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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손룡과 후기 묵가의 정명론 비교 연구 - 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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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호2004봄 여름9-30

공손룡과 후기 묵가의 정명론 비교 연구

주제어 : 공손룡,후기 묵가, 명(名), 실(實), 물(物), 정명(正名) Gong, Later Mohist, ming, shi, object, zhengming

김 철 신 (연세대)

I. 시작하는 말

중국의 대표적 경전 가운데 하나인 논어(論語) 는 공자와 그의 제자들, 공자 와 당시 사람들, 제자와 제자 그리고 제자와 당시 사람들이 나눈 대화들을 수록한 일종의 대화집이다. 중국철학은 이처럼 ‘말하기’를 통해 시작되었다고 하여도 과언 이 아니다. 하지만 이천 년 이전의 대화들이 시간적 제약을 뛰어 넘어 오늘날까지 전해져온 것은 누군가가 그 대화들을 문자로 기록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자기 록을 제 일의 연구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철학과 문학은 일맥상통한다.

중국 고대 학술계1)의 용어를 빌려서 볼 때, 문자기록의 최소 단위는 ‘명(名)’

이다. 이 명이 문자뿐 아니라 말에 있어서도 최소 단위라는 점에서 명은 인간 사

1) 이 글에서 말하는 중국 고대 학술계는 제자백가의 시대, 즉 춘추시대 말기로부터 진(秦)의 통 일 이전까지를 지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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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의 세포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이때의 명을 오늘날 말하는 명사로 한정하는 것 은 타당하지 않다.

인간 사유의 세포인 명과 관련하여 주목할 점은 명이 짝개념이라는 점이다. 즉 명은 그 자체로 성립하는 단독개념이 아니라, 그것의 대개념인 실(實)과의 상관관 계에서 성립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문자와 말의 최소 단위인 명에 대한 고찰은 곧 명과 실의 관계를 고찰하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이 글은 명과 실의 일치 상태이자 명과 실을 일치시키는 방법론인 정명론(正 名論)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정명론을 제시한 사상가와 학파는 중국 사상사에 서 이루 셀 수 없을 만큼 많지만, 전국시대 중엽 이후에 활약한 공손룡(公孫龍)2) 의 정명론과 후기 묵가(墨家)3)의 그것을 논의의 대상으로 삼고자 한다. 우선, 전

2) 공손룡은 조(趙)나라 사람인데, 태어나고 죽은 날짜를 정확하게 고찰할 수는 없다고 한다. 지만 그가 조나라 무령왕 때부터 효성왕이 재위에 있을 때까지 살았던 것을 미루어 볼 때, 대략 기원전 325년경에 태어나 기원전 250년경에 죽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방박(龐樸),

공손룡자금역(公孫龍子今譯) , 성도(成都): 파촉서사(巴蜀書社), 1990, 1쪽 참조).

3) 후기 묵가는 학파의 이름으로서 다음의 세 가지 사항을 종합하여 이 학파에 포함되는 대상을 정하고자 한다. 첫째, 장자(莊子) 천하(天下)에서 묵가의 창시자인 묵자 사후에 묵자의 후 학들이 분열되었다는 기록을 발견할 수 있다(곽경번(郭慶藩), 장자집석(莊子集釋) , 북경(北 京): 중화서국(中華書局), 1997, 1079쪽. “상리근의 제자인 오후의 무리와 남방의 묵자인 고 획 이치 등릉자의 붙이가 모두 묵경을 송독하되 서로 엇갈려 같지 아니하며,서로 별묵이라 하니, 견백과 동이의 논변으로 서로를 비방하며, 서로 반대되어 합치되지 않는 말로 서로 대 응하야, 거자를 성인이라 하여 모두 그 수령이 되고자 하였다. 거자의 후세가 되기를 바라나 지금껏 결정나지 않았다[相里勤之弟子五侯之徒, 南方之墨子苦獲 巳齒 鄧陵子之屬, 俱誦墨經, 而倍譎不同, 相謂別墨; 以堅白同異之辯相訾, 以觭偶不仵之辭相應; 以巨子爲聖人, 皆願爲之尸, 冀得爲其後世, 至今不決]” 참조). 둘째, 오늘날 전하는 묵자(墨子) 55편 가운데 다른 편들의 글과 비교하여 형식 및 내용 면에서 판이하게 다른 경상(經上) 경하(經下) 경설상(經說 上) 경설하(經說下) 소취(小取) 대취(大取)라는 여섯 편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여섯 편에는 묵자가 주장한 학설 가운데 천지(天志)와 명귀(明鬼) 같은 불합리한 내용들은 담겨 있 지 않은 반면, 자연과학과 논변의 규칙 그리고 인식론에 관련한 논의들이 주로 담겨 있다. 로써 볼 때, 이 여섯 편은 묵자 사후의 묵가 사상을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셋째, 호적(胡 適)은 묵자 사후 묵가가 과학적 묵학도와 종교적 묵학도로 나뉘었고, 그 중 과학적 묵학도들 이 견백(堅白) 문제와 동이(同異) 문제를 집중적으로 논의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견백과 동이 문제는 앞에서 언급한 여섯 편에 집중적으로 수록되어 있다(호적, 중국고대철학사(中國古代 哲學史) , 송긍섭 외 역(譯), 서울: 대한교과서주식회사, 1990, 201 05쪽 참조). 따라서 이 논문에서 말하는 후기 묵가의 범위에는 묵가의 창시자인 묵자 사후 분열된 묵자의 후학들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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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시대 중엽 이후에야 비로소 명실(名實)의 문제 즉 정명(正名)의 문제가 정치·윤 리적인 차원4)에서 벗어나 하나의 독립적인 영역을 가진 주제로 정립되어 전문화 되기 때문이다.5) 다음으로, 당시에 이 명실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룬 대표적 사상 가와 학파가 바로 공손룡과 후기 묵가인데, 이 둘 사이에 논쟁의 국면이 형성되어 있어 상반된 견해를 검토하기에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글은 공손룡과 후기 묵가의 서로 다른 정명론을 통해 문자기록의 최소 단위인 명이 실과 어떤 관 계에 놓여 있을 때 가장 바람직한가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보기 위해 기획된 것이 라 하겠다.

이러한 기획의 의도를 살리기 위해, 다음과 같은 순서로 논의를 전개하겠다.

우선 명실의 한 축인 실을 물(物)이라는 개념과 아울러 해명하겠다. 실은 이 물이 라는 개념에서 파생되어 나온 개념이기 때문이다. 다음에는 명실의 또 다른 축인 명을 논의의 편의상 실과 분리하여 그것의 기원과 역할 그리고 종류라는 세 측면 에서 규명하겠다. 마지막으로 공손룡과 후기 묵가가 각각 제시한 정명론을 비교 검토하겠다.

운데 묵자 의 경상 경하 경설상 경설하 소취 대취 라는 여섯 편을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과학적 묵학도들만이 포함된다.

