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교육실천연구 제6권 1호 (2022.6.) 5-18.
팬데믹과 젠더 분쟁 시대의 교양 교육
안소미*
【목 차】
1. 머리말
2. 사랑과 성과 영문학 강좌 설계
1) 문제 제기식 크리티컬 리터러시 교육
2) 원격 교양 교육의 현실적 제약
3. 젠더 갈등과 19세기 여성 영문학 텍스트 원격 토론 1)『제인 에어』실시간 토론
2)『오만과 편견』게시판 토론
4. 맺음말
【초록】
본 논문은 필자가 2020년 팬데믹 이후 원격으로 두 차례 진행한 학부 영문학 교양 과목
“사랑과 성과 영문학”의 예를 바탕으로, 21세기 한국 대학생들의 젠더 갈등이 원격 교양 과 목에 미치는 현실적 어려움을 짚어보고, 이에 대한 해결 방안 및 한계에 대해 살펴보려 하는 것이다. 필자는 남녀 대학생들이 함께 수업을 들으면서 수업에 대한 자신들의 느낌과 생각을 진솔하게 나누는 토론 방식을 통해 크리티컬 리터러시(critical literacy)를 고취시켜야 하는 문제 제기식 교육을 설계하고 운영하였다. 그 과정에서 현 한국 사회의 젠더 갈등이 간과할 수 없는 큰 문제로 부각되고 있음을 절감하였기에, “사랑과 성과 영문학” 강좌 운영을 통해 학습자들이 불안감 없이 편안하게 소통할 수 있는 원격 토론 방식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탐색 하게 되었다. 샬롯 브론테(Charlotte Brontë)의 『제인 에어』(Jane Eyre)나 제인 오스틴(Jane Austen)의 『오만과 편견』(Pride and Prejudice)과 같은 19세기 여성 영문학 텍스트 속 연애 나 결혼, 젠더 이슈를 효과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실시간 토론 및 게시판 토론을 고루 활용해 본 결과, 수강생들이 불안감 없이 편안하게 젠더 관련 이슈를 논의할 수 있는 방식으로는 정 제된 글로 쓰여진 서로의 생각을 일정 기간 동안 공유하고 이에 대한 숙고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게시판 토론이 즉각적으로 진행되는 실시간 토론보다 훨씬 유용한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게시판을 활용한 토론 방식을 운영할 경우, 수강생들이 다른 학생들이 남긴 의견을 시간을 두고 면밀하게 정독하면서 본인의 생각과 타 수강생들의 의견을 비교, 대조하는 사고 과정을 거쳐 본인의 본래 생각을 다른 학생들에게 맞추어 수정해가는 문제점을 나타내기도 했다. 따라서 이 문제는 향후 교양교육에서의 보완 과제로 남겨두고자 한다.
【키워드】문제 제기식 교육, 원격 교육, 인문학 교양 교육, 젠더 갈등, 크리티컬 리터러시
* 부산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 [email protected]
1. 머리말
2020년 이후로 코로나19 바이러스 위기와 더불어 한국 대학 교육에서 현실적으로 맞닥뜨
리게 되는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는 대학생들 간의 젠더 갈등이라 할 수 있겠다. 2010년대 후반부터 2020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의 젠더 갈등은 “법적·제도적 영역”을 넘어서서
“개인적·일상적 영역”으로까지 스며들어 확산되고 있는 추세인데(김기동·정다빈·이재묵, 2021, 6), 이는 남녀 대학생들이 함께 수업을 듣고 이에 관한 자신들의 느낌과 생각을 진솔하게 나누며 의사소통 능력 및 창의적 문제 해결 능력을 함양해야 하는 대학교 교양 강좌에서 상당히 크 게 가시화되는 경향이 있다. 무엇보다도 코로나19 확산 양상으로 원격 수업을 진행하다 보니 대면 수업에 비해 심화된 토론을 하기가 쉽지 않기에, 젠더와 같은 민감한 주제에 대한 열린 소통을 지향해야 하는 교양 교육을 보다 현 상황에 맞게 수정하여야 마땅한 상황이 되었다.
본 논문은 필자가 2020년부터 2021년까지 두 차례에 걸쳐 팬데믹 상황에 맞추어 원격 수업 으로 진행한 “사랑과 성과 영문학”1)이라는 학부 교양 수업의 예를 바탕으로, 다양한 문화와 역사 컨텍스트 속에서 탄생한 문학 텍스트 속 사랑과 성을 온라인으로 교육함에 있어서 현 한국의 젠더 갈등이 미친 어려움과 이에 대한 대응 방식 등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19세기 여성 영문학 텍스트인 샬롯 브론테(Charlotte Brontë)의 『제인 에어』(Jane Eyre)나 제인 오스틴(Jane Austen)의 『오만과 편견』(Pride and Prejudice)에 대한 학생들의 원격 토 론 전개 양상을 살펴보면서, 민감한 젠더 관련 주제를 다루는 인문학 원격 교양 교육에 있어 서 학생들의 다양한 관점을 존중하는 “크리티컬 리터러시”(critical literacy) 기반 문제 제기 식 토론의 실천 방안 및 향후 과제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2. 사랑과 성과 영문학 강좌 설계
1) 문제 제기식 크리티컬 리터러시 교육
먼저 “사랑과 성과 영문학”이라는 교양 과목에 대한 소개로 논의를 시작하고자 한다. 강좌 명 자체가 명시하듯이, 이 강좌는 영문학을 통해 사랑과 성을 이해하는 과목이다. 강좌에 대 한 소개는 다음과 같다.
