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갈등 이전상황(일제-1999년)
(가) 군사시설 보호구역 기간(일제-1992년)
남제주군 대정읍 상모리 송악산 일대는 원래 주민들의 땅이었으나, 일제시대 대륙 침략을 위한 교두보인 군비행장으로 만들면서 강제로 빼앗겼고, 광복 이후에는 미군정에 의해 또다 시 강점된, 지역주민의 한과 설움이 사무친 곳이었다. 6.25 전쟁 중에는 육군 1훈련소와 공군 비행장으로 사용됐고, 군 비행장 기능이 사라진 이후에도 부지 62만평은 국방부 소유 땅으로 관리되면서 일부가 인근 주민들에게 임대돼 경작지로 활용됐을 뿐이다. 이 때문에 주민들은 군 비행장 터를 환원 또는 불하받고, 송악산 지역을 관광지로 개발해줄 것을 요구해왔다.
이에 따라 제주도는 1985년 제주도종합개발계획상 ‘종합휴양관광지구’로 선정해 ‘송악산 관 광지구 개발계획’을 확정 고시했다. 이런 지역여론은 또 1987년 11월 27일 노태우 당시 민정
81) 송재호, “송악산 관광지 개발의 전개과정과 갈등적 논제”,『제28주년 세계 환경의 날 기 념 행사 자료집』,제주환경운동연합, 2000. 6. 5. pp.10∼14 ; 정상배, “송악산 관광지 개 발과 관련된 논란과 그 교훈”,『활동백서 1991-2001』, 제주환경운동연합, 2002. 3. 30.
pp.213-215. ; 김진호, 김미연, 전게논문, pp.8∼9등을 참조해 논자 추가 재구성.
당 대통령 후보가 서귀포에서 열린 선거유세를 통해 62만평 중 군에서 활용하지 않는 48만 평을 원 소유자와 기존 임대자에게 불하하겠다는 공약으로 이어져 주민들을 설레게 했다. 그 러나 국방부는 군 전력 증강계획상 송악산지구 관광개발계획은 불가하다며 계획변경을 제주 도에 요구한데 이어, 노태우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인 1987년 12월 28일 송악산 일대 를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묶어 버렸다. 심지어 군 전력 증강을 이유로 기존 송악산 군비행장 부지 62만평의 3배가 넘는 모슬포 일대 200만평을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지정함으로서, 제주 도의 개발계획은 사실상 백지화됐다. 그런데도 국방부는 결정을 내린 지 4개월이 지난 1988 년 5월 6일에야 제주도에 통보했고, 제주도는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질까 3개월 동안 쉬쉬했 다. 결국 제주신문의 보도를 통해서야 뒤늦게 사실을 알게 된 제주도민들은 정부를 상대로 격렬한 저항운동을 전개해 이를 저지하게 된다.(이른바 송악산 군사기지 철폐투쟁)
(나) 개발계획의 구상기(1993년-1994년)
지역 주민들의 관광개발의 염원으로 끈질긴 정부건의 결과로 결국 1993년 1월 1일 송악산 군사보호구역 중 국유지 69만평을 제외한 사유지와 군유지 132만 4천평이 군사보호구역에서 해제된다. 이에 앞서 1992년 12월 마련된 제주도종합개발계획 보고서에 송악산 일대를 ‘역사 유적 관광지 및 해상관광지’로 개발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자, 지역주민들은 자체적으로 작성 한 의견서를 93년 2월 제주도에 제출하기도 한다. 의견서를 통해 조합원들은 이 일대의 군사 전적지를 보존하고 향토음식점과 숙박시설, 가파도와 마라도를 연계한 유람선 관광 및 관광 낚시업 활성화, 사계-상모리 사이 해안도로변 사진촬영 시설 등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개발 방법으로는 민자유치 또는 농수축협 등 지역주민들을 대표할 수 있는 기관에 의한 투자개발 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같은 해 5월에는 ‘대정읍 개발협회’가 남제주군 의회 의원을 포함한 자생단체장 등이 참석 한 연석회의를 개최하고 개발의 전제조건으로 ‘수려한 자연환경의 보존, 개발에 따른 역기능 최소화, 지역주민 참여의 활성화’를 요구한다. 개발의 기본방향으로는 ‘인접지역에서 생산된 농수산물 직판체계의 확립, 수입개방으로 1차 산업에서 떠나게 되는 인구의 2,3차 산업으로 의 흡수’등이 제시되고 있다. 한편으로는 송악산 주변 토지의 상당부분이 외지인 소유임과 관련해, ‘외지인 소유와 지역주민 소유를 구분해 지역주민 소유토지를 소규모 자본참여에 의 해 우선 개발 해 줄 것’등도 주장했다.