4) 이론의 여지가 있지만 정명(正名)을 최초로 문제시한 인물은 공자(孔子)이다. 이런 공자가 정 치의 첫째 과업으로 정명을 채택하였다는 점과 정명이 이루어진 상태를‘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자식은 자식답다’고 한 지적에서 볼 때, 초창기의 정명 문제는 정치적이고 윤리적인 차원에서 대두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와 관련된 원문은 다음과 같다: 논어(論語) 자로(子路) . “자 로가 말했다. 위나라의 임금이 선생님을 기다려서 함께 정치를 하고자 한다면, 선생님께서는 장차 무엇을 먼저 하겠습니까?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반드시 정명을 먼저 하겠다! [子路 曰: 衛君待子而爲政, 子將奚先? 子曰: 必也正名乎! ]”(양백준(楊伯峻), 논어역주(論語譯注 ) , 북경: 중화서국, 1992, 133쪽); 안연(顔淵) . “제나라 경공이 공자에게 정사를 물으니 공 자께서 대답하셨다.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아버지는 아버지다워 야 하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합니다[齊景公問政於孔子. 孔子對曰: 君君, 臣臣, 父父, 子子]”

(같은 책, 128쪽) 참조.

5) 이강수, 중국 고대철학의 이해,서울: 지식산업사, 1999, 200 01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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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물(物)과 실(實)의 개념

이곳에서는 물과 실의 개념을 파악해 보고자 한다. 방박(龐樸)이 지적하듯이,6) 공손룡과 후기 묵가뿐 아니라 중국 고대의 모든 사상가들이 이 물에 대한 개념을 공유하고 있다. 그래서 물에 대한 개념은 특정한 학파나 학자에 구애받지 않고 자 유롭게 논거를 끌어와 규명하도록 하겠다. 다만, 공손룡의 사상이 담겨 있는 공손 룡자(公孫龍子) 의 서론에 해당하는 명실론(名實論) 에서 물로부터 실이 파생 되는 과정을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논의의 순서는 명실론 의 논의 순 서에 입각하도록 하겠다.

공손룡은 명실론 첫머리에서 물의 개념을 규정하고 있다. 공손룡은“천지(天 地)와 그에서 생겨난 일체가 물이다”7)고 하였다. 이에 의하면 물은 천지뿐 아니라 천지 사이에 있는 온갖 사물 즉 만물을 뜻한다. 인간 역시 만물 가운데 하나이니 물인 셈이다.8)

그렇다면 천지와 만물을 모두 물이라 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공손룡은 이 문 제에 대해 직접 답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 구절에 대한 담계보(譚戒甫)의 주석에 서 그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담계보는 열자(列子) 에 나오는 “천지 또 한 물이다”9)라는 구절과 장자(莊子) 칙양(則陽) 에 보이는“천지는 형체를 가 진 것 가운데서 가장 큰 것이다”10)라는 구절을 종합하여, 천지가 물이 되는 것은 형체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만물의 경우는 윤문자(尹文子) 에 나오 는 소와 말의 예를 통해 소와 말이 각각의 형체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물이 된다 고 설명한다.11) 천지와 만물이 모두 물이 되는 이유는 형체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

6) 방박, 공손룡자금역, 26쪽.

7) 공손룡자(公孫龍子) 명실론(名實論) . “天地與其所産焉, 物也.”(방박, 공손룡자연구(公孫龍 子硏究) , 북경: 중화서국, 1972, 47쪽)

8) 장자 추수(秋水) “물(物)의 수를 일컬어 만 가지라고들 하는데, 거기에서 사람은 그 가 운데 하나를 차지할 뿐이다[號物之數謂之萬,人處一焉]”(곽경번, 장자집석, 564쪽)참조.

9 열자(列子) 탕문(湯問) . “天地亦物也”(양백준, 열자집석(列子集釋) , 북경: 중화서국,

1996, 150쪽).

10) 장자 칙양(則陽) . “天地者,形之大者也”(곽경번, 장자집석, 913쪽).

11) 尹文子云: “牛則物之定形”(담계보(譚戒甫), 공손룡자형명발미(公孫龍子形名發微) , 57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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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것이다.12)

물이 형체를 지닌 것이라는 주장을 역시 물의 한 종류인 인간의 관점에서 반 성해 본다면, 그것은 물이 인간의 감각기관, 특히 눈에 의해 지각될 가능성이 있음 을 함의한다. 그런데 눈을 비롯한 인간의 여러 감각기관에 지각될 수 있는 것으로 는 형체뿐 아니라 색깔·냄새 그리고 소리 등이 있다. 그래서 장자 달생(達生)

에서는 “무릇 모양·형상[象]·소리·색채를 지닌 것은 모두 물이다”13)라고 물을 정

의한다. 여기서 말한 형상[象]은 주역(周易) 계사(繫辭) 한강백(韓康伯) 주 (注)에 의하면 해와 달 그리고 별과 같이 하늘에서 움직이는 것들의 모습을 뜻한 다.14) 모양과 색채와 무늬는 인간의 눈에 의해 지각될 가능성이 있고, 맑거나 탁 한 소리 등은 귀에 의해 지각될 가능성이 있다. 달거나 쓰거나 하는 맛 등은 입에 의해 지각될 가능성이 있으며, 풀과 나무의 향기나 비린내 같은 냄새 등은 코에 의해 지각될 가능성이 있다. 아픔이나 가려움 그리고 추위와 더위 같은 느낌이나 자연현상은 인간의 몸을 통해 지각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장자 달생 에서의 저 구절은 물을 인간의 감각기관에 의해 지각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서 정의하고 있는 셈이다. 물에 대한 이러한 정의는 “무릇 그로써 아는 것이 사람의 본성(本 性)이고, 그로써 알려질 수 있는 것이 물의 이치이다”15)고 하여 순자(荀子)가 물 에는 인간에게 지각될 수 있는 이치가 있다고 본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결국 물은 인간이 감각기관으로 지각할 수 있는 감각대상이라 할 수 있다.

물은 형체와 색깔과 소리 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인간 언어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물이 지니고 있는 형체를 소라고도 하고 말이라고도 하며, 물이 지닌 색깔을

재인용).

12) “대저 천지가 물인 까닭은 그 형체 때문이다. 그러한즉 천지가 생기게 하는 모든 것 역시

그 형체 때문에 물이 된다[夫天地之爲物, 以其形也; 則凡天地之所生者, 亦皆以其形爲物]”(담 계보, 공손룡자형명발미,북경: 중화서국, 1996, 57쪽)참조.

13) 장자 달생(達生) . “凡有貌象聲色者, 皆物也”(곽경번, 장자집석, 634쪽).

14) 주역(周易) 계사상(繫辭上) . “하늘에서 상(象)이 이루어진다[在天成象]”에 대한 한강백(韓 康伯) 주(注). “상은 해와 달과 별을 견준다[象, 況日月星辰]”(루우열(樓宇烈), 왕필집교석

(王弼集校釋) , 대북(臺北): 화정서국(華正書局), 민국(民國)81, 535쪽).

