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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30년대 우리나라 사회는 성에 대한 폭발적 관심과 이에 따른 사 회 문제로 몸살을 앓던 때였다. 성을 교육 대상으로 인식하고 그것의 실 시를 논한 것은 성에 관한 문제가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을 만큼 심각했던 결과였다. 성교육에 관한 논의는 1920년대 말에 처음 일어났다가 1933년

13세 소녀의 출산사건을 계기로 본격화되었다. 1933년 전후의 이런 상황

에 특별히 기독교교육자 중 대표적인 인물인 김필례가 직접 성교육 내용 을 담아 책으로 편찬한 것이 바로 󰡔성교육󰡕이었다. 이 책에서 김필례는 미혼의 남녀뿐 아니라 기혼 청년을 대상으로 하여 남녀의 신체적 특성, 연애나 결혼과 관련한 사항에 대해 전반적으로 안내를 하였다. 앞선 논의 를 통해서, 남녀가 고상한 인격으로 성욕을 조절하고, 생산적인 일에 열 심을 내어 사회에 기여할 것, 남녀관계 및 결혼 문제에서 경제적 문제를 중시할 것, 결혼에 관한 법률적 신고에 주의를 기울일 것을 김필례가 강 조하였음을 제시하였다.

김필례의 󰡔성교육󰡕은 당시 성교육의 필요성만 외칠 뿐 실제 교육 내용 을 제시한 것이 드문 때에 최초로 발간한 성교육 서적이라는 데에 의의가 있다. 기독교계에서뿐 아니라 전 사회적으로 성교육서는 없었다. 요즘과 비교할 때 80여년 이상 앞선 시기의 서적이기 때문에 교육 내용의 깊이나 구체성에서 다소 부족할 수는 있어나 시기적인 특성을 고려할 때 그 의의 를 낮추어 잡을 수 없다.

또, 모든 서술을 마무리 하면서 김필례는 마지막으로 “모든 위험 중에 서 나의 몸을 방어한다 할지라도 우리의 마음이 완전히 깨끗하며 우리의 환경에 잇는 모든 위험을 막을 만한 능과 힘이 오히려 약함을 느낄 것”(108)이라면서 마지막으로 종교적 필요를 말하였다. 구주 예수를 바라 보면서 “혼자 방에 앉어 난관을 생각하고 한숨 쉬는 대신 하나님의 사랑 하는 자녀들의 령과 육의 살 길을 찾어 주기 위하야 일하자. 활동하 자!”(109)고 하며 이 책을 끝맺었다. 객관적, 과학적으로 이 문제를 교육 하고 바로잡을 것을 말하였지만, 최종적으로 인간의 약함을 인정하고 종 교적인 힘에 의지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김필례의 마지막 권면이었다.

이 책의 또다른 의의가 있다면, 기독교교육자로서 성 문제로 어지러운 당대 사회에 대해 대처한 한 예를 보여주었다는 데에 있을 것이다.

성의 문제는 지금도 공공연하게 말하기가 껄끄러우니 1930년대에는 더 말할 것이 없다. 단지 ‘금지’, ‘한탄’ 운운하거나 무조건 ‘자유’, ‘개인’ 운운 하던 때에 기독교 교육자가 먼저 움직임에 나선 것은 눈여겨보아야 한다.

껄끄럽다고 피할 때에 오히려 전면에 나서서 ‘구체적으로 내용을 구성’하 고 ‘적극적으로 가르쳐 인도’하는 방향을 잡았다는 점이 그렇다. 당시에도

‘보수적인 기독교계’에서 움직이고 있다며 언론에서 관심을 보인 바 있다.

무조건 ‘금지’의 차원으로 접근하지 않았다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보수적 반대의견 제시에 치중하고 있는 현대 기독교계, 기독교윤리계의 상황을

볼 때 김필례와 당시 기독교교육계의 대처는 그래서 더 의의가 있다. 현 대 기독교윤리측에서 말하는 성교육이 김필례의 성교육 내용을 받아들였 는지 여부를 말하지 않았으나 앞서 제시한 의의만으로도 김필례의 시도 와 서적은 오늘날에도 배울 점이 많다.

이 책에는 독신생활, 산아제한, 연애결혼24) 등 당대에는 아직 널리 알 려지지 않은 진보적인 언급들도 많다. 이들 각각의 의의와 현대와의 연관 성은 더 다룰 만하지만 이 글의 논점과 어긋나고 지면의 한계가 있어서 생략했다.

24) 요즘에 생각하는 일반적인 의미가 아니다. 사랑이 있어서 적법하게 결혼하고, 사랑이 식으면 아무런 미련 없이 헤어지는 것을 당연히 하는 결혼을 뜻하는 용어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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