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ㆍ검사 등 공직에 근무하다가 퇴직한 변호사들은 퇴직 1년 전부터 퇴직할 때까지 근무한 법원 과 검찰청 등 공공기관이 처리하는 사건을 퇴임일로부터 1년 동안 수임할 수 없게 되었다. 작년 3 월부터 1년 넘도록 활동해온 국회 사법제도개혁특위가 그 첫 작품으로 해당 조항을 개정 변호사법 에 신설한 것이다. 그런데 이 개정 변호사법이 아예 ‘전관예우금지법’으로 불리며 논란이 자못 뜨 겁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어이없는 구호에 많은 국민들이 공감할 정도로 우리 사회의 사법 제도 불신은 심각하고 그 중심에 소위 ‘전관예우’ 의혹이 있어 왔으므로, 그런 수임금지조항이 불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당연히 들리지 않는다. 비판론자들의 논지는, 이를 위반하더라도 형사처벌 대 상이 아니고 대한변협의 징계만 가능한데 대한변협이 제 식구를 제대로 징계할 리 없고, 수임금지 대상기관도 애매할 뿐 아니라 예상되는 갖가지 탈법행위를 제대로 근절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는 취지이다. 매우 일리 있는 지적이고, 향후 어떤 형태로든 보완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생각된다.
필자도 우리 사회 구성원의 한사람이므로 소위 ‘전관예우금지법’이 나오게 된 배경과 입법취지 에는 100% 공감한다. 정말 가능하기만 하다면 이보다 더한 법을 제정해서라도 우리 사회의 심각 한 사법 불신을 치유하고 건강한 사법제도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길 간절히 원한다. 그러나 유감스 럽게도, 법을 전공한 업보로 일반인들보다 항상 법을 가까이 하고 법 현실을 접하며 살아온 경험 에 비추어볼 때 전관예우금지법의 실효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회의적이다.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 면 그런 식의 미봉책만으로는 결코 전관예우의 악습을 근절할 수 없다고 본다. 전관예우가 우리 법조계의 그토록 지독하게 뿌리 깊은 고질적 병폐라서가 아니라, 법과 제도를 바꾸는 것만으로는 어떤 사회적 모순이나 병폐도 해결할 수 없다는 법ㆍ제도의 본질적 한계를 알기 때문이다.
법연단상
전관예우금지법 단상(斷想)
전관예우의 관행은 지연, 학연 등 각종 인연을 유독 중시하는 우리 민족의 전통 의식과 수백 년간 뿌리 깊게 박힌 관료주의 속성이 결합되어 형성된, 부정적 문화의 소산이다. 따라서 이를 금지하는 입법만으로는 사실상 근절하기 어렵고,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성 민 섭 숙명여대 법과대학장
물론 사회적 모순이나 병폐가 법ㆍ제도의 잘못이나 미비로 인하여 발생하였거나 확대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그 이면에는 법ㆍ제도보다 훨씬 본질적인 그 무엇이 반드시 있다.
따라서 관련 법ㆍ제도의 개선만으로는 그 해결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으며, 섣부르고 성급한 법 개정이나 제도개선은 인간의 이기심과 맞물려 문제를 더 악화시키거나 또 다른 사회적 모순이나 병폐를 양산할 위험이 있다. 해방 이후 가장 친서민적인 참여정부 시절의 집값 폭등사태와 그로 인한 서민들의 좌절이 좋은 사례이다. 참여정부가 부동산 가격 안정의 확고한 의지를 갖고 야심차 게 추진했던 각종 부동산 관련 법ㆍ제도 개선조치가 오히려 집값 폭등의 역풍을 가져와 결국 서 민들의 내 집 마련 희망을 앗아가는 의외의 결과를 초래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가 마치 법ㆍ제도의 개선만으로 모든 사회적 모순이 나 병폐를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선동적 구호를 앞세워 성급한 제도변경과 그를 위 한 졸속 입법을 남발하고 있는 것 같아 심히 우려된다. 부실 저축은행의 사주와 임직 원들의 범법행위 사실이 드러나자 그들과의 유착관계로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된 금융감독원의 전관예우를 금지하는 또 다른 ‘전관예우금지법’(?)이 추진되고 있다는 소식이 벌써 들린다. 국세 청도 서둘러 같은 취지의 전관예우금지법을 만들 예정이라고 한다. 이른바 전관예우금지법 러시 라고나 할까?
그러나 전관예우금지법만 서둘러 만들어 놓으면 정말 법원이나 검찰, 금융감독원, 국세청 등의 전관예우가 근절되거나 최소한 감소되기는 할까. 그렇지 않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그렇게 만 만하게 생각되지도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성급한 제도변경과 졸속 입법이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킨 경험을 이미 충분히 해왔기 때문이다. 참여정부 시절의 부동산 정책과 관련 법ㆍ제도의 변경이 오히려 집값 폭등 결과를 초래한 이유도, 물론 한두 가지가 아니겠지만, 현명한(?) 시장의 대응을 미리 예상하고 충분한 대비책을 마련하지 못한 채 너무 성급하게 제도변경과 입법을 서두 른 잘못 때문임을 변명하기 어려울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올해 사법연수원생들의 집단 입소거부 라는 초유의 사태를 불러일으킨 주범도 근본적으로는 정권교체기에 졸속 입법ㆍ제도화되었지만 아직까지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제도’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당장 내년에 첫 졸업생이 배출되는데 아무도 향후 로스쿨 제도와 그 졸업생들의 운명을 예측조차 할 수 없으니 어찌 갈등이 없겠는가. 그 와중에 장래의 법조인을 꿈꾸는 젊은이들만 골탕을 먹고 있 는 걸 보자니, 대학에서 법학을 가르치는 필자로서도 정말 답답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필자도 법ㆍ제도의 개선 없이 난마처럼 얽힌 사회적 모순과 병폐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즉흥적이고 시류에 영합하는 방향의 법ㆍ제도 변경, 특히 근본적인 문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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덮어둔 채 정치적 이해득실을 계산해서 포퓰리즘적 해결방안에 집착하는 법ㆍ제도의 변경은 더 이 상 안 된다고 본다. 더구나 그 대상이 국가의 근간이요 최후보루인 사법제도라면 더욱 그렇다. 그 러나 유감스럽게도 그동안의 이른바 ‘사법개혁’ 논의와 결과를 보면 전혀 그렇지 못한 것 같다(‘법 학전문대학원(로스쿨) 제도’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런 중요한 주제에 대하여 필자가 감히 이런 방안만이 올바른 해 법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역부족이요 매우 주제 넘는 일이다. 하지만 어느 한 사람의 탁견만으로 올바른 해법이 도출될 수는 없을 것 같고 결국 중지를 모아야 할 것이라 생각되므로, 필자의 우견 을 그에 조금 보태보고자 한다.
