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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와 예술정신

Ⅱ. 道와 예술정신

2. 도와 예술정신

노자와 장자는 유가 철학자들처럼 예악을 대상으로 그것의 본질이나 내 용, 효용성을 논한 일이 없었다. 또한 여느 서양의 철학자나 미학자처럼 미나 예술을 직접 학의 대상으로 삼거나 구체적인 예술작품을 분석하여 미 와 예술을 논한 일도 없었다. 서양 근대에 성립된 미학을‘미와 예술에 관 한 철학적 반성’이라고 한다면 적어도 노장사상에서‘미학’을 기대하긴 어 렵다. 이 점은 유가에서도 마찬가지다. 유가에서도 美善一致, 政敎一致 속 에서 예술을 정신 수양의 한 방편으로 국가사회를 평안하게 하고 풍속을 이롭게 하는 실용주의적 가치를 우선시 했지, 미적 가치 그 자체를 탐구의 대상으로 여기지는 못했다. 그러나 노장의 철학사상이 궁극적으로 지향하 는 體道와 聞道에는 근대적 의미의 예술정신이 면면히 흐르고 있다.“만일 부단한 노력을 거쳐 현실의 인생 속에서 이 도를 체득하여 인식할 수 있다 면, 곧 그들이 말하고 있는 도가 실제로는 최고의 예술정신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점은 장자까지 내려와서야 비로소 더욱 두드러진 다.”30) 노장사상에 흐르는 예술정신은 유가와 더불어 중국의 전통적 예술 정신을 형성해 왔다.

근대적 의미에서‘예술정신’은 한 마디로 규정하기에는 너무 광범위한 개념이다. 이것은 예술가가 지향해야 할 정신성을 말하는 것인가. 하나의 예술작품 속에 담긴 정신성을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향수자들의 정신성을 말하는 것인가. 정신적 존재를 개인적 정신, 객관적 정신, 객체화한 정신이라는 세 가지 근본 형식으로 구분한 하르트만의 개 념을 빌리면, 예술정신은 작가의 창작 정신, 즉‘개인적 정신’과 한 시대 를 지배하는 예술경향이나 예술적 이해의 경향, 즉‘객관적 정신’, 그리고 30) 徐復觀,『중국 예술정신』, 동문선, 1999, 78쪽.

개인적 정신이 예술작품으로 구현된‘객체화된 정신’모두를 포괄하는 개 념이다. 한 시대의 예술경향이나 예술적 이해의 경향과 작가의 창작 정신, 그리고 관조자의 감상 정신과 예술작품은 혼재되어 있으며 서로 영향을 주 고받는 관계 속에서 예술은 그 본래의 생명력을 이어갈 수 있다. 예술과 정신은 역동적으로 서로를 규정하는 관계에 놓여 있다.31) 중국의 안곤양 은‘예술정신’을 예술성의 정신과 예술 활동의 가장 근원적인 정신으로 구 분한다.‘예술성의 정신’은 현실의 모든 공리적 목적성을 초월한 무한한 자유정신이며,‘예술 활동의 가장 근원적인 정신’은 예술가가 마땅히 지녀 야 하는 모든 예술 활동의 본질을 의미한다.32) 하르트만의 개념에 적용해 보면, 예술성의 정신은 객관적 정신과 객체화한 정신의 합이며, 예술 활동 의 가장 근원적인 정신은 개인적 정신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장자의 경우, 도가 곧 예술정신이라고 할 때, 직접적으론‘예술성의 정신’이란 의 미가 농후하지만,‘예술 활동의 가장 근원적인 정신(개인적 정신)’은 장자 의 영향을 받은 장자의 후학들에 의해 후세의 창작가들에게 전파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서복관은 장자의 예술정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장자의 경우는 근대미학의 건립자들처럼 일단 시작하기만 하면 곧 미를 목적으로 삼 고, 예술을 그 대상으로 삼아 사고와 체인의 과정을 거쳤던 것과는 다르다. 뿐만 아니라 유가처럼 어떤 하나의 특정한 예술대상만을 파악하여 한 가지 목적으로 추구해 나가지도 않았다. 노자와 장자는 그들 사상의 출발점에 있어서 근본적으로 예술적 의욕은 없었으 며, 더욱이 어떤 구체적인 예술을 그들이 추구하는 대상으로 삼았던 적도 없었다. 이 때 문에 그들은 이를 수 있는 한 최고의 경계인 도를 추구한다... 만일 그들의 사변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방법을 따라 살펴보지 않고, 다만 그들이 수양의 노력을 통해 도달한 인생

31) 김주완,「정신과 예술」,『경산대학교 논문집』, Vol, 11, No, 1, 1993, 152~153쪽.

32) 顔崑陽,『莊子藝術精神析Q』, 한흥섭, 앞의 책, 158쪽에서 재인용.

