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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참(truth-like)이라는 진리값의 의미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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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마골리스의 이론에 대한 비판과 논쟁들

2. 상대주의와 다치 논리의 문제

2.2. 다치 논리의 적절성과 상대주의 논리의 필요성

2.2.2. 유사-참(truth-like)이라는 진리값의 의미와

다음으로는 두 번째 문제, 그럴듯함과 같은 약화된 진리값이 해석에 있 어서 필요한지의 문제를 살펴보겠다. 스테커와 데이비스는 양립불가능한 해석들을 인정하는 경우에라도 다치 논리를 진리값으로 인정하지 않는 다. 그들이 이치 논리를 고집하는 것은 다치 논리가 진리 주장으로서 적 절하지 못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데이비스는 이치 논리의 범 위 안에서 제 3의 항으로 후퇴하고 스테커는 진리 주장이 필요하지 않 다고 보는 쪽으로 후퇴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전략은 상대주의에 대 한 직접적인 논박이 되지 못한다. 그들이 이렇게 해서 유지하고자 하는 참인 해석들의 위상은 제한적이거나 사실상 상대적으로 약화된 참이라고 할 수 있고, 그들 또한 다치 논리의 부적절성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있 지도 못하다. 여기서는 진리값의 문제에 있어 보다 전통적인 방식을 선 택하면서 마골리스의 전략을 비판하고 있는 스테커의 입장을 중심으로 검토할 것이다.

스테커는 단 하나의 참인 해석을 인정하면서, 다른 해석은 ‘수용가 능’한 것으로서 진리값이 적용되지 않는 진술로 말하고 있다. 스테커는

참과 유사한, 약화된 진리값은 진리값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 면 먼저 마골리스가 왜 양립불가능한 해석에 진리값을 굳이 부여하려고 하는지를 살펴보아야 할 것인데, 그것은 마골리스가 해석적 주장을 기본 적으로 진리 주장으로서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골리스는 “양립불가능하 면서 합당한 해석들은 충실한 진리 주장으로 생각되고, 상대주의의 장점 은 양립불가능하면서 진리 주장으로 여겨지기를 원하는 판단에 대해 최 대한 강한 유사 진리값을 제공할 수 있는 것”209)이라고 하면서 진리 주장은 이치 논리의 맥락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마골 리스는 다원론자로서 새로운 해석들의 출현과 귀속을 적극적으로 설명하 고자 하지만, 그의 우선적인 관심사는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해석이 아니 라, 적절한 해석들로 수립되는 해석들이 어떻게 타당성을 검증받고 작품 에 귀속되며, 작품의 이력과 함께 지속되는가의 문제임을 이미 확인했 다. 양립불가능한 해석도 관행 속에서 지지되고 타당성을 부여받기에 진 리값을 할당하는 것이다. 마골리스가 “이치 논리와 다치 논리는 연합하 여 사용될 수 있다”210)는 것은 나름의 타당성을 가진 모든 해석들을 작품에 대한 적절한 해석으로서, 거짓된 해석과 구별되는 것으로서 정립 하기 위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스테커와 마골리스의 차이점은 무엇보다도 진리값을 적용하는 해석들의 범위이다. 스테커는 참인 해석을 하나로 수렴될 수 있는 것으로, 다른 해석들에 대해서는 진리값과 무관한 수용가능한 해석들로 보고 있는 데 비해, 마골리스는 기술에 참/거짓의 값을, 해석에 대해서는 광범위하게 그럴듯함이라는 참과 유사한 진리값을 적용한다. 스테커의 다원론은 일 원론의 전통적인 이상을 반영하면서 다양한 해석을 수용하고자 하는 것 인데 비해, 마골리스의 입장은 해석 문제에 있어서 익숙하지 않은 다치 논리로 인해 상대주의에 대해 갖는 불편함을 상기시키는 듯 보인다. 그 러나 필자는 스테커가 말하는 ‘수용가능성’이 사실상 마골리스의 ‘그 럴듯함’과 같은 유사 진리값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209) J. Margolis, "Plain talk about interpretation on a relativistic model." JAAC 53:1, 1995, pp.2~3.

210) Margolis, "Plain talk about interpretation on a relativistic model." p.2.