우선 사법제도의 불신을 초래하는 모든 요인들은 마치 유기체처럼 얽혀 있기 때문에 당장 보기 싫은 어느 하나만 없애거나 바꾼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사법개혁의 올바 른 방향을 먼저 설정하고 그에 부합하도록 근본적인 처방 내지 개선방안을 선택해야 하며, 이해관 계가 난마처럼 얽혀 있는 경우 알렉산더가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끊어버리듯 획기적인 조치도 불 사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물론, 그러한 근본 처방에 앞서, 개선되어야 할 우리의 사법 현실에 대한 객관적이고도 올바른 진단이 선행되어야 함은 당연한 일이겠다.
법조계의 전관예우 문제로 다시 돌아가 보자.
법원이나 검찰이 판ㆍ검사를 하다가 퇴직하고 갓 개업한 옛 동료 변호사가 수임한 사건에 대하 여 유리한 판결이나 처분을 해주는 전관예우의 관행은 법치주의와 사법제도의 근본을 뒤흔드는, 법연단상
있을 수 없고 결코 있어서도 안 되는 잘못된 ‘관행’임에 이견이 있을 수 없다. 하지만 ‘관행’이란 어느 날 갑자기, 아무 이유 없이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어떤 관행이 형성된 사회에는 그런 관행 이 형성될 수밖에 없는 그 사회의 문화가 있다. 전관예우 관행도 지연, 학연 등 각종 인연을 유독 중시하는 우리 민족의 전통의식과 수백 년간 뿌리 깊게 박힌 관료주의 속성이 결합되어 형성된, 부정적 문화의 소산이다. 따라서 법조계 구성원들에게 일차적 책임이 있는 것은 명백하지만, 엄밀 하게 말하면 우리 사회 구성원들 누구도 도덕적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고 하면 지나 친 표현일까? 법조계 종사자들에게만 막중한 사명을 부여받았으니 독야청청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누군가의 가족, 친지, 동료로서 온갖 인연에 얽매여 이 사회를 살아갈 수밖에 없는 법조인들 에게 어떤 면에서 지나친 요구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현실을 감안할 때, 전관예우의 관행은 이를 금지하는 입법만으로는 사실상 근 절하기 어렵고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전관예우가 가능했던 환경부터 바꾸어야 한다. 전관예우란 어떤 것인 가. 그 외형이 아무리 그럴듯해도, 갓 개업한 변호사가 자신이 수임한 사건을 담당한 판ㆍ검사에 게 법원이나 검찰 등 공직에 함께 근무하면서 맺은 인연과 지연, 학연 등 온갖 인연을 빌미로 사 건을 잘 처리해달라고 부탁하고, 부탁받은 판ㆍ검사 역시 그 변호사와의 인연 때문에 모른 척 할 수 없어 결국 그 사건을 편파적으로 처리해주는 관행 아닌가. 우리 법조계에 그런 관행이 형성된 환경은 의외로 단순하다. 어려운 사법시험에 합격한 소수 엘리트만이 판ㆍ검사가 되어 2~3년에 한 번씩 근무지를 바꾸어가며 장기간 근무하다 보면 이미 학연 등으로 얽혀 있는 대다수 판ㆍ검 사들 상호 간에 피차 못 본 척 하기 어려운 끈끈한 정과 인연이 자연스레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 지 않은가. 이러한 법조계의 높은 진입장벽과 소수정예주의, 엘리트 의식, 끼리끼리의 조직문화, 인사제도 등이 바로 전관예우의 관행을 초래한 주범이다. 따라서 이러한 법조계의 환경, 특히 법 조인력 양성제도 및 판ㆍ검사 임용제도, 인사제도 등에 대한 획기적 개혁 없는 전관예우금지 입법 은 자칫하면 공허한 구호에 그치게 될 우려가 높고, 이는 결국 법조계와 사법제도에 대한 불신만 가중시키게 될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사실은, 전관예우의 관행을 초래한 법조계의 바로 그 환경이 우리 사회의 사법제 도에 대한 불신과 사법개혁 논의를 불러온 근본 요인과 같다는 점이다. 결국 전관예우 관행의 근절 과 이를 통한 사법제도의 신뢰회복은 사법개혁의 큰 테두리 안에서 함께 다루어져야 할 사항이다.
우리는 이미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제도라는 새로운 법조인력 양성제도를 선택하여 그 첫 발을 내디뎠다. 이는 법조계의 진입장벽을 획기적으로 낮추는 의미 있는 시도였으나 유감스럽게도 성급 하게 처리되다 보니 여전히 내일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라 오히려 법학교육의 혼란만 가중시키 고 있다. 법학전문대학원 제도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 우리 모두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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