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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연구: 구좌읍 월정리의 젠트리피케이션

문서에서 제주지역 젠트리피케이션 현상 (페이지 42-63)

구좌읍 월정리는 대규모 개발을 경유하지 않은 전형적인 반농반어의 촌락 공 간이지만 지난 10년간 급격한 경관의 변화를 겪게 되었다. 이는 제주의 개발되지 않은 틈새, 남아있는 공동체적 요소와 자연경관을 통해 제주를 타자화하는 ‘관광 의 시선’과 자본주의적 공간논리가 결합된 결과로서 제주의 촌락 공간에 사회공 간적 변형을 야기했다. 본 장에서는 구좌읍 월정리 지역의 사례를 중심으로 제주 지역 젠트리피케이션 양상을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2010년을 기점으로 제주지역은 커다란 변화를 겪게 된다. 매년 인구의 순유출 이 발생하던 제주의 인구가 2010년을 기점으로 순유입세로 돌아서게 된 것이다.

물론 제주로의 이주는 완전히 새로운 현상은 아니지만,18) 2010년 이후의 이주가

‘제주이주 열풍’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주목받게 된 이유는 기존의 이주와는 질적 으로 다른 패턴을 보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이주 사유는 복잡한 스펙트럼을 갖 기에 여기서 모두 검토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하지만 이 새로운 패턴에서 제주 의 공간이미지가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는 사실은 지적할 필요가 있다. 이는 한국 사회 전반의 탈도시화 흐름이라는 거시적 변화가 새로운 관광의 시각과 결합되 면서 야기되었다고 할 수 있다.

새롭게 공간을 발견해내는 관광객의 시선이 그 사회의 구성원들이 매일 맞닥 뜨리는 일상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것을 상기한다면(Urry, 1990), 제주를 ‘여 유로운 삶의 문화적 표상’으로 격상시킨 대도시에서의 삶의 변화를 들여다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이 커다란 변동의 기저에는 한국사회변화의 흐름 속에서 제 주가 일상의 반테제, 즉 ‘도시에 대한 타자’로 재발견되었다는 데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세계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무서운 속도로 도시화를 이룩한 국가이다.

서울-인천을 포함한 수도권의 인구는 1950년 1백만 명에서 2004년 약 2천만 명

18) 1960-1980년대 제주지역의 산업화와 맞물려 경제적 요인으로 인한 이주가 많았다(문순덕·염미 경, 2014).

으로 도시집중화는 1960년대 내내 연평균 11.4%라는 가공할 증가세를 보였다(데 이비스, 2007:17-26). 이는 지난 반세기 동안 수도권에 인구와 자본이 집중되는 불균등성장의 결과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한국사회는 압축성장기를 거치 며 성장과 개발이라는 담론을 국민들에게 체화시켜 왔고(최현, 2011) 능력주의라 는 미명 하에 끊임없이 ‘자기계발하는 주체’(서동진, 2009)를 호명하며 경쟁을 강 요해 왔다. 특히 최근 청년층을 중심으로 등장한 ‘헬조선’담론은 한국사회의 모순 이 응집된 시공간적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자신을 옥죄는 도시에서의 삶을 벗어나 자연스러운 리듬을 재탈환하려는 시도는 탈도시화라는 사회적 현상으로 발현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제주 이주를 연구한 결과를 살펴보면 이러한 특징이 더욱 두드러진다. 김 민영·최현(2015)은 제주 이주민 중 교육이나 직업 같은 현실적 목표를 가지고 이 주한 사례는 드물며, 제주 이주에는 경제적 요인보다는 삶의 지향 변화라는 문화 적 요인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제주 이주는 자연친화성과 여유로운 삶을 추구하는 반(反)도시문화의 일환으로 나타나는 현상으로 해석 가 능하며, 제주는 현대 한국 사회의 병폐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개인적 실천 현장으 로서 의미를 지닌다는 것이다. 이화진(2016) 역시 2010년 이후 이주한 사람들은 삶의 패턴과 가치관에서 새로운 특징을 보여주고 있음을 강조했다. 예술가들의 이주에서도 이주 이유에 대한 질문에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삶을 찾기 위해서”

가 32.5%를 차지했고, “경제적 여건(생활비, 집값 등)이 유리해서”라는 응답은 전 체 응답의 2.1%에 그쳤다(제주문화예술재단, 2013).