15) 순자(荀子) 해폐(解蔽) . “凡以知, 人之性也; 可以知, 物之理也”(왕선겸(王先謙), 순자집해 (荀子集解) , 북경: 중화서국, 1996, 4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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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다고도 하고 희다고도 한다. 뿐만 아니라, 물에서 나는 소리를 맑다고도 하고 탁 하다고도 한다. 이처럼 물이 형체·색깔·소리 등을 지니고 있기에 인간에게 지각될 수 있고, 그 지각된 형체·색깔·소리 등에 이름이 있게 된다.16) 장자 에서는 “물 은 그렇게 부르므로 그렇게 된 것이다”17)고 한다. 그리고“언어로써 논할 수 있는 것은 물의 거칠고 큰 것들이다”18)고 하여, 물이 인간 언어의 대상이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물은 인간의 감각과 언어의 대상일 뿐 아니라 의식의 대상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단적으로 공손룡은“물은 인간의 의식에 의해 드러나지 않은 것이 없다”19)고 하였고, 또한 장자는“의식으로써 이를 수 있는 것은 물의 정세한 것들이다”20)고 하였다. 특히 공손룡처럼 물을 정의하게 되면, 물은 인간이 그것을 의식함으로써 그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 되기 때문에 인간의 의식을 떠날 수 없게 된다. 다시 말 해 인간의 의식을 넘어선 것은 물일 수 없다는 것이다.21)

이상의 논의를 종합해 보면, 물은 천지만물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이러한 물을 인간과의 관계에서 보면, 물은 형체를 비롯해 인간의 감관에 지각될 요소들을 지 니고 있으며 또한 인간 언어의 대상이고 동시에 인간 의식의 대상이다. 즉 물은 인간의 감각과 언어와 의식의 대상이 되는 모든 것을 총괄하는 개념이기도 하다.

후기 묵가는 이러한 미분화된 총괄성에 초점을 맞추어 물이라는 개념을 설명

한다. 그들은 “물을 달명(達名)이다”22)고 하는데, 이때 달명은 최고의 범주이다.

최고의 범주로서의 물은 더 이상 분화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달명으로서의 물이 미분화된 총괄성을 의미한다는 것을 순자가 보다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16) 관자(管子) 심술상(心術上) . “物固有形, 形固有名”(안창요(顔昌嶢), 관자교석(管子校釋) , 장사(長沙):악록서사(岳麓書社), 1996, 325쪽) 참조.

17) 장자 제물론(齊物論) . “物謂之而然”(곽경번, 장자집석, 69쪽).

18) 장자 추수. “可以言論者, 物之粗也”(곽경번, 장자집석, 572쪽).

19) 공손룡자 지물론(指物論) . “物莫非指”(방박, 공손룡자연구, 20쪽).

20) 장자 추수. “可以意致者, 物之精也”(곽경번, 장자집석, 572쪽).

21) 이강수, 노자와 장자, 서울: 도서출판 길, 1998, 169 70쪽 참조.

22) 묵변라집학(墨辯邏輯學) 79조 경설상. “名: 物·達也”(진맹린(陳孟麟), 제남(濟南): 제노서 사(齊魯書社), 1983, 185쪽).

(7)

만물은 비록 많으나 때로 그것들을 모두 개괄하고 싶다면 그것을 물이라 일컫는다.

물은 대공명(大共名)이다. 이러한 추론방법에 따라 개괄하고 또 개괄하여 더 이상 개괄할 수 없는 데에 이르러 그친다.23)

천지와 그 속에 존재하고 있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물들 하나하나를 어떤 방식 혹은 그것들 각각의 종류에 따라 묶어 나갈 수 있다. 그러다 보면, 둘 이상의 묶음이 존재하지 않고 모든 것이 하나로 묶이게 되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순자는 이처럼 천지만물을 단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하나로 총괄해낸 개념이 바로 물이라 고 하고 있으며, 이때의 물을 ‘대공명’이라고 특칭하고 있다.24) 순자가 여기서 말 한 대공명으로서의 물이 앞 단락에서 살펴본 후기 묵가의 달명으로서의 물이다.

따라서 달명이나 대공명의 차원에서 천지만물을 바라본다면 그것들 사이에는 어떠 한 분화도 존재할 수 없고 어떠한 구별도 가해질 수 없다.

물이 달명인 경우 천지만물 사이에 분화가 존재하지 않는 반면, 실은 그러한 물이 분화되고 구분된 결과로 생겨난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공손룡은

“물이 어떤 사물로 형성되어 그 자신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것을 실이라 한 다”25)고 하여 실을 정의한다. 그런 다음, “실이 그로써 그 자신을 충실하게 하여 헛되지 않는 것을 위(位)라 한다”26)고 하여 실은 시공에서 위치를 점하여 존재하 는 것이라 규정하고 있다.

공손룡이 제시한 실의 이러한 정의에 의하면, 아직 분화되지 않은 상태의 천지 만물인 물이 하나하나의 사물로 분화된 것이 실이다. 즉 각각의 개체가 실이라는 말이다. 나아가 한 덩어리와 같던 물이 각각의 개체로 분화되기 위해서는 분화되 는 것들에 그 나름의 특성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공손룡이 말한 ‘그 자신의

23) 순자 정명(正名) . “萬物雖衆, 有時而欲徧擧之, 故謂之物. 物也者, 大共名也. 推而共之, 則有共,至於無共然後止”(왕선겸, 순자집해, 419쪽).

24) 고대 한어(漢語)의 특성상 동일하게 물(物)’ 자(字)를 사용하였다고 할지라도, 사례에 따라

물’자는 어떤 하나의 사물을 의미할 수 있고, 또한 여기서 논의되고 있는 천지만물 전체를 의미할 수도 있다. 그래서 순자는 천지만물 전체를 총괄하는 물을 특별히대공명’이라 하여 다른 의미로 쓰이는 물과 구별한 것이다.

25) 공손룡자 명실론. “物以物其所物而不過焉, 實也”(방박, 공손룡자연구, 47쪽).

26) 공손룡자 명실론. “實以實其所實[而]不曠焉, 位也”(방박, 공손룡자연구, 47쪽).

