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HEON MONTHLY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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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2021 INCHEON MONTHLY MAGAZINE
VOL.327
2021. 03│MARCH 4년 연속 대한민국 커뮤니케이션 대상 수상지 황어장터
발행처 인천광역시 발행일 2021년 3월 1일 발행인 인천광역시장 인쇄인 신봉훈(소통협력관) 편집인 백상현(소통기획담당관) 총괄편집국장 김진국 편집장 정경숙 편집위원 김윤경
사진 김성환·임학현·최준근·장현선 디자인·제작 웨스트코(주)
발간등록번호
54-6280000-000080-06
MARCH 2021 Vol. 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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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읽어주는 굿모닝인천음성 지원 이북 바로 가기 ㅣ 3월의 시민 목소리 이순향 님(연수구 솔샘로)
제비
최승렬(崔承烈 : 1921~2003)
제비 노래는 비, 비비비 배배 옥쪼글
크라아리넷 봄노래.
햇볕 하아얀 창을 열면 버들가지 포룜히 물들어
비, 비비비 배배 옥쪼글 크라아리넷
봄노래.
뻐꾸기 울음소리는 뻐꾹, 그래서 그 이름은 뻐꾸기, 2,500년 전 <시경詩經>에서부터 이후 그 <시경
詩經>에 전주箋註한 주자朱子의 <시집전詩集傳> 등등 중국고전에서의 갈국秸鞠, 포곡布穀, 곽공郭公 등 등도 다 그 울음소리를 딴 뻐꾸기, 영어로는 쿠쿠cuckoo…… 그런데 제비는 지지배배? 제비가 지지 배(계집애)보다 더 지지배배라서 지지배배인가? 그 울음소리를 표현할 길 없었는데 해결됐다.
나는 이 시가 수록된 시집 <푸른 눈동자에 그린 그림>(익문사, 1975)을 내 문학의 스승 정서웅(鄭 瑞雄 : 1942~) 선생님께 소개받았다. 고2 때의 일이다. 정서웅 선생님께서는 위 최승렬 선생님을 중1때 만나셨다고 쓰고 계신데, 잊지 못할 스승 최승렬 선생님을 인천중학교에 입학해서 만났다고 쓰고 계셨다.
빈부와 관계없이 사람들 살기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제비 다리를 부러뜨리는 이야기까지 있었겠는 가. 가난의 상징은 흥부가 아니라 놀부 아닌가. 코로나를 없애준다 하여도 나는 결코 제비 다리를 부러뜨리지는 않을 것이다. 제비가 내 다리를 부러뜨린다 하여도.
옥쪼글 이름을 딴 브랜드, 간판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옥쪼글!
글 김영승
인천 미소
시민으로 특별한 환경특별시 外 시민이 소개하는 우리 동네 송현시장
스케치에 비친 인천
③ 영종도 새로운 봄 등교 수업 확대 자원순환음식물쓰레기 환경특별시 인천 쓰레기 독립 자원순환 Q&A
③ 수도권매립지 종료 이유와 선진국 사례 인천 명문교를 찾아서
⑩ 송도고등학교
문화미림극장, 전국 최초 치매 영화관 운영 특집인천시 맞춤형 핀셋 지원 현장을 가다 그간 잘 지내셨나요?
② 김봉길 전 인천Utd 감독 정책 만화
아이돌봄 사업 음악으로 듣는 근대 역사
‘인천근대양악열전’ 발매 문화 포커스
비대면 역사 교육 이미지 뉴스 서민 중심 복지 행정 시정 뉴스
코로나19 백신 접종 시작 外 의회 뉴스
부평시장 화재 초기대응 시민 표창 수여 外 컬러링 인천
강화도 고려산 인포 박스
당신의 아이디어로 인천이 더 좋아집니다 外 인천 문화재 이야기
③ 인천우체국 소소한 인천사 화도진 外 仁生 사진관 우리, 다시, 날다 인천의 아침
김란사와 유관순, 그리고 인천 여성 포토 에세이
102년 전, 3월 황어장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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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을 사고파는 송현시장
인천시 미디어
인천시 인터넷방송 tv.incheon.go.kr
인천시 인터넷신문 ‘i-View’ enews.incheon.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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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 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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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 SNS
검색창에 을 입력하세요.인천
시민으로 특별한 환경특별시
인천이 ‘환경특별시’라는 새로운 목표를 설정했다는 소식이 반갑습니다. <굿모닝인천>
을 통해 지속적으로 문제의식을 일깨울 수 있는 좋은 내용을 부탁드립니다. 환경특별 시 인천을 위해서는 시민 참여가 필수적입니다. 쓰레기 처리뿐만 아니라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정보를 통해 시민의식을 함께 고취해 나가면 좋겠습니다.
고영무 남동구 하촌서로
잘 버리고 덜 버리는 지구의 스타
요즘 미디어에서 ‘버리스타’라는 단어를 자주 접하게 됩니다. 환경 문제가 전 세계적으 로 주목받고 있는 시점에, 인천이 한발 앞서 나가고 있다는 생각에 뿌듯합니다. 앞으로 더 많은 시민이 버리스타에 대해 알 수 있도록 적극적인 홍보를 부탁드립니다. 제대로 잘 버리고, 덜 버리는 습관을 통해 우리 모두 지구의 스타, 버리스타가 됩시다!
이멜다 계양구 당미길
스케치에 비친 색다른 인천
올해부터 새롭게 선보이는 ‘스케치에 비친 인천’ 코너가 무척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평 소 자주 가던 곳이라 익숙한데도, 사진과 수채화의 절묘한 조합으로 색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평범하고 비슷한 사진에 식상한 독자들에게 수준 높고 참신한 볼거리를 선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 많은 인천이 스케치에 비치길 기대하겠습니다.
박정순 부평구 체육관로
코로나19 없는 봄나들이
코로나19로 모두가 지쳐가는 요즘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모두가 힘을 합쳐 견뎌내고 격려하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이제 본격적인 봄이 찾아옵니다. 방역 수칙
을 철지히 지키면서 인천의 매력을 만끽할 수 있는 봄나들이 장소에 대한 내용이 실렸 으면 합니다. 이 봄, 코로나19 걱정 없이 인천을 만끽할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전미정 부평구 대정로
나는 엄마와 함께 동네에 있는 송현시장에 자주 간다. 송현시장은 동인천역 북광장 건너편에 있는 작은 시장이다. 어렸을 땐 시장에 갈 때마다 엄마에게 어묵을 사달라고 졸랐다. “그 녀석 키도 크고 잘생겼네.” 시장 입구 어묵 가게 아저씨가 나를 보면 늘 하셨던 말이다. 그 말이 듣기 좋아 지금도 가게 앞을 지날 때마다 아저씨가 안에 계신지 기웃거리곤 한다.
먹어도 먹어도 배고픈 열다섯 살이 된 지금은 삼겹살을 더 좋아한다. 물론 장바구니를 드는 건 내 몫 이다. 가끔 엄마가 아프시면 아빠가 출동하신다. 시장에 있는 반찬 가게에서 내가 좋아하는 진미채 볶음, 계란말이 등을 사 오신다. 엄마가 아닌 다른 사람이 만든 반찬을 먹으면 어색하면서도 맛있다.
송현시장 반찬 가게 덕분에 엄마가 아프셔도 반찬 걱정을 하지 않아 좋다. 30분 정도면 송현시장 전 체를 둘러볼 수 있다. 두부를 직접 만들어 파는 가게가 있는데, 언제나 갓 만든 두부를 사려는 사람 들의 줄이 길게 이어진다. 아주 오래된 할머니 보리밥집은 맛집으로 소문나 식사 시간이면 앉을 자 리가 없을 정도다.
우리 동네에는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과 여름에 문을 여는 물놀이터 ‘또랑’이 있다. 동인천역에서 가 깝고 무료라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도 인기가 많다. 박물관 구경을 한 후 집에 돌아갈 때 바로 아래 있는 송현시장에서 맛있는 반찬을 사 가는 것도 좋다. 여름이 오면 또랑에서 신나게 놀고 송현시장 할머니 보리밥집에서 시원한 콩국수를 먹는 것도 추천한다.