요가를 배우러 제주에 내려왔으니까 벌써 8년이나 된 이야기네요. 저는 제주 를 치유의 섬이라고 생각해요. 기회니 땅이니 뭐니 하는 말들도 많지만, 이곳 바다와 바람은 그렇게 계산될 가치는 아닌 것 같아요. (...) 삶이 버거운 사람, 마 음에 상처가 있는 사람, 통증을 안고 사는 사람들에게 더 없이 좋은 곳이죠.

-『제주에 살어리엇다』(2012:87)

아이를 건강하게 키우며 남의 눈치도 안 보고, 스트레스 없이 살고 싶다는 것 이 나를 포함한 이분들 모두의 바람이다. 가정생활을 망치는 직장문화, 아이의 몸과 마음을 피폐하게 하고 부모의 불안감을 끊임없이 조장하는 교육환경, 위안 받을 일이라곤 늦은 밤 퇴근길의 술 한 잔 뿐인 생활, 혹은 그렇게라도 보이기

위해 늘 조바심 내고 초조했던 마음, 불필요한 소비, 끝도 없는 욕심을 충족시키

산업을 통해 물리적으로 실재하는 공간으로 인식하는 반면, 이주자들에게 경관은 경험을 축적할 수 있는 장소로 여겨졌던 것이다. 제주에서도 지역의 삶 그 자체 를 향유하고자 하는 시도들이 번져나가고, “여행을 왔다가 이주하게 되었다”는 내러티브가 넘쳐난다.

이주자들은 농촌마을에서 플리마켓, 농가공연 등을 통해 제주의 이미지를 부각 시키는 다양한 이벤트를 개최하며, 제주지역의 이미지 구성에 커다란 영향을 끼 치게 된다(부혜진, 2018:23). 한편 농촌생활의 소박함을 근사하게 연출하는 텔레 비전 프로그램을 비롯한 대중매체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SNS를 통해 널리 퍼진 유명연예인들의 제주살이 역시 목가적 생활에 대한 비전을 유행처럼 퍼지 게 만들었다. 필립스(Phillips, 2000) 역시 촌락 젠트리피케이션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로 광고와 라이프스타일 등을 포함하는 대중매체 담론이 촌락 경관의 상징 적 창조를 야기한다고 말했다. 여기에서 타자는 전형적인 이미지로 재현되기 때 문인데, 특히 이 과정에서 작은 마을들은 집요하게 위험한 도시환경으로부터 안 전한 현실도피의 장소로서 판매된다(Donaldson, 2018:140). 최근에는 도시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소박한’ 제주의 일상 그 자체를 향유하고자 하는 이러한 시도들 이 경쟁적으로 번져나가 ‘제주에서 한 달 살기’ 같은 독특한 형태의 수요도 생겨 나고 있다.

그림 7 전국 및 제주 주택매매가격 지수

(출처: 한국감정원)

