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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현 소설에 나타난 정신병리와 권력의 테크놀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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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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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김형중**

목 차 1. 들어가며 : 풍자란 무엇인가 2. 풍자 너머의 풍자

3. 병식(病識) 있는 화자들 4. 전쟁에서 규율로 5. 정신의학과 규율권력 6. 시신 위의 권력들 7. 나오며 : 풍자의 운명

<국문초록>

본 논문은 남정현의 소설에 나타난 ‘풍자’를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재조명함으 로써 그의 풍자가 일반적인 풍자와는 다르다는 사실을 밝히는 데에서 시작한다.

일반적인 풍자의 경우 ‘감정비용’의 절감을 통해 웃음을 유발하지만 남정현의 풍자 는 감정비용을 절감하지 못해 웃음을 발생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그의 풍자가 정신병리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와 같은 정신병리적 풍자의 기원에는 정신의학이 권력의 중요한 테크놀로지로 등장한 1960∼1970년대 한국 사회의 변화가 있다. 정신의학적 담론이 사회적으로 일반화 됨에 따라, 병식을 가진 화자 들은 이제 더 이상 ‘천진난만한’ 화자가 되지 못한다. 게다가 생명 권력의 통치테 크놀러지가 규율권력과 착종됨에 따라, 풍자의 대상으로서의 인격화된 권력자는 사라진다. 인격이 아닌 시스템으로서의 권력은 최종적으로 인격적 권력을 소멸시

* 이 논문은 2018년도 조선대학교 교내학술연구비를 지원받아 연구되었음.

** 조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2)

킴으로써 풍자를 불가능하게 한다는 것이 이 논문의 결론이다.

주제어 : 풍자, 정신병리, 남정현, 분지, 규율권력, 생명권력, 권력의 테크놀러지, 감정비용, 웃음, 김광식, 김동립, 1960∼1970년대

1. 들어가며: 풍자란 무엇인가

남정현 소설의 형식적 특장이 ‘풍자’에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대체로 연 구자들 간에 합의가 이루어진 듯하다

1)

. 그 중 풍자 일반과 다른, 남정현식 풍자의 특수성을 고려한 섬세한 문체론적 분석은 황도경의 연구에서 발견 된다. 그에 따르면 “남정현 문학은 비속적 일상어와 전문적이고 과학적인 언어, 상황의 우스꽝스러움과 언어의 과장된 진지함, 주제의 심각성과 언어 의 가벼움 등 이질적이고 모순적인 것을 결합하여 특유의 우화적 세계를 만들어낸다”.

2)

그러나 이런 분석이 남정현식 풍자의 특징을 발본적인 차원 에서 밝혀내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왜냐하면 남정현의 풍자만 아니라 풍자 일반이 저와 같은 문체론적 특징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즉 우

1) 남정현 소설의 풍자적 기법에 관한 연구들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김상일, 「풍속과 알레고리」, 뺷한국문학대전집뺸, 태극출판사, 1976.

김병욱, 「천부적 이야기꾼」, 뺷분지뺸(겨레, 1988) 해설.

이어령, 「현대인의 허울을 벗기는 신랄한 풍자성」, 뺷분지뺸 해설.

강태근, 「한국 현대소설의 풍자성 연구」, 경희대 박사논문, 1988.

장영우, 「통곡의 현실, 고소의 미학」, 뺷작가연구뺸 2호, 1996..

이봉범, 「남정현 문학의 알레고리와 풍자」, 뺷반교어문연구뺸, 1997.

김상주, 「남정현 소설의 기법고찰」, 뺷사람의 문학뺸, 2000, 겨울호.

황도경, 「역설의 미학, 풍자의 언어」, 뺷남정현 전집 3뺸(이하 전집), 국학자료원, 2002.

김형중, 「남정현 소설의 정신분석학적 연구 시론- 풍자와 정신병리」, 뺷한국문학이론 과 비평뺸 26집, 2005.

박영준, 「슬픈 풍자와 가족서사의 유형」, 뺷비평문학뺸 38호, 2010.

2) 황도경, 위의 글, p.260.

(3)

스꽝스러운 상황을 과장되게 진지한 언어로 묘사하기, 심각한 주제를 가벼 운 태도로 넘겨버리기, 비속한 일상을 짐짓 사변적이고 전문적인 언어로 해 석하기 등은 모두 풍자 일반에서 자주 쓰이는 ‘아이러니’의 일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도경의 저 문장들을 인용한 것은 그의 분석이, 풍자 란 ‘감정 비용의 경제’라는 프로이트의 해석에 가장 육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점잖거나 진지한 상황에 대해 지출을 준비했던 감정 비용이 과장되게 우스 꽝스러운 반응에 의해 지출될 필요가 없어졌을 때, 그렇게 절약된 감정 비용 이 쾌락원칙의 영향 하에서 웃음으로 터져 나온다(그 역도 마찬가지다). 이 것이 풍자다. 비록 ‘풍자’란 단어를 직접 사용하고 있지는 않지만, ‘공격적인 희극성’의 심리적 메커니즘을 프로이트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고상한 것을 깎아 내리기 위해 앞에서 든 절차들 덕택에 숭고한 것을 평범한 것이라고 생각함으로써, 주눅 들지 않고, 그것들이 관념적으로 현존하더라도 군 대 용어로 <편히 쉬어> 자세가 될 수 있다면, 나는 점잔을 강제하는 데 드는 과잉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감정 이입에 의해 자극된 이 표상 방식과 이제까지 익숙해져 있던 표상 방식의 비교는 다시금 비용의 차이를 만들어 내며, 그 차이 는 웃음으로 방출된다.3)

이처럼 억제된 점잔떨기와 ‘편히쉬어’ 상태의 비교에서 발생하는 감정 비 용의 차이가 ‘공격적 웃음’의 기원이라고 프로이트는 말한다. 그리고 그에 따를 때, ‘캐리커처’, ‘패러디’, ‘가면 벗기기’ 같은 기술들이 ‘공격적 웃음’을 유발하는 데 사용되는 희극적 발화의 예들이다. 풍자가 대체로 주권자나 권 력자 혹은 부자들을 향하는 것도 이런 이유일 텐데, 이를 남정현 식으로 번 역해 볼 때, 풍자란 일종의 ‘방귀’다.