스테커는 기원과 맥락에 기반한 참인 해석 외에, 특별한 의미를 밝혀 감상을 증진시키거나, 작품의 미적 가치를 최대화하거나, 텍스트를 근거 로 하여 새로운 의미를 생산해내거나 하는 해석들을 ‘수용가능한 (acceptable)’ 해석211)으로 말하고 있다. 스테커에게서 참인 해석은 그 수용가능한 해석들 중에 하나가 된다. 스테커는 “해석이 참일 것은 수용가능성을 위한 필요조건이 아니어서, W가 p임을 주장하는 해석과 W가 p가 아님을 주장하는 해석 모두 수용가능하다”212)고 말하고 있는 데, 마골리스는 여기서 스테커가 수용가능한 또한 참이거나 혹은 참과 유사한 진술이기를 목표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하면서213) 스테커의

‘수용가능성’을 모종의 진리값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마골리스의 지 적은 온당하다. 수용가능성을 진리값과 전혀 무관한 것이라고 스테커는 주장하지만, 그 해석들이 그 작품에 대한 해석으로서 수용가능하다는 것 은 수용가능한 기준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스테커는 그 수용가능성의 조건에 대하여 “어떤 해석은 그것이 수용가능성의 합법적인 기준을 만 족시킬 때 수용가능하고, 수용가능한 합법적인 기준은 다수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수용가능성의 조건은 해석이 참일 것을 포함해 참과 무관 하게 다른 해석적 목적들도 합당한 것으로 인정된다면 가능하다. 스테커 에게 있어서 해석을 참으로 만드는 것은 기원과 맥락에 의한 것으로 제 한적이었지만, 새로운 해석의 관점이나 시점, 새로운 해석의 관습이나 통용되는 기준이 기원과 맥락과 무관하게 합당한 것으로 인정될 수 있을 것이고, 작품의 가치 개념과 관련하여 변화하는 기준들도 그 수용가능성 의 기준이 될 것이다.

211) 먼저 스테커가 말하는 수용가능한 해석들이 마골리스가 말하는 그럴듯한 해석들과 그 범주나 성격상 일치하는지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마골리스의 경우 가치가 강 하게 개입되거나 생산적인 해석을 고무하는 것보다는 문화적인 맥락에서 표준적으 로, 구성원들의 동의에 의해 성립되는 참과 유사한 옳은 해석에 우선 관심을 두고 있기는 하지만, 스테커가 말하는 해석의 목적들과 가치가 공동체 내에서 통용되고 해석자의 관점으로서 합당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면, 마골리스의 이론적 틀의 포용 력을 감안할 때 수용가능한 해석으로서 말하고 있는 해석들 모두를 마골리스가 말 하는 그럴듯한 해석으로 생각하여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212) Stecker, Robert. "Incompatible interpretations." JAAC 50:4, 1992, p.294.

213) Margolis, "Plain talk about interpretation on a relativistic model." p.6.

더욱이 스테커는 양립불가능한 해석들을 수용가능한 해석들로 말하고 있다. 스테커는 ‘수용가능함’이나 ‘그럴듯함’은 진리값이 아니라고 여기기에 일견 모순을 피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마골리스의 입장에서 본 다면 이것은 진리 주장으로서의 해석의 위상을 그만큼 약화시키는 것이 다. 마골리스가 수용가능성과 같은 것을 진리값의 형태로 보고자 하는 것은, 어떤 해석이 해당 작품에 올바르게 귀속될 수 있으려면 작품의 의 미나 작품에서 확인되는 바에 대한 주장을 담고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 조하는 것이다. 엄격한 참으로 말할 수 없는 것은 문화상대적인 측면 때 문에 고정된 기준을 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편 스테커가 이 술어들을 진리값이 아니라고 보는 것은 참/거짓의 명 쾌한 이치 논리를 고수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마골리스와 스테커의 입장 차이는 진리값의 관념을 둘러싼 견해의 차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여기서 이론적 일관성과 효용의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스테커는 이 치 논리를 그의 이론의 일부분에 국한하여 적용하고 있는데, 스테커가 수용가능성을 진리값으로 보지 않는 것은 고전적인 이치 논리의 기준에 서이지만, 그는 또한 수용가능성의 개념 자체는 프래그머티즘에서 진리 와 객관성을 말하는 방식과 같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스테커는 속성 실재론을 근본적으로 견지하고 있지만, 해석의 수용가능성은 상대적이고 수많은 해석적 목적에 따른다고 인정하는 것에서 스테커는 합리적으로 동의된 가치의 기준, 믿음의 방식, 그것이 해석의 합법성을 보증한다는 프래그머티즘의 사고를 긍정적으로 수용한다. 마골리스의 ‘그럴듯함’

