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A u g u s t
2017년 8월
2017. 8
편집위원
이 석 |선임연구위원 이종규 |연구위원 김규철 |부연구위원 김민정 |전문위원
명예편집위원 고일동 |촉탁연구위원
편집
최영윤 |전문연구원 나미나 |연구원 이우정 |연구원 한별이 |연구원 전은경 |행정원 전선미 |인턴
KDI 북한경제리뷰는
북한경제의 실태, 남북한 경제협력 및 경제통합과 관련한 주요 이슈를 분석⋅정리하여
정책당국자, 학계 및 업계 등의 이해를 높이고 정책방안을 도출하는 데 도움을 드리고자 월별로 발간되고 있습니다.
본 보고서의 내용은 출처 및 집필자를 명시하는 한 자유로이 인용할 수 있습니다.
전화번호 044-550-4086 팩스번호 044-550-4090
본 자료는
KDI 홈페이지(http://www.kdi.re.kr)로 접속하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23
북한 김정은 체제의 교과교육 동향 | 김진숙
연구 논문
47
동북아 안보질서 변화과정과 결정요인 분석 | 조남훈
북한경제연구협의회
89
동북아 국제질서의 변화와 우리의 대응전략: 안보분야에서의 변화를 중심으로
| 이석⋅조남훈⋅박인휘⋅신범철⋅이동선
부문별 주요 기사
(7월 1일~7월 31일)
113
대내경제, 대외경제
분석
북한 주민의 여가생활 조정아
북한 김정은 체제의 교과교육 동향 김진숙
1990년대 중반의 경제난과 뒤이은 자생적 시장화는 북한 주민들의 일상생활에 큰 변화를 초래하였다. 일반적으로 ‘일상’이란 특별한 사람들이 아닌 그 사회의 일반적인 개인 또는 집합적 존재가 영위하는 생활이며, 특정한 사건이 아닌 장기간 반복되는 생활이자, 목적의식적이 지 않으며 때로는 무의식적으로 진행되는 행위의 연속을 의미한다.1) 르페브르(2005)에 따르면, 일상생활은 크게 직업적인 일을 하는 시간인 ‘의무의 시간’, 교통, 교제, 수속 등의 일 이외에 잡다하게 필요한 시간인 ‘강제된 시간’, 그리고 여가시간인 ‘자유시간’으로 나눠진다.2) 우리는 여가시간을 통해 ‘의무의 시간’ 동안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고, 일과 사회적 관계의 수행과 유지에 필요한 에너지를 얻는다. 우리 삶에서 보이지 않는 많은 부분들이 여가시간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경제난과 시장화 이후 북한 주민들의 일상생활에 관한 기존 연구는 주로 노동과 조직생활, 의식주 및 시장활동에 집중되어 왔으나, 북한 주민들의 일하는 방식의 변화는 여가시간을 보내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다. 이에 이 글에서는 최근 북한 주민들의 최근 여가생활의 변화를 문화시설 확충, 여가생활의 다양화, 청년층의 여가생활, 전자기기의 진화와 외부문화 확산 등으로 나누어 살펴본다.
북한 주민들의 일상생활은 거주지역과 계층에 따라 상당히 다양한 양태를 보인다. 이 글에서는 김정은 집권 이후 시기에 평양시와 접경지역 도시 지역에서 거주했던 탈북자 10여 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심층면접 자료를 기초로 하여, 최근 북한 주민들의 여가생활에서 어떠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평양시는 북한의 수도로, 정치⋅경제적 측면뿐만 아니라
* 본고는 필자가 통일연구원에서 진행하고 있는 연구인 『북한 주민의 삶의 공간: 평양과 혜산, 두 도시 이야기』(2017년 12월 출간 예정)의 일부 내 용을 재구성한 것임을 밝혀둔다.
1) 조정아, 「북한의 교육일상연구: 과제와 접근방법」, 박순성⋅홍민 엮음, 북한의 일상생활세계, 한울, 2010, p.399.
2) H. 르페브르, La vie quotidienne dans le monde moderne, 박정자 옮김, 현대세계의 일상성, 서울: 기파랑, p.122.
북한 주민의 여가생활 *
1)
조정아 |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email protected]
사회문화적 측면에서도 북한의 중심이 되는 곳이다. 평양 주민들은 타 지역의 주민들에 비해 높은 사회경제적 지위를 가지고 있으며, 문화적 측면이나 여가생활의 측면에서도 상대적으로 많은 혜택을 누리고 있다. 양강도 혜산시와 함경북도 회령시 등의 접경도시는 경제난 이후 북중 밀무역을 통한 상거래 및 외부문물 유입의 중심지이며, 중국을 통해 들어오는 변화의 바람이 가장 먼저 일어나는 지역이다. 주민 인식의 변화가 가장 큰 지역이기도 하다. 평양시와 접경도시 주민들의 여가생활의 모습은 북한 주민들의 ‘평균적인’ 여가생활의 모습은 아니겠지 만, 북한 주민들의 일상생활의 변화 방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지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Ⅰ. 도시정비와 문화시설 확충
최근 몇 년간 김정은 정권의 정책 키워드 중 하나는 ‘인민생활 향상’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첫 번째 공식담화 “위대한 김정일 동지를 우리 당의 영원한 총비서로 높이 모시고 주체혁명위업 을 빛나게 완성해 나가자”에도 명시되어 있듯이 ‘먹는 문제’ 해결을 중심으로 하는 주민들의 생활수준 향상은 현재 북한사회의 핵심적인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주민 생활수준 향상의 일환으로 주거환경 개선을 비롯한 도시정비사업과 문화시설 확충이 이루어지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집권 이후 지속적으로 신년사를 통해 살림집 건설, 문화편의시설 확충 등 인민생활 개선 관련 사업을 강조하고 있으며, 평양시 고층 아파트와 은덕원 등 편의봉사시설, 주민문화시 설에 대한 현지지도도 활발히 수행하였다.
원산시, 신의주시, 혜산시 등 지방의 주요 도시에서도 공원, 유원지, 체육시설과 문화 및 편의 시설 건설과 리모델링이 이루어지고 있지만,3) 이러한 문화⋅편의 시설 확충은 주로 평양시에서 집중적으로 진행되었다. 평양에서는 김정은 집권 이후 몇 년간 아파트와 상가, 편의시설 건설 붐이 일어났다. 2012년 6월에 창전거리 주택단지, 2013년 9월에 은하과학자거 리, 2017년 4월에 여명거리가 완공되었고, 시내 하천정비와 녹화사업도 진행되었다. 창전거리, 여명거리 등지에는 서양식 고층건물들이 들어섰고, 특히 금년 4월 여명거리 준공식에는 외신 취재진을 초청하여 평양시 건설의 성과를 대외적으로 홍보하였다. 1년 여 만에 초고층 건물군의 아파트를 완공한 것을 두고, 북한당국은 ‘만리마속도’를 창조하였다고 하면서 이를 건설사업의 모범으로 내세우고 있다.
3) 예를 들어 양강도 혜산시의 경우에도 김정은 집권 이후 각 동별로 공원을 조성하라는 지시가 내려와 유원지와 공원, 사적지를 정비하는 사업이 활발 하게 이루어졌다고 한다.
평양시에서는 시가지 정비, 주택 건설뿐만 아니라 각종 체육⋅문화 시설, 위락시설의 개보수와 건설이 이루어지고 있다. 2010년 개선청년공원 유희장 개관에 이어 2012년에는 대성산유원지, 문수물놀이장 시설개선 공사가 진행되었고, 2012년에는 능라인민유원지, 평양 민속공원, 만경대유희장 개건공사가 완료되었으며, 류경원, 인민야외빙상장, 롤러스케이트장, 통일거리운동센터 등의 주민체육시설과 대규모 편의시설이 완공되었다. 2013년에는 만수대지 구 화초⋅분수공원과 편의상점 건설사업이 진행되었으며, 2016년 7월에는 자연박물관, 중앙 동물원이 준공되었다. 이중 평양 능라인민유원지는 대동강 가운데 1k㎡ 넓이의 섬인 능라도에 위치한 유원지로, 곱등어관(돌고래관), 물놀이장, 유희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능라인민유원지 에는 2013년에 4D 영화관인 ‘입체율동영화관’도 개관하였다.4) 평양민속공원은 “민속전통과 미풍양속”의 이해를 목적으로 하여 역사종합교양구역, 역사유적전시구역, 현대구역, 민속촌, 민속놀이구역, 백두산⋅금강산공원구역 등으로 조성되었다.5) 류경원은 목욕, 이발, 미용, 안마, 치료체육 등의 시설을 갖춘 1만 8천여㎡ 넓이의 위락시설이다.6)
이와 같이 최근 몇 년간 평양의 문화시설이 확충되면서 평양의 주민들이 여가생활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늘어났다. 다른 지역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문화⋅위락 시설은 평양을 북한의 다른 도시와 격이 다른 곳으로 느끼게 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지방 도시에서 살다가 평양의 중앙기업소 노동자로 자원해서 왔던 20대 여성은 “평양에 올라오는 게 다 그런 걸(문화시설을) 보려고 올라온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시설은 대도시, 특히 평양시에 집중되어 있어 평양이 아닌 다른 지역에 거주하는 일반 주민들에게는 이러한 시설에서 여가를 즐기는 것은 꿈 같은 이야기이다. 농촌지역인 함경남도 홍원군에서 거주하다 2016년에 탈북한 여성은
“북한에서는 그저 평양에서만 그런 (놀이)기구를 탄다. TV를 보면서 ‘저런 기구, 와 저건 그렇구나. 저 사람은 탔으니까 좋겠구나’라는 생각만 했다.”고 말한다.