3) S. 프로이트, 「농담과 희극적인 것의 종류」, 뺷농담과 무의식의 관계뺸, 임인주 옮김, 열린 책들, 1997. p.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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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6.25때 월남한 제 친구 중에 북에 두고 온 제 동생 생각이 나서 맨날 휴 전선을 넘어 고향에 가 보는 꿈을 꾼다는데 하도 얘기가 궁한 판이니 그럼 그놈 얘기나 한번 멋들어지게 해볼까요. 하지만 제아무리 꿈 얘기라 하더라도 휴전선 을 무시하고 넘나드는 그런 꿈 얘기는 왠지 좀 마음이 켕기는데요. 괜찮을까요?

괜찮을까요?

“뭣하고 있어, 골아 이 자식아, 너도 정말 그러기야 응. 이 자식아 어서 말 좀 해라, 속시원하게 말 좀 해.”

그러구 저러구 이젠 정말 아랫배가 무거워져서 꼼짝을 못하겠네요. 뭐가 자꾸 만 밑으로 새어나올 것 같아요. 뿡 뿡 뿡, 요란한 소리와 함께 방귀가 나오는군 요. 아이 시원해라, 하지만 이 판에 방귀가 다 뭐람, 빵 빵 빵 빵, 어허 이거 한이 없는뎁쇼.

“아이구려, 골아 이 지식아, 아가리로 말하랬지 언제 누가 너보고 똥구멍으로 말하랬냐. 아이 구려.”4)

그 유명한 ‘「분지」 필화사건’을 겪은 남정현이고 보면, 휴전선을 무시로 넘나드는 꿈을 꾸는 친구 이야기가 박정희 정권 하에서 어떤 식의 핍박을 불러올지 충분히 예상 가능했을 것이다. 만약 ‘골’이 그 이야기를 한다면, 그 때 그가 무소불위의 사법 권력에 대해 지불해야 할 감정비용의 양은 절 대적이다. 그럴 때 입 대신 “똥구멍”이 말한다. 긴장하던 청자나 독자들은

‘편히쉬어’ 상태로 급변하고, 방귀의 의미는 절대 권력에 대한 조롱으로 바 뀐다. 필화 사건과 방귀 사이의 간극, 그렇게 절약된 감정 비용이 웃음으로 터져 나온다. 이를테면 말하기에는 감정 비용이 너무 많이 드는 이야기를 방귀의 방식으로 말하는 것, 그것이 풍자다.

물론 ‘풍자는 방귀다’라는 말을 ‘풍자는 쾌락원칙의 지배를 받는다’라는 말로 번역해도 무방하다. 실제로 방귀 자체가 ‘쾌를 불러일으키는 생리현상’

이란 의미에서만 아니라, 감정 비용의 과다한 지출이 불쾌를 낳는 반면, 그 것의 절약이 웃음, 즉 쾌를 낳는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프로이트에게 쾌락

4) 남정현, 「방귀소리」, 뺷남정현 전집 1뺸, 국학자료원, 2002, p.430.

(5)

원칙이란 ‘쾌를 추구하려는 경향’이라기보다는 ‘불쾌를 피하려는 경향’에 가 깝다. 풍자는 과도한 감정 비용의 지출(불쾌)을 절약해 웃음(쾌)을 유발하 는 방식으로 쾌락원칙의 지배를 받는다.

2. 풍자 너머의 풍자

그런데 문제는 종종 남정현의 풍자가 바로 그 쾌락원칙의 지배로부터 이 탈할 때가 있다는 점이다. 만약 남정현의 풍자를 풍자 일반과 구분하려 한 다면 다음과 같은 문장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러는 걸까. 또다시 그런 것을 물으면은 못쓴다. 왜 그 난자(亂刺)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그저 그뿐이다. 잘 드는 칼이 옆에 있으면 그 냥 나는 조금도 사정을 주지 않고 여기의 이 가슴을, 배를, 그리고 우릴 업신여기 는 외세를, 아니 자유를 싫어하고, 민주주의를 싫어하고, 통일을 싫어하는 일체 의 세력의 그 가슴을, 배를 시원스럽게 한번 푹푹 쑤셔보고 싶을 따름인 것이다.

탓으로 그 퍼렇게 날이 선 식칼을 들고 경계망을 펴고 있는 지아의 긴장된 모습 을 대하노라면 나는 그만 미안할이만큼 어떤 기대에 찬 엷은 흥분마저 느끼면서 몸을 자동적으로 서서히 지아 곁에 접근하게 마련인 것이다. 그리고 나는 칼날 을 향하여 바싹 고개를 쳐들고는 호소하듯 중얼거리는 것이다.

“지아, 정말 부탁인데 말이지, 그 좋은 칼을 그냥 들고만 있을게 아니란 말이 여. 한 번만, 옳지 조상들처럼 말이지, 우리 조상들은 우릴 침략하는 거란족을, 여진족을, 몽고족을, 그리고 수군을, 당군을, 왜군을, 셔먼호를 아주 멋지게 푹푹 찔렀단 말이야.……(후략)……”5)

당시 시대상을 감안해 백 번을 양보한다 해도 ‘여성혐오’의 혐의를 거두 기 힘든 이 작품 속에서

6)

, 거대한 가치를 표상하는 용어들을 함부로 뱉어

5) 남정현, 「광태(狂態)」, 뺷전집 1뺸, p.262.