인간에게 사랑이란 가장 보편적인 감정이며, 사랑과 성의 주제는 지극히 원초적이고 본질적인 인 간 담론을 구성한다. 사랑의 서사가 문학 속에서 꾸준히 갱신되면서 동시에 구태의연함을 반복하
1) 본 논문에서 필자가 분석하는 “사랑과 성과 영문학”은 부산대학교 영어영문학과가 2학기마다 개설하는 교양 선택 교과목이다.
는 것은 그것이 이미 문학 이전의 서사로서, 어쩌면 인간의 기원과 종말을 같이 하는 것이기 때 문일 것이다. 이 과목은 시대별 영문학을 매개 삼아, 사랑과 성에 대한 개인과 사회의 관념이 어 떻게 변화해왔는지를 이해하고, 이에 비추어 우리의 삶에 대해서도 성찰해보고자 한다.
위의 강좌 소개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랑과 성과 영문학” 과목은 문학을 통해 사랑과 성이 개념화되어온 역사적 과정을 고대부터 현대까지 비교적 객관적으로 살펴봄과 동시에 그 같은 객관적 관찰을 바탕으로 수강생 개개인이 자신의 주관적인 사랑관을 다듬고 정립하는 것에 그 목표를 두고 있다. 기존 영문학 텍스트 교육의 목표는 “권위 있는 기존의 비평이나 이론을 기반으로 한 작품 해석의 수동적인 지식 수용자”를 창출해내는 것이었으나, 21세기 들어서는
“발표, 토론, 저널쓰기 등을 중심으로 영문학 작품에 대한 비판적이고 창조적인 읽기, 쓰기,
말하기의 주체”를 생산해내는 것으로 그 방향이 변경되어왔다(조지현·조희정, 2016, 91-92).
이 같은 흐름에 발맞추어, 사랑과 성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다루는 필자의 영문학 교양 과 목 또한 문학 텍스트의 주제의식에 대한 수강생들의 솔직한 감상을 유도해내고 이를 수업 진 행 과정의 일부로 반영하게 되었다. 물론 성적 산출에 있어서는 강의에서 다룬 문학과 역사 에 대한 단답형 및 짧은 에세이 형의 중간고사와 기말고사에 중점을 두었으나, 이 같은 평가 와 별도로 학생들이 수업 중에 배운 다양한 사랑관에 비추어 자신의 사랑관을 정리하여 공유 하고 토론할 기회를 마련하는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하였다.
기본적으로 사랑과 성이 주된 주제로 등장하는 영문학 텍스트에 초점을 맞추었으나, 그러 한 텍스트와 연관된 역사적, 철학적 배경에 대해서도 충분히 다루는 방식으로 수업을 운영하 였다. 따라서 고대 그리스 에로스 철학 및 근대 낭만주의 사상, 현대 정신분석학이나 생명 정치 철학 등에 대해서 학습하였으며, 이러한 역사적, 철학적 컨텍스트에 기반하여 시, 소설, 희곡, 영화 등의 다양한 문학/문화 텍스트에 나타난 사랑과 성에 대해 살펴보았다. 시대별 배경 지식은 강의 영상을 통해 제공되었으나, 이를 문학 텍스트 속 사랑과 성의 재현 방식에 적용 시에는 실시간 원격 토론 및 스마트 교육플랫폼의 토론 게시판 기능을 활용하면서 학생 들이 자신들의 생각과 감상을 본인들에게 익숙하고 편안한 방식으로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주어진 텍스트에 대한 독자 입장에서의 해석을 적극 권장하면서 학생들이 자신의 고유한 읽기 경험을 반영한 지식 생산의 과정에 참여하도록 이끌었다.
교수자의 강의는 녹화 영상으로 제공하여 학생들이 여러 번 재생할 수 있도록 한 반면, 토 론에 있어서는 실시간 줌(zoom) 혹은 토론 게시판 글쓰기 기능을 활용하면서 수강생들끼리 서로의 생각을 확인할 수 있도록 설계하였는데, 이는 팬데믹 시대의 원격 교양 교육이 파울로 프레이리(Paulo Freire)(1968/2014)가 비판한 바 있는 “은행 저금식 교육”(banking concept
of education)으로 회귀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217). 프레이리는 주입식 교육 방
식을 “학생이 예금고가 되고 교사가 예금자가 되는 예치 행위”(an act of depositing, in which the students are the depositories and the teacher is the depositor)에 비유하며, 이러한 교육을 통해 일방적으로 지식을 주입받은 학생들에게 비판적 질문을 제기할 기회가 없음을 지적한다(216). 무엇보다도 은행 저금식 교육은 “인간과 세상 사이의 이분법”(a dichotomy
between human beings and the world)을 전제하기에 학생 개개인이 수업에서 배우는 지 식을 현실 세계에 연결짓지 못하게 만들고, 오로지 세계에 대한 적극적인 개선자가 되는 대 신 방관적 관찰자로서만 살게 만든다는 문제점을 갖는다(219). 이 같은 일방적 교육에 반대 하는 프레이리는 그에 대한 대안으로서 “문제 제기식 교육”(problem-posing education)의 필요성을 강조한다(221).
