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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시성과 진리의 문제

1. 진술 진리의 문제

진리가 어떻게 가능한가? 여기에서 만약 진리가 ‘인식과 그 대상의 일치’라고 한다면, 객관 자체와 우리의 주관적인 표상이 일치하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우선 먼저 우리는 객관 그 자체를 인식해야만 할 것이다. 하지만 대상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주관에 의존하여 주관적 표상을 수용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면 객관 자 체에 대한 어떠한 인식도 불가능할 것이다. 진리를 주관적인 표상, 즉 인식 판단 과 인식되는 객관의 일치라고 보는 경우 이것은 단지 주관적인 표상들 사이의 일치에 불과하게 되고, 따라서 주관적 표상과 객관적 대상 사이의 일치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 된다. 물론 근대철학 이후 이 주관적 표상과 객관적 대상 사이가 어떻게 가능한가에 대한 문제가 다양하게 진행되어 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하 이데거의 지적에 따르면 우리는 이러한 전통적인 진리개념이 진리의 본질에 대 해서 이야기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진리의 개념 자체에 사로잡혀 그 본질에 대해 서 무엇에 대해서 묻고 있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하이데거는 전통 형이상학에서 진리개념은 판단과 대상 사이의 일치에 있어서 그것의 가능성의 근거를 근원적으로 묻는 데에 실패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하이데거는 우선 ‘인식과 그 대상 사이의 일치’라 는 전통적인 진리개념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묻는다. 그는 이러한 이유에서 존재와 시간 에서 판단과 대상 사이의 일치라는 것이 근본적으로 무 엇을 의미하고 그것이 어떻게 해서 가능한가에 대해서 논의를 전개한다. 하이데 거는 우리가 대상을 인식하고 대상과의 일치를 논하기 이전에 존재자가 스스로 은폐성으로부터 끌어내어 비은폐성으로서 자신을 이미 내보이고 있음으로서 진 리를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비은폐성으로서 열려있음, 개시되어 있음, 내보이고 있음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여기에서 하이데거는 전통적 진리관을 비판하기 위해서 근원적인 차원에서 진리라는 말을 그것의 시원적 원어인 ‘알레테이아’에 맞추어 사유한다.

그는 알레테이아를 종래의 ‘진리’라는 개념으로 해석하지 않고 비은폐성 (Unverborgenheit)이라고 번역하는데, 그 이유는 진리를 진술의 ‘참’으로 간주하 는 통속적인 입장을 넘어서서 존재자가 탈은폐되어 드러나 있다는 개념 이전의 상태를 다시 돌아보게 만들기 위해서이다.42) 진리는 존재자를 존재하는 그 존재 자로서 존재하게 함인데, 이것은 진리가 열려 있는 장과 그것의 열려 있음에 대 해 관여함을 말한다. 진리는 각각의 존재자가 이미 개방된 그 안에 들어서 있고 또한 각각의 존재자는 개방된 장의 열려 있음에 관계하게 한다.43)

하이데거는 여기에서 전통적인 진술 진리(Aussagewahrheit)에서의 진술에 앞 서 그 진술에서 진술되어지는 존재자가 선행적으로 열어 밝혀져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존재자가 자신을 존재하는 것으로 드러내 보이지 않고서 진술은 불가능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하나의 진술이 참이라고 할 수 있기 위해서는 존 재자가 이미 드러나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존재자가 드러내는 것을 진술하며 말하는 현존재가 드러나 있는 존재자에 대해서 발견하면서 존재하기 때문에 진 술에서 의미된 존재자가 동일한 것으로서 비은폐되어 제시될 수 있는 것이다. 따 라서 우리가 어떤 존재자를 인식한다고 할 때, 인식과 그 대상 사이의 일치라는 통념을 넘어서 더 근본적인 것으로 나아가야할 것이다.

존재는 언제나 존재자에 있어서 스스로를 나타낸다. 우리는 이러한 존재자의 존재를 존재에 대한 이해 속에서 만나게 된다. 현존재의 존재이해는 존재로 하여 금 자신을 드러내거나 우리로 하여금 존재를 열어밝히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존 재자에 대한 인식은 존재에 대한 이해인 열어 밝혀져 있음 안에서 가능하게 된 다. 하이데거는 어떤 것이 현존재에 의해서 열어밝혀져 있음을 진리라고 부르고 있다. 열어밝혀져 있음에서 존재할 때에만, 즉 ‘진리’가 존재할 때에만 ‘존재자는 존재한다.’ 여기에서는 이러한 열어밝혀져 있음으로서의 진리 문제를 통해서 세 계가 어떻게 현존재에게 알려지는가를 살펴볼 것이다. 이를 위해서 하이데거가 인식이 주체가 어떤 것에 대해서 표상을 갖는다는 의미를 넘어서 진리의 문제에

42) 김종욱, 하이데거와 형이상학 그리고 불교 , 철학과 현실사, 2003, 55쪽 참고.

43) 마르틴 하이데거, 「진리의 본질에 관하여」, 이정표2 , 이선일 옮김, 2005, 107쪽 참고.