(8)

범위’인데, 이는 사물마다 지닌 형체와 길이, 크기와 무게 그리고 두께에 각각 다 른 점이 있다는 것을 연상해 보면 쉽게 이해될 수 있다. 즉 각각의 사물은 고유한 물리적 속성들을 갖는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실에는 각각의 위치가 있다. 이는 실이 반드시 시간과 공간 속에서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에 그 자신의 범위가 있다는 점, 그리고 실에 각각의 위치가 있다는 점을 종합하여 인간 과의 관계에서 말한다면, 실은 그것 나름의 확정적인 대상과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인간이 어떤 실의 대상과 성격을 임의적으로 규정할 수 없다고 할 수 있 다.27) 결국 실은 미분화의 물이 각각의 개체로 분화된 독립적 존재자로서, 그 분 화는 실마다 지닌 고유한 성격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III. 명(名)의 개념

이곳에서는 명의 기원과 역할 그리고 종류에 대해 논의해 보고자 한다. 우선 명의 기원을 밝히기 위해 갑골문에서부터 설문해자(說文解字)까지의 ‘명’ 자의 변천을 추적할 것이다. 이는 ‘명’자의 변천뿐 아니라, 명의 기본적인 역할이 무엇 인지에 대한 단초를 제공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 명의 역할을 공손룡 과 후기 묵가뿐 아니라, 순자 에 나오는 내용까지 활용하여 규명할 것이다. 끝으 로 후기 묵가의 분류방식에 입각하여 명의 종류를 논의할 것이다. 공손룡은 이에 대해 특별하게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갑골문에서 ‘名(명)’ 자는 “ ” 또는 “ ”로 표기되어 있다. 청동기명문(靑銅器銘文), 즉 금문(金文)에서의 ‘名’ 자는

27) 주운지(周云之), 명변학론(名辯學論) , 침양(沈陽): 요녕교육출판사(遼寧敎育出版社), 1996, 59쪽 참조.

(9)

“ ”로 표기되어 있으며, 진전(秦篆)에서는“ ” 로 표기되어 있다. 비록 갑골문과 금문 그리고 진전에 표기되어 있는‘名’자의 자 형이 다르다 할지라도, 그것들이 모두 ‘夕(석)’과‘口(구)’라는 두 부분으로 이루어 져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갑골문에서 ‘석’자는 달의 형상을 빌려 만들어졌기 때 문에 칠흑 같은 밤을 의미한다고 하며, ‘구’자는 사람의 입 모양을 본떠 만들어졌 다고 한다. 따라서‘석’과‘구’가 결합하여 이루어진‘명’자는 칠흑 같은 밤에 눈으 로 어떤 것을 선명하게 볼 수 없기 때문에 입으로 이름을 말함으로써 그 사물을 지시하여 다른 사람에게 알려준다는 의미를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동한(東漢)시 대 허신(許愼)의 설문해자 에서도 “명은 스스로 명명(命名)한 것이다. ‘구’와‘석’ 으로 이루어져 있다. ‘석’은 어두움이니, 어두워 서로 보지 못하는지라 입[口]으로 스스로 명명하는 것이다”28)라고 하였다. 이에 대한 단옥재(段玉裁)의 주에서도

“석과 구로 뜻을 합하였다”29)고 하였다. 이러한 ‘명’ 자의 변천 과정에서 볼 때,

명은 인간이 사물을 지시하고 그 지시를 통해 인간들 상호 간에 의사소통이 가능 하게끔 하기 위해 만든 것임을 알 수 있다.30)

명의 일차적 역할이 사물을 지시하는 것이라는 의식은 거의 모든 제자백가에 게서 발견된다.31) 공손룡은 “무릇 명은 실에 대한 칭위(稱謂)이다”32)고 하였고, 후기 묵가는 “그로써 (실을) 일컫는 것이 명이다”33)고 하였으며, 또한 순자는 “명

28) 설문해자(說文解字) . “名自命也, 從口夕. 夕者冥也. 冥不相見. 故以口自名”(허신(許愼) (撰), 단옥재(段玉裁) 주(注), 설문해자주(說文解字注) , 상해(上海): 상해고적출판사(上海古 籍出版社), 2001, 56쪽).

29) 설문해자 “故以口自名”에 대한 단옥재 주. “以夕口會意”( 설문해자주, 56쪽).

30) 이상의 내용은 손중원(孫中原), 중국라집사(中國邏輯史) (북경: 중국인민대학출판사(中國人民 大學出版社), 1987), 26쪽을 발췌·정리한 것임.

31) 도가(道家)는 명으로 실을 규정하려는 것에 대해 부정한 것이지,명으로 실을 지시하는 것을 부정한 것은 아니다. 이런 점에서 본문처럼 말할 수 있다고 하겠다.

32) 공손룡자 명실론. “夫名, 實謂也”(방박, 공손룡자연구, 49쪽).

33) 묵변라집학 81조 경설상. “所以謂, 名也”(진맹린, 186쪽).

(10)

은 충분히 실을 지시한다”34)고 하였다. 공손룡과 후기 묵가 그리고 순자 사이에 약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명이 실을 지시한다는 것에 있어서는 같다. 따라서 명 은 실을 지시하기 위해 인간이 만들어낸 산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인간이 명으로 실을 지시한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거기에는 크게 두 가지 의미가 있을 수 있다. 하나는 인간의 입장에서 이 실과 저 실의 다름을 구별하여 확정한다는 것이다. 이미 살폈듯이, 천지만물의 미분화로서의 물이 천지 만물 각각이 가지고 있는 나름의 특성에 의하여 실로 분화된다. 다시 말해 실마다 나름의 특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만일 인간이 이 실과 저 실의 다름을 구별 하여 이 실에는 산이라는 이름을 부여하고 저 실에는 강이라는 이름을 부여하였다 고 가정해 보자. 이는 결과적으로 인간과 무관하게 분화되어 있던 이 실과 저 실 의 다름이 인간에게 반영되어 확정된다는 의미이다.35) 따라서 인간에 의해 만들어 진 명은 일차적으로는 실을 지시하고, 이에 나아가 실 사이의 다름을 구별하여 확 정하는 역할까지 수행한다고 말할 수 있다.

명으로 실을 지시하는 것이 지니는 또 하나의 대표적 의미는 명을 제정하여 실을 지시함으로써 인간 사이에 의사소통 및 사상의 교류가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순자는 실을 지시하는 명이 없을 경우 어떤 폐단과 화(禍)가 야기되는 지 를 지적한 다음, 명을 제정해야 하는 까닭에 대해 역설한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서로 자기의 견해를 알려주려 하지만 서로 다른 사물들의 명과 실이 같지 않은데도 함께 섞여 있게 되면 귀(貴)와 천

(賤)이 분간되지 못하고, 같음과 다름이 구별되지 못한다. 이와 같으면 사상이 서로

이해되지 못하는 폐단이 생기게 되고 일이 반드시 이루어지지 않는 화가 생기게 된 다. 그러므로 지자(知者)가 이에 대하여 분별하고 명칭을 제정하여 사실을 지시하 니, 위로는 귀와 천이 밝혀지고 아래로는 같음과 다름이 변별되었다. 귀와 천이 밝 혀지고 같음과 다름이 분별되니, 이와 같이 된다면 사상이 서로에게 이해되지 못하 는 폐단이 없어지고 일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화가 없어질 것이다.36)

34) 순자 정명. “名足以指實”(왕선겸, 순자집해, 426쪽).

