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발리스 콤플렉스 : 감정의 점화와 열감의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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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주목할 불의 형태적 이미지의 시어로는 촛불 이 있다 촛불의‘ ’ . 변형으로 가깝게는 초‘ ’, ‘양초’, ‘촉광’, ‘촛농 등을 들 수 있다 초에 불을’ . 켜는 행위의 연장선에서 성냥‘ ’, ‘석유’, ‘도화선 더 멀게는 담배’ ‘ ’, ‘전등’ 등의 시어와도 관련이 있다.

촛불의 불꽃 역시 주위를 밝힌다 그런 의미에서는 프로메테우스 콤플렉. ‘ 스 와 동류로서 시적 공간을 비추고 있는 불처럼 보인다 그러나 앞에서’ . 시적 공간을 비춘다 라고 할 때에 내재된 시인의 인식이 물론 개인의 것

“ ”

이지만, ‘태양 이나 햇빛’ ‘ ’, ‘빛 따위의 표현으로 미루어 보아 한 개인으로’ 인하여 밝혀진 것이 아닌 시대를 비추는 조명으로서의 불이라는 점에서 그 이해를 달리한다.

크리스마스 트리는 아름답다

권 제 호 문학과지성사7 , , 1989, p.1105 66) 박철화 앞의 글, , p.1106.

67) 가스통 바슐라르 안보옥 역 앞의 책, , , p.190.

68) 가스통 바슐라르 안보옥 역 앞의 책, , , p.190.

그것뿐이다

오늘은 왜 자꾸만 기침이 날까 내 몸은 얼음으로 꽉 찬 모양이야 방안이 너무 어두워

한 달 내내 숲에 눈이 퍼부었던 저 달력은 어찌나 참을성이 많았던지 바로 뒤의 바람벽을 자꾸 잊곤 했어 성냥불을 긋지 않으려 했는데 정말이야 난 참으려 애썼어,

어느새 작은 크리스마스 트리가 되었네 그래 고향에 가고 싶어,

지그보다 훨씬 더 어렸지만 사과나무는 나를 사로잡았어

그 옆에 은박지 같은 예배당이 있었지 틀린 기억이어도 좋아

멀고먼 길 한가운데

알아 얼음가루 꽉 찬 바다야?

이 작은 성냥불이 어떻게 견딜 수 있겠어 어머니는 나보고

소다가루를 좀 먹으라셔

어디선가 통통 기타 소리가 들려

방금 문을 연 촛불 가게에 사람들이 몰려 있어 참 그런데,

오늘은 왜 아까부터

겨울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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聖誕木 版畵

― 「 」

시에서 한 인물은 어둡고 방 안이 너무 어두워(‘ ’) 추운 내 몸은 얼음으로(‘

꽉 찬 모양이야’) 방 바람벽에 기대어 바로 뒤의 바람벽(‘ ’) 아름다운 크리 스마스 트리 크리스마스 트리는 아름답다 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 .

성냥불 을 켜면 나 는 어느새 작은 크리스마스 트리가 되었 다 실제로

‘ ’ ‘ ’ ‘ ’ .

사람이 나무가 될 수는 없으니 이는 첫 연의, “크리스마스 트리는 아름답 다 / 그것뿐이다”(「聖誕木 - 겨울 版畵 3 )」 라는 진술에 비추어 작은 크‘ 리스마스 트리 가 있었던 시절을 떠올리고 있는 모습이다 그곳은 예배당’ . ‘ ’ 이 있는 고향 이다 나는 고향에 돌아가고 싶지만 내 몸은 얼음으로 꽉‘ ’ . ‘ 찬 모양 이라 거동이 불편하다 그것은 내가 처한 현실이 얼음가루 꽉 찬’ . ‘ 바다 인 데서 비롯한다’ . ‘방안이 어두워 이 시적 공간의 추위가 가일층하’ 다 이때 성냥개비의 불꽃은 작지만 따스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바다 같이. . 넓은 공간에서 이 작은 성냥불이 어떻게 견딜 수 있겠 는가 불은 꺼지고‘ ’ . 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냥불 이 타는 순간은 더욱 따스하게 느껴질. ‘ ’ 것이며 따스한 불에 대한 이미지는 유년의 시절은 환기시키며 온다고 하, 겠다 때문에 박혜란은. “안데르센의 「성냥팔이 소녀」가 환기되는 시 로” 서 정리한다. 「성냥팔이 소녀 의 이야기에 빗대며」 「聖誕木 - 겨울 版畵 을 성냥불을 켜자 유년에 대한 그리움이 밀려오는 환상의 공간이 나타 3」

난다고 보고 시의 후반부는 이를 공유하는 군중의 모습으로서 해석하고, 있다.69)