코로나19가 오기 전엔 주말마다 ‘달빛거리 송현 야시장’이 열렸다. 친구들과 북적이는 야시장 구경 을 하다가 포장마차에서 사 먹은 스테이크 맛이 아직도 기억난다. 동네 시장에서만 맛볼 수 있는 정 감 있는 분위기는 어른이 되어도 변하지 않을 것만 같다. 하루빨리 코로나19가 끝나 마음 놓고 시장 을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시민이 소개하는 우리 동네 05
인천 미소 독자 후기
글 이선우(재능중학교 2학년)
송현동
보고 싶다
<굿모닝인천>
듣고 싶다
‘시민 목소리’
06 07 스케치에 비친 인천
╼ 민재네 할머니 댁은 영종도에 있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여섯 형제도 이 섬에서 나고 자랐다. “벚꽃 필 때 오지 그랬어.” 영종성당 바 로 앞에 있는 할머니 집은 사시사철 예쁘다. 봄이면 노랑, 빨강, 하양 꽃 망울이 터지고, 여름이면 싱그러운 풀숲이 대지를 덮는다. 겨울 햇살마 저 따사롭다. 그래도 할머니는 뭍에서 온 손님들이 가장 아름다운 계절 에 왔으면 더 좋으련만 싶다.
차이분(93) 할머니는 영종도 토박이다. 나이가 아흔이 넘도록 섬을 떠 나 산 적이 없다. 할머니 집은 2006년에 지어졌다. 살던 동네에 개발의 바람이 불고 ‘하늘도시’가 들어서면서 이리로 떠밀려 왔다. 떠나야 했 지만, 멀리 가고 싶진 않았다. 가족이 다니던 성당 가까이 양지바른 자 리에, 허물어가던 집을 사들여 추억을 다시 지었다.
마을은 사라졌지만, 그때의 기억은 여전히 선명하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고만고만한 초가집들이 모여 있던 동네였다. 섬사람들은 뱃일을 하거나, 곡식이고 과일을 키우며 농사짓고 살았다. “시골 부자는 일 부 자라고 했어. 부잣집이라고 해서 시집왔는데 일복만 있었지. 그 덕에 먹고사는 형편은 좀 나았어.” 열여섯 나이에 맏며느리로 와, 평생을 논 밭에서 허리 굽혀 일하고 일꾼들 밥해 먹이며 살았다. 그렇게 아들 셋, 딸 넷 가르치고 잘 키워냈다. “살림살이 불리며 자식들과 오순도순, 지 금은 떠난 영감과도 오래도록 살았으니, 난 행복한 사람이야.”
╼ 육지와 다리로 이어진 ‘섬 아닌 섬’이지만, 영종도는 처음 오롯이 섬이었다. 그것도 영종도永宗島와 용유도龍遊島, 삼목도三木島, 신불도薪佛島 네 개 섬이었다.
둘째 아들 김기옥(63) 씨는 고향 땅 발 딛는 곳마다 유년 시절의 추억이 서려 있다. 학교 가 는 길에 논둑을 따라 개구리를 잡으며 놀고, 남의 집 나무에 열린 감을 따다 주인에게 혼쭐 이 나기도 했다. 동네 어르신 배를 얻어 타고 바다낚시를 할 때면 얼마나 가슴 설레던지. 좀 커서 육지에 있는 학교에 다니던 길은, 참으로 험난했다. 덜컹덜컹 낡은 지프를 타고 마을에 서 구읍뱃터까지 가, 작은 목선을 타고 파도를 넘은 끝에야 만석부두에 이를 수 있었다. 해 무가 바다를 뒤덮기라도 하는 날엔, 바다 너머 세상을 하염없이 바라만 봐야 했다. 돌아보면 다 아름다운 추억이다.
‘인천, 그림이 되다.’ 낡은가 하면 새롭고, 평범한가 싶으면서 도 특별한. 골목길만 지나도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지는 도시, 인천. 추억이 그리움으로, 때론 일상으로 흐르는 공간이 작가 의 화폭에 담겼다. 그 따뜻하고 섬세한 붓 터치를 따라, 인천 사람들의 삶 속으로 들어간다. 이번 호는 박상희 화가의 손끝 에서 피어난 바다와 하늘 사이의 섬, 영종도다.
글 정경숙 본지 편집장│사진 임학현 포토디렉터
③ 영종도
바다와 하늘 사이, 그 섬 영종성당 앞, 할머니 집
처음엔, 네 개의 섬이었다
영종성당 옆 민재네 할머니 댁 종이 위에 수채화_36x25.5cm_2020 박상희 작가의 아들 친구 민재의 영종도 할머니 댁. 꽃구름 둘러싸인 집에서 할머니가 버선발로 나와 반길 것만 같다. 취재 영상 보기
지금은 대학생이 된 민재의 개구쟁이 어린 시절, 옛 할머니 댁에서(위) 영종도 토박이 차이분 할머니와 막내아들 김기학(민재 아버지)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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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치에 비친 인천 ③ 영종도
╼ 2000년 11월 영종대교가 놓이기 전까지, 구읍뱃터는 유일하게 섬사람 들의 삶을 육지와 하나로 잇는 길이었다. 다리가 들어선 후에도 뱃길은 끊기지 않았다. 지금도 월미도 선착장에서 구읍뱃터까지 갈매기의 마중과 배웅을 받으 며 배가 오간다.
뱃길로 10분. 오래된 나루터가 있는 한적한 바닷가에, 몇 년 사이 바다를 전망하 는 카페가 하나둘 생겨났다. 안성근(40), 여지선(36) 부부는 1년 전 뱃터가 내려 다보이는 자리에 찻집 ‘차덕분’을 열었다. 도시 한복판에서 사랑을 키워온 두 사 람은 부부의 연을 맺으면서 이 섬으로 왔다. 10년이 넘도록 부평에서 서울까지, 집과 일터를 하릴없이 오가며 살아왔다. 불현듯 가속도 붙은 일상으로부터 벗어 나고 싶어졌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영종도가 있었다. 처음엔 딱 10년만 살아보 자고 했다. 하지만 이제 다섯 살 된 아이가 태어나 자라고 삶이 단단하게 뿌리내 리면서, 섬을 떠나지 못했다. 영종도는 이제 그들에게 몸과 마음이 머무르는 ‘집’
이 되었다.
“차를 마시며 바다를 바라보노라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일상에 지친 사람들 이 이 안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쉬었다 가면 좋겠습니다.” 차를 내리는 안 대표 의 손길이 섬세하고 정성스럽다. 창 너머로 물치도가 보인다. 섬은 100여 년을 일본식 이름 작약도로 불리다 지난해 여름에서야 제 이름을 찾았다. 물치勿淄,
‘밀물이 거세게 섬을 치받는다’는 뜻에서 이름 지어졌다고 했다. 오늘 바다는 잔 잔하다. 찻잔에 담긴 향기 어린 시간을, 다가오는 봄을 가만히 음미한다.
찻잔에 담긴 쉼, 그리고 봄
섬에 변화의 바람이 분 건, 1990년 6월 14일 영종도가 공항 부지로 선정되면서 부터다. 자연도紫燕島라 불리던 섬, 제비가 날아들던 자줏빛 하늘에 비행기가 날 아오르게 된 것이다. 1992년을 한 달 남긴 겨울이었다. 한적하던 마을에 덤프트 럭들이 줄지어 나타나 섬과 섬 사이에 흙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그렇게 영종도 와 용유도가 한 몸이 되고 그 한가운데 거대한 활주로가 났다. 그리고 2001년 3 월, 역사적인 인천국제공항 개항. 대한민국의 새 하늘길이 열렸다. 도시가 솟아 나고 사람이 모여들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긴 다리가 놓였다. 그렇게 섬의 운명이 바뀌었다.
“상전벽해예요. 조용하던 마을이 세계로 가는 관문이 됐으니까요.” 민재 아버 지, 막내아들 김기학(53) 씨는 송도국제도시에 산다. 어린 시절 배 타고 두 시간 이 넘게 걸리던 길을, 인천대교를 건너 10여 분 만에 오간다. 거리는 가까워졌지 만 고향 풍경은 어릴 적 기억에서 멀어져 간다. “그래도 고향만 한 곳이 어디 있 나요. 세월 따라 모든 게 변하더라도 마음은 한결같아요. 머물고 싶고, 그리운.”
변했든 그대로이든, 누구나 가슴에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살아간다. 섬의 유일한 성당이었던 영종성당엔, 120여 년 시간이 깃든 예배당 종소리가 아직 울 려 퍼진다. 고향집을 지키는 나이 든 어머니는 그 안에서 오늘도 기도한다. 자식 들 건강하고, 내일 더 행복하기를.
영종도와 육지를 잇는 유일한 길이었던 구읍뱃터(왼쪽) 부평에서 영종도로 온, 카페 ‘차덕분’의 안성근 대표(오른쪽) 고향집에 걸린 십자가.
나이 든 어머니는,
오늘도 자식을 위해 기도한다.