35) 순자는 정명 에서“명이란 그로써 가지가지의 실을 지시하여 표현하는 것이다[名也者, 所以 期累實也]”(왕선겸, 순자집해, 423쪽)라고 하여, 명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실들 사이의 다름을 확정하는 역할을 수행한다는 측면에서 명을 정의하고 있다.

(11)

이로써 볼 때, 명이 있게 된 까닭은 실 사이의 귀함과 천함 그리고 같음과 다 름을 분별하여 사회성원들 사이에 사상과 감정이 잘 교류되게 하려는 데에 있다.

그러므로 명이 실을 지시하면, 실들 사이의 같음과 다름이 구별될 뿐 아니라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인간들 사이에 사상과 감정의 교류가 가능해질 수 있다.

이러한 역할을 담당하는 명을 후기 묵가는 달명(達名), 유명(類名) 그리고 사 명(私名)으로 나눈다. 후기 묵가가 명을 세 가지로 나눈 것은 명마다 외연의 크기 가 같지 않기 때문이다.

경(經): 명은 달명, 유명 그리고 사명으로 나눈다.

설(說): 물은 달명이니, 그것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일체 사물을 반영한다. 말은 류명이니, 그것은 무릇 말이라는 동물을 반영한다.

한 사람을 일러 어떤 남자노예라 하였는데, 여기서의 어떤 남자 노예가 사명이다. 사명은 유일하며 둘이 아닌 하나의 대상을 반영한다.37)

후기 묵가가 제시한 세 가지 명 가운데 달명과 유명을 우선 살피고, 사명은 따로 문단을 나누어 살피도록 한다. 왜냐하면 사명은 두 가지 경우에서 가능하기 때문이다. 후기 묵가는 달명의 예로 물을 제시하고 있다. 이 물은 앞서 살폈듯이 공손룡이나 순자가 제시한 물과 같은 개념으로 천지만물을 총괄한다. 달명인 물은 천지만물을 총괄하는 것이기 때문에 외연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달명 보다 외연이 더 큰 명은 없으며, 또한 달명은 최고의 유이니 그것 자체 보다 높은 유에 귀속되지 않는다. 반면, 유명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물 가운데서 어떤 하 나의 속성을 공유하는 것들을 반영한 이름이다. 후기 묵가가 제시한 말의 경우처 럼, 말이라는 명은 말의 속성을 갖추고 있는 모든 것을 포괄한다. 따라서 유명의 외연에는 어떤 속성을 지닌 것들만이 포괄되므로, 유명의 외연은 달명의 그것보다 는 크지 않다.

36) 순자 정명. “異形離心交喩, 異物名實玄紐, 貴賤不明, 同異不別. 如是則志必有不喩之患,

事必有困廢之禍. 故知者爲之分別, 制名以指實, 上以明貴賤, 下以辨同異. 貴賤明, 同異別, 如是 則志無不喩之患, 事無困廢之禍,此所爲有名也”(왕선겸, 순자집해, 415쪽).

37) 묵변라집학 79조 경상. “名: 達·類·私.” / 경설상. “名: 物·達也. 有實必待之名也. 命之 馬, 類也. 若實也者, 必以是名也.命之臧, 私也.是名也止于是實也”(진맹린, 185쪽).

(12)

사명은 그 명의 대상이 오직 하나인 명을 말한다. 사명의 종류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고유명사이다. 고유명사는 말 그대로 오직 하나의 대상만을 지칭하 기 때문에 그것의 외연에는 유일무이한 하나만이 대응한다. 사명의 또 다른 경우 는 ‘유명의 단일화(單一化)의 응용’38)으로 인하여 만들어지는데, 경설(經說) 에 서는 남자 노예를 뜻하는 ‘장(臧)’을 예로 들고 있다. ‘장’이라는 명은 남자이면서 노예인 모든 사람을 포괄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경우에 ‘장’은 유명이다. 하지만

‘장’은 고대 한어의 특성상 남자이면서 노예인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어떤 한 명의 남자 노예만을 대상으로 할 수도 있다. 이때의‘장’을 구체적으로 풀 어보면 남자 노예가 아니라 ‘어떤 남자 노예’가 된다. 남자이면서 노예인 모든 사 람을 반영하던 ‘장’이라는 유명을 남자이면서 노예인 모든 사람 가운데 특정한 한 명의 남자 노예에게만 적용한 것이기 때문에 이를 ‘유명의 단일화의 응용’이라고 한 것이다.이런‘유명의 단일화의 응용’의 예가 순자에게서도 보인다.

때로 하나만을 들고자 하므로 그것을 어떤 하나의 날짐승 또는 어떤 하나의 들짐승 이라고 한다. 어떤 하나의 날짐승이나 들짐승이 대별명(大別名)이다. (대별명은) 론의 방법으로 부분으로 나누고 또 나누어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데에 이른 뒤에 그친 것이다.39)

순자는 대별명의 예로 ‘어떤 하나의 날짐승’과‘어떤 하나의 들짐승’을 들고 있 다. 날짐승은 하늘을 나는 모든 짐승을, 그리고 들짐승은 들에 사는 모든 짐승을 포괄할 수 있기 때문에 날짐승과 들짐승은 후기 묵가가 외연에 따라 구분한 명의 분류 방식에 의하면 유명에 해당한다. 순자는 일종의 유명인 날짐승과 들짐승을 어떤 하나의 날짐승과 들짐승에만 대응하게 함으로써 대별명을 형성한 것이다. 따 라서 순자가 조수(鳥獸)로써 대별명의 예로 삼을 수 있었던 것은 ‘유명의 단일화 의 응용’에 의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앞에서 등장한 ‘장’과 ‘조(鳥)’그리고 ‘수(獸)’가 유명인가 사명인가 하는 것은

38) 진맹린, 묵변라집학, 28쪽.

39) 순자 정명. “有時而欲徧擧之, 故謂之鳥獸. 鳥獸也者, 大別名也. 推而別之, 別則有別, 至於

無別然後止”(왕선겸, 순자집해, 419쪽) 참조.

(13)

그것에 대응하는 대상이 하나인가 둘 이상인가에 의해 결정된다. 노예제 사회에서 남자이면서 노예인 모든 사람과 대응하는 ‘장’이라면 그것의 외연에는 분명 둘 이 상의 대상이 포괄될 것이기 때문에 이때의 ‘장’은 유명이다. 하지만 모든 남자 노 예 가운데 특정한 한 명의 남자 노예와만 대응하는 ‘장’이라면, 그것의 외연에는 그 한 명의 남자 노예만이 포괄되는지라 이때의 ‘장’은 사명이다. 즉‘유명의 단일 화의 응용’에 의해 사명이 되는 것 역시 고유명사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 명의 외연에 한 대상만이 대응되기 때문이다.