2000년대 이후 시장화의 과정 속에서 상당한 부를 축적한 계층이 생겨나면서 평양에서는 확충된 문화시설을 활용하여 여가를 즐기는 주민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유명 유원지마다 입장하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있고 암표장사도 성행한다고 한다. 2014년까지 군대 체육단 소속으로 평양에서 생활했던 20대 청년은 상류층 출신 부대원의 부모들이 지원하는 표를 갖고 부대원들끼리 한 달에 한 번꼴로 개선청년공원에 놀러 갔다고 말한다. 야간개장하는 공원에서 놀이기구 세 가지를 탈 수 있는 자유이용권으로 급강하탑(자이로드롭), 배그네(바이 킹) 등의 놀이시설을 타고 쏘다니다 들어오는 것이 즐거운 일과였다고 한다.
4) 이후 4D 영화관의 신설이 계속되어, 2016년 현재 원산시, 신의주시 등 전국적으로 12개 이상의 4D 영화관이 운영되고 있다(연합뉴스,「북한에 4D 영화관 최소 12개…김정은 오락시설에 관심」, 2016. 6. 17).
5) 연합뉴스, 「北 김정은, 준공 앞둔 주민 편의시설 점검」, 2012. 9. 8.
6) 연합뉴스, 「북 류경원⋅인민야외빙상장⋅롤러스케이트장 준공」, 2012. 11. 9.
그러나 대다수의 북한 주민의 일상 속에서는 각종 건설사업과 문화시설 확충을 통한 주민 생활수준 향상이라는 당국의 정책이 실질적인 삶의 질 향상으로 체감되거나 여가생활의 즐거움으로 연결되지는 못하는 듯하다. 함경북도 회령시에 거주하다 2015년 탈북한 한 남성은 그런 시설이 “몇 사람을 위한 것”에 불과한 “절름발이” 시설이라고 비판한다. 평안북도 신의주시와 평양을 오가며 장사를 하다가 2014년에 탈북한 30대 여성의 다음과 같은 말은 평양시 중심의 문화시설 확충에 대한 내부의 비판적인 시각을 보여준다.
“(평양의) 모습은 많이 바뀌었어요. 모습 많이 바꾸고. 그런데 선생님도 알다시피 건설을 많이 하잖아요. 사람들이 안 좋아해요. 그건 이렇게 늙은이들도 말하거든요. “뭔 먹고 살기도 힘든데 저렇게 짓냐? 뭔 물놀이장을 짓냐? 우리가 먹고살기 바빠 죽겠는데 언제 물놀이장에 가서 돈을 내고 물놀이할 사람이 어디 있냐고. 차라리 저거 지을 바 치고는 쌀을 풀어서 뭐 한 달이라도 주든가 이게 낫겠다.” 이거는 거의 그런 생각들은 가지고 있거든요. 필요 없는 노릇을 하니까. 뭐 현지지도 한 거하고 다르잖아요. 무엇을 하나 짓는다는 거는. 우리가 그렇게 즐길 만큼 북한의 생활이 여유롭지가 못해요, 사람들이.
저희 같은 사람은 즐기지만 그건 극히 몇 사람인 거고 즐기지 못하는 사람이 거의 70~80%이 니까 그게 하등에 필요가 없잖아요.”
Ⅱ. 소비 공간의 확대와 여가생활의 다양화
‘여가’의 사전적 의미는 “일이 없어 남는 시간”7)이다. 여가를 즐기려면 생계유지를 위해 일을 해야만 하는 시간 이외에 ‘남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 경제난 이후, 대부분의 북한 주민들은 공식적인 직업이 아닌 시장활동 등의 사적인 경제활동을 통해 스스로의 생계를 책임져야만 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여가를 즐길 만한 시간적인 여유를 갖기는 쉽지 않다.
2000년대 들어 북한경제 전반에서 시장화가 진행되면서 시장활동을 통해 일정한 부를 축적한 집단이 생겨났다.8) 기존의 정치적 성분을 대신하여 경제적 부에 의한 계층질서가 형성된 것이다. 특히 사회문화적 요인에 의한 계층 분화가 뚜렷하게 나타났으며, 의식주생활은 물론
7)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http://stdweb2.korean.go.kr/search/List_dic.jsp, 검색일: 2017. 7. 18).
8) 탈북민을 대상으로 한 북한 주민 생활실태 조사에 의하면, 김정은 집권 이후 주식에서 쌀이 차지하는 비중과 고기 섭취 횟수가 증가하는 등 북한 주민들의 평균적인 의식주 수준이 일정 정도 개선된 것으로 보인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의 조사에 의하면, 북한에 거주할 당시 ‘거의 입쌀로만 먹었다’는 응답률은 2011년 35.7%에서 2015년 60.1%로 증가했으며, 고기를 ‘일주일에 한두 번 이상 먹었다’는 응답률 역시 2011년 24.8%에 서 2015년 50.7%로 증가하였다(정은미, 「북한 주민의 생활과 의식 변화」, 『김정은 체제 5년, 북한을 진단한다』, 민화협, 2017, p.128).
소비생활과 정보환경에 이르기까지 계층 간 격차가 두드러지게 되었다.9) 상류계층의 경제력 능력 확대는 소비활동 다양화와 여가생활 확대로 연결되었다.
지역 간 이동에 제약이 있고 교통인프라가 잘 발전되어 있지 못한 북한사회에서 자신의 거주지와 멀리 떨어져 있는 곳으로 여행을 가서 여가를 즐기는 일은 흔한 일이 아니다. 어느 정도 경제적 여유가 있는 집단에게 가장 일상적인 여가 활용의 방식은 가족이나 친지들과 함께 외식을 하거나 각종 문화⋅위락 시설을 이용하는 것이다. 특히 평양에는 옥류관, 청류관, 선교각, 평남면옥 등 이름 있는 식당들이 운영되고 있다. 이런 국영식당은 음식 가격이 싸지만, 한 사람당 판매하는 양이 제한되어 있고 길게 줄을 서야 한다. 최근에는 ‘합의제 식당’이라고 불리는 식당이 시내 곳곳에 생겨났다. 식당을 운영하는 기관에서 인민위원회에 등록을 하면서 메뉴와 가격을 등록하도록 되어 있는 이 식당들은 음식 종류가 다양하고 접근성이 좋아 일반 주민들이 많이 이용하지만, 가격은 국영식당에 비해 비싸다.
고급 식당으로 외화로 지불하는 호텔식당이 있고, ‘종합봉사시설’인 ‘해당화관’ 같은 최고급 식당도 있다. 해당화관은 류경원, 롤러스케이트장, 동평양대극장 등 문화시설이 밀집되어 있는 평양시 동대원구역에 위치해 있는 지하 1층, 지상 6층 건물의 종합시설로, 연건축면적 1만 7,700k㎡ 규모이다. 내각의 해당화봉사관리소에서 운영하는 이 시설은 2013년에 김정은 위원장이 시찰을 하기도 했다. 1층과 2층은 식당가, 상점, 연회장 등으로 구성되었고, 식당에서는 200여 가지 한식과 외국요리를 판매한다. 식당 이외에도 3층에는 목욕탕과 수영장, 4층에는 한증막, 한증방(찜질방), 휴게실, 청량음료 코너, 체력단련실, 탁구장, 당구장, 미용실, 안마실, 미안실(피부미용실), 5층에는 요리전문 도서관, 요리와 관련된 전자도서열람실, 요리실습실, 6층에는 24시간 영업하는 커피숍이 운영되고 있다.10) 달러를 사용하는 이곳 식당에서 갖추어진 식사를 하려면 1인당 300달러 정도의 비용이 들기 때문에 주로 사업상 사람을 만나거나 연줄을 이용한 청탁을 할 때 이용한다고 한다.