차덕분 창가에서 종이 위에 수채화, 펜_31x20.5cm_2021 차 한잔으로 다가오는 봄을 음미하는 시간. 창밖으로 100년 만에 제 이름을 찾은 섬 ‘물치도’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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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치에 비친 인천 ③ 영종도
╼ ‘나의 거대한 책상이자, 생각의 산’. 가수이자 작곡가 백영규(69) 가 백운산을 이르는 말이다. 그는 수더분한 산세와 수려한 경치에 반해, 지 난해 백운산 기슭으로 집을 옮겼다. 그 후로 그는 매일 하루 세 시간 산을 오르내린다. 두 다리에 온전히 자신을 맡긴 채 걷고 또 걸으면, 생각이 숲 이 우거지고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게 된다. 그렇게 그는 산길을 걷고, 좋아 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술잔을 기울이고, 틈틈이 작품을 쓰며 영종도에서 잘 살아가고 있다.
“낯선 감정 없이, 오자마자 정이 들었어요. 다리 하나만 건넜을 뿐인데 전 혀 다른 세상처럼 느껴집니다. 바다가 있고, 밤이면 하늘에 별이 보이고.
어제는 예쁜 초승달이 걸렸더라고요.” 봄이 무르익어가는 3월, 어느 화창 한 날엔, 백운산 기슭을 무대로 노래할 생각이다. 공연은 그의 유튜브 채널
‘백다방TV’로 관객을 찾는다.
최근 백영규의 정규 앨범 14집이 14년 만에 세상에 나왔다. ‘추억의 신포동 1·2’, ‘인천의 성냥 공장 아가씨1·2’, ‘꿈의 나라 송도로 가자’…. 인천을 사 랑하는 마음이 깊어지면서 만든 곡들로 꽉 채웠다. 언젠간 영종도를 노래
하는 작품을 써 내려가리라. 앨범 재킷의 아트 디렉팅은 문 화예술 기획자 오진동(57) 씨가 맡았다. 한국적인 정서를 기반하면서도 다채로운 그의 음악적 행보를 기리며 색동옷 을 입혔다.
“백영규 형님 같은 아티스트들이 영종도에 관심을 두고 찾 아오고 있습니다. 그들이 만나 서로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키 고 예술을 확장시킬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같 이 놀 수 있는 판을 마련했습니다. 지원이 있다면, 대중문화 가 자생적으로 일어설 수 있도록 돕는 것이어야겠지요.” 개 항장 문화지구에서 꽤나 잔뼈 굵은 그는 지난해 영종도로 와 복합문화공간 ‘별난 스페이스’을 열었다. 아름다운 자연 과 좋은 지리적 조건을 갖췄지만, 예술의 씨앗이 뿌리내리 기엔 땅이 아직 척박하다. 그래도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은 이 섬에 스며들어 서로에게 희망이 되고 있다. “머지않아 영종도에 문화예술의 꽃이 필 겁니다. 자, 힘냅시다.”
하늘길 대신 풍요롭던 바다를, 땅을 내어주어야만 했다.
그럼에도 섬은 새로운 세상으로 떠나는 누군가를 위해 품 을 활짝 열고, 여정에 기꺼이 날개가 되어준다. 그 시간이 20년. 기억 너머 바다와 하늘 사이 그 어디쯤, 그 섬 영종도 가 있다.
그림 박상희
인천 출생으로,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와 동 대학원 석사 과정을 마쳤다. 도시의 불 켜진 야경 안에서 드러나는 욕망, 끊임없이 노동하는 현대 사회의 불면의 밤을 작품에 담아왔다. 개인전을 22회 열었고, 인천 아트플랫폼과 OCI 미술관 레지던시 등에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쳐왔 다. 현재 인터넷 신문 <인천in>에서 ‘빛으로 읽는 도시, 인천’을 연재하 며 인천의 다채로운 풍광과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노래하는 가수와 백운산 종이 위에 수채화, 펜_21x29cm_2021 이 봄, ‘생각의 산’ 백운산 기슭에서 백영규의 무대가 열린다.
문화예술 기획자 오진동 씨가 영종도에 연
복합문화공간 ‘별난 스페이스’ ‘영종도에 문화예술의 꽃이 피길…’
같은 꿈을 꾸며 서로 희망이 되어주는, 가수 백영규(오른쪽)와 오진동
구읍뱃터. 멀리 영종대교가 보인다.
백운산 아래, 봄날의 음악회
상상도 못했던 코로나19로 일상의 많은 부분이 멈췄다. 코로나19가 아이들에게 치명적일지 모른다는 판단 아래 바이러스가 퍼지는 것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 지침이 정해졌고, 학교도 굳 게 문을 닫았다.
지난해 신학기는 코로나19 확산세로 4월이 되어서야 사상 첫 온라인 개학으로 시작할 수 있었다. 올해 교육부는 수업일수 감축 없이 학사 일정을 그대로 진행할 것이라는 계획을 발표했다. 늘 겨울처럼 굳게 닫혔던 교문이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봄을 활짝 맞이하길 기대해 본다.
글 김윤경 본지 편집위원│사진 최준근 자유사진가
닫힌 교문을 열며, 이제야 시작된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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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봄 등교 수업 확대
지난해 코로나19 여파로 등교 수업에 차질을 빚었던 인천 지역 학교들이 신학기를 맞 아 3월 2일 전면 개학한다. 2021학년도 학사 일정은 개학 연기 없이 3월 정상 시작하 고 법정 기준 수업일수 감축 없이 정상 운영될 예정이며, 수능도 연기 없이 오는 11월 18일 실시한다.
유치원은 180일 이상, 초·중·고등학교는 190일 이상의 법정 기준 수업일수를 맞춰 운 영한다.
학교 여건에 맞게 다양한 등교 방법을 활용하되 유치원, 초등 1·2학년, 고교 3학년, 특 수학교 학생들은 사회적 거리 두기 2단계까지 매일 등교한다. 60명 이하 유치원, 전교 생 400명 이하에 학급당 학생 수 25명 이내인 초·중·고교, 농·어촌 학교, 특수학교는 사회적 거리 두기 2.5단계까지 학교 자율에 따라 전면 등교가 가능하다. 전면 등교를 할 수 있는 학교는 158곳으로 인천 전체 학교의 30%가량이다.
또 개학 후 학교마다 방역 전담 인력을 최대 15명까지, 학생 100명당 1명꼴로 배치하 기로 했다. 특히 개학 후 2주간을 학생 건강 상태 특별 모니터링 기간으로 운영하고, 등교 후 칸막이 설치 및 쉬는 시간 분리 운영 등 학교 내 감염 예방을 강화한다.
구분 1단계 1.5단계 2단계 2.5단계 3단계
생활 방역 지역적 유행 단계 전국적 유행 단계
등교 원칙학교 밀집도 2/3 원칙,
조정 가능 밀집도 2/3 준수 밀집도 1/3 원칙 (고교 2/3)
최대 2/3 운영 가능 밀집도 1/3 준수 원격 수업 전환
밀집도원칙 적용 기준
제외
유치원 재원생, 초등 1·2학년, 특수학교 및 초등 특수학급 밀집도 원칙 기준 적용 제외
중·고교 특수학습, 소규모 학교, 도서벽지 학교 자율 결정 가능 돌봄 및 기초학력 지원 필요 학생과 중도 입국 학생 별도 보충 지도
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별 학교 밀집도 원칙
유치원과 초등학교 1·2학년은 사회적 거리 두 기 2단계까지 밀집도 적용에서 제외 가능해 매일 등교가 가능해졌습니다. 올해는 학생들 의 학습 격차 해소뿐 아니라 청소년 발달 단 계의 사회성 문제해결을 위해 등교 수업을 더 적극적으로 확대하게 됐습니다. 중1과 고1도 새로운 환경에 대한 적응과 교우 관계 형성을 돕기 위해 가급적 우선 등교를 권장하고 있습 니다.
올해 교육과정 운영은 감염병 위협에서 학교 를 가장 안전한 공간으로 만들고 원격 수업도 내실화하는 것이 최우선 목표입니다. 학습 격 차 해소를 위해 원격 수업 기간에도 쌍방향 소 통을 중점적으로 진행하고 ‘살아 숨 쉬는 천 개의 수업’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과 소통하 면서 학생 참여 중심의 수업 문화를 만들어나 갈 계획입니다.