6) 남정현의 소설 속에서, 미국의 천박한 대중문화에 오염된 누이, 겁탈당하거나 몸을 파

(6)

내는 언사로 미루어 볼 때, 화자는 편집증자다. 그리고 아내를 상습적으로 폭행하는 가정 폭력범이다. 그러나 이 경우, 기이하게도 비속한 일상(가정 폭력)과 거대한 언어(민주주의, 조국, 자유) 간의 차이가 웃음을 발생시키지 는 못한다. 우선은 온몸에 피멍이 든 채 찌르지도 못할 식칼을 들고 남편 앞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 울부짖는 아내 지아의 모습이 너무 참혹해서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깊은 이유는 이 화자가 분노를 절약하지 않기 때문이 다. 말하자면 저 장면에서 그가 아무리 천진난만함을 가장한다 해도, 감정 비용의 절약은 일어나지 않는다. 분노는 웃음으로 전화하는 것이 아니라 분 노 그 자체로, 사디즘이라는 병리의 형태로 표출된다. 게다가 화자는 확실 히 자신의 광태가 광태인 줄을 모르는 ‘천진난만함’도 가지고 있지 않다. 가 령 그에게는 병식(病識)도 있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러는 걸까”라며 자 신의 행동에 스스로 의문을 표하는 장면이 거기다. 자신의 악행을 인지하고 있는 셈인데, 천진난만해서 모르고 행하는 악행(가령 아이들의 놀이)은 웃 음(쾌)을 낳는다. 그러나 알면서 행하는 악행(가령 사회악을 빙자한 가정 폭력)은 격분(불쾌)을 낳는다.

요컨대 남정현의 풍자는 쾌를 추구하는 욕망의 지배를 받지 않고, 쾌 너 머의 쾌(죽음과 소멸을 마다하지 않는), 즉 ‘주이상스’(라캉)를 추구하는

‘(죽음)충동’의 지배를 받을 때가 많다. 아마도 이 점이 남정현식 풍자의 가 장 큰 특징일 텐데, 따라서 정신병리가 풍자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의심은 충분히 합리적이다.

남정현의 풍자에 웃음이 없거나 적은 다른 이유는 그의 풍자가 풍자 특 유의 공격성을 긍정적 인물이나 부정적 인물 모두에게 휘두르기 때문인 것처럼 보인다. 이는 그의 대표작 「분지」에서도 확인된다.

는 여인, 이른바 현대와 위생이라는 허영에 빠진 아내 등의 이미지는 수차례 반복해서 등장한다. 남정현의 여성관에 대한 비판적 논의로는 김종욱의 「민족담론과 여성의 이미 지- 남정현론」(뺷한국현대문학연구 13뺸, 2003)과 임경순의 「남정현 소설의 성- 여성과 윤리 그리고 반공주의」(뺷상허학보 21뺸, 2007) 등을 들 수 있다.

(7)

물론 이제 곧 펜타곤 당국이 만천하에 천명한 대로 기계의 점검이 끝나는, 앞으 로 일 분 후면 엄청난 폭음과 함께 이 향미산은 온통 불덩어리가 되어 꽃잎처럼 흩어질 테지요. 그리고 흩어진 자리엔 이방인들의 그 넘치는 성욕과 식욕을 시중들 기 위하여 또 하나의 고층빌딩이 아담하게 세워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조금도 염려하지 않습니다. 최후니깐요. 이제 저의 실력을 보여줘야지요. 예수의 기적만 귀에 익힌 저들에게 제 선조인 홍길동이 베푼 그 엄청난 기적을 통쾌하게 재연함으로써 저들의 심령을 한번 뿌리째 흔들어 놓을 생각이니깐요. 물론 저들은 당황할 것입니다. 어머니 그때 열렬한 박수를 보내주십시오.7)

‘한국문학사상 최초의 반미소설’이란 문학사적 평가가 이어지는 작품이 니만큼, 저 작품에서 풍자의 대상이 되는 것은 믿지 못할 나라 미국(펜타콘) 이다. 그러나 그 미국의 권력과 전쟁 무기에 맞서는 홍길동의 후예도 믿을 만한 화자는 못되는데, 왜냐하면 그는 스스로를 원자탄이 떨어져도 죽지 않 고 “런닝샤쓰”로 태극기를 만들어 “구름을 잡아타고 바다를 건너” “그 위대 한 대륙에 누워 있는 우유빛 피부의 그 윤이 자르르 흐르는 여인들의 배꼽 위에 제가 만든 이 한 폭의 황홀한 깃발을 성심껏 꽂아 놓을” 참이기 때문 이다. 다른 말로 편집증자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만 아니라 그의 모든 작품들에서 부정적 대상(권력자, 지배계층, 미국, 자본주의)과 그것을 비판하는 긍정적 대상(지식인, 작가, 4.19의 주역) 모두가 풍자의 대상이 된다. 노스럽 프라이의 분류에 따르자면, 알라존 (alazon)도 공격받고, 에이런(eiron)도 공격받는다. 지식인도 풍자되고 정치 인도 풍자된다. 게다가 그들은 모두 정신병리적 인물들로 풍자된다. 강박증, 망상, 호분증, 히스테리, 편집증 등이 그들의 증상이다. 그러자, 남정현의 소 설은 한국 풍자문학사상 가장 웃음을 적게 유발하는 ‘슬픈 풍자’

8)

가 된다.

