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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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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이 논문은 정현종의 전 작품을 대상으로 하여 그의 시에 나타난 생명 이미지를 중심으로 시의 의미와 특징에 관해 살펴보았다. 정현종 시를 연구함에 있어서 생명 이미지의 구현 양상을 중심으로 삼은 까닭은 그의 시가 갖는 지향점 이 생명으로 수렴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시 전반에 걸쳐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다 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정현종은 자유롭고 비범한 상상력을 통해 자신의 시에 지 속적으로 등장하는 생명 이미지를 다양하게 변모시켜 왔다. 연구 결과 논의된 바 를 정리하면 생명 이미지는 다음과 같은 특성을 보이고 있다.

첫 번째 분석 대상인 ‘사물과 교감하는 마음-바람’은 그의 시에서 가장 친근 한 사물로 초기 시부터 중 ‧ 후기 시까지 다양한 느낌으로 사람과 교감하며 변용 된다. 아울러 그의 시에 나오는 사물들은 생명을 지닌 생명체로 존재하는 특징이 있다. 비록 가시적인 형체이든 비가시적인 것이든,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정신이든 물질이든, 사물들은 대지에 뿌리박은 상상하는 모든 것이며 우주에서 우리의 인식 과 인식 그 너머에서 현상되어지는 것까지 두루 포괄한다. 정현종 시를 대표하는 바람은 초기 시에서는 초월, 죽음, 불안, 허무, 공포 등의 의미와 함께 나타났다.

바람은 죽음이나 불안을 상징하면서도 죽음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생의 의지로 해 석 되었고, 그것은 비상하려는 상승의지와 인간의 자유의지로 표상되기도 했다.

시에서 바람이 지닌 자유의지를 뒷받침 해 준 것은 바슐라르의『공기와 꿈』에 실 린“대지의 환희가 풍요와 중량이라 말한다면, 물의 환희는 부드러움과 휴식이며, 불의 환희는 사랑과 욕망이며, 바람의 환희는 자유”이다. 라고 말한 내용이다. 정 현종이 이처럼 바람을 통해 말하려는 것은 궁극적으로 비상하려는 자유의지와 이 카로스의 날개처럼 인간이 품고 있는 자유에의 갈망이다. 이러한 현상은 불안한 실존에서 벗어나 현실을 초월하려는 의지의 소산이기도 하다. 즉 정현종은 바람 이미지를 통해서 실존하는 육체가 갖는 한계와 현실적인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노력으로 자유의지를 간구한 것이다.

그러한 자유의 산물로서 바람 이미지에 변화가 든 건 시집『세상의 나무들』

(1995)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생명 이미지의 구현 양상이 약동적으로 그려지 고 있다. 초기 시의 불안한 실존의 탈출구를 찾던 모습에서 시인은 비상하는 자유 의지와 생명의 설렘을 의욕적으로 표현한다. 바야흐로 시인은 생명의 바람을 불게 하고, 사회가 막힌 곳, 지구 생태계가 죽어가는 곳에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는다.

정현종의 바람 이미지가 구체적인 생명 현상을 노래하는 시기이다. 생명의 원형질 적인 바람은 정현종 시의 새롭게 확장된 인식론적 성취로 귀결되고 있다.

두 번째 분석대상은 정현종 시에 있어 대지적 상상력의 시적 지향성을 함축한

‘자연생명의 숨결: 나무와 꽃’이다. 여기서는 자연생명의 숨결인 나무와 꽃이 어떻게 사물과의 교감을 이루는지, 그리고 대지에 뿌리박은‘나무’와‘꽃’이란 사물들이 지향하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알아보았다. 나무로서의 사람(니진스키) 이 대지에 뿌리박은 나무로 등장하여 대지적 이미지와 교감하는 장면은 생명의 외 경을 노래한다. 정현종은 사물을 의인화 시키고, 또 한편으로는 사람을 사물에 투 사 시켜 생명 이미지의 고뇌를 표현하는데 능숙하다. 그의 시가 나무를 통해 표출 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의 나무는 우주적이다”라고 하는 명제이다. 나무는 땅속 깊숙이 뿌리박고 서서 우주를 향해 열려있다. 우주를 향해 곧게 뻗은 나무는 가지 끝까지 수액을 뿜어 올리는데 이것은 단순한 물의 흐름이 아니라 생명이 상승 운 동하는 역동성을 의미하고, 시인을 “하늘로 높은 데로 오르게 하”는 역할을 한 다. 시인이 바라는 것은 나무와 한 몸이 되는 것이다. 나무로 변신한 시인이 꿈꾸 는 세계는 생명의 영원함을 얻는 것이며, 나무는 모성적 안식의 공간으로 바뀐다.

하나의 나무가 우주적이고, 우주는 영원함을 표상하는 모성적 공간(빅뱅Big Bang, 大爆發을 생각해보면 우주가 모성적인 지 잘 알 수 있다)이라면, 나무가 된 인간도 우주적이다. 나무가 지향하는 것은 생명의 원형이 살아 숨 쉬는 공간으 로 나무는 사물이며, 인간이고, 우주적인 생명체로 변환된다.

