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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경

Ⅵ. 맺 음 말

이세진의 제주불교혁신운동은 일제강점기 하에서 식민지 종교가 안고 있는 모 순과 한계를 극복하고 한국불교의 전통사상을 계승해나가려 했던 근대 한국불교 운동의 흐름 중 제주지역에서 표출된 혁신운동이었다.

일제강점기를 시대적 배경으로 삼고 있는 불교혁신운동의 경우 대개 항일의 시각에서 연구되어지는 것이 보통이나, 이세진의 경우에는 그보다도 식민시대의 승려로서 겪었던 현실적인 삶의 문제, 강압적이고 부조리한 측면의 불교 정책적 인 문제, 그리고 한국불교의 맥을 이어나가려는 고단한 불교운동가로서의 문제 등이 오히려 그의 삶의 중심에 놓여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필자는 제주 불교혁신운동의 논점을 항일적 시각보다는 이세진에 의해 결실을 맺게 되는 불 교혁신운동과 그 주변에서 함께 꽃피웠던 근대 제주불교의 다양한 운동의 흔적 들에 주목하여 서술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세진의 생애사를 통해 제주불교혁신운동과 근대 제주불교 사의 흐름을 고찰하였는데, 이제까지 논의된 내용을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 몇 가 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1910년부터 1949년까지 이세진의 전반적인 생애를 통해 출가배경과 사상 적 영향, 그리고 교육사상가로서 성장하기까지의 과정을 다루었다. 그중에서 필 자는 이세진의 사상에 많은 영향을 끼쳤던 백학명과 박한영의 불교운동에 주목 하였다. 유년시절부터 인연이 되어 출가수행자로 입문하게 되는 직접적인 배경이 되었던 백학명의 경우는 이세진에게 다양한 교육의 형태와 선농불교사상을 심어 주었다. 그리고 1930년대에 두 번째 수학의 길을 걸었던 박한영의 대원강원에서 는 불교교육 혁신사상의 영향을 받으며 독자적인 교육사상가로서 성장하게 되는 실질적인 발판이 되어주었다.

둘째, 이세진이 독자적인 교육사상가로서 활동을 시작했던 1934년 내장선원에 서의 교육활동에 대해 고찰하였다. 내장선원은 선과 교학, 농사와 가무 등 다양 한 교육방법을 시도했던 새로운 형태의 선원이었다. 내장선원의 목표는 선농불교

로서 백장청규의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는 승가자립의 기본정신 을 내세우고 있었다. 그리고 하루의 교육 일정을 학문과 노동, 좌선으로 정하였 으며, 그 밖에 구비시가 형태의 불교가사를 창작하거나, 불교음악인 범패를 학습 하는 등의 기존 선원과 차별화된 교육활동을 펼쳐왔다. 이세진은 이 내장선원에 서 3년간 강사로서 활동하였다.

셋째, 전통강원의 개혁운동이 시도되었던 1938년 표훈사 중향강원에서의 교육 활동에 대해 살펴보았다. 중향강원은 사미, 사집, 사교과로 구성되어 있었고, 표 훈사 선승들이 대거 입문한 것으로 추정되는 3, 40대의 총 17명의 학인이 수학하 고 있었다. 여기서 특기할 점은 강주 이세진 외에 외과강사가 추가로 배치되어 있었는데, 여기서 외과란 근대 신학문인 지리, 역사, 경제, 철학 등의 교과목을 일컫는다. 이것은 1920년대 말 전통강원 내에서 시대흐름에 부합하는 근대식 교 육을 담아내고자 했던 불교교육의 개혁운동이 중향강원에서 이뤄지고 있었음을 확인하게 해주는 것이었다.

넷째, 이세진이 제주에서의 활동을 결심하고 귀향한 후 관음사포교당인 대각사 에서 본격적인 교육활동을 실시하게 되는 제주강원에서의 승가교육활동에 대해 살펴보았다. 근대시기 제주에서 처음으로 시행된 이 승가교육은 당시 제주불교계 의 절실한 당면과제였다. 1920년대부터 활발한 포교활동으로 양적 발전을 이뤄내 며 꾸준히 출가 승려들을 배출해내던 제주불교는 그들을 교육시켜낼 교육기관이 부재했던 까닭에 제주승려들이 미신적 경향으로 치우치는 문제에 대해 방치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본말사제도 하에서 제주의 사찰과 승려들이 타 지역의 본사 에 개별적으로 소속됨으로서 행정적인 마찰과 함께 여러 갈등요소를 낳게 되었 는데, 이러한 제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먼저 제주불교를 하나의 구심체 속에 통일해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였다. 제주승가교육은 이러한 필요성에 의해 1930년대 초부터 추진되었고, 1939년 전통강원의 강주로서 자격을 갖춘 이세진이 부임하면서 비로소 교육기관으로서의 틀을 갖춘 제주강원을 출범시키게 된 것이 다. 제주강원에는 사미, 사집, 사교, 대교과의 교과과정이 있었으며 여기서 배출 된 학인의 수는 대략 50여명에 달하였다.

