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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과 텍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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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예비적 고찰

1. 예비적 정리와 해석의 문제들

1.3. 예술작품과 텍스트

1.3.1. 작품과 텍스트

일반적으로 작품과 텍스트는 개념적으로 구별되며, 작품은 텍스트를 기 반으로 하면서 보다 고유하고 특수한 속성과 내포를 가지는 것으로 생각 된다.

먼저 텍스트는 우선 외연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들 혹은 지각을 통해 객관적이고 공적으로 확인가능한 것들을 말한다. 예컨대 문학 작품에서 는 일반적으로 단어 연쇄-유형(type)11), 음악 작품에서는 기보가 가리

10) 이 절은 해석의 대상으로서 작품과 텍스트를 구별하고, 따라서 작품의 해석과 텍스 트의 해석이 층위가 다름을 말하고자 씌어졌다. 그런데 작품과 텍스트의 관계에 대 한 논의는 예술 작품의 정의와 정체성 문제와 밀접하게 관련되기 때문에 실로 방대 하고 복잡한 주제이다. 따라서 이 절에서도 이러한 문제들과 관련된 약간의 언급들 은 불가피하다. 다만 여기서는 이 논문의 논의와 관련하여 해석 대상으로서의 예술 작품의 위상을 분명히 하는 것과 영미권의 이론들에서 작품과 텍스트의 관계를 바 라보는 입장들이 대략적으로 어떻게 포진해 있는가를 간략히 언급하는 것을 목표로 함을 밝혀 둔다.

11) 여기서 텍스트를 유형(type)으로 말하는 것은 공적으로 확인 가능하지만 텍스트가 물리적인 측면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다. 특히 문학과 음악 작품

키는 소리 연쇄-유형, 통상적인 시각 예술에서의 물리적으로 확인 가능 한 대상 등이 그것이다. 대표적으로 문학 작품의 경우 텍스트는 개별화 된 문장 유형의 질서지워진 집합으로서 최소한의 의미론적이고 구문론적 인 속성을 가진 것이다.12) 즉 대략 같은 순서로 된 단어 연쇄, 같은 철 자로 되어 있으며 같은 것을 의미하도록 제작자에 의해 의도된 것이 다.13) 만일 어떤 두 텍스트가 동일한 언어로 동일한 의미론적, 구문론적

의 경우 텍스트 자체도 물리적 판본이나 악보와 동일시되지 않는다. 단어 연쇄, 소 리 연쇄 자체는 작품을 확인하는 최소한의 공적인 지각적 대상이지만 이것은 작품 과 일반적으로 다르다. 보편자인 유형은 개별자인 징표(token)에 의해 예시된다.

이러한 유형-징표 모델에 비추어 볼 때, 텍스트는 개별자의 특징과 보편자의 특징 을 동시에 가진다고 할 수 있다. 특정 시공간에서 특정인에 의해 창조된 역사적 개 체라는 점에서는 개별자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예시, 때로 다수 예시가 가능하다는 점에서는 보편자이기도 하다. 예컨대 텍스트로서의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는 17 세기 초에 만들어진 역사적 개체로서 개별자이지만, 여러 복사본과 판본, 번역본이 가능하며 그 판본들 중 하나와 동일시되지 않는다. (Gracia, Jorge. J. E., Texts : Ontological Status, Identity, Author, Audience,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Albany, 1996, pp.10~11.) 예술 작품과 텍스트의 문제를 유형-징표 (type-token) 모델 혹은 보편자-개별자(universal-particular)의 관계와 결부시 켜 논의하는 것은 작품 존재론과 관련해 미학적으로 중요한 별도의 논의 주제이기 도 하다. 이것은 작품과 텍스트의 관계를 어떻게 보는가, 작품을 추상적으로 투사된 개체로 보는가, 확인가능한 지각적 대상이나 텍스트와 동일시하는가 여부, 또 작품 과 텍스트를 플라토닉한 개체로 보는가, 유명론적 개체로 보는가 여부에 따라 다양 한 이론적 입장들이 있으며 또한 논의 대상이 문학, 음악과 같은 연행 예술인지 물 리적 대상이 중심이 되는 시각 예술인지에 따라서도 설명이 달라진다. 유형-징표 모델과 관련된 복잡 다양한 논의는 이 논문에서 다룰 주제가 아니므로, 여기서는 영미권 미학에서 일반적으로 논의하는 작품과 텍스트의 개념 및 양자 간의 관계를 간략히 언급하고자 한다.

