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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2013 우리나라 종교정책의 문제점과 개혁방향에 관한 고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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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집 2호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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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종교정책의 문제점과 개혁방향에 관한 고찰

투고일: 2013.06.18 심사일: 2013.07.11 게재 확정일: 2013.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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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집 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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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초록]

종교는 문화의 중요한 구성요소 중 하나다. 이 논문은 우리나라 종교정 책이 과연 공익 증진이라는 본연의 책무에 충실한가라는 의문에서 출발한 다. 우리나라 헌법은 종교의 자유와 정교분리 원칙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실제 종교정책은 합리적 분석과 사회적 공론 과정 없이 정 치적 상황에 따라 좌우되어왔다. 공인교주의와 이중특혜격차를 기조로 하는 한국 종교정책은 종교 갈등을 유발할 개연성이 상존하며, 자칫 사회적 분열 과 대립을 격발시킬 우려가 크다. 2008년 범불교도대회를 계기로 정부․공직 자의 종교차별 금지와 종교중립 의무가 제도화하긴 했으나, 이는 부분적 정 책 수정에 그친 것이라 할 수 있다. 향후 한국사회의 심각한 종교 갈등 가능 성을 사전에 방지하고 공익 증진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공인교주의 및 이중 특혜격차의 철폐가 필요하다.

[ 주제어 : 종교정책, 종교 갈등, 공인교주의, 이중특혜격차 ]

김정수

한양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투고일: 2013.06.18 심사일: 2013.07.11 게재 확정일: 2013.07.27

우리나라 종교정책의 문제점과 개혁방향에 관한 고찰 *

* 이 논문은 2012년 정부(교육과학기술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한 연구다 (NRF-2012S1A5A2A01018112). 이 논문의 준비 과정에서 작성한 첫 번째 초고는 2012년 한국행정학회 동계학술대회에서, 두 번째 초고는 2013년 한국정책학회 하계학술대회에서 발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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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서론

종교는 문화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종교는 문화의 실체이고 문화는 종교의 형 식”이라는 틸리히(P. Tillech)의 지적처럼 종교와 문화를 서로 단절된 것으로 분리시키는 것은 사 실상 불가능하다(안국진․유요한, 2012: 189). 세계 어느 나라든 문화 ․ 예술이 대부분 신앙 차원에 서 발달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종교에 연원을 두었다 해도 오늘날 종교적 성질은 퇴색 하고 보편화된 문화의 일부로서 우리 삶 속에 녹아 있는 경우도 많다(문화체육관광부, 2009: 7). 이 런 관점에서 보면 종교정책은 문화정책의 하위 영역이라고도 할 수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 문화정 책을 총괄하는 중앙 행정부서인 문화체육관광부에 종교 관련 행정 업무를 담당하는 종무실이 있 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다른 모든 공공정책과 마찬가지로 종교정책 역시 궁극적 지향점은 공익의 증진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종교와 관련된 공공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공익을 증진하는 것이 종교정책의 핵심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종교정책은 과연 그 본연의 임무에 충실했다고 평가할 수 있는 가? 아쉽게도 그렇지 못하다는 판단이 이 논문의 출발점이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각종 종교 관련 정책들은 공익보다는 종교계의 이익 보장에 더 치우친 경우가 많았다. 특히 근래에는 정부 및 정 책을 매개로 하는 종교 갈등이 격화되면서 종교가 오히려 사회적 분열과 대립의 진원지가 되기도 했다. 이렇게 된 근본적 이유는 우리나라에서 종교정책의 성립과 변화 자체가 공익에 관한 뚜렷한 목표의식이나 합리적 분석 없이 정치적 상황에 따라 좌우되어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종교정책은 어떻게 형성되고 변화해왔는가? 한국사회의 종교적 상황은 종교정책과 어떻게 연관 되어 있는가? 그리고 공익 증진이라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기 위한 종교정책의 방향은 어떤 것인 가? 이것이 이 논문의 핵심 연구 질문이다.

