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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로서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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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놀로지의 이중성 *

피종호 (한양대)

Ⅰ. 기계로서의 도시 – 테크놀로지의 현대화에 대한 비판

“기술적 국가 Technischer Staat”(Saage 1986, 37) 또는 테크놀로지가 지배하는 도시에 대한 논의는 18세기 말 프랑스의 공상적 사회주의자 생시몽 Saint-Simon으 로부터 시작한다. 기술적 진보를 가로막는 복고주의적 힘에 대항한다는 의미에서

“역사의 종말”에 대한 이 논제는 새로운 기술관료적 자본주의 산업사회를 지향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Saage 1986, 37). 칼 맑스는 지배이데올로기 관점에서 국가를 “계 급지배의 기계”(Marx 1974, 66)라고 언급하고 있다. 독일이 산업화시대에 접어들 면서 테크놀로지가 문화의 중요한 요소로서 확장되던 시기의 예술사조인 독일 표현 주의 Expressionismus에서 프리츠 랑 Fritz Lang의 기계도시에 관한 알레고리 영화

<메트로폴리스 Metropolis>(1927)는 기계도시의 테크놀로지와 지배이데올로기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Horn 2011, 26).1) 바로 앞선 예술사조였던 자연주의의 자연과 학적 관점과는 대조적으로 표현주의는 급속도로 발전하는 물질문명 속에서 테크놀 로지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표현주의는 현실을 왜곡하는 상징적인 장식 과 과도하게 과시적인 양식과 감정의 표출을 특징으로 하고 있으며 주체의 분열과 실존의 위기, 더 나아가 세계종말의 징후를 보이면서 테크놀로지 진보에 대한 낙관 주의보다는 “인류의 여명 Menschheitsdämmerung”에 대한 관심을 두드러지게 나 타낸다(Daniels 2006, 351). 이중적인 시대적 알레고리 의미를 지닌 ‘인류의 여명’

* 이 논문은 2016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 (2016S1A5B8914175)

1) 여기서 호른은 <메트로폴리스>의 “국가로서의 기계”를 직접적으로 칼 맑스에게서 차용된

관점으로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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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영화 책 Kinobuch󰡕(1914)을 쓴 쿠르트 핀투스 Kurt Pinthus의 표현주의 시선집 제 목이 󰡔인류의 여명 Menschheitsdämmerung󰡕(1920)이라는 점과 같은 맥락을 지닌다. 기술문명이 주도적인 현상 속에서 인류의 미래에 대한 표현주의의 양면적 관점

은 <메트로폴리스>에서 테크놀로지의 이중성을 제시하면서 유사하게 나타난다. 이

영화는 미래의 거대도시에 대한 매혹과 함께 그곳에서의 억압과 혼란을 묘사함으로 써 모더니즘에 대한 매혹과 위협이라는 동시대인들의 양립적인 감정을 투사하고 있 다(Kaes 2004, 65).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 Siegfried Kracauer는 󰡔칼리갈리에서 히틀러까지 Von Caligali zu Hitler󰡕(1947)에서 <메트로폴리스>가 상영된 바이마르공화국의 “안정 화 시기 Stabilisierungszeit”(1924-1929)를 “기계적 환상”을 다루는 시기라고 언급 하고 있는데, 이는 “기계숭배 Maschinenkult”가 지배적인 대중적 현상이었기 때문 이다(Kracauer 1984, 158). 이러한 환상 속에서 제시되는 기계도시는 구체적인 공 간이 아니라, 반자연주의적이며 비유적인 사물의 세계로 나타나는 압축된 추상적인 공간이다(Keilholz 2009, 104). 이러한 묘사과정에서 프리츠 랑이 구상한 환상의 도 시로서의 기계도시는 서로 상반된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두 세계로 구분된다. 하 지만 지상세계와 지하세계로 나타나는 이러한 이분법은 테크놀로지에 대한 그의 비 판적 견해를 강하게 드러낸다.

역사적인 지배로 나타난 사회와는 다른 모델사회에 대한 표상을 보여주는 환상 영화 또는 공상과학영화인 <메트로폴리스>는 르네상스이후 새로운 사회에 대한 유 토피아로서 구상되거나 디스토피아적 현실 또는 독재자의 공포에 대한 예언의 한 유형에 속한다(Koebner 2003, 9). 이러한 현실은 관객이 읽을 수 있는데, 이는 현실 이 공상과학소설에서 유래한 “도상적 관습”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Kuhn 2000, 6). 바이마르공화국의 “사이보그로서의 새로운 인간”은 그러한 예에 해당한 다(Biro 1994, 71ff). 이 도상적 관습에는 독일의 표현주의영화에서 흔히 나타나는 이질적인 요소로서 동화될 수 없는 다른 것을 의미하는 “이타성의 해석학 Hermeneutik der Alterität”(Zons 2001, 235)이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환언하면 이 러한 유형의 영화는 공상과학소설처럼 이해할 수 있는 내러티브를 제시하지만, 기 계로서 도시나 기계인간 또는 인조인간이라는 불확실성과 낯선 현실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수사학적 기법을 통해 테크놀로지의 부정성을 드러낸다. 1920년대 오스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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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 슈펭글러 Oswald Spengler, 에른스트 윙거 Ernst Jünger, 마틴 하이데거 Martin Heidegger의 테크놀로지 비판에게서도 보이는 이러한 관점은 독일의 테크놀로지 현대화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드러내는 것으로서 이해할 수 있다(Kaes 2004, 63).

특히 니체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오스발트 슈펭글러의 문화비판적인 󰡔서구의 몰락 Der Untergang des Abendlandes󰡕(1922)에서 “돌의 거대한 입상”과 같은 거대한 고 층건물의 “세계도시는 모든 위대한 문화의 진행과정에서 종말에 위치해 있 다”(Spengler 1950, 117)라고 언급하고 있는데, 이러한 미래의 거대도시에 대한 문 화비판적 진단은 이에 대한 좋은 예가 된다.