평양시 중심가에는 해당화관과 비슷한 형태의 여러 층짜리 복합위락시설이 많이 운영되고 있다. 탈북민들의 증언에 의하면, 민성센터, 금별센터, 인봉센터 등의 이름을 가진 복합위락시설 은 2000년대 중후반부터 생겨나기 시작해서 김정은 집권 초기에 급격히 늘어났다고 한다.
평양에 거주했던 20대 탈북민은 이러한 복합위락시설을 이용해서 여가를 즐겼던 경험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하는 수영장, 1층은 뭐 상점 또는 식당, 2층은 목욕탕, 3층 4층 헬스장, 뭐 이렇게
9) 정은미, 「북한 중간계층의 결정요인과 특성」, 통일과 평화, 제7집 제2호, 2015, pp.104~105.
10) http://ojakyonews.tistory.com/190(접속일: 2017. 6. 12).
해가지고 완전 종합적인 그런 서비스센터가 엄청 많이 평양에 생겨났거든요. (중략) 목욕탕에서 목욕을 하고, 목욕탕에서 연결돼 가지고 수영장으로도 내려갈 수 있게 돼 있어요. 수영은 또 5달러이거든요. 그래서 5달러 더 내면 다 씻고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밑에 내려가서 수영도 하다가. 쭉 이게 라인이 되어 있거든요. 수영도 하고 배고프면 그때 카운터에서 컵라면이라든지 빵이라든지 그런 것도 먹을 수 있고, 너무 잘 돼 있으니까.”
경제적 여유가 있는 상류층은 명절날이나 특별한 날에 가족이나 친구들과 시외로 들놀이를 가거나 도 경계 밖에 있는 계곡, 해수욕장, 온천 등 유원지에 개인차를 빌려서 놀러 가기도 한다. 북한에서는 전통적으로 직장이나 인민반 등에서 명절날 조직의 구성원과 가족들이 참가하는 야유회를 조직하거나 백두산, 평양, 혁명전적지 등지 방문을 조직해서 운영해 왔다.
경제난 시기에는 이와 같은 집단적 여가생활이 불가능해졌고, 2000년대 들어서 공식 조직 단위의 집단적 여가모임이 다소 복구되었지만 이전과 같이 활성화된 상황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최근의 변화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비공식적인 개인의 경제활동이 활성화되면서 공식 직장이나 인민반과 같은 공적 조직을 대신하여 함께 모여 시간을 보내거나 야유회나 여행 등 여가를 함께 즐기거나 사적인 모임이 생겨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모임의 구성원은 순수한 친분관계인 경우도 있지만 주로는 “장사와 연결되어” 있거나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사람”인 경우가 많다. 함경북도 회령에서 장사를 하다 2015년에 탈북한 한 남성은 여가시간을 같이 보냈던 모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취미나 환경에 따라서 내 조건에 따라서. 거기에는 법을 다루는 사람들도 있고 그렇게 사람들이 많거든요. 모여 앉아서 뭐 이제처럼 마약이 오고 가기도 하고, 그냥 뭐 무슨 개라도 갖다가 잡아서 먹는 마당도 되고 하는데, 그렇게 모여 앉는 부류들이 있죠.
상호 끼리끼리. 아무튼 그런 마당에 가게 되면 당일군도 있고 법 쪽에 일하는 사람도 있고, 뭐 없는 거 없죠. 동네사람은 아니고요, 돈 버는 데 그냥 도움이 되는 지인들이.”
또 다른 형태의 특징적인 여가모임은 취미활동을 같이 하는 것인데, 그 대표적인 예가 공개적인 장소에서 자발적으로 벌어지는 ‘춤판’이다. 북한에서는 국가기념일이나 정치적 축하행사가 있을 때 집단적으로 광장에 모여 춤을 춘다. 이는 조직단위로 반드시 참석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북한 주민들에게는 여가생활이라기보다는 일종의 행사로 인식된다.
최근 국경지역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춤바람’은 국가적 강제에 의한 것이 아니라 춤을
즐기는 주민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점에서 행사 성격의 집단적 춤판과는 다르다. 탈북민들의 증언을 종합해 보면, 공개적인 장소에서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여서 춤을 추는 것이 시작된 것은 1990년대 후반에 중국을 통해 녹음기가 대거 들어오면서부터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자발적 춤판은 최근 접경지역의 주요한 도시들에서 광범위하게 관찰된다. 혜산시의 예를 보면, “혜산시는 춤추며 논다”고 할 정도로 최근 들어 모여서 춤을 추는 것이 유행하고 있다. 주로 나이가 든 중년, 노년층이 수십 명씩 휴일 경치 좋은 곳에 모여 증폭기를 연결해 음악을 크게 틀어 놓고 남녀가 같이 어울려 춤을 춘다고 한다. 이들은 “자기 취향에 맞게”
더러는 조선춤을, 더러는 디스코를 춘다. 어떤 경우에는 복장을 갖춰 입어야만 춤판에 낄 수 있다고도 한다. 동네에는 그런 춤판에 고정적으로 다니는 사람들이 있어서 서로 연락을 해서 같이 가서 종일 춤을 추고 먹고 즐기다 돌아온다고 한다.
열린 공간에서 음악을 틀어 놓고 춤추고 노는 문화가 최근 들어 성행하게 된 데에는 태양광 충전기와 증폭기 등 기술적 요인이 작용하였다. 전날 충전을 해놓으면 다음날 전기가 없는 야외에서도 하루 종일 사용할 수 있는 태양광충전기와 넓은 공간에서도 소리를 잘 전달할 수 있는 고성능 증폭기가 1990년대 초반의 소형 녹음기를 대체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을 춤판으로 불러 모을 수 있게 되었다. 또한 혜산시에서는 모여서 춤을 추는 것이 유행하면서 개인교사에게서 춤을 배우는 춤교습도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 탈북민의 증언에 의하면 대가가 오가는 개인적인 춤교습은 허가된 행위가 아니지만 2010년대 초반에 춤선생이 생겨났고 최근 춤판이 활성화되면서 그 수가 늘어나서 2016년경에는 배우려고 마음만 먹으면 가까운 곳에서 춤선생을 구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함경북도 회령시에서도 이와 유사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회령시에서 살다가 2015년에 탈북한 한 남성은 아파트 단지에서 벌어지는 춤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게 2012년인가, 한 2008, 2009년 때부터인가? 그때부터 북한에 어느새 모르게 어떤 게 생기던가 하면요, 북한에서는 대체로 보면 이웃들끼리 많이 통하고 이러니까 아파트다 하게 되면 아파트 밑에 이렇게 주런히 나와 앉아 있는 사람이 많거든요. 그늘 같은데. 누군가가 사람들이 좀 있으니까, 자기도 노래를 좋아하고 하니까 뭐 집에서 녹음기 같은 걸 음악 틀어 놨지 않습니까? 애들부터 일으켜 세워서 춤추고 노래 부르게 하던 게 막 동네에 퍼지고, 옆의 아파트에서도 와서 놀고, 이런 게 생기더라고요. 그런데 그건 함흥에 가 봐도 같고. 나라에서 하라는 무도회가 아니고. 막 이렇게 놀고 있는데 주재원도 지나가다 보고 모르는 체 슥 가더라고요. (중략) 그런 분위기는 아무 데서나
볼 수 있고, 그 다음 명절이라고 춤추고 노래 부르고 온 동네가 모여 노는데 어떻게 말릴 사람이 없지 않습니까? 어느 때부터는 그냥 아파트마다 서로 경쟁적으로 막 골목골목 마다 이렇게 춤추고 노래 부르는 그런 마당이 생겼더라고요.”
Ⅲ. 젊은이들의 여가생활
북한에서 최근 여가생활의 변화가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연령집단은 청년층이다.
일반적으로 북한의 젊은이들이 여가를 즐기는 주된 공간은 집이다. 북한의 젊은이들은 명절처 럼 특별한 날이 아니더라도 친구들끼리 집에 모여 앉아 음식과 술을 나누거나 주패(카드)놀이를 하거나 음악을 틀어 놓고 노래 부르고 춤을 추면서 시간을 보낸다. 친구 생일날 돌아가면서 생일 모임을 갖고, 믿을 수 있는 친구들이 모이면 금지된 남한 노래를 틀어 놓고 놀기도 한다. 이들이 집에 모여 노는 것은 놀이의 공간, 문화적 공간이 부족한 상황에서 이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은 집밖에 없기 때문이다.11)
집 이외에 북한의 젊은이들이 여가시간을 보내는 또 하나의 주요한 공간은 거리이다.