II. 기본 개념 및 기존 연구들

1. 종교와 종교정책

‘종교’란 사회문화 속에 폭넓게 스며들어 있는 복합적 현상이기 때문에 그 개념을 명확히 정의 하기란 쉽지 않다(오경환, 1990: 39-71). 종교사회학자 오토 마두로(1988: 46)는 종교란 “신자 들이 그들의 자연 ․사회적 환경에 선행하고 또 그보다 우월하다고 간주하며, 그와 관련하여 의존 감을 표명하며, 그 앞에서 특정 행동 유형을 따라야 할 의무를 지고 있다고 간주하는 어떤 힘들과 관계되는 한 사회집단의 공통의 담론 및 실천구조”를 의미한다고 했다. 김종서(2005: 205)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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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 적 대상으로서 종교의 개념을 “초월(transcendence)에 연관된 신앙(belief)과 실천(practice) 및 조 직(organization)의 체계”로 이해하고 있다. 이원규(2006: 50)는 “궁극적 의미의 문제에 초점을 맞 춘 상징 ․ 믿음 ․ 가치 ․ 수행의 제도화된 체계”가 종교라고 정의한다. 이런 관점에서 종교는 “개인이 나 사회에 ‘궁극적 의미’ 혹은 ‘최상의 중요성(supreme significance)’을 부여해주는 원천”이 된다(최 우영, 2009: 334).

한편 ‘종교정책’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한 개념 정의를 제시한 연구는 찾아보 기 어렵다. 일단 용어에 있어서는 ‘종교정책 ․ 종교행정’이라는 용어와 ‘종무정책 ․ 종무행정’이라는 용어가 엄밀한 개념 정의 없이 혼용되고 있다(한국문화정책개발원, 1997; 강돈구, 2008: 3). 한국 정부는 건국 이래 종교 담당부서의 명칭에는 줄곧 ‘종무’라는 용어를 사용해온 반면, 종교 관련 업 무에 대해서는 ‘종교정책 ․ 종교행정’이라는 용어를 써왔다. 그러다 2007년부터는 ‘종무정책 ․ 종무 행정’으로 표기하고 있다(문화체육관광부, 「문화정책백서」 각 연도 참고). 굳이 구분하자면, ‘종무 행정’이란 종무실에서 수행하는 행정 업무를 일컫는 개념으로,1) 그리고 ‘종교정책’이란 단지 종무 실의 업무 영역에 국한되지 않고 종교와 관련된 국가의 모든 공공 결정과 활동을 포괄하는 개념으 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고병철(2011: 3)은 종교정책을 “이미 발생한 또는 발생 가능한 다 양한 종교 문제에 대한 국가의 공익(목적)적 활동”으로, 김정수(2012)는 “종교와 관련된 공공 문제 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의 결정과 활동”이라고 정의했다. 이러한 개념 정의는 정책의 규범적 지향점 으로 공익 혹은 공공 문제 해결을 설정한다는 점에서 당위론적 정의라고 할 수 있다.

2. 기존 연구들

종교 문제에 관한 학술적 연구는 크게 1) 종교 자체에 관한 연구와 2) 종교와 여타 요소의 접합 영역에 관한 연구로 대별할 수 있다. 첫 번째 종교 자체에 관한 연구는 또 개별 종교에 대한 신학적 연구와 종교 일반에 관한 종교학적 연구로 구분된다. 두 번째 유형의 연구로는 종교와 사회, 종교 와 법, 종교와 문화, 종교와 정치 등의 관계에 관한 개별 학문 분야의 연구들이 있다. 특히 종교사회 학은 에밀 뒤르켕, 막스 웨버 등의 선구자적 연구에 힘입어 사회학의 주요 분야로 성장했다(오경 환, 1990; 김종서, 2005). 그중에서도 종교 갈등이라는 문제는 종교 연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화 두 중 하나였다(윤이흠, 1987; 정갑영 외, 2000; 김경재, 2001; 전성표, 2001; 전성표, 2007; 곽병찬, 2008; 서명원, 2008; 최우영, 2009;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 불학연구소 ․ 대한불교조계종 ․ 종교평 화위원회, 2010; 신재식, 2011). 그러나 여기서 주된 초점은 어디까지나 종교였을 뿐 정부의 정책 메커니즘이 중요한 주제가 아니었다. 특히 종교 갈등에 관한 외국의 주요 연구들은 주로 이슬람권 과 유대 ․ 기독교권 간의 유혈충돌같이 국가 간 분쟁 혹은 인종적 ․ 민족적 ․ 문화집단적 대립에 관한 1) ‘종무행정’이라는 단어는 불교 종단에서 내부 행정관리를 뜻하는 용어로 보편적으로 사용해오고 있다. 따라서 종교와 관련된