그리고 가장 병리적인 풍자가 된다.

7) 남정현, 「분지」, 뺷전집 1뺸, p.395.

8) 박영준, 「슬픈 풍자와 가족서사의 유형- 남정현의 「분지」에 대하여」, 뺷비평문학뺸 38호, 2010.

(8)

남정현의 소설들 속에 이른바 ‘정신의학적’ 견지에서 정상적인 인물은 없 다. 욕망보다는 충동에, 에로스보다는 타나토스에, 리비도보다는 데스트루 도에, 쾌보다는 주이상스에 지배당하는 풍자, 그의 풍자는 ‘병리적 풍자’다.

3. 병식(病識) 있는 화자들

그러나 따지고 보면 한국문학사상 병리적 인물들의 등장이 남정현의 소 설에서 시작되었다거나 일반화되었다고 말하는 데는 무리가 따른다. 손창 섭, 장용학, 김성한, 서기원 등 이른바 전후세대 작가들에게서도 우리는 어 렵지 않게 병리적 인물들을 발견한다. 손창섭의 우울증적 인물들(「잉여인 간」, 「낙서족」, 「비오는 날」)은 유명하고, 장용학의 편집증적 서사(뺷원형의 전설뺸, 「요한시집」, 「역성서설」)는 슈레버 판사의 증례만큼이나 장대하다.

그렇다면 전후세대의 정신병리적 인물들과 남정현의 정신병리적 인물들의 차이는 무엇일까?

단순화를 피해야 하겠지만 우선 발견되는 차이는 ‘병식’의 유무다. 전후 세대 작가들의 작품 속에서 인물들은 병리적이지만 증상에 대한 자각이 없 다. 손창섭의 주인공은 우울하지만, 스스로 우울증을 자각하거나 의심하지 는 않는다. 장용학의 요설은 편집증의 모든 요소들을 다 갖추고 있지만 작 가는 그것을 편집증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대안적 문명론으로 이해하는 경 향이 있다. 그러나 남정현의 인물들에게는 데뷔작부터 명백히 병식이 있다.

“의학박사 송씨의 목구멍에 주사침이 걸렸다.”

하고, 사뭇 큰 소리를 외치는 자신의 모습은 아무래도 이 세상에 꼭 필요한 그런 소중한 사나이일 수밖에 없다고 느껴지는 것이었다. 이와 같이 쓸데없는 망상에 취해 있는 동안 송박사는 아무런 표정도 없이 마냥 그저 따분한 동작으 로 순이의 그 허연 엉덩짝에 힘없이 주사 한 대를 놔주고 휘딱 방문을 나서는 것이 이 또한 무슨 약속처럼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면 순이는 좀 어지럽다고

(9)

몇 번 짜증을 내다간 이내 잠들고 말기였다.

송박사의 진단에 의하면, 순이의 그 기이한 병은 일종의 신경증 증세라는 것 이었다. 하지만 어떤 이는 협심증 같다고도 또 누구는 만성 위장병에서 온 히스 테리 같다고도 하며, 누구는 또 심지어 간질병이라고 단언하면서 완전히 절망적 인 표정을 짓기도 하는 것이었다.9)

병식이 있는 이 작품의 화자는 또한 정신의학적 용어들에 대해서도 조예 가 있다. 스스로의 증상을 ‘망상’이라고 말하고, 순이의 증상을 ‘신경증’, ‘협 심증’, ‘히스테리’ 등의 용어로 의심한다. 이런 사태는 많은 소설들에서 발견 되는데, 만약 병식은 없으나 전형적으로 신경증 증상을 보이는 인물들(즉 작가가 신경증 증상에 대한 명백한 병식 속에서 성격을 부여한 인물들)을 나열한다면, 소설 속 인물 전체를 다 거명해야 할 정도다

10)

.

이와 관련해 남정현의 소설들이 대타자인 아버지 혹은 어머니에게 쓴 서 간체 형식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가령 대표 작인 「부주전상서」나 「분지」에서 화자는 자신의 기이한 행동이 어머니나 아버지에게 병리적으로 보이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아들로 등장한다.

그럴 때 편지 형식은 마치 자신의 증상을 합리화하려는 신경증자가 정신분 석의 앞에서 어쩔 수 없이 수행해야 하는 고백 행위를 닮는다.

병식 있는 병리적 인물들의 등장, 이와 같은 현상은 남정현이 등장해 소 설을 쓰기 시작하던 1950년대 말과 1960년대 한국에 정신병리적 현상들과 정신의학 담론이 어느 정도 일상화되어 있었단 사실을 추측하게 한다. 아마 도 그의 정신병리적 풍자에는 사회적 연원이 있었을 것이다.

9) 남정현, 「경고구역」, 뺷전집 1뺸, p.10.

10) 남정현 소설 속 인물들의 신경증에 대한 세밀한 유형화는 김형중의 앞의 글(「풍자와 정신병리」)을 참조할 수 있다.

(10)

4. 전쟁에서 규율로

남정현은 자신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병리적 인물들의 병인을 (얼마간 도식적이고 이분법적으로) 썩은 지배층과 미국의 (신)식민지적 지배, 계급 격차와 친일 잔재 등에서 찾는다. 사회적 요인이 신경증 형성에 영향을 미 치지 않을 리는 없으니 크게 틀린 진단은 아니다. 그러나 어떤 신경증을 신 경증으로서 판별하기 위해서는 증상을 분류하고 명명하고 치료할 수 있는 의학적 지식 담론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측면에서 볼 때, 남정현의 진단은 부분적으로만 옳다. 병을 병으로서 인식할 수 있는 개념적 도구들이 존재하 지 않고서는 병식이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병인이 사회의 부조리 에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병으로서 인준하고 특정한 의학적 상징체계 속에 기입하는 것은 최종적으로 ‘정신의학’이다. 그렇다면 사회적 병인을 언급하 기 이전에,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초반 즈음 한국사회의 어떤 변화가 정신의학 담론의 일상화를 필요로 했는지에 대한 논의가 우선되어야 한다.