인간과 세계의 관계가 갖는 유동성을 인정하고, 자유로운 사고를 통해 기존의 가치 체계에 대한 비판적 질문을 던지는 문제 제기식 교육은 특히 “‘사람다운 삶’에 대해 규범적으로 반 성하고 연구하는 학문”인 인문학에 유효하다(손동현, 2006, 212). 그 중에서도 다양한 전공 분야의 학생들이 한데 모여 인간과 사회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나누는 개방형 교양 수업에 유효하게 적용된다. 이 같은 맥락에서 필자는 “사랑과 성과 영문학” 원격 강의가 녹화 강의 를 통한 지식 주입형 강의로 변질되지 않도록 디지털 플랫폼을 활용한 문제 제기식 토론을 적극 활용하였고, 이를 통해 학생들이 스스로를 지식의 예금고가 아닌 생산자로 인식할 수 있도록 하였다. 프레이리의 교육 철학에 기초하여, 미디어나 텍스트 해석에서 학습자 중심의 비판적 사고 능력을 강조한 것이 크리티컬 리터러시 기반의 교육이다. 이에서도 특히 문학 텍스트 교육에 초점을 맞춘 신시아 맥다니엘(Cynthia A. McDaniel)(2006)에 따르면, 크리티 컬 리터러시 교육에서는 학습자가 주체가 되어 문학 텍스트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하 는 토론을 권장한다. 다시 말해, 문학 텍스트 토론은 학습자 본인의 관점에서 자유롭게 “생 각하는 방식이자 살아가는 방식”(a way of thinking and a way of life)이 되어야 마땅하다 는 것이다(McDaniel, 2006, 176). 이와 같은 크리티컬 리터러시 교육을 원격으로 실행함에 있어서, 필자는 학생들이 전통적 강의실 못지않게, 혹은 그보다 더 편안하게 토론을 할 수 있는 방안이 있는지, 또한 원격 크리티컬 리터러시 교육의 문제점은 무엇인지, 찾아보고자 하였다.
2) 원격 교양 교육의 현실적 제약
사실 원격 교육은 크리티컬 리터러시를 고취시키는 문제 제기식 교육을 실시하기에 적합 한 면과 그렇지 못한 면을 모두 갖고 있다. 일단 온라인을 통해 물리적 거리를 초월하여 만 날 수 있는 만큼 학생 각자가 편안함을 느끼는 공간에서 수업을 듣고 토론에 임할 수 있다는 측면이 있다. 따라서 이상적으로 말하자면 대면보다는 비대면 원격 교육에서 구성원 모두에 게 편리하고 수월한 토론이 가능해질 것이다. 프레이리 이후로 교육학 분야에서는 이상적인 강의실이 구성원 모두가 자신의 배경이나 성향에 따라 차별을 받지 않는 가운데 편안한 소통 을 가능케 하는 “안전한 공간”(safe space)이어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정의해온 바 있다. 카 린 플레스너(Karin K. Flesner)와 마리 폰데립(Marie Von der Lippe)(2019)에 의하면, “안전 한 공간”은 구성원들이 서로 자신의 경험과 성찰을 편안하게 또 지속적으로 나눌 수 있는 안 전이 보장된 환경을 가리키며, 기본적으로 “물리적인 만남 공간”(physical meeting spaces) 에 한정되어왔다(276). 그러나 글로벌 팬데믹이 가시화된 2020년부터 구성원들끼리의 불편함
이 없는 민주적인 소통이 물리적인 만남을 통해서 혹은 물리적인 하나의 공간 안에서 일어나 야 한다는 공식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게 되었고, 구성원 간의 민주적 소통을 전제로 한 문 제 제기식 교육은 비대면 원격 교육과 결합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온라인 교육을 실행하면서 교육자들이 당면한 가장 큰 난제는 강의실이라는 물리 적 공간에 모여서 행하던 대면 소통의 진정성이 훼손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는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원격 교육이 전면 시행됨에 따라 교수자들이 경험한 어려움을 조사한 제니퍼 쉐퍼드(Jennifer Sheppard)(2021)에 따르면, 원격 수업에 임하는 교수자들의 어려움은 단순 히 새로운 테크놀로지에 대한 적응의 차원이 아니었다. 즉, 수업에 필요한 원격 디지털 플랫폼 을 사용하는 방법뿐 아니라, “전통적인 대면 수업에서 사용하던 방식, 커뮤니티를 만들고 학생 참여를 유도했던 것과 같은 방법 등을 온라인 공간에서도 활용 가능하게끔 전환하는 방법”
(how to transform in-person classroom practices, such as creating community and encouraging engaged student participation, into ones that worked in online spaces)에 대해 연구하면서 기존의 교수법을 전면 수정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던 것이다(65).
필자의 원격 강의 역시 적잖은 현실적 제약을 겪었는데, 특히 수업 구성원들 간의 반복적 인 물리적 만남을 통한 친밀감 형성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익명성에 묻히기 쉬운 온라 인 토론만으로는 사랑과 연애에 대한 구성원들의 진솔한 생각을 알기가 쉽지 않았다는 점에 서 그러하였다. 실시간 줌 수업에서 교수자가 먼저 호명하여 기회를 주기 전까지는 사랑과 성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감추고 발언 자체를 꺼려하는 학생들이 많았고, 토론 게시판에서는 이미 의견을 게시한 학생들에게 동의 혹은 반대를 표시할 뿐 그에 대한 본인의 고유한 생각은 밝히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으며, 수업이 끝나고 난 후에 교수자에게 따로 쪽지나 이메 일을 보내서 본인의 불안감을 이해해 달라는 요청을 전해오기도 하였는데, 이는 학생들이 원 격 토론 진행 과정에서 심리적으로 “안전한 공간”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았음을 알려준다.