오미영(인천시교육청 교육과정 담당 장학관)
최대한 대면학습이 늘어났으면 좋겠어요. 작년에 큰 애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는데, 1학년들은 EBS를 중심 으로 온라인 수업이 진행됐거든요. 아이 옆에서 교과 서도 찾아주고 페이지도 같이 넘겨주다 보니, 엄마 도 움 없이 아이 혼자서는 공부하기 힘든 구조라는 생각 이 들더라고요. 집에 있으면 늦게 일어나고 늦게 자고, 생활 패턴도 바뀌고…. 아이들은 학교에서 가르쳐주 는 대로 잘 따라 하니까 방역 수칙도 어른들보다 더 잘 지킬 수 있을 것 같아요. 올해는 등교 수업이 확대된다 고 해서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수미(초등학생을 둔 다둥이 엄마)
지난 한 해는 교육과정이 10번 이상 바뀔 정도로 선생님들도 혼란스러웠습니다. 올 해는 학사 일정에 맞춰 수업이 진행되고, 온라인 수업에 대한 기반도 갖춰져 작년보 다는 모든 상황이 나아질 거라 기대합니다.
초등학교 40분, 중학교 45분, 고등학교는 50분이 한 시간 수업으로 규정되어 있지 만, 5분 단축 수업을 시행해 급식 시간과 등교 시간에 시차를 두는 등 최대한 아이들 안전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부모님들이 걱정하지 않도록 방역에도 더욱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신축년, 소의 우직함과 든든함으로 코로나19를 극복하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운동장에 넘치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임용렬(창영초등학교 교장) 매일 집에서 동생들과 같이 있으니까 좀 답답해요. 친구
들도 보고 싶고요. 학교에 가도 친구들이랑 서로 가까이 가면 안 되고 같이 뛰어놀 수 없지만, 그래도 친구들이 랑 선생님 만나서 공부할 수 있는 학교가 좋아요.
김서현(초등학교 2학년)
학교가 교육만의 공간이 아니라 관계 속에 서 만들어지는 한 사회로서 역할을 하려면 서로 만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얼마 전 지난 해 가르쳤던 아이들에게 전화했더니 밖에 나가는 것보다 집에 있는 게 더 좋다는 몇몇 아이들 답변을 듣고 덜컥 겁이 났어요. 단절 된 생활 속에서 지낸 아이들이 과연 이다음 에 어떻게 성장할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학 교 교과과정에는 친구들과 서로의 생각을 나눠보는 시간이 많아요. 나 아닌 다른 사람 의 생각을 통해 배우고 내 생각도 넓혀가야 하는데, 지난 1년간 그런 과정이 모두 생략 된 거죠. 학교가 정상적으로 운영되어 나만 의 생각, 나 혼자의 생활 반경에 있는 아이 들과 하루빨리 만나길 기대하며 공교육의 중요성이 더욱 절실하게 와 닿았습니다.
김진경(초등학교 교사)
새 학기는 학생, 교사, 학부모들의 기대만큼 이전의 학교 모습을 다소 회복할 것으로 희망한다. 과거와 똑같은 학교 모습은 아니겠지만 최대한 방역 수칙이 지켜지는 속에 서 학생들의 활동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새 학기, 새로운 학교, 그리고 조금 더 활 기찬 새 출발을 기다린다. 어느덧 우리 곁에도 봄이 한 발짝 성큼 다가왔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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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봄 등교 수업 확대
INTER 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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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순환 음식물쓰레기
코로나19로 인해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는 횟수도 증가하고 있다. 가정마다 배출되는 음식물쓰레 기도 늘어나지만 1인 가구의 증가, 생활의식의 변화 등으로 음식물쓰 레기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면서 심각한 환경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음식물쓰레기를 지금보다 덜 만들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숙제가 무엇인지, 그 숙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 모두가 함께 실천해야 할 일 들과 인천시의 다양한 정책들을 짚어봤다.
글 김윤경 본지 편집위원│사진 최준근 자유사진가
‘집쿡’ 시대,
슬기로운 음식물쓰레기 처리는?
인간이 만들어낸
어마어마한 음식물쓰레기
2019년 환경부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하루에 배출되 는 음식물쓰레기는 1만4,314t. 1년으로 따지면 500만t이 넘 는 어마어마한 양이다. 더군다나 2014년 하루 1만3,222t보 다 1,000t가량이나 증가했다. 이렇게 버려지는 음식물쓰레 기는 어떻게 처리될까. 음식물쓰레기는 2005년부터 시 이상 의 지역에서 직매립하는 것이 금지됐다. 그리고 2013년 일 반 쓰레기와 음식물을 분리해 배출하는 지금의 ‘종량제’가 시행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종량제’가 시행되고, 음 식물을 퇴비나 사료로 재활용하려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지 만 처리 비용이 연간 8,000억원이나 되고, 환경 문제도 점점 심각해는 실정이다. 무엇보다 처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악취 나 토양 오염은 물론이고 지구 온난화의 주요 원인인 엄청난 양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한다.
2025년 수도권매립지 종료를 앞두고 폐기물을 근본적으로 줄이고 친환경 생활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인천시는 기존 의 음식물쓰레기 수거와 처리 체계를 친환경적이고 효율적 인 방식으로 전환하는 다양한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RFID 종량기 확대, 가정용 감량기 보급, 대형 감량기 도입 등을 통 해 시는 하루 687t(2019년 기준)에 이르는 음식물쓰레기를 2025년에는 하루 622t으로 줄여나간다는 계획이다.
음식물쓰레기로 만들어진 사료(아래)와 그 과정에서 걸러낸 수많은 이물질들(위)
음식물쓰레기를 실은 차량이 줄지어 음식물처리장으로 들어온다. 반입장에 들어온 음 식물쓰레기는 선별, 파쇄 과정을 통해 음식물에 묻어 있는 이물질과 흡착물을 분리 제 거하고, 폐수와 보형물로 나눈다. 이 중 폐수는 일부 소각하거나 수도권매립지에서 바 이오가스를 생산하는 데 활용하고, 보형물은 탈수와 건조 파쇄 과정을 반복하면서 사료 로 만든다.
“인천환경공단 송도사업소에서만 하루 200t의 음식물쓰레기 처리가 가능합니다. 현재 는 하루 150~180t의 음식물쓰레기가 처리되고 있는데, 올해는 수출 협약을 맺어 이곳 에서 만든 사료를 수출할 계획입니다.” 사업소에서는 아침 6시부터 오후 2시까지 음식 물쓰레기를 반입하고 새벽 2~3시까지 사료화 작업을 마무리하지만, 가끔은 작업이 중 단되는 일이 발생해 애를 먹기도 한단다. 바로 음식물쓰레기에 섞여 있는 이물질 때문.
방법 1 음식물쓰레기로 사료와 에너지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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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순환 음식물쓰레기
이처럼 음식물쓰레기를 제대로 처리하고 자원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 다 음식물쓰레기 배출이 중요하다. 인천시는 각 가정에서부터 음식물 쓰레기 감량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도록 다양한 사업을 더욱 확대해 나 갈 방침이다.
먼저, 시는 지난 2012년부터 도입해 온 공동주택 ‘RFID 종량기’ 보급 을 확대한다. 가정마다 배출한 음식물쓰레기 무게를 측정해 버린 만큼 비용을 부담하게 하는 ‘RFID 종량기’는 음식물쓰레기 배출량을 크게 줄이는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현재 인천시의 아파트 중 25%는 공동 수거 용기를 사용해 음식물쓰레기를 버린 양과 상관없이 동일한 수수 료를 내고 있다. 시는 오는 2025년까지 ‘RFID 종량기’를 모든 아파트 에 보급해 자신이 버린 만큼 수수료를 부담하는 세대별 종량제를 확립 해 나갈 계획이다. 또 품질 인증을 받은 가정용 감량기를 구입하는 단 독·다세대 주택에 보조금을 지원하는 ‘단독·다세대 주택 가정용 감량기 보급’도 추진한다. 가정용 감량기를 2025년까지 1만8,600대를 보급해 배출원에서부터 실질적인 음식물쓰레기 감량이 가능하도록 추진할 계 획이다.
‘음식물 대형 감량기’로 친환경적인 처리를
음식물쓰레기는 일단 수거·운반 과정에서 악취, 해충, 차량 매 연 등이 발생하고 처리 과정에서 음식물 탈리액 즉, 음폐수가 발생되어 2차 처리를 해야 하는 문제점이 있다. 이를 해결하 기 위해 시는 ‘음식물 대형 감량기’를 도입하고 있다. ‘음식물 대형 감량기’는 음식물쓰레기를 투입하면 자체적으로 발효·
건조 감량을 거쳐 농장에서 퇴비로 활용할 수 있는 부산물을 만들어낸다. 현재 삼산동 휴먼시아 1단지의 6대를 비롯해 부 평구에만 8대가 시범 사업으로 운영 중이다.
