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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움과 상승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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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바람은 가볍고 위로 상승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바람의 이러한 속성은 시인 의 마음도 가볍게 하여 새로운 이미지의 세계로 가게 한다. 바람은 시인에게 시적 황 홀감을 통해 꿈을 꾸게 한다. 시인이 느끼는 황홀감은 바람의 속성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정현종은 바람의 속성을 감각적 이미지로 나타내면서 자신의 황홀감을 글로 표현한 다. 하지만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이러한 가벼움과 상승을 가진 바람의 속성에 근접 한 감각이미지를 통해서만 정현종이 느낀 황홀감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간과 하면 안 된다. 정현종의 시 안에서 보면 가벼움과 상승을 나타내는 시어들이 여럿 있지만 대표적인 것들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대표적인 이미지로서는 춤, 날개, 향기, 취기, 불꽃(꽃) 등이 있다. 이러한 시어들은 사람의 감각들을 자극하는 이미지들이다. 춤은 시각과 청각의 이미지가 강하다. 날개

는 시각과 촉각의 이미지가 강하다. 불꽃은 시각, 촉각, 청각의 이미지가 발생할 수 있 다. 향기는 후각, 취기는 후각과 미각적인 요소로 나타날 수 있는 감각적 이미지들이 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정현종 시인이 황홀감에 최대한 접근하기 위한 선택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제 이러한 바람의 속성과 연관된 감각적이 시어들을 살펴봄으로 시적 황홀감에 접근해 보고자 한다.

(1) 춤

먼저 정현종 시에서 황홀감은 춤으로 표현된다. 정현종의 시 안에서 춤과 관련된 시 어들이 많이 나타난다. 이것은 정현종이 춤에 대하여 갖는 열정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정현종이 춤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된 배경에 대해서 잠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이경호는 정현종 시인의 문학적 연대기를 조사하면서 정현종이 춤에 대해서 갖는 열 정이 남다름을 알게 되었다. 이경호에 따르면 정현종이 천주교 가정에서 태어나 종교 적 금욕주의로부터 억눌려 있었는데 그가 이로부터 자유를 경험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고 한다. 그 계기는 바로 발레와의 만남이라고 보고 있다. 김현의「정현종을 찾아서」

라는 글을 인용하면서 정현종은 발레를 통해서 육체의 아름다움과 동작의 율동감이 부 여해주는 쾌감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정현종은 거의 발레공연을 빼놓지 않 고 관람할 만큼 열렬한 발레광이 되었다. 발레는 정현종의 자유로운 상상력에도 엄청 난 영향을 주었다.47) 정현종이 춤에 대한 특별한 애착이 있다는 사실은 그의 산문집을 통해서도 찾아 볼 수 있다.

그런데 몸으로 하는 무용이야말로 한결 더 자연에 가까운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말은 물론 무용예술에 인위적인 요소가 없다는 애기가 아니라 몸이 매체라는 얘기와 관 련이 있다. 그리고 이 사실에서 실은 무용의 아주 중요한 가치가 나온다. 왜냐하면 예술 로서의 춤은 사람의 몸이 다만 생물의 수준에서 머물러 있거나 공리적인 동기에서 움직

47) 이경호, 앞의 책, p.27-28.

이는 일반적인 움직임을 뛰어 넘는 귀중한 창조적 노력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사람의 몸이 이른바 미적 차원을 실현하는 것인데, 이것은 사람의 육체가 전혀 달리 쓰여 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다시 말해서 사람의 일상적인 욕망과 삶의 무거움에서 벗어 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그리고 춤을 통해 나와 너가 연결되어(이걸 디오니소 스적 도취라고 할 수 있겠는데) 한통속이 되게 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48)

위의 글처럼 춤이란 몸이 생물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나 어떠한 동기에서 움직 이는 일반적인 움직임이 아니라 창조적인 활동이라고 말하고 있다. 춤은 미적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고 더 나아가 사람의 일상적인 욕망과 삶의 무거움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한다. 춤을 통하여 세속적 무거움으로부터 가벼워지며 자유로워진다. 다음 시들을 통 하여 정현종의 춤에 대한 인식을 더 깊이 살펴볼 수 있다.

