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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에의 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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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화홍련전>에서의 허씨의 경우, 남편 배좌수가 처음부터 그리 탐탁지 않은 상대 였으나 후처로 들어오려는 사람이 없어 후사를 위하여 부득이 취했던 여인이지만 아들 셋을 낳고 목적을 달성했다. 하지만 <김인향전>의 정씨의 경우는 다르다. 김좌수는 죽은 부인 왕씨로부터 일남이녀를 얻어 후사를 잇는 걱정은 없었다. 부인이 죽고난 후 점차 가산을 탕진하는 가정경제운영의 근심으로 홀로 적막공방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아버지를 보며 인향이 권유하여 계모를 얻게 된 것이다. 허씨를 취하는 목적이 후사를 얻는 것이었다면, 정씨를 취하는 목적은 가정경제운영에 있었다.

정씨는 나이 십팔 세에 최고 십육 세로 나이 차가 비교적 적은 전처 자식들이 있는 김좌수 집안에 육례를 갖추고 후취로 들어오게 되었다.56) 이로보아 정씨의 집안은 양 반의 가문이나 재정상태가 좋지 않은 집안으로 유추할 수 있다. 후처로 들긴 했으나 정씨의 입장으로는 경제적인 안정을 얻을 수 있었지만 그뿐이다. 정씨는 가정경제를 운영하여 가산을 유지․부흥하기만 하면 역할을 다한 것이 된다. 본가에서 경제적 결핍 을 겪은 정씨는 어느정도 결핍에서 벗어날 수 있었겠지만 가문을 이을 장남인 인형이 존재함으로 인해 집안에서 입지가 좁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겻흐로는 인향 삼남매 을 친자보다 더 긔츌갓치 하나, 속으로는 늘 앙앙시심이 나지 안이’할 수밖에 없는

56) 인향의 친모 왕씨 부인이 사망했을 때 “이 인형의 나히 십삼 세요, 인향의 나히 십일 세요, 인함의 나히 구 세라.”라는 부분이 있고 그 후 삼년상을 마치고난 후, 인향이 김좌수에게 후취를 권한다. <김인향전>, p.24.

것이다. 이런 와중에 시집온 지 반 년 만에 태기가 있고 자식을 낳았는데 딸이었다.

정씨가 아들을 낳았다면 인향의 집안은 또 다른 국면을 맞이하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딸을 낳았다. 정씨는 장중보옥같이 사랑하였으나 김좌수는 일 때문이라고 는 하나 매일 정씨가 무슨 일을 하는지 관심도 없을 지경이 되었다.

정씨는 자신의 이러한 상황 때문에 ‘열등감 콤플렉스’57)를 겪을 수 있다. 정상적인 열등감은 개인마다 차이는 있지만 어느정도 있을 수 있지만 열등감 콤플렉스는 열등감 의 정도가 정상적인 수준을 넘어 섰다고 할 수 있다. 열등감 콤플렉스를 가진 사람은 어려움을 극복하기보다는 그것을 피하려고 한다.

개인심리학자 알프레드 애들러(1970~1937)에 따르면 정씨는 신경증 환자라고 볼 수 있다. 신경증이 시작되는 몇 가지 전형적인 성적인 요소가 있는데, 정씨에게 해당 하는 것들은 “① 자신의 성적 역할에 대한 불확실성, ② 결혼, ③ 임신, ④ 출산, ⑤ 사 랑하는 사람의 상실”58)이 있다. 정씨는 가문의 대를 잇기 위한 출산을 위해 후취된 것 이 아니라 가산을 운영하기 위한 ‘자산관리자’의 목적으로 후취되었다. 이는 여성으로 서의 역할을 박탈당함을 의미한다. 또한 후처자리이긴하나 결혼과 임신․출산을 겪었으 며, 여자아이를 출산하면서 남편의 관심마저 멀어졌다.

신경증 환자는 열등감이나 우월성 콤플렉스를 겪는데, 그들은 자존감이 위협당하는 상황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위해 방어기제를 발달시킨다.59) 따라서 정씨의 악행은 이런 방어기제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방어기제’라는 용어는 프로이트의 이론에서도 등장하지만 프로이트의 이론에서는 자신의 무의식에서부터 시작된 위협으로부터 생겨난 불쾌한 경험을 ‘불안’이라고 하였 고 그 불안으로부터 자아를 보호하려는 시도라고 보았다. 하지만 애들러의 방어기제는 그 사람의 외부적 환경에 대한 자기보호를 의미한다.60) 그런 점에서 <김인향전>의 계모 정씨는 자신이 처한 계모라는 위치에서 겪고 있는 어려움들로부터 자기를 보호하 기 위해 자기방어를 했다고 볼 수 있다.

자존감의 욕구로 인해 그 상황을 피하고자 발현한 신경증 환자로서의 정씨의 방어기

57) 애들러는 ‘어떤 경우에 정상적 열등감이 지나치게 과장되어 개인의 생활양식을 지배’하는데 이것을 ‘열등감 콤플렉스’란 용어를 사용하였다. R.W. Lundin, 애들러 상담이론 , 노안영 외 역, 학지사, 2001, p.35.

58) 애들러의 책 신경증의 체제 (1921)에 기술된바, 신경증이 시작되는 성적인 요인은 ‘① 자신의 성적 역할 에 대한 불확실성, ② 월경의 시작, ③ 성교의 시기, ④ 결혼, ⑤ 임신, ⑥ 출산, ⑦ 연령 증가에 따른 정력 의 감소, ⑧사랑하는 사람의 상실’을 제시하였다. <김인향전>의 계모 정씨의 경우에 모든 경우가 해당할 수 있지만, 본고에서는 작품상 드러나는 부분만을 선택하여 제시하였다. 위의 책, pp.147~148.

59) 위의 책, pp.55~72.

60) 위의 책, p.129.

제는 인향을 향해 갈 수밖에 없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인향과 정씨는 처음부터 서로 경쟁상대로서 인식하였다. 정씨의 과거의 환경과 현재 처해있는 환경 모두 정씨에게 불리한 상황이고, 정체성에 혼란이 생겼으며 생존 자체에 위협을 느꼈을 수 있다.

계모 심사 고약하와 것흐로 남 보는 대는 가장 사랑하는 체하든니, 자긔 소생하나 나 흔 후부터는 소녀와 인함은 뒤방 구셕에다 모리 늣코 자유로 일월도 못 보게 할  외 라 고역만 죽도록 식히면서 의복과 음식을 제에 주지안사와, 긔갈이 자심할 외 라……어마님 계실는 우리들을 애지중지하며, 행여 치워할 행여 배곱풀가 렴례하며 노라도 걱졍하시옵더니, 어마님 도라가신 후 계모에게 구박이 자심하니 우리가 득죄하 여 그러한가.61)

<김인향전>의 정씨는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상황에서 악행의 동기를 전처 자식과 의합하지 못한 것에서 찾고 있다. 인향에 의하면 자신의 고난은 계모가 성격이 사악한 사람이고 자식들에게 해야 할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어머니이기 때문이라 생각하고 있 다. 그래서 애지중지 보살펴주고 먹을 것을 염려해주며 끊임없이 보살펴 주는 존재로 서의 어머니를 그리워한다.

61) <김인향전>, 앞의 책, pp.2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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