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지각적으로 식별불가능한 대상들과 지향적 속성

문서에서 PDF Disclaimer (페이지 184-194)

III. 마골리스의 이론에 대한 비판과 논쟁들

3. 역사성과 본질주의적 역사관의 문제

3.2. 지각적으로 식별불가능한 대상들과 지향적 속성

단토에 대한 마골리스의 두 번째 비판은 지각적으로 식별불가능한 속 성, 즉 예술작품의 지향적 속성과 변용 개념에 관한 것이다. 마골리스의 비판의 요지는, 단토는 이러한 문화적 속성들을 예술작품을 예술작품이 되게 하는 것으로서 주목하고 있지만, 단토 식의 “지각”과 “변용”

개념은 문화적 속성의 본질적인 위상과 객관성, 식별가능성을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론을 미리 말한다면, 필자는 문화적 속성에 관한 단토와 마골리스의 입장이 근본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 비판은 다소 사소한 것이라고 여기지만, 마골리스가 본인과 유사한 주장을 하는 단토를 비판하는 방식을 살펴봄으로써 우리 가 마골리스 주장의 핵심들을 더욱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측면은 의 미 있다고 생각한다. 즉 이 비판을 통해 마골리스는 지향적 속성과 역사 의 관계 및 지향적 속성이 사회 속에서 어떻게 예술작품의 본질로서 확 립되는지를 더 분명히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다.

먼저 이 비판과 관련되는 단토의 주장을 다시 환기하자. 단토는 모더니

즘 내러티브가 끝난 역사-이후의 시대의 예술작품은 지각적으로 식별불 가능한 속성들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단토는 “1960년대와 그 이후 에는 예술작품이 ‘단순한 실제 사물’로 지칭되는 것과 대조되는 것으 로 보이는 어떤 특수한 방식도 없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예를 들자 면, 어떤 것도 그 차이를 외적으로 표시하지 않는다. 앤디 워홀의 <브릴 로 박스>와 수퍼마켓의 브릴로 박스 사이에는. 그리고 개념 예술은 무언 가가 시각 예술작품이 되기 위해서 감지할 수 있는 시각적 대상이 될 필 요조차 없음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당신이 더 이상 예를 들어서 작품의 의미를 가르칠 수 없음을 의미한다. 그것은 외양에 관한 한 어떤 것도 예술작품이 될 수 있다는 것, 만일 당신이 예술이 무엇인지를 찾고자 한 다면 당신은 감각 실험에서 사고로 방향을 전환해야 함을 의미한다. 요 컨대 철학에로 전환해야 한다”231)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단토가 말하 는 것은 지각적으로 식별가능한 물리적인 속성들만으로는 단순한 실제 사물과 예술작품을 구별할 수 없고, 동일한 외연을 가진 그 양자를 구분 지어 주는 것은 예술작품으로서의 의미를 갖도록 해주는 속성이라는 것 이다. 이로써 단토는 예술 작품과 사실상 정확히 똑같아 보이는 단순한 사물 간의 차이를 만드는 것, 즉 예술 작품의 본질은 문화적이고 지향적 인 속성이라는 점을 주목하도록 한다.

그런데 여기서 마골리스가 단토를 비판하는 것은 이러한 문화적 속성들 의 식별불가능성 및 그 위상과 그 귀속 과정에 관한 것이다. 마골리스의 주장에 따르면, 단토가 말하는 문화적 속성의 “지각적 식별불가능성”

과 “변용”이라는 개념이 문화적 대상과 지향적 속성의 실재성과 중요 성을 애매하게 만들어 버린다는 것이다. 마골리스는 “단토는 어디서도 예술작품이 진정 무엇인지, 어떻게 그것이 동일시되거나 “단순한 실제 사물”로부터 식별되는지 혹은 그 결과로 어떻게 그 자신의 기술과 해석 들이 그가 고려하는 예술작품들을 조사함에 있어서 객관적으로 확인되는 지에 대해 대한 설명을 제공하고 있지 않다”232)고 하면서 단토가 예술 작품과 같은 문화적 대상이 가져야 할 “역사를 가진 인공물임이 분명한

231) A. Danto, After the End of Art, p.13.

232) WWA, p.34.

속성들”을 이론적으로 부각시키고 있지 않다고 비판한다.