저 밖의 바람은 심장에서 더욱 커져

살들이 매어달려 어둡게 하는 뼈와 사이로 불고

그리 낱낱이 바람에 밟히는 몸은 혹은

손가락에 리듬의 금환을 끼며

머나먼 별에게 춤추어보이기도 하네 -「바람 병」전문

내가 할 일은 단 하나

내 가슴에 뛰어드는 저 푸른 풀잎을 껴안는 바람처럼

고요히 고요히 춤추는 일. -「전쟁」부분

바람의 가볍고 상승적인 자유로움은 시인으로 하여금 춤추는 것 같은 황홀감을 느끼

48) 정현종, 「춤․ 몸 ․ 탄력 ―시와 무용」,『생명의 황홀』, 世界社, 1989, p.133.

게 한다. 정현종의 시에서 춤에 대한 시어들이 등장할 때는 항상 바람이 함께 불면서 등장한다. 「바람 병」에서 보듯이 시인이 바람에 낱낱이 밟히는 순간 머나먼 별을 바 라보며 춤을 춘다. 위에 나타난 리듬의 금환은 시인으로 하여금 춤추게 하는 힘이다.

리듬의 금환을 낄 때에 시인은 리듬에 맞추어 춤을 출 수 있다. 바람이 불 때에 시인 은 리듬의 금환을 끼게 되고 현실의 무거움을 벗어버리고 머나먼 별을 향해 춤을 추게 된다. 머나먼 별은 사람이 도달하기에 힘든 꿈의 세계이다. 머나먼 별에게 춤을 추는 것은 행복은 춤을 추는 자에게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위의 시 「전쟁」에서도 시인은 바람처럼 고요히 춤추는 일이 자신이 할 일임을 보 여주고 있다. 풀잎을 껴안는 것은 바람이 불면서 풀잎을 움직이는 모양이다. 바람이 불 때 풀잎은 바람의 방향을 향해 뒤흔들리게 된다. 이러한 현상을 바라본 시인의 가 슴은 뛰기 시작한다. 바람이 일으키는 역동적인 생명력 때문이다. 무미건조한 시인의 마음에 바람이 불 때 춤추는 풀잎처럼 시인도 춤추기 시작한다. 시인이 할 일은 바람 에 자신을 맡기고 고요히 흔들리는 것이다.

안 벽에는 꽃과 나뭇잎의 릴리프 창밖에는 눈부신 가을 나뭇잎 자연과 예술의 和唱이여

마음은 춤춘다 아름다움이여 -「아름다움이여」전문

창밖을 통해 눈부신 가을 나뭇잎을 바라보며 자연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힌다. 그가 바라본 광경은 평범한 일상이지만 그에게는 예술로써 승화된다. 그의 마음은 뛰기 시 작하고 비로소 춤을 춘다. 일상의 평범함을 무너뜨리고 그는 춤추는듯한 황홀감에 사 로잡힌다. 이 춤은 형식이 없다. 또한 춤출 때 그의 마음은 일상의 무거움으로부터 한 없이 가벼워진다. 세상에는 여러 가지의 형식과 장르를 가진 춤들이 있다. 아래의 시 에서는 정현종의 시에서 등장하는 춤의 형식들을 살펴 볼 수 있다.