이어 7월에는 송악산 국유지 불하 준비위원회가 대정읍 개발협회, 대정 청년회의소, 대정 읍 연합청년회 등 대정 지역 관내 20개 사회단체의 참여 속에 발족된다. 또 송악산 공동목장
조합원 260명은 현재 보존지역으로 지정돼 있는 송악공동목장 지역을 개발지구로 변경해 줄 것도 함께 건의했다.
제주도가 1994년 6월 2일 제주도 종합개발계획에서 송악산을 관광지구로 지정하자, 동년 8 월 ‘대정 농민회’와 ‘특별법 철폐 및 민주화실천 범도민회’는 ‘역사관광지와 해상관광지의 복 합기능으로서의 개발계획, 주요지구의 절대 및 상대보전지구 설정’ 등에 대해서는 긍정적으 로 평가한다. 반면 ‘지역주민 소유토지 우선 개발 주장에도 불구하고 송악산 관광지구의 노 른자위인 숙박 및 상업시설지구가 외지인들이 독점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지역에 설정돼 있 는 점, 대규모 자본을 요하는 시설위주의 계획으로 지역 영세자본의 참여를 어렵게 한 점, 개발 주체의 모호성’ 등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이와 같은 평가 속에 ‘지역주민 다 수가 공감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발계획을 재조정하고, 영세지역자본이 참여할 수 있는 구체 적 프로그램을 제시하며, 개발주체와 개발방식 등을 명시할 것’ 등을 요구하고 있다.
(다) 개발사업 예정자 지정기(1995년-1999년)
1995년 11월 제주도의 관광단지 및 지구 개발사업예정자 공모결과, 송악산 지구에는 도외 의 (주)대명레저와 E랜드그룹 계열 한세개발, 제주와 대만합작기업인 (주)송악산 개발, 도내 업체인 (주)세진산업개발 등 4개 업체가 참여, 경합 끝에 대명레저가 사업예정자로 선정됐다.
같은 해 12월 제주도가 제주대 기초과학연구소에 용역 의뢰한 ‘기생화산과 청정해역을 보호 하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개발방안’이 발표됐는데, 여기에서는 ‘송악산과 거문오름, 체오름, 산방산은 학술적 가치가 큰 지역’이라고 밝히고 있다.
1996년 2월 사업예정자인 대명레저에서 개발을 위한 조성계획으로 주민설명회를 열었다. 3 월에는 남제주군이 경영수익사업 관계회의에서 최남단인 용머리해안과 형제섬, 가파도, 마라 도, 송악산을 해상 공원으로 지정, 운영키로 결정했다. 9월에 송악산 개발추진협의회와 제주 도 및 남제주군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송악산 개발사업 방향에 대한 비공개 간담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는 개발사업의 중요지구인 송악목장 7만 3천평에 대해 대명레저가 요구 하는 10만원 선에 매입 가능토록 하고, 취락지구인 상모리 산이수동에 대해서는 지역주민들 을 사업주체로 참여시키는 방안 등에 대해 논의했다. 결국 관광지구내 토지 보상과 관련된 합의가 도출되지 못하면서 사업승인신청기간 만료일까지 대명레저는 승인신청에 필요한 토 지 2/3이상 매입에 실패해 사업승인이 11월 취소된다.