먼저 문화적 대상의 지각적 식별 문제를 살펴보자. 마골리스는 지향적 속성이 지각적으로 식별가능하다고 주장하면서 단토를 비판한다. 마골리 스와 단토의 입장 차이는 “지각”이란 용어를 생각하는 방식에 기인한 다.

우선 마골리스는 “지각”이라는 용어를 단토보다 더 확장된 의미로 생 각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마골리스는 “한 예술작품의 지각은 무 엇보다도 어떤 물리적 대상이나 “단순한 실제 사물”을 확인하는 데 봉 사하는 최소한의 수단에 의해 확인될 수 없는 한 개체의 지각이다”233) 라고 하면서 대상을 작품으로 지각하는 것부터 언급하고 있다. 마골리스 는 예술작품에는 있으나 단순한 실제 사물에는 없는 것이 지향적 속성이 라면 그것은 분명히 지각되어야 한다고 본다. 재현적, 기호학적, 상징적, 표현적, 양식적, 역사적, 기타 의미심장한 속성들과 같은 지향적 속성들 은 단순히 물리적, 감각적으로는 식별불가능하며 더욱이 이 속성들이 물 리적 속성 속에 구현되는 것이 우연적이기 때문에 더욱 분명히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234) 이렇듯 우연적이면서 작품을 규정하는 본질적인 속성이기에 마골리스는 “예술작품의 지각에 있어서 우리는 해당 예술작 품을 지향적 속성들을 소유한 것으로서 지각한다. 단토가 주장하듯이 만 일 지각 그 자체가 “단순한 실제 사물”에 국한되고 그래서 지향적으로 부여받은 속성들로 향해질 수 없다면, 예술작품은 전혀 지각되지 못할 것이고 그것들의 기술과 해석은 풀 수 없는 미스테리가 된다”235)고 하 면서 단토를 비판하고 있다.

여기서 마골리스가 단토를 공격하는 핵심은 단토가 지각의 개념을 물리

233) WWA, p.37.

234) WWA. p.36.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예술작품으로서 의미하는 것의 복잡함이다. - 즉 그것은 그 본성의 형이상학이다. : 우리가 회화를 볼 때 지각했 다고 주장하는 것, 우리가 올바르게 그것을 이해할 때 성취했다고 가정하는 것들에 대한. 예술작품의 본성이나 예술작품의 이해의 본성을 명시할 표준적인 방법은 없 다. 그린버그와 단토는 그런 생각에 경도된 것처럼 보이는데, 회화의 본성과 회화 의 이해에 관련되는 것의 본성은 시대에 따라서 양식에 따라서 철저하게 변화한다 는 것이 전적으로 가능하다”

235) WWA, p.37.

적인 속성에 대한 감각적 지각처럼 협소한 범위에 국한시켜, 작품의 핵 심이 되는 지향적 속성을 식별불가능한 것으로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마골리스는 지각을 문화 공동체 안의 규범에 익숙한 이들이 물리적, 감 각적이지 않은 속성을 인지하는 것까지 포함시키며, 지향적 속성이 해석 공동체에 의해 부과되는 것이라면 그것은 당연히 지각되어야 한다고 여 긴다. 그런데 단토는 지향적 속성을 식별불가능한 것으로 말함으로써 상 대적으로 대상의 물리적 속성을 강조하게 되고 지향적 속성의 중요성과 위상을 약화시킨다는 것이 마골리스로서는 불만족스러운 것이다.

필자는 이 비판이 단지 부분적으로만 적절하다고 보는데, 단토의 주장 에 대한 마골리스의 공격이 다소 단편적인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실 제로 단토의 지각적 식별불가능성 논제는 지향적 속성의 중요성을 강조 하는 것이며, 단토는 지향적 속성이 해석자들에 의해 실제로 식별가능하 지 않다고 보지도 않는다. 이에 필자는 여기서의 마골리스의 비판은 단 토의 이러한 핵심을 곡해하고 있다기보다는 단지 단토와 차이를 보이는 자신의 주장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핵심적인 것은, 단토 가 지각의 개념을 단지 물리적이고 감각적인 측면에 국한시킨 결과 지향 적 속성과 예술 작품의 실재성을 적절히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다. 즉, 용어법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236)

236) 마골리스가 지각에 대한 용어법을 들어 단토를 비판하는 목적은, 지향적 속성의 위상이나 지각가능성 여부에 대한 단토의 주장이 잘못되었음을 논증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자신의 구현 논제의 타당성을 강조하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작 품 내의 지각가능한 속성 문제에 대해 마골리스가 굿먼과 단토를 동시에 비판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외연적 지칭론자인 굿먼은 작품에서 외연적 기호 로 식별가능한 것만을 인정하여 의도나 맥락과 같은 관계적 속성이나 해석적 속성 들을 작품의 본질적인 속성으로서 인정하지 않았다. 그 결과 텍스트적으로 동일하 다면 아이러니로 의도한 작품과 그렇지 않은 작품이 동일한 작품이 되어 버린다.