12) G. Currie, "Work and Text", Mind, 100, July, 1991, p.339.

13) 위와 같은 텍스트 개념은 대상 자체에 초점을 맞춘 것이지만, 때로 텍스트의 생산 자와 해석자의 관계를 공공연히 언급하기도 한다. “저자의 의도에 의해 선택되고 배열된 기호로 구성된 개체로서 특정한 맥락에서 청중에게 특정한 의미를 전달하려 는 개체들”(Gracia, op.cit., p.3)이라는 텍스트 개념 정의에서는 텍스트의 인공성, 텍스트가 의미를 전달하는 하나의 기호로서 기호 체계 및 발화자와 해석자가 속한 언어 공동체와 관련되어 있다는 화용적 측면까지 확인한다. <돈키호테> 및

“2+2=4”, “불이야!”등도 텍스트이다. 이 맥락에서의, 예술 작품과 관련된 텍 스트 개념 또한 하나의 문화 공동체 안에서 생산, 감상되고 때로 발화와 유비적으 로 생각되기도 하므로, 의미를 담지하고 전달하는 개체로서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측면에서 생각되는 것이다.

덧붙여, 이러한 텍스트/작품 개념의 구별은 바르트(R. Barthes)의 이론을 통해 익히

속성을 가지며 동일한 단어 유형, 문장 유형을 동일한 방식으로 배열하 고 있다면 이 두 텍스트는 동일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이렇듯 이러 한 텍스트는 지각적으로 식별가능한 공적이고 객관적인 개체이다.

한편 작품은 텍스트가 가지지 않는 전체적인 속성들을 가지며, 비평과 해석이 귀속되는 개체이다. 따라서 작품은 텍스트와 동일하지 않고 또한 같은 동일성 조건을 소유하지도 않는다. 작품과 텍스트 간의 가장 핵심 적인 구별점은 관계적, 문화적 속성, 즉 텍스트에는 귀속되지 않으면서 작품에는 귀속되는 창발적(emergent)인 미적 속성들이다.14) 어떤 작품

널리 알려져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위와 같이 영미권의 이론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텍스트와 작품의 개념은 바르트의 개념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바르트 는 해석의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맥락에서 텍스트의 개념을 강조하 면서, 텍스트는 작품에 우선하는 것이고 해석의 여러 방법론들이 적용될 수 있는 장과 같은 것으로 생각한다. 텍스트는 해석자가 여러 방법론을 통해 구조 자체를 재구조화하면서 의미를 생산할 수 있는 것으로 그 자체가 궁극적으로 하나의 고정 된 의미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바르트에게 작품은 닫히고 고정된 구조를 가진 보 다 구체적인 생산품의 개념으로 작품의 해석은 그것이 담지하는 의미를 찾으려는 것이 된다. 그러나 지금의 논의 맥락에서의 텍스트의 개념은 바르트가 강조하고자 하는 생산적인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장이라는 의미보다는, 작품과 구별되는 것으 로서 우리의 지각 앞에 놓인 언어적, 매체적인 구조 자체를 가리키며, 문화 속의 기 호 체계, 언어 공동체, 의사소통 행위 등 화용론적 측면에 기반하여, 어떤 합의되고 표준적인 의미를 전달하는 개체이다. 텍스트의 의미는 언어 공동체와 발화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바르트의 관점에서와 같이 해석자 개인에 의한 창조적인 의미 생산에 우선적인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은 아니다.

14) J. Margolis, What, After All, Is a Work of Art? (이하 WWA), Pennsylvania University Press, 1999, p.89. 작품은 일반적으로 개념상 텍스트보다 더 개별적 이고 문화적인 속성들을 가지는 것으로 생각되지만, 이론가들도 때로 이 말을 혼용 하기도 한다. 마골리스의 경우 텍스트와 작품이란 말의 구별이 언제나 분명한 것은 아니며, ‘텍스트’란 단어를 예술작품과 거의 유사한 의미로 사용하기도 한다. 또 한 마골리스는 텍스트란 말을 언어적 대상에 주로 사용하지만 해석적 지칭체들을 확장해서 가리키기도 한다. (J. Margolis, 'Reinterpreting Interpretation'(이하 RI) , Interpretation Radical But Not Unruly : The New Puzzle of Arts and Histor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95, pp.4~6.) 그러나 라마르크는 마 골리스도 예술작품의 동일성과 개별화는 자연 대상이나 언어적 개체의 개별화와 다 르다는 말을 하고 있다는 점, 예술작품에 있어서는 일관되게 뚜렷이 문화적이고 지 향적인 속성을 강조한다는 점을 들어 마골리스에게서도 예술작품과 텍스트의 개념 이 암시적으로 구별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Lamarque, op.cit., p.106.) 이 글에서 는 라마르크의 지적을 수용하는 한편 마골리스의 텍스트/작품 개념의 구별과는 별 개로, 일반적으로 텍스트와 예술작품의 개념은 각각의 고유한 특징과 강조점을 가

