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컴퓨터 그래픽의 두 가지 특징을 ‘텍스트성’과 ‘알고리듬에 의한 축소와 왜곡’으로 상정하고 논의를 전개하였다. 왜 인간은 ‘상’을 통해 세계를 경 험하고 구성하는가, 인간에게 이미지란 무엇인가 등의 문제는, 디지털 시대에 들 어 기술과의 보다 깊은 연관 속에서 그 답을 찾아 나가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이 를 위해 키틀러의 컴퓨터 그래픽에 대한 논의를 기반으로 하여 위의 두 가지 특 징을 상정한 것이다. 또한 이는 기술매체의 특성이 이미지 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라는 문제를 중시하는 키틀러의 이미지론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컴퓨터 그래픽을 문자매체의 성격을 갖는 것으로 분석 하는 키틀러의 관점이 그 자체로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소쉬 르의 언어이론 이후 기표와 기의 관계에 일종의 전도가 일어나면서 문자 기호는
‘기의 없는 기표’로 여겨지며 독자적 의미화 능력을 획득하게 된다. 따라서 기의와 주체조차도 기표의 연쇄가 낳는 산물이자 효과가 된다. 그리고 키틀러의 문자 매 체에 대한 이해 역시 이러한 구조주의, 혹은 후기구조주의적인 언어관과 맥을 같 이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키틀러만의 특징이 있다면 그것은 문자 매체 를 시간저장 기술로 본다는 점이고 이렇게 기록된 정보는 교체와 대체, 반복이 가능해지는 구조적 유연함을 확보한다는 장점이 생긴다. 그리고 이는 디지털 이 진법의 언어 매트릭스 위에 픽셀로 구성되는 컴퓨터 그래픽의 특징으로 곧장 반 영된다. 따라서 컴퓨터 그래픽은 지금까지 존재했던 이미지 유형 중 가장 역동적 인 체계가 될 수 있으며 동시에 새로운 시간저장 기술로 볼 수 있게 된다.
또한 컴퓨터 그래픽만의 새로운 특징으로는 이미 상형문자로부터 시작되고
있는 ‘그래픽성’ 혹은 ‘근원적 이미지성’이 감각적으로 드러나지는 않는, 그러나 분 명히 존재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 역시 기술의 성과로 볼 수 있 는데 컴퓨터 그래픽은 가장 사실적인 이미지로 경험되지만, 그 본질은 텍스트다.
그러나 상형문자, 다이어그램, 지도처럼 정보기호 자체가 이미지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텍스트와 보이는 이미지라는 이중의 구조 속에서 텍스트와 이미지의 새로운 관계를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한편, 컴퓨터 그래픽의 사실적 표현을 가능하게 하는 다양한 기법들은 이를 통해 실재보다 더 실재 같은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것은 결국 인간의 눈을 기만하는 알고리듬의 결과이다. 따라서 우리의 시지각 체험은 그 알 고리듬의 한계 속에 갇히게 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특징은 디지털 기 술과 그 정보가 지닌 통제 가능성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기술은 새로 운 알고리듬을 계속 개발해 내고 그로써 제작되는 이미지는 한없이 실재에 다가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모든 것은 유한하고 통제된 세계만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 이 글의 결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술이 만들어내는 세계상이 문자 그대로의 축소와 왜곡이 아니듯이 디지털 시대의 세계 자체가 침묵의 디스토피아처럼 유한하고 완벽하게 통제된 세 계라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그 세계는, 우리가 매일 경험하고 있듯이 매우 소란 스럽고 정확히 예측도 되지 않는 통제 불가능성 속에서 그 가능성의 영역을 조금 씩 넓혀나가는 영토 싸움 속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시야를 조금만 더 넓혀본다면 컴퓨터 그래픽 알고리듬의 역사는 끊임없는 폐기와 처분의 역사이기도 하다. 우 리는 늘 기술의 의기양양한 진보와 승리의 깃발만을 바라보지만 그 깃발 밑에 놓 여 있는 폐기된 기술의 무덤 역시 매일 그 크기가 더 커지고 있는 상황 아닌가.
따라서 이 글은, 본문에서 미처 다루지 못했던 문제, 즉 디지털적 세계상의 시대에 이미지를 수용하고 소비하는 주체, 즉 인간의 자리는 어디인가 하는 문제 를 제기하는 것으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키틀러는 기술발전의 자율성, 나아가 스 스로 생각하는 기계 주체의 등장을 강조하는 이론가이기에, 그의 이론에서 인간 의 자리를 찾는다는 것은 모순된 생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키틀러의 매체와 인
간에 대한 관점은 그리 간단치가 않다.
그는 디지털 시대의 수동적인 인간 지각의 ‘표면 효과’를 형성하는 기제로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대립 항으로 설정한다. 또한 우리가 컴퓨터를 통제, 관 리한다는 믿음을 갖는 것은 사용자 친화적인 소프트웨어 때문이라고 말하며, ‘윈 도우즈’와 같은 오퍼레이팅 시스템은 불투명한, 일방적 거울로 작용할 뿐이라 말 한다. 그리고 특정 하드웨어가 개별 컴퓨터에 깔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마이크 로소프트사와 인텔의 동맹으로 ‘보호 모드’를 설정하는 것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며, 모든 유저들을 민주주의적으로 연결하는 것으로 보이는 디지털 시대의 커뮤니케 이션 방식에 대한 구조적 비판을 전개한다. 따라서 그의 ‘디지털 매체론’에서는 인 간이 온전히 배제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역설적으로 비인간적인 미디어 체 계가 우리 사회구조 속에 어떻게 개입하는지 숙고해야 하며 이를 운용하는 인간 과 사회의 능력에 대한 기대를 포기할 수 없다는 시각이 분명히 보인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이를 보다 명확히 확인하기 위해서는 키틀러의 ‘디지털 매체론’ 전반에 대한 연구가 필요한 상황이며 이것이 본 연구자의 다음 연구 주제가 될 것이다. 또한 컴퓨터 그래픽에 관한 논의가, 키틀러의 ‘디지털 매체론’의 방향과 의미를 미리 가 늠할 수 있는 근거라는 주장으로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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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문투고일: 2017년 4월 15일 / 심사기간: 2017년 4월 16일-5월 15일 / 최종게재확정일:
2017년 5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