“음식물 대형 감량기는 쓰레기가 투입되면 미생물이 24시간 이내에 분해해 쓰레기를 80% 감량하고 나머지는 퇴비로 만 들어내는 기기입니다. 퇴비는 과수원 같은 농가에 비료로 활 용되고 있습니다.” 부평구는 2019년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인한 습식 사료화 전면 금지와 증가하는 음식물쓰레기 처리 비용에 따른 부담감으로 대형 감량기를 도입하게 됐다고 설 명한다. 특히 음식물 감량기는 음폐수가 발생되지 않아 기존 의 수거·운반 과정에서 발생했던 오염 물질, 악취, 해충 등의 문제도 해결될 것으로 기대된다. 시는 2025년까지 아파트에 대형 감량기 276대를 설치할 계획이다.
음식물쓰레기 감량을 위한 다양한 사업과 정책도 중요하지 만 무엇보다 음식물쓰레기를 만들어내는 각 가정의 작은 실 천이 중요하다. 우리의 미래와 환경을 살리는 일, 꼼꼼하게 시작하면 어떨까?
“대부분 음식물쓰레기 분리를 잘해주지만 고사 지 냈던 돼지머리나 숟가락, 철 수세미 등이 기계에 걸 려 고장이 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음식물쓰레 기를 버릴 때 이물질 제거만 확실하게 해주면 설비 도 고장 없이 운영되고 사료의 질도 더 좋아질 텐 데, 그렇지 못한 부분이 안타깝습니다.” 이광복(57) 음식물시설운영팀장은 가정에서 음식물쓰레기를 버릴 때 이물질뿐만 아니라 수분이나 습기를 가능 한 한 많이 제거해 주면 탈리액 발생이 줄어 처리 비용도 절감된다고 덧붙였다.
방법 2
방법 3
RFID 종량기와 가정용 감량기로 무게를 줄이자
RFID 종량기는 음식물쓰레기의 무게만큼 요금을 지불해야 하므로 가정에서 음식물쓰레기를 배출할 때 수분을 최대한 제거해야 무게를 줄일 수 있다.
RFID : Radio Frequency Identification 반도체 칩이 내장된 태그, 라벨, 카드 등의 저장된 데이터를
무선 주파수를 이용해 비접촉으로 읽어내는 인식 시스템
RFID 방식의 음식물 대형감량기는 자체적으로 음식물쓰레기를 퇴비로 만들어 낸다.
지구를 살리는 일상 속 작은 실천!
하나. 식재료는 필요한 만큼만 사고 적정량만 조리하는 습관을 가져주세요.
둘. 음식물쓰레기는 수분을 최대한 제거해 부피를 줄여주세요.
셋. 음식물쓰레기인지 아닌지 버리기 전에 다시 한번 생각해주세요.
※ 전 국민이 음식물쓰레기를 20% 줄이면 온실가스 배출량을 연간 177만t 줄일 수 있습니다.
음식물쓰레기를 실은 차량이 음식물 처리 반입장에 쓰레기를 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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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특별시 인천 쓰레기 독립
쓰레기가 치워지지 않고 나뒹구는 모습은 도시의 쇠퇴를 의미한다.
쓰레기가 처리되지 않는 화려한 도시는 속 빈 강정에 불과하다. 도시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쓰레기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 지속 가능한 쓰레기 관리를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쓰레기 문제는 모두의 노력이 잘 어우러질 때 해결이 가능하다. 기업과 정부, 소비자 모두 우리와
우리 후손들이 앞으로 살아가야 할 공동의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쓰레기 독립 도시, 알맹이 도시, 재사용 도시, 분리배출 일등 도시 인천의 미래를 기대한다.
첫째, ‘쓰레기 독립 도시’가 돼야 한다
지역에서 발생하는 쓰레기는 지역 내에서 처리해야 한다. 발생지 처리 원칙이 관철 돼야 한다. 다른 지역에 쓰레기 처리를 떠넘기는 것은 환경 정의에도 맞지 않고, 쓰레 기 처리의 안정성도 떨어지며, 쓰레기의 장거리 운반에 따른 오염 물질 배출도 증가 한다. 지역 내에서 물질이 순환되는 구조를 갖추는 것이 최선이다.
둘째, ‘알맹이 도시’가 돼야 한다
도시에서 발생하는 쓰레기 중 플라스틱이 가장 많고, 플라스틱 중 일회용 포장재의 양이 가장 많다. 쓰레기 문제의 주범은 일회용 플라스틱 포장재다. 한번 사용하고 버 려지는 플라스틱병과 비닐, 일회용 컵, 일회용 배달 용기 등으로 인해 쓰레기 산이 만
들어진다. 포장재를 벗긴 소비 방식이 필요하다. 포장재 없는 제품만 판매하는 제로 웨이 스트Zero Waste 매장이 동네마다 하나씩 들어서야 한다. 포장재를 벗긴 알맹이만 파는 알맹 이 도시가 돼야 한다. 제로 웨이스트 매장이 동네마다 들어설 수 있도록 지자체에서 적극 지원할 필요가 있다. 소비자들도 자기 용기를 들고 가서 알맹이만 필요한 만큼 구매하는
‘용기 내는’ 소비가 필요하다.
셋째, ‘재사용 도시’가 돼야 한다
물건을 오래 써야 하고, 중고품 거래가 활성화돼야 한다. 수리·수선 및 중고품 매장이 늘어 나야 한다. 물건을 쓰레기로 버리기보다는 필요한 사람이 다시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당 근마켓처럼 온라인 플랫폼이 활성화되는 것도 바람직하지만 기업이나 개인들로부터 중고 품을 기부받아 판매할 수 있는 중고품 매장도 많아져야 한다. 결국 지자체가 인프라 구축 에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
넷째, ‘분리배출 일등 도시’가 돼야 한다
분리배출이 잘되기 위해서는 가정에서 쓰레기로 배출되는 물품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필 요하다. 재활용품으로 분리배출해야 하는 물품과 일반 쓰레기로 버려야 하는 물품에 대 한 정확한 구분이 필요하다. 정부 및 지자체가 분리배출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재활용되는 것들도 특성에 따라 분리수거를 할 수 있는 체계가 다양해져야 한다. 아 파트와 주택가의 분리수거 체계가 다르고, 제품의 종류별로 특성이 다르다. 재활용이 가 능하면서도 부피가 작은 것들 혹은 양이 적은 것들은 수거함을 설치하고 따로 모을 수 있 는 체계가 필요하다. 칫솔이나 빨대, 카트리지 용기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해외에서는 식 칼 등 수거하는 작업자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들도 수거함을 통해 따로 모으기도 한다. 주 민들은 재활용품을 기준에 맞게 정확하게 배출해야 한다. ‘비헹분섞’을 해야 한다. 내용물 은 비우고, 헹구고, 라벨 등 이물질은 분리하고, 재활용되는 것과 되지 않는 것들을 섞지 말아야 한다. 특히 비우고 헹구는 것이 중요하다. 오염된 상태로 배출하면 선별 및 재활용 하는 작업 현장의 위생 문제가 발생할 뿐만 아니라 재생 원료의 품질도 나빠진다. 깨끗하 게 배출하는 것은 분리배출의 예의다. 사람과 이별할 때뿐만 아니라 물건과 이별할 때도 예의가 필요하다.
쓰레기 독립 도시 인천으로 가는 길
글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
22 23 자원순환 Q&A
시민을 위한 자원순환 안내서
수도권매립지를 종료해야 하는 이유와 선진국의 사례
우리 시가 자원순환 정책 대전환을 선언했다. 여기서 잠깐, ‘자원순환’이라는 단어 자체가 시민들에게는 생소하고 모호할 수 있다. 그래서 준비했다.
Q&A로 알아보는 우리 시 자원순환 정책의 모든 것. 한 장 한 장 따라가다 보면, 인천이 열어가는 쓰레기 독립, 친환경 미래가 보인다.
【예습 안내】
시민을 위한 자원순환 안내서 ‘자원순환 Q&A’. 4월에는 ‘인천시의 자체적인 폐기물 처리 시설 설치 필요성’을 주제로 우리 시의 방향성을 알아봅니다.
왜,
피해는 인천 시민의 몫입니까?