경제난 이후 사회적 이동성이 증가하는 시기에 태어나고 청소년기를 보낸 북한의 젊은 세대는 이전 세대에 비해 이동성에 익숙하다.12) 여가를 보내는 방식을 묻는 질문에 대해 최근 탈북한 어느 20대 청년은 “애들끼리 나오면 그냥 다녀요, 그냥. 한국처럼 어디 이렇게 가는 게 아니고 그냥 싸돌아다녀요.”라고 답한다. 배회하기, 무작정 걷기 등은 북한 젊은이들의 놀이문 화의 주요한 패턴 중의 하나이다. 특별한 목적의식 없이 시내에 나가 거리를 걷고 물건 구경을 하거나 거리의 매대에서 간식거리를 사먹으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집 아니면 거리로 나뉘어져 있던 젊은이들의 놀이공간이 다양화된 것은 최근 몇 년간에 일어난 일이다. 김정은 집권 이후 국가적 시책으로 주민 문화시설 확대를 꾀한 것뿐만 아니라, 2000년대 이후 시장화가 진행되면서 개인 자본이 투자된 영리 목적의 문화⋅위락 시설, 편의시설이 도시지역을 중심으로 번성하게 된 것이 그 주된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북한은 2012년부터 점진적으로 공장⋅기업소에 대해 일정한 범위 내에서 경영자율권을 부여하고, 공장 자체적인 원료의 조달과 생산물 제조와 판매, 대외무역 권한을 부여했다. 예컨대 식당, 상점, 소규모 공장, 소규모 탄광, 버스 등 생산수단의 사실상의 개인 소유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11)조정아 외, 『새로운 세대의 탄생: 북한 청소년의 세대경험과 특성』, 통일연구원, 2013, p.204.
12) 위의 책, p.150.
인정해 주지는 않지만 특정 국가 기관 또는 국영 기업의 산하로 편입시키되 개인 사업체로서의 자율성은 최대한 보장한다. 이렇게 국가 기관⋅기업소의 명의를 대여해 주면서, 즉 ‘사회주의 모자’를 씌워 주면서 부분적인 합법성을 부여하는 대신 국가가 사실상의 세금을 수취하고 있다.13) 시장화 정도에 관한 양문수(2017)의 조사 결과에 의하면, 지방산업공장 중 사실상 개인 투자⋅운영 비중은 약 25% 정도이지만, 상점 중 개인투자 비중은 57%, 식당 65%, 서비스업체 55% 등으로 서비스업 관련 부분의 개인투자 비중은 상당히 높다.14)
서비스업 관련 부분에서 개인투자 사업이 확대된 결과, 주요 도시지역에서는 크고 작은 소비와 문화 공간이 생겨나고 있다. 탁구장, 당구장, 롤러스케이트장, 헬스장, 수영장, 영화관, 오락장, 맥주집, 식당 등이 그러한 공간이다. 혜산시에서 2016년까지 거주했던 탈북민에 의하면 혜산시의 경우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생기는 식당이 엄청 많고”, 이제는 그런 시설들이
“생길 수 있는 곳에는 다 생겼다.”고 한다. 경제적 여력이 있는 계층의 젊은이들은 이와 같은 문화공간의 주된 고객이다. 이 장소들은 거리를 배회하는 북한 젊은이들이 머물면서 여가를 보내고 사적인 관계들을 맺고 공동의 정체감을 확인할 수 있는 ‘정거장’이 된다.
북한 젊은이들의 여가생활에서 또 한 가지 주목할 만한 변화는 청춘남녀가 함께 시간을 보내는 방식, 즉 데이트 방식의 변화이다. 혜산 출신의 30대 후반의 한 탈북민은 자신 세대와 부모 세대, 젊은 세대의 데이트 문화를 다음과 같이 비교한다.
“저희 때는 (데이트라는 게) 없었어요. 저희 아버지 때는 데이트를 했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때는 좀 잘살고 환경이 좋은 때였으니까 밤에도 공원에 가면은 공원 이런 등 밑에 처녀 총각이 만나서 얘기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는데, 제가 한창 젊었을 때는 그런 걸 못 느꼈어요. 바빠 가지고 그때는 뭐 진짜 저 와이프하고도 이렇게 막 손 잡고 같이 다녀보고 이런 걸 못해 봤어요. 그때는 그런 문화를 허용을 안 했었던 거 같아요. 너무도 먹고 살기 바쁜 시기가 되다보니까. 그 이후에는 점차적으로 생활형편이 조금 좋아지고.
조건이 좋아지면서 그 데이트 문화도 조금 생기고. (남한)드라마도 유입돼 가지고 그걸 보면서 그걸 흉내 내려고 하는 그런 경향들이 많이 나타났거든요.”
기성세대들의 데이트가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공원이나 가로등 아래서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것이었다면, 최근 청년들의 데이트 문화는 남한 드라마에 나오는 것과 유사하다는 말이다. 우리는 최근 탈북한 청년들의 증언을 통해 데이트 문화의 변화를 짐작해 볼 수
13)양문수, 「북한 시장화 동향과 향후 전망」, 『북한경제리뷰』, 2016년 1호, 2016, p.26; p.30.
14)양문수, 「김정은 체제 5년의 북한경제 현황과 시사점」, 『김정은 체제 5년, 북한을 진단 한다』, 민화협, 2017, p.128.
있다. 평양 상류층 출신으로 2015년에 탈북한 20대 여성은 대학교 1, 2학년 때는 학급별로 놀러 다니지만, 3학년부터는 친한 친구들끼리 끼리끼리 모여서 놀러 다니거나 이성친구와 둘이서 놀러 다니는 것이 일반적이고, 친한 친구들끼리 이성친구와 함께 몇 커플씩 짝을 지어 놀러다니기도 한다고 말한다. 당구장, 볼링장, 빠찡코, 탁구장 등이 같이 운영되고 있는 ‘봉사센터’, 롤러스케이트장, 수영장, 국제영화관, 노래방 등 최근 들어선 놀이⋅문화 공간들을 돌아다니고 밥을 사먹고 하려면 비용도 꽤 든다. 친구들끼리 가면 비용을 나누어 내지만, 남녀 여러 명이 커플데이트를 가면 대부분 남자들이 돈을 낸다고 한다. 쌍쌍이 내기를 해서 진 팀의 남성이 돈을 내는 일도 많다. 상급생들로부터 새로 생긴 문화시설에 대한 정보를 듣기도 한다.
호프집도 평양의 청춘남녀들이 데이트 장소로 선호하는 곳 중의 하나이다. 경제난 이전 시기에는 여성들이 호프집과 같이 공개된 장소에서 술을 마시는 모습을 쉽게 접할 수는 없었다. 일부 주민들은 술을 마시는 여성에 대해 ‘질이 나쁘다’고 부정적으로 인식하였으나,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여가 늘어나고 경제적 능력이 커지고, 외국영화 등에 나타나는 여성 음주문화 등의 영향을 받아 여성들이 음주문화를 조금씩 즐기는 경향이 나타났다.15) 위에서 언급한 평양 출신 20대 여성은 2000년대 초반만 해도 호프집은 남성들이 가는 곳으로 인식되었 지만, 2010년 즈음에는 여성들이 남성들과 섞여서 같이 맥주를 마시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고 말한다. 2013년까지 평양에서 직장생활을 했던 50대 여성도 예전에는 여성들 이 맥주집에 다니지 않았지만, 지금은 “발전해서” 맥주집에 남녀가 같이 어울려서 맥주를 즐기고, 직장에서 일과 후에 맥주집에서 회식을 하기도 한다고 말한다. 적어도 평양에서 남녀가 어울려 가는 것이 부끄럽게 여겨지는 장소는 없는 듯하다.
이에 비해 다른 지역의 상황은 아직 그렇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혜산시에 거주하다 2016년에 탈북한 20대 남성은 혜산에서는 남녀가 같이 맥주집에 가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이를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의 눈치를 조금 보게 된다고 한다.
그는 지방 사람들은 “아직 완전히 깨지 못해서” 그렇다고 말한다. 젊은 남녀가 어울려 노는 모습을 보면 평양 출신인지 지방 출신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평양과 지방의 데이트 문화는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경지역의 도시에서 살다가 취업을 하기 위해 평양에 오게 된 20대 여성이 평양에 거주하는 자기 또래의 친척과 그의 이성친구들과 수영장에서 커플데이 트를 했던 경험을 말해 주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는 젊은이들의 문화에도 평양과 지방 간의 차이가 나타난다는 점을 보여준다.