이제껏 명의 기원과 역할 그리고 종류에 대해 살폈다. 갑골문에서부터 설문 해자 까지의 ‘명’ 자의 변천과정을 추적하였다. 그 결과, 명이 칠흑 같은 어둠에서 사물을 선명하게 볼 수 없을 때 그 사물의 이름을 말하여 그 사물을 구별하고 나 아가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기원하였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이렇게 기원 한 명의 일차적 역할은 사물을 지시하는 것이며, 이는 인간과 무관하게 구분되어 있던 실들 사이의 다름을 인간의 입장에서 구별하여 확정하는 역할까지 수행하고 있음을 보았다. 명의 종류에 대해서는 후기 묵가의 논의를 살폈다. 후기 묵가는 외 연의 크기에 따라 명을 분류하였다. 결국 명은 사물을 지시하여 인간과 무관하게 독립되어 있던 실들 사이의 다름을 인간의 입장에서 구별하여 확정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IV. 정명론(正名論)

공손룡과 후기 묵가는 서로 다른 정명론을 제시하여 명과 실을 일치시키고자 한다. 그래서 우선 공손룡이 제출한 정명의 상태와 후기 묵가의 그것을 비교하여 검토하겠다. 그런 다음, 그 비교의 과정에서 드러난 양자 사이의 다름을 확연히 대 조하기 위해 “구비견(狗非犬)”40)이라는 논제의 타당성 여부를 양자의 입장에 따 라 각각 검토해 보겠다. 이는 이명동위(異名同謂)41) 혹은 이명일실(二名一實)42)

40) 장자 천하(天下) . “狗非犬”(곽경번, 장자집석, 1106쪽).

41) 둘 이상의 명이 있는데, 그 명들의 기표는 다르나 지시하거나 의미하는 대상이 같은 경우를

(14)

의 성립여부에 대한 점검이 될 것이다.

공손룡은 명실론 에서 그의 정명론을 피력하는데, 거기에서 그가 제시한 정 명론은 한마디로 유위설(唯謂說)43)이라 할 수 있다. 공손룡은 말하기를 “그 명과 실이 일치한다는 것은 피(彼)라는 명은 오로지 ‘피’라는 실에만 써야 하고, 차(此) 라는 명은 오로지 ‘차’라는 실에만 써야 한다”44)고 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피’와

‘차’는 서로 다른 사물을 뜻하는 일종의 대명사이다. 이 구절은 어떤 실은 그것을 가리키는 어떤 명에 의해서만 유일하게 지시되어야 한다는 것과, 어떤 명은 유일 하게 어떤 실만을 지시하여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공손 룡의 정명론을 유위설이라고 한다. 이러한 정명의 원칙에 의하면, 서로 다른 사물 인 피와 차는 절대 같은 명에 의해 지시될 수 없으며, 또한 어떤 하나의 명은 서 로 다른 두 사물을 동시에 지시할 수 없다. 그래서 공손룡은 말하기를 “만약 피라 는 실의 피라는 명이 피라는 실에 적합하다면 이 피라는 명은 피라는 실을 오로지 지시해야 하니, 이러한 칭위가 바로 피라는 실에 적용되는 것이다. 만약 차라는 실 의 차라는 명이 차라는 실에 적합하다면 이 차라는 명은 차라는 실을 오로지 지시 해야 하니, 이러한 칭위가 바로 차라는 실에 적용되는 것이다”45)고 하였다. 결국 실과 명이 일대일로 대응하는 관계가 공손룡이 제시한 정명이 이루어진 상태임을 알 수 있다.

공손룡이 이와 같은 정명론을 제기한 이유는 무엇인가? 공손룡은 이에 대해 직접적으로 답하고 있지는 않지만, 명실론 에 실려 있는 다른 글들을 통해 추정 해 볼 수는 있다. 공손룡은 명실론 에서 “만약 피라는 실을 일컫는 피라는 명이 피라는 실을 지시하는데 오로지 사용되지 않고 차라는 실을 일컫는 차라는 명

이명동위(異名同謂)라 한다. 예컨대 우리말에서‘죽음’ 사망’그리고별세’의 경우와 같다.

42) 이명일실(二名一實)은 기표가 다른 두 명이 지시하거나 의미하는 대상이 같은 경우이다. 명일실이 이명동위와 다른 점은 이명동위는 둘 이상의 명과 한 실과의 관계인 반면 이명일 실은 두 명과 한 실과의 관계라는 데에 있다. 따라서 이명일실은 이명동위에 포섭된다.

43) 이 유위설이라는 용어는 주운지(周云之)에게서 차용함(주운지, 명변학론(名辯學論) , 57쪽).

44) 공손룡자 명실론. “其名正則唯乎其彼此焉”(방박, 공손룡자연구, 48쪽).

45) 공손룡자 명실론. “故彼彼當乎彼, 則唯乎彼, 其謂行彼; 此此當乎此, 則唯乎此, 其謂行此”

(방박, 공손룡자연구, 48쪽).

(15)

이 차라는 실을 지시하는데 오로지 사용되지 아니한다면”46), “피라는 명으로 차라 는 실을 지시하게 되어 피와 차의 명실이 뒤섞어지고, 차라는 명으로 피라는 실을 지시하게 되어 피와 차의 명실이 뒤섞어질 것이다”47)고 하였다. 서로 다른 사물인 피와 차에 대해 똑같이 피라는 이름으로 지시한다면 서로 다른 사물인 피와 차가 구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되면 어떤 사람은 차라는 실을 피 라는 명으로 지시하고 다른 사람은 피라는 실을 피라는 이름으로 지시하는 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이 두 사람이 비록 똑같이 피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할지라도 그 피가 지시하는 대상은 다르게 된다. 이처럼 같은 이름이라 할지라도 사람마다 그 이름이 지시하는 대상이 다르다면 인간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사상과 감정의 교류와 전달은 오해로 얼룩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공손룡이 제기한 유위 설에 따른다면 서로 다른 사물인 피와 차에 각각 다른 이름들이 오로지 사용되어 지기 때문에 이름에 의해서 서로 다른 사물인 피와 차의 구별이 혼란스러워지는 경우는 발생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인간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의사소통 역시 이름이 지시하는 대상의 다름으로 인한 오해는 피할 수 있다. 따라서 공손룡은 서 로 다른 사물을 명확하게 구별하여 의사소통 과정에서 오해가 발생하지 않게 하기 위해 유위설에 입각한 정명론을 제기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후기 묵가는 공손룡의 유위설에 입각한 정명론을 반대한다. 후기 묵가가 제시 한 정명론은 다음과 같다.