1996년 12월 남제주군은 주민불편 해소등의 이유로 군유지 87필지, 7만 7천여 평을 주민과 관광지구 개발사업자에게 매각키로 결정한다. 97년 2월에는 송악목장조합도 정기총회를 열고
7만 4천여 평의 목장부지를 평당 9만원에 매각키로 결정한다. 97년 3월 대명레저의 사업승인 취소에 따라 그 동안 사업의사를 밝혀 온 세진개발이 송악목장조합의 목장부지 7만 4천 평 을 매입키로 하고 매매계약서를 작성한다. 지지 부진하던 개발사업 추진이 다시 활발해진다.
한편 관광지구에 포함된 상모리 산이수동 주민들은 3월 관광지구에서 취락지를 제외시켜줄 것을 제주도와 도의회, 남제주군, 남제주군 의회에 건의서를 제출한다.
1997년 6월 세진개발은 개발사업자 지정을 전제로 지구내 51만평을 1.2 차로 나누는 2단계 개발계획을 발표하고, 2차 지구의 경우 토지매입이 어렵다면 토지주들의 공동참여 방식도 수 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다. 같은 달 세진개발은 갑을개발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사업시행 예정자 지정을 신청한다.
이에 발맞춰 송악산 관광개발 추진위원회도 대정읍 사무소에서 기관단체장 등 19명이 참 석한 간담회를 열고, 세진개발이 제시한 단계별 개발계획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아 간다. 이와 함께 관광지구내 군유지에 환매특약을 체결하는 한편, 공증인 각서를 작성해 2단 계 개발이 지연될 경우 행정절차를 중지하는 조건을 부가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이어 98년 2 월에는 송악목장조합이 세진개발의 요청에 의해 목장부지를 평당 9만원에서 8만원으로 내려 매각하는데 동의한다. 98년 10월 마침내 세진개발, 갑을개발 컨소시엄이 송악산 관광지구 개 발사업 예정자로 지정된다.
송악산 관광개발계획이 일사천리로 추진되던 99년 1월 상모리 알뜨르 비행장 앞 해안가에 서 ‘새 발자국’으로 추정되는 화석이 발견되면서 송악산은 다시 한 번 학계의 주목을 받는다.
1999년 1월 IMF 영향으로 컨소시엄을 구성했던 갑을개발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송악 산 관광개발은 다시 불투명해진다. 투자선을 해외로 돌린 세진개발은 같은 해 3월 중앙아시 아 키르키즈스탄에 소재한 (주)센트럴아시아와 함께 공동출자법인인 남제주 리조트 개발을 설립하고, 사업시행 예정자를 이 법인으로 변경한다. 99년 4월 남제주군과 남제주 리조트개 발, 프랑스의 아코르 그룹간에 송악산 관광지구 투자협정을 체결하는 한편, 같은 달 이탈리 아의 사토리 그룹과도 투자협정서에 서명한다. 외자유치를 통한 개발계획 추진준비가 외관상
1999년 1월 IMF 영향으로 컨소시엄을 구성했던 갑을개발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송악 산 관광개발은 다시 불투명해진다. 투자선을 해외로 돌린 세진개발은 같은 해 3월 중앙아시 아 키르키즈스탄에 소재한 (주)센트럴아시아와 함께 공동출자법인인 남제주 리조트 개발을 설립하고, 사업시행 예정자를 이 법인으로 변경한다. 99년 4월 남제주군과 남제주 리조트개 발, 프랑스의 아코르 그룹간에 송악산 관광지구 투자협정을 체결하는 한편, 같은 달 이탈리 아의 사토리 그룹과도 투자협정서에 서명한다. 외자유치를 통한 개발계획 추진준비가 외관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