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의대 신경과학교실이
1983
년3
월 창립되고 수년간 모든 교실원들이 교실의 정착과 성 장을 위하여 노력한 결과 교실은 빠르게 안정화되었다.
이러한 교실의 안정을 바탕으로1990
년부터는 교실이 꾸준히 성장하게 되어 이후10
년간을 교실의 성장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기는 김진수1989년 3월~1995년 2월와 최일생1995년 3월~1999년 2월이 주임교수직을 맡았던 기간 이었다.
최일생이
1984
년 영동세브란스병원으로 자리를 옮긴 이후에는 김진수가 신경퇴행성질환을 담당하였지만 이 시기에는 현재와 같은 세부전공의 분명하지 않아 김기환,
선우일남 등의 교 실원들도 다양한 신경퇴행성질환을 진료하였다.
더구나 김진수는1989
년3
월부터1995
년2
월 까지 교실의 주임교수직을 맡았고 대한신경과학회에서는1990
년에 부이사장을, 1992
년에는 회장을 역임하여 교실과 학회를 돌보느라 신경퇴행성질환의 진료와 연구에 전력을 다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다.
또한1992
년5
월부터는1996
년도에 서울에서 열리는 제9
차AOCN
의 조직위원장으로서의 활동도 하였다.
최일생은
1984
년7
월부터1995
년2
월까지 영동세브란스병원 신경과장을, 1994
년3
월부터1995
년2
월까지는 영동세브란스병원 제3
대 부원장을 역임하였다.
최일생은1988
년2
월까지 영동세브란스병원 신경과에서 홀로 진료,
교육,
연구를 담당하였다. 1988
년3
월에 이명식이 영동세브란스병원 신경과에서 근무를 시작하였다.
최일생과 이명식은 후에 신경퇴행성질환을 주로 담당하여 훌륭한 업적을 남겼지만 이 당시의 진료는 영동세브란스병원의 인력과 장비 등 제반 환경의 한계로 한 사람의 전 문가가 신경퇴행성질환에 대해서 집중하 여 진료하는 형태는 아니었다.
최일생과 이 명식은 영동세브란스병원 신경과의 정착과 안정 그리고 발전을 위하여 각고의 노력을 하였다.
특히 최일생은1983
년부터1994
년 까지 연세의대 신경과학교실과 세브란스병제9차 AOCN총회(1996년)
057
원 및 영동세브란스병원 신경과의 초창기
10
여 년간 교실의 안정적인 정착과 발전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다하였고 크게 공헌하였다.
최일생의 이러한 봉사가 있었기에 신촌과 영동세브 란스병원의 신경과는 발전할 수 있었다.
신경퇴행성질환 분야 역시 최일생의 공훈으로 발전 할 수 있었다.
이명식은1992
년~1994
년간 당시 이상운동질환 및 신경퇴행성질환에 대해서 세 계적인 권위가 있던 영국 퀸스퀘어 국립병원에서 연수를 마치고 돌아왔고,
이후 영동세브란스 병원에서 이상운동질환에 대한 체계적인 진료와 연구가 본격화되면서,
파킨슨 병과 파킨슨 증 후군,
근긴장이상증,
보행 장애,
무도병 등 이상운동질환 분야에서 의미 있는 연구결과를 발표 하였다.
이명식은 여러 영향력있는 연구논문들을 바탕으로 국제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이상운 동질환 교과서들에도 저자로 참여하였다.
26)손영호는
1990
년2
월 세브란스병원에서 전공의 수련을 마치고3
월부터1991
년2
월까지 뇌 전증 분야의 연구강사로 교육을 받은 이후1993
년2
월까지 미국 국립보건연구원(NIH
)에서 방 문연구원으로 활동하였고1993
년3
월에 연세의대 신경과학교실의 교원으로 발령을 받고 세 브란스병원에서 근무를 시작하였다.