15) 서진선, 북한의 문화자본과 사회계급에 관한 연구: 술을 통한 문화적 실천과 소비를 중심으로, 북한대학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4, pp.86~88.
“저는 처음에 수영복을 입었는데 너무 막 쪽팔리는 거예요. 너무 이상한 거예요. “이거 어떻게 입지? 어떻게 입지?” 했는데 친척 애는 좀 몇 번을 가봤으니까 그냥 입고 들어오라고 해서 타올 같은 거 쓱 쓰고 들어갔어요. 그런데 지방 애라는 게 탁 보이는……. 아무리 내가 평양말을 한다 해도 내가 너무 이상하게 노니까 남자 애들이 고향이 어딘가 물어본 거 같아요. 그래서 지방에서 올라왔다니까 “아, 역시.” 하며 그러더래요. (중략) (수영장에 서) 앉아서 이렇게 쭉 내려가는 데 있잖아요. 그런 걸(물미끄럼을) 탔는데, 이렇게 두 명씩 조를 무어서 타는 거거든요. 여자가 앞에 앉고 남자가 뒤에 앉아요. 그런데 아니 세상 보지도 못했던 남자들하고 그런 거 어떻게 타요? 그런데 같이 타는 거예요. 그래서 이쪽 우리 친척 애는 남자친구랑 둘이 타고, 친척 애 남자친구가 남자 애를 하나 데리고 와서 그 남자하고 내가 타게 됐어요. 저 앉았는데 엉덩이가 쑥 들어가는데, 타는데 너무 이상하게 뒤에 남자가 있지. 다라가 이렇게 엎어지면 어떡해요? 그래서 막 긴장해서 타는데, 그래도 탔거든요. 타서 내려왔는데, 이런 건 진짜 아니로구나 하면서 있잖아요.”
Ⅳ. 에너지-전자기기의 진화와 외부문화 확산
2000년대 이후 북한 주민들의 일상생활 속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여가 활용의 양상은 각종 전자기기와 매체를 활용한 남한문화 등 외부문화의 향유이다. 특히 최근 몇 년간 보급률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 휴대전화와 USB 등 저장매체, 소형 전자기기와 태양광 에너지 등은 북한 주민들의 여가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북한당국은 2013년 ‘재생 에네르기법’ 제정 이후 자연에너지를 이용한 전력생산을 독려하고 있으며, 그 일환으로 태양광 에너지 활용도 강조하고 있다. 국내 언론매체의 보도에 의하면, 북한 전체 전력에서 태양광 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0.1% 미만16)(KBS, 2016. 12. 3)이지만, 북한 주민들의 일상생활과 여가생활에서 태양광 에너지 확산이 미치는 영향력은 훨씬 크다.
전력난으로 인해 가정용 전기 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상황에서 북한 주민들은 집집마다 ‘태양빛 판’을 설치하여 자체적으로 조명을 해결하고 소형가전을 구동시키고 있다고 한다. 탈북민들의 증언에 의하면 태양빛판은 접경지역이나 대도시지역은 물론이고 농촌까지도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 주민들은 각자 자신의 경제적 능력에 따라 200위안 정도에서부터 1,000위
16) KBS, 「북, 태양광 독려…전력난 대안되나?」, 2016. 12. 3.
안까지 다양한 가격대의 태양빛판을 설치하여 낮에 충전기를 충전해 놓았다가 전기가 필요할 때 조명이나 가전제품에 연결해서 사용한다.
태양빛판과 태양광충전기의 확산은 북한 주민들의 여가생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충전기는 조명을 밝히는 데 쓰일 뿐만 아니라, 12볼트용 액정TV, EVD 플레이어의 일종인
‘노트텔’, 음향증폭기 등에 연결되어 여가생활에 활용된다.17) 요즘에는 인기 혼수품으로 태양빛판이나 12볼트용 가전기기가 꼽힐 정도라고 한다. 낮에 충전해 놓았던 태양광충전기를 연결하여 사용할 수 있는 12볼트 노트텔, 액정 TV의 보급과 USB 등 저장매체의 소형화는 당국의 검열을 피해 외부영상물을 시청하기 쉬운 환경을 제공하였다.
중국과 인접한 국경지역에는 충전기에 연결해서 쓸 수 있는 TV가 중국으로부터 대량 유입되어, 국경 인근의 주민들은 전기 공급에 구애받지 않고 시시때때로 중국 채널을 시청할 수 있게 되었다. 중국 TV 채널 접근이 불가능한 지역에서도 소형 노트텔과 저장매체만 있으면 다양한 외부영상물을 접할 수 있다. 경제난 이후 중국과의 국가무역뿐만 아니라 국경지역 주민들에 의한 비공식적인 밀수가 증가하면서 외부사회의 정보와 중국과 남한의 영상물이 북한사회 내로 유입되어 확산되었다. 국경을 통해 유입된 문화콘텐츠는 초기에는 VCR에 담겨 들어와 녹화기를 통해 재현되었고, 이후 저장매체가 발전함에 따라 ‘알판’이라고 부르는 CD 형태로 유입⋅보급되었다. VCR과 CD는 부피도 클 뿐 아니라 북한당국의 영상물 시청 단속 시 적발이 용이한 단점이 있었다. 2000년대 후반부터 보급되고 있는 USB는 부피가 작고 저장용량이 커서 반입과 보관, 소지가 용이할 뿐만 아니라 당국의 단속을 쉽게 피할 수 있다. 저장매체의 진화가 외부 영상매체의 확산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혜산 출신 30대 남성과 평양 출신 50대 여성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처음에는 CD알판으로, CD알로 봤다가 그 다음부터는 점점 단속이 심해지니까 그 기능도 높아진 거예요. USB라든가 아니면 마이크로 SD칩에다가 잡아 가지고 그때부터는 정말 보관하기도 쉽더라고요. 보관하기 쉬우니까 그때부터 유통이 더 빠르죠. 마음대로 컴퓨터에서 복사를 해가지고 막 그때부터 유통도 확산됐던 거 같아요. CDR로 돌아갈 때는 그거 하나만 봐야 되잖아요. 다른 걸 못 보잖아요. 그런데 이 마이크로칩이 나오면서 그걸 복사하다 보면 한 개가 들어오면 거기에 뭐 열 개, 백 개가 막 나와요. 그러다보니까 출처를 단속하려고 해도 단속할 수가 없어요. 그만큼 유통도 더 많이 확산되고 더 많이 접할 기회가 있었던 거 같아요.”
17)통계적 의미가 크지는 않지만, 참조해 볼 만한 조사 결과로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에서 2015년 이후 탈북자 13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가 있다. 이 조사에 의하면 설문대상자의 47.8%가 북한에서 노트텔을 보유하였다고 응답하였다(정은미, 「의식주 생활 변화와 정보화」, 『김정 은 정권 5년, 북한사회변화 어떻게 볼 것인가?』,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2016, p.79).
“옛날에는 CDR 판을 해가지고 넣고 보잖아요. 갑자기 들이닥쳐서 그 알판이 나오면 죽어야 돼요. 이제 그러니까 사람들이 머리를 써가지고 USB에다가, 기가(giga) 많은 데다가 그걸 해가지고 꽂았다가 바깥에서 벨이 울리면 그거를 뽑는 거예요. 이전에는 알판이 들어간 상태에서 바깥에서 정전을 시켜요. 그러면 알판이 들어가가지고 안 나오니까 사람들이 들어와서 불을 켜면 바로 걸리는 거예요.”
김정은 집권 이후 외부로부터 유입되는 영상물에 대한 통제가 강화되었다. 북한은 형법에서
‘퇴폐적인 문화’를 반입⋅유포⋅불법보관(193조)하거나 ‘퇴폐적인 행위’를 한 죄(184조)에 대한 처벌을 규정하고 있는데, 2015년 형법 개정을 통해 최고 형량을 늘려 정상이 무거운 경우 5년 이상 10년 이하의 노동교화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혜산시의 경우 시장마다 있던 CDR 장사가 김정은 집권 후에 줄어들기 시작해서 2015년경에는 거의 없어졌다고 한다. 대신 북한당국이 CDR을 판매하는 매점들을 시내 곳곳에 만들어 놓고 북한의 영상물과 중국 영화, 러시아 영화, 인도 영화 등 일부 승인된 외국영화 CD를 판매하고 있다. 외부영상물에 대한 통제가 강화되면서 남한 영상물을 보기가 이전보다 어려워졌고 시장 등에서 영상매체를 공공연하게 판매할 수 없어졌지만, 그래도 국경지역 등 일부 지역의 주민들은 당국의 단속을 피해 가면서 남한 영상물을 비롯한 외부영상물을 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18) 평양에서 생활하다 2015년에 탈북 직전 혜산시에서 몇 개월을 보냈던 20대 여성은 국경지역의 외부영상물 수용 실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평양에서는 그렇게 엄청 중국 영화도 못 봐요. 무서워 가지고. 네, 또 이렇게 한 달에 한 번씩 집을 돌아요. 알 수색을 해요. (중략) 그런데 혜산에 내려와서 보니까 뭐 돌아다니는 거 보니까 다 중국알이에요. 여기서 막 봐도 되냐니까 상관이 뭐냐고 있잖아요.”