여기 그 시기에 한국 사회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는지를 보고하는 두 편의 소설이 있다. 먼저 김광식의 「213호 주택」이다.

눈을 감고 걷던 김명학씨는 육십 미터쯤에서 눈을 떴다. 틀림없는 자기 집 앞 이었다. 그는 현관에 들어가 웃저고리를 벗어 던지고 곳간으로 나가 삽을 들고 나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길가에서 현관으로 들어가는 뜰길에 발자국을 내어놓 고 그 발자국 하나하나를 파내는 것이었다.

아내는 보다 못해,

“여보, 왜 이러세요, 왜 이래요.”

“왜 이러긴 뭐가 왜 이래.”

그는 곳간 담밑에 가서 벽돌을 안고 왔다. 벽돌을 수없이 날라놓고 그 발자국 구멍에 벽돌 둘씩을 가지런히 놓고 발돋움길을 만드는 것이었다.11)

11) 김광식, 「213호 주택」(뺷문학예술뺸 1956.6), 임형택 외 편, 뺷한국현대대표소설선 9뺸, 창 작과비평사, 1996, pp.388~389.

(11)

소설의 주인공 김명학은 증상으로 미루어 보건대 강박증자다. 무의미한 행위의 반복, 그리고 그 반복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의 불안이 강박증의 증 상이기 때문이다. 그는 정확한 보폭의 발자국을 새겨 집까지의 거리를 완벽 하게 보폭과 일치시키려는 행위, 그리고 현관 문 손잡이에 표시를 해 자신 의 집임을 확인하려는 행위를 반복한다. 그러나 요점은 증상의 형태가 아니 다. 그의 증상이 전후세대 작가들과는 달리 전쟁 체험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그의 증상의 기원에는 전쟁이 아니라 실직 체험이 있다. 즉 느닷없는 실직이 그의 병인이다. 정확하게 구분된 시간과 직장에 서의 규율에 그는 적응하지 못했고, 동일한 크기, 동일한 형태로 지어진 주 택단지에서 길을 잃은 바도 있다. 말하자면 그는 ‘규율’에 적응하지 못해 강 박증을 얻었다.

김동립의 「대중관리」 역시 유사한 상황을 보여준다.

작업표 - 여직공 H의 실례가 도표화되어 있다.

1. 작업 내용, ‘소매 만들기’.

2. 한 건의 소요시간, 5분 30초.

3. 하루의 작업시간, 7시간 10분.

(이 작업시간은 아침 8시부터 오후 6시 퇴근할 때까지 점심시간 한 시간과 오 전 10시에서 15분, 오후 3시에서 15분, 합계 30분간의 휴식시간에다가 재봉틀에 기름 주는 시간과 변소에 가는 시간을 합한 20분을 빼고 난, 순전히 작업에만 소요하는 시간을 말함.)

4. 따라서 H가 생산하는 하루의 생산량은 ‘소매 만들기’ 78개.

5. 잉여시간, 5초.12)

이 작품의 두 주인공 창수와 이계장이 보여주는 불안히스테리는 전후세 대의 전쟁과 무관하다. 주인공 창수가 불안 발작을 일으키기 전에 본 저 시 간표는 푸코의 뺷감시와 처벌뺸 이후로 어김없이 ‘규율 권력’이란 단어를 연

12) 김동립, 「대중관리」(뺷사상계뺸 1959.12), 임형택 외 편, 앞의 책, p.400.

(12)

상시킨다. 푸코에 따를 때, “규율은 신체, 시간, 노동력을 분배하는 기술”

13)

이기 때문이다. 공장은 일종의 판옵티콘이고, 노동하는 신체에 대해서는 분 초 단위로 규율이 강제된다.

요컨대 저 시기 즈음 신경증의 병인이 변했던 것이다. 저 시기 각종 신경 증들의 새로운 병인 자리에는 규율 권력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던 듯하다.

그리고 규율 권력의 가장 유력한 지원군이 바로 ‘정신의학’이다.

5. 정신의학과 규율권력

정신의학과 규율 권력의 관계에 관한 1973년 12월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의 강연에서 푸코는 정신의학을 이렇게 규정한다.

정신의학 권력이란 의학적 과학 내지 정신의학의 이름으로 현실적인 것을 광 기에 부과하는 그런 추가적 권력이라고 말입니다. …(중략)…임상의학적 혹은 분류학적 담론, 질병분류학적 담론이라고 부를 수 있을 그런 것은 대략적으로 말해 광기를 하나의 질병, 아니 그보다는 일련의 정신질환으로 묘사하고 각각의 질환에 대해 그 징후, 그것에 고유한 진행 추이, 진단적 요소들, 예후 진단의 요 소 등을 서술하려는 것입니다.14)

다시 한 번 강조해서, 남정현 소설 속 병리적 인물들에게는 병식이 있었 다. 그러나 병식이 있기 전에 먼저 있어야 할 것은 그것을 병으로서 알아보 기 위한 지식 혹은 담론이다. 어떤 증상은 분류되고 묘사되고 징후와 추이 가 진단되어야 하고 예후를 살펴야만 의학장에 하나의 명칭으로서 등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필, 이른바 ‘규율 권력’이 주권 권력을 제치고 권력의 지배소 자리를 점

13) 미셸 푸코, 뺷정신의학의 권력뺸, 오트르망 옮김, 난장, 2014, p.116.