꽃은 정현종 시에 있어서 단순히 생명의 전령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대지를

포함한 잠든 생명들에게 숨결을 불어넣어 우주를 생동하게 하는 이미지로 그의 시 적 공간을 확장시켜 왔다. 특히 그의 시에서 꽃이 표상하는 총체를 한마디로 정의 하면“생명 만다라”이다. 만다라는 우주의 진수(眞髓)로서 성스러운 공간을 상징 한다. 시인에게 생명 만다라는 곧 삶의 만다라로 변환되는데 이는 우주의 진수를 보여주는 성스러운 공간이 삶의 현장에서 꽃 피는 자리를 의미한다. 한 꽃송이가 시인에 의해‘생명 만다라’라는 우주공간으로 확장되는 것이다.

대지에 뿌리박은 나무와 꽃의 지향점이 일체의 억압이 없는 생명의 세계라고 판 단했다. 그곳은 다시 말해 존재를 생성시키고 죽음을 소멸시키며 사물과 인간이 한 몸이 되는 공간이다. 그곳은 생명의 원형이 숨 쉬고 인간과 사물이 공생하는 자리이다.

세 번째 분석대상은‘이데올로기에 맞서는 에로스적 희열’이다. 즉 에로스적 희열이 이데올로기에 맞서 억압된 생명의 숨통을 열어주는 방식에 관해서이다. 여 기서는 정현종의 에로스적 상상력이 전위적이거나 퇴폐적 에로티시즘에 함몰되지 않고 생명의 근원에 대한 탐구와 사유 깊은 통찰력, 그리고 형이상학적인 인식을 삶에 용해시켜내는 치열한 시 정신에 있음을 밝혔다. 아울러 그의 시가 여전히 관 능적 탄력을 유지하는 비결이 자유분방하고 섬세한 감수성, 발랄한 상상력과 참신 한 언어로 빚어내는 시 의식에 있음도 확인했다. 예를 들면 “우리의 고향 저 原 始가 보이는 / 걸어다니는 窓인 저 살들의 번쩍임”에서 관능적 이미지는 인간의 내면, 원시의 고향을 들여다 볼 수 있는“창”으로 비약한다. 창은 세상을 비추는 사물이며 세계를 인식하는 투명한 문이다. 시인이 여자의 이쁜 다리를“걸어 다니 는 窓”으로 묘사한 것은, 그 다리를 통해서 한 꽃송이가 태어남은 물론 관능 속 에서 원초적 생명력을 감지했기 때문이다. 몸, 생살의 관능이 원시적 생명으로 거 듭날 수 있는 점은, 시인에게 몸은 원초적인 생명을 태어나게 하는 거점으로 작용 하기 때문이다. 즉 그는 몸을 관습이나 제도 폭력,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원초적 원시의 고향을 상징하는 생명으로 보고 있었다. 그에게 성적인 충동 을 불러일으킨 상상이 시 창작의 열정으로 승화 될 수 있었던 비결은 관능이 욕망

이 아니라 생명의 원천, 원시의 고향을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관능적 자 극, 관능적 쾌락이 생명의“소용돌이”속에 이데올로기에 맞서는 에로스적 희열로 우리의 숨통을 열어주는 것은 제도에 억압된 자아를 해방시키고 훼손되지 않은 원 시적 상상력을 불어넣는다는 점에서 그의 중요한 창작 방법임을 알 수 있었다. 또 한 그가 조세핀이 신었던 스타킹이란 사물을 보곤 “섹시했겠네”라고 독자를 에 로스적인 상상력을 갖게 한 후, 순간 “시간이 섹시하게 느껴지더군.” 등과 같이 짧은 시문으로 드라마틱한 전환을 이루어 우리의 의식을 전복시키는 창작방법 역 시 그가 관능적 상상력에서 즐겨 사용하는 것임을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정 현종의 시에 있어 에로스적 희열은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되는 데 첫째는 성적 교 감을 나타내는 사물을 등장시켜 에로스적 상상력을 갖게 한 후 드라마틱한 반전을 통하여 억압된 대상을 해방시키는 방식이고, 둘째는「한 숟가락 흙 속에」처럼 흙 을 포함한, 자연 물질의 속성을 들춰내어 육체에 전해지는 쾌감(쾌락)을 감각적인 에로스적 희열로 받아내는 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 시적 대응은 관능적 상상력으 로 억압된 생명의 자리를 찾게 하는 경계의 무화 작업에 효과적이다. 그의 시가 성취한 것들 중에서 에로스적 희열이 이데올로기로 억압된 숨통을 열어주고 생명 에 대한 의식을 고취시킨 점은 우리 시의 지형을 넓게 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생명 이미지를 구현하는 의미로서‘바람’과‘나무’와‘꽃’이 생명의 원 형질로서 한 중심축을 이루고 있다면, 에로스적 희열을 추구하는 관능 이미지 또 한 억압된 생명의 경계를 허무는 다른 한 축을 형성하는 중심이라 할 수 있겠다.

네 번째 분석대상은‘시적참여로서 해학적 유희’로 발전하는 양상이었다. 생명 을 억압하는 제도, 관습, 사람, 이데올로기 등을 희화하여 대상을 초라하게 하거나 무시하는 방향으로 탈 경계를 만드는 데 천착하여 시를 쓴 정현종은‘바람’,

‘공기’,‘나무’,‘꽃’등과 같은 사물을 중심으로 생명을 추구하여 왔다. 그가 시에서 생명 이미지를 구현하는 양상을 넓게 보면, 관능적 상상력의 범주에 해학 가득한 “웃음의 시학”이 자리 잡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관능적 상상력이란 꼭 성적인 이미지만을 추구하지 않는다. 관능, 에로스, 에로틱, 에로티시즘은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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