3. 젠더 갈등과 19 세기 여성 영문학 텍스트 원격 토론
1)『제인 에어』실시간 토론
무엇보다도 “사랑과 성과 영문학”은 21세기 한국 대학생들에게 매우 민감한 주제를 다뤄 야 한다는 어려움을 안고 있었다. 20세기 후반까지 한국 사회의 젠더 갈등은 남성중심적 사 회 제도 차원의 성차별에 기인하는 것으로 널리 이해되었으나, 2010년대부터 “현대사회에서 이미 남성과 여성 간 차별이 상당 부분 해소되었기 때문에 젠더이슈의 부각이 오히려 남성의 역차별을 야기할 수 있다는 인식”이 급격히 퍼져나가게 되면서, 오히려 “개인적·일상적 영역”
에서의 젠더 갈등이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심화되기에 이르렀다(김기동·정다빈·이재묵, 2021,
11). 이 같은 젠더 갈등은 특히 20대 남성과 여성 사이에서 극대화되어왔기에(천관율, 2019),
사랑과 성에 대한 영문학 텍스트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이에 비추어 자신의 젠더관이나 사 랑관을 정립한 결과물을 다른 학생들에게 공유한다는 자체를 상당히 조심스러운 일로 받아들 인 학생들이 많았다. 후기 근대사회 속 무한경쟁을 경험 중인 한국 대학생들이 연애 경험을 통해서도 행복이나 성장의 가능성 대신에 젠더 간 사랑에 대한 기대치의 차이만을 확인하고 좌절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최근 연구가 증명하듯이(오세일·박태진, 2016), “사랑과 성과 영문 학” 수강생들 중에서도 남학생들과 여학생들의 입장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났다. 『제인 에어』 에 대한 감상을 편하게 나누자는 취지 하에 줌을 이용한 실시간 원격 구술 토론을 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남학생들과 여학생들의 반응이 엇갈리면서 토론이 매끄럽게 진행되지 못했다.
다수의 남학생들이 남자주인공 로체스터에게 성적으로 이끌리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를 억압으 로 느끼면서 벗어나려 하는 여자주인공 제인의 내적 갈등을 이해하기 힘들다고 하면서 독자 로서 주인공 제인과 거리를 두었으나, 한편으로 다수의 여학생들이 제인에게 상당 부분 감정 이입을 하면서 로체스터와 씬진의 가부장적 태도를 비난하면서 이를 가스라이팅이라고 표현 하는 등 19세기 남성들에 대한 강도 높은 도덕적 비판을 이어갔기 때문이다.
이것은 성별을 막론하고 대부분의 수강생들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자신들의 관점에서 19세 기 문학 텍스트의 남녀관계를 비평하였기에 나온 결과라 할 수 있다. 이는 “사랑과 성과 영 문학”을 개방형 인문 교양 수업으로 꾸려가겠다는 목표 하에 문학 텍스트와 현실 세계의 괴 리를 줄여가려 노력했던만큼, 학생들이 문학 텍스트에 대해 과도한 이입을 하거나 지나친 사 적/감정적 판단을 내리는 것을 허용했기에 야기된 결과인 셈이다. 사랑과 연애에 대한 개인 의 경험을 문학 텍스트 토론 과정에 가져올 경우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수강생들 개개인이 문학 속 사랑과 자신의 실제 사랑을 편하게 비교해서 논의할 수 있는 열린 소통의 장을 마련하는데 주력하고자 했다.
물론 “사랑과 성과 영문학” 수업의 대다수 수강생들이 자신들은 앤써니 기든스(Anthony
Giddens)(1992)가 논한 바 있는 근대의 “낭만적 사랑”(romantic love), 즉 두 사람이 친밀감 을 기반으로 서로의 단점까지 보듬어가며 평생의 동반자로 맺어지게 된다는 사랑이 21세기 를 살아가는 자신들에게도 유효한 사랑관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주장하였으며, 이에 있어 이견을 보이지는 않았다(61). 그러나 학생들이 과거에 쓰여진 문학 텍스트와의 중립적인 거 리를 유지하지 못한 채 문학 텍스트 속 사랑관을 현재의 자신이 경험하는 젠더 불평등으로 환원시키는 사례가 드물지 않게 발생하였다. 특히 자신의 고용주이자 (사실은 유부남이었던) 중년 남성 로체스터와 사랑에 빠진 가난한 가정교사 제인의 내적 갈등을 조명하는 작품인
『제인 에어』를 토론하는 과정에서 성별 간에 상당한 입장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상당 수의 남학생들이 제인의 연애 감정의 변화 추이가 낭만적 사랑에 해당하는지 이해하기 어렵 다고 대답하였으나, 역시 상당수의 여학생들이 전처를 감금하고 중혼까지 시도했던 로체스터 에게 돌아가는 제인의 최종 결정이 낭만적 사랑이라기보다는, 가부장제 사회에서의 반복된 가스라이팅의 결과물일 수 있다고 대답하였다. 이처럼 하나의 문학 텍스트에 대해 남학생들 과 여학생들이 서로 전혀 다른 평가를 내놓으며 서로의 사랑관 차이를 확인하고 난 후에는 서로에게 질문을 제기하면서 심도 깊은 토론을 계속 이어가기보다는 추가적 문제 제기 없이
소통을 닫고 수동적으로 교수자의 마무리 강의를 기다리곤 하는 일이 빈번하였다. 수업 후 필자에게 개별적으로 피드백을 전한 몇몇 학생들에 의하면, 젠더 분쟁을 매우 크게 경험하고 있는 20대의 입장에서 문학 텍스트 속 사랑관에 대한 본인의 주관적 감상이 다른 성별의 학 생의 것과 크게 다를 수 있음을 인지하고 난 후에는 더 이상의 토론을 이어가기가 어려웠으 며, 무엇보다도 온라인 공간 안에서 실제로 만난 적이 없는 다른 학습자들에게 자신의 젠더 관을 노출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이는 문학 텍스트 속 사랑과 연애에 대한 개인의 비평을 솔직하게 공유하는 과정에서, 교 수자가 미리 예상하지 못했던 젠더 갈등이 학습자들 사이에서 가시화된 사례라 하겠다. 사랑 과 성이라는 토픽 자체가 젠더 이슈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하고 있는 만큼, 갈등을 되도록 피하면서 문제 제기식 교육을 수행하기는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한 학기 동안 다룬 텍스 트들 전반에 걸쳐서 이러한 어려움이 나타났으나, 특히 19세기 텍스트, 그 중에서도 여성 작 가가 집필한 텍스트를 학습할 때 성별 간 젠더 감수성의 차이가 크게 불거지는 경향이 있었 다. 이를 통해 문제 제기식 교육을 성공적으로 실천하기 위해서는 학생들 간의 불필요한 분 쟁 가능성을 줄이면서도 학생들의 관심사에 부합하고 흥미를 유발하면서 활발한 소통을 유도 할 수 있는 적절한 문학 텍스트를 택해야 하는 일이 필수적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문 학 교양 과목을 통한 소통과 성장을 위해서는 “학생들의 관심사와 시대적 쟁점을 반영할 수 있는 텍스트”를 적절하게 선정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박수정(2021)의 주장과도 부합 한다(106).
