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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건한 상대주의와 다치 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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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마골리스의 예술작품 존재론과 해석 이론

3. 마골리스의 해석 이론

3.2. 강건한 상대주의와 다치 논리

석적 자유를 우선적인 가치로서 옹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계속 새롭게 출 현하는 해석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작품과 관계 맺으면서 작품과 그 작품 의 해석에 대한 하나의 이력으로서 영향력을 얻고 있는 실제 관행을 진 지하게 고려하는 것이다. 마골리스가 추구하는 해석 이론은 현재의 해석 적 관행을 잘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며, 마골리스는 해석이 해석자가 속 한 특정 문화권의 관념이나 세계관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 객관적인 해 석으로 주장되는 것들이 사실은 본질주의적으로 정당화된 것이 아니라 상대적이라는 것, 그리고 새로운 관점들이 출현하고 그것에 따른 새로운 해석들이 환영받고 작품의 이력에 포섭된다는 것에 주목한다.112) 필자 는 예술작품과 해석에 대한 마골리스의 이론은 이러한 관행에 비추어 타 당성을 주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존의 본질주의적 해석 이론들이 이러한 점을 적절하게 포괄적으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 있기에 그것에 비해 마골리스의 강건한 상대주의가 상대적인 이론적 장점을 가 진다는 것에 필자는 주목한다. 다음 절에서 이것을 자세히 살펴보겠다.

전통적인 토대론적 해석 이론에서는 본성이나 속성과 관련된 작품 의 미, 관련된 진술은 참 혹은 거짓의 진리값을 가지는 것으로 생각된다는 것을 앞 장에서 보았다. 해석과 해석이 아닌 것, 참인 해석과 참이 아닌 해석은 분명하게 구별된다. 그러나 마골리스는 텍스트, 예술작품, 역사적 서술, 역사 자체, 사람 자신과 같은 문화적/지향적인 현상의 영역에서는 이치 논리와 배중률만을 주장한다면 언제나 실패할 수 밖에 없다고 주장 한다. 마골리스에게서 예술작품과 같은 문화적/지향적인 현상들은 본질 이나 고정된 속성이 없고 오직 역사만을 가지며, 속성의 변화로 인해 존 재론적으로 혼잡하고 비결정적인 것들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것에 대 한 인식도 투명하지 않기 때문에 마골리스가 보기에는 토대론적 해석 이 론에서처럼 고정불변의 속성에 적합한 이치 논리를 고수하는 것은 부적 절한 것이다. 마골리스에게서 해석은 그 본성들에 대해 사실상 잠정적인 결정성과 시간에 따라 진화하는 역사를 부여하는 것일 뿐이고 따라서 해 석은 지식이나 진리 추구가 아닌 부여와 구성의 행위로서 근본적으로 맥 락이나 관점에 따라 상대화된다. 이 때문에 마골리스의 입장은 상대주의 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사실 상대주의(relativism)는 전통적인 철학적 논의에서는 일반적으로 상당히 기피되는 입장이다. 상대주의는 전통적으 로 자기논박성, 건전성과 관계되어 비판받아 왔고 해석에 관한 여러 이 론들에서도 선호되지 않지만, 마골리스는 드물게 상대주의를 진지하게 고려하며, 그것도 비교적 강한 형태인 강건한 상대주의(robust relativism)를 옹호한다.

마골리스의 상대주의는 판단들은 오직 하나의 원칙하에서만 타당하게 지지될 수 있다는 보편주의를 거부하며, 어떤 판단도 원칙적으로 타당할 수 없다는 회의주의도 거부한다. 여기서 핵심적인 것은 마골리스가 서로 수렴하지 않고 양립불가능한 해석들도 모두 허용한다는 점이다. 해석의 상대주의는, 상대주의적인 근거에서 해석에 진리치를 할당하며 이 때 양 립불가능한 해석들은 서로 경쟁적인 원칙들 각각에 의존한다. 여기서 어 떤 원칙에 의거하는가에 따라서 한 해석은 참이기도 하며 동시에 거짓이 될 수 있다는 모순이 발생하는데, 마골리스는 이에 대해 “상대주의적인

판단들은 참이나 거짓과 같은 진리값을 결여하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 고 참/거짓과는 다른 종류의 값들을 가진다. 예컨대 “그럴듯함 (plausibility, probability)”와 같은 종류의 값은 참/거짓의 이치논리에 서는 양립불가능했을 해석들을 양립가능하게 만든다”114)고 말하면서 해석의 진리값으로서 참/거짓과는 다른, 보다 약화된 종류의 진리값을 주장함으로써 이 문제를 피하고자 한다.

