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기술의 문제에 관하여
벤야민과 하이데거의 논의를 중심으로
- -
■심 혜 련■
이 논문은 년 기초학문육성 인문사회분야 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한국학술진
* 2004
흥재단의 지원에 의해 연구되었음(KRF 2004 074 AS0026).- - -
▪심혜련|전북대학교 과학학과
산업 혁명이후 벤야민과 하이데거는 기술이 삶과 문화 전반에 가져온 변화들 을 경험했다 이러한 그들의 경험을 근거로 해서 이 둘은 기술 본성에 물음을 제. 기하면서 도구적 기술에 대해 비판하였다 벤야민과 하이데거는 도구적 기술이. 극복될 수 있는 가능성을 고대 그리스의 테크네 개념에서 찾았으며 특히 기술, 이 예술 영역에 적용될 때 도구적 기술이 극복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였다 그. 러나 이 둘은 다른 방향에서 도구적 기술의 극복 가능성을 예술로부터 찾았다.
이는 이 둘이 예술에 대해 기대하고 있는 바가 다르기 때문이다.
벤야민과 하이데거의 예술과 기술에 대한 이론은 하이 테크놀로지 시대라고 하는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왜냐하면 그 어느 때보다도 예술과 기술의 관. 계에 대한 논의가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예술과 기술의 관계를 대립적. 으로 보는 관점에서는 예술과 기술이 상호 밀접해지는 것을 부정적으로 본다.
이러한 입장은 바로 예술과 기술을 전혀 다른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보는 관점 과 더 나아가 기술 그 자체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취하는데서 기인한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 속에서 결코 예술과 기술을 분리하지 않았던 벤야민과 하이데거의 논의가 현재 예술에서 기술과의 관계에서 파생되는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한 해결 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본다.
요약문
왜 벤야민과 하이데거인가
1. ?
디지털 매체 시대인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예술과 기술의 관계에 대, 한 문제가 광범위하게 제기되고 있다 그 이유는 현대 예술 특히 조형 예. , 술이 현재 기술의 성과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예술과 기술의 관계 문 제에 대한 체계적 고찰이 요청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예술과 기술은 서. 로 다른 즉 아주 이질적인 것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분리될 수 있는 것, . 이 아니었다 고대 그리스에서 기술 과학 그리고 예술 등의 의미를 가졌던. , 테크네(Techné)는 이러한 개념들을 명확히 구분해서 사용된 개념은 결코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는 아마도 예술 개념이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이전이. 었다는 이유에서 기인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사실 이들 관계가 가지고 있, 는 밀접성을 익히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한 것이다 물론 순수 예술이. 라는 개념이 성립된 이후에도 예술과 기술의 상호 관계에 대한 논의들이 있어 왔으며 기술 발전이 예술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사진의, . 등장이 회화의 내용과 형식에 변화를 가져온 점 또는 기계와 속도에 대한, 미래파의 찬양 그리고 예술과 기술의 결합을 통해 예술의 산업화를 추구했 던 바우하우스 운동 등이 그러한 예다 이러한 예들에서처럼 사실 예술과. 기술은 서로 아주 밀접한 관계에 있다 예술은 기본적으로 자신을 드러내. 기 위해 매체를 요구한다 다양한 표현을 위해 예술가들은 기술 발전이 가. 져온 매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또한 기술 발전에 많은 우려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기술 발전이 황폐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또는 더욱 풍요롭 게 하기 위해 예술을 요청하기도 한다.
이러한 오래된 예술과 기술의 관계에도 불구하고 예술 영역에서 기술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된 것은 사실 산업 혁명이후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산업 혁명이후 급속한 기술 발전은 우리의 삶과 문화 일반에 많은 영 향을 끼쳤다.1) 그것이 가져온 결과와 파장은 무척 거대했다 그 후 제 의. 2
산업 혁명이라고 할 수 있는 디지털 매체 시대에도 디지털 정보 기술이 우 리의 삶과 문화 일반 그리고 예술 영역에 미친 영향은 산업 혁명이 가져온 결과와 파장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이 두 단계의 기술 발전은 비록 다르게. 진행된 것이지만 그 결과와 영향 면에서는 매우 유사하다 특히 예술 영역, . 에서 이러한 기술 발전과 예술의 관계에 대한 논쟁 또한 유사함을 알 수 있 다 예를 들어서 현재 디지털 사진을 둘러싼 논쟁은 사진이 등장한 후 진행. 되었던 논의들과 거의 같다고 볼 수 있다.
산업 혁명이후 모던 시대에서 많은 이론가들은 기술이 가져온 급격한 변화에 먼저 당혹감을 보였다.2) 그 후 그들은 기술을 어떻게 고찰해야만 할까 또는 기술 본질이 무엇일까 등등에 대해 연구를 수행했다.3)그들 중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과 마틴 하이데거 다 그들은 자신의 철학을 바탕으로 기술 본성과 기 (Martin Heidegger) .
술의 역할 그리고 기술이 가져올 수 있는 변화들에 대해 숙고했었다 물론. 이들의 사상은 얼핏 서로 전혀 연결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4)나치 시절
1) 참조:Friedrich Rapp,Die Dynamik der modernen Welt. Ein Einführung in die Technikphilosoph ie,Hamburg, 1994, S.119.
2)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가 공저한 계몽의 변증법 또한 커다란 틀에서 보면 이 러한 급격한 변화에 대한 반응이라고 볼 수 있다 이들은 기술 발전으로 인해 등. 장한 합리성이라는 개념이 엄밀한 의미에서 이성적 합리성이라기보다는 도구적‘ 합리성 이었으며 이러한 도구적 합리성으로 인하여 사람들은 기술을 자연과 다’ , 른 인간을 지배하기 위한 도구 로 사용하고 있음을 주목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 . 관련해서는 다음을 참조하길 바람: Max Horkheimer, Theodor W. Adorno,Dialektik der Aufklärung,Frankfurt a. M., 1992, S.9~49.
3) 이와 관련해서는 다음을 참조하길 바람: Gerhard Wagner,Walter Benjamin. Die Medien der Moderne,Berlin, 1992, pp.13~20.여기서 게하르트 바그너는 산업화와 자본주의 화 그리고 세계 제 차대전 등을 경험한 많은 지식인들이 이러한 문제에 관심을1 가지고 연구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사회적 정치적 격동이 실제. 로 많은 변화를 가져왔으며 이전과는 다른 경험 구조를 체험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막스 라파엘, (Max Raphael),에른스트 블로흐(Ernst Bloch),지그프리드 크라 카우어(Siegfried Kracauer),쟈크 오펜바흐(Jacques Offenbach)와 벤야민 등등이 이러 한 문제에 대한 성찰을 시도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정치적 상황과 정치적 입장으로 말미암아 전혀 다른 삶의 유형을 살았던 이들은 사상적인 측면에서 보았을 때 다른 방향으로 서로 치닫고 있듯이 보인다 그러나 이 둘이 만나는 지점이 있다 그것이 바로 그 당시 기술 발. . 전을 체험하고 나서 이를 토대로 기술에 대한 철학적 고찰을 시도했다는, 점이 바로 그 교차점이다 비록 이 둘은 다른 출발점에서 시작했지만 기술. 문제에 대해 철학적 해답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만난다 그러나 이 둘은 만. 나기는 했지만 전혀 다른 전제에서 다른 해답을 얻었다고 할 수 있다 그, . 러나 필자는 전혀 다르게 보일 수 있는 벤야민과 하이데거의 기술에 대한 고찰에서 내용적 공통점과 지향하고자 하는 것 등에서 유사성이 있음을 보 았다 바로 기술과 예술의 관계에 대한 문제가 그것이다 이 둘은 기술 본. . 성과 기술이 가져올 수 있는 문제를 지적하면서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는, 가능성을 바로 예술 영역에서 보았다는 점이 바로 전혀 다른 이 두 사상가 를 연결해서 볼 수 있는 지점인 것이다.