다섯째, 1942년 서관음사를 근거지로 승가교육과 기와공장을 통한 생산 활동을 병행 추진하여 보여주었던 제주불교혁신운동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세진은 대각

사 제주강원에서 이루지 못한 승가교육활동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서관음사를 창건하고 그곳에 기와공장을 세워 승가 스스로의 경제적 힘을 원천으로 삼아 불 교 강원을 세우고 교육활동을 펼쳐 나가고자 하였다.

이세진의 제주불교혁신운동은 기존의 의존적 구조 하에 놓여있던 제주불교계 의 제 기반을 새롭게 탈바꿈시켜 출가수행자도 농업뿐만 아니라 상공업 등의 경 제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제시했으며, 그에 따른 경제적 자립을 통하여 관 권 혹은 외부의 세력에 좌우되지 않는 포교 및 교육활동을 가능하게 했던 현실 적인 실천방안이었다.

이세진의 이러한 혁신사상의 바탕에는 유년시절부터 출가 이후 그의 행적에서 지속적으로 확인되었던 근대 선농불교사상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 선농불교는 일반 민중과 함께 생활 속의 불교를 지향하며 평등한 생산구조 속에서 노동을 통한 수행정신을 고취시켜 승․속이 함께 문제의 해법을 찾아나가는 불교개혁운 동이었다. 이세진은 이 선농불교사상에 한국불교의 정신을 잇는 전통강원 교육을 연계시켜 한 사찰의 도량 안에서 승가교육기관인 강원과 생산체제의 틀을 갖춘 공장을 함께 설립 운영함으로써 기존 불교계 내에서는 찾을 수 없는 매우 독특 한 형태의 불교혁신운동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근대 한국불교에서 사찰의 경제적 자립을 위해 농업이 아닌 공장을 설립했다 는 것은 거의 전무후무한 일이다. 이는 이세진에게 있어 제주불교혁신을 위한 대 안이 단지 기존의 불교운동을 그대로 답습하는 데 그친 것이 아니었음을 말해주 는 것이다. 비록 소규모의 기와공장이지만 이세진이 사찰 내 공장을 설립한 배경 에는 보다 근원적인 불교 경제관에 대한 고민이 담겨있다고 판단된다. 즉 이것은 승가경제체제의 독립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경제적 이윤을 통해 승가가 주체가 되는 제주사회의 교화사업을 일으키고자 시도된 운동이라는 것이다.

여섯째, 1948년 이세진의 마지막 생애에 해당하는 제주4․3사건의 무장대 활동 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세진은 1949년 1월경 이덕구가 이끄는 인민유격대 도당사 령부의 수뇌부와 함께 관음사를 찾아오면서 그의 무장대에서의 활동이 일부나마 드러나게 된다. 당시 관음사에 들어왔던 이들 수뇌부는 15명 안팎의 인원으로, 이덕구와 이세진, 그리고 장교로 보이는 몇 명의 군인과 3, 4명의 민간들이었다.

그들의 일부는 권총과 장총 등으로 무장하고 있었지만 관음사에 이렇다할 피해

를 끼치지는 않았다. 그리고 의식주는 별채에서 따로 생활하며 자체적으로 해결 하였다.

당시 관음사는 6명 가량의 승려와 처사, 보살 등이 기거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관음사의 산내 암자인 소림사를 오가며 사시공양을 드리는 등 평상시와 같은 사 찰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이세진이 도당사령부에서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는 확인 되지 않으나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참모의 역할이었던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또 한 이세진은 당시에도 여전히 무장대원들에게 승려로서 예우를 받고 있었는데, 이덕구의 경우 방에 들어가 앉을 때 이세진에게 먼저 상석을 권하는 등의 행동 을 보였다고 전한다.

이상과 같이 이세진의 제주불교혁신운동을 비롯한 그의 대표적인 활동모습을 간략히 되짚어 보았다. 이와 함께 이세진의 활동에 대해서 당시의 불교계와 제주 사회에 어느 정도의 성과와 미래에 대한 전망을 가져다주었는지에 대해서도 구 체적인 평가가 뒤따라야 하겠지만, 이세진을 급작스럽게 좌절의 길로 향하게 했 던 제주4․3사건과 이후 1960년대 후반 정화운동까지 겹치면서 쉽사리 결론지을 수 없는 현실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본 논문의 연구를 통하여 이세진을 비롯 한 근현대 제주불교 활동가들이 추구했던 바가 무엇이었는지 그들의 활동을 통 해 제주에 남긴 업적과 의의를 확인할 수 있었다.

따라서 필자가 현 제주불교에 제언하고 싶은 바는 지금의 문제를 해결하고 미 래로 향한 발전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이세진을 비롯한 과거 제주불교운동가들이 고민하고 노력해 왔던 활동과 업적을 이어받아 현재에 맞게 새롭게 해석하고 실

따라서 필자가 현 제주불교에 제언하고 싶은 바는 지금의 문제를 해결하고 미 래로 향한 발전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이세진을 비롯한 과거 제주불교운동가들이 고민하고 노력해 왔던 활동과 업적을 이어받아 현재에 맞게 새롭게 해석하고 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