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절 농지개혁과 양곡관리 농정
3.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과 농지개혁
가. 농지개혁
1948년 5월 10일 남한의 단독 총선거에 의해 제헌국회가 성립되고, 7월 17일에 제 헌 헌법이 공포되었다. 제헌 헌법 86조는 농지는 농민에게 분배하며, 그 분배의 방 법, 소유의 한도, 소유권의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써 규정한다 고 명시하였다. 이로 써 해방 직후부터 3년 가까이 여러 정당・사회단체의 대립적인 주장 속에서 풍설로 떠돌던 농지개혁의 실시가 확정되었다. 이후 1949년 6월 21일에 농지개혁법이 공포 되고, 이 법률을 개정한 개정 농지개혁법이 1950년 3월 10일에 공포되기까지 초안 과 법률을 합쳐 모두 6개의 안이 제시되었다. 법 제정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요약 하면 다음과 같다.
① 1948년 9월 7일에 구성된 농지개혁법 기초위원회가 작성한 초안(농림부안)이 1949년 1월 24일 국무회의에서의 지시로 기획처에 의해 수정되었으며, 이 수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하여 정부안으로서 국회에 제출되었다.
② 이와 별도로 국회는 산업노농위원회 농림분과에서 이훈구 의원을 중심으로 작 성한 농지개혁법 초안(산업위원회 안)을 194년. 1월 26일 국회안으로 확정하였다.
③ 농림부는 소작지의 방매와 이동을 금지하는 내용의 농지개혁 임시조치법안을 작성하여 1948년 12월 초 국회에 제출하였다.
12) 중앙토지행정처, 중앙토지행정처의 연혁 (1948)에는 1948년에 50만 5072호의 농가에 19 만 9029정보가 매각된 것으로 나와 있다. 대한금융조합연합회 조사부, 농업연감 (1955) 에는 1951년 4월 말 현재 매각면적이 22만 4509정보, 한국은행 조사부의 경제연감 (1955) 과 농림부의 농림통계연보 (1952)에는 1952년 2월 말 현재 매각면적이 24만 5554정보 로 나와 있다. 농협의 농업연감 (1958)에는 1957년 12월 말 매각면적이 22만 4882정보, 한국은행 조사부의 경제연감 (1959)에는 1958년에 59만 6801호의 농가에 20만 2143 정 보가 매각된 것으로 되어 있다. 농림부의 우리나라의 농지제도 (1962)에는 1961년 현 재 59만 6801호에 24만 5554정보가 매각되었다고 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농지개 혁사 관계자료집 (1986) 제3집 통계편에는 1971년 현재 64만 8459호에 29만 1431정보가 매각된 것으로 나와 있다. 이상에 대해서는 김성호 외, 앞의 책, 402쪽 참조.
④ 1949년 3월 10일 국회 본회의에서 국회안을 상정시켜 심의하자는 긴급동의가 가결됨으로써 정부안은 폐기되고, 임시조치법안의 상정은 부결되었다.
⑤ 1949년 3월 10일~14일에 대체 질의・토론, 4월 1일~27일에 축조심의가 있었 는데, 쟁점은 상환・보상 지가로 설정된 연간 평균 주작물 생산량의 30할 문제와 분배 및 소유 상한 3정보 및 농지소유 자격 등으로서, 축조심의는 토론과 수정안 제시 등이 별로 없이 찬반표결에 의해 졸속으로 처리되었다.
⑥ 1949년 4월 27일에 국회에서 통과된 농지개혁법은 5월 2일자로 정부에 이송되 었으나 임시 국무회의에서는 이 법을 국회에 환송하기로 결정하고, 16일자로 농지 개혁법 소멸 을 국회에 통고하였다. 이유는 첫째, 전후 조문간의 모순(5조 4호는 특 용작물 재배 농지도 3정보 이상은 매수한다고 하고, 6조 2항에서는 무제한 소유할 수 있다고 되어 있음), 둘째, 정부 재정 부담(보상액 15할과 상환액 12.5할 간의 차 액 2.5할, 수분배 빈농과 피분배 소지주에 대한 정부 보조 3할 등에 따른 재정의 미 확보), 셋째, 통과일 이후 자경하지 않는 농지의 매매와 증여 및 소작권의 이동과 박탈을 금지한다는 조항에서 법률의 효력은 통과일이 아니라 공포일을 기준으로 하 는 원칙에 어긋난다는 것 등이었다.