정명에 관해서: 피라는 실에 대해 피라 이름하고 차라는 실에 대해 차라 이름하는 피차(彼此)에 대한 규정은 괜찮다. 그러나 피라는 실의 피라는 명이 피라는 실을 지시하는데 그치고, 차라는 실의 차라는 명이 차라는 실을 지시하는 데 그쳐야 한 다는 피차에 대한 규정은 잘못된 것이다. 어떤 것은 피라는 명에 의해 지시되면서 동시에 차라는 명에 의해서도 지시될 수 있으며, 다른 어떤 것은 차라는 명에 의해 지시되면서 동시에 피라는 명에 의해 지시될 수 있다. 이와 같이 피이면서 차이고, 차이면서 피일 수 있다.48)

46) 공손룡자 명실론. “謂彼而彼不唯乎彼, 謂此而此不唯乎此”(방박, 공손룡자연구, 48

쪽).

47) 공손룡자 명실론. “彼此而彼且此, 此彼而此且彼”(방박, 공손룡자연구, 48쪽).

48) 묵변라집학 169조 경설하. “正名者: 彼·此―彼此可. 彼彼止于彼, 此此止于此―彼此,不可.

(16)

후기 묵가는 공손룡과 마찬가지로 피라는 실이 피라는 명에 의해 지시되고 차 라는 실이 차라는 명에 의해 지시되는 것을 인정한다. 즉 후기 묵가와 공손룡은 모두 ‘피는 피다’와‘차는 차다’를 긍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후기 묵가는 차라는 실 이 차라는 명에 의해서만 지시되어야 한다는 실과 명의 일대일 대응관계는 부정한 다. 예컨대 백마(白馬)는 백마이고 흑마(黑馬)는 흑마이지만, 백마도 마(馬)이고 흑마도 마이므로 백마는 백마이면서 마이고 흑마는 흑마이면서 마이다. 따라서 어 떤 사물이 하나의 이름에 의해서만 지시되어야 한다는 공손룡의 정명론은 받아들 일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후기 묵가는 공손룡의 정명론에 대해 하나의 실에는 오직 하나의 명만이 대응해야 한다는 측면뿐만 아니라, 하나의 명이 지시하는 실은 오직 하나뿐이라는 측면도 반박한다. 공손룡의 유위설에 의하면 이것과 저것 즉 서로 다른 두 사물은 같은 이름에 의해 지시될 수 없다. 이를테면 이것을 이미 학이라 하였다면 저것을 또 학이라고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후기 묵가는 이에 대해 말하기를 “이것을 학 이라 하는 것이 가(可)하다면 저것이 학일진댄 저것을 학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을 학이라 하였으니 저것을 학이라 할 수 없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49)고 하였다.

후기 묵가는 두 마리의 새가 모두 학인 경우 이것과 저것을 모두 학이라 할 수 있 다는 사례를 통해 하나의 명이 서로 다른 두 사물을 지시할 수 있는 경우를 보임 으로써 공손룡의 유위설을 반박한 것이다. 결국 후기 묵가는 어떤 명은 어떤 하나 의 실만을 지시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어떤 명은 둘 이상의 실을 지시해도 무 방함을 증명한 셈이다.

만일 공손룡이 위와 같은 후기 묵가의 반박을 접하였다면 어떻게 대응하였을 까? 우선, 하나의 실이 차라는 명과 피라는 명에 의해 동시에 지시되는 경우에 대 해서는 공손룡자 에서 그 반론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백마비 마(白馬非馬)’론이다. 공손룡에 의하면 백마라는 실은‘백(白)이면서 마’인 것이니 그것을 지시하는 명은 백마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만일 후기 묵가의 방식대로

彼且此也, 此亦可彼, 若是而彼此也, 則彼亦且此也”(진맹린, 277쪽).

49) 묵변라집학 173조 경설하. “惟: 謂是霍(鶴), 可. 而猶之謂彼霍也. 謂彼非是也, 不可”(진맹 린, 282쪽).

(17)

백마라는 실이 백마와 마라는 두 가지 명에 의해 지시될 경우, 백마라는 명에 의 해 지시되는 것은 타당하다. 하지만 백마라는 실이 마라는 이름에 의해 지시되는 것은 백마에서 색깔에 해당하는 백을 제외시키고 오직 형체만을 지시하는 것에 불 과하니, 그것은 지시하고자 한 대상인‘백이면서 마’를 지시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공손룡의 이러한 논리를 따르면 백마는 백마이고 마는 마일뿐이기 때문에 백마라 는 실을 마라는 명으로 지시하는 것은 ‘백이면서 마’인 것과 ‘백이 없는 마’의 구별 을 방기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후기 묵가가 공손룡의 유위설에 가한 또 하나의 반박은 하나의 명은 하나의 실만을 지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둘 이상의 실을 지시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 다. 공손룡자 에서는 이에 대한 직접적인 대응이 될 만한 것을 찾을 수는 없지만, 서로 다른 사물인 이것과 저것을 엄격히 구별하려 한 공손룡의 본의에 따른다면 이에 대한 재반박을 내놓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까닭은 후기 묵가처럼 학이 라는 이 하나의 명으로 이것과 저것을 모두 지시해서는 이것과 저것이 구별되지 않으므로 이는 이것과 저것의 구별을 방기한 소치라고 공손룡은 여겼을 것이기 때 문이다. 공손룡이라면 아마 학이라는 하나의 명으로 이것과 저것을 모두 지시하는 대신‘이 학’과‘저 학’혹은 ‘다리가 긴 학’과‘다리가 짧은 학’등으로 이것과 저것 을 확연히 분별하려고 하였을 것이다. 이는 마치 일란성 쌍둥이에게도 다른 이름 을 지어줌으로써 그 둘을 분별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즉 하나의 명으로 하나의 실만을 지시해야 이것과 저것 즉 다른 사물들이 확연히 분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공손룡과 후기 묵가의 정명에 대한 이상과 같은 견해의 차이를 구체 적으로 확인해 보도록 하겠다. 공손룡과 후기 묵가가 활약하던 당시에 회자되던

“구비견”이라는 논제를 그 둘의 입장에 따라 각각 타당성 여부를 검토해 보면 그

둘 각각의 특색과 차이가 보다 선명해진다.

[A] 경: (狗)를 아는데 또 견(犬)을 모른다고 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 원인은 구와 견은 명은 다르나 지시하는 바는 같기 때문이다.

설: 구를 알면서 견을 모른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다.

구를 아는 것이 곧 견을 아는 것이라 해야 비로소 정확하다.50) [B] 이아(爾雅) 에 의하면 아직 긴 털이 나지 않은 것이 구이다. 이 구는 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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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일 뿐이다. 어린 개는 개가 아니니, 마치 백마가 마가 아닌 것과 같다.51)

위의 인용문 상단의 A는 후기 묵가의 ‘구비견’에 대한 견해이고, 하단 B는 풍 우란(馮友蘭)이 공손룡의 입장에 입각하여 공손룡을 대신하여 만든 견해이다. 후 기 묵가에 의하면 구와 견은 지시하는 대상이나 의미하는 바가 같기 때문에 ‘구비 견’은 잘못된 명제이다. 즉 후기 묵가는 구와 견이라는 기표의 다름을 곧 구와 견 의 기의의 다름으로 오해한 사람들이 이런 명제를 주장한다고 여긴 것이다. 반면 공손룡의 입장에서는 구는 강아지를 뜻하고 견은 개를 의미하기 때문에 구와 견 사이에는 작은 개와 큰 개라는 차이점이 있으므로 ‘구비견’은 타당한 명제이다. 강 아지와 개의 차이점을 보지 못한 경우가 아니고서야 이 명제를 부당한 명제라 여 길 이유가 없다는 것이 공손룡의 견해인 셈이다.