벤야민과 하이데거의 논의는 현재 디지털 매체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아니 디지털 매체 예술이 지금 가장 현재적인 예술로 등장함에 따라 기술 본질과 기술과 예술의 관계 또는 기술이 예술에 미치는 영향들을 연구하, 는데 아주 필요한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필자는 본 논문에서 현재. 의 기술 상황에서 본격적으로 기술과 예술의 관계를 묻기 이전에 벤야민과 하이데거의 논의를 중심으로 기술 본성과 예술과 기술의 관계에 대한 논의 들이 체계적으로 다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이들이 물었던 문제.
4) 벤야민과 하이데거 사상의 유사성과 차이점에 대해서는 다음의 책을 참고하길 바람:Willen van Reijen,Der Schwarzwald und Paris. Heidegger und Benjamin,München, 이 책에서 라이엔은 같은 시대적 상황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입장 1998.
에 따라 다른 사상적 입장을 취했던 이 두 철학자를 다양한 각도에서 면밀히 검 토하고 있다 특히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라이엔은 두 사람이 취하는 공간적. 메타포에서 이 둘을 비교한다 즉 벤야민은 철저히 대도시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자신의 사유 형식을 펼쳐나가고 있으며 하이데거는 슈바르츠발트라는 전원적, 풍경을 중심으로 사유 형식을 펼쳐나가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ebd., S.10).
의식과 해결에 대한 모색 방법이 아직도 여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 필자는 먼저 벤야민과 하이데거의 기술 개. 념에 대해 살펴보고 이 둘의 유사성과 차이성을 살펴본 후 이 둘의 논의가, 현재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가를 고찰하고자 한다 그러나 구체적인. 내용을 전개하기에 앞서 먼저 이 글이 벤야민과 하이데거를 비교하는 것임 에도 불구하고 벤야민 논의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먼저 밝힌다.
이는 전적으로 필자의 능력의 한계에서 기인하는 것이며 추후에 보충할, 것임을 미리 밝힌다.
벤야민의 기술 개념 2.
벤야민이 강조하는 기술 재생산 시대 에서의 기술에 대한 설명을 보면‘ ’ , 얼핏 벤야민이 단순한 기술 결정론자처럼 보일 수 있다 즉 기술 재생산 시. 대에 기술 재생산성에 의해 예술 형식이 변하고 또 가치와 기능이 변화했, 다는 그의 주장 때문에 그렇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을 자세히. 살펴보면 결코 벤야민은 단순한 기술 결정론자가 아닐 뿐만 아니라 기술, , 을 맹목적으로 신뢰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5) 그는 근대적 기 술이 가지고 있었던 도구적 기술 개념이 극복되어야만 하는 것으로 보았으 며 도구적 기술 사용의 극복 가능성을 다방면에서 고찰했다고 볼 수 있다, . 따라서 그는 예술 영역에서 기술이 사용됨으로써 즉 기술 재생산의 가능, 성이 예술 영역에 들어옴으로써 도구적 기술의 극복 가능성을 보았다.
5) 비교: 심광현 탈근대 문화정치와 문화연구 문화과학사, ( , 1998), 305~311 .쪽 여기 서 심광현 또한 벤야민의 논지가 기술 결정론자로 읽힐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 또한 벤야민은 단순한 기술 결정론가가 아니라 오히려 문화. , 정치라는 맥락과 벤야민이 지적한 기술 재생산이 가져온 예술 변화를 수용하는 대중의 태도를 분명 함께 고찰해야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제 기술과 제 기술의 구별 1) 1 2
벤야민에게 기술은 기본적으로 하나의 인공적 자연으로서 제 자연“ 2 을 의미한다
(die zweite Natur)” .6) 기술은 자연과 대비되는 것으로서 단 순하게 인공적인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는 또 다른 자연 즉 제 의, , 2 자연으로서 우리에게 주어진다 따라서 그는 기술을 자연을 접할 때와 유. 사한 접근 방식으로 다룰 것과 또 이에 대한 통제력을 잃지 않기 위해서 자 연 과정에서 우리가 많은 학습 과정을 거쳐 자연에 적응했던 것처럼 제 자2 연인 기술에 적응하기 위해서도 역시 배움의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고 주장 한다 그리고 이러한 배움의 과정에서 예술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한. 다.7) 더 나아가 이전의 기술이 제의적 요소로 기능하면서 예배적 의식을 위해 존재했던 것과는 달리 기술 재생산 시대의 기술은 이로부터 해방되, 었음을 강조한다 즉 해방된 기술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
벤야민은 기술을 인류가 만들어낸 제 의 자연이라고 규정하면서 기술2 , 이 도구적 기술이라는 일방적 비판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이를 다, 시 제 기술1 (die erste Technik)과 제 기술2 (die zweite Technik)로 나
6) Walter Benjamin(1991), “Das Kunstwerk im Zeitalter seiner technischen Reproduzierbarkeit”
제 판본 본 논문에서 언급되는 벤야민 저작은 다음의 전집을 중심으 ( 1 ), I. 2, S.444.
로 인용할 것이다 이 글에서는 앞으로 논문 제목과 벤야민 전집의 권수만을 언급. 할 것이다:Walter Benjamin(1991),Gesammelte Schriften.Bd. I~VII, Unter Mitwirkung von Theodor W. Adorno und Gerschom Scholem herausgegeben von Rolf Tiedemann und 벤야민의 논문 기술 재생산 시대의 예술 Hermann Schweppenhäuser, Frankfurt a. M.. 「
작품(Das Kunstwerk im Zeitalter seiner technischen Reproduzierbarkeit)」은 세 개의 판본을 가지고 있는데 이 세 개의 판본은 내용적으로 거의 유사하지만 부분적으로 특히, , 기술과 관련된 문제에서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세 개의 판본을 다 언 급하면서 벤야민의 기술 개념을 살펴 볼 것이다 첫 번째 판본은 벤야민 전집. , I.
이며 두 번째 판본은 전집 이며 세 번째 판본은 벤야
2, S.432~469 , VII, 1, S.350~384 , 민 전집, I. 2, S.471~508이다.
7) Walter Benjamin(1991), “Das Kunstwerk im Zeitalter seiner technischen Reproduzierbarkeit”
제 판본
( 1 ), I. 2, S.444.
누어 고찰한다.8)그에 따르면 제 기술은 대표적으로 억압적이고 도구적으1 로 사용되는 기술을 의미한다 자연을 정복하는 도구로서의 기술은 인류. 역사의 초기 때부터 있어왔다 주술과 마술로서 사용되던 기술이 바로 그. 예다.9)마술과 주술이 통용되던 시기에 마술과 주술을 행했던 사람은 기술 에 대한 지식이 있었던 사람들이다 몇몇 선택된 사람들만이 기술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었으며 이들만이 기술을 자연과 또 다른 사람들을 지배, 하기 위해 도구 로 사용했었다‘ ’ .10) 인류 역사 초기에 기술이 행한 가장 큰 과업 은 바로 인류를 희생 시킨 일이었다(?) “ ” .11) 인류의 희생은 자연을 적 대적으로 또는 정복의 대상으로만 보았다는 사실에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 다 즉 기술에는 어떤 계기가 존재하는데 이 계기는 자연에 이질적인 목. , “ 표를 끌어내고 또 자연에 이질적이고 적대적인 수단을 사용하여 자연으로 부터 해방되고 자연을 정복하는 계기 인 것이다” .12)
지배 도구로 사용되던 제 기술과는 달리 제 기술은 인류사에서 다른 역1 2 할을 수행한다 이 제 기술이야말로 해방된 기술이다 벤야민은 이 제 기술. 2 . 2
8) 제 기술과 제 기술에 대한 분류는 벤야민의 기술 재생산 시대의 예술 작품 이라1 2 「 」 는 논문의 두 번째 판본에서 서술되어 있다 현재 많이 인용되는 이 논문의 판본. 은 두 번째 판본이 아니라 세 번째 판본이다 국내에서 반성완이 번역한 이 논문, . 은 두 번째 판본이 아니라 세 번째 판본에 해당한다 이 글의 세 번째 판본에서, . 벤야민은 두 번째 판본과는 다르게 제 기술과 제 기술을 구별하지 않고 제 기술1 2 , 2 을 전제로 예술 영역에서 기술 재생산이 가져올 수 있는 긍정적 가능성에 대해서 만 언급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언급이 바로 벤야민이 기술에 대해 맹목적인 믿. 음을 가지고 있었다고 평가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볼 수 있다.