쓰레기매립지에 쌓이는 쓰레기만큼, 인천 시민들의 고통도 차곡차곡 쌓여왔습 니다. 수도권 2,600만 명이 배출하는 쓰레기가 30년간 인천에 매립됐습니다. 이 로 인해 인천 시민들의 건강과 재산이 위협받아 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 다. 수도권매립지 조성 당시 반경 5km 이내 거주 인구는 2만 명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70만 명으로 증가해 자연스레 피해 인구도 늘어났습니다. 인천 서구 면 적의 약 11%이자, 서울 여의도 면적의 여섯 배에 달하는 거대한 수도권매립지 는 도시의 효율적 활용에도 커다란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현재 수도권매립지 에는 인천과 서울, 경기의 생활 폐기물과 건설 폐기물 등 하루 9,230t의 쓰레기 가 반입되고 있습니다. 3개 시·도 중 인천이 21%로 가장 적은 양입니다. 그런데 왜, 인천이 가장 큰 피해를 입어야 하는 것일까요?
이제,
‘쓰레기 처리 도시’라는 오명을 벗어던질 때입니다 수도권매립지 종료로 인천의 자존심을 회복해야 합니다. 쓰레기 처리 도시라는 오명을 탈피해야 합니다. 환경 문제도 더이상 두 고 볼 수 없는 일입니다. 건설 공사와 사업장 폐기물의 대량 반 입과 직매립 방식의 처리는 침출수와 메탄가스, 미세먼지 등을 발생시키며 인천의 땅과 공기를 더럽히고 있습니다. 도시의 효 율적인 활용을 통한 지속 가능 발전을 위해서도 수도권매립지는 반드시 종료되어야 합니다. 수도권매립지 종료는 단순히 수도권 의 쓰레기를 받지 않는 것을 넘어, 선진국형 친환경 자원순환 체 계 도입의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이미,
유럽 선진국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쓰레기 직매립은 후진국형 모델입니다. 재활용에 대한 인식과 노력이 낮아지고, 쓰레기 양이 늘어나는 직매립 방식은 도시화 율이 90%가 넘는 우리 현실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이에 따라 인천도 환경 선진국의 쓰레기 처리 방식을 도입하기 위해 쓰레 기매립지를 종료하려는 것입니다. 환경 선진국으로 알려진 스 위스(2000년)와 노르웨이(2001년), 오스트리아(2004년) 등 다 수 유럽 국가들은 폐기물을 소각·재활용 후 최소한의 폐기물만 을 매립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재활용을 통해 쓰레기 양 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일부 남은 쓰레기는 친환경 시설에서 소 각해 소각재만 지하에 매립하는 것으로, 인천시가 도입하려는 자원순환 방식입니다.
③ 수도권매립지 종료 이유와 선진국 사례
3
유럽 환경 선진국들의 쓰레기 처리 방식
수도권매립지 폐기물 반입 비율
6
6 6
(2019년 수도권매립지 통계 연감)
독일
2005년 6월 이후 유기물과 종이 등 생분해성 물질 매립장 직매립 금지 스위스
2000년 이후 가연성 폐기물 직매립 금지
노르웨이
2001년 이후 생분해성 폐기물 매립장 직매립 금지
오스트리아
2004년 이후 중간 처분 과정 없이 매립장 반입 금지
25 인천 명문교를 찾아서 24
새로운 100년
역사를 향해 가는 길
세상 모든 학교는 귀하다. 허나 그 속에서도 특별 한 전통과 저력을 품은 곳이 있다. 학교를 통해 도시를 들여다보는 인천 명문교를 찾아서. 그 열 번째 등굣길을 따라 옥련동 비탈길을 오른다. 오 래된 송도에서, 멀리 새로운 송도를 굽어보듯 자 리한 송도고등학교. 한 세기가 넘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그곳을 한국 농구의 전설 유희형(47회 졸업) 전 KBL 심판위원장과 함께 걸었다.
글 전규화 자유기고가│사진 최준근 자유사진가
남다른 교육이 탄생시킨 농구 명문
184cm. 훤칠한 키의 남성이 학교에 들어선다. 초창기 한 국 농구 스타플레이어의 계보를 이었던 유희형이다. 올 해 74세라는 나이는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 그가 가장 먼 저 찾은 곳은 역시나 농구 코트다. 송도체육관. 손자뻘 되는 후배들이 구슬땀을 흘리는 한국 농구의 산실이다.
“내가 운동할 때만 해도 체육관 같은 건 꿈도 못 꿨어.
교실 6개를 이어붙여 체육관으로 만들었지. 여름엔 쌀 과 이불을 가져와 함께 먹고 자며 훈련했어. 그런데도 그렇게 성적이 좋았다고.”
유희형은 한국 농구의 가장 눈부셨던 시절을 함께했다.
송도중학교 3학년 시절 모교를 사상 처음 전국대회 1위 에 올려놨던 그는 1968년 국가대표에 선발되며 미국으 로 전지훈련을 떠났다. 주전 선수들의 면면은 화려했다.
득점 기계 신동파, 농구 천재 김영일뿐만 아니라 당시 최
고의 선수로 손꼽히던 이인표, 김영기가 버티고 있었다.
남은 한 자리가 바로 최연소 국가대표 유희형이었다.
“내 농구 인생과 송도고 농구부에는 은인이 한 분 있어.
고故 전규삼 선생님이야. 송도고가 개성에 있을 때부터 교사로 재직하셨는데, 만능 스포츠맨이었어. 1952년 송 도고가 인천에서 다시 문을 열 때도 함께하셨지. 개인적 인 이유로 교편을 내려놓은 뒤에도 무보수로 농구팀을 지도할 만큼 열정이 대단하셨어.”
전규삼 선생의 훈련 방식은 획기적이었다. 미국 NBA 선 수들과 같이 빠르고 화려한 플레이를 주문했다. 탄탄한 기본기는 그야말로 기본. 송도고가 두각을 나타내기 시 작했다. 1965~1966년에는 전국체전 2연패를 달성했다.
서울 소재 고등학교의 전유물이던 우승컵을 인천의 학 교가 들어 올렸다. 그렇게 송도고는 김동광, 이충희, 강 동희, 신기성, 김승현, 김선형 등 당대 최고의 선수들을 배출하며 농구 명문의 반열에 올랐다.
왼쪽부터 송도중고등학교 총동창회 조영철 사무국장,
이상원 송도고등학교 교장, 47회 졸업생 유희형 전 KBL 심판위원장
연수구 옥련동에 자리한 송도고등학교 모습.
개성에서 개교 후 중구 송학동을 거쳐 1983년 이곳에 자리 잡았다.
⑩ 송도고등학교
※ 본 취재는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준수해 진행했습니다.
인성과 실력을 겸비한 인재 양성
학교 정문에 큼직하게 새겨진 글귀, ‘사람이 먼저 되라’. 지식보다는 인 간다움을 강조하는 송도고의 교시校是다. 그 시절, 농구 실력만큼이나 인성을 중요시했던 전규삼 선생이 그러했고, 개인보다 국가의 성장과 발전을 우선시했던 선배들이 그러했듯, 오늘날도 송도고는 학생들의 사람됨을 최우선의 가치로 여기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학업적인 면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크게 국제화 와 사회, 과학, 의과학, IT 등 6개 중점 과정을 운영하고 있는 송도고.
특히 올해 첫 졸업생을 배출한 IT 중점 과정에서는 졸업생 27명이 모두 중앙대와 한양대, 고려대 등 명문 대학에 진학하는 성과를 올렸다. 의 과학 중점 과정 역시 10명이 넘는 졸업생이 의과대학에 입학했고, 국제 화 중점 과정을 통해서도 일본 명문대로의 진학을 성공시켰다. 올해 목 표는 글로벌 인재 양성이다. 영어 중점 학교 운영을 통해 공항과 항만이 자리한 인천을 닮은 세계 속 인재를 길러내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일 예 정이다.
성장과 발전을 위한 노력은 다른 학교들의 귀감을 샀다. 한때는 전국 30개 이상의 학교에서 송도고의 교육 과정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방문 하기도 했다. 차츰 늘어나고 있는 정시 모집 비중. 송도고는 달라지는 교육 환경에 대비한 수준 높은 교육 서비스를 빈틈없이 준비하고 있다.
인성과 실력을 겸비한 미래 인재를 배출하고 지역과 국가에 이바지할 수 있는 준비된 일꾼을 길러내는 일. 새로운 100년을 꿈꾸는 송도고의 시선은 늘 ‘사람’을 향해 있다.
27 인천 명문교를 찾아서 26
2002년 일어난 연평해전 당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고故 윤영하 소령도
자랑스러운 송도인 중 하나다.
농구부 대선배 유희형이 고3 후배들에게
드리블 시범을 보이고 있다. 송도고는 연평해전 13주년이던
2015년, 국내 최초 주니어 ROTC를 창단했다.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순국선열의 산실
송도고는 1906년 10월 3일 개교했다. 위치는 개성이었다.
그러다 6·25전쟁 발발로 1953년 4월 인천 중구 송학동으로 내려와 피란 개교를 했다. 지금의 옥련동 교사에 자리 잡은 것은 1983년부터다.