손영호는 이상운동질환에 관심을 두었지만 당시의 여건 으로 교원 초기에 전반적인 신경계 질환을 다루었다가 점차 신경퇴행성질환들을 주로 다루게 되었다. 1995
년3
월 최일생이 교실의 주임교수에 임명되면서 세브란스병원으로 복귀하였고 이때부터 세브란스병원 신경과에서는 최일생,
김진수,
손영호의 세 교원이 신경퇴행성질환 분 야를 진료하고 연구하면서 세부전공 분야로 기틀을 잡고 발전시켜 나갔다.
선우일남은
1989
년도에6
개월간 신경근육병리를 배우기 위하여 미국 알라바마대학으로 연 수를 다녀왔다.
선우일남은 미국에서 신경근육병리를 익히고 돌아왔지만 병리검사를 시행 하기 위하여 필요한 장소,
장비 및 비용 등에 대하여 병원과 대학에서 지원받지 못하였고 개 인적으로 병리검사에 필요한 물품들을 구비하여 당시 신경학검사실 내 근전도검사 판독실에 서 병리조직검사를 시행하였다.
열악한 조건 환경이었지만 근육 조직화학염색histochemicalstain을 시행하는 등 당시로서는 국내 최고 수준의 신경근육병리조직검사를 제공하였다
.
선우일남 은 전기진단검사와 신경과 근육의 병리조직검사를 기반으로 이전까지는 진단이 어려웠던 신 경근육질병들을 정확하게 진단하였다.
근육조직검사로 진단한 첫 증례는Nonaka myopathy
로 이 질환은 이때 국내에서 최초로 발견되었다.
김승민은1990
년3
월부터1997
년2
월까지 원26) 1. LeeMS,MarsdenCD.Dropattacks.ClinicalDisordersofBalance,PostureandGait.Eds.BronsteinAM,BrandtT,WollacottM.
1996;pp177-187.Arnold,London;
2. RinneJO,LeeMS,Neuroacanthocytosis.Parkinson'sDiseaseandMovementDisorders.edsJankovicJandTolosaE,4thed.
2002;pp576-583.LippincottWilliamsandWilkins,Philadelphia
주기독병원에서 근무를 하였고 이 기간 중
1992
년3
월부터1994
년2
월까지 미국Mayo clinic, Peripheral Nerve Center
에서Peter J Dyck
에게 말초신경질환 및 말초신경병리에 대하여 연 수를 하고 돌아왔다. 1997
년에는 김승민이 원주 연세의대에서 세브란스병원으로 복귀하였 다.
이 때부터 김승민은 선우일남을 도와 신경근육질환 분야를 발전시키기 위하여 매진하였 다. 1997
년에는 근전도검사실이 당시 별관2
층으로 이전하였다.
새롭게 확장 이전된 근전도 실은4
개의 방으로 구분되었고 세 방에는 방마다 한대의 근전도 기계를 두어 검사를 시행하였 고 나머지 방 하나를 신경근육병리조직검사실로 꾸몄다.
근전도실에서는 이 시기에Cadwell 5200A
1991년, Cadwell Excel
1991년, Toennies Neuroscreen
1997년를 도입하였다.
근전도실이 이 전하기 전에는 근전도검사 수가 한 해에3,000
건 정도였으나 이전 이후에는4,000
건 이상으로 시행 건수가 크게 늘었다.
신경근육조직병리검사는1997
년 이전에는 선우일남에 의하여 모두 수행되었으나 김승민이 세브란스병원으로 돌아온 이후로는 근육조직병리검사는 이전과 같이 선우일남이 신경조직병리검사는 김승민이 담당하였다.
이후 신경근육조직병리검사는 더욱 전 문화되었고 체계적으로 이루어졌다. 1996
년에는 최영철이 교원으로 임용되었고 당시 영동세 브란스병원에서 근무를 시작하였다.
