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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문서에서 유학의 (페이지 38-41)

조선은 병인양요(1866) 이후 강화도 불평등조약, 갑신정변, 갑오개혁, 을사늑약 등의 격랑에 휘말려 풍전등화의 위기에 빠졌다. 결과적으로 일제에 병합되고 30여 년간의 식민지를 경험하게 되지만, 이 위기를 극복하고 타개하기 위해 조선 정부와 지식인들이 선택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을 침탈한 서구 열강과 일본의 근대국 가였다. 근대국가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먼저 국가구성원들의 역량을 결집하여 효율 적으로 발휘하게 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조선 정부와 지식인들은 통치와 교화의 대상에 불과하던 백성들의 역량을 강화하고 지지를 얻어야만 근대국가를 수립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백성들을 근대국가의 ‘국민’으로 형성하고 통합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정보를 전달하고 담론을 생산할 수 있는 신문과 잡지였고, 소수 엘리트의 자제가 아닌 일반 백성들의 자제로 대상을 확대한 ‘국민교 육’이었다(김소영 2010:1-12).

교과서는 교수와 학습에 필요로 하는 지식 내용을 교육과정에 따라 제시한 책으 로, 시대와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를 담고 있다. 조선은 근대화를 성취하기 위해 시행 갑오개혁 때부터 학제를 개편하고 이에 수반하는 제도와 법규를 마련했다.

이 중 ‘수신과(修身科)’는 현재의 도덕과 또는 윤리과에 해당하는데, 교육개혁을 단행하던 1895년부터 강조되기 시작했다.1

‘수신’은 전통적으로도 중시되던 개념2이다. 그러나 ‘수신과’의 ‘수신’은 성리학의 수신에서 유래한 것은 맞지만, 서구의 문화, 윤리학 등이 유입되면서 만들어진 신조

1 교육입국조서, 소학교 교칙대강 제2조

2 대학장구 의 8조목인格物,致知,誠意, 正心, 修身, 齊家,治國,平天下에서 수신이 거론되고, 중용장구 제20장 제11절의 “凡爲天下國家有九經, 曰修身也, 尊賢也,親親也, 敬大臣也,體群臣 也, 子庶民也,來百工也,柔遠人也,懷諸侯也.”에서 수신이 거론된다. 참고로 “수신교과서와 대학 의 수신개념은, 그 함의와 문맥에서 현격한 차이 가 있었다. 수신교과의 ‘수신’은 성인을 목표로 삼지 않고 ‘국민’ 양성을 지향하였다는 점이 가장 기본적인 차이였다.”(박정심 2017:49)

어이다.3 현재의 윤리과가 그러하듯이 이 교과는 다루는 내용이 복합적이고, 통섭적 이다. 그래서 인근의 철학, 국어, 국사, 위생 등과 중첩되는 부분이 많다. 특히 황실과 ‘신민’의 관계를 황실을 종가로 하는 한 친족의 관계로, 군주와 ‘신민’의 관계 에 대해서는 한 집안의 가장과 자녀의 관계와 같이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로 설정하 는 ‘국체론(國體論)’을 전개하는 핵심 교과로 자리잡는다(김소영 2010:144-155).

한말의 위난 상황에서 수신과와 국체론의 결합은 당대의 상황상 자연스러운 결합이 었고, 이 때문에 수신과는 중요 교과 중 하나가 되었다.4

수신교과서는 일찍부터 발행되었다. 학부아문에서 숙혜기략(夙惠記略) (1895), 소학독본(小學讀本) 5(1895), 보통학교 학도용 수신서(普通學校學徒用修身書) (1907)를 발행하였다. 그러나 학부아문에서 발행한 숙혜기략 과 소학독본 은 근대의 학제가 도입된 초기이고 또 전통적인 수신서인 소학 과 해동속소학 , 유길준의 서유견문 등이 개별적으로 사용되어 크게 유행하지 못했다. 보통학교 학도용 수신서 는 통감부의 입김이 많이 들어가서 조선인들의 반발이 많아 역시 그다지 유행하지 못했다.