국경지역의 일부 도시에서는 영상물뿐만 아니라 외국소설 등의 금서도 유통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혜산시에서 2016년까지 거주했던 한 탈북민은 북한당국이 금지하고 있는 금서를 암암리에 대여해서 봤던 경험에 대해 증언한다. 그에 따르면 개인집에 책장 두 개
18)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의 조사에 의하면 김정은 집권 이후 외부문화 유입 통제 강화에도 불구하고 ‘한류’의 확산과 정보유통은 높은 수준으로 진 행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에 거주할 당시 남한 방송, 영화, 드라마, 노래(음악)을 접해 본 경험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접해 본 경 험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들의 비율은 63.6%(2008년), 57.1%(2009년), 76.7%(2011년), 90.0%(2012년), 88.0%(2013년), 85.9%(2014 년)로, 남한 문화를 접한 경험이 있는 주민의 비율은 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 대체로 80% 중반대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정은미⋅김병로⋅박명규
⋅송영훈, 『북한주민 통일의식 2014』, 서울: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2015, p. 99).
정도를 놓고 여러 종류의 책을 대여하는 곳이 몇 군데 있었는데, 그곳에서는 탐정소설이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같은 외국소설, ‘야설’이라고 불리는 노골적인 성적 묘사가 많은 소설도 몰래 대여했다고 한다.
휴대전화 보급은 노트텔이나 컴퓨터와 같은 기존의 영상기기의 기능에 이동성이라는 혁신적 인 기능을 부과하였다. 북한의 휴대전화 보급수준은 높지 않지만, 빠른 속도로 보급률이 증가하고 있다. 북한의 이동통신 서비스는 2002년 태국의 록슬리 퍼시픽이 평양과 라진-선봉 경제특구에서 상용 이동통신 서비스를 개시할 때까지 고위 간부들에게만 허용되었다. 2004년 4월 용천 폭발 사건 이후 휴대전화 사용이 금지되었다가, 2008년 12월에 이집트 통신회사 오라스콤과 북한 체신성 산하 조선체신회사의 합작회사인 체오사가 고려링크라는 이름으로 3G 서비스를 시작했다.19) 휴대전화 가입자 수는 2008년 1,694명에서 2014년 1월 170만명, 2017년 1월 377만 3,420명으로 크게 증가하였다.20) 이는 전체 인구의 15% 수준으로, 영유아, 아동, 노년계층을 제외한 청년 및 중장년층 중 휴대전화 보유비율은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한 언론매체는 평양에 거주하는 20~50세 주민의 60%가 휴대전화를 사용한다고 보도한 바 있다.21) 평양의 중앙급 기업소에서 근무했던 20대 여성의 증언에 의하면, 2015년경 자신이 다녔던 직장에서 절반 정도가 휴대전화를 보유하고 있었다고 한다. 휴대전화를 사용하여 통화할 일이 많지 않아 “장식용”으로 가지고 다녔는데, 어떤 종류의 휴대전화를 쓰는지가 자신의 경제적 능력을 보여주는 지표가 되었다고 한다.
북한에서는 휴대전화를 통한 데이터 전송과 인터넷이 금지되어 있다. 상업활동에 종사하는 주민들에게 휴대전화는 경제활동의 중요한 수단이 되지만, 그 이외의 주민들에게 휴대전화는 주로 여가활동의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특히 젊은이들은 주로 사진과 동영상 촬영, 동영상 보기, 음악 듣기, 게임 등 오락용으로 휴대전화를 활용한다.22) 마이크로 SD카드에 영화, 소설, 음악을 저장했다가 휴대전화에 이를 삽입하여 재생시킨다. 보안원들이 거리에서 휴대전화 검열을 하지만, 보통 SD카드를 뽑아서 따로 갖고 다니다가 필요할 때만 꽂아서 보면 되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2014년까지 평양에서 대학을 다녔던 한 20대 여성은 휴대전화를 학교에 가지고 가서 점심시간에 휴대전화로 소설을 읽고, 동원노동을 하면서 휴대전화에 이어폰을 연결해서 남한 노래를 듣다가 선생님이 오면 얼른 SD카드를 뽑아서 주머니에 숨겼다고 한다. 비슷한 시기 군대 체육단 소속으로 평양에서 생활했던 20대 청년은 휴대폰용 SD카드의
19) 김연호, 『북한의 휴대전화 이용 실태』, US⋅KOREA Institute at SAIS, 2014, p.11.
20) Kemp(2017).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조사대상인 탈북자 중 46.4%가 북한에서 휴대전화를 보유하였다고 응답하였다(정은미, 2016, p.79).
21) 연합뉴스, 「평양 20~50세 시민 60% 휴대전화 보유 <홍콩지>」, 2013. 2. 3.
22)김연호(2014), p.28.
저장용량이 크지 않아 서너개의 카드를 갖고 다니면서 번갈아 보거나 친구들끼리 돌려 봤는데, 특히 남한의 뮤직비디오를 즐겨 보았다고 한다. 또한 남한 영상물 속의 남한 말투나 복장 등도 모방의 대상이 되고 있다. 남학생들은 “인마”, 여학생들은 “오빠”, “자기야” 같은 남한식 말투를 따라했는데, 그런 말투를 쓴다는 것은 자신이 “좀 놀고 있다”, “좀 깨 있다”는 표현이라고 한다. 함경북도 회령시에서 거주하다 2015년에 탈북한 한 남성은 남한 노래 곡조의 신호음과 카카오톡 이모티콘이 유행하기도 했다고 증언한다.
김정은 집권 이후 휴대전화 사용에 대한 통제가 강화되면서 휴대전화로 남한 문화를 즐기는 것은 쉽지 않아졌다. 최근 북한당국은 휴대전화를 통한 외부영상 시청을 통제하기 위해 정보 검열을 위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여 도입하였다. 2013년 업데이트된 휴대전화에는 ‘트레이스 뷰어’(Trace Viewer)라는 검색 내역을 수집하고 주기적으로 스크린 샷을 찍는 프로그램을 탑재하고 삭제할 수 없도록 함으로써 사용자들이 SD카드를 제거한 이후에도 무엇을 했는지를 파악할 수 있도록 하였다고 한다. 또한 북한당국의 서명이 없는 어떠한 파일도 열어볼 수 없도록 하고, 강제 접속 시도 시 해당 파일이 자동으로 삭제되도록 한 ‘서명시스템’을 탑재하였다 고 한다.23) 탈북민의 증언과 언론보도에 의하면, 개인 소유의 USB, USIM칩 등 메모리 기기를 불법영상물 단속 조직인 ‘620상무’에 등록하라는 지시가 내려졌으며,24) 최근에는 휴대전화에서 SD카드를 외부에서 쉽게 삽입할 수 없도록 SD카드 삽입구를 막거나 내장형으로 기기를 전환했다고도 한다.25)
휴대전화를 통해 외부에서 유입된 영상물을 돌려 보는 것 이외에도, 휴대전화를 이용한 일상생활 촬영과 개인 촬영 영상 돌려 보기가 최근 성행하고 있다. 이는 외부영상물 유입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 전자기기의 발전이 초래하는 일상생활의 변화의 단면을 보여준다. 대도시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가정마다 대부분 USB와 노트텔이 있기 때문에 볼 만한 영상이 있으면 USB에 저장해서 친구들이나 이웃과 서로 교환 복사해서 노트텔로 즐겨 본다고 한다. 남한 영화를 비롯한 외부영상물이 금지되어 있는 상황에서, 휴대전화로 북한 주민들이 직접 촬영한 일상의 행사나 사는 모습, 유명 배우나 악단의 공연 모습 등은 주민들에게 재미있는 볼거리가 된다. 혜산시 출신의 한 탈북민은 친구집에 놀러 가면 “뭐 재밌는 거 볼 거 없어?”가 인사말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상황을 그는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소학교보다도 어린 애들, 유치원 애들이 디스코를 추면 막 깜찍하고 그러잖아요.