의 예술사적 의의라든가 혹은 아이러니 등 읽기의 방식과 중요하게 관계 되는 속성들이 그 예가 되는데 이 속성들은 작품에 있어서 미적으로 중 요한 속성들이다.15)

이렇게 작품과 텍스트는 개념적으로 구별되면서, 작품은 텍스트에 기반

지고 있는 것으로서 달리 쓰이고 있고 개념적으로 구별됨을 분명히 하는 것이 논의 에 도움이 될 것이다.

15) 예술 작품에서 미적 속성(aesthetic property)은 작품을 다른 인공품, 물리적 대상 과 구별짓는 중요한 본질적 속성으로서 작품으로서의 의미와 가치를 갖도록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예술 작품은 종종 미적 대상(aesthetic object)으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Beardsley, Monroe C. Aesthetics : Problems in the Philosophy of Criticism, 2nd ed. Hackett, Indianapolis, 1981, pp.15~16.) 이러한 미적 속성 은 작품 내에 물리적 기반을 가지지만 물리적 속성 자체는 아닌, 우아함, 통일됨, 균형잡힘 등과 같은 재현적, 표현적 속성들이며 하나의 전체 개체로서의 작품에 귀 속된다. 이러한 미적 속성은 우리가 자연적으로 지각할 수 있는 것들도 있고 아닌 것들도 있으며, 은유적인 것들도 있다. (Sibley, Frank. "Aesthetic concepts."

The Philosophical Review 68.4 (1959), p.422.) 이러한 미적 속성은 작품과 단 순한 물리적, 지각적 대상을 구별하는 맥락에서 언급되지만, 작품의 의미 해석에 관 련하여 본질적인 미적 속성을 보는 관점은 이론가들마다 부분적인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비어즐리와 같은 이는 미적 속성을 원칙적으로 지각가능하다고 보며, 미적 대 상의 감상에 적절한 것은 작품의 장르, 양식, 전후 작품들과의 관계이고 부적절한 것은 전기적 사실, 의도와 같은 것이라고 하여 작품 외적인 측면의 개입에 대해서 는 제한을 둔다. 비어즐리의 해석 관련 입장은 이 논문의 I장 2.1.1.에서 다룬다.

(Beardsley, op.cit. pp.52~53) 그러나 미적 속성에는 작품 내에서 확인되는 지각 적 속성뿐 아니라 관계적 속성도 중요하게 포함된다며, 이러한 관계적 속성을 함께 주장하는 이들도 다수이다. 작품의 표현적, 재현적 속성들은 예술사, 양식적 상황, 작가의 창작 맥락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월하임(Wollheim, Richard. Art and Its Objects,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0. pp.45~63.), 비평과 미적 판단은 작품의 기원에 관한 지식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고 하면서 다양한 미적 속 성의 종류 및 비미적 속성과의 여러 관계를 언급한 월튼 등의 이론가에게서 이러한 관계적 속성의 상대적인 강조를 확인할 수 있다. 월튼은 장르, 범주, 역사적 조건 등을 고려해야 하며 작품의 올바른 미적 지각을 위해서는 역사적 배경과 작가의 의 도를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작품 자체만의 탐구는 아무리 철저하더라도 작품 의 미적 속성을 완전히 드러내지 못한다고 말한다. (Walton, Kendall L.

"Categories of art." Contemporary Philosophy of Art : Reading Analytic Aesthetics, John W. Bender & H. Gene Blocker ed., Prentice Hall, New Jersey, 1993, p.283, pp.293~297.) 이러한 견해는 단토, 레빈슨, 스테커 등의 입장에서도 확인된다. 앞으로 살펴볼 작품과 텍스트의 관계에 대한 입장들과 관련 하여 볼 때 미적 속성들 중 관계적 속성을 작품 정체와 해석적 의미 결정에 있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다양한 입장들의 세부적인 차이를 낳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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