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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儒生通文의 전달 구조* - S-Space - 서울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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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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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유생 통문은 성균관 통문과 달리 多士의 聯名으로 발송되었다. 유생통문은 성균관, 향교와 서원을 매개로 한 통문이다. 아래에서는 먼저 지방유생 통문의 주요 사.

지방유생 통문의 가장 일상적인 사안은 다른 향교나 서원에 지원이나 동의․. 현전하는 성균관 통문은 대다수가 답통이다.

성균관 통문의 전달 경로

많지는 않지만 성균관에서 먼저 지원과 지지를 호소한 통문의 사례도 확인된 다. 었으며, 각도 내에서는 또 어떤 경로로 통문이 전달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이 통문에는 그 전달 경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진관읍에 통문을 발송하면서 도 여섯 읍이 아니라 네 읍에만 통문을 전달한 것은 성균관의 통문 전달 경로가. 도 신녕현의 사례를 보면 원래 안동도회 소속이지만 경주에 더 가까워 유생들이 경주공도회에서 응시하였다가 擯貢으로 배척을 받았다. 성균관이나 경중 통문의 전달도 경주인이 담당한 것으로 보인다.

鎭管邑을 명시하지 않은 경우에도 성균관에서 발송된 통문은 斜文이나 본문에 통문을 각 읍에 전달하라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아울러 대구향교에서 우편으로 통문을 발송한 것도 시대의 변화를 보여 주는 면이다. 성균관 통문은 사안에 따라 읍이나 향교, 서원 등 그 수신처를 달리하였다.

그 러나 발의 통문의 경우는 모두 향교에 전달되었다는 특징도 있다.

경주의 사례로 본 지방유생 통문의 전달 구조

예안에서 발송한 통문은 대부분 도산서원에서 옥산서원에 보낸 것이다. 당시 李希誠 등이 󰡔관서문답록󰡕을 새로 간행하였는데, 도산서 원 측은 그 내용이 이황을 폄훼하였다고 비판하고 훼판을 주장하여 이를 둘러싼 文字是非가 도내로 확대되었다.63)63)도산서원 측에서는 시급하게 공의를 수합해야 할 처지에 있었기 때문에 여러 차례 도내에 통문을 발송하였다. 도산서원은 통문을 돌리고 도회를 개최할 때에 지리적인 여건을 중시하였다.

통문의 전달에서는 여 전히 官學인 향교가 서원보다 중심적인 위치에 있었다. 그런데, 두 번째 통문에서 도산서원 측은 시일이 급박하여 校院의 次序를 무 시하고 邑里의 원근을 따라 전달처를 명시하였다고 밝히고 있다.70)70)바꾸어 말하 면 원래는 통문이 전달되는 차례가 따로 정해져 있었고, 반드시 지리적 원근과 는 일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도산서원은 경주를 중간 전달처로 삼 아 인근지역에 통문을 전송하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그 斜文에는 읍마다 使喚을 내어 直送하는 것이 어렵다고 해명하고 興海로 보내는 통문을 곡강서원에 전달해 달라고 부탁하는 내용이 있다.71)71)흥해에 사환을 직접 보내지 못하는 사정을 통해 오히려 읍마다 각각 통문을 보내는 것도 하나의 전 송 방법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위의 사례를 보면 각 읍에서 경내의 향교와 서원에 통문을 전달하는 방식은 차이를 보인다. 그런데, 경주의 향교와 서원은 경내의 공문을 전달하는 역할도 수행하였다.

용산서원에서 해당 기간에 경내에 전달한 하첩과 통문일 것이다. 경주로 들어오는 통문은 주로 관학인 향교와 옥산서원을 경유하였다. 반면 영남 남인들의 통문은 옥산서원을 거쳐 광남에 전달되었다.

맺음말

향교와 서원을 중심으로 하는 유생네트워크는 대원군 집권기 서원의 훼철로 크게 타격을 입었을 법하다. 반대방향으로 보면 거주지를 중심으로 하는 작은 권역이 유 생의 네트워크를 통해 전국으로 확장될 수 있는 구조다. 원리적으로 따지면 한 문중에서 발의된 논의가 향교․서원을 통해 一鄕의 공론으로 인정받고 通文을 통해 一道의 공론으로 확대되어 상소와 성균 관을 통해 전국적인 공론으로 확대되는 구조다.

한 문중에서 시작된 請諡 논의 가 성균관을 통해 유생공론으로 인정되는 것이 그 예이다. 역으로 성균관에서 발의된 공론은 통문의 네트워크를 따라 지방의 촌락까지 전달될 수 있었다. 지방사회에서는 주로 영향력있는 서원이 유생 공론을 주도하고 조직하 는 주론자로서 공의의 결집을 주도하였지만 향교 역시 官學으로서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거점으로 기능하였다.

통문은 발신 측의 의사를 수신처에 통지하는 것으로 동의와 동참의 여부는 수 신처의 선택에 달려 있었다. 따라서 이러한 네트워크의 존재가 항상적으로 동의 와 동참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수신처에서는 사안에 따라 전달된 통문의 내 용을 무시할 수도 있었고, 통문의 전송을 지연시키며 소극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현하기도 하였다.

게다가 서로 대립하는 양 측에서 동시에 통문을 발송하며 이 네트워크를 이용하여 공론 대결을 벌이는 일 도 흔히 발생하였다.

참조

Outline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