9) Walter Benjamin(1991), “Das Kunstwerk im Zeitalter seiner technischen Reproduzierbarkeit”
제 판본
( 2 ), VII. 1, S.356358.․
10) 이와 관련해서는 다음을 참조하길 바람: Alexander Pivecka(1993),Die künstliche Natur.
Walter Benjamins Begriff der Technik,Frankfurt a. M., S.97.여기서 피벡카는 벤야민이 제 기술을 언급하면서 가장 염두에 두었던 것은 바로 사제들이나 주술사들이 마술 1
적 힘으로 사용했던 그러한 기술이었다고 강조한다.
11) Ebd., S.359.
12) Walter Benjamin(1991),Passagenwerk,V. 1, S.500~501.
을 매우 긍정적인 기술로 파악하고 있으며 이 제 기술이 인류사에 미친 영, 2 향에 주목했다 그에 따르면 이 제 기술은 자연과 또 다른 인간을 정복하기. 2 위해 사용되는 기술이 아니며 자연과의 조화와 다른 인간과의 조화를 위해, 사용된다 제 기술은 도구적 측면이 강조된 제 기술과는 달리 놀이적 기술. 2 2 ‘ 이다 놀이적 기능을 수행하는 제 기술은 자 (die spielerische Technik)’ . 2 “ 연과 인류 사이의 상호 작용(das Zusammenspiel zwischen der Natur und der Menschheit)”13)을 가능하게 한다 따라서 제 기술이야말로 해. 2 방적 기술이며 진정한 의미에서의 제 의 자연이다 벤야민에 따르면 자연, 2 . 과 인류 사이의 상호 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제 기술이 자신의 모습을 가장2 잘 드러내는 영역은 바로 예술이다 바로 예술 영역에서 예술의 기술적 재. 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제 기술이다 이에 대해2 . 벤야민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제 기술은 정말 자연 지배를 겨냥하고 있다 그러나 제 기술은 오히려
“ 1 . 2
자연과 인류간의 상호 작용을 추구한다 오늘날 예술이 가지고 있는 사회. 적으로 결정적인 기능은 바로 이러한 상호 작용을 실행하는데 있다.”14)
그렇다면 왜 제 기술과 제 기술은 이렇게 다르게 사용될 수 있는가1 2 ? 이에 대해 라이엔(Willen van Reijen)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라이엔. 에 따르면 벤야민이 제 기술과 제 기술을 바라보는 기본적인 관점은 둘 다1 2 넓은 의미에서 놀이‘ (Spiel)’라고 한다 그런데 이 놀이가 진행되는 방식과. 추구하는 방식에서 결정적으로 긍정적 역할을 하느냐 또는 부정적 역할을 하느냐로 구별될 수 있다고 한다 제 기술은 놀이를 마술적인 것과 미메시. 1 “ 스적인 것(das Magische und das Mimetische)”과 결합하는 반면 제, 2 기술은 놀이를 쾌(Lust)에 의한 기술 재생산적인 반복“ (Wiederholung)”
에 결합시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15) 특히 예술이 반복됨으로써 예술이
13) Ebd., S.359.
14) Ebd., S.359.
15) Willen van Reijen(1998), S.138.
본래 가지고 있었던 놀이적 기능이 되살아난다고 보았기 때문이라는 것이 다 뿐만 아니라 라이엔은 제 기술은 자연과 인간 간의 거리를 인정하지. 1 않으려는 태도에서 사용되는 기술이라고 한다 즉 양자간의 다름을 인정하. 고 이들이 공존할 수 있음을 인정하지 않고 이를 하나로 융합시키려는 태, 도가 결국은 자연과 인간에 대한 지배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이와 다르게. 제 기술은 다름을 인정하기 때문에 즉 양자간의 거리를 인정하기 때문에2 , 억압적으로 이를 하나로 만들려고 시도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이들 간. 의 거리가 자연스럽게 인정되기 때문에 이들은 서로 조화를 이루며 이 조, 화 속에서 놀이 공간을 확보하게 된다는 것이다.16)라이엔의 지적처럼 벤, 야민은 기술과 예술이 가지고 있었던 놀이적 요소에 주목했다 인간이 만. 든 산물이 인간을 지배하는 형상을 그는 비판했으며 예술에서도 마찬가지, 다 벤야민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이러한 전도된 관계가 가장 잘 드러나는. , 것이 바로 예술 작품에 대한 경배다 따라서 그는 진정한 놀이적 기능을 수. 행하는 제 기술을 바로 예술의 기술 재생산 가능성에서 찾았던 것이다2 .
제 기술
2) 2 :
예술 영역에서 기술 재생산 가능성제 기술은 예술 영역에서 예술 작품의 기술 재생산 가능성을 가져왔으2 며 이로 인하여 예술 영역은 경배적 공간에서 놀이 공간으로 변형된다, .17) 제 기술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예술 작품이 가지고 있었던 일회성과 유2 일 무이성 그리고 원본성을 공격한다 이러한 제 현상을 벤야민은 기술재, . 생산 시대의 아우라“ (Aura)의 몰락 이라고 표현했다” .18) 바로 예술 작품이
16) 참조 : Ebd., S.139.
17) Walter Benjamin(1991), “Das Kunstwerk im Zeitalter seiner technischen Reproduzierbarkeit”
제 판본
( 2 ), VII. 1, S.369.
18) Walter Benjamin(1991), “Das Kunstwerk im Zeitalter seiner technischen Reproduzierbarkeit”
제 판본
( 3 ), I. 2, S.477.
가지고 있던 아우라가 붕괴되는 지점에서 제 기술과 관계된 새로운 공간이2 열리게 된다 예술이 아우라를 보존하면서 관계했던 공간은 예술이 마술적. 또는 주술적 기능을 수행했던 경배적 공간이었다 이 공간에서 제 기술은. 1 자연과 인간을 지배하려고 했다 따라서 이 때 예술 또한 이러한 목적을 위. 해 존재했기 때문에 경배적 또는 제의적 가치를 지닐 수밖에 없었다 그러. 나 경배적 공간이 중요하지 않게 되며 또 자연과 인간을 지배하기 보다는, , 특히 자연과 인간 사이에 있는 필연적인 거리를 인식하고 받아들임으로써 비로소 제 기술 대신 제 기술이 그 자리에 등장하게 된다 이 제 기술은1 2 . 2 인간들에게 예술을 중심으로 다른 공간을 열어준다 이 공간이 바로 놀이. 공간(Spiel Raum)- 이다 이러한 놀이 공간에서는 제 기술이 지배했던. 1 공간과는 다른 관계가 형성된다 즉 자연 인간 그리고 예술이 서로 위계적. , 으로 존재했던 공간과는 다르게 이 놀이 공간에서는 자연 인간과 예술은, , 평등하게 상호 작용하게 된다 결국 이러한 놀이 공간에서 인간과 자연 그. “ 리고 인간 사이에 있는 지배 관계는 평등한 관계로 전환 될 수 있다” .19)
그렇다면 왜 기술은 제 기술로서 특히 예술 영역에서 자신의 모습을 드2 러내는가 또한 기술이 예술 영역에 가져온 변화는 무엇인가 벤야민이 이? ? 와 관련해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받아들인 것은 기술이 산업 혁명이후 이 전과는 전혀 다른 예술 형식을 현실화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서 경배. 의식에 사용되었던 예술과는 다르게 원본성을 묻지 않아도 되는 예술 탄생 의 전제 조건으로 기술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외에도 기술. , 은 예술 전반에 거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벤야민은 기술 재생산 시대. 「 의 예술 작품 을 쓰기 위한 메모에서 이러한 변화를 다음과 같이 개의 테」 8 제로 규정했다 예술 작품의 기술적 재생산 가능성은 예술 작품을 첫째 재. , 편집하며 둘째 현실화하며 셋째 예술 작품을 문학화와 정치화로 이끌, , , , 며 넷째 그것의 가치 절하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섯째 이는 자, , . ,
19) Willen van Reijen(1998)., S.141.