14) 미셸 푸코, 같은 책, p.193.

(13)

유하던 시기에 정신의학이 하나의 학문으로서 등장한 것은 따라서 우연이 아니다. 정신의학은 의학의 이름으로 개인의 신체에 규율을 부과할 권리를 생산한다. 아이러니하게도 “현실적인 것을 광기에 부과하는 추가적 권력”

이 바로 정신의학이다. 이 말은 뒤집어도 무방한데, 실은 정신의학은 광기 를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광기를 생산한다. 즉 비정상성을 생산함으로써 정 상성의 영역을 구축하고, 구축된 정상성 너머의 것들(부랑아, 비행자, 신경 증자, 정신병자)에게 합당한 규율을 부과할 권리를 권력에게 부여한다. 규 율 권력과 정신의학은 그런 방식으로 협조한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권력의 테크놀로지의 입장에서 볼 때 정신의학과 삼청교육대는 크게 다르지 않다.

따라서 만약 특정 시기에 한 나라의 문학장에 병식을 가진, 혹은 정식으 로 의학적 명칭을 가진 정신병리자들이 대거 등장하기 시작했다면, 그 말은 규율 권력이 이제 그 사회의 지배적인 권력이 되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무방하다. 규율 권력의 일상화가 정신의학적 담론의 일상화를 초래하기 때 문이다. 나는 정상인가? 나는 히스테리증자인가? 네겐 강박증이 있어. 내 생각이 망상일까? 등등, 이른바 ‘비정상성에 대한 의문’은 한 사회의 규율 권력을 원활하게 작동하게 한다. 아니나 다를까, 군사 쿠데타 이후, 박정희 가 전 국토에 군대의 규율을 강요함으로써 나라 전체를 병영화하기 시작하 던 1960년대 초․중반, 군대나 학교 혹은 병원 같은 규율 장치들을 소재로 한 소설들이 많이 발표되었던 것도 우연은 아닌 셈이다.

가령, 최인훈이 마치 프로이트의 뺷꿈의 해석뺸을 소설적으로 실험해 본 듯한 작품 뺷구운몽뺸(1961)을 발표하고, 김승옥이 이른바 ‘자기 세계’ 강박증 자들에 대한 소설 「생명연습」(1962)으로 로 등단한 것도 이 무렵이다. 이청 준은 그보다 조금 늦은 1965년에 등단했지만 등단작은 ‘자아망실증’ 환자의 이야기를 다룬 「퇴원」이었고, 이후로 즐겨 신경증자들을 소설의 주인공으 로 등장시켰다. 문학사는 이 세 작가들을 1960년대 한국 소설의 기수들이라 고 기록한다. 그러나 이 목록은 훨씬 길어질 수도 있는데 홍성원의 「빙점지 대」(1964)와 「디데이의 병촌」(1966), 최인호의 「견습환자」(1967), 신상웅의

(14)

「히포크라테스의 흉상」(1968) 같은 작품들이 있고,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윤흥길도 이 대열에 합류한다.

남정현의 ‘병리적 풍자’가 자리 잡은 위치가 바로 이 계보의 초입이다. 그 는 풍자라는 오래된 양식에 정신병리를 들여온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그는 한국 소설사의 중요한 계보들 중 하나의 선구자다. 그러나 풍자와 정신 병 리가 별 갈등 없이 한 작품에서 공존할 수 있는지는 미지수다. 왜냐하면 풍 자는 그것이 근대보다는 고대와 중세에 승했다는 사실로도 알 수 있듯이, 모름지기 주권 권력을 대상으로 삼을 때 빛나는 양식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화자와 인물들에게 (죽음) 충동에서 발현한 듯한 병리적 증상과 병식을 부 과한 이상, 감정 절약의 경제도 잘 발생하지 않는다. 남정현의 풍자가 웃음 너머의 슬픔이나 광기에 이름으로써 종종 쾌락원칙 바깥으로까지 폭주하 게 된 이유도 아마 여기에 있을 것이다. 남정현의 작품은 풍자와 정신병리 가, 주권권력 시대의 양식과 규율 권력 시대의 증상이 만나 갈등하는 일종 의 각축장이었고, 그 각축으로 인해 풍자 너머의 풍자로 이행한다.

6. 시신 위의 권력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해 남정현의 병리적 풍자 속에서 각축했던 것은 주권 권력 시대의 양식과 규율 권력 시대의 증상들만은 아니었다. 가장 늦게 인 류사에 등장한 제3의 권력, 그것을 푸코는 뺷안전, 영토, 인구뺸

15)

에서 ‘생명 권력’이라고 부르는데, 아감벤은 이 권력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생명 정치적 영역을 분할하는 근본적인 휴지는 인민과 인구 사이에 있는 것으 로서, 그것은 인민 자체의 품속에 있는 인구를 드러내는 데, 다시 말해 본질적으 로 정치적인 단위 집단을 본질적으로 생물학적인 단위 집단으로, 즉 출생과 죽 15) 미셸 푸코, 뺷안전, 영토, 인구뺸, 오트르망 옮김, 난장,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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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건강과 질병이 반드시 규제를 받아야만 하는 단위 집단으로 변형시키는 데 있는 것이다. 생명 권력의 등장과 더불어 모든 인민은 인구와 중첩된다. 즉 모든 국민은 동시에 인구이기도 하다.16)

아감벤의 요약에 따르면, 생명권력이 수행하는 정치는 규율 권력과 달리 개인의 신체에 부과되지 않는다. 생명 정치는 개인이 아니라 생물학적 단위 수준으로 환원된 ‘인구’에 대해, 가장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비용과 통계의 측정에 따라, ‘안전’이라는 이름으로 작동된다. 신자유주의를 떠올리면 가장 적합한 예가 될 텐데, 실제로 푸코가 뺷생명관리권력의 탄생뺸에서 분석한 것 이 바로 신자유주의였다. 1960∼1970년대 한국의 경우, 박정희가 수행했던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주민등록, 인구센서스, 가족계획(산아 제한), 새마을 운동, 건강보험 같은 정책들은 바로 이 생명 권력이 수행한 정치의 다른 이 름들이다.