이처럼 이 글은 테크놀로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선행연구와 차별화 된다. 이 글에서는 독일 표현주의영화 <메트로폴리스>를 중심으로 한 모더니즘 미 학의 다층적인 맥락 속에서 기계숭배와 비판, 신화적 또는 신학적 비유 속의 인간과 기계의 대립, 미친 과학자의 토포스와 기계인간 그리고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라는 대립성을 통해 테크놀로지의 이중성에 대해 고찰하고자 한다.

Ⅱ. 메트로폴리스의 이중적 세계와 테크놀로지의 이중성

미래도시를 표방하는 <메트로폴리스>는 서막 Auftakt, 간막극 Zwischenspiel, 분노 Furioso라는 세 부분으로 나뉜다. 테아 폰 하보우 Thea von Harbou의 소설 󰡔메 트로폴리스󰡕(1926)를 영화화한 이 영화는 미래의 도시를 제시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현재에 대한 형상적 주석”(Gunning 2001, 54)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영화 는 동시대의 현상으로 나타나는 테크놀로지 이데올로기의 긍정성과 부정성을 함께

보여준다. 우선 서막에서 많이 나타나는 테크놀로지의 긍정성은 부분적으로 미래주

의 Futurismus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미래주의의 대변자인 필립포 T. 마리네티 Filippo T. Marinetti는 이미 「미래주의 선언문 Manifest des Futurismus」(1909)에 서 새로운 삶의 형식을 만들기 위해 속도미학을 주창한다. 또한 그의 소설 󰡔마파르 카 미래주의자 Mafarka le Futuriste󰡕(1910)는 “기술시대의 유토피아”(Müller 1989,

196ff)를 지향하면서 기계인간의 유형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유토피아의 관점은 프리츠 랑의 <메트로폴리스>의 앞부분에서 부각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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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 시작시퀀스는 “메트로폴리스”(Lang 2004)라는 자막과 함께 화면분할과 오버 랩의 기법을 사용하여 거대한 피스톤의 움직임과 같은 테크놀로지의 아름다움을 보

여주면서, 미래주의의 건축물로 이루어진 이 도시가 기계도시임을 강하게 암시한

다. 빛과 어두움의 대립 속에서 미래도시의 역동성을 묘사하고 있는 이 움직임은 이

탈리아 미래주의와 표현주의의 기계메타학 뿐만 아니라 초현실주의의 몽상적 이미 지와도 연관되어(Eisner 1976, 83) 현실의 층위를 넘어서 꿈과 같은 이미지의 움직 임을 관객에게 제시한다. 피스톤의 움직임 사이에 보이는 도시 공간 흐름 역시 환상 적 세계임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다.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크라카우어는 <메트로폴 리스>가 “꿈속에서 마비된 집단의식을 이례적으로 명료하게 말하는 것”(Kracauer 1984, 171)이라고 진단하고 있는데, 이러한 진단은 바이마르공화국 시대의 예술에 나타나는 중심 모티브로서 꿈과 같은 기계적 환상에 관한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오프닝 크래딧은 이에 대한 비판적인 관점을 이미 암시하고 있 다. 즉 “머리와 손의 중재자는 가슴이다”(Lang 2004)라는 에피그람 Epigram이 이 영화의 모토로 제시되고 있다. 이 경구형식의 모토는 제 1차 세계대전 이후 상실된

“역사의 도덕성”을 회복하도록 강조하는 것뿐만 아니라 “맹목적인 기술진보와 도

구적 합리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것으로서(Kaes 2004, 62), 영화의 중간부분 뿐만 아니라 맨 마지막에서도 반복되어 나타나면서 주도모티브 기능과 주제의 의미 를 지닌다. 수증기의 분출, 시각화된 소리로 나타나는 공장 사이렌의 날카로운 울림 과 이어지는 노동자들의 지하세계로의 진입 등은 피스톤의 역동적 움직임 속에서 1920대 “독점자본주의적인 포드주의 monopolkapitalistischer Fordismus”(Kaes 2004, 63)에서와 같은 억압된 노동을 상징화하고 있다.

특히 <메트로폴리스>의 환상성은 세밀한 풍경화기법에서 유래한 도시풍경화 기

법으로 묘사된다. 후기 중세시기 이후 도시의 풍경을 사실주의적 파노라마로 묘사

하는 “베두테 Vedute” 기법은 18세기부터 개별적 건축물에도 큰 관심을 지니게 되

는데(Müller/Hetebruegge 2006, 191), 중앙의 위치한 ‘새로운 바벨탑’에 대한 묘사 가 이에 해당한다.