“모진 풍파 속에서도 한 세기가 넘는 세월을 지켜왔다는 자 부심이 무척 크지. 오래된 역사만큼, 나라와 민족을 위해 헌 신했던 선배들도 아주 많아.”
한국 농구의 산실 송도고가 최근 독립운동의 산실로 인정받 았다. 2월, 인천대학교가 묻혀 있던 독립유공자 316명을 발 굴해 국가보훈처에 포상을 신청했는데, 그중 무려 73명이 송도고 출신으로 밝혀졌다. 이들 중 28명은 한영서원의 학 생과 교사들이었다. 1916년 독립군가와 애국가, 일제를 비 판하는 곡을 모은 ‘애국창가집’을 제작·반포하는 운동에 참 여했지만, 그간 빛을 보지 못했다. 이들 역시 신영순, 이만규 등 주범으로 기록된 교사들과 함께 징역형을 받거나 고문과 옥고를 겪었던 독립운동가들이었다. ‘개성격문사건’(1932) 등으로 대표되는 1930년대 학생 주축 반제국주의 운동에 참 여했던 송도고등보통학교 학생 45명도 포함됐다. 한영서원 과 송도고등보통학교는 송도고의 전신이다.
독립운동가뿐만 아니다. 한국인 최초의 물리학자이자 서울 대학교 총장을 지낸 최규남, 세계적인 나비 학자로 이름을 날린 석주명, 한국의 슈바이처라 불리는 장기려 등도 송도고 의 역사 속에서 찬란히 빛나고 있다. 2002년 일어난 연평해 전에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윤영하 해군 소령 역시 자 랑스러운 송도의 아들이다. 윤영하 소령의 순국은 모교의 전 국 최초 주니어 ROTC 창단으로 이어졌다.
⑩ 송도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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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미림극장, 전국 최초 치매 영화관 운영
의 등장으로 2004년 문을 닫은 미림극장이 부활한 건 2013년 10월이다. 노인들을 위한 실버 극장인 ‘추억극 장 미림’으로 재개관한 그날 이후 미림극장은 자신만의 정체성을 재정립하며 한 발 두 발 걸어왔다.
미림극장이 한 달에 한 번 치매 전문 극장으로 변신한 다. 인천시가 전국 최초로 치매 친화 전문 극장인 ‘가치 함께 시네마’를 오는 3월~11월 운영하기로 한 것.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 미림극장에 가면 ‘내 머리 속의 지우 개’ ‘스틸 앨리스’와 같은 치매 관련 영화를 관람할 수 있다. 3월 개막식에선 초로기 치매 환자의 가족이자 독 립영화 감독인 조기현 감독의 작품을 상영하고 대화하 는 시간도 갖는다.
가치함께 시네마 운영은 ‘치매 환자와 가족의 안식’ ‘치 매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 전환’을 위해 마련됐다. 치 매 환자와 가족이 안심하고 영화를 즐길 수 있는 여건 을 조성하고, 초기 치매 환자가 영화관 직원으로 일할 수 있도록 일터도 제공한다. 치매 영화 프로그램 진행 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최현준(47) 미림극장 대표는
“2019년 치매 인식 개선 전시와 캠페인, 영화감독 초청 대화 시간을 한 차례 진행했는데 반응이 좋았다”고 말 했다.
인천 사람들에게 미림극장은 극장 이상의 그 무엇이었 다. 문화예술 시설과 공간이 변변치 않던 산업화 시대 엔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주는 대표적 문화 공간이었고, 권칠인(60), 임순례(60)와 같은 인천 출신 감독들에겐 영화인의 꿈을 키워준 산실이었다. 2013년 재개관 이 후엔 외롭고 갈 곳 없는 노인들의 해방구로 자리매김해 왔다. 미추홀구가 운영하는 ‘영화공간주안’과 함께 독 립·예술 영화 상영관으로 영화 도시 인천의 위상을 높
여주는 중요한 아이콘이기도 하다. 극장만큼이나 ‘미림 극장 3인방’이었던 간판 그림 화가 김기봉(89) 상무, 기 도 양재형(96) 전무, 영사기 조점용 기사는 모두 건재 하다.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실버·예술·독립 영 화관으로 또 치매 전문 영화관으로, 미림극장은 영화의 다양성과 사회적 약자를 위한 영화관으로 오롯이 서 있 다. 치매 영화 관람은 무료이며 사전에 신청해야 한다.
문의 032-472-2027
한국전쟁 정전 선언이 얼마 지나지 않은 1957년. 동인천역 뒤쪽 송현 동에 커다란 천막이 들어섰다. 이따금 낄낄대는 웃음소리나 탄식이 천 막 안에서 새어 나왔다. 의자 아닌 가마니를 깔고 앉아 변사가 해설해 주는 영화를 보았지만 사람들은 마냥 행복하기만 했다. 천막 극장인
‘평화극장’이 ‘아름다운 숲’으로 변신한 건 이듬해다. 고은진 사장이 영 화상영관을 짓고 ‘미림극장’의 시대를 연 것이다.
전후 이산의 고통과 보릿고개를 넘던 사람들은 열광했다. 더욱이 송 현·송림동에 정착한 피란민들에게 미림극장은 수구초심의 슬픔을 어 루만져준 ‘시네마 천국’이었다. 조점용(77) 전 미림극장 영사기사는
“500명 좌석에 2,000여 명이 들어올 정도였다”며 “한 달에 두 번씩 안 전을 기원하는 고사를 지내기도 했다”고 회상한 바 있다. 멀티플렉스
월별 상영작
(오후 2회 상영 예정)3월 31일 1포 10kg 100개의 생애
(개관식, 감독과의 대화) 8월 25일 감쪽 같은 그녀
4월 28일 내 머리 속의 지우개 9월 29일 앙: 단팥 인생 이야기
5월 26일 엄마의 공책 10월 27일 스틸 앨리스
6월 30일 매일매일 알츠하이머 11월 24일 이별까지 7일
7월 28일 그대를 사랑합니다 12월 29일 소중한 사람(송년 상영회 : 단골 가족
상영 소감 나눔, 2022년 계획 안내)
“치매, 영화로 치유하세요”
글·사진 김진국 본지 총괄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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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바람이 쌩쌩 불던 지난 2월 8일 오후, 중구 전동 미추홀문화회관.
옛 인천여고를 리모델링한 이 건물로 사람들이 한두 명씩 들어왔다. 2층 에서 발열 검사와 손 소독을 마친 사람들이 인천시 문화예술과, 인천문 화재단 직원들의 안내에 따라 3층으로 올라갔다. 3층에서 간단한 상담 을 마친 사람들이 한 장의 카드를 손에 쥔 채 밝은 표정으로 건물 밖으 로 빠져나갔다.
이날 발걸음을 한 사람들은 인천시가 지역 예술인들을 위해 마련한 ‘인 천예술인 긴급 생계지원금’을 받기 위해 온 예술인들이다. 이명지(75) 사진작가는 “온라인 전시만 할 수 있어 어려움이 많던 차에 지원을 받 아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한 수혜자는 “코로나 이후 막노동이나 택배, 음식 배달을 하는 예술인들이 많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특집 인천시 맞춤형 핀셋 지원 현장을 가다 30
“추운 겨울,
따뜻한 손길 감사합니다”
문화예술인, 소상공인 등 필요한 사람들에게 정부와 별개로 시 자체 5,754억원 지원
글 김진국 본지 총괄편집국장 │사진 장현선 자유사진가
문화예술인, 소상공인 등 가장 필요한 사람들에게 가장 신속하게 지원하는 ‘인천형 핀 셋 지원’ ‘맞춤형 긴급 지원’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정부의 3차 재난지원금과는 별개 로 시가 자체적으로 세운 5,754억원의 예산을 집행하면서 지원이 시급한 대상자들이 혜택을 받고 있는 것. 지원 대상은 집합금지 및 집합제한업종 소상공인, 문화예술인과 관광업체, 어린이집, 법인택시와 전세버스 종사자, 청년층으로 이들은 더 두터운 지원 을 받는 중이다. 인천시의 이 같은 정책이 서울, 부산, 광주 등 전국적 확산에 순기능 으로 작용하자 정세균 국무총리는 SNS를 통해 “중앙정부의 모자란 부분을 채워준 인 천형 핀셋 지원에 감사한다”는 내용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
인천시는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지역 예술인을 위해 20억원의 긴급 생계지 원금을 전달하는 것을 비롯해 자체 예산 5,700억여 원이 소진될 때까지 인천형 핀셋 지원을 계속해 나가기로 했다.