신의 최대의 가능성을 영화에서 만들어 내므로 영화야말로 이에 가장 적, 합한 예술 형식이라고 주장한다 여섯 번째 이는 예술 작품을 분산적 오락. , 적 지각(Zerstreuung)의 대상으로 만들며 일곱 번째 이는 지나간 시대, , 의 예술 작품 아래에서 현존재를 위한 투쟁을 상승시킨다는 것이다 결국. 여덟 번째 예술 작품의 기술적 재생산은 예술에 대한 대중의 태도를 바꾸, 어 놓는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회화에 소극적인 입장을 취했던 대중은 코. 믹 영화에 대해서는 진보적인 태도를 취한다고 한다.20)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예술 영역에서 기술은 이제 단지 도구와 수단으, 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술을 근원적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는 기본 전제, 로 작용하게 된다 또 이러한 단계에서는 예술과 기술의 절대적 구별은 별. 의미가 없게 된다 무엇보다도 벤야민에게 예술이란 사회적 산물이다 사. . 회적 산물인 예술은 결코 그 시대의 생산력 발전 단계와 기술의 발전 정도 와 무관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벤야민의 맑스주의적 예술 이론에서 기. 술 개념은 가장 중요한 범주로 등장하는 것이다.21) 그렇다면 기술 자체만 으로 이러한 변화가 가능한가 다시 벤야민의 방식으로 묻는다면 아우라? , 의 몰락은 기술 재생산성 때문에 가능한 것인가 그렇다면 벤야민은 정말? 기술 결정론자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러나 벤야민은 단지 기술 문제로? 만 이러한 현상들을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예술 영역에서 사용된 기. 술은 기술 사용에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이는. 주체의 의도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즉 예술가의 주관적 의도가 이러. 한 변화를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20) Walter Benjamin(1991), I. 3, S.1039.
21) Heinz Paetzold(1974),Neomarxistische Ästhetik,Düsseldorf, S.131.
주체에 의한 제 기술의 능동적 사용
3) 2
벤야민은 예술 영역에서 주체에 의한 제 기술의 올바른 사용 또는 능동2 적 사용을 강조한다 이러한 강조를 통해 벤야민은. 19세기에 있었던 예술과 기술의 대립 구도가 이들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임을 보여주려고 했다.
이러한 그의 시도가 가장 잘 드러난 그의 저작은 바로 파사젠 베르크
이다 수작 벅 모스 가 지적하
(Passagen Werk) . (Susan Buck Morss)-
고 있는 것처럼 이 책의 핵심 주제는 바로 예술과 기술의 관계이며 이 책, , 을 통해 벤야민은“19세기 사진이 미술에 미친 영향 공학이 건축에 미친 영, 향 대중 저널리즘이 문학 생산에 미친 영향 등을 보여주려고 했다, ” .22)
세기 기술 발전에 대해 많은 예술가들은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
19 .
에게 기술은 기술일 뿐이며 이는 결코 예술 영역에서 무언가를 독창적으로, 구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실용적 차원에서 도움을 주는 것뿐이었다 따, . 라서 철과 유리라는 새로운 건축 재료가 등장했을 때에도 이를 이용해 그 재료에 적합한 건물을 지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의식은 이에 상 응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재료는 새로운 기술 공학적 산물이었음에도 불구. 하고 형식과 내용은 예전의 예술 형식과 내용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음을 벤 야민은 지적하고 있다.23) 재료에 상응하지 못하는 인간 의식이 재료는 새 로운 것이나 형식은 고딕적인 형식을 띤 건축물들을 만들었으며 철을 사, , 용한 유겐트 양식 또한 형식과 내용은 주로 자연을 모방하는 것이었다 벤. 야민은 이러한 어긋나는 구도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한 구조물이 바로 에펠 탑이라고 보았다 에펠탑이야말로 새로운 기술에 철저하게 부응하는 기념비. 적 작품 인 것이다‘ ’ .24)
22) Susan Buck Morss(1991),- Dialectics of Seeing,김정아 옮김 벤야민과 아케이드 프로젝, 트,문학동네, 2004, 169 .쪽
23) Walter Benjamin(1991),Passagenwerk,V. 1, S.213.
24) Walter Benjamin(1991),Passagenwerk,V. 2, S.1062.
철이 건축 재료로 등장했던 초기에 철재 재료와 건축 형식과 내용에서 이들이 상응하지 못한 채 서로 어긋난 현상은 예외 없이 사진에서도 드러 난다 초기 사진들에서 우리는 사진이 점점 그림 을 닮아가려는 현상을 볼. ‘ ’ 수 있다 그림은 사진같은 그림 이 되고 사진은 그림 같은 사진 으로 된다. ‘ ’ ‘ ’ . 특히 사진가들은 풍경화를 모방하면서 이것저것 불필요한 장식들을 보조 장치로 만들어 놓고 사진을 찍기도 하고 사진을 현상할 때도 그림과 같은, 효과를 내기 위해 애를 썼다 예술 영역에서 이렇게 기술이 수용되는 현상. , 즉 기술에 상응하지 못하는 예술의 등장과 이에 상응하지 못하는 예술가 의식 등을 벤야민은 기술의 불행한 수용 이라고 지적한다“ ” .25)
그렇다면 당시 기술 발전에 상응하는 예술 형식은 무엇이며 또 어떤, 예술가들이 기술에 상응하는 의식을 가지고 예술 창조에 임했는가 그것은? 바로 포토몽타주‘ (Photomontage)’이며 또 이를 행한 다다이스트들이야, 말로 기술이 예술에 가져올 수 있는 변화를 탁월하게 파악하고 있으며 이, 를 실행한 예술가들인 것이다.26) 예술 영역에서 몽타주야말로 새로운 예 술적 기술로 등장했다.27)그 당시 새로운 기술이 가지고 온 효과와 영향에 관심을 가진 많은 예술가들은 사진을 통해 이미지가 완성태의 형태로 주어 지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이미지들을 말 그대로 몽타주할 수 있는 가능성, 을 실현시킬 수 있다는데 관심을 기울였다 그들은 사진이 가지고 있었던. 새로운 기술적 심미적 가능성에 주목했다 뿐만 아니라 이에 관심을 가지. 고 있었던 예술가들은 이러한 새로운 예술 형식이 근본적으로 변화된 실재 를 지각하고 경험하는데 상응한다는 사실 또한 인식했다.28) 또한 많은 예 술가들은 기존의 전통적인 예술 작품과는 완전히 다른 예술 형식이 기술에
25) Walter Benjamin(1991), “Eduard Fuchs, der Sammler und der Historiker”, II. 2, S.475.
26) Walter Benjamin(1991), “Das Kunstwerk im Zeitalter seiner technischen Reproduzierbarkeit”
제 판본
( 1 ), I. 2, S.501.
27) Annegret Jürgens Kirchhoff(1984),- Technik und Tendenz der Montage. In der Bildenden Kunst des 20. Jahrhunderts,Gießen, S.25.
28) Ebd., S.7.
의해서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으며 바로 이러한 새로운 예술 형식은 영화, 에서 완성될 수 있다고 보았다 영화야말로 기술 재생산 시대에 대표적인. 새로운 예술 형식이며 그 당시 기술과 자유롭게 상응하는 예술 형식이며, , 또한 제 기술이 만들어낸 새로운 놀이 공간인 것이다2 .29)
하이데거의 기술 개념 3.