이러한 환상 속에서 점점 더 시각적으로 구체화되는 메트로폴리스는 수압으로 통제되는 세계이다. 이 영화의 여러 장면에서 압력을 나타내는 수압계가 보인다. 수 압을 통한 도시통제의 이미지는 기계도시의 토포스에 자주 나타나지만, <메트로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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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에서는 “폭발에 직면한 압력체계로서의 국가”(Horn 2011, 40)라는 공포의 모 티브가 주도하는 디스토피아의 관점을 암시한다. 특히 증기를 내뿜는 기계장면은 이 도시가 인간이 부재하는 기계도시임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다. 증기를 내뿜는 것 은 제 1차 세계대전 후 사회적으로 팽배한 불안에 대한 메타포로 작용하고 있 다.(Horn 2011, 42f) 그리고 증기를 내뿜는 기계는 영화에서 세 번 더 반복되는 주도 모티브로 나타나면서 공포를 넘어서 죽음의 모티브로 발전한다. 이 과정에서 유토피 아의 삶과 디스토피아의 삶이 점층적인 대립성을 이루면서 반복되어 묘사되고 있다. 거대한 피스톤의 움직임과 함께 역동적인 대도시의 어느 건물에서 ‘교대시간’이 라는 자막과 함께 제시되는 지하노동자 교대시퀀스는 크라카우어의 의미에서 네오 리얼리즘을 지향하는 ‘외부현실의 구제’가 아니라 이에 역행하는 삶의 가상성을 극 대화하고 있는 부분이다. 그는 바로 이 시퀀스를 “자기목적”으로 사용된 “장식적인 것 das Dekorative”의 이미지라고 비판한다.(Kracauer 1984, 159). 크라카우어는 진 실을 제시하기 위해 삶의 가상을 과도하게 비현실적으로 보여주는 것을 ‘대중의 장 식 Ornament der Masse’으로 지칭하는데, 이러한 테크놀로지의 이중성을 드러내기 위한 이러한 장면들이 이에 해당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이 시퀀스는 프리츠 랑의 영화에서 처음으로 터널모티브를 사용하면서 미로로서 의 지하세계를 제시한다(Keilholz 2009, 116).2) 철문이 열리면서 질서정열하게 늘 어선 검은 제복의 노동자들이 모두 머리를 숙인 채 마치 기계인간이나 인조인간처 럼 움직이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터널을 통해 지하세계로 들어가는 것을 보여주는 데, 이곳은 “지하 깊은 곳에는 노동자의 도시가 있다”(Lang 2004)라는 자막이 알려 주는 것처럼 노동자의 도시이다. 이 도시는 지상세계인 메트로폴리스와 대비되는 색의 상징술로 극명하게 대비되는 지하세계이다. 노동자 제복의 검은 색과 주위의 흰색의 대비뿐 아니라 지하세계의 밝음과 어둠의 대비는 표현주의에서 가장 두드러 지는 빛과 그림자라는 흑백색의 상징술과 일치하고 있다. 이러한 이분법적 구분은 인간과 기계,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의 대립을 심화시키면서 테크놀로지 진보에 대 해 비판하는 <메트로폴리스>의 주제를 형성하고 있다.

메트로폴리스의 지배자인 요 프레더젠 Joh Fredersen이 거주하는 곳은 지상세계

2) <메트로폴리스> 다음으로 터널모티브는 <스파이 Spione>(1928), 반나치영화 <인간 사냥 Man Hunt>(1941), <인간의 욕망 Human Desire>(1954) 등에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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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있는 기계도시의 중심지로서 푸코의 의미에서 파놉티콤 Panopticum과 같은 통 제체계를 갖춘 ‘새로운 바벨탑’이다. 이 명칭은 테크놀로지가 신화적 또는 신학적 층위와 연관되어 있음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다. 회화적 이미지로 21세기의 첨단 미 래도시를 보여주는 메트로폴리스에는 거대한 빌딩숲과 이 빌딩들은 연결하는 궤도 기차가 있으며, 또한 자가용 비행기들이 날아다니고 있다. 이 도시는 기하학적으로 도형화된 도시이다. 이러한 기계숭배와 연관된 산업화된 기하학적 도시풍경은 칼 그로스베르크 Karl Grossberg, 게오르그 숄츠 Georg Scholz, 오스카 네르링거 Oskar Nerlinger와 같은 신즉물주의 Neue Sachlichkeit 회화의 영향이다(Huyssen 1982, 223).

수압으로 통제되는 이 기계도시는 점점 더 통제할 수 없을 정도의 혼돈의 상황으로 이어지지만 요 프레더젠이 거주하는 새로운 바벨론의 통제사무실 시퀀스로 바뀌면서 질서체계가 주도하는 현실로 전환된다. 특히 이 시퀀스에서 등장하는 시계는 지하세 계의 억압의 상징으로 도입된 시계모티브와는 대조적으로 이러한 점을 잘 보여준다.

요 프레더젠이 수압관리자로 나타나면서 테크놀로지의 긍정성이 다시 부각된다. 하지만 프리츠 랑의 대도시영화 <도박사 마부제 박사 Dr. Mabuse, der Spieler>

(1922)에서 등장하는 마부제 박사처럼 요 프레더젠은 폭군이미지를 보인다. 크라카

우어가 언급하고 있듯이 이러한 “영화폭군 Filmtyrann”의 이미지는 오토 리페르트 Otto Ripert의 인조인간에 관한 영화 <호문클루스 Homunculus>(1916)에서 찾아볼 수 있다(Kracauer 1984, 172). 비록 주제적 층위에서 차이를 보이지만 이 영화에서 한젠 박사 D. Hansen와 호문클루스와의 관계는 <메트로폴리스>에서 과학자 로트

방 Rotwang과 기계인간 마리아와의 관계와 상응한다.

<메트로폴리스>에 등장하는 이러한 인물은 전체적으로 제스처가 과장되고 과도 하게 센치멘탈한 이미지를 보이는데, 이러한 이미지는 이탈리아의 소설가 가브리엘 레 다눈치오 Gabriele D’Annunzio의 소설에서 나오는 데카당스의 주인공과 유사하 다(Eisner 1976, 89). 또는 프란츠 폰 슈툭 Franz von Stuck이나 막스 클링거 Max Klinger의 표현주의 회화와도 많은 연관을 지니는 것으로 역사적 아방가르드 시대 의 키치 Kitsch 예술과 많은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Eisner 1976, 89). 이는 제 1차 세 계대전에서 야기된 비감정적으로 응고된 시대정신에 대한 거부의 제스처라고 해석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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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신화적 또는 신학적 비유 속에서 인간과 기계의 대립

메트로폴리스의 ‘아들의 클럽 Klub der Söhne’은 지하세계의 억압된 부자유의 공간과 대조적으로 지상세계의 자유로운 움직임을 부각한다. 강의실, 도서관, 극장, 경기장 등 환유적 기법으로 나타나는 이 공간은 흰색의 상징술로 나타난다. 이 중에 서도 특히 메트로폴리스의 지배자 요 프레더젠의 아들 프레더 Freder가 거주하는

‘영원한 정원 Ewiger Garten’은 지상세계의 가장 이상적인 공간이다. 유토피아와

같은 메트로폴리스에서 이곳을 지배하는 프레더는 분수를 중심으로 마치 요정과 같 은 무희들과 유희의 시간을 보내는데, 이 분수시퀀스는 16세기 초 네덜란드의 종교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쉬 Hieronymus Bosch의 “쾌락의 정원 Garten der Lüste”을 생각나게 한다(Müller/Hetebruegge 2006, 195). 천국과 인간세계 그리고 지옥의 세 부분으로 되어 있는 이 회화에서 인간의 세계에서 중앙에 있는 분수의 신화적 인물 사이렌 Siren은 영원한 정원의 분수에 있는 사이렌과도 일치하고 있다(Müller/

Hetebruegge 2006, 195). 또한 <메트로폴리스>의 유토피아를 대변하는 이 영원한 정원은 신화적 공간으로 확대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19세기 말 향락적인 “데카당스 Dekadenz의 이미지“(Müller/Hetebruegge 2006, 195)를 보인다는 점에서, 영원한 정원은 유혹의 세계임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다.