19세기 영국 여성 문학에 대한 학생들의 다소 예민한 반응은 2020년대를 살아가는 한국 사회의 쟁점인 젠더 분쟁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토론의 목적은 19세기 영국 여성 문학 작품을 배우며 이에 나타난 19세기 영국 가부장제 하의 연애와 결혼을 논하는 것이었으나, 실제 토론의 진행 과정에서는 학습자들이 두 세기 전의 컨텍스트보다는, 학생들 본인의 관심 사인 현 시점 한국의 젠더 이슈에 몰입하는 경향을 나타낸 것이다. 물론 이것은 수강생들이 문학에 대한 솔직한 감상을 편안히 나누면서 자신들의 사랑관을 정립하도록 하겠다는 수업 목표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과정이었다. 그러나 이 과정 속에서 학생들이 과거에 쓰 여진 문학 텍스트 속 사랑과 성을 현재의 자신이 경험하는 젠더 불평등으로 환원시키는 가운 데, 문학 텍스트가 쓰여진 당시 컨텍스트에 대한 중립적 이해를 거부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 게 발생한 것이 사실이다. 이같이 텍스트 속 남성과 여성의 사랑과 성을 당시 컨텍스트와 분 리하는 경향은 남학생들과 여학생들 모두에게 고루 나타났으나, 세밀히 들여다보면 앞서 언 급한 『제인 에어』의 사례에서처럼 남학생들은 여성 주인공을 평가할 때, 거꾸로 여학생들은 남성 주인공을 평가할 때 유난히 날선 비판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성별 간 인식 차이 가 분명해지고 난 후에는 실시간 원격 대화의 흐름이 끊기고 침묵이 이어지기도 하였다.
2)『오만과 편견』 게시판 토론
이처럼 젠더 문제를 다루는 교양 수업에서의 토론을 원격으로 운영할 때 나타나는 문제점
들로 인해, 가부장제 하의 여성의 삶을 다룬 19세기 여성 문학 텍스트를 비평하는 수업 운영 에 어려움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상보다 상당히 성공적인 토론을 이끌어낸 텍스트도 있 었는데, 이것은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이었다. 19세기 초반 영국 여성의 연애와 결혼 이라는 줄거리가 시사하듯이 이 텍스트는 사랑과 성이라는 본 강의에 적합성이 높았을 뿐 아 니라, 이 작품이 유머러스하게 그려내는 이상적인 남녀관계와 결혼관이 수강생들의 큰 흥미 를 끌었던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사랑에 수반되는 갈등과 고통을 전면화하는 『제인 에 어』와 달리, 『오만과 편견』은 당시의 연애와 결혼을 위트와 유머를 통해 가볍게 풍자하고 있 기에, 학생들이 비교적 편안한 분위기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자유로운 감상과 해석을 펼칠 수 있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오만과 편견』에 대한 토론은 텍스트 전체에 대한 꼼꼼히 읽기(close reading)보다는 텍스 트 일부분만을 먼저 읽은 상태에서 텍스트 전반에 대해 학습자 자신의 관점에서 자유롭게 예 측하여 본인의 크리티컬 리터러시를 드러낼 수 있도록 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이 같은 토론 방식을 통해 의도한 것은 교양교육의 목표라 할 수 있는 “문학의 ‘향유’” - 학생들이
“문학 작품을 즐겁게, 그리고 심미적으로 읽는 법을 배워” 텍스트와 자신들의 실생활 간의
간극을 없애고 텍스트 분석을 통해 자연스럽게 현실 세계에 대한 인식을 재정립하는 것 - 였 다(박수정, 2021, 104-105). 따라서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텍스트 속에 드러나는 19세기 초반 영국의 결혼관에 대한 학생들 개개인의 주관적 평가를 나누는 토론 시간을 마련하여 학 생들이 수업을 넘어서서 자신의 인생으로 이어질 문학 분석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하였다.
작품 전체를 본격적으로 독해하기에 앞서 작품 도입부에 등장하는 첫 번째 문장을 읽은 후에 이것이 시사하는 당시의 사회 분위기와 남성과 여성의 관계 설정, 성공적인 결혼의 요건 등 에 대한 21세기 한국 학습자들의 감상을 공유하는 원격 토론 게시판을 일주일 동안 열어놓 고, 학생들이 서로에게 댓글을 달며 동의, 반대, 혹은 수정, 보완의 의견을 표명할 수 있도록 하였다. 『오만과 편견』은 다음의 문장으로 시작된다.