하이데거는 기술에 대한 도구주의적 해석을 넘어 기술을 존재론적으, 로 접근하여 기술 본성의 문제를 철학적 문제로 만들었다.30) 일반적으로 하이데거의 기술 이론은 기술에 대한 묵시론적 고찰로 잘 알려져 왔다 그. 러나 하이데거의 기술론을 살펴보면 단지 하이데거가 기술에 대한 부정적, 인 견해만을 펼치고 있다고 결코 볼 수 없다.31) 특히 도구적 기술 이해에 반대하면서 테크네에 대한 그의 체계적인 고찰은 현대 하이 테크놀로지,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볼 수 있다.32) 왜냐하면 하이 테크놀로지 시
29) 이 글에서는 벤야민의 영화 이론에 대한 논의는 자세히 언급하지 않겠다 다만 기. 술에 상응하는 새로운 예술 형식이라는 점만 지적하고 넘어가고자 한다 벤야민. 의 영화와 관련된 논의는 다음의 논문을 참조하길 바람 : 심혜련 매체에 대한 미,「 학적 접근 대중매체에 대한 발터 벤야민의 고찰을 중심으로- 」, 매체철학의 이 해 매체철학연구회 지음 인간사랑, , , 2005, 127~169 ;쪽 심혜련 디지털매체 시대,「 의 영상의 수용 문제에 관하여」, 영화언어 겨울호, 2003, 72~85 .쪽
30) Don Ihde(1979),Technic and Praxis,김성동 옮김 기술철학 철학과 현실사, , , 1998, 쪽
194 .
31) 참조 : 같은 책, 193 .쪽 여기서 돈 아이디는 하이데거가 기술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 만을 보이고 있다는 주장은 하이데거에 대한 피상적 해석이라고 한다.
32) 마이클 하임은 하이데거의 기술 철학을 적극적으로 현재의 매체적 상황과 연관시 켜 파악하고 있다 매체와 사유의 연관 관계에 대한 물음을 그는 이미 하이데거가. 제기했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하이데거를 기술 비관론자라고 파악, 하는 것에 반대하면서 이미 하이데거 자신이 낙관적으로나 비관적으로 자신의, 견해를 범주하려는 시도에 반대했으며 따라서 그는 유연한 기술 결정론자라고,
대에서 하이 테크놀로지에 대한 논의 또한 도구적 기술 개념이 아니라 기, 술 본성 자체에 대한 물음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바로 이에 대한 물음을, 제기한 하이데거의 논의는 기술 철학적 논의에 매우 중요한 논점을 제공해 주리라고 보기 때문이다.33) 러츠키(Rutsky) 또한 이와 유사하게 하이 테 크놀로지 시대에 하이데거가 기술 본질에 대해 물었던 문제 제기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왜냐하면 현재 하이 테크놀로지 시대에도 여전히 기. 술의 본질에 접근해 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 서 하이데거의 물음은 현재 상황에서 유익한 이정표 구실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34) 그렇다면 과연 하이데거의 기술 개념이 어떻게 현재 하이 테 크놀로지 시대에서 유익한 이정표 역할을 할 수 있는가 하이데거가 제기? 한 기술에 대한 문제 제기는 무엇이며 그 특징은 무엇인가, ?
주장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다음의 글을 참조하길 바람. : Michael Heim(1993), The Metaphysics of Virtual Reality,여명숙 옮김 가상현실의 철학적 의미 책세상, , ,
쪽 2001, 101~124 .
33) 참조 : 김상환(2003),「디지털 혁명은 존재론적 혁명이다」, 예술가를 위한 형이상 학 민음사 김상환은 디지털 혁명을 존재론적 관점에서 볼 것을 제의하면서 특, . 히 기술 문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같은 책( , 325 ).쪽 따라서 그는 기술에 대 한 문제를 존재론적 사유의 중심에 두고 전반적으로 디지털 혁명에 대해 철학적, 으로 접근할 때 하이데거의 기술 개념이 가지는 의의를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 이런 묵시론적이고 신비한 결론에도 불구하고 하이데거의 기술론은 정보화 사
“
회에 대하여 빛을 던져주고 있다 그것은 인간과 기술의 관계를 도구주의적 관점. 을 초과하는 보다 고차적 수준에서 설정해야 할 필요성을 부각시키는데 있다 하. 이데거는 기술의 본질이 결코 도구적 효용성이나 기술적 인공성 자체에 있는 것 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즉 기술은 인간 도구 생산 효용성 심지어 과학 등을. , , , , 초과하는 범주이다 기술은 인간의 삶의 방식과 역사적 운명을 결정하는 원초적. 범주이며 한 시대의 문화적 패러다임을 창출하는 존재 이해의 양태를 대변한다, . 역사적으로 변화하는 인간의 존재론적 태도와 사고의 근본 양상이 드러나는 장 소 그것이 기술인 것이다 같은 책, ( 327 ).”쪽
34) R. L. Rutsky(1999),High Techne,김상민 외 옮김 하이테크네 시공사, , , 2004, 9 .쪽
기술에 대한 도구적 인간학적 규정에 대한 비판 1)
하이데거는 기술과 전향 에서 기술 본질에 대한 물음을 제기한다.35) 그는 무엇에 대한 본질은 그것이 무엇으로 존재하는바 그것“ ”36)이라고 규 정하고 기술 본질 또한 이러한 규정 틀을 가지고 와서 정의하고자 시도했, 다 따라서 그는 일반적으로 정의되는 기술 본질이 과연 기술의 본질일까. 라는 의구심에서 자신의 기술에 대한 논의를 전개한다 그는 현재 규정되. 고 있는 기술에 대한 본질 규정이 주로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데, 이 두 가지 방향이 바로 기술에 대한 도구적 그리고 인간학적 규정이라고 지적하면서 이를 비판한다 즉 기술은 목적을 위한 수단. “ ”37)이며 기술은, “ 인간 행동의 하나”38)라고 규정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 두 가지 규정. 은 기술을 도구 또는 장치로 규정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기술이 무엇인가라고 할 때 거기에는 연장 기구 기계 등의 제작과 사용에
“ , ,
속하며 이때 제작된 것과 사용된 것 자체도 기술에 속하고 욕구와 이 욕구를, , 만족시키기 위한 목적들도 기술에 속한다 이러한 장치 전체가 곧 기술이다. . 기술 자체 또한 하나의 장치이며 라틴어로는 인스트루멘툼, (instrumentum) 이라고 한다.”39)
하이데거의 기술 본질에 대한 물음은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 왜냐하면. 도구적 관점에서 또는 인간학적 관점에서 기술 본질을 규정하는 것은 기술 을 도구로 규정하는 전제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에 이를 통해서는 기술 본, 질에 도달할 수 없다고 한다.40) 그 이유는 하이데거에 따르면 결코 기술
35) Martin Heidegger(1962),Die Technik und die Kehre,이기상 옮김 기술과 전향 서광, , 사, 1993.
36) 같은 책, 17 .쪽 37) 같은 책, 17 .쪽 38) 같은 책, 17 .쪽 39) 같은 책, 17 .쪽
본질은 도구나 수단으로 규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기술. 에 대한 이러한 도구적 인간학적 규정이 틀린 것은 아니다 하이데거 또한. 이를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틀리지 않은 것이라고 해서 이것이 반드시 그. 것의 진리 계기 즉 참된 것을 드러나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기술, . 을 기술로 존재하게 하는 그 무엇은 과연 무엇인가 이를 하이데거는 탈은? 폐라고 규정한다.
기술은 탈은폐
2)
(Entbergen)의 한 방식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하이데거가 비판하고 있는 기술은 기술 그 자, 체가 아니라 도구적 또는 인간학적 관점에서 규정되는 기술 개념이다 또, . 한 이러한 개념들은 결코 기술 본성을 드러내는 규정들이 아니라는 것이 하이데거가 행한 기술 비판의 핵심이다 기술의 본질은 감추어져 있는 것. 을 드러내는 것 즉 탈은폐이며 이 탈은폐야말로 진리 영역에 속하는 것이, , 며 따라서 기술은 진리 영역과 관계하게 된다, : “따라서 기술은 그저 하나 의 수단만은 아니다 기술은 탈은폐의 한 방식이다 이 점에 우리가 유의한. . 다면 기술의 본질이 갖는 전혀 다른 영역이 우리에게 열린다 탈은폐의 영. 역 즉 진리의 영역이다, .”41)
탈은폐란 밖으로 끌어내어 앞에 내어 놓는 것을 의미한다 밖으로 끌어. 내어 앞에 내어 놓는 것은 은폐성으로부터 비은폐성으로 끌고 가는 것이 며 이는 곧 알레테이아, (Aletheia), 즉 진리이다42) : “기술은 탈은폐의 한 방식이다 기술은 탈은폐와 비은폐성인 알레테이아 즉 진리의 사건이 일. ,
40) 같은 책, 21 .쪽 41) 같은 책, 35 .쪽
42) 돈 아이디는 탈은폐와 관련해서 하이데거의 진리 개념을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진리는 알레테이아인데 이는 감추어지지 않음 이라고 번역된다 이러한 알레
: “ , ‘ ’ .