이 영원한 정원의 시퀀스는 마리아 등장시퀀스와 중첩되면서 신화적 공간은 신 학적 세계와 중첩된다. 특히 노동자들의 많은 아이들을 이끌고 지상세계에 나타나 는 여성이 마리아라는 점은 이러한 모티브의 의미를 더하고 있다. 프레더가 지하세 계의 노동자를 ‘형제’라고 부르고 있는 점도 기독교와의 연관성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신화적 유토피아에서 기독교적 세계종말의 토포스로의 전환은 프레더의 두 번의 지하세계 방문으로 구체화된다. 우선 첫 번째 방문 장면에서 특이한 점은 지상세계 와 지하세계의 경계가 ‘문’으로 나누어져 있다는 것이다. 카프카의 작품에서 볼 수

있듯이, 문은 현실과 세계의 경계를 나누는데 자주 사용되는 미학적 모티브이다. 뿐

만 아니라 문의 모티브는 성경적 모티브이기도 하다. 문을 경계로 한 세계가 유토피

아라면, 경계저편의 다른 세계는 그와 대비되는 세계로 묘사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

렇다. 특히 <메트로폴리스>에서 지하세계는 “깊은 곳으로 into the depths”(L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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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로 불리는데, 이는 지하세계가 고통이 있는 곳임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다. 이 러한 연관성은 성경의 시편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구절로서 이 영화가 성경적 모티 브와 깊은 연관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깊은 곳’이라는 표현은 세계종말인 아포칼립스 Apokalypse를 주제로 하고 있는 표현주의 시문학에서 나타나고 있다.

예컨대 게오르그 트라클 Georg Trakl의 시 「깊은 곳에서 De Profundis」는 성경의

시편 130편과 주제의 토포스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세계종말의 주제는 <메트로폴

리스>에서 테크놀로지의 부정성과 연관되어 점점 더 강하게 암시되고 있다.

문 뒤의 세계인 지하세계에서 기계의 폭발과 함께 기계신의 제단에 노동자들이 제물로 바쳐지는 시퀀스는 테크놀로지 세계에 신화적 또는 기독교적 요소를 더하면 서 시간적 개념을 확장시키면서 탈역사화하고 있다. 이 환상시퀀스는 소의 이미지 를 한 페니키아의 불의 신 몰록 Moloch의 제단을 향하여 노동자들이 열을 지어서 차례차례로 불의 제단에 바쳐지는 것을 묘사하고 있는데, 이 알레고리 이미지에 대 해 프레더가 두려움에서 외치는 ‘몰록’이 타이포그래피 typography 기법으로 형상 화되어 카니발리즘의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영화에서 폭군으로서 몰록의 이미지는 조반니 파스트로네 Giovanni Pastrone의 <카비리아 Cabiria>(1914)에서 도 볼 수 있다. 인간제물을 요구하는 ‘지배자’의 의미를 지닌 몰록은 또 다른 영화폭 군인 메트로폴리스의 지배자 요 프레더젠의 이미지와 유사성을 지닌다. 또한 몰록 이 성경 속에서 여러 곳에서 언급된다는 점에서(Die Bibel 2013),3) 이 시퀀스는 인 간과 기계의 극한적 대립을 묘사하면서 테크놀로지 문명을 기독교적 시각에서 과격 하게 비판하고 있다.

프레더는 아버지에게 지하세계 노동자들의 삶을 개선해 줄 것을 요청하지만 거 절당하는데, 이로써 야기되는 부자갈등의 토포스는 또 다시 인간과 기계의 대립이 라는 다른 유형의 두 가지 서로 대립적인 서사를 전개시킨다. 아버지는 자신의 친구 인 과학자 로트방의 중세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집을 방문하고, 아들은 두 번째 지 하세계 방문으로 통해 마리아를 찾아가는 서사의 전개는 갈등의 플롯을 증폭시킨

다. 특히 바이마르공화국 문화에 많은 영향을 끼친 슈펭글러의 의미에서 로트방은

“파우스트적인 과학자”로서 중세와 현대를 이어주는 기능을 한다(Gunning 2001,

3) Die Bibel, 레위기 18:21, 레위기 20:2-5, 열왕기상 11:7, 열왕기하 23:10, 예레미아 32:35, 사도행전 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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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지하세계의 문제를 해결책을 듣기 위해 찾아온 요 프레더젠에게 로트방은 자신 이 만든 기계인간을 보여주는데, 이 장면은 로트방의 집에 그려진 다윗의 별의 문양 을 통해 로트방을 유대인으로 인지하게 한다는 점에서 16세기 유대철학자 랍비 레 브 Rabbi Löw가 만든 인조인간 골렘 Golem을 연상시킨다(Müller/Hetebruegge 2006, 198). 또한 이 시퀀스는 파울 베게너 Paul Wegener의 골렘영화 <골렘과 무희 Der Golem und die Tänzerin>(1917)과 <세상에 태어난 골렘 Der Golem, wie er in die Welt kam>(1920)과도 상호텍스트성을 이루고 있다.