그래가지고 그런 걸 이제 (핸드폰으로 촬영해요). 북한에도 지금 핸드폰이 많이 나와요.
23)연합뉴스, 「北 정권 정보통제 갈수록 정교화…외부정보 차단 안간힘」, 2017. 3. 2.
24)연합뉴스, 「北, USB⋅USIM칩 등 메모리 기기 등록제 실시」, 2016. 11. 19.
25)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9/05/2016090502787.html(검색일: 2017. 7. 15).
그래가지고 그거 촬영해가지고 막 영상으로 돌리기도 하고 그런 게 많아요. 그냥 그런 걸 촬영해가지고 USB나 기억기에다가 저장해가지고 자기 친구한테 “보겠으면 복사해라.”
이렇게 해가지고 그 친구가 복사하고, 또 이렇게 쭉 퍼지는 거죠. 뭐 인터넷 이런 건 없으니까. (중략) 어디에서 이런 뭐 국가공연단이 우리 직장에 와가지고 공연을 하잖아요.
그럼 사람들이 개별적으로 그걸 찍어요. 카메라나 핸드폰 같은 거 가지고. 그런 것 도는 게 TV에서 공연하는 것보다 더 재밌는 게 있어요. 그런 연예인들 있잖아요. 여기로 말하면 유명한 여자들, 그런 배우들이 그런 지원을 해가지고, 그 선전선동이라 하죠, 북한에서. 북한에서 발전소 건설한다면 거기 가서 웃기는 개그도 할 수 있고, 노래도 부를 수 있고, 만담도 할 수 있고. 그런 게 TV에서 보는 것보다 이렇게 카메라로 촬영해서 보는 게 더 재밌어요. 그냥 사람들 자유롭게 막 이렇게 웃고 그런 것도 볼 수 있고.
아무튼 뭐 정식적인 그런 틀이 없어가지고 막 여기도 찍고 저기도 찍고 재미나는 것만 찍잖아요. 그런 것도 또 많이 돌고. 아무튼 핸드폰으로 영상을 찍고 그런 게 좀 많이 돌아요.”
기존에 북한사회에서 영상물 등의 문화컨텐츠를 창조하고 유통할 수 있는 권한은 당과 국가, 이를 대리한 창작집단에만 허용된 것이었다. 개인에 의해 촬영 및 유통되는 영상물들은 주민들이 개인의 관점에서 자기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문화컨텐츠로 만들어 내는 것이라는 점에서 혁신적이다. 북한사회 내부에서 인터넷이나 SNS를 사용할 수는 없지만, 이를 대신하여 사람들 간의 직접적인 네트워크가 다양한 문화컨텐츠를 실어 나르고 사람들 간의 감정의 공유를 매개하는 기능을 수행한다는 것은 상당히 흥미롭다.
이희영(2012)은 인간행위자뿐만 아니라 아날로그 및 디지털 전자기기라는 비인간행위자의 동맹과정에 대한 고찰을 통해, 한반도의 정치적 변화가 정보통신기술 산업과 관련된 새로운 비인간행위자들과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탐구한 바 있다. 이희영(2012)에 의하면, 북한주민의 남한문화에 대한 관심은 경제난의 상황 속에서 도강자들이 식량 대신 북한으로 가져간 아날로그 전자기기에 대한 잠재적인 수요로 작동하였고, 이를 통해 북한⋅중국⋅남한의 행위자 네트워크 가 급속히 형성⋅확장되었다. 북한사회 내부에서는 이러한 인간-비인간 네트워크를 통해 남한 드라마를 다양한 방식으로 전유하고 새로운 삶의 양식을 실천하는 계층이 형성된 것이다.26) 2000년대 이후 북한 전 지역으로 확산된 소형 저장매체, 휴대전화, 국가가 보급해 주는 전기를 대신할 수 있는 태양광충전기, 낮은 전압으로 구동되는 TV와 컴퓨터, 컴퓨터와 휴대전화
26) 이희영, 「아날로그의 반란과 분단의 번역자들」, 경제와 사회, 2012년 여름호(통권 94호), 2012.
등 새로운 전자기기를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는 북한 주민들, 특히 젊은 세대는 북한 내 인간-비인간 네트워크의 2세대를 형성하였다고 볼 수 있다.
Ⅴ. 맺음말
이 글에서는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 주민들의 여가생활을 문화시설 확충, 여가생활의 다양화, 청년층의 여가생활, 전자기기의 진화와 외부문화 확산 등의 측면으로 나누어 살펴보았 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경제난 이후 시장화가 진행되면서 이전 시기와는 다른 여가생활 의 모습이 북한사회에 나타나고 있다. 물론 북한의 대다수 주민들이 다양한 여가생활을 즐기고 있는 것은 아니다. 경제적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사람들은 주말과 휴일 없이 생계유지를 위해 일해야 하고, 일 년에 몇 번 명절이나 생일날 가족이나 친구들과 집에 모여서 음식을 해먹으면서 쉬는 것이 여가생활의 전부이다. 그렇지만 2000년대 이후 북한사회에 경제활동을 통해 부를 축적한 계층이 생겨나면서 소비와 여가, 문화에 대한 새로운 수요가 발생하였다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김정은 집권 이후 평양시와 지방 대도시를 중심으로 도시 정비와 문화시설 확충 정책이 전개되고, 서비스업 부문에 개인투자 확대로 다양한 문화⋅위락 시설이 운영되었는데, 이는 경제적 능력이 있는 계층의 여가생활에 대한 새로운 수요를 일정 정도 흡수하였다. 다른 한편으로는, 북중 접경지역을 통해 유입된 휴대전화, USB 등 저장매체, 노트텔과 액정TV, 증폭기와 태양광충전기가 외부사회의 문화생산물들과 결합하면서 일종의 “어두운 문화”27)의 매개체로 작용하고 있다. 여가활동으로 금지된 외부문화를 향유하는 현상은 1990년대 경제난 시기에 이미 시작된 것이지만, 최근에는 정보통신기기의 소형화와 성능 강화, 주민들, 특히 청년세대의 정보통신기기 활용능력 강화로 인해 더욱 확산되고 있다. 이는 물리적으로 외부세계 로부터 차단된 듯 보이는 북한사회의 주민들이 물리적 경계를 넘어서서 외부사회와 타인의 경험을 접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이 된다.
27) 회령시에 거주하다 2015년에 탈북한 30대 남성은 북한의 문화가 어떤 것인지를 묻는 질문에 대해 공식문화는 “교과서적인 문화”, 실제 문화는
“어두운 문화”라는 이분법적 비유를 써서 답하였다. 여기서 “어두운”은 “나라하고 반대되는”이라는 의미이다.
참고문헌
김연호, 북한의 휴대전화 이용 실태, US⋅KOREA Institute at SAIS, 2014.
서진선, 북한의 문화자본과 사회계급에 관한 연구: 술을 통한 문화적 실천과 소비를 중심으로
, 북한대학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4.
양문수, 「북한 시장화 동향과 향후 전망」, 북한경제리뷰, 2016년 1호, 2016.
양문수, 「김정은 체제 5년의 북한경제 현황과 시사점」, 『김정은 체제 5년, 북한을 진단한다』, 민화협, 2017.
이희영, 「아날로그의 반란과 분단의 번역자들」, 경제와 사회, 2012년 여름호(통권 94호), 2012.
정은미, 「북한 중간계층의 결정요인과 특성」, 통일과 평화, 제7집 제2호, 2015.
정은미, 「의식주 생활 변화와 정보화」, 김정은 정권 5년, 북한사회변화 어떻게 볼 것인가?,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2016.
정은미, 「북한 주민의 생활과 의식 변화」, 김정은 체제 5년, 북한을 진단한다, 민화협, 2017.
정은미⋅김병로⋅박명규⋅송영훈, 북한주민 통일의식 2014,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2015.
조정아, 「북한의 교육일상연구: 과제와 접근방법」, 박순성⋅홍민 엮음, 북한의 일상생활세 계, 2010.
조정아 외, 새로운 세대의 탄생: 북한 청소년의 세대경험과 특성, 통일연구원, 2013.
H. 르페브르, La vie quotidienne dans le monde moderne, 박정자 옮김, 현대세계의 일상성, 서울:기파랑, p.122.
Kemp, S., “Digital in 2017 Global Overview”, http://wearesocial.com/special-reports /digital-in-2017-global-overview, 2017.