문의 120
장태호 조각가
“인천의 문화예술인들이 느끼는 문화예술복지 체감지 수는 상당히 높은 편입니다. 시에서 문화예술인들에게 여러모로 신경 써주는 것 같아 감사합니다.”
장태호(54) 작가는 “인천시의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배 려가 많이 느껴진다”며 “설 명절을 앞두고 지원을 받아 연휴를 따뜻하게 보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소 작품을 통해 우직한 삶의 모습을 탐구하는 장 작가 는 코로나19로 인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지난 1월 ‘도 든아트하우스’에서 ‘소소한 꿈’전을 진행했다. 그는 소 가 가진 신체적 특성과 성품을 선이 굵은 황소의 모습 으로 빚어낸 작품들을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코로나19로 인해 크고 작은 전시들이 많이 취소되어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인천시의 핀셋 지원은 가뭄에 단비처럼 문화예술인들에게 큰 격려가 될 것입니다.”
이지숙 수필가
“예술인들을 지원할 경우 창작 결과물을 인천 시민들이 향유할 수 있다는 인천시의 인식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시민들에게 작품으로 봉사하라는 말씀으로 알겠습니다.”
이지숙(57) 작가는 “코로나19 이후 모든 게 중단되어 어 려웠는데 인천형 핀셋 지원으로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 라며 “창작 활동을 열심히 해 작품으로 보답하겠다”고 밝혔다.
인천문인협회 회원이면서 인천서예협회 회원인 그는
“작가들은 작품을 제작하고 섭외하고 홍보물을 만들고 하는 게 다 돈”이라며 “전시 공연을 비롯해 대부분의 문 화예술 행사가 취소되면서 예술인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는 게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어려운 와중에 도움을 받으니 액수를 떠나 그 섬세한 배 려가 고마울 따름입니다. 앞으로도 인천시가 시민의 아 픈 곳을 찾아 도움을 주면 감사하겠습니다.”
MINI INTERVIEW
지난 2월 8일 미추홀문화회관에서 ‘인천예술인 긴급생계지원금’을 신청하는 문화예술인들이 상담을 하고 있다.
지원금은 체크카드 형태로 지급된다.
33 그간 잘 지내셨나요? 32
글 김진국 본지 총괄편집국장│사진 김성환 포토저널리스트
‘봉길 매직’으로
중국 대륙 축구를 깨우다
② 김봉길 전 인천Utd 감독
봉길 매직, 축구인 김봉길(55)이 지휘봉을 잡으면 어김 없이 이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마치 마술이라도 부리는 것처럼, 그가 이끄는 팀마다 예상을 뒤엎는 좋은 성적을 거두며 승승장구한다.
지난해 사령탑을 맡은 중국 ‘산시성(山西省) 시안(西安) 창안 FC’도 그랬다. 중국 2부 리그 최하위로 “잔류만 해 도 성공”이라던 팀이었다. 김봉길은 그러나 휘리릭, 봉 길 매직으로 이 팀을 중위권으로 올려놓았다.
부평 출신으로 우리나라 중·고등학교 축구 역사를 새로 쓴 김봉길을 신축년 설 연휴 마지막 날 ‘인천愛뜰’에서 만났다. 그는 소띠 해 새로운 도약을 위해 중국에서 잠시 귀국, 계양구 자택에서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귀국하자마자 코로나 검사와 자가격리 2주 하고 나니 시간이 금세 지나가네요. 현재 중국의 1·2부 리그 구단 주들로부터 러브콜을 받아 진로를 고민하고 있어요. 팀 이 확정되는 대로 중국으로 갈 겁니다.” 김봉길은 “얼마 전 산시팀과 1년 계약을 끝내고 중국에서의 새로운 도전 을 준비 중”이라며 “1년 만에 고향에 오니 모든 것이 정 겹기만 하고 참 좋다”고 말했다
부평 고향, 달리기 잘해 부평동초 3년 때 스카우트, 부평동중·부평고 축구부 창단 주역
고향, 나고 자란 곳. 김봉길의 고향은 부평4동이다. 현 재 부평대로 우체국 뒤쪽 골목에서 태어나 쭈욱 살아왔 다. 어려서부터 김봉길은 여간 개구쟁이가 아니었다. 서 너 살 때부터 돌멩이 던지기와 같은 과격한 놀이를 하는 가 하면, 틈만 나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골목을 뛰어
다녔다. “엄마 아버지는 돈 벌러 부평시장으로 나가시 고 열다섯 살 차이 나는 큰형을 비롯해 형들이 모두 학 교에 가면 외톨이로 남겨진 기분이었어요. 그게 싫어 밖 으로 나가 뜀박질을 하곤 했지요.” 부모님의 생계 터전 은 부평시장이었다. 아버지는 리어카에서 솜사탕과 가 루 주스를, 어머니는 좌판을 깔고 채소 등을 팔았다. 그 렇게 억척스럽게 4형제를 키워냈다.
푸성귀와 생선 냄새가 진동했지만 시장 골목의 바람을 가르는 느낌은 언제나 좋았다. 스피드를 좋아했던 김봉 길에게 초등학교 3학년 때 함께 달려주는 동반자가 생 겼으니, 축구공이었다.
부평동초 축구부는 4학년이 되어야 가입할 수 있었지 만 봉길은 3학년 때 합류한다. 키는 크지 않아도 발이 빠른 봉길을 유심히 지켜보던 축구부 감독이 그를 축구 부원으로 스카우트한 것이다. “학교에 육상부가 없었 는데 육상대회가 열리면 학교 대표선수로 나갔거든요.
운동회가 열리면 1등에게 주는 공책과 연필은 늘 제 차 지였어요.”
축구부원이 된 뒤, 수업 전후 새벽 운동과 오후 운동을 하며 선수로서의 기본기를 다진 봉길은 1년여 만에 대 표선수 유니폼을 입는다. 대회 출전은 체격이 좋은 6학 년 선수들의 차지였지만, 봉길은 이미 4학년 때 엔트리 에 포함될 만큼 발군의 실력을 인정받는다.
봉길이 유니폼을 입은 뒤 부평동초는 시도대항 축구 대 회에서 준우승을 하는 등 전국적 축구 명문으로 쑥쑥 성 장한다. 축구와 함께 부쩍 자란 봉길이 뜻밖의 제안을 받은 건 중학교 진학을 앞둔 시점이었다. 당시 인천·경 기권역 중학교 축구 명문은 안양중학교로, 실력 있는 학 생들은 안양중으로 진학하는 게 정규 코스였다. 봉길 또 지난해 중국 프로축구팀 감독을 하다 잠깐 고향을 찾은 김봉길 전 인천 Utd 감독이
지난 2월 14일 인천시청 앞 광장 ‘인천愛뜰’에서 활짝 웃고있다.
35 그간 잘 지내셨나요? ② 김봉길 전 인천Utd 감독 34
인천과 전남 경기에서 김봉길 감독 출처 : 인천유나이티드FC 한 고향을 떠날 생각으로 마음이 싱숭생숭하던 차였다.
“제가 6학년 때 부평동초 축구부가 유명해졌거든요. 그 러다 보니 시교육청에서 부평동중에 축구부를 창단할 테니 다른 지역으로 가지 말고 15명 모두 진학하라고 한 겁니다.”
좋은 선수들을 안양에 빼앗기지 않으려는 인천시교육 청의 프로젝트였다. 그 선택은 옳았다. 봉길이 3학년이 되던 1981년 부평동중은 춘계·추계·청룡기 등 빅3 대회 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린다. 봉길에게 ‘전국에서 가장 축구를 잘하는 중학생 선수’란 찬사가 쏟아졌다. 선수들 이 고등학교에 진학할 시기가 다가왔다. 재력도 배경도 없이 ‘인천 짠물’ 근성으로 승승장구하던 봉길에게 중학 교 진학 때와 똑같은 제안이 들어온다. “김봉길이 진학 을 약속한다면 부평고에 축구부를 창단하겠다”는 인천 시의 방침이 나온 것이다.
“당시 인천체고와 운봉공고에 축구부가 있긴 했는데 영 등포공고, 한양공고, 중동고 같은 축구 명문교는 다 서 울에 있었어요. 저는 영등포공고로 갈 생각이었지요.”
김봉길은 “당시 초등학교 때 같이 올라온 동기 15명이 그대로 함께 운동하고 있었는데 내가 서울로 빠지면 동 기들이 뿔뿔이 흩어져야 하는 상황이었다”고 회상했다.
봉길은 결국 초등학교 때부터 함께한 동기들과 고향에 남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축구부원 15명이 부평고 축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