그러나 예술사적 전후 맥락과 관행을 고려하여 해석자들은 이 두 작품을 구별할 수 있다. 마골리스는 굿먼이 감각적 지각을 협소한 영역에 국한시켜서 지향적이거 나 역사적으로 식별가능한 특징들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한편 단토에 대 한 마골리스의 비판은 이와 반대가 된다. <브릴로 박스>의 예에서 보듯 단토는 예 술 작품의 본질적 속성에 있어서 지각적으로 식별불가능한 것이 항상 있다고 주장 하는데, 이것은 마골리스가 말하는 지향적 속성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지 향적 속성들이 지각적으로 식별불가능하다면 우리는 그 대상을 예술 작품으로서 식별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마골리스는 이 두 이론의 실패가 각기 다른 이유에서

실제로 마골리스는 단토의 이러한 용어법을 단토가 양식, 재현, 표현과 관련된 문화적 속성과 그 속성들의 지각을 실재론적으로 읽는 것을 불편 해한다는 것으로 독해하면서, 지향적 속성과 그 속성들의 지각은 실재론 적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힘주어 강조하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이것은 문화적 대상과 그것이 소유한 지향적 속성이 (비록 일시적이나마) 견고 하게 고정된 것처럼 간주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객관적인 것으로 서 그 작품이 그러한 것으로 확인되는 해당 공동체 안에서는 분명하게 지각되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마골리스 에게서 예술 작품은 문화적 공동체 안에 있는 구성원들의 발화이기 때문 에237) 마치 발화를 듣고 응답하고 제의에 참가하는 것처럼 문화적으로 형성된 감각적 지각을 통해 작품을 지각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 향적 의미들은 언어적 적절성, 문화와 역사의 능란함을 통해 대상들에 귀속되고, 이러한 점에서 인간 언어의 이해는 단지 감각적 지각이 아니 듯이, <브릴로 박스>의 속성 또한 그렇게 지각되는 것이고, 그러한 점에 서 작품의 감각적인 지각도 단순한 지각이 아니라 언제나 이러한 종류의 개념적인 요소를 담고 있다고 주장한다.238)

이지만 공통적으로 지각적 식별의 문제와 관련된 것으로 파악한다. (Margolis, J.

"Farewell to Danto and Goodman", British Journal of Aesthetics, Vol. 38, No. 4 (April, 1998) pp.354-355.) 마골리스는 단토의 이러한 지각 개념이 작품 에 대한 우리의 파악가능성과 접근가능성을 적절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고 본 다. 붉은 그림들의 예, 브릴로 박스, 뒤샹의 레디메이드 등의 작품이 어떻게 예술 작품이 되었는지를 다시 환기하라.

마골리스의 지각 개념은 물리적 속성과 문화적 속성이 모두 지각될 수 있다는 것 이고, 물리적 속성은 당연하게도 우리의 자연적인 생물학적 지각에 의해 확인될 수 있는 것이라면, 문화적 속성의 지각은 공동체 내에서의 우리의 사고 방식과 관념, 규약, 배경 지식들에 의해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적 속성은 물리적 속 성 안에 적절하게 구현된다. 그런데 굿먼과 단토는 지향적 속성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양자 모두 지각을 감각적 지각이라는 협소한 의미에 국한시 킨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결국 ‘지각’이라는 단어에 대한 용어법의 차이인 데, 이들의 용어법을 단순히 받아들이고 보면 굿먼은 지향적 속성 자체를, 단토는 지향적 속성의 인식가능성을 간과하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그러나 필자는 이 중 굿먼에 대한 비판은 마골리스 자신의 이론에 비추어 당연한 귀결이라고 보지만, 본 문에서 다루고 있는 바처럼 단토에 대한 비판은 검토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237) HTCW, p.51, p.60.

238) Margolis, J. "Farewell to Danto and Goodman", pp.369-371.

문서에서 PDF Disclaimer (페이지 184-194)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