It is a truth universally acknowledged, that a single man in possession of a good fortune, must be in want of a wife. (Austen, 1853, 1)
위의 인용 구절에서 오스틴은 재산을 어느 정도 가진 독신 남성이라면 자연히 결혼을 생 각하고 있으리라 믿는 1810년대 영국인들을 유쾌하게 풍자하고 있다. 물론 『오만과 편견』이 책 한 권 분량의 소설인 만큼, 이처럼 짧은 첫 구절만으로 작품 전반에 걸쳐서 오스틴이 연 애나 결혼을 재구성하는 방식을 단정 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강생들 이 작품의 도입부 일부만을 읽은 상태에서 이를 바탕으로 이 작품이 반영하는 사회 분위기나 이상적 남녀관계, 결혼의 조건 등에 대해 추정해보도록 한 이유는 아직 작품에 대한 본격적 독해를 시작하지 않은 수강생들이 독자들의 호기심을 끄는 일종의 후크(hook) 역할을 하고 있는 도입부를 통해 선입견 없이 자유롭게 “크리티컬 리터러시” 기반의 문제 제기식 토론을 펼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또한 실시간 원격 대화로 진행되었던 『제인 에어』 때와 달리, 사
이버 강의실 게시판에서의 토론 기능을 활용하여 학생들이 서로의 의견에 댓글을 달아 찬반 을 표시하되 그 과정에서 정제된 문어체를 사용하도록 하였다. 이 같은 게시판 토론의 전반 적 전개 상황은 다음의 사례들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1. 서로 사랑하고 서로의 결점을 채워주기 위한 결혼이기보다는, 형식상으로 치루는 관례이자 남 편이 아내를 일종의 도구로 여긴다고 느껴집니다.
2. a single man in possession of a good fortune과 want of a wife가 같은 선상에 있 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즉, 남성을 중심으로 하여, 아내는 남성의 재산과 같은 소유물로 여 겨지거나, 또는 행운을 가진 남자가 되기 위해 아내가 필요하다는 의미도 갖고 있는 것 같아 1번 학생의 말처럼 아내는 남편의 도구로 여겨진다고 생각합니다.
3. 우선 여성을 남성과 평등한 인격으로 간주하기 보다는 남성의 소유물로 생각했음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선택은 남자에게 있으며 여성은 단지 남성의 결정에 순응하는 존재로 표 현된 것 같습니다. “공부하면 와이프 얼굴이 바뀐다”는 문구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둘 의 공통점은 이는 여성을 수동적인 존재로 간주하며 사회적인 계급을 나타내는 도구적인 입 장에서 바라보았다는 점에서 『오만과 편견』에도 남자의 이러한 잘못된 사랑관이 나타날 것으 로 예상합니다.
4. 많은 분들이 말씀해주셨듯이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결혼이란 재력이 있는 남성에게 필수불가 결한 요소였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이것이 남성이 여성을 소유물 혹은 도구로 여겼다고 생 각은 들지 않습니다. 남성도 결혼을 통해 얻는 이점도 많았겠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여성 또 한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재력있는 남성과 결혼을 하는 것이 그 시대에는 여성 본인과 그 집 안에 좋은 일일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5. 저도 이 구절을 보고 많은 분들의 의견처럼 아내를 소유한다는 것이 마치 여자를 남편의 도 구와 같이 여긴다고 느껴졌습니다. 이것이 남자와 여자가 함께 결혼을 하는 오늘날의 정서와 달리, 여자가 남자에 의해 결혼된다와 같은 느낌을 주어서 저는 조금 불편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긍정적인 의미로도 해석해볼 수는 없을까 하고 생각해보다가 떠오르지 않아 다른 분 들의 의견을 보았는데, 4번의 의견을 보고 이 당시 여성도 마찬가지로 남성과 결혼을 통해 이득을 얻는 사회였기 때문에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를 고려하여서 그다지 차별적이지 않은 문장이라고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6. 재력을 가진 독신 남성이 사랑하는 여자가 아닌 ‘아내’를 갖고 싶어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보니 이 소설에서는 결혼을 남녀 간의 사랑의 결실로 그려내기 보다는, 남녀가 서로의 안정된 삶을 위해 결혼을 하는 것처럼 그려낸 것 같습니다. 여자는 남편의 재력으로 생활의 안정감을 얻고 남자는 아내를 가짐으로써 사회적 지위에서의 안정감을 얻는 듯 해 보입니다.
1~3번의 답변을 통해서는, 작품에 대한 사전 정보나 19세기 영국 사회 컨텍스트에 대한 이해가 아직 없는 상태인 학생들이 이 작품 첫 문장이 시사하는 가부장제 결혼 하에서 아내 가 도구 혹은 소유물로 인지된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불편함을 표시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 다. 이 중에서도 “공부하면 와이프 얼굴이 바뀐다”라는 한국 사회의 통속적 대화를 인용한 3 의 답변은 현재 한국의 젠더 편견을 19세기 영국의 현실에 적용하면서 오스틴의 작품이 보 여줄 결혼관을 “남자의 이러한 잘못된 사랑관”으로 평가하는 등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이 같은 토론 반응들은 크리티컬 리터러시 함양을 통해 학생들이 문학 텍스트와 현실 세계 사이의 괴리를 줄이면서 능동적으로 자신의 세계관을 재정립하게끔 돕겠다는 필자의 교 육 목표에 충분히 부합한다. 그러나 소설에 대한 배경지식을 의도적으로 배제한 상태였던 만 큼, 1~3번의 학생들이 전반적으로 소설의 첫 문장이 가리키는 19세기 초반 영국의 결혼관 및 그것이 전제하고 있는 남녀관계가 나타낼 수 있는 시대적, 상황적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 은 상태에서 부정적 가치 판단을 내리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이 같은 토론 방 식은 학생들이 문학 텍스트 속 연애나 결혼에 대한 자신들의 평가를 솔직히 드러내도록 유도 하기에는 적절한 것이었으나, 한편으로는 21세기 한국의 젠더 이슈를 19세기 영국의 것으로 당연히 치환시키도록 하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번의 글이 게시된 후부터 토론의 분위기가 조금씩 변화하게 된다. 4 번 학생은 결혼이 갖는 이점이 남성 뿐 아니라 여성에게도 있을 것으로 입체적인 판단을 내 리는 가운데, 결혼 관습의 형성과 실행이 어느 한쪽에게만 유리하게 작용했다고 보기는 어려 울 것이며, 이 제도에 연관되는 이들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반영하고 있으리라고 보는 입장이 다. 4번의 해석을 읽고 이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5번의 글에서도 유사한 관점이 나타난다.