테이아는 어떤 열림 내에서만 현전하게 되는데 이러한 열림 그 자체가 어떤 구, 조를 가지고 있다 돈 아이다 앞의 책”( , , 197 ).쪽
어나고 있는 그곳에 본질적으로 존재한다.”43)
기술이 탈은폐의 방식으로 가장 잘 드러나는 장은 바로 예술이다 예술. 에서 기술은 물질 안에 감추어져 있는 존재를 존재 자체로 가장 잘 드러나 게 도와준다 여기서 기술은 무엇을 만드는 행위나 조작하는 행위로 존재. 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무엇을 만들어낸다는 제조의 의미로서의 기술 또. 한 아니다 여기서 기술은 탈은폐로서 안에 내재되어 있는 것은 밖으로 끌. “ 어내어 앞에 내어 놓는 것(Her vor zu bringende)”- - - 을 의미한다.44) 이것이 바로 포이에시스(Poiesis)이며 그것은 시적인 어떤 것 이다, “ ” .45) 결국 하이데거는 기술이 탈은폐의 방식으로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은 예술 중에서도 특히 시에서 찾았다고 볼 수 있다.
하이데거는 현대 기술이 직면하고 있는 제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대 기술도 기술이기 때문에 탈은폐임을 직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 나 하이데거는 현대 기술의 탈은폐는 기술 즉 테크네가 가지고 있던 포이, 에시스로서의 탈은폐가 아니라 강요된 닦달된 탈은폐라는 것을 비판한다, . 다시 말해서 현대 기술은 도발적으로 요청하는 탈은폐 인 것이다“ ” .46) 즉 밖으로 끌어내어 보여주는 것은 맞는데 이 과정에서 무리하게 끌어내고, 또 자연에게 무리하게 요청한다는데 현대 기술의 문제점이 있다고 본다.
이러한 도발적 요청“ (Herausforderung)”47)이라는 탈은폐의 과정에서 대 상은 사라지고 부품(Bestand)으로 닦아세움(das Ge stell)- 이 집약적으 로 나타난다고 보았다.48)
43) Heidegger, 위의 책, 37 .쪽 44) 같은 책, 37 .쪽
45) 같은 책, 35 .쪽 46) 같은 책, 47 .쪽 47) 같은 책, 43 .쪽 48) 같은 책, 43 .쪽
예술로서의 테크네 3)
앞서 살펴본 봐와 같이 하이데거가 근대적 기술 개념을 비판하면서 염, 두에 두고 있는 기술은 바로 고대 그리스의 테크네 개념이다 테크네로서. 의 기술만이 현재의 도구적 인간학적 기술 규정과 기술 사용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주고 있다고 하이데거는 생각한다 더 나아가 그는 테크. 네 개념이 본래 가지고 있었던 개념에 주목한다 즉 그에 따르면 이전에는. “ 테크네 라는 명칭을 기술만이 지니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전에는 진리
‘ ’ .
를 빛나는 것의 광채 안으로 끄집어내어 앞에 내어 놓는 것도 테크네 라 일‘ ’ 컬었다.”49) 뿐만 아니라 그는 고대 그리스에서 예술의 포이에시스 도 테, ‘ ’ ‘ 크네 라 불리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50) 따라서 그에 따르면 이러한 테크 네의 개념을 가지고 있었던 그리스 예술은 탈은폐의 최고 경지에 이르는 것이었으며 유일한 다각적인 탈은폐가 현실화된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 . 예술이야말로 경건하며 진리가 가장 잘 발현되는 것이며 또 진리가 가장, , 잘 보존된 것이었다.
벤야민과 하이데거의
4. 기술 개념이 가지고 있는 유사성과 차이성
벤야민과 하이데거의 기술 개념이 가지는 유사성 1)
앞서 벤야민과 하이데거의 기술 개념과 예술과 기술 관계에 대한 이들 의 논의를 살펴보았다 이 둘은 자신들의 기술 개념에 대한 논의에서 도구. 적 기술의 극복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측면에서 유사성을 찾을 수 있다 먼.
49) 같은 책, 95 .쪽 50) 같은 책, 95 .쪽
저 현대 기술이 도발적 닦아세움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하이데거의 주장과 제 기술이 가지고 있는 지배적 기능을 언급한 벤야민의 주장은 유사하다1 . 벤야민과 하이데거는 공통적으로 기술이 인간과 자연을 지배하려는 것으로 작용하는 것을 강하게 비판한다 이 둘은 이러한 비판에서 더 나아가 도구. 적 기술 개념이라는 단편적 기술 이해에 대해 비판하면서 이러한 점을 극 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예술에서 찾는다 하이데거의 탈은폐로서의 기술과. 고대 그리스의 테크네 개념의 강조와 벤야민의 제 기술에 대한 언급이 이2 에 해당한다 하이데거는 기술 본질이 정말 우리가 일반적으로 규정하는. 기술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기술에 대한 본질적인 자각이 일어날 수 있 는 영역은 바로 예술이라고 한다.51) 따라서 그는 기술에 대한 본질에 대“ 해 물음을 던지며 사유하면 할수록 예술의 본질이 더욱더 신비스러워진다”
라고 강조한다.52) 즉 예술 영역에서 진정한 의미에서의 탈은폐의 가능성 이 일어나리라 생각한 하이데거와 기술 재생산성이 예술 영역에 들어오면 서 기술이 긍정적 기능을 하리라고 본 벤야민의 사상과는 유사성이 있다.
이러한 기술의 긍정적 기능의 선례로 벤야민 또한 고대의 테크네 개념을 전제로 하고 있다 따라서 벤야민과 하이데거는 둘 다 기술 개념을 생각할. 때 무엇보다도 기술 문제를 초기 기술 즉 고대의 기술 개념으로 돌아가 논, 의를 이끌고 있음을 알 수 있다.53)물론 하이데거는 기술에 대한 문제에서 구체적으로 예술의 역할을 벤야민처럼 강조하지는 않았지만 기술에 대한, 올바른 접근이라는 그의 사유 체계 속에서 기술의 한계점들에 대한 보완물“ 로서 미적인 어떤 것 이 결과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내적인 필연성 이‘ ’ ” 드러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54)
러츠키 또한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없을 것 같은 이 두 사상가의 기술 개
51) 같은 책, 99 .쪽 52) 같은 책, 101 .쪽
53) Willen van Reijen(1998), S.135.
