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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외로울 때, 제일 따뜻한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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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년이 떨어진 달님을 주웠어요. 소년은 마음을 다해 달님을 돌봤어요. 달 님을 사랑으로 돌보며 하루하루 자라나고 다시 밝아지는 모습을 지켜봤어요. 달 님이 온 곳을 기억해내길 기다렸어요.

달님이 사라진 도시는 혼란스러워졌어요.

하지만 외로운 소년과 달님, 둘만의 비밀은 서로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었어 요.

The Moon Forgets

1999.10.01

요양하던 시기에 매주 월, 수, 금요일 저녁마다 동네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단

전호흡을 수련했다. 그게 내 유일한 ‘실외 활동’이었다.

학교를 사방으로 둘러싼 아파트가 시야를 가렸다. 여름 말고 다른 계절에는 운

동장에 사람이 거의 없었다. 밤하늘에 밝고 동그란 달만이 나와 함께 했다.

1999년이었다. 나는 여전히 내 몸이 무서웠다. 단전호흡을 연습하는 밤에는

자주 달을 올려다봤다. 마음속에 담아둔 많은 이야기를 모두 달에게 털어놓았다.

하늘이 맑은 날은 달이 밝게 빛났고 구름 낀 날은 달이 숨었다 나타났다 했다.

어떤 날은 노랗고, 어떤 날은 잿빛이고….

이런 날들이 5년 동안 지속됐다.

나는 달에게 이야기 하나 빚진 걸 떠올렸다.

책 세 권을 출간하고 나자 “이야, 처음엔 쓸쓸한 여자아이, 그다음엔 쓸쓸한 중

년 남자랑 물고기, 이제는 왼쪽으로 갔다 오른쪽으로 갔다 하는 외로운 두 사람

이라니! 정말 너무한 거 아니냐? 이젠 밝은 내용 좀 써봐!”라며 친구들이 입을

모아 말했다.

나 자신에게도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그림을 그릴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전호흡을 연습하던 어느 날 밤, 달을 올려다보다가 이 이야기를 생각해냈다.

만약 어느 날 달이 지상으로 내려와서 소년을 만난다면? 그리고 달이 고무공

처럼 소년의 주변을 굴러왔다 굴러갔다 한다면 재미있지 않을까?

달과 소년이 서로 우정을 나누는 이야기를 그리기로 했다.

하지만 그때 당시 내게 두 가지 일이 일어나면서 나도 모르게 또 이 이야기를

점점 복잡하게 만들어버렸다.

본디 죽음은 조금씩 천천히 찾아오는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래서 인생을 천천

히 계획하며 살아갈 시간이 늘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생은 마치 전등

스위치 같았다. 그저 가볍게 한 번 눌렀을 뿐인데, 그 찰나 어둠 속에 묻혀버릴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예전에 일하던 광고회사 동료가 어느 날 오후 쉬는 시간에 회사 옥상에서 조

용히 뛰어내렸다. 아내와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딸을 남겨두고.

한 친구의 남편은 베이징에 출장 갔다가 갑자기 뇌출혈로 유명을 달리했다. 한

마디 말도 남기지 못한 채, 두 아들을 남기고.

나는 여러 사람을 통해서 그들의 불행한 소식을 전해 들었지만 전화해 위로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특히 어린아이들에게

말이다. 당신이라면 아버지를 잃은 어린아이를 어떻게 위로할 수 있겠는가?

이 두 사건이 준 큰 충격으로 진행 중이던 작업방식이 나도 모르게 바뀌었다.

그래서 <달님은 잊었어요>는 완전히 달라져 버렸다.

이 책은 한 소년이 용감하게 어려움을 이겨내는 이야기로 채워졌고, 더욱 마음

을 울리는 책이 되었다.

한 중년 남성이 부주의로 고층빌딩에서 추락하는 그 순간 천지가 뒤집히고 세

상이 고장 났다. 그리고 달님이 사라졌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여름 바람 살랑살랑 흔적은 찰나에 사라지고 기억을 잊어버렸어

남은 건 미미하게 움직이는 희미한 나무 그늘…

아빠가 없는 소년은 숲속 가까운 연못에서 작은 공을 주웠다.

소년은 공을 집으로 데려와서 반려동물처럼 소중히 보살폈다. 공에게 이야기도

해주고 노래도 불러줬다.

그들은 우연히 만났죠 빛을 잃은 소년을 위해

보드랍고 아름다운 빛을 가져왔어요

타이베이에서 대규모 정전사태가 났던 적이 있다. 도시 전체가 암흑 속에 빠졌

다. 나는 그 경험을 이 이야기 속에 그려 넣었다. 정전이 있던 날 밤은 소년과

온 세상에 불빛이 사라지던 날 밤 그들은 옥상에 올라가

어두운 세상의 이벤트를 조용히 감상했죠

<달님은 잊었어요> 후반부에는 사람들이 소년을 이해해주지 않고 점점 친구들

이 떠나가는 장면, 선생님이 소년에게 더는 달님을 학교에 데려오지 말라고 하는

장면, 엄마와 아빠의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는 장면을 그렸다. <미소 짓는 물고기>

에서 주인공이 물고기를 바다로 돌려보내고 나자 마음이 편안해졌듯이, <달님은

잊었어요> 이야기 속 소년 또한 달님을 하늘로 돌려보내는 결정을 한다. 이것은

소년이 생명의 출구를 찾는 방식이다.