Ⅳ. ‘미친 과학자’의 토포스와 기계인간 - 이중적인 마리아와 디스토피아

테크놀로지의 이중성은 특히 ‘미친 과학자 mad scientist’라는 토포스를 통해서 형상화되기도 한다. 이 토포스는 19세기부터 문학에서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20세 기 영화 및 다른 예술분야에 파급된다. 이는 학문의 분화로 인해 화학이 실험실 연 구분야를 대표하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두드러진 현상일 뿐만 아니라, 중세의 “미친 연금술사 mad alchemist”의 수용, 유물론과 니힐리즘에서 신에게 대항하는 화학자, 기독교 신학에서 하나님에 창조적 능력에 도전하는 과학자 등등 다양한 유형으로 나타난다(Schummer 2006, 99ff). <메트로폴리스>에서는 이러한 요소들이 복합적 으로 작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유대교의 골렘 전통도 함께 가미되어 있다.

미친 과학자의 토포스는 문학적 영역이외에도 영화에서도 찾을 수 있다. 자신이 만든 미래의 기계인간을 통해 도시 전체를 혼란에 빠뜨리는 <메트로폴리스>의 로 트방은 정신병원 원장으로서 최면술을 통해 살인을 교사하여 사람들을 공포의 도가 니로 몰아넣은 로베르트 비네 Robert Wiene의 <칼리갈리 박사의 밀실 Das Cabinet des Dr. Caligali>(1920)의 칼리갈리 박사와도 상호텍스트성을 이루고 있다. 또한 기계인간의 이미지는 프레더젠과 로트방이 이전에 함께 사랑한 프레더의 어머니인 헬 Hel과 동일하다는 점에서 창조자의 욕망이 내재된 피그말리온 신화와 연관성을 보인다(Huyssen 1982, 227). 또한 로트방의 집안에 있는 헬의 거대한 얼굴동상이 표현주의 감독 팝스트 F. W. Papst의 환상적 모험영화 <아틀란티스의 여왕 Die Herrin von Atlantis>(1932)의 주인공 안티네아 Antinea의 머리를 생각나게 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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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에서(Eisner 1976, 87), 이 이미지는 조각과 과학을 넘나드는 미친 연금술사와의 의미론적 연관성에서 영향사적 의미를 지닌다. 특히 “자신의 행복과 인류의 축복을 위하여 태어남”(Lang 2004)이라는 헬 조각상에 쓰인 문구에서 볼 수 있듯이, 기계 인간의 탄생은 인류학적 층위에서 역설적인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미친 과학자의 토포스는 이성의 발전을 대변하면서 서구 근대화의 과학기술에 기여한 과학자가 정 신착란으로 인해 인류에 재앙을 가져온다는 점을 부각시키는데, 이는 <메트로폴리

스>에서는 테크놀로지로 인해 도구적 합리성이 지배이데올로기에 예속된다는 것

을 강조하는 것과도 부합된다.

로트방의 실험실에서 여성형의 기계인간은 빛과 전기로 탄생한다. 이 탄생과정 은 신즉물주의에서 볼 수 있는 테크놀로지의 미학화 과정에서 받은 영향이다(Horn 2011, 29). 이러한 유형의 인조인간의 탄생과정은 영국의 소설가 메리 셀리 Mary Shelly의 󰡔프랑켄슈타인 또는 현대의 프로메테우스 Frankenstein or the Modern Prometheus󰡕(1818)에 등장하는 빅토르 프랑켄슈타인이나 프랑스 소설가 오귀스트 드 비에르 드 릴라당 Auguste de Villiers de L’Isle-Adam의 󰡔미래의 이브 L’eve Future󰡕(1886)에 등장하는 인조인간 아달리 Hadaly의 영향을 받고 있다(Horn 2011, 41). 특히 기계인간의 탄생과정에서 보이는 전기는 대중심리학에서도 비유의 기법으로 나타난다. 전기는 군집한 대중의 격정이 사회를 변혁시키는 “사회의 에너 지”로 비유된다는 점에서 알레고리 의미를 지닌다(Horn 2011, 42). 특히 󰡔이브의 미래󰡕는 소설 󰡔메트로폴리스󰡕쓴 테아 폰 하보우에게 강한 영향을 미친 작품이고 (Huyssen 1982, 226), 이 소설은 영화 <메트로폴리스>의 시나리오로 각색된다. 󰡔이 브의 미래󰡕에서 영국의 귀족청년 애왈드 경의 천박한 연인 알리시아 Alicia을 대신 해 동일한 인물로 탄생한 고상한 영혼의 인조인간 아달리는 <메트로폴리스>에서 마리아의 몸을 입은 기계 인간 마리아와 밀접한 유사성을 지닌다. 또한 장 파울 Jean Paul의 󰡔나무로 만든 아내 Ehefrau aus bloßem Holze󰡕(1789)나 아르힘 폰 아르민 Archim von Armin의 환상적인 노벨레 󰡔이집트의 이사벨라 Isabella von Ägypten󰡕 (1800), 에.테.아. 호프만 E.T.A. Hoffmann의 󰡔모래사나이 Der Sandmann󰡕(1815) 등에서 볼 수 있듯이 독일의 문학작품 속에서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인 여성은 자연 또는 기계인간으로 등장한다(Huyssen 1982, 226). 이런 점에서 이 인물들은 <메트

로폴리스>에서 역시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인 여성형의 기계인간과 부분적으로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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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적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메트로폴리스>에서 기계인간을 탄생시킨 전기에너지는 다시 수압에너지와 연 상작용을 하면서 디스토피아로 향한 부정적인 의미의 사회에너지로 전환된다. 지상 세계에서 로트방이 자신의 서재에서 요 프레더젠이 우연히 노동자에게서 입수한 고 대납골당의 설계도를 건네받아 분석하는 것은 수난 받는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패러 디한 인류의 ‘중재자’로서 프레더가 필사적으로 수압을 조절하려는 장면과 평행몽 타주 기법으로 대비되어 나타나는데, 이 사이에 두 번째로 삽입된 증기를 내뿜는 기 계 모티브는 이러한 부정적인 사회에너지를 보여준다. 영화의 도입부에서 이미 사 회불안의 모티브로서 암시된 이 장면은 세계종말을 향한 사회공포의 모티브로 발전 하고 있다.