그런데 이른바 압축적 근대화, 혹은 (탈)식민지 근대화를 수행해야 했던 상당수의 국가들에서 마치 무슨 기능처럼 등장하곤 했던 ‘개발 독재’는, 저 세 가지 권력의 테크놀로지를 비동시적인 것들의 동시성 원리에 따라 착종 시킨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독재자가 사법 메커니즘에 따라 통치하되 (주권 권력), 각종의 규율 장치를 동원해 사회 전체를 병영화한다(규율 권 력). 동시에 효율적인 비용 계산과 통계를 통해 생물학적 인구 전체에 대해 안전 메커니즘이라는 이름으로 개입한다(생명 권력). 말하자면 3중의 착종 인 셈이다.

프레드릭 제임슨은 소설을 두고 한 사회의 상징화 형식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골드만도 소설과 사회의 구조적 상동성에 대해 말한 바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그와 같은 착종 현상이 소설에도 어떤 낙인처럼 흔적을 남길 것 임은 분명하다. 이제 우리는 바로 그런 일이 남정현의 소설에서 일어났다고

16) 조르조 아감벤, 뺷아우슈비츠의 남은 자들 - 문서고와 증인뺸, 정문영 옮김, 새물결, 2012.

p.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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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해도 될 듯하다. 남정현의 소설 속에서 우리가 최종적으로 목도하게 되는 것은 이 세 가지 권력의 테크놀로지가 ‘구조적 상동성’의 원리에 따라 소설 속 한 인물의 시신 위에서 각축하는 장면이다.

가족계획이란 도대체 뭐냐구요? 누가 뭐라고 변명을 하든 간에 가족계획이란 살인계획인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못하는 이유며 원인은 사람이 많은 데 있으니 앞으로는 이 이상 더 사람이 생기지 못하도록 자궁 내에서 완전히 처형을 시키자는 계획인 것입니다. …(중략)…말 하자면 인구증가율에 경제성장률을 앞세우면 될 것이 아니냔 말씀입니다.17)

아버지, 분노의 독소란 참으로 강력하더군요. 그리고 저는 자제력을 잃었으니깐 요. 저는 정말 제 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 때 정 그러면 (피임용 루프를- 인용자) 내가 빼주겠다고 장담하고 나서 볼 것도 없이 청자를 때려눕히고 자궁 속 깊숙이 저의 손을 쑥 틀어넣어 가지고는 무엇인가 잡히는 것을 한 웅큼 왈칵 끄집어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 불행하게도 제가 잡은 것은 루프가 아니라 질내의 근육이더군요. 정말 순식간의 일이었습니다. 청자는 소리 한 번 지르지 못하고 아마 뻗은 모양입니다. 하반신을 흘러넘치는 피, 그런데 왜 그런지 저는 피로 보이 지 않더군요. 그것은 고름이었습니다. 청자의, 저의, 아니 정부의, 조국의, 좌우간 어디에선가 크게 곪은 부종이 콸콸 무너져 내리는 누런 고름의 강하였던 것입니다.

왜 그렇게 통쾌하던 지요. 시원했습니다. 저는 웃통을 벗고 공연히 들뜬 기분으로

“죽어봐야 알지. 암 죽어봐야 알고 말고.”18)

감정비용의 절약이라곤 없을 만큼 잔혹한 저 장면의 맥락은 이렇다. 국가 시책으로서의 가족계획에 적극 참여한 아내 신옥이 피임용 루프 시술을 했 다. 격분한 화자는 그녀의 자궁에서 루프를 꺼내려다가 결국 아내를 죽이고 만다. 그녀의 피에서 그는 썩은 조국의 고름을 본다. 웃음이 나오질 않는 것으로 미루어, 우리는 예의 그 쾌락원칙을 벗어나버린 풍자를 다시 만난

17) 남정현, 「부주전상서」, 뺷전집 1뺸, p.324.

18) 남정현, 같은 책, p.327.

(17)

셈이다.

인용문에서 국가는 경제적 이유에 따라 생물학적 단위 수준으로 환원된 인구에 개입하는 ‘가족계획’의 시행자, 곧 생명 권력으로 작동한다. 한편 한 개인의 신체에 피임용 루프를 시술하는 병원은 규율 장치로 기능한다. 설사 루프를 시술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사법적 처벌을 받지는 않는다는 의미에서 그것은 사법 메커니즘이 아니라 규율 메커니즘에 속한다. 아내 신옥은 바로 그 규율에 복종함으로써 피임 시술을 받는다. 그러나 이 모든 정책을 입안하 고 실행한 자는 박정희다. 그는 정부 시책을 비판할 경우, 설사 그것이 정치로 부터 자유로운 문학장의 일이라 할지라도, 예외상태의 법률(반공법)에 의거 처벌할 수 있는(‘분지 필화 사건’은 그 대표적 예다) 무소불위의 주권자다.