이러한 점에서 마골리스는 스스로 자신의 입장을 강건한 상대주의라고 하면서 약한 상대주의와 구별한다. 그는 “서로 다른 문화권의 관습에 관한 판단 등과 같은 경우 그 관습을 정당화하는 판단의 원칙은 해당 문 화권 안에서 찾아야 하듯, 판정의 원칙들이 판단 내에 이미 있으며 각 원칙들이 서로 영역이 달라서 교차하지 않고 단지 별개의 기준만으로 작 용한다면 약한 상대주의이다. 이에 비해 강건한 상대주의는 동일한 텍스 트나 예술작품에 대한 해석과 같이 같은 영역 내에서 서로 다른 근거를 가지고 동일한 정도로 타당하며 서로 양립불가능한 판단들을 모두 인정 하고자 하는 것이다”115)라고 말한다.

114) J. Margolis, 'Robust Relativism'(이하 RR), Intention and Interpretation, G.

Iseminger ed. Temple University Press, 1995, pp.41~44. 여기서 유념할 것 은, 해석적 진술에 대해 마골리스가 다치 논리를 도입하는 것은 단지 삼치 논리적 해결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삼치 논리는 비결정적인(indeterminate) 제 3의 값을 이치값의 쌍에 부가하는 것이다. (HTCW, p.68)

115) J. Margolis, RR, pp.41~44. 약한 상대주의와 강건한 상대주의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말할 수도 있다. 약한 상대주의에서는 참이 ‘true-in-L’의 형태와 같이 조건제한적인 것이다. 이 때의 L은 잘 구획된 언어 혹은 세계, 탐구의 영역, 역사 적 지평, 어떤 맥락 등이 해당된다. 한편 강건한 상대주의는 참을 이러한 상대적인 제한이 없는 것, 즉 참을 비상대적인 논리에서와 같은 진리적 의미를 가지는 것으 로 다룬다. 마골리스는 자기 논박적이라는 이유로 전통적으로 비판받아온 상대주 의는 약한 상대주의와 같이 진리를 상대적으로 다루는 형태임을 강조한다. 이것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테아이테투스>에서 프로타고라스를 공격한 핵심이며, 퍼트넘과 같은 현대의 상대주의 반대자들 역시 이 점을 비판의 핵심으로 한다. 그 것은 참의 문제에 있어서 약한 상대주의가 다양하게 상대화된 수많은 참들을 낳게 되기 때문이다. (HTCW, p.69)

마골리스는 두 종류의 상대주의를 구별한 후에, 강건한 상대주의의 필요충분조건 을 다음과 같이 든다. 1) 회의주의와 보편주의에 대한 거부 2) 판단들은 참/거짓 이 아닌 다른 값을 가지며 수렴하지 않는 판단들도 포함된다는 것 3) 인지주의 (cognitivism)의 거부, 여기서의 인지주의란 판단들이 의존하는 속성들에 대해 그

이러한 마골리스의 입장은 해석적 다양성과 의미 변화 가능성을 이론 안에 수용하고자 하는 강한 의욕을 보여준다. 이를 위해 마골리스는 실 제로 작품 해석에 있어서 참/거짓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부분들에서 발생 하는 논리적인 곤란함을 피할 수 있는 가치값을 선택한다. “그럴듯함 (plausibility)”, “적합함(aptness)”, “합당함(reasonableness)”과 같은 약화된 진리값들은 해석적 판단에 신빙성을 실어 주면서도 이론적 인 유연성에 공헌한다. 해석에 이러한 가치값들을 적용시킴으로써 마골 리스는 “해석의 대상이 되는 작품은 타당하고, 객관적이고, 설사 양립 불가능한 경우가 있을지라도 다수의 해석을 지속적으로 가질 수 있다”