기지개를 켤 때 너는 듣지 않는냐

공기가 욱신거리는 소리를 흙길을 걸으면서 기막히게 오는 흙의 탄력에 취해 자꾸자꾸 걸어가지만,

춤의 형식이 따로 없다며 걸어가지만, 네가 뛰어오를 때

몸을 날릴 때

그 도약과 함께 動力은 한 가닥 공기가 된다, 흙의 탄력을 마시며 풀과 나무들이

땅을 들어올리듯이! -「몸놀림」부분

그의 마음에 바람이 불 때 그의 걸음은 일상의 걸음과는 다르다. 술에 취하듯 흙길 이 자꾸만 시인의 발바닥을 튕긴다. 튕길 때 온 몸이 형식 없는 몸짓으로 춤을 추기 시작한다. 정현종의 시에서 춤은 삶의 무게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순간이다. 춤을 출 때 시인의 마음은 마치 모든 자연 구석구석을 메우고 있는 공기처럼 하나가 된다. 물아일 체의 황홀감은 바로 바람의 속성이 일으킨 구체적인 현상학적 경험이다. 이 내적인 경 험을 표현할 때 이처럼 정현종 시인은 춤의 이미지와 결합시킨다. 아래의 시는 바람과 춤을 거의 동일시하는 시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무용 「바야데르카」에서 뛰어오른 그 남자 무용수는 아,

너무 가벼워

몸이 아니라 바람 한 자락, 관객을 열광시킨 그 가벼움,

이 도시의 고통과 생존과 우리의 발걸음의 모든 무거움을 단숨에 氣化시키는 그 가벼움에 나는 손바닥이 아프도록 찬탄했느니, 거기에 이르기까지

공기에 이르기까지 무대 뒤의 고된 나날이여

아름답다 心身의 뒤안길이여 -「그 가벼움」전문

춤을 추는 남자 무용수를 바라보며 시인은 열광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바로 무용수 의 가벼운 몸짓 때문이다. 이 몸짓에서 시인은 인생의 무거운 짊과 고통을 단숨에 날 려버리게 된다. “이 도시의 고통과 무거움을 단숨에 기화(氣化)시키는 그 가벼움에 나 는 손바닥이 아프도록 찬탄했느니,”에서 보면 남자 무용수의 몸짓은 단순한 가벼움이 아니다. 그토록 열광하고 찬탄하게 했던 그 몸짓은 정현종에게 있어서 자유 그 자체이 다. 남자 무용수의 몸은 몸이 아니라 바람 한 자락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은 바람의 상승적인 속성과 춤의 속성이 같음을 보여준다.

정현종의 춤에 대한 애착은 바람이 일으킨 황홀감을 표현하는 구체적인 시어로 자리 잡게 했다. 시인이 몸소 체험한 춤을 통해 시적 황홀감을 춤이라 감각적 행위로 표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2) 날개

가스통 바슐라르가 투스넬의 글과 플라톤의 글을 인용하여 날개에 대한 상상력을 설 명해 내고 있다.

“휘발성이 근본적 속성인 날개는 거의 모든 존재들에 있어 그(존재의) 완벽성을 보증하 는 최상의 증표이다. 우리 영혼은 이 열등한 삶에 자신을 얽어 매어놓은 육신이라는 포

장에서 벗어나 새의 몸보다 더 가볍고 더 빠른 환희에 찬 어떤 몸으로 肉化한다.”

-투스넬

“날개의 힘은 본성적으로 솟구칠 수 있다는 것, 무거운 것을 神이 거하는 저 높은 곳으 로 이끌어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육체에 속한 모든 것들 중에서 신성한 것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바로 날개들이다.”

-플라톤의『페드르』49)

투스넬은 열등한 삶에서 얽어 매어놓은 육신이라는 포장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을 바 로 날개의 속성으로 보고 있다. 플라톤은 날개의 힘을 솟구침으로 보아 무거운 것을 높은 곳으로 이끌어 올라갈 수 있게 하는 것으로 나타내고 있다. 이처럼 날개라는 상 상력은 일상의 무거움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며 무거운 육체로부터 벗어나 높은 곳을 향 해 한 없이 솟아오르게 하는 것이다. 정현종의 시에서도 날개는 가벼움과 상승의 이미 지를 가지고 있다.

누가 춤을 잠근다 피어나는 꽃을 잠그고 바람을 잠그고 흐르는 물을 잠근다 저 의구한 산천을 새소리를 잠그고 사자와 호랑이를 잠근다 날개를 잠그고

노래를 잠그고 숨을 잠근다

숨을 잠그면?

꽃을 잠그면?

49) 가스통 바슐라르, 『공기와 꿈』(정영란 옮김), 민음사, 1993, p.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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