한편 촌락으로의 이주에는 촌락에 대한 낭만주의적 시선 외에도 가족부양, 교 육여건, 낮은 주택밀도나 저렴한 주택 가격 등 경제적이고 실제적 이점도 존재한 다(Phillips, 1993). 2000년대 후반 이주자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을 무렵에는 제주 의 지가가 전국평균과 비교해서 저렴한 수준이었기 때문에, 도시에서의 주거비 부담을 내려놓고 여유로운 삶을 위해 내려오는 선택이 가능했다. 로즈(Rose, 1984)는 젠트리파이어를 계급적 관점에서만 바라보는 것을 비판하면서, 한계적 젠트리파이어(marginal gentrifier)의 가능성을 제기했는데, 제주로의 이주에도 이 러한 원인이 있음을 추측해볼 수 있다. 특히 제주 이주자 중에서는 30대가 순유 입이 발생한 이후 순유입자가 가장 빨리 증가한 연령대(김민영·최현, 2015:45)라 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이들은 비교적 저렴한 주택가격, 관광객을 대상 으로 하는 사업 기회 등 보다 실질적인 이유에서 이주를 한다. 그러나 그래프에 서 확인할 수 있듯이 2015년 이후 제주의 평균주택가격은 전국평균과 급속도로 차이를 좁혀가고 있다.

한편 새롭게 구성된 제주의 이미지에 의해 제주의 관광산업 역시 유래 없는 호황을 맞게 된다. 도내 관광산업은 2011년 이후 성장세가 크게 확대되었다.

2013년에는 전년 대비 10.2%성장, 관광객 부가가치 성장률도 2008년 이후 매년 9%이상의 높은 성장을 하였으며, 2013년에는 13.6%를 기록했다(한국은행제주본 부, 2017). 2005년 국내 최초 저가항공 노선의 취항을 시작으로 현재 서울-제주 노선은 세계에서 가장 바쁜 노선 중 하나가 되었다(Leff, 2015, Bu, 2017에서 재 인용). 이러한 성장에는 관광패턴의 변화가 자리잡고 있다. 관광패턴의 변화는 관 광객의 시선이 새롭게 재구성되었음을 뜻한다. 기존의 제주관광이 물리적으로

‘만들어진’ 공간을 관광하는 것에 그쳤다면, 이제 관광객이 원하는 것은 도시와 상반된 날것 그대로의 자연스러운 제주의 경관이다.

앞 절에서 살펴보았듯이 2000년대 들어 제주는 ‘도시에 대한 타자’로서 재발견 되면서 수많은 이주자들을 끌어당겼다. 이를 대표적으로 재현하는 공간은 기존의 시가지나 관광지구가 아닌 촌락의 이미지를 그대로 담고 있는 지역들이 되었다.

다니엘스와 코스그로브(Daniels and Cosgrove, 1988:8)가 촌락 경관(rural land-scape)은 하나의 계기로 그 의미가 창조되고, 확장되고, 변화하고, 정교해지고 결 국에는 지워지는 ‘움직이는 텍스트’(flickering text)라고 말했듯이(Urry, 1995:187 에서 재인용) 월정리 해안의 이미지는 ‘관광의 시선’에 의해 새롭게 구성되었다.

서 외지인에 의한 땅투기는 당시 가장 첨예한 문제였다. 많은 관광개발예정 지역

구분 1967 1991 1996 2001 2006 2011 2012 2013 2014 2015 2016 2017

가구수     290 298 302 282 296 296 329 352 357 385 인구수 1688 1114 922 800 754 694 713 692 720 730 731 757

표 1 월정리 인구 및 가구 수 (단위: 호/명)

(출처: 구좌읍사무소; 1967년은 송경언, 2006)

2010년 이후 마을에는 심상치 않은 변화가 시작되었다. 마을의 인구변화를 살 펴보면 1960년대부터 1991년까지 어촌기능의 쇠퇴와 함께 급격한 인구 유출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2013년에 인구 수의 일시적인 감소를 제외하면 2011년 부터 순유입으로 돌아선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인구수보다는 가구 수의 증

2010년 이후 마을에는 심상치 않은 변화가 시작되었다. 마을의 인구변화를 살 펴보면 1960년대부터 1991년까지 어촌기능의 쇠퇴와 함께 급격한 인구 유출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2013년에 인구 수의 일시적인 감소를 제외하면 2011년 부터 순유입으로 돌아선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인구수보다는 가구 수의 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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