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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 대상에 있어서의 상대주의 논리의 적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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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마골리스의 이론에 대한 비판과 논쟁들

2. 상대주의와 다치 논리의 문제

2.1. 해석의 문화적 상대성

2.1.2. 문화적 대상에 있어서의 상대주의 논리의 적합성

유지한다.

이러한 비어즐리의 주장은 두 가지 측면에서 반론에 직면하게 된다. 우 선 비어즐리가 주장하는 적격성은 대상의 객관적 성질이 아니라 문화 상 대적인 것이라는 점, 두 번째는 비어즐리가 공격하고 있는 상대주의는 마골리스가 말하는 강건한 상대주의를 오해한 것이라는 점이다.

러한 토미의 비판은, 비어즐리의 객관주의도 결국은 문화 상대성을 완전 히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을 일깨운다.

다음으로 상대주의의 비판에 대한 마골리스 본인의 답변을 살펴보겠다.

우선 마골리스는 자신의 상대주의가 프로타고라스식의 불건전한 상대주 의는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함으로써, 비어즐리의 공격을 일차적으로 방 어한다. 마골리스의 요지는 비어즐리가 공격하는 상대주의와 자신의 상 대주의는 다르다는 것이다. 비어즐리가 말하는 상대주의의 규정, ‘작품 x는 좋은 y이다’에 대한 판단이 상충될 경우 특정 사회나 집단을 의미 하는 변항 z를 추가하여 ‘작품 x는 z의 관점에서 좋은 y이다’라는 것 은 전통적인 프로타고라스적 상대주의190)이다. “프로타고라스에게

“참”은 “X에게 참”을 의미한다. 이 때 참은 본질적으로 상대적인 관념이고, 우연적으로 단지 이 사람 저 사람에 의해, 다른 시간의 동일 인에 의해 참으로 드러나거나 믿어지는 것들이다...만일 그것이 상대주의 가 귀결된 바라면, 확실히 상대주의는 극복불가능하게 자가당착적이기 때문에 부적절하다”191)고 말하면서 프로타고라스식의 상대주의에 대한 전통적인 비판을 수용한다. 그러면서 마골리스는 프로타고라스적 상대주 의는 문화적 상대성에 관련되는 것이고, 단지 일차적인 사실일 뿐인 문 화적 상대성만으로 상대주의의 타당성을 판단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 한다. 마골리스는 자신의 상대주의가 “참”이 경우에 따라 누구에게 참

190)WWA, pp.44~45. 상대주의에 대한 전통적인 반대의 표적이 된 것은 프로타고라스 의 상대주의였고, 그 전제가 된 것은 본질주의였다.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는 말로 대표되는 프로타고라스의 상대주의는 “참”이란 것이 절대적인 참이 아니라

“x에게 있어서 참”이라는 상대적인 교의를 강조했다. 이러한 상대주의가 비판받 은 것은 상대주의가 일관성을 유지할 수 없고 자가당착적이라는 점이었다. 이치 논 리만이 적절하다고 주장하는 아리스토텔레스 이래의 생각에 깔려 있는 것은 실재 에 대한 본질주의적 관점이 전제된다고 지적한다. “실재에 관해서 오직 어떤 형태 의 이치 논리만이 일관되고 적절하게 봉사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 이것은 정확 히 아리스토텔레스가 『형이상학』에서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마골리스가 여 기서 지적하는 것은 이제 불변하는 세계, 예외 없는 법칙이라는 것이 없이 문화적 현상들은 물론 자연 법칙들까지도 “관찰된 세계의 불완전하고도 비공식적인 법칙 성으로부터 나온 모종의 관념화 혹은 인공물”이라는 것이다.

191)WWA, pp.54~55.