수신교과서가 활발하게 발행된 것은 통감부 학정 잠식기(1906~1910)6이다. 을 사늑약 이후 통감부가 설치되자 지식인들은 국권 상실을 우려했고, 이때 보성중학교, 대성학교, 오산학교, 휘문의숙을 포함하는 많은 민족계 사립 중등학교가 설치되었다.

당시에 사용된 대표적인 수신 교과서로 신해영의 윤리학교과서 (1906)와 휘문의숙 편집부의 중등수신교과서 (1906) 및 고등소학수신서 (1907)가 있다(김민재,

3 이행훈, 양일모 논문 참고.

4 국체론과의 결합, 수신과의 중시는 조선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미 일본에서 형성된 것이다.

수신하는 제국

5 국어 교과서로 보기도 하나 내용상으로 수신 교과서에 가깝다는 평이 많다.

6 허재영(2011:8)은 근대의 학제로 개편되어 병합되기까지를 근대식 학제 도입기(1895~1905)와 통 감부 학정 잠식기(1906~1910)로 이분하였다. 날짜는 관보 에 의거함.

2010:97) 이외에도 初等倫理學敎科書 (安鍾和 譯述, 1907)7, 初等小學修身書 (柳瑾, 1908), 初等女學讀本 (李源兢, 1908), 初等修身書 (朴晶東, 1909), 녀

소학슈신셔 (盧秉鮮, 1909)가 있다.

이상의 수신서 중에서 본고가 주목하는 것은 휘문의숙 편집부의 고등소학수신 서 로,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체계성이다. 휘문의숙은 수신서 이외에도 국어, 과학 등의 교과서를 자체에 서 편집하여 발행할 정도로 교과 편찬에 전문성을 확보하였다. 고등학교 고학년용 으로 개발된 고등소학수신서 는 저학년용인 중등수신교과서 의 체재를 준용하 면서도 차별을 꾀했다. 또한 교과서 검정이 강화되어 고등소학수신서 가 재편집되 긴 했지만 보통학교용 보통교과수신서 의 저본이 되었다.

둘째 독립성이다. 통감부는 <교과용 도서 검정 규정>(1908.8)을 발포하여 교과 서를 대대적으로 검열하고 심지어 발행을 금지하였다.8 고등소학수신서 <검정>

이전에 발행하여 일제의 검열을 피함으로써 자주, 독립, 민족 등의 색채가 강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것은 검열에 의해 발행 금지가 되지만, 역으로 그만큼 편집진의 목소리를 강하게 드러낼 수 있을 정도로 독립적이었다는 것을 반증한다.

셋째 시대성이다. 교과서가 과도하게 시대성을 반영하거나 정치성을 띠는 것은 곤란하지만, 그렇다고 당대와 미래의 교육적 가치가 구현하지 않는 것도 문제이다.

고등소학수신서 를 발행하던 때는 국망의 위기가 고조되어 민족적 각성을 촉구하 던 시기였다. 서구 열강(의 신문물) 및 일제에 대항하기 위해 황실, 국가, 국민 등이 다른 가치보다 강조된 현장을 오롯이 살펴볼 수 있다.9

7 중국의 吳尙이 지은 책을 번역하여 수정한 것으로, 이후 初等修身敎科書 (廣學書, 1910)로 서명을 바꾸어 발행되었다.

8 <교과용 도서 검정 규정>에 의해 1909년에 발행이 금지된 수신 교과서 6종은 다음과 같다. 倫理 學敎科書 (申海永,普成館, 1906); 中等修身敎科書 (徽文義塾편, 徽文, 1906.9); 高等小學 修身書 (徽文義塾 편,徽文, 1907.8); 初等倫理學敎科書 (安鍾和 譯述, 廣學書, 1907.9);

初等小學修身書 (柳瑾, 廣學書, 1908); 녀소학슈신셔 (盧秉鮮, 博文書館, 1909).

이를 바탕으로 아래에서는 고등소학수신서 의 체제와 특징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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