이 모티브는 로트방이 책의 모티브를 통해 고대납골당의 설계도를 해석하는 것 과도 밀접한 연관성을 지닌다. 책의 모티브는 <칼리갈리 박사의 밀실>이나 <노스 페라투 Nosferatu>와 같은 영화에서 볼 수 있듯이 표현주의 영화의 서사과정에서 흔히 해결의 플롯을 형성한다. 하지만 <메트로폴리스>에서 이 모티브는 해결보다 는 죽음의 의미를 심화시키는 기능을 하면서 테크놀로지의 긍정성을 간접적으로 비

판한다. 즉 죽음을 강하게 암시하는 고대 납골당이 미로와 같은 세계인 지하세계의

카타콤이라는 점에서 테크놀로지가 통제하는 영역의 밖에 있는 공간임을 보여준다. 사회불안을 해소할 수 있는 출구가 막힌 것을 강하게 암시하는 미로 속의 집회에서 마리아가 노동자들을 향한 설교내용은 바벨탑이다. 바벨탑은 인간의 위대함을 주장 하면서 서로에게 소통되지 못하는 모순성을 지닌 상징이다. 이 설교 시퀀스는 구약 성경의 바벨탑 내용을 영화 속의 영화형식으로 이미지로 전개하고 있다. 마리아의 설교는 메트로폴리스의 지배자가 거주하고 있는 ‘새로운 바벨탑’에 대한 비판일 뿐

아니라, 기계문명 자체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이 설교시퀀스에서 르네상스 시대

의 네덜란드 화가 피터 브뤼겔 Pieter Bruegel의 회화 「바벨탑 건설 Turmbau zu Babel」(1563)를 인용하고 있는 바벨탑 건축의 에피소드는 테크놀로지의 진보와 동 시에 파멸의 알레고리로 작용하고 있다(Müller/Hetebruegge 2006, 195).

바벨탑 건축의 에피소드에서 노동자의 위로자로 기능하는 마리아는 새로운 ‘구

세주’로서 중재자가 나타나야 할 것임을 노동자들에게 강조한다. 이 시퀀스에서 자

본가와 노동자사이의 평화와 화해를 요구하는 마라아는 브레히트의 󰡔도살장의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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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나 Die heilige Johanna der Schlachthöfe󰡕(1932)의 구세군 소위 요한나와 부분 적인 유사한 역할을 지니고 있다(Huyssen 1982, 229). 이 에피소드에서 사회적 평 화에 대한 요구로서 가슴 모티브가 작용한다. 즉 마리아는 노동자들에게 ‘손과 머리 사이의 가슴을 중재할 때’(Lang 2004) 구원받을 수 있음을 주지시키는데, 이는 영 화의 모토로 제시된 에피그램과 동일한 의미이다. 여기서 가슴 모티브는 제 2의 기 계인간을 만드는 계기를 만든다는 점에서 테크놀로지에 대한 대항적인 의미를 지닌 다. 이런 점에서 이 모티브는 “표현주의의 잔존물”(Huyssen 1982, 236)이라고 할 수 있다. 마리아가 주도하는 지하세계의 집회를 목격한 프레더젠은 지하세계의 노 동자들을 교란하기 위해 로트방에게 마리아와 똑같은 “선동자 agent provocateur”

(Gunning 2001, 64)로서의 로봇을 만들 것을 명령하면서 이 영화의 ‘서막’이 끝나 는 것도 이러한 관점을 뒷밭침하고 있다.

서막에 이어 ‘막간극 Intermezzo’으로 이어지는 영화의 두 번째 부분인 고딕양식 의 성당 시퀀스는 세계종말의 환상을 보여준다. 프레더가 마리아를 만나기 위한 성 당 시퀀스는 메트로폴리스의 지배자가 거주하는 새로운 바벨탑과 대립적인 공간으 로 제시된다. 이 시퀀스는 자막으로 성경의 요한계시록 17장 1-18절의 내용을 관객 에게 전달하는데, 이는 마리아를 복제한 기계인간 마리아의 탄생으로 프레더가 세 계종말의 환상을 보게 하는 악몽으로 이르는 하는 계기가 된다. 특히 기계 마리아가 빛과 전기로 탄생되는 시퀀스는 시뮬라크룸을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 “영화매체의 반영”(Gunning 2001, 67) 또는 영화에 대한 알레고리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테아 폰 하보우의 소설에서 ‘푸트라 Futura’라고 불리는 기계인간 마리아의 탄생 으로 또 다시 부각되는 부자갈등의 모티브는 프레더의 정신착란으로 이어지게 한

다. 프레더가 아버지와 갈등을 일으키며 노동자를 동정하는 주체의 분열현상을 보

이는 가운데 악몽을 꾸는 꿈 장면은 표현주의와 초현실주의가 혼합되어 있음을 보 여주고 있다. 주체의 분열현상은 표현주의의 주체붕괴나 실존의 위기현상과 연관을

지닌다. 이 악몽의 시퀀스는 프레더가 요한계시록을 읽는 이후 일어난 것으로 세계

종말의 환상이다.

프레더의 정신착란 시퀀스는 요시와라 Yoshiwara 나이트클럽에서 기계인간 마 리아가 추는 광란의 춤 시퀀스와 삽입몽타주 형식으로 중첩되어서 진행된다. 이 시 퀀스에서 요부로서의 기계인간 마리아는 기독교적 경건한 마리아와 극단적으로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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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되는 인물로서 기능한다. 다시 말하면 프레더는 환상가운데 기계인간 마리아를 세계종말의 일곱 머리를 가진 괴물 위에 앉아있는 여자로 보게 되는데, 그녀는 요한 계시록이 알레고리로 언급하는 있는 “큰 음녀 die grosse Hure” 또는 “큰 바벨론 Die Babylon, die Mächtige”과 유사한 이미지를 보인다.4) 이는 서사적 층위에서 기 계인간 마리아가 큰 음녀와 의미론적 유사성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시퀀스 는 미친 과학자의 토포스와 연관된 기계인간이 세계종말의 알레고리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테크놀로지의 부정성을 과격하게 부각시키고 있다. 더 나아가 마리아가 카 타콤에서 설교한 바벨탑도 바벨론과 의미론적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Bergvall 2012, 249), 이러한 테크놀로지의 부정성은 서사과정에서 점증되고 있음 보여준다.