으로 간주되는 문화적 상대성의 차원에서 참을 말하는 프로타고라스적 상대주의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마골리스의 상대주의는 문화적 상대성에 서 한 발 더 나아가, 문화권별로 다른 문화적 현상들에 접근하는 관점의 합법화에 관한 것이다. 즉 우리가 무엇을 “참”으로서 진술할 때는 재 현적, 표현적, 상징적, 양식적 특징들과 같은 문화적 변수를 고려해야 한 다는 것이다. “내가 ‘문화적 상대성’으로써 의미하는 것은 다른 사 회들이 다른 역사, 언어, 관습, 가치, 이론 등을 갖는다는 평범한 사실에 지나지 않는다 .... 문화적 상대성이란 주제는 일차적 사실의 문제인 반 면, 상대주의자들의 테제는 이차적 합법화의 문제이다.”192) 언어와 문 화, 관습 등이 다르다는 것은 단지 일차적인 사실의 문제이지만, 상대주 의의 문제는 이차적인 차원에서 방법론의 합법성과 관련되며, 상대주의 의 논리가 어떤 영역의 탐구에 있어서는 이치 논리보다 더 잘 들어맞는 다는 것과 관련된 철학적인 문제이다.193) 그런데 여기서 마골리스는 상 대주의의 적용의 문제는 또한 참이나 지식의 문제와는 별개의 것이라고 선을 긋는다. 마골리스는 상대주의를 옹호하지만, 참이나 지식의 개념 자체가 상대적인 것이라고까지 주장하지는 않는다. 마골리스는 참과 진 리 주장을 구별한다.194) 참과 지식의 관념은 절대적인 것이지만, 실제로 우리는 상대주의적으로 세계를 인식할 수 밖에 없기에 진리로 간주되는 것, 지식으로 간주되는 것은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것이 아니며, 객관적 진리와 지식의 개념은 역사적으로 형성되고 상대화된 역사의 산물이라는 것이다.195)

192)WWA, p.53.

193)WWA, pp.53~54.

194)WWA, p.53. “참인 것은 또한 다른 민족들 사이에서 다르거나, 지식은 다른 민족 들 사이에서 다르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 ..실질적으로 참인 것으로 주 장되는 것은 의심없이 다른 문화적 기원들에 따라 다를 것이다. 그러나 참과 지식 은 모순을 감수하고 문화적으로 다양한 것으로서 해석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올바르게 참인 것은 또한 올바르게 거짓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기 때문이 다. 이것이 참과 진리 주장 사이를 구별하는 이유이다.”

195)WWA, p.54. 마골리스는 자신과 같은 상대주의의 입장으로서 쿤과 푸코의 관점을 든다. “쿤과 푸코가 주장한 것은 우리가 지식과 진리로 간주하는 것들, 즉 합법화 된 개념들이, 사회들마다 다르게 축적된 일차적인 사실들과 똑같이 역사의 인공물 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더 이상 단순한 문화적 상대성이 아니라 상대주의를

이제 남은 문제는 양립불가능성의 문제가 쉽사리 해소되지 않는다는 것, 문화적 영역에서는 왜 상대주의가 적절한 논리인가에 대한 입증, 그 리고 자신의 상대주의가 불건전하지 않다는 것을 보이는 것이 된다.

앞의 두 가지 문제에 대해서는 문화적 속성의 지향적 속성을 다시 환기 할 수 있다. 문화적 속성은 우연적으로 귀속될 수 있고, 작품 내적인 고 정불변의 속성에 의해 해석적 의미의 타당성이 결정되지 않으므로 양립 불가능한 속성의 귀속이 가능하다. 이러한 지향적 속성과 관련된 기술, 해석적 의미에 대해 이치 논리만을 적용할 수 없기 때문에 문화적 영역 에서는 상대주의적 논리가 적절하다. 여기서 마골리스가 강조하는 것은 이러한 상대주의적 논리는 혼란을 초래하거나 모순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과 자신의 상대주의적 주장은 단지 진리적(alethic) 측면만이 아니라 존재론, 인식론적인 측면을 함께 결합하여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한 다.196) 즉 여기서 문화적이고 지향적인 속성을 마골리스가 실재적인 것 으로 간주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197) 즉 진리적 문제가 단지 형식 적 문제만이 아니라, 지향적 속성의 존재론적 특수성과도 관련된다는 점 이다. 마골리스의 지향적 속성은 가변적이지만 작품 속에 본질적인 것으 로서 실재하며, 해당 사회 안에서 인식론적으로 식별가능한 것이다. 이 때 양립불가한 해석들은 각기 다른 속성들에 근거하게 되고 그 속성은 실재적인 것으로서, 그 귀속의 타당성은 해당 사회의 관습과 동의를 충 분히 얻은 것이다. 마골리스가 여기서 상대주의적 논리가 적합하다고 하 는 것은, 마골리스에게서 양립불가한 해석들의 타당성을 따지는 것이,

형성하는 상대성, 진리 필연적이고 존재론/인식론적 문제들을 연합한 것이다.”

