겪으면서 1997 년까지 3 년 만에 300 만여 명이 굶어 죽는‘고난의 행군’이 발생하였음을 설명하였다.‘고난의 행군’이후 북한 주민들의 생활은 국가 배급보다는‘장마당’ 경제에 의존하게 되었고, 국제사회의 각종 지원 물품과 중국과의 비합법적 무역거래를 통해 공급되는 중국 상품으로써 북한 주민들에게 최소한의 생존이 가능하도록 지탱했다고 설명하였다. 지금의 북한에서
‘무상치료제’는 단지 명목상으로 존재하지만 실제는 의약품도 없고, 의료시설도 운영 체계가 이미 무너진 상황이라고 진단하였다.30)
이혜경은 「북한 보건의료체계의 파행화와 변화에 대한 연구: 1990 년대 후반기를 중심으로」에서 북한 의료체제의 내부구조와 보건의료인들의 역할, 행위를 포함한 운영메커니즘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였다. 1990 년대 중반 이후 본격화된 북한의 심각한 경제난은 중앙으로부터의 약품, 의료기자재의 중단 사태를 빚어냈으며, 또한 보건의료 일꾼들이 이전까지는 ‘정성운동’으로 체제에 순응하고 협조해왔으나 1990 년 이후 공산주의 혁명가라는 명분보다는 자신들의 실리를 먼저 추구하게 되었다고 설명한다.‘자력갱생’은 의료인들로 하여금 생계와 개인의 이익을 위하여 치료의 대가를 주민들에게 요구하게 하였고 ‘무상 치료제’는 ‘유상 치료제’로 변하였다고 해석하였다.9)
다음은 북한이탈주민의 건강 상태에 관한 선행연구결과들을 살펴보겠다.
전정희, 김미영, 권미영, 이요한, 신미녀 등은 북한이탈주민의 건강관련 연구를 통해 이들의 건강 상태가 매우 열악함을 보여주었다.
특히, 전정희와 김미영은 북한이탈주민의 주관적인 건강상태를 연구하였다.
전정희는 「북한이탈주민의 건강신념이 건강행위에 미치는 영향」이란 연구에서 하나원에 입소한 북한이탈자 성인 304 명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현재 건강상태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