정부의 공공행정과 정책은 종교정책 혹은 종교행정으로 표현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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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다(Huntington, 1997). 그에 비해 우리나라의 종교 갈등은 동일한 국가 ․ 민족 ․ 인종 ․ 문화권 내 의 대립 현상이라는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유승무, 2009: 90-91).

한편 우리나라에서 종교정책에 관한 연구는 종교계 이외의 학계에서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 다. 수십 년간 종무실이 문화부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문화정책 연구에서 종교정책이 다루어졌 던 적은 거의 없었다. 국정을 연구하는 행정학이나 정책학계에 있어서도 종교와 관련된 정부 역 할에 대한 연구는 전혀 주목받지 못했었다.(김재득, 2004: 81) 대규모 종교문화 행사에 대한 지 방자치단체의 지원에 관한 정명희(2012), 종교와 정부 신뢰와의 관계에 대한 이승종(2010), 종 교와 지역축제 및 지역문화 개발의 관계를 다룬 서순복(2004, 2005), 기독교와 민주주의의 관계 를 분석한 백완기(1999)의 연구 등 극소수를 제외하면 사실상 전무한 실정이다. 우리나라 종교 행정 체계를 다룬 한국문화정책개발원(1997), 고병철(2008; 2011) 등의 연구는 주로 문화부 종 무실의 조직 구조와 기능 및 관련 법령에 대한 기술적 소개에 그치는 수준이다. 미국 행정학계의 경우, 종교와 공공행정에 관한 몇몇 연구들이 있기는 하다(Houston, Freeman and Feldman, 2008;

Houston and Cartwright, 2007; King, 2007; Zinkie, 1999; Chandler, 1999; Bruce, 1999; Nederman, 1998). 그러나 미국은 기본적으로 기독교 바탕 위에 세워진 사회라는 점에서 한국과는 큰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3. 종교정책 연구의 필요성

종교정책의 현실은 앞에서 제시된 규범적 개념 정의에서 그리는 이상과는 거리가 있을 수 있 다. 현실의 종교정책은 “국가-종교 간 전략적 상호작용의 결과”(강인철, 2010: 165)인 동시에 “국 가와 종교의 관계를 실질적으로 규정하는 매개수단”(박수호, 2009: 173)으로 작용한다. 그런데 여 러 논자가 지적하듯이 한국사회에서 종교와 국가 간의 관계는 바람직하지 못한 방향으로 설정되 곤 했다(강돈구, 2008: 1; 한국기독자교수협의회 ․ 한국교수불자연합회, 2008). 정교분리 및 종교 자유 원칙이 있음에도 건국 초부터 현재까지 종교와 연관된 많은 사안에 대하여 국가가 직간접적 으로 관여해온 것이 한국사회의 역사적 현실이다. 즉, 종교정책이 공익증진이라는 당위성과는 상 관없이 ‘종교의 성장 혹은 축소를 조장하는 국가 활동’으로 작동한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종교정책에 대한 진지한 학문적 연구와 논의가 필요한 까닭은 종교정책이 한 사회의 종교지형 전체를 좌우할 정도로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종교는 인간 내면의 신성한 믿음에 뿌리 를 둔 정체성 혹은 “가장 궁극적인 존재의 의미”를 형성한다(최우영, 2009: 333). 이 때문에 종교로 인한 사회적 순기능도 매우 크지만, 반면 종교적 갈등은 다른 갈등에 비해 더욱 감정적이고 과격 해지기 쉬우며, 그 파장 또한 엄청나게 증폭될 위험이 상존한다(유승무, 2009: 104; 강돈구, 2003:

65). 특히 최근 한국사회의 종교 갈등은 단순히 사적 영역에서의 종교 간 다툼을 넘어 “정부 및 공 공기관의 관여 및 정책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안국진 ․ 유요한, 2010: 200). 따라서 종교정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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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 공익증진이라는 본연의 책무를 다할 수 있도록 현재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바람직한 방향에 대해 고민하는 연구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III. 우리나라의 종교적 상황

1. 우리나라의 종교지형

우리나라 종교지형의 첫 번째 특징은 전형적인 다종교 사회라는 점이다. 우리 헌법은 국교를 인정하지 않으며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2009년 현재 우리나라에는 약 50여 개 종교, 500 여 개 종파, 그리고 630여 개 종교법인이 혼재해 있다(문화체육관광부, 2010: 11).

둘째, 종교인구의 비율이 계속 증가해왔다. 1918년 무종교인은 전체 인구의 무려 95.8%였으나, 1960년대 초 80%대로 줄어들었으며, 1970년대에는 60% 이하로 감소했다(강인철, 2006: 136).

그리고 <표 1>에서 보듯이, 2005년 현재 우리나라 국민 중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전체 인구 의 절반이 넘는 53.5%에 달한다.

셋째, 전통 민족종교들이 거의 쇠퇴했다. 1915년 천도교를 비롯하여 각종 민족종교의 신자 수 는 14만 9876명이나 되었다. 이는 당시 천주교인의 약 두 배에 해당하며, 불교 및 개신교와는 비슷 한 수준의 교세였다(윤선자, 2006: 83). 한국전쟁 이전만 해도 불교 ․ 개신교 ․ 유교 ․ 천도교 ․ 대종교 가 이른바 ‘5대 종교’로 병존했다. 그러나 그 후 유교를 비롯해 전통 민족종교들의 교세는 현저하게 위축되어 지금은 자취를 감추었거나 극히 미미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2)

넷째, 불교 ․ 개신교 ․ 천주교 3대 종교의 독과점적 구도가 확고하게 고착되어 있다. 조선 시대 후기부터 전통종교, 외래종교, 신흥 민족종교 등이 다원적 경쟁 구도를 형성했지만 해방 이후에는 기독교가 급성장했다. 특히 개신교는 이미 1952년 천도교 ․ 유교 ․ 대종교를 추월하며 불교 다음의 제2종교로 급부상했다. 여기에는 미군정과 이승만 대통령의 개신교 편향적 정책이 큰 몫을 했다(박 종주, 1994: 203; 박수호, 2009: 176-179). 한편 1960년대 들어 천주교가 제3종교의 교세를 확보 했고(강인철, 2003a: 139-140), 1960년대 말에 이르면 불교 ․ 개신교 ․ 천주교가 “종교적 중심부”를 이루는 독과점 체제가 확립된다(강인철, 2001: 159). 그리고 <표 1>에서 보듯이 오늘날에는 이 세 종교가 전체 종교인 중 98.1%를 차지할 정도로 압도적 강세를 보이고 있다.3)

2)

3)

대종교는 이미 1950년대 초반에 소수종교로 전락했고, 1960년경 천주교가 유교를 추월하고 천도교와 거의 비슷한 신도 수를 확 보하면서 4대 종교의 병립 구도로 전환되었다. 그리고 1960년대 말 무렵 천도교 역시 소수종교로 전락하고 말았다(강인철, 2006:

134).