⑦ 이에 대해 국회는 6월 6일의 제3회 임시국회 13차 본회의에서 대통령이 재의 를 요청하지 않고 소멸통고 를 한 것은 위법 조치이므로 정부에 재송하자는 안을 가결시켜 6월 15일에 정부에 이송하였다. 이에 정부도 6월 21일자로 농지개혁법을 공포 하였다.
⑧ 1949년 7월 1일의 임시국회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농지개혁법의 조속한 개정을 요청하자 산업노농위원회는 개정안을 작성하여 1950년 1월 28일의 본회의에 이를 상정하였다. 축조심의에서 지주에게 유리하게 수정된 조문이 모두 부결되고, 정부 의 요구가 수용되어 1950년 2월 2일 국회를 통과한 개정법률이 공포되었다.
이 법에서는 ① 다년생 식물을 재배하는 농지와 산림을 제외한 농지 중 소작하는 모든 농지와 농가당 3ha 이상 소유농지를 분배 대상 농지로 하고, ② 분배 대상 농 지를 정부에서 매수하여 그 소작인에게 분배하며, ③ 농지를 분배받은 소작인은 농 지가격으로 1년 생산량의 150%를 5년에 걸쳐 정부에 분할 상환하면 정부는 지주에 게 지가증권을 발급하여 농지대가를 5년에 걸쳐 분할 지급하도록 되어 있었다.
한편, 농림부는 농지개혁법의 개정이 지연되는 동안 개혁사업의 실시를 위한 사 전 준비작업을 계속하였다. 1949년 11월 4일의 각도 농지과장 회의에서 농지위원 회 설치령 안 을 공포하였으며, 12월 중순에는 전문 20조의 농지개혁법 시행령 안
을 법제처에 회부하였다. 법제처에서는 약 1개월여의 심의를 거쳐 전문 53조의 시 행령 안을 작성하고, 1950년 2월 21일에 농림부와의 연석회의를 열었다. 농림부와 법제처 간에 이견이 있었던 조항은 농지개혁법 제7조 1항 3호(과수원 등 다년성 식 물 재배지의 평가), 제8조(보상)에 관한 것이었다. 과수원 등의 평가 방법으로 농림 부는 당국에서 사정하여 평가하자는 주장인 데 반해 법제처는 연고자 우선의 경쟁 입찰을 통해 평가하자는 주장을 폈다. 보상 방법에 관해서는 법제처는 시장 곡가로 보상할 것을 주장하고, 농림부는 법정 곡가로 보상할 것을 주장했다. 확정된 시행령 에서는 전자의 경우 법제처 안, 후자의 경우 농림부 안이 채택되었다.
시행령 안이 법제처에 계류되어 있는 동안 농림부는 1950년 2월 3일에 농지소표 취급요령 을 하달하여 대지조사(對地調査)에 착수하도록 하였으며, 2월 8일에는 전 국 농지등급별 임대가격 및 평균 수확량표 를 배부하고, 2월 10일에는 농지위원회 규정을 공고하였다. 2월 24일에는 농가별 분배농지 일람표 를 3월 10일까지 완료 하라고 지시하였으며, 3월 15일에는 3월 15일~24일의 10일간 일람표를 종람케 하 도록 지시하였다. 농가별 분배농지 일람표 를 종람한 농가들이 이의신청을 하지 않으면 분배농지로 확정되고, 이의신청이 있으면 농지위원회에서 이를 조정하게 된 다. 따라서 일람표의 종람이 완료된다는 것은 일단 농지 분배가 완료되는 것과 다 름없다. 농지개혁법 시행령이 3월 25일에 공포되었는데, 농지분배는 시행령이 공포 되기도 전에 완료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1950년 4월 15일에는 농지분배가 완료되었 다는 농림부의 주장13)은 거짓이 아니었으며, 5월 27일 분배농지 상환대장의 작성 지시, 6월 9일의 하곡 상환 지시 등 농림부의 조치는 이를 기반으로 이루어졌던 것 이다. 그러나 1950년 6월 25일에 한국전쟁이 발발함으로써 농지개혁사업이 중단되 었다가 그 해 연말부터 재개되어 1957년 말에는 사업이 거의 마무리되었다.