<웹사이트>
http://ojakyonews.tistory.com/190(검색일: 2017. 6. 12).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9/05/2016090502787.html(검색 일: 2017. 7. 15).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http://stdweb2.korean.go.kr/search/List_dic.jsp(검색일:
2017. 7. 18).
<언론 매체>
연합뉴스, 「北 김정은, 준공 앞둔 주민 편의시설 점검」, 2012. 9. 8.
연합뉴스, 「북 류경원⋅인민야외빙상장⋅롤러스케이트장 준공」, 2012. 11. 9.
연합뉴스, 「평양 20~50세 시민 60% 휴대전화 보유 <홍콩지>」, 2013. 2. 3.
연합뉴스, 「북한에 4D 영화관 최소 12개…김정은 오락시설에 관심」, 2016. 6. 17.
연합뉴스, 「北, USB⋅USIM칩 등 메모리 기기 등록제 실시」, 2016. 11. 19.
연합뉴스, 「北 정권 정보통제 갈수록 정교화…외부정보 차단 안간힘」, 2017. 3. 2.
KBS, 「북, 태양광 독려…전력난 대안되나?」, 2016. 12 .3.
Ⅰ. 머리말―
북한의 2012년 학제 개편과 후속 교육과정 개정
2017년은 북한의 교육에 있어 중요한 성과가 있는 해라고 선전된다. 2012년 발표한 신학제가 모든 학교급, 학년에 적용이 완료된 첫 학년도인 것이다(통일부, 2017. 3. 29). 북한에서는 2011년 12월 김정일 사망 후 김정은이 집권한 지 1년도 채 되기 한 이래 1년도 되기 전인 2012년 9월 최고인민회의 제12기 제6차 회의를 통해 ‘전반적 12년제 의무교육제’라는 학제 개편안을 발표하고 후속 교육과정(교육강령) 개편을 예고하였다. 후속 교육과정은 다음해인 2013년에 발표되었고, 2014년부터 전국의 모든 초⋅중등학교에 연차적으로 여건이 되는 학교부터 적용하여, 2017년에는 모든 학교에 적용이 마무리된 것으로 2017년 4월 최고인민회 의 제13기 제5차 회의를 통해 보고되었다. 이 회의에서는 학제 개편안 이후 4년 동안에 전국적으로 1,500여 개의 학교를 건설하거나 증축하고, 1만 790여 개의 교실들을 신축했으며 수많은 교구비품들을 생산⋅보장하였다고 선전 홍보하였다. 북한 교육위원회 김승두 위원장은
“전반적 12년제 의무교육이 전면적으로 실시되었지만 아직 전반적인 중등 일반교육은 발전하 는 시대의 요구에 따라서지 못하고 있다.”며, 2013년에 개정한 제1차 강령의 후속으로 “초등 및 중등 교육을 원리교육화하는 원칙”에서 2017년 현재 제2차 전반적 12년제 의무교육 강령을 개발할 계획임을 밝히기도 하였다(조선신보, 2017. 4. 12).
김정은 체제 학제 개편안에서 북한의 학교는 유치원-소학교-초급중학교-고급중학교 체제 를 갖추게 되었다. 학제 개편은 1972년의 ‘11년제 의무교육제’, 즉 2–4–6제 중 의무교육을
북한 김정은 체제의 교과교육 동향
김진숙 |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연구위원 | [email protected]
1–4–6(유치원 중 1년-인민학교 4년-(고등)중학교 6년)제로 정한 지 근 40년 만에 이루어진 것으로, 이후 현재 북한 학제는 유-초-중-고의 연한을 2-5-3-3제로 하고, 그중 유치원 1년(높은 반)을 포함하여 초⋅중등교육 11년까지 전체 12년을 무상 의무교육으로 한다.
북한은 의무교육을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홍보하기 때문에 유치원의 총연한보다는 1년 의무교 육과 초⋅중등교육의 총연수를 내세워 ‘전반적 의무교육 12년제’로 칭한다. 또한 이번 학제 개편 시, 중등학교가 ‘중학교’에서 ‘초급중학교’와 ‘고급중학교’로 분리되고, 고급중학교와 별도의 실업계 학교인 ‘기술고급중학교’를 100여 개 개설한 것으로 보도된다.1)
남한의 경우 유-초-중-고를 3-6-3-3제로 하고 초등학교와 중학교 합 9년을 의무교육으로 하는데, 이에 비하면 북한의 소학교는 남한보다 1년 연한이 적으면서 유치원 1년과 고등학교(고급 중학교) 단계까지 의무교육을 실시한다. 북한의 학제를 남한과 비교한 것은 [그림 1]과 같다.
2013 개정 교육과정2)은 2012년에 발표한 ‘전반적 12년제 의무교육제’의 후속 조치이다.
북한에서 국가수준의 교육과정은 ‘교육강령’이라고 하며,3) 남한 교육부에 준하는 국가수준의 기구인 ‘교육위원회’에서 발간하는 공적 문서이다. 세계 각국에서 교육과정은 curriculum, framework, program, 요령(要領), 지인(指引), 총강(總綱), 총론(總論)이라는 보통명사를 사용한다(김진숙 외, 2011). 그런데 북한에서는 국가수준의 교육과정에 대해서만 ‘교육강령’으 로 구별하고, 교육강령에 포함된 총론은 과정안, 교과는 교수과정안으로 칭한다.
교육강령은 총론과 교과를 통틀어 지칭하는 말이고, 총론은 그중 ‘과정안’인데, “학교 전반의 총체적인 학업 진행계획, 즉 학업 진행과정과 학년별 과목 수 및 이수시간 수 등을 규정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교과 교육과정은 ‘교수요강’으로 불리며, “학과목의 교수과정 조직과 교수 내용 및 방법을 규제하는 교육강령의 중요 구성부분”으로 정의된다(백과사전출판 사, 1995, p.600). ‘과정안’은 총론을 칭하기도 하고, 학교 교육과정에 대한 규정 및 학교수준의 교육강령 전체를 칭하기도 한다(교육위원회, 2013a; 2013b; 2013c).
본고에서는 2013 개정 교육과정을 중심으로 북한 김정은 체제에서 교과의 구조와 이를 통해 가르치는 내용과 방법의 동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북한 교과 교육과정의 구조도라고 할 수 있는 편제의 신구 및 남북한 비교를 통해 북한 교과 교육과정의 동향을 살펴보고, 교과 교육과정의 내용과 교과서 사례를 통해 교과교육 내용의 동향을 예시하고자 한다. 본고에서 는 북한이 전통적으로 교육을 통해 사회주의적 인간형을 기르고자 교육을 대폭 활용하고
1)기술고급중학교는 다음과 같이 설립의 근거가 밝혀진다. “새로운 교종인 기술고급중학교를 시범적으로 내오는 데 맞게 일반고급중학교들에서는 중등 일반지식을 위주로 교육하고 기술고급중학교들에서는 일반교육과 함께 해당 지역의 경제⋅지리적 특성에 맞는 기초기술교육을 주기 위한 준비사업을 책임적으로 하겠습니다.”(로동신문, 2014. 9. 26).
2)북한에서 2013년에 발표한 교육강령의 공식 명칭은 ‘제1차 전반적 12년제 의무교육강령’이다. 본고에서는 남한에서 2015년에 개정한 교육과정을
‘2015 개정 교육과정’이라고 공식적으로 칭하는 것과 대별되도록 ‘2013 개정 교육과정’이라고 칭한다.
3)본고에서는 특별하게 구분할 경우를 제외하고 북한의 교육강령을 교육과정으로 칭한다.
[그림 1] 남북한의 학제 비교
모든 교육을 이념화하고 있다는 주지의 사실 외에도 교육학적인 면에서 어떠한 특징을 가지고 있고, 직간접적으로 이 교육이 추구하는 방향이 무엇인가를 드러내 보고자 한다.
Ⅱ. 북한 2013 개정 교육과정의 교과 편제
김정은 체제 북한의 2013 교육과정 개정 중 편제 측면에서 교과교육의 특징은 다음의 세 가지 측면으로 구분할 수 있다.
1. 김일성 가계 우상화의 계보를 잇는 정치사상 교과교육
나이 남한 북한
17
고등학교(3) 16
고급중학교, 기술고급중학교(3)
전반적 12년제 의무교육제 15
14
중학교(3)
초급중학교(3) 13
12 11
초등학교(6) 10
소학교(5) 9
8 7 6 5
(유치원/어린이집 3년)
유치원 높은 반(1)
4 낮은 반
3
탁아소 2
1 어린이집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