특히 이 시퀀스에서 콜라주 형식으로 그녀의 탐욕스런 얼굴과 남성들의 눈을 각 각 분리시킨 채 지나가는 옅은 구름과 부분적으로 대중과 오버랩시키는 장면은 그 녀가 “대중의 의인화 Personifikation der Masse”(Horn 2011, 30)된 것임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다. 이는 메트로폴리스 세계의 종말이 노동자들의 파괴성에 의해 야기 된다는 점에서, 대중을 감정적으로 이끄는 선동가로서 기계인간 마리아와 바벨론의 큰 음녀와의 기능적 유사성을 확인할 수 있다(Bergvall 2012, 254).

그리고 성당 안에 성자상들이 죽은 해골의 모습으로 살아나서 낫을 들고 휘두르 는 모습을 보게 되며, 성경의 요한계시록에서 기록된 일곱 가지 죄악도 환상 가운데 보게 된다. 이러한 꿈 가운데 연상작용으로 나타난 환상의 이미지는 초현실주의 이

미지이다. 성당에서 일어나는 막간극 시퀀스에서 요한계시록의 세계종말과 연관되

어 낫을 든 해골이 죽음을 부르는 춤을 추는 것도 이에 해당한다. 이 장면은 부분적 으로 요한계시록 14장의 ‘추수하는 천사’를 암시할 뿐 아니라, 독일 르네상스 화가 인 한스 홀바인 Hans Holbein의 고딕양식 동판화 시리즈 “죽음의 춤 Totentanz”

(Gunning 2001, 66)을 연상시킨다. 이 장면은 프레더의 꿈속에서 일어난다는 점에 서 초현실주의의 몽상적인 무의식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요 프레더젠의 비서 요자

파트 Josaphat가 프레더에게 요시와라 클럽에서 유혹의 춤을 추는 기계인간 마리아

에 대해 회상하면서 보고하는 장면도 이와 연관해서 나타나면서 꿈과 현실의 경계 가 무너지고 있다.

4) 성경 요한계시록 17: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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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성자해골의 죽음의 춤과 프레더의 정신착란 사이에 삽입된 증기를 내뿜는 기계장면은 이 영화에서 세 번째 나타나는 것으로서 사회불안과 두려움을 넘어서 죽음으로 치닫는 도시를 암시하고 있다.

프레더의 정신착란 시퀀스는 막간극으로서 끝난다. 막간극 다음에 이어지는 ‘분 노 Furioso’의 시퀀스 시작에서도 정신착란에서 깨어난 프레더가 계속해서 요한계 시록을 읽고 있다는 점에서 이 시퀀스도 세계종말의 연장선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 장면에서 그가 읽고 있던 책은 동시대의 화가이자 조각가로서 성경을 주제로 한 부르노 골트슈미트 Bruno Goldschmitt의 󰡔사도 요한의 계시록 Die Offenbarung Sankt Johannis󰡕(1923)인데, 이 책에 들어있는 ‘바벨론의 큰 음녀’에 관한 목판조각 은 기계인간 마리아의 광란의 춤이 세계종말 이미지를 제시하는데 영향을 주고 있 다(Bergvall 2012, 248f). 이와 연관하여 요자파트가 프레더에게 지하 카타콤에 나 타날 기계인간 마리아의 이름과 정체성에 대해 보고하는 가운데 또 다시 네 번째로 증기를 내뿜는 기계장면이 삽입되는데, 이러한 연관성은 메트로폴리스가 파국과 죽 음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강하게 암시한다.

이러한 초현실주의 이미지 이외에도 신즉물주의의 영향을 받은 기하학적 도형화 도 메트로폴리스의 건축물의 형식에 이어서 영화의 후반부에도 집중적으로 나타난

다. 파괴된 중심기계 속에서 노동자들이 바로크 시대의 순환형식의 춤곡인 사라반

드 sarabande의 춤을 추는 것, 성당 앞에서의 모닥불 주위의 춤, 성당 가까이로 몰려 드는 노동자 군중의 움직임, 지하도시의 파괴로 인한 홍수 때 마리아 주위로 형성되 는 피라미드 도형 등에서도 잘 나타난다. 이러한 기하학적인 도형화는 감정의 과잉 노출을 억제하는 기능을 한다(Eisner 1976, 89f). 기계숭배와 연관된 이러한 기하학 적 도형화는 노동자들이 집행하는 기계인간 마리아의 화형식으로 그 의미가 퇴색된 다(Huysssen 1982, 236). 환언하면 신즉물주의의 기계숭배가 표현주의의 테크놀로 지에 대한 두려움으로 치환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특히 화형된 기계인간 마리 아가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살아있는 로봇의 이미지를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렇다.

테크놀로지의 부정성과 연관해서 이 영화는 두 가지 재앙을 제시한다. 첫 번째 재 앙은 메트로폴리스를 움직이는 지하도시의 핵심동력인 ‘심장기계 Herz-Maschine’

가 폭발하는 것이고, 두 번째 재앙은 지하 노동자들이 자행하는 지하도시의 홍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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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이다. 특히 심장기계의 폭발은 프리츠 랑이 표현주의의 관점에서 테크놀로지에 대한 강하게 비판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기계인간 마리아에 의한 노동자의 선동 은 지하세계의 홍수를 야기시키면서 파국적인 국면으로 접어든다. 지하세계가 물로 파괴된다든 것은 기계도시 메트로폴리스가 미로로 되어 있지만 물이 빠질 수 없는 폐쇄성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다. 이는 공상과학소설에서 자주 나타나는 것처럼 부 정적으로 종결되는 폐쇄된 “섬도시의 유토피아적 토포스”(Keilholz 2009, 109)를

보여준다. 크라카우어는 후반부의 이 홍수시퀀스를 디스토피아적 절망을 묘사한 것

으로 평가하면서 역시 “장식적인 것”으로 지칭하는데(Kracauer 1984, 159), 이는 마리아의 설교시퀀스에서 구원자의 도래를 예언하면서 노동자를 위로하는 장면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메트로폴리스>의 마지막은 마리아가 ‘구원자의 표상으로 평가한 프레더의 중 재로 프레더젠과 노동자 대표 그로트 Grot가 서로 화해의 악수를 나누면서 끝난다.