54) 돈 아이디 앞의 책, , 195 .쪽
념이 가지는 유사성을 강조한다 그는 하이데거가 강조하고 있는 닦달 틀. ( 지우기 의 탈은폐적 측면은 벤야민이 예술에서 주목했던 기술적 복제가 수) 행하는 역할과 유사하다고 주장한다 즉 그는 탈은폐라는 하이데거의 개념. 과 기술적 재생산 가능성이라는 벤야민의 생각은 둘 다 무언가 벗겨내는‘ ’ 과정이라고 한다 더 나아가 그는 벤야민이 강조하고 있는 기술적 재생산. 가능성이 예술을 경배와 제의적 아우라를 해체시키면서 예술을 향유와 사 회적 기능의 측면에서 주목하고 있는 점과 하이데거가 탈은폐를 언급하면 서 탈은폐가 신화적이고 주술적인 세계관을 해체시킨다는 점을 유사성으로 지적하고 있다.55)
결국 러츠키는 하이데거가 말하는 탈은폐와 벤야민이 말하는 아우라의 몰락이 유사한 논리로 진행되고 있음을 주장한다 벤야민이 예술의 기술적. 재생산 가능성에서 주목한 것은 바로 기술적 재생산 가능성이 예술을 탈주 술화 시킴과 동시에 탈아우라시킨다는 점이었다 러츠키는 이러한 기술적. 재생산 가능성이 바로 하이데거가 말하는 진정한 의미의 탈은폐 즉 진리, 가 드러나는 방식의 탈은폐와 유사하다고 한다.56) 이러한 러츠키의 주장 은 타당하다 그러나 러츠키의 주장처럼 이 둘 사이에 존재하는 이러한 공. 통점 때문에 이들의 논의를 일반적으로 동일한 것으로 간주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 둘이 상정한 예술에서의 기술의 역할과 예술에서 도구적 기술 의 사용이 극복될 수 있다고 본 점은 같으나 근본적으로 이 둘은 예술 개, 념에 대한 이해가 다르며 예술 기능에 대한 전망이 다르기 때문이다, .
55) 러츠키 위의 책, , 16 .쪽 56) 같은 책, 173 .쪽
벤야민과 하이데거의
2) 예술 본질 규정에서 오는 차이성
하이데거와 벤야민이 이러한 공통적인 전제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 고 이를 구체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은 다르다 즉 예술 영역에서 이들이 대, . 안으로 상정했던 방법론에서 이 둘은 입장의 차이를 보인다 무엇보다도. 다른 점은 예술 장르에 관한 문제다 하이데거가 예술을 언급할 때 구체적. , 인 예술은 바로 시이다 반면 벤야민은 시각 이미지 즉 사진 영화에서 그. , , 해결의 가능성을 찾았다는 점이다 이러한 차이는 취향의 문제나 예술 장. 르의 문제로 본다면 하나의 이차적인 것에 불과하다 본질적인 차이는 무, . 엇보다도 이 둘 사이에 존재하는 또 절대 좁혀질 수 없는 심연에서 기인한, 다 그것은 둘 다 도구적 기술의 극복 가능성을 예술에서 보았지만 이 둘. , 이 생각하고 있는 예술 개념이 다르다는 것이다 이러한 차이는 이 둘의 유. 사성에도 불구하고 이 둘을 결코 동일하게 묶을 수 없는 본질적인 것으로, 작용한다.
먼저 하이데거의 예술 개념은 무엇보다도 존재에 대한 물음에서 출발한 다 따라서 하이데거가 규정하는 예술 본질 또한 존재자의 진리가 작품 속. “ 에서 자기 정립(das Sich ins Werk Setzen der Wahreheit des- - - -
하는 것이다
Seienden)” .57) 따라서 예술 작품은 자신의 고유한 방식으로“ 존재자의 존재를 개시(Eröffnung)”하며 그럼으로써 존재자의 진리가 진리, 로서 일어나게 된다는 것이다.58) 이것이야말로 참된 진리라고 하이데거는 생각한다 존재와 진리의 관점에서 존재의 진리로서 현현하는 예술이야말로. 예술의 근원인 것이다 따라서 그에게 예술 작품이란 단순히 심미적 향유나. 관조의 대상일 수 없다 이러한 것으로 예술 작품을 취급한다면 이러한 태. ,
57) Matin Heidegger(1952),Der Ursprung des Kunstwerks,오병남민형원 옮김 예술 작품․ , 의 근원, 1996, 41 .쪽
58) 같은 책, 45 .쪽
도야말로 예술 작품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심미적 향유의 대. 상으로 전락한 예술과 그것을 부추기는 박물관 또는 미술관을 강도 높게 비 판한다.59) 그에 따르면 작품이 본래 자신이 속했던 세계로부터 분리되어, 박물관과 미술관에 전시될 때 이 작품들은 이미 자신의 본래 세계에 있었, 던 그 작품이 아니라고 한다.60)이 때 전시된 예술 작품은 단지 예술 작품“ 의 대상 존재(Gegenstandsein)”일 뿐이지, “작품 존재(Werksein)”은 아 니라는 것이다.61) 이렇게 됨으로써 작품은 존재와 상관없이 하나의 심미적 향유의 대상이 될 뿐이다.
벤야민 또한 박물관과 미술관에 전시되는 예술 작품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한다 그러나 하이데거가 존재와 진리의 관점에서 부정적인 입장. 을 취한 것과는 달리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맥락에서 이를 비판한다, .62) 그 에게 박물관에 수집되어 있는 예술 작품은 대중과는 무관하게 지배 계층의 취향과 또 약탈의 역사를 보여주는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그곳에 전시된. 예술 작품들은 예술이 본래 가지고 있던 본질과는 무관하게 예술을 제의적 가치를 가지고 있는 아우라적인 존재로 만들 뿐이다 그렇다면 벤야민이. 생각하고 있는 예술의 본질은 무엇인가 앞서 기술 개념에서 본 것처럼? , 벤야민에게 예술은 그 무엇도 아닌 향유의 대상일 뿐이다 예술을 다른 무, . 언가로 거창하게 파악하는 것이야말로 예술의 아우라를 부추기는 것이다.
예술이 존재 또는 진리를 드러내는 그러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향유의 대상으로 예술 작품을 파악한 벤야민과 존재자의 진리가 드러나는 곳으로 예술 작품을 파악한 하이데거는 예술에서 기대하는 기술의 역할에 대한 전망 또한 다르다 벤야민은 경배의 대상으로 전락한 예술이 기술 재. 생산 가능성에 의해서 다시 향유적 기능을 수행함으로써 예술이 놀이로,
59) 이와 관련해서는 다음을 참조 바람 : 같은 책, 47~55 .쪽 60) 같은 책, 47 .쪽
61) 같은 책, 47~48 .쪽
62) Walter Benjamin(1991), “Eduard Fuchs, der Sammler und der Historiker”, II. 2, S.502.
전환되는 점을 긍정적 시각에서 바라보았다면 하이데거는 도구적 기술로, 전락한 기술이 예술에서 이를 극복하고 존재자의 진리가 드러날 수 있는 가능성으로 보았다 따라서 예술은 진리가 드러나는 장소로 작용한다. .
결국 벤야민은 기술 재생산성에 의해 예술이 가지고 있는 작품‘ (Werk)’
개념이 해체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볼 수 있으며 반대로 하이데거는 도, 구적 기술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극복하는 예술이야말로 작품 개념의 강화‘ ’ 로 나아가야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볼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벤야. 민과 하이데거는 그들이 예술 영역에서 상정한 기술의 긍정적 역할에 대한 기대에도 불구하고 영원히 화해할 수 없는 길을 걷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 라 이러한 입장의 차이가 현대 예술에 대한 전망에서도 드러난다 즉 이러. 한 입장에서 벤야민은 현대 대중 매체 예술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바라보았으며 반면 하이데거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전통적인 예술 형식, , 으로 다시 시선을 돌리게 된다.
결론적으로 앞서 살펴보았듯이 현재 매체 또는 기술에 대한 논의 속에, 서 긍정적인 입장의 대표 주자를 벤야민으로 여기고 이와 대립적 입장으로 단순하게 하이데거를 배치시키는 것은 단순화의 오류다 그러나 이와 마찬. 가지로 기술 개념에 대한 유사성 때문에 이 둘을 동일하게 보는 것 또한 단 순화의 오류다 이 둘은 다른 방향으로 가는 기차를 타고 있다 단지 다른. . 방향으로 가는데 기차가 유리하다는 것을 인정한 점만 같고 기차가 도달, , 하는 종착역에 대한 표상은 정말 다르다.