1~3번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오스틴이 묘사한 결혼관이 불편했다는 5번 학생이 자신의 부정 적 가치 판단을 조금이나마 유보하게 된 것은 4번 글을 읽은 후였다고 한다. 당시 사회의 컨 텍스트 속에서 형성된 결혼 제도의 특수성을 고려한다면, 오스틴이 제시하는 결혼관을 마냥 차별적이라고 단정짓기는 어려울 것이며, 이에 대한 자신의 불편한 감정을 배제해야 할 것임 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어지는 6번 또한 결혼의 이점을 재력있는 독신 남성 뿐 아니라 그와 결혼하게 되는 여성의 입장에서도 생각해보면서, 젠더 간의 불평등한 권력 관계에 대한 판단을 접어두고, 당시의 현실 컨텍스트에 대해 유추하려 한다. 따라서 19세기 영국에서는 결혼을 통해 남성은 사회적으로 자신의 위치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이에 대한 맞교환으로 서 여성은 경제적 안정감을 얻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중립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이처럼 1~6 번까지 게시판 토론의 흐름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학생들이 서로의 생각을 읽고 공유 하고 반응하는 과정에서 작품 속 결혼관에 대한 자신들의 부정적 예측이나 판단을 조금씩 유 보하면서 비교적 중립적인 태도를 나타내기 위해 노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오만과 편견』에 대한 게시판 상의 토론을 통해 확인한 바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사랑과 성과 영문학”이 2020년부터 2021년까지 한국 사회에서 가 장 민감한 사회 이슈 중 하나였던 젠더 문제를 다루지 않을 수 없는 교양 수업이었던 만큼, 활발한 의견 교류가 일어나면서도 동시에 서로 간에 예의를 지키는 문제 제기식 교육이 반드
시 필요하면서도 동시에 어려웠던 점이 있었다. 더욱이 팬데믹 시대의 원격 교육이다 보니, 온라인 공간 상에서 학생들이 줌에 접속하여 실시간으로 대화하는 방식보다는, 서로 간에 시 차를 두고 게시한 글을 통해 정제된 문어체로 토론하는 방식이 학생들에게 심리적 안정성을 제공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실시간 구술 토론에서는 자신들의 생각을 날것으로 바로 전달하 고 이에 대한 다른 학생의 반응을 즉각적으로 알게 되기에 심리적 압박과 불안이 컸다는 학 생들이 많았던 반면, 일주일 동안 열려있었던 게시판 상의 집필 토론은 서로 생각이 다른 학 생들이 조심스럽게 의견을 나누고 자신의 생각을 수정해가는 숙성의 과정을 지속적으로 확인 하고 지켜볼 수 있었기에 보다 효율적이며 건설적인 토론이 가능했던 셈이다.
이 같은 집단 학습은 문학 작품에 대한 사전지식 없이 개인적인 감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었기에, 또한 일정 기간 동안 학생들 스스로가 서로의 글을 읽은 후 이에 비추어 자신 의 생각 체계를 재점검하는 과정을 거쳐 자율적으로 문제 제기식 교육을 실행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는 민감한 주제에 대해 실시간으로 토론한다는 부담에서 벗어난 학습자들이 자 신들이 살고 있는 현재의 현실 세계 뿐 아니라 문학 텍스트가 생산된 당시의 현실 세계에 대 해서도 관심을 확장해가는 양상을 볼 수 있었다는 측면에서 상당히 고무적이었다. 이를 통 해, 교수자가 “절대적으로 ‘정확한’ 단 하나의 읽기만이 존재한다는 입장을 취하지 않는다면, 다양한 독서경험을 존중하면서도 서로 다른 해석들의 상대적인 타당성을 판단하는 일은 얼마 든지 가능”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박진, 2020, 287).
그러나 이 같은 게시판 토론이 갖는 본질적 한계도 있다. 일정 기간 동안 학생들이 게시판 상의 여론 변화 과정을 지켜보다 보니, 초반보다는 후반에 의견을 게시한 학생들이 보다 자 신들의 생각을 가공하고 전반적인 흐름에 맞추려는 경향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텍 스트의 첫 줄에 대한 자신들의 첫인상을 가공하지 않았던 1번과 2번 학생에 비해, 4번의 의 견을 읽은 5번 학생이 게시판 상의 여론 추이를 염두에 두고 자신들의 생각을 중립적으로 변 화시키려는 여과의 과정을 거쳤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4번의 글이 자신의 생각을 어느 정도 변화시켰음을 명시하는 5번의 글은 일주일이라는 기간 동안 이뤄지는 게시판 토론이 학 생들에게 숙고의 시간을 주었음을 보여주기도 하나, 한편으로는 학생들이 본인 관점의 고유 성 대신에 타인의 관점과의 유사성을 획득하도록 유도할 수도 있음을 드러내기도 한다. 즉, 젠더와 연관된 문학 교양 수업을 원격으로 운영함에 있어, 게시판 토론은 학생들 간의 갈등 을 줄이고, 심리적 불안감을 없애주며, 학생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생각을 수정하고 가다듬을 시간을 제공하는 등의 장점을 갖는다. 그러나 이 같은 토론 진행 과정에서 개개인의 관점의 고유성이나 다양성이 손상될 수 있다는 문제점 역시 발견된 것이다.