이는 자본과 노동의 화해라고도 볼 수 있다. 이 화해는 “이데올로기 없는 이데올로 기 영화”(Jhering 2000, 87)라는 동시대의 비판을 받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이 화해의 시퀀스에서 영화의 모토에서 이미 언급된 ‘머리와 손의 중재자는 가

슴’이라는 표현주의의 잔존물로 사용된 에피그램이 다시 나타나는데, 이에 대해 크

라카우어는 이 가슴 모티브가 파시즘의 괴벨스가 사용한 것과의 유사성 때문뿐만 아니라 사회를 지배하는 모든 장식적인 것을 지양하지 못한 것에 대해 비판하고 있 다(Kracauer 1984, 172). 이는 프리츠 랑이 테크놀로지의 이중성을 드러내기 위해 삶의 가상을 과도하게 비현실적으로 보여주는 것에 대한 비판이다.

Ⅴ. 마치는 글

생시몽 이래로 유토피아적인 공간으로 여겨진 테크놀로지의 국가 내지는 도시는 프리츠 랑의 기계도시영화 <메트로폴리스>에서 잘 나타난다. 표현주의 영화에 속 하는 이 영화는 미래도시의 알레고리이다. 기술시대의 유토피아를 표방하면서 기계 인간의 유형을 제시한 이탈리아 미래주의와 신즉물주의에서 나타나는 테크놀로지 의 미학화뿐만 아니라 바이마르공화국 안정화 시대의 기계숭배라는 대중적 현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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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관점을 부각시킨다. 하지만 테크놀로지의 이러한 경향에 대한 표현주의의 두려움과 공포를 드러내는 이 영화는 부정적인 사회상을 제시하면서 신화적이며 신 학적인 세계종말론의 이미지로 반영한다.

이러한 테크놀로지의 이중성은 메트로폴리스의 이중적 세계의 대립에서도 드러

난다. 신화적 의미에서 ‘영원한 정원’으로 묘사된 유토피아의 지상세계와 노동자의

어두운 지하세계가 그것이다. 또한 이 이중성의 대립은 새로운 바벨탑과 성당의 공 간기능의 이중성에서 뿐만 아니라 성경적 의미의 마리아와 바벨론의 요부로서 묘사 되는 기계인간 마리아의 이중성에서도 잘 나타난다. 이러한 이중성의 대립을 통해 이 영화는 테크놀로지의 부정적인 측면을 강하게 부각시키는데, 이는 불의 신 몰록 의 알레고리 이미지, 마리아의 바벨탑 설교, 미친 과학자를 통한 기계인간 마리아의

탄생, 지하도시의 심장기계의 폭발, 그리고 이로 인한 홍수로 야기된 세계종말과 같

은 신화적 또는 신학적 층위에서 고찰할 수 있다. 이 영화는 기계도시가 내포한 테 크놀로지의 이중성 속에서 비판적인 관점을 제시하는데, 이는 기계숭배에 대한 프 리츠 랑의 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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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usammenfassung

Stadt als Maschine. Die Doppeldeutigkeit der Technologie in Fritz Langs Metropolis

Pih, Jong-Ho (Hanyang Uni)

Fritz Langs expressionistischer Film Metropolis über die Maschinenstadt, die seit Henri de Saint Simon zum Kanon der utopischen Räume zählt, gilt als Allegorie der Zukunftsstadt. Der Film ist geprägt, vom italienischen Futurismus, der die Utopie des technischen Zeitalters und den Typus des Maschinenmenschen hervorbringt, von der Ästhetisierung der Technologie in der Neuen Sachlichkeit, und vom Maschinenkult als Massenphänomenen in der ‘Stabilisierungszeit’ der Weimarer Republik.

Der Film Metropolis bringt durch mythologische und theologische Elemente allerdings auch den für den Expressionismus typischen Schrecken gegenüber theologischen Exzessen zum Ausdruck, was sich in apokalyptischen Bildern äußert.

Fritz Lang demonstriert mit seinem Film die Ambivalenz der Maschienenstadt und übt scharfe Kritik am Maschinenkult.

Die Doppeldeutigkeit der Technologie zeigt sich an der Gegensätzlichkeit der mehrdeutigen Struktur von Metropolis: der obere Teil von Metropolis evoziert die mythische Vorstellung des ewigen Gartens, während der untere einen Moloch für die unterdrückte Arbeitergesellschaft darstellt. Ferner stehen sich der „Neue Turm von Babel“ und die gotische Kathedral gegenüber. Auch auf der Figurenebene hält der Film das Gegensätzlichkeit aufrecht, indem Maria einerseits als Heilige, andererseits aber auch als Maschinenmensch und als Hure von Babylon im Sinne der Offenbarung des Johannes auftritt. Theologisch-mythologische Schreckenbilder wie der allegorische Feuergott Moloch, Marias Predigt über den Turm von Babel und die Schaffung des Maschinenmensch (Vgl. den Topos des ‘mad scientist’), 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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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plosion der Herz-Maschine und die apokalyptischen Überflutungsbilder lassen die Doppeldeutigkeit der Technologie ins Negative kippen.

키워드 : 기계도시, 테크놀로지, 표현주의, 유토피아, 세계종말

Stichwörter: Maschinenstadt, Technologie, Expressionismus, Utopie, Apokalypse

투고 : 2017년 5월 9일

심사 : 2017년 5월 31일 / 6월 7일 / 6월 10일 게재확정 : 2017년 6월 12일

E-Mail : [email protected]

주소 : 서울시 성동구 왕십리로 222 한양대학교 인문대학 독어독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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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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