하이 테크놀로지 시대에 벤야민과
5. 하이데거의 기술에 대한 물음이 가지는 의의
지금까지 산업 혁명이후 모던 시대의 급격한 변화를 초래한 기술에 대 한 문제를 벤야민과 하이데거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이 둘은 기술이 가. 져온 현상적인 변화에만 주목한 것이 아니라 바로 기술 본질 그 자체에 주, 목하면서 나름대로의 기술론을 전개했다는데 큰 의의가 있다 이러한 이들. 의 기술론은 하이 테크놀로지 시대인 현대에서 여전히 주요한 분석의 틀‘ ’ 로 작용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하이 테크놀로지 시대에서 여전히 그것의 본. 질에 대한 문제가 아직 본격적으로 검토되지 않을 채 남아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이데거가 기술 본성에 대해 제기했던 물음들은 하이 테크놀로지 시대에서도 여전히 유효하게 작용할 수 있다 또한 벤야민이 기술 재생산. 시대에 재생산 또는 복제가 가능한 예술의 탄생이 기술 발전에 의해 현실 화된 현상을 보고 비도구적 기술 사용의 가능성을 보았고 이러한 기술이, 만들어낸 공간을 놀이 공간 으로 보았다는 사실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 . 왜냐하면 현재 디지털 매체가 만들어내는 사이버 공간이 대표적으로 이러 한 놀이 공간 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 .63)
현재 예술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예술과 기술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 로 제기되고 있다 때로는 기술 미학이라는 이름으로 또 때로는 매체 미학. 이라는 이름으로 이들의 관계와 기술의 발전이 앞으로 예술에 어떠한 영향 을 미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다양한 방면에서 전개되고 있다 예.
63) 또한 이러한 벤야민의 주장은 디지털 이라는 하이 테크놀로지 가 가져온 변화에‘ ’ ‘ ’ 주의 깊게 주목한 매체 철학자 빌렘 플루서(Vilem Flusser)의 이론과도 비교할 필요 가 있다 왜냐하면 벤야민이 자연과 인간간의 상호 작용을 중심으로 새로운 기술. 적 놀이 공간이 등장하고 이 공간에서 예술의 역할이 경배적이고 제의적인 역할, 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했다면 플루서 또한 디지털이라는 하이, 테크놀로지가 예술에 가져온 변화 또한 놀이적 기능이라는데 있다고 보았기 때문 이다.
술 형식 또한 마찬가지다 사이보그 아트 바이오 아트 디지털 매체 예술. , , , 웹 아트 넷 아트 등의 새로운 형식의 예술들이 등장하면서 이제 기술은 예, 술에서 단지 매개의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 형식의 본질을 규, 정할 수 있는 근본 범주로 작용하고 있다.64) 이러한 새로운 예술 형식들이 등장하면서 다시 예술과 기술의 관계에 대한 물음들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다시 말해서 특히 디지털 매체 예술에서 매체 예술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 가라는 문제는 예술 영역에서 기술의 역할과 작용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라는 문제와 아주 밀접하게 연관된다 이러한 논의에서 현재의 디지털 매체. 예술 또는 현대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다양한 예술들을 예술의 종말 또는 예술 영역에서 기술의 승리로 보면서 우려하는 입장이 많은 것도 사실 이다 그러나 이는 전적으로 예술과 기술을 별개의 것으로 보는 입장에서. 기인한다 이러한 디스토피아적 우려는 벤야민과 하이데거가 그러했듯이. , 고대 그리스의 테크네 개념으로 돌아가서 생각하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 고 생각한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페터 바이벨. (Peter Weibel)은 기술 미“ 학(Techno Ästhetik)”- 65) 그리고 프랑크 포빼르(Frank Popper)는 하“ 이 테크놀로지 아트”66)를 적극 옹호한다 예술 개념은 고정된 개념이 아니. 다 예술은 사회적 상황에 따라 변하면서 사회적 상황을 예술 작품으로 투. 영시킨다 따라서 고전적인 예술의 관점에서 기술의 적극적 관여에 대해 문. 제 삼을 필요는 전혀 없다 이들은 서로 상호 작용하면서 새로운 형식의 예. 술 형식을 만들어 왔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67)
64) 현재 하이 테크놀로지와 예술과의 관계는 이 글에서 다루지 않겠다 이에 대한 구. 체적인 분석은 다음의 연구 과제로 남겨두겠다.
65) 참조:Peter Weibel(1991), “Transformationen der Techno Ästhetik”, in- :Florian Rötzer(1 991),Digitaler Schein. Ästhetik der elektronischen Medien,Franfurt a. M., S.205~213.
66) 참조 : Frank Popper(1991), “High Technology Art”, in : Ebd., S.249~256.
◈논문 투고일2006 1 31 / 심사일 월 일년 월 일 2 13 / 심사완료일 월 일3 16
참고문헌
Annegret Jürgens Kirchhoff(1984),- Technik und Tendenz der Montage. In der Bildenden Kunst des 20. Jahrhunderts, Gießen.
Alexander Pivecka(1993),Die künstliche Natur. Walter Benjamins Begriff der Technik,Frankfurt a.
M..
Don Ihde(1979),Technic and Praxis,김성동 옮김 기술철학 철학과 현실사, , , 1998.
Frank Popper(1991), “High Technology Art”, Florian Rötzer(1991),Digitaler Schein. Ästhetik der elektronischen Medien,Franfurt a. M..
Friedrich Rapp(1994),Die Dynamik der modernen Welt. Ein Einführung in die Technikphilosophie, Hamburg.
Gerhard Wagner(1992), Walter Benjamin.Die Medien der Moderne,Berlin.
Heinz Paetzold(1974),Neomarxistische Ästhetik, Düsseldorf.
Martin Heidegger(1962),Die Technik und die Kehre,이기상 옮김 기술과 전향 서광사, , , 1993.
Matin Heidegger(1952),Der Ursprung des Kunstwerks,오병남민형원 옮김 예술 작품의 근․ , 원 , 1996.
Max Horkheimer, Theodor W. Adorno(1992),Dialektik der Aufklärung,Frankfurt a. M..
Michael Heim(1993),The Metaphysics of Virtual Reality,여명숙 옮김 가상현실의 철학적 의, 미, 책세상, 2001.
Peter Weibel(1991), “Transformationen der Techno Ästhetik”, in : Florian Rötzer(1991),- Digitaler Schein. Ästhetik der elektronischen Medien,Franfurt a. M..
R. L. Rutsky(1999),High Techne, 김상민 외 옮김, 하이테크네,시공사, 2004.
Susan Buck Morss(1991),- Dialectics of Seeing,김정아 옮김 벤야민과 아케이드 프로젝트, , 문학동네, 2004.
제 Walter Benjamin(1991), “Das Kunstwerk im Zeitalter seiner technischen Reproduzierbarkeit”( 1
판본), in : I. 2, Walter Benjamin(1991),Gesammelte Schriften.Bd. I~VII, Unter Mitwirkung von Theodor W. Adorno und Gerschom Scholem herausgegeben von Rolf Tiedemann und Hermann Schweppenhäuser, Frankfurt a. M.
제 Walter Benjamin(1991), “Das Kunstwerk im Zeitalter seiner technischen Reproduzierbarkeit”( 3
판본), in : Ebd., I. 2.
제 Walter Benjamin(1991), “Das Kunstwerk im Zeitalter seiner technischen Reproduzierbarkeit”( 2
판본), in : Ebd., VII. 1.
Walter Benjamin(1991), “Eduard Fuchs, der Sammler und der Historiker”, in : Ebd., II. 2.
Walter Benjamin(1991),Passagenwerk, in : Ebd., V. 1~2.
Walter Benjamin(1991), in : Ebd., I. 3.
Willen van Reijen(1998),Der Schwarzwald und Paris. Heidegger und Benjamin,München.
김상환, 「디지털 혁명은 존재론적 혁명이다」, 예술가를 위한 형이상학, 민음사, 2003.
심광현, 탈근대 문화정치와 문화연구,문화과학사, 1998.
심혜련, 매체에 대한 미학적 접근 대중매체에 대한 발터 벤야민의 고찰을 중심으로 ,「 - 」 매체철학의 이해,매체철학연구회 지음 인간사랑, , 2005.
디지털매체 시대의 영상의 수용 문제에 관하여 영화언어 겨울호
,「 」, ,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