그럼에도 게시판 토론 방식을 시대와 장르, 작가의 젠더를 불문하고 다양한 텍스트에 꾸준 히 적용해본 결과, 어떤 텍스트를 선정하건 간에 학생들이 실시간 토론에서보다 한결 우호적 인 분위기에서 서로의 해석을 읽고 상대방의 생각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과정을 밟게 되는 측 면이 두드러짐을 알 수 있었다. 일례로 본 강좌에서는 여성 작가 브론테나 오스틴의 가정 소 설에 비해 훨씬 더 문제적으로 과감하게 섹슈얼리티를 그려내는 남성 작가 오스카 와일드 (Oscar Wilde)의 데카당스(decadence) 희곡 『살로메』(Salome)도 다루었는데, 이번에도 역시
게시판을 활용하여 건설적인 토론을 할 수 있었다. 물론 많은 학생들이 세례자 요한의 참수 를 이끈 살로메가 자신의 성욕을 공격적으로 표현하고 이를 스스로 합리화하는 살로메에 대 한 거북함을 표명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앞선 포스팅에서 다른 학생들이 언급한 당시 컨 텍스트(여성 참정권 운동, 신여성, 와일드의 동성애 재판 등)나 문학이 갖는 표현의 자유 등 에 대해 고민하는 가운데, 살로메에게도 능동적 목소리가 주어질 수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고 그것의 문학적 상징성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해석을 시도하게 되었다는 반응들을 통해서, 집 단 지성의 힘을 통해 크리티컬 리터러시를 쌓을 수 있는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다시 말 해, 앞서 주장한 바와 같이 크리티컬 리터러시 기반 교육에 있어서 안전한 토론을 보장하는 맞춤형 텍스트를 선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편으로는 민감한 주제를 다루는 텍스트를 선 정한다 해도 토론 방식을 변화시킨다면 효율적 토론이 가능함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4. 맺음말
지금까지 팬데믹과 젠더 분쟁 시대에 원격 수업으로 열린 “사랑과 성과 영문학” 교양 강 좌에 있어서 학생들 간의 토론을 효율적으로 실행하기 위해서 필자가 활용한 교수법에 대해 논의하였다. 21세기 한국 대학생들에게 민감한 문제인 젠더를 다루지 않을 수 없는 교양 강 좌를 원격으로 운영함에 있어, 적절한 텍스트 선정과 더불어 토론의 진행 방식 또한 상당히 중요한 이슈였다. 실시간 토론 및 게시판 토론을 고루 활용해본 결과, 수강생들이 불안감 없 이 편안하게 문제 제기식 교육을 경험할 수 있는 방식은 즉각적으로 진행되는 실시간 토론보 다는 정제된 글로 쓰여진 서로의 생각을 일정 기간 동안 공유하고 이에 대한 숙고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게시판 토론이 보다 효과적인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게시판 토론은 학생 들이 본인과 다른 생각들을 확인하고 이에 자신의 생각을 맞추어 수정하도록 유도하는 효과 를 낼 수도 있다는 점에서, 아무 선입견 없이 문학 텍스트에 대한 첫인상을 진솔하게 나누도 록 하는 가운데 크리티컬 리터러시를 고취시키고자 하는 필자의 교육 목표에 부합하지 못하 는 측면도 있었다. 이는 향후 교양 교육에 있어서의 보완 과제로 남겨두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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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Teaching a Liberal Arts Elective in the Era of the Pandemic and the Gender Conflict
Ahn, Somi
Based on my experience of teaching “Love, Sexuality, and English Literature” in the era of the pandemic, this article discusses how student-oriented discussions of gender-related issues, to which the twenty-first-century Korean undergraduates may react sensitively, could be carried out effectively online in a liberal arts elective. In order to implement problem-posing education, which can foster critical literacy, I encouraged both male and female students to honestly share their feelings and thoughts about dating and marriage in Jane Austen’s Pride and Prejudice and Charlotte Brontë’s Jane Eyre albeit via online. Given both the online learning environment and the ongoing gender conflict in Korea, it was not easy to create a safe online space where every student could speak comfortably about how the women writers respond to the gender issues of their time in their fiction. In order to help students better adjust to the student-centered learning environment online, I used both real-time and bulletin board discussions and weighed up their pros and cons, respectively. I suggest that the bulletin board discussion was more effective than the real-time one. The bulletin board one gave students sufficient time not only to refine their discussion manner but also to read their peer’s postings and to rethink their initial thoughts about gender and literature. Admittedly, however, the bulletin board discussion could make students self-conscious and thus pay too much attention to the opinion of others. I leave this as a task for future studies on liberal arts education.
【Key Words】critical literacy, distance learning, gender conflict, liberal arts electives, problem-posing education
ㆍ논문투고일 : 2022년 5월 22일 ㆍ심사완료일 : 2022년 6월 8일 ㆍ게재결정일 : 2022년 6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