경계로부터 살펴본다면, 그들의 노력은 바로 한 위대한 예술가의 수양과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이 노력을 통하여 도달한 인생경계는 본래 예술과 무관한 것이지만, 오히려 뜻하지 않게 오늘날의 이른바 예술정신으로 저절로 합치하고 있다. 따라서 장자가 관념 상에서 묘사, 서술한 도에 대하여 우리들이 단지 관념상으로부터만 파악해 나갈 때에는, 이 도는 곧 사변적이며 형이상학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고도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장자 가 도를 인생의 체험으로 진술하여 우리들이 이러한 인생체험에 대하여 깨달음을 얻게 될 때, 이 도는 곧 철두철미한 예술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33)

노자와 장자, 특히 장자에게 있어서 도달할 수 있는 궁극의 경계, 즉 도 를 추구하는 정신이 근대적 의미의 예술정신과 합치한다는 것이다. 도를 사변적이며 형이상학적 방법에 의존하지 않고, 정신 수양의 최고 경계에서 파악한다면 도를 깨달아가는 인생의 체험은 곧 예술정신과 일맥상통한 것 임을 주장한다. 이러한 정신은 훗날 중국 예술의 정신성을 형성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중국 송대 산수화론의 대가인 종병(375~443)은 중국예술 의 특징으로‘以形媚道’, 즉‘형을 통해 도의 존재를 미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언급한다. 예술가는 형상을 통해 도를 깨닫고, 도를 깨달아 특유한 예술 시야를 갖는다. 노장사상을 밑바탕에 깔고 있는 <畵山水序>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성인은 도를 체득하여 만물에 비추고, 현인은 마음을 맑게 하여 만물의 형상을 음미한 다. 산수의 경우 그 존재는 형이하학적이지만 형이상학적인 도의 상징으로서 신성을 갖 기 때문에 현자는 산수의 상을 완미함으로써 도와 상통한다... 산수는 구체적인 형상으 로써 도를 미적으로 형상한다... 눈으로 보고 마음에 통하는 경지를 理라고 할 때, 사실 적으로 잘 그려진 산수화의 경우 눈으로 보면 동시에 마음에 감응하게 된다. 눈으로 보 고 마음에 느껴 산수가 지니고 있는 신과 감응하는 상태가 되면, 그림을 보는 자의 정신 은 고도로 비상하여 비로소 리를 터득하게 된다... 산수화폭을 펼쳐 놓고 그윽히 마주 하면 가만히 앉은 채로 우주의 끝까지를 궁구할 수 있다. 그리고 악독한 기운으로 가득 33) 서복관, 앞의 책, 80쪽.

찬 속세를 떠나지 않고서도 홀로 무위자연의 세계에서 노닐 수 있다.34)

‘현학의 정신으로 산수를 대함으로써’도달한 意境이다. 산천을 이루는 바탕은 비록 물질적인 존재라 할지라도 그 나아가는 바는 정신성의 세계이 다. 그러므로 그 형질의 존재는 도를 아름답게 꾸며주는〔媚道〕바탕이 되 는 것이다. 이런 연유로 산천은 현자가 마음을 맑게 하여 음미할 수 있는 대상이 될 수 있다. 현자는 산수라는 대상을 감상하고 음미함으로써 도와 상통할 수 있다. 이 도가 바로 노장의 도이며 실제 예술정신이다. 도와 상 통하는 것은 실제로 정신이 예술성의 자유해방에 도달하는 것이다. 사람들 이 추구하는 도의 바탕이 될 수 있고, 또 정신상의 자유해방의 요구를 만 족시킬 수 있으면 산수는 비로소 미적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35)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도의 본질이 실제로는 가장 진실한 예술정신이라 고 말할 때 미리 전제해 두어야 할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개념상에서 볼 때 그들이 말하는 이른바 도에 예술정신을 포함시킬 수는 있지 만, 예술정신 속에 그들이 말하는 도를 포함시킬 수는 없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도에는 사변적인 일면이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명언(名言)에서만 본다면 예술의 범위보다 훨씬 광범위하다고 하겠다. 그리고 그들은 인생을 직시하면서 도를 말한 것이지 예술작품을 마주하여 도를 말하였던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인생현실문제에 대한 비판에서 볼 때에는 때때로 마치 예술과는 무관한 것 같기도 하다.

둘째로 도의 본질을 예술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예술정신의 최고 의경에 대하여 말하 는 것이다. 사람마다 모두 예술정신을 지니고 있지만, 예술정신의 자각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 단계에 있어 각기 다르다. 그리고 단지인생의 향수를 이룰 수 있을 뿐 반드시 꼭 예술작품의 창작으로 귀결되어질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최고의 34) 成人含道暎物 賢者澄懷味象 至於山水 質有而趣靈... 夫聖人二神法道 而賢者通 山水以 形媚道 而仁者樂 不亦幾乎... 夫以應目會心爲理者 類之成巧 則目亦同應 心亦俱會 應會 感神 神超理得... 坡圖幽對 坐究四荒 不遠天勵之산 獨應無人之野 宗炳,『畵山水序』

35) 서복관, 앞의 책, 267쪽.

예술정신은 실제로 예술이 성립될 수 있는 최후의 근거이다.36)

도는 예술정신을 포괄하는 넓은 개념이며, 예술〔작품〕의 창작과는 무관 한 것 같지만 인생을 향수하고 관조하는 그들의 태도, 즉 자유로운 정신의 해방이 모든 예술이 지향할 뿐만 아니라 그것이 성립될 수 있는 궁극의 귀 의처라는 의미이다.

중국 예술은 예술가의 정신을 중시한다.“심경(心境) 혹은 정신의 예술

중국 예술은 예술가의 정신을 중시한다.“심경(心境) 혹은 정신의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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