과 스테커의 ‘수용가능성’은 이러한 점에서 분명히 같은 종류의 것이 라고 할 수 있고, 상대주의적 논리와 이치 논리는 양립가능하며 적용 영 역을 달리한다는 마골리스의 입장과도 사실상 다르지 않다. 스테커는 해 석 문제에 있어서 마골리스의 상대주의 논리를 비판하고 있지만, 마골리 스의 전체 철학이나 형이상학적인 측면까지 비판하고 있는 것은 아님을 밝히고 있고214) 해석에 있어서 이치 논리가 합당한가 다치 논리가 합당 한가의 문제에 대해서는 논의의 여지를 남겨 놓는다.215)

214) Stecker, Artworks, p.228.

215) Stecker, Artworks, p.230. “이치 논리 안에서는 양립불가능한 해석적 진술들에

따라서 다치 논리에 대한 방어와 옹호와는 별개로, 스테커의 비판에서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스테커와 마골리스 간에는 근본적으로 중요한 입장의 차이가 있고 상호 비판은 그 점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스 테커가 수용가능성을 진리값의 견지에서 말하고자 하지 않는 것은, 한편 으로 그가 수용가능성의 기반은 진리 조건적이거나 형이상학적이기보다 는 인식론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216) 스테커가 이것들을 인 식론적인 술어라고 말하는 이유는, 그는 존재론적으로는 예술작품의 고 정불변의 속성을 지지하기 때문이다. 스테커가 창작의 기원에 근거하여 참인 하나의 해석을 도출한다는 것을 상기하면217) 스테커는 작품에 본 질적이고 결정적인 속성들이 해석적 참과 거짓을 결정하는 근거라고 생 각하는 것이다. 반면 마골리스는 특정한 작품 안에서 결정적이고 고정적 인 속성과 그렇지 않은 속성을 경계짓는 기준을 제공하는 것이 원칙적 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스테커는 참인 해석을 말하면서 결정적인 사실들, 해석들이 밝히고자 하는 것들을 향하지만, 마골리스가 해석에 있어서 참보다는 그럴듯함을 선호하는 이유는 그 속성들의 비결정성 때 문이다.

관해. 따라서 비평적 해석을 진술적 행위로 고려하기 위해, 해석을 주장으로 간주 하기 위해, 해석적 지식을 진술에 대한 일차적 지식으로 간주하기 위해 다치 논리 로 이행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해석을 오직 그럴듯함, 적합함 등을 주장하는 것으 로서 받아들여야 하는가, 아무것도 덧붙이지 않은 참 그대로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는 열린 문제로 남아 있다. 해석에서 주장된 의미가 해석적 과정에 의해 구성되는 지 여부도 여전히 열린 문제이다. 만일 그렇다면, 이 과정에서 공동체의 역할은 무 엇인지의 문제도 열린 문제이다.”

216) Stecker, Artworks, p.229.

217) 스테커는 해석의 대상은 인간의 사고의 대상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것이지 만, 우리는 종종 인식과 독립된 대상, 다양한 참인 진술을 가지는 실제 대상들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는 실재론적 입장을 견지하고자 한다. 독립된 대상을 상정하 면서 우리는 이제 이 대상에 대해 어떻게 알게 되었는가의 문제를 논의하게 되는 것이고, 대상의 본성 중 일부는 인간의 사고와 독립되어 있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스테커는 이러한 속성들이 인간이 창조하지 않고는 존재하지 않아도, 그들은 다른 인간들에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그들이 속한 공동체와도 독립되게 존재한다고 주장 한다. 이러한 생각은 이 대상들이 해석자 및 해석자가 그가 속한 공동체에 대해 가 지는 다양한 관계에 그 존재를 의존하는 많은 속성들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Stecker, Artworks, p.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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