최영 철은1998
년3
월부터2000
년2
월까지 미국NIH, NINDS
의Medical Neurology Branch
에서Marinos C Dalakas
에게Neuro-immunology
와Pathology
및 근육질환에 대하여 연수하였다.
1989
년 이후 연세의대 신경과학교실의 신경근육질환 분야는 진료,
교육 및 연구에 서 크게 성장하게 되었는데 특히 진료와 교 육 부분의 성장이 두드러졌다.
1988
년도에 미국에서 뇌전증을 전공한 이병인과 허균이 연세의대 신경과학교실에 들어오 면서 이전에는 모든 교원에 의하여 시행되던 뇌전증에 대한 진료가 차츰 중추신경계 질환에 서 따로 독립하여,
이 두 교실원들에 의하여 보다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뇌전증 질환 중심의 진 료가 시작되었다.
이병인과 허균은1989
년 국내에서는 최초로 연세의대에 뇌전증집중검사실24시간 비디오 뇌파 검사실을 당시 별관
8
층87
병동에 개소하였고 약물과 수술적 치료를 모두 제공 하는 포괄적인 뇌전증 진료 프로그램을 도입하였다.
당시 국내 뇌전증 환자의 치료는 장미회선우일남이 연세의대 신경과학교실에서 처음으로 시행한 근육조직병리검사: Nonaka myopathy
059
등에서 보급하였던 페니토인
,
페노바비탈 등의 약물이 대부분이었던 매우 낙후된 상황이었음 을 고려할 때,
비디오 뇌파 검사를 시행하고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구성하여 수술로 뇌전증 을 치료하는 것은 당시로서는 매우 획기적인 변화였다.
포괄적인 뇌전증 진료 프로그램으로 국내에서는 이전까지 ‘불치’로까지 알려졌던 난치병인 뇌전증의 치료성적이 월등히 향상되었 고 특히 우수한 수술적 치료 효과가 널리 알려지면서 연세의대 신경과학교실의 뇌전증 진료 를 받기 위하여 수많은 뇌전증 환자들이 세브란스병원 신경과를 찾았고 세브란스병원 뇌전증 진료에 대한 기사가 여러 차례 일간지에 실리는 등 대중의 관심 또한 높았다.
뇌전증 분야에서 뛰어난 활동을 하였던 허균은
1994
년 아주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이 개원하면서 아주의대로 자리를 옮겼다. 1996
년에는 박수철이 교수로 임용되어 이병인을 도 와 뇌전증 분야의 발전을 위하여 노력하였다. 1997
년에는 김원주가 교원으로 발령받았고 당 시 영동세브란스병원에서 근무를 시작하였다.
교육 및 학술활동으로는 이병철이1989
년3
월 부터1990
년2
월까지 뇌전증 분야의 첫 연 구강사로 근무하였다.
이후 손영호,
박수 철 등이 연구강사 과정을 거쳤다. 1994
년 부터1998
년까지 매년Yonsei Epilepsy Symposium
을 개최하여 국제적인 석학을 초청,
국내 뇌전증 연구의 저변 확대에 힘 을 쏟았으며,
이로써1996
년에 대한뇌전증 학회가 창설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시기에1988년 도입된 비디오-뇌파 검사장비 (Telefactor & nihon koden neurofax 4300)
한겨례신문에 게재된 뇌전증클리닉(1992년)
뇌파검사 중인 이병인 교수(1989년)
세브란스병원 신경과 뇌전증의 임상자료들이 축적되면서 많 은 수의 국내 및 국제 학술지에 뇌전증 분야에서 영향력 있 는 학술 논문들이 발표되었다
.
이와 같은 뛰어난 학술성과 가 인정되어 이병인은1998
년 제11
회 보원학술상을 수상하 였다.
초창기 세브란스병원의 뇌졸중 진료는 모든 신경과 교수
초창기 세브란스병원의 뇌졸중 진료는 모든 신경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