‘구비견’에 나타난 후기 묵가의 입장을 재구성해 보면, 어떤 것이 구라면 그것

은 구라는 명과 견이라는 명에 의해 지시될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은 구이면서 견이 된다. 또한 구와 견이라는 명이 어떤 것을 동시에 지시하는 것이 가능하다. 후기 묵가는 명은 다르지만 지시하는 대상과 의미하는 바가 같은 이명동위 내지는 이명 일실을 인정한 것이다. 반면 공손룡의 입장을 재구성해 보면, 어떤 것이 구라면 그 것은 구라는 명에 의해서만 지시될 뿐이지 견이라는 명에 의해서는 지시될 수 없 다. 왜냐하면 구는 구이고 견은 견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구라는 명은 오로지 구 즉 강아지에만 사용되어야 하고 견이라는 명은 오로지 개에만 사용되어야 한다.

이 때문에 구와 견이라는 명이 동시에 하나의 대상을 지시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공손룡은 명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지시하는 대상과 의미하는 바가 같을 수 있다는 이명동위 내지는 이명일실을 부정한 것이다. 결국 후기 묵가는 기표가 다를지라도 기의가 같을 수 있다는 것이고, 이에 반해 공손룡은 기표가 다르면서 기의가 같은 경우는 없다는 것이다.

지금껏 살펴본 바에 의하면, 공손룡의 정명론인 유위설은 명과 실이 서로 일대

50) 묵변라집학 141조 경하. “知狗而自謂不知犬, 過也. 說在重.” / 경설하. “知: 知狗不重 知犬, 則過. 重則不過”(진맹린, 249쪽).

51) 풍우란(馮友蘭), 중국철학사(상) , 박성규 역, 서울: 까치글방, 2000, 352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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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로만 대응하기 때문에 어떤 실은 어떤 명에 의해서만 지시되고 어떤 명은 어떤 실만을 지시한다. 반면 후기 묵가의 정명론은 어떤 실이 어떤 명에 의해 지시되면 서 동시에 다른 어떤 명에 의해서도 지시될 수 있으며, 또한 어떤 명은 어떤 실을 지시하면서 동시에 다른 어떤 실도 지시할 수 있다.

V. 맺는 말

철학과 문학의 공동 기반인 문자기록의 최소 단위로서의 명은 그것의 대개념 인 실과 상관관계에 놓여 있다. 지금껏 이 글은 공손룡과 후기 묵가가 각각 제시 한 정명론을 비교 검토함으로써 명과 실이 어떤 방식으로 관계할 때 가장 바람직 한 가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가져 보았다. 또한 이 과정에서 물이 어떤 개념인 지 그리고 물로부터 실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파생되어 나오는지, 나아가 실이라는 개념의 함의가 무엇인지 등을 규명하였다. 이와 더불어 명의 기원과 역할 그리고 종류에 대해 살펴보는 것을 통해 명이 무엇인지에 대해 정의할 수 있었다.

이제 공손룡의 정명론과 후기 묵가의 그것이 지니는 의의를 되짚어 보는 것으 로써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앞서 살폈듯이, 명은 실을 지시하여 인간과 무관하게 분화되어 있는 실들 사이의 다름을 인간의 입장에서 구별하여 확정하는 역할을 담 당하고 있다. 또한 인간들은 명에 의해 자신의 사상과 감정을 타인에게 전달하고 타인의 사상과 감정을 접수한다. 이러한 명의 역할을 가장 원활하게 수행하기 위 해 공손룡은 명실의 일대일 대응을 고안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방식에 의하면 서로 다른 실에는 각각 다른 명이 오로지 사용되어지기 때문에 명에 의해 서로 다 른 실의 구별이 혼란스러워지는 경우는 발생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작가가 어 떤 명을 선택하여 자신의 사상과 감정을 전달함에 있어 독자는 작가가 그 명을 선 택하여 지시한 동일한 실을 연상하게 된다. 따라서 공손룡의 정명론은 언어를 통 해 야기되는 오해와 문제점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식이라 할 수 있다.

후기 묵가는 공손룡의 이러한 정명론을 반박한다. 후기 묵가는 공손룡이 제안

(20)

한 명실의 기계적인 일대일 대응은 명이 지닌 다면적 의미를 사상하고 다양한 표 현 방식을 억제할 뿐 아니라, 하나의 실이 지니고 있는 다양한 성질을 반영해낼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후기 묵가는 명과 실의 대응관계를 개방하여 하 나의 명이 여러 실을 지시하거나, 하나의 실이 여러 명에 의해 지시되는 것을 인 정한다. 후기 묵가의 이런 명실 관계는 시대에 따라 세대에 따라 새로운 명실의 대응방식을 창출할 여지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여지는 동시에 언어나 문자를 사용하는 주체의 자의성이 개입할 여지가 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무분별한 채팅 용어의 양산과 세대 간 의사소통의 단절을 야기하는 속어의 남발 등을 들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 공손룡이 제안한 명과 실의 관계에는 생명력이 없다. 후기 묵가의 그것에는 비록 생명력은 있을지언정, 언어나 문자를 사용하는 주체가 제멋 대로 명실의 대응관계를 형성할 경우 이에 대한 방비책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따 라서 새롭게 정립될 명실 관계는 새로운 명실 관계를 창출한 생명력을 지니면서도 동시에 자의성의 침투를 방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인용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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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A Comparison between Gong Sun-Long and the Later Mohists

—Centering on their Concepts of the Proper Use of Names—

Kim, Chul-shin (Yonsei University)

In ancient China, “ming (名)” was considered a basic element in both writing and language. “Ming,” however, cannot be established without its relationship with “shi (實).” In this regard, the investigation of “ming” entails a study of the relationship between “ming” and “shi.”

This paper deals with the theory of “the Proper Use of Names (正名論 : zhengminglun).” The more specific concern is Gong Sun-Long and the Later Mohists' theories of zhengming. First, it can be said that the more specialized discussion of zhengming began only after the middle period of the Warring States. Second, it is Gong and the Later Mohists who can be deemed as those whose discussion of zhengming is most sophisticated. Further, since we can find critical comments on the other party from both camps, it is easy to compare their opinions.

I will discuss Gong and the Later Mohists’ theories of zhengming as follows; first, I will examine both “ming” and “shi,” which is derivative of

“ming.” Next, I will explore ming’s origin, role and kind. Finally, I will compare and evaluate Gong and the Later Mohists’ theories of zhengming.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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