그러나 그와 동시에 이런 감정을 방금 문을 연 촛불가게에 사람들이 몰‘ 려 있어 라고 말하며 확산시켜 공유하는 데 시의 역점이 있다 시의 첫 연’ . 으로 돌아오자 화자가 크리스마스 트리는 아름답다 고 진술하고 있을 때. ‘ ’ 그것은 왜 아름다운가 그리고 왜 그것 뿐 이라고 말하는 것인가 이는 불. ‘ ’ . 의 상상력에 의해 불러일으켜진 유년시절의 기억으로의 진입에 아름다움 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후 감정이 환기될 때에 시적 의미가 생기기 때문, 이다.

나 는 크리스마스 트리 를 본다 그것을 나 는 마치 성냥불 처럼 따뜻하

‘ ’ ‘ ’ . ‘ ’ ‘ ’

다고 느낀다 그리고 성냥불이 불러일으키는 몽상에 빠진다. . ‘ ’나 는 얼음‘ 바다 를 헤쳐 유년 시절의 기억에 놓인 작은 크리스마스 트리 를 만나’ ‘ ’ , 크리스마스 트리는 아름답다 라는 최초의 진술에 도달한다 크리스마트 트

‘ ’ .

69) 이와 같은 해석은 또한 박종빈(「기형도 시의 이미지와 시적 진술에 관한 연구」, 대전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8.)의 연구와 맥락을 같이 한다. 박혜란, 「기형도의 시적 상상력 연 구」,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1, pp.93~94.

리에서 유년 시절의 기억이 교차되고 있다 그러나 나 는 결코 어린아이가. ‘ ’ 될 수 없으며 다만 당시의 감정이 이 자리로 불러일으켜질 뿐이다 그 순, . 간 시적자아는 감정의 점화(點火)에 대해 사유하고 있는 것이다.

겨울 에서 이 감정은 크리스마스 트리를 볼 때 느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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聖誕木 版畵

「 」

지는 따뜻함이다 마찬가지로 촛불이 켜질 때 함께 켜지는 것 역시 감정이. 다.

나에게는 낡은 악기가 하나 있다 여섯 개의 줄이 모두 끊어져 나는. 오래전부터 그 기타를 사용하지 않는다. ‘한때 나의 슬픔과 격정들을 오선지 위로 데리고 가 부드러운 음자리로 배열해주던 알 수 없는 일’ 이 있다 가끔씩 어둡고 텅 빈 방에 홀로 있을 때 그 기타에서 아름다. 운 소리가 난다 나는 경악한다 그러나 나의 감각들은 힘센 기억들을. . 품고 있다 기타 소리가 멎으면 더듬더듬 나는 양초를 찾는다 그렇다. . . 나에게는 낡은 악기가 하나 있는 것이다 그렇다 나는 가끔씩 어둡고. . 텅 빈 희망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 이상한 연주를 들으면서 어떨. 때는 내 몸의 전부가 어둠 속에서 가볍게 튕겨지는 때도 있다.

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 부분

― 「 」

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 에서 시의 화자인 나 는 빈 방에 앉아 가끔‘ ’ (‘

「 」

씩 어둡고 텅 빈 방에 홀로 있을 때’) 낡은 악기에 대해 반추한다 그 악. 기는 기타인데 그것은 나의 슬픔과 걱정들을 오선지로 데리고 가 부드러, ‘ 운 음자리로 배열해주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기타에 대한 생각은 자연스’ . , 럽게 과거의 기억 힘센 기억들 을 떠오르게 한다(‘ ’) .

기타는 지금은 여섯 개의 줄이 모두 끊어져 사용하지 않은지 오래된 것‘ ’ 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 기타에서는 가끔 아름다운 소리가 난다. ‘ .’ 이는 상 상력의 세계로의 진입으로서 기타와 관련된 당시의 기억들이 추억되고 있, 는 것이다 기타소리를 들으며 마음을 다스릴 때 나 는 무엇을 곱씹어 생. ‘ ’ 각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기억들은 선명하여 힘이 세다 기타소. . 리는 곧 멎는다. ‘ ’나 는 실제로 사용할 수 없는 고장난 기타를 대신하여( ) 서 양초를 찾는 다 이는 기타가 그렇게 했듯이 양초를 켜 나의 슬픔과‘ ’ . ‘

격정들 을 켜기 위함이다’ .