나는 소년에게 검은색 ‘밤의 옷’을 입혔다. 소년은 달님에게 익숙한 정경을 보

여주고 기억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도왔다. 사람들은 정말 달님이 돌아온 줄 알았

다.

하늘에 달님이 돌아왔다. 소년은 여전히 아쉬워하며 달님을 위해 우산을 펼쳤

다.

비바람이 몰아쳤고 소년은 슬퍼하며 달님에게 물었죠. “여전히 우산 속 빗소리 가 듣고 싶니?”

달님은 고개를 끄덕끄덕

소년은 달님에게 우산을 씌워주고

비는 통통통 통통통 경쾌한 멜로디를 만들었어요

<달님은 잊었어요>는 921 대지진, 911 테러 사건 발발로 많은 이들이 상처를

받았던 시기에 출간됐다. 이 작품은 뜻밖에 많은 사람의 마음과 영혼을 치료했다.

많은 독자가 인터넷에서 ‘내가 읽은 지미’를 공유하면서 다들 <달님은 잊었어요>

가 제일 좋았다고 평가했다. 특히 청소년들이 그렇게 말했다. <달님은 잊었어요>

가 많은 청소년의 외로운 마음을 건드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에 올라온 이 책에 대한 수많은 감상을 보자 큰 감동이 밀려왔다. <왼쪽

으로 가는 여자, 오른쪽으로 가는 남자>처럼 감상이 비슷하지 않고 사람마다 각

양각색이었다.

반면 생각 외로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이는 독자들도 적지 않았다. 그

이유는 어쩌면 내가 처음부터 이 이야기를 명확하게 말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달님은 잊었어요>의 그림과 글은 겹친 듯 안 겹친 듯 모호한 평행선

처럼 어떤 때는 긴밀하게 이어진 것 같다가도 또 어떤 때는 그 둘 사이의 결합

이 느슨한 것 같기도 했다. 내 그림책은 늘 이러한 경향을 보였다. 특히 <달님은

잊었어요>에서는 그림과 글이 각자 독립적인 생명을 갖고, 단순히 그림에 글을

덧붙인 형식은 아니었다.

이 책은 특히 구성에 많은 신경을 썼다. 앞뒤 페이지의 대조와 호응, 첫 페이

지와 마지막 페이지, 두 번째 페이지와 뒤에서 두 번째 페이지… 이들은 모두 관

련돼있다. 이런 구성이 매우 뚜렷한 건 아니지만, 독자들은 은연중에 느낄 수 있

을 것이다. 소년과 달님 이야기 외에 한 남성이 건물에서 떨어져 뇌진탕에 걸리

는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그는 유년의 공백기로 돌아간다. 그와 달님은 뭔가

잊어버린 듯하다. 다시 조금씩 잊어버린 기억을 회복하는데…. 여러분은 물론 돌

아가신 아버지가 달님이 되어 하늘에서 내려와 아이의 다정한 친구가 됐다고 해

석할 수 있다.

소년과 달님 외에 왜 스토리 구조를 하나 더 추가했는지에 대해 말하자면, 그

것은 줄곧 말하지 못한 위로와 제때 위로하지 못한 사람에 대한 내 마음속 이야

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내 작품들은 ‘타이완답지 못하다’는 비판을 많이 받았다. <미소 짓는 물고기>

의 주인공이 외국인 같다거나 <왼쪽으로 가는 여자, 오른쪽으로 가는 남자>에

나오는 장면이 다른 어느 도시에서든 일어날 수 있을 것 같다는 식으로 말이다.

그래서 어쩌면 욱한 마음에 일부러 <달님은 잊었어요> 속에 불법 건축물을 많이

그렸는지도 모르겠다(정전되던 날 저녁 장면). 관두대교도 그려 넣었다.

이 책에는 일상 속 많은 감상을 담았고 생활 속에서 소재를 채집했다. 환경보

호 문제, 아이들이 새로운 것만 추구하는 문제, 언론 매체의 역할, 한 부모 가정

등등이 그렇다.

창작 과정은 순조로웠고 머뭇거린 순간도 딱히 없었다. 하지만 나는 이 책에

매우 깊고 특별한 감정을 느꼈다. 원고를 안고 출판사로 가던 길이 그렇게 아쉬

울 수가. 이제는 이 소년과 헤어진다는 생각에, 이 책이 다른 사람의 아이가 될

거라는 생각에….

독자들이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도, 이 책의 첫 페이지를 폈을 때를 기억할

지 모르겠다. 문이 한 짝 있었고, 문밖에서 미미한 빛이 스며들고 있었던 모습을

말이다.

달님은 어린이를 하나하나 찾아갔어요.

이것이 곧 모든 이야기의 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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