우리나라의 7대 종교라 하면 여기에 원불교·천도교·대종교·유교가 포함되지만, 이들은 기껏해야 ‘종교적 반주변부’에 위치 할 뿐이다. 그리고 이슬람교·통일교·여호와의 증인 등과 같이 중심부 종교에서 파생된 분파들과 증산도·대순진리회 등의 민 족종교, 그 외에 각종 무속 및 민속신앙 등은 ‘종교적 주변부’에 불과하다(강인철,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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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1> 종교별 인구변화 추이(1985-1995-2005년)

2. 한국사회의 종교 갈등

우리나라는 다양한 종교들이 비교적 평화롭게 공존하는 모범적인 다종교 사회로 여겨졌다.

200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종교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각된 적이 별로 없으며 종교 갈등 역시 그리 심하지 않은 것으로 평가되었다(한국문화정책개발원, 1997; 전성표, 2001). 하지만 한국사 회와 같은 “다종교 상황에서 특정 종교의 비약적 성장은 여타 종교에게 소외감과 박탈감을 불러 일으키게 마련이고, 그것은 결과적으로 평화적 공존의 지형에 균열을 일으킬 소지가 다분”하다(최 우영, 2009: 315). 따라서 해방 이후 급성장한 개신교가 정치사회적 영향력 차원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했다는 사실은 종교 갈등의 가능성이 항상 잠재되어 있었음을 의미한다(최우영, 2009; 신재 식, 2011).

한국사회에서 종교 갈등이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터져 나온 최초의 사건은 2008년 8월 27일 의 ‘헌법파괴 ․ 종교차별 이명박 정부 규탄을 위한 범불교도대회’였다(박수호, 2009: 167). 당시 1 만 명 이상의 승려와 20여만 명의 불교신도가 서울시청 광장에 운집하여 정부의 종교차별에 대 해 격렬히 항의했던 것이다(정웅기, 2010). 범불교도대회의 직접적 발단은 이명박 정부의 개신교 편향성에 대한 불교인들의 분노였다.4) 하지만 그 기저에는 해방 이후 누적된 정부와 기독교에 대 한 불교계의 뿌리 깊은 소외감과 피해 의식이 놓여 있었다.5)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우리나라 국가 4)

5)

당시 조계사에 피신해 있던 광우병 촛불시위 주동자들을 검거하려던 경찰이 7월 29일 조계종 지관 총무원장이 탑승한 승용차 의 트렁크까지 강제로 뒤진 일이 사건의 도화선이 되었다. 불교계에서는 이 사건을 불교 최고 지도자에 대한 있을 수 없는 결례 요 불교계 전체를 무시한 공권력의 도발이라며 격분했다(박재율, 2009: 276). 또한 1945년부터 2011년까지 조사된 총 271건의 정 교 분리 위배행위 중 42%인 115건이 이명박 정부 때 집중되어 있다며 비난했다(대한불교조계종 자성과쇄신결사추진본부 종교 평화위원회, 2011: 7).

서동석(1994)은 불교계의 불만을 ‘탄압’‘훼불’이라는 두 단어로 요약한다. ‘탄압’은 정부에 의한, 그리고 ‘훼불’은 기독교에 의 한 괴롭힘을 의미한다.

구분

총인구 종교인구

불교 개신교 천주교 유교 원불교 증산교 천도교 대종교 기타 종교없음

주: 1) 효율성 값을 나타고 ( )의 값은 순위를 나타냄.

2) 모형 1은 불변규모수익(CRS: constant returns to scale)을 가정한 CCR 모형이고 모형 2는 변동규모수익(various returns to scale)을 가정한 BCC 모형임.