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는 푸른색이다 어떤 먼지도 그것의 색깔을 바꾸지 못한다

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 부분

― 「 」

이제 나 는 어둡고 텅 빈 희망 속으로 걸어 들어 가 과거의 힘센 기억‘ ’ ‘ ’ ‘ ’ 들을 스스로의 의지로 만난다 양초의 촛불로 인해 다시 불러일으켜진 감. 정을 대면하는 것이다 그리고 온몸으로 그 감정들을 받아 기타처럼 튕겨. ‘ ’ 지게 한다 이를 일종의 충격들로 해석할 수도 있겠으나 그보다는 화자의. , 감정이 탄주되고 있는 것으로 보는 편이 적합하겠다 그리하여 인용한 시. 의 마지막 연으로 전개되며 그 기억들을 결코, “바꾸지 못한다”(「먼지투 성이의 푸른 종이」)는 진술에 도달한다 과거의 기억들로부터 나 는 이루. ‘ ’ 어져 왔다 그런데 마주친 과거의 기억들이란 화자의 행동과 표현에서 드. 러나듯이 그리 아름답지는 않다 그러나 얼룩진 스스로를 바꾸지 못해 후. 회하며 술회하지는 않는다 이 태도는. “나는 이러한 사람이다 하고 인정.”

하는 모습에 가깝다.

이처럼 시에서 성냥불 과 촛불 은 감정을 점화하며 등장한다 그런데 바‘ ’ ‘ ’ . 슐라르는 “마찰에 의해 야기된 불을 향한 충동과, (이 불의 열) ( )熱을 공유 하고자하는 욕구를 종합”70)하여서 노발리스 콤플렉스 라고 했다‘ ’ .

노발리스 콤플렉스는 언제나 모든 빛의 시각적 과학을 능가하는 내밀 한 열에 대한 의식을 특징으로 한다 그것은 열 감각의 만족과 열이. 주는 행복에 대한 깊은 의식을 바탕으로 한다 열은 하나의 재산이요. 소유다 그것을 조심스럽게 간직해야 하며 오직 통할 수 있고 서로 용. , 해될 수 있는 선택받은 존재에게만 선물해야 한다 빛은 사물의 표면. 에서 놀고 웃지만 열은 침투한다, .71)

70) 가스통 바슐라르 김병욱 역 앞의 책, , , p.81.

71) 가스통 바슐라르 김병욱 역 앞의 책, , , p.81.

불을 붙이는 방법에 대한 진술은 따로 없지만 앞에서 주목한 성냥불 과‘ ’ 촛불 은 모두 성냥에 의해 당겨진 불 또는 이와 유사한 형태 로 보인다

‘ ’ ( ) .

시집에서 불을 붙이는 도구이면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매개체로 나타나는 사물이 성냥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냥불은 성냥개비와 성냥갑의 인화물. 질들의 마찰에 의해 불이 붙는다. ‘성냥불 과 촛불 의 이미지 역시 점화의’ ‘ ’ 방식으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힘을 지니고 있다 이 감정은 첫째로 시에. 서는 성냥의 마찰에 의해 야기된다. ‘성냥불을 긋지 않으려 했는데 / 정말 이야 난 참으려 애썼어 라는 진술처럼 성냥은 어디선가 그어졌 마찰 다, ’ ( ) . 이처럼 감정의 점화는 불의 생산을 가져왔고 그 감정은 일종의 열감으로, 파악된다.

어디선가 통통 기타 소리가 들려

방금 문을 연 촛불 가게에 사람들이 몰려 있어

겨울 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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聖誕木 版畵

― 「 」

생산된 감정을 시적자아가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위의 진술이 이해되었 다는 점에서 노발리스 콤플렉스와 가깝게 해석할 여지가 생긴다 먼저 감. , 정의 점화가 일어나자 “ ,참 그런데 / 오늘은 왜 아까부터”(「聖誕木 - 겨 울 版畵 3 )」라며 사람들이 그 열감을 공유하는 모습이 뒤이어 나타난다. 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 역시 같은 배경에서 쓰인 것이다 시의 기타.

「 」

소리는 「聖誕木 - 겨울 版畵 3」의 기타소리와 연결되어 있다 양초를. 찾는 행위는 성냥불을 켜는 행위로 직결되고 이는 자신의 몸이, “내 몸의 전부가 어둠 속에서 가볍게 튕겨지는”(「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 장면 과 함께 겹쳐진다 부드러운 마찰의 점화가 일어나는 것이며. , ‘아름다운 소 리 를 통하여’ “나는 가끔씩 어둡고 텅 빈 희망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 는 진술에 설득력이 생긴다 또한 생산된 감

(「 」) .

정은 “느끼고자 하는 욕구가 보고자 하는 욕구를 압도”72)하는 것이어서, 이때 감정의 열감이 텍스트 밖의 독자를 향하여서도 공유된다.

72) 가스통 바슐라르 김병욱 역 앞의 책, , , 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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