3중으로 착종된 권력의 테크놀로지는 그런 식으로 소설 속에 흔적을 남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작중 주인공의 태도다. 그는 ‘천진난만한 화자’로 서 여전히 풍자적 웃음을 의도하지만, 결국 원하는 바와는 달리 감정 비용 의 경제를 포기하기에 이른다. 그가 피임 시술을 한 아내를 대하는 방식, 그것은 마치 봉건적 주권 권력이 신민들을 대하는 태도와 다르지 않다. 혹 은 난폭한 가부장이 아녀자를 대하는 방식과 다르지 않다. 「광태」에서와 마 찬가지로, 그래서 독자들은 웃을 수 없다. 감정의 비용이 절약되지 않고, 격 분의 형태로 모두 방출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신옥의 시신 위에서 세 종류 의 권력이 착종되고 또 각축한다. 병리적 풍자는 바로 그 착종 상태의 상징 화, 혹은 상징화 불가능성의 형식이었을 것이다.

7. 풍자의 운명

문학사는 특정 양식이 새로운 시대를 감당하기 어려워 소멸하는 장면들 을 여러 차례 보여 준 바 있다. 풍자도 그런 양식들의 운명을 벗어날 수는 없다. 그러나 남정현의 의견은 다른 듯하다. 2001년에 이루어진 강진호와의

(18)

좌담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제 생각엔 풍자정신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한정된 사람에게서만 나타 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보면 우리 민족에게 있어선 체질화된 민족성의 한 부 분이 아닌가 그렇게 여겨지거든요. 수많은 세월 외세의 간섭과 그 지배 속에서 살아오는 동안 그에 대한 분노와 저항의 불씨가 풍자와 같은 그런 간접적인 형 태로 나타난 것이 아니겠느냐 그 말입니다. 그런데 그 풍자라는 것이 울분을 삭 이는 일종의 생존양식이기도 했겠지만, 우리 민족에게 있어선 결국은 그 풍자란 형식의 저항정신이 외세를 물리칠 수 있는 그런 어떤 힘의 근간이 된 것이 아닌 가 그런 생각도 들 때가 있거든요19)

풍자가 ‘분노와 저항이 간접적으로 발현되는’ 양식이라는 그의 말에는 동 의할 수 있다. 프로이트가 이른바 ‘감정 비용의 절감’이라고 부른 것도 바로 그런 현상이다. 풍자가 “울분을 삭이는 일종의 생존양식”인 것도 그런 이유 이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 민족에게 체질화된 민족성의 한 부분”인지에 대 해서는 선뜻 동의하기 힘들다. 왜냐하면 지금 한국 문학장에서 전통적인 의 미의 풍자는 사라져 가고 있고, 민족이란 범주는 물론이고 풍자의 대상마저 모호해졌기 때문이다.

풍자의 대상이 모호하다는 말은, 권력이 더 이상 인격의 형식으로 존재하 지 않음을 의미한다. 편재하는 규율 권력과 생명 권력이 (이제 풍자가 주로 공격하던 박정희 같은 주권 권력은 다시 등장하기 힘들다. 그리고 규율 권 력과 생명 권력은 인격이 아니라 시스템이다) 이미 오래 전에 긴밀하게 착 종되어버린(신자유주의가 그것이다), 그래서 권력이 도대체 어디에서 어떻 게 작동하는지도 모르는 채로 권력을 대면해야 하는 작금의 한국 사회에서 (가령 ‘세월호 특별법을 제정하라’라는 구호 자체가 우리를 좀 더 안전하게 통치하라라는 말이 되어 버리는 상황 속에서) 풍자는 대상을 잃고 힘도 잃

19) 남정현, 강진호와의 대담, 뺷전집 3뺸, p.29.

(19)

는다. 혹은 만인이 만인에 대한 풍자의 대상이 된다. 왜냐하면 누구도 더 이상 점잖지 않고, 굳이 공격하지 않아도 다들 곤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직 남아 있는 풍자가 있다면, 그것은 가짜뉴스들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남정현의 소설들은 어쩌면 한국문학사상 (최초는 아 니더라도) 아주 이른 시기에 규율 권력과 생명 권력에 반응했던, 그러나 바 로 그 이유로 풍자의 범위를 초과해 파산할 수밖에 없었던 ‘최후의 풍자’였 다고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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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유머’는 ‘풍자’와 달라서 현재 한국문학장에 남아 있는 웃음은 대부분 유머에서 나온다 는 말은 덧붙여 둔다.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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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Psychopathology and Technologies of Power in Nam Jung-hyun's Novels

- Satire and psychopathology 2 -

21)Kim, Hyoung-joong*

This paper begins by relighting the satire in Nam Jung-hyun's novel from a psychoanalytic point of view and revealing that his satire is different from the usual satire. In the case of general satire, laughter is caused by the reduction of emotional cost, but Nam Jung-hyun's satire often does not cause laughter because it cannot reduce the emotional cost. The origin of such psychopathic satire is a change in Korean society in the 1960s and 1970s, when psychiatry emerged as an important technology of power. As psychiatric discourses become socially generalized, informed characters are no longer “natural”. In addition, as the governing technology of the biopower becomes subordinate to the disciplinary power, the person of authority as the object of satire disappears. The conclusion of this paper is that power as a system rather than a personality eventually makes satire impossible.

Key Words : satire, psychopathology, Nam Junghyun, Bunji, disciplinary power, biopower, technologies of power, emotional cost, laughter, Kim Gwangsik, Kim Donglip, 1960s∼1970s

* Chosun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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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이름: 김형중 소속: 조선대학교

전자우편: kimhj@chosun.ac.kr 논문투고일: 2020년 1월 8일 심사완료일: 2020년 2월 24일 게재확정일: 2020년 2월 24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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