196) 여기서 ‘진리적(alethic)’이란 말로서 마골리스가 의미하는 것은 진리값과 유사 진리값의 사용에 관한 선택, 할당된 의미, 형식적 제한에 관계된 문제이다. ‘인식 론적’이라는 말로서 의미하는 것은, 탐구의 영역에 진리값들을 귀속시키기 위한 적절한 증거나 근거에 관한 문제이다. ‘존재론적’이란 말로서 의미하는 것은, 세 계의 어떤 부분에 대해 추정되는 구조나 속성들에 관한 것이다. (HTCW, p.66) 197) WWA, pp.49~50. “나는 문화적 개체를 “실재론적” 방식으로 다룬다. 즉 달리

말해 그들이 실재이고 그 속성들이 식별된다고 말할 수 있는 것과 같이 다룬다. 이 러한 의미에서, 실재론은 이치 논리와 상대주의적 논리 사이에서 중립적이다...만일 진리적 문제가 예술의 존재론과 해석의 인식론에 관한 설명에서 분리된다면, 그 전 체적인 문제는 그다지 가치가 없는 것이다.”

그 중 하나를 참인 것으로 확립하여 다른 한 쪽을 거짓인 것으로 입증하 기 위함이 아니라, 동등한 타당성을 가질 때 그 양쪽을 모두 인정하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보듯 마골리스의 상대주의는 양립불가능한 타당한 해석들의 문제를 설명할 때 가장 유용하다. 그리고 마골리스의 상대주의가 불건전 하지 않은 두 번째 이유는 앞에서도 보았듯, 마골리스가 이러한 상대주 의로써 이치 논리를 완전히 대체하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골리스 는 상대주의가 이치 논리와 양립가능하며, 그 두 논리가 적용되는 영역 이 다르다고 주장한다. 즉 이치 논리가 적용되는 영역은 고유하게 인정 되면서 상대주의가 변통적(ad hoc)으로 양립된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마골리스는 기술의 영역에는 이치 논리를, 해석에 있어서는 경우에 따라 이치 논리와 상대주의 논리를 모두 적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나의 관점에서는 해석에 관한 상대주의는 어떤 ‘기술적’ (심지어 어 떤 ‘해석적’) 속성 귀속을 이치 논리적으로 다루는 것이 금지되지 않 는다”198)고 말하고 있다. 다만 마골리스는 이 참인 해석이 어떠한 해

198)WWA. p.49. “이것이 예컨대 햄릿의 우유부단함을 말할 때와 같이 익숙한 예술작 품들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 이치값과 상대주의적 값의 비공식적이고 상대적으로 변통적(ad hoc)인 혼합을 인정함에 있어서 내가 염두에 두고 있는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충분히 인정하는 것은 해석적 맥락에서 이치값의 적용에 있어 선행 적으로 고정된 일반적 범위를 승인하는 쪽으로 조금도 나아가지 못하고, 우리는 기 술과 해석 간의 올바른 관계가 예술작품이 무엇인지에 관한 우리의 이론에 의존함 에 따라서 우리가 이해해야 하는 것으로도 나아가지 못한다. 물리적 대상에 대해 말할 때 그 사물이 유비적으로 어떻게 되어가는가에 호소함으로써 결정할 수 없는 것은 확실하다. 이것이 종종 간과된다.”

이 인용문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면 다음과 같다. 예컨대 발자크의 작품 <사라진 느>에 대해 바르트 식의 “저자적 읽기”와 “독자적 읽기”는 다른 독해 방식으 로서 양립가능하다. 이 때 독자적 읽기에 의해 발자크 작품에 대한 표준적 해석에 대해 이치 논리가 적용된다면, 저자적 읽기에 의한 새로운 해석에 대해서는 상대주 의적 진리값이 적용될 것이다. 이 두 해석의 성격이 다르고 이치값과 상대주의적 진리값이 적용되는 영역으로 구분이 가능하다. 마골리스는 이러한 점에서 해석에 이치값과 상대주의적 진리값 모두 적용될 수 있고 두 해석이 양립가능하다고 말하 는 것이다. 그러나 마골리스가 덧붙이고 있는 것은 이 때 두 영역이 개념적으로는 구별된다고 해서, 구체적으로 그 두 영역의 경계를 제시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 치값이 적용되는 것은 상대적으로 객관적인 기술, 해석에서도 상대적으로 고정적으 로 여겨지는 속성에 근거한 해석들일 것인데, 마골리스에게서는 본질적 속성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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