고 주장한다.116) 명쾌한 이치 논리를 추구하는 입장에서는 “그럴듯 함”과 같은 진리값은 그 자체가 단일하고 완전한 해석의 포기에 다름 아닌 것으로 보일 것이나, 마골리스는 설사 한 가지로 해석을 수렴시킬 수 있는 경우가 있다고 해도 해석 자체는 일반적으로 참/거짓과 같은 진 리값만을 가질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어떤 작품에 대해 양립불가능하면 서 타당한 두 해석은 각각 그럴듯한 해석이며, 그 그럴듯함은 역사적 맥 락이나 다른 정보를 고려하여 정립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마골리스가 결과적으로 해석 자체 및 작품에 귀속시키는 역사적/맥락적인 속성들의 타당성의 한계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가 부정적인 것이거나 상대주의의 큰 약점이라 고 그는 생각하지 않는다. 마골리스는 역사적으로 변화하는 지향적 속성 들을 가진 문화적 개체를 참/거짓의 진리값의 측면에서 판단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저자나 예술적 의도, 텍스트적 의미, 역사 적 에토스, 장르, 구문, 전기, 맥락, 규칙 혹은 해석의 관행, 규범 등 그

것을 파악할 수 있는 인지적 능력(예컨대 지각과 같은 것)이 있고 그것이 정상적 으로 작동한다면 그 속성들이 있는지 여부를 판별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4) 경쟁 적인 원칙들이 공동으로 관련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그것이다. 3), 4) 는 결국 앞의 두 조건에 함의되어 있다. 다만 3)의 인지주의의 거부에 관해 덧붙 이면, 마골리스도 귀속된 지향적 속성이 식별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에 인지주의적 인 측면이 있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여기서 마골리스 본인이 거부하는 인지주 의는 토대론적인 객관적 미적 속성과 그것을 특수하게 지각하는 방식에 대한 관 점, 시블리나 올드리치의 관점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16) J. Margolis, ' "One and Only One Correct Interpretation" ', p.27.

어떤 것도 단일하고 정확한 해석적 테제가 옳다는 것을 강력하게 지지하 지 않는다고 본다. 따라서 마골리스는 그의 상대주의가 결정적으로 논박 될 수 있는 근거가 없다고 보며117) 이렇게 약화된 진리값을 추구하는 것이 비평가 입장에서 인지적인 권위를 잃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해 석에 대한 마골리스의 상대주의적 입장은 사실적 진술의 참/거짓에 대해 상대적으로 논리적으로 취약하다는 점은 있으나, 비평적 관행의 다양성 과 중요한 특징들을 설명하는 데 유용하고, 풀리지 않는 비평적 논쟁들 을 해석적 허무주의나 회의주의에 빠지지 않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는 장점이 있다고 평가받아 왔다.118)

여기서 유념할 것은, 앞에서도 보았듯 마골리스가 이러한 상대주의적 논리를 옹호한다고 해서 이치 논리를 완전히 폐기하고 모든 해석에 상대 주의적 논리만을 적용하려고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일관되게 모든 것을 포괄하는 이치 논리로부터 출발할 수 없다는 어떤 증거도 없고, 이 치 논리와 상대주의적 논리 양자를 사용하는 데 대해 반대할 이유도 없 다 .... 이치 논리와 상대주의적 논리는 양립가능한 상태이고 때로 변통 적(ad hoc)인 방식으로 연합되어 사용될 수 있다. 그 적용이 적절히 분 리되고, 이치 논리와 다치 논리가 적용되는 각 영역과 적절한 제한들이 주어질 때에 그러하다.”119)고 마골리스는 말하고 있다. 마골리스에게서 상대주의는 전통적인 이치 논리와 양립할 수 있고, 상대주의 논리와 이 치 논리는 필요에 따라서 적절한 영역에 각각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마골리스는 이치 논리가 적용되는 영역을 인정한다고 해서, 이치 논리가 없으면 상대주의 논리가 무기력해지거나 부당한 결과를 낳게 되 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면서120) 상대주의는 이치 논리와는 독립적으로 나름의 타당성과 건전함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117) Ibid., p.38.

118) N. Carroll, ‘Myth and Logic of Interpretation’, Interpretation, Relativism and the Metaphysics of Culture, R. Shusterman & M. Krausz ed., Humanities Press International, 1997, pp.59~60.

119) WWA, pp.45~48.

120) WWA,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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