대해서 어떻게 접근하고 있는가를 살펴보고 하이데거적인 의미에서의 인식함을 고찰함으로써, 즉 현존재와 존재자 사이의 관계 설정을 살펴봄으로써 세계에 대 한 인식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것이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 인식론의 한 계를 넘어서는 존재론적 인식함이 갖는 특징들을 살펴볼 것이다.

1.1 존재론적 진리의 확증

진술에서 언표 되어진 것과 대상과의 일치에 진리가 놓여있다고 말할 때, 즉 진리의 본래적 장소가 명제 또는 판단이라고 말할 때, ‘일치’와 ‘진리’가 제시하는 바가 과연 무엇인지를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하이데거는 이를 위해서 아리스토 텔레스의 다음과 같은 언급에 주목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영혼의 체험, 즉 노에마타(표상)는 사물에의 일치라고 말한 다. 이 발언이 결코 진리에 대한 명시적인 본질 정의로서 제시된 것이 아닌데도 그 후에 진리의 본질을 ‘지성과 사물의 일치’라고 정식화하여 표현하는 계기가 되었다.44)

하이데거는 서양 철학사를 주도해 왔던 진리의 개념인 사유와 존재의 ‘일치’(맞 아떨어짐, Übereinstimmung)의 창시자를 아리스토텔레스로 간주하는 것은 하나 의 오인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그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진술명제 (Aussagesatz)를 말함(Reden)으로 규정함에 주목한다. 즉 “제시하며 보이게 해주 는 것으로서의 진술만이 참이거나 거짓임이 나타날 수 있는 말함이다.”45) 그런데 여기에서 ‘제시하며 보이게 해주는 진술’로부터 일치가 진리라는 말을 도대체 어 떻게 이끌어낼 수 있는가?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떤 것을 제시하는 말로서의 진술은 참이거나 혹은 거짓일 수 있는 말의 특정 양식이라고 했다. 따라서 참이거나 거짓인 하나의 문장이 참 이거나 거짓일 수 있는 명제로써 규정될 수 있는 것은 우선 그것이 존재자를 ‘제

44) 존재와 시간 , 214쪽.

45) 논리학 , 136쪽.

시하며 보이게 해주는 말함’이라는 로고스의 방식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그

상한 것일지라도 표상된 것으로 실제의 사물 자체가 의미있게 드러나는 한에서 참이다. 다시 말해서 우선적으로 바로 그 존재자가 그 스스로 참된 것으로서 입 증될 때 참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컵이 찌그러져 사용할 수 없으니 버려라’고 말 을 한다면, 그러한 표상이 내 관념 속에 자리잡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면 내 관념 속에 있는 찌그러진 컵을 버릴 것인가? 그럴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 로 ‘컵이 찌그러져있다’는 진술에서 언급되어지고 있는 것은 그 존재자 자체라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진술이 참으로 입증되는 것은 오로지 그 존 재자 스스로 발견되고 제시되어 있는 경우일 것이다. 하이데거는 다음과 같이 언 급하고 있다.

그러한 발견되어 있음은 발언된 것, 즉 존재자 자체 그 스스로를 동일한 것으 로 내보이는 데에서 확증된다. 확증은 존재자가 동일성 속에서 스스로 내보임을 의미한다. 확증은 존재자가 스스로 내보임에 근거해서 수행된다.50)

진술이 참이 될 수 있는 것은 진술 안에서 제시되는 존재자 자체에 관계할 때 가 될 것이다. 그리고 하나의 진술이 참인 것으로 입증될 수 있는 가능성은 자신 이 거기에 발견되어져 있고, 진술에서 존재자가 발견되어 있음이 입증되는 것은 다시 진술에서 발견되어진 존재자가 자신을 동일한 것으로 내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확증된다.

1.2 진리의 가능조건 : 종합과 분리

하이데거에게 있어서 로고스는 어떤 것을 제시하면서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어떤 것 자체를 그 자체에서부터 분명히 하고 그 자체에로 접근 가능하 게 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또한 이것은 그 자체의 존재가 자신을 드러내어 보이 게도 하지만 또한 마치 ‘…처럼’ 그렇게 보이는 다른 어떤 것을 제시하여 자신을 드러내어 보이지 않을 가능성도 갖는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으로부터 보이게 하 는 것은 진술에서 참이나 거짓으로 나타날 수 있다. 무엇이 이처럼 로고스로서의

50) 존재와 시간 , 294쪽.

로고스에게 참 또는 거짓이기 위한 자격을 부여하는가?

오직 아포판시스로서의 로고스의 기능이 어떤 것을 제시하며 보이게 해줌에 있기에, 로고스가 신테시스라는 구조형태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신테 시스가 말하는 것은 표상을 종합함과 연결함도, 심리적인 발생사건을 취급함도

오직 아포판시스로서의 로고스의 기능이 어떤 것을 제시하며 보이게 해줌에 있기에, 로고스가 신테시스라는 구조형태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신테 시스가 말하는 것은 표상을 종합함과 연결함도, 심리적인 발생사건을 취급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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