농지개혁에 의해 매수・분배되는 농지는 모든 소작지, 자경 또는 자영 농지 중 농가당 3정보를 초과하여 소유하는 농지로 나눌 수 있다. 소작지는 소유자의 유형 에 따라 비자경 개인 문교재단 사찰 지방자치단체 국가 소유지로 나뉘는데, 이 중 묘 1위당 600평 이내의 위토, 국유농지 및 공공용지로 사용목적을 변경하도록 인허된 농지, 학술・연구 등 특수목적 사용 농지 등은 매수에서 제외되었다. 또, 자
13) 櫻井浩( 韓國農地改革の再檢討 , アジア經濟硏究所, 1976, 114쪽)는 분배점수제 규정 도 아직 미공포 상태에 있는 단계이므로 이러한 단언은 무리라고 생각되며, 농지의 매 수・분배 등은 1950년 10월 이후에 행해진 인상이 짙다고 보았으나, 이는 틀린 주장 임이 이로써 입증되었다.
경・자영 농지의 경우 농가만이 농지를 소유할 수 있으나 농가 아닌 종교단체・후 생기관 등이 농지를 소유하더라도 그것이 그 단체 및 기관의 유지・경영에 필요하 다고 인정되며 자경하고 있음이 확인되면 그 농지는 매수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이리하여 농지개혁에서 매수 및 매수 제외된 농지 면적을 보면, 1961년 12월 현재 매수된 농지의 면적이 31만 7353 정보로서, 1949년 6월 21일의 농가실태조사에서 밝 혀진 매수 대상 농지 면적 60만 1049 정보의 52.8%에 불과하다는 점이 주목된다. 법 에 의해 매수 대상에서 제외된 농지 면적 8만 1373 정보를 합치더라도 그 면적은 39만 8726 정보로서, 1949년 요매수 면적의 66.3%에 불과하다. 이처럼 1949년 6월부 터 1년여의 기간에 20만여 정보의 소작지가 매수 대상에서 빠져나가게 된 것은 지 주의 귀농과 자영을 인정함으로써 소작지가 지주의 자영지로 둔갑할 수 있었던 것도 한 요인이지만, 그보다는 이 기간에 지주들이 임의로 소작지를 방매하였기 때문이다.
농지를 분배받은 농가가 절가(絶家)・전업・이주 등으로 영농이 불가능해지거나 상환능력 부족 또는 경작여건의 불리 등의 이유로 농지대가의 상환을 완료하기 전 에 자진해서 분배농지를 포기하는 농가도 1958년 5월 30일 현재 일반농지 8만 2253 호의 2만 2671 정보, 귀속농지 6만 1355호의 1만 8065 정보에 달하였다. 분배 포기 의 주된 이유는 상환능력의 부족이었다. 분배포기 농지는 다른 희망 농가에 다시 분배되었으므로 분배 면적 상의 변동은 생기지 않는다. 그러나 상환완료 전에 유 실・매몰・포락 등으로 인해 농지로 복구할 수 없게 된 폐기농지(귀속농지와 일반 농지 합계 2387정보)와 군용지 편입지(3295정보)는 분배면적을 감소시키게 된다. 이
농지를 분배받은 농가가 절가(絶家)・전업・이주 등으로 영농이 불가능해지거나 상환능력 부족 또는 경작여건의 불리 등의 이유로 농지대가의 상환을 완료하기 전 에 자진해서 분배농지를 포기하는 농가도 1958년 5월 30일 현재 일반농지 8만 2253 호의 2만 2671 정보, 귀속농지 6만 1355호의 1만 8065 정보에 달하였다. 분배 포기 의 주된 이유는 상환능력의 부족이었다. 분배포기 농지는 다른 희망 농가에 다시 분배되었으므로 분배 면적 상의 변동은 생기지 않는다. 그러나 상환완료 전에 유 실・매몰・포락 등으로 인해 농지로 복구할 수 없게 된 폐기농지(귀속농지와 일반 농지 합계 2387정보)와 군용지 편입지(3295정보)는 분배면적을 감소시키게 된다.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