3) 규모효율

신도 수

1985년 1995년 2005년

총인구 대비비율

종교인구

대비비율 신도 수 총인구 대비비율

종교인구

대비비율 신도 수 총인구 대비비율

종교인구 대비비율 40,419,652

17,203,296 8,059,624 6,489,282 1,865,397 483,366 92,302 - 26,818 11,030 175,477 23,216,356

44,553,710 22,597,824 10,321,012 8,760,336 2,950,730 210,927 86,823 62,056 28,184 7,603 170,153 21,953,315

47,041,434 24,970,766 10,726,463 8,616,438 5,146,147 104,575 129,907 34,550 45,835 3,766 163,085 21,856,160 100.0

42.6 19.9 16.1 4.6 1.2 0.2 - 0.1 0.0 0.4 57.4

100.0 50.7 23.2 19.7 6.6 0.5 0.2 0.1 0.1 0.0 0.4 49.3

100.0 53.1 22.8 18.3 10.9 0.2 0.3 0.1 0.1 0.0 0.3 46.5 -

100.0 46.8 37.7 10.8 2.8 0.5 - 0.2 0.1 1.0 -

- 100.0 45.7 38.8 13.1 0.9 0.4 0.3 0.1 0.0 0.8 -

- 100.0 43.0 34.5 20.6 0.4 0.5 0.1 0.2 0.0 0.7 -

* 자료: 통계청 국가통계포털 ( www.kosis.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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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 형성기였던 미군정기와 제1공화국 때부터 유독 개신교가 정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헤게모니 를 장악했고, 각종 정책 ․ 제도 형성 과정에서도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박종주, 1994). 이는 타종 교, 특히 불교 입장에서는 용인하기 어려운 차별로 인식되었다. 최대 신도 수와 한국 전통종교임 을 자부하는 불교가 외래 종교에 밀려났다는 불만이 자존감에 큰 상처를 준 것이었다. 그러므로 불교가 국가 공권력으로부터 소외 ․ 배척되었다는 좌절감과 함께 자신의 위상을 회복하고 그에 걸 맞은 대우를 정부로부터 받아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김광 식, 2000b: 370).

물론 이때까지 한국사회에서 종교적 갈등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과거 군사정권 시기에 발생했던 종교 갈등은 대부분 사적 영역의 차원이었다. 그에 비해 정치적 민주화 이후의 종 교 갈등은 국가(공직자 및 정책)를 매개로 하는 공적 영역으로까지 확산 ․ 심화되고 있다. 범불교 도대회는 단순히 불교와 기독교 간의 사적 갈등이 아니라 정부가 핵심에 위치했던 공적 영역의 갈 등 사건이었다. 아울러 이제 한국사회에서도 종교 갈등이 심각한 사회적 분열과 대립으로 비화될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실제 사례였다.

IV. 우리나라 종교정책의 역사적 전개 및 현황

앞서 간략하게 언급했듯이, 역사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의 종교지형 및 종교 갈등은 종교정책 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여기서는 일제강점기 이후 종교정책이 어떻게 전개되어왔는지 살펴 본다.

1. 종교정책의 효시: 일제강점기

우리나라 최초의 종교정책은 일제강점기에 시작되었다. 당시 종교정책의 목적은 효율적인 식 민통치를 위해 종교를 통제하고 이용하는 것이었다(김재득, 2003). 조선총독부는 1911년 ‘경학원 규정(經學院規程)’을 반포하여 망국의 종교인 유교를 종교가 아닌 사회교육체제로 격하시켰다.

그리고 조선정부의 불교억압책이던 도성 출입금지를 폐지시키는 대신 ‘사찰령(寺刹令)’을 제정 하여 불교계에 대한 통제 및 회유 체제를 구축했다. 특히 조선 불교의 친일화 작업으로 인해 일본 식 대처승들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전통적 비구승은 소수만 남게 되었다(류승주, 2008). 반 면 서양 선교사들에 의해 유입된 천주교와 개신교에 대해서는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선교의 자유 를 인정해주었다.

1915년에는 교파신도(敎派神道) ․ 불교 ․ 기독교만을 종교로 인정하는 ‘포교규칙(布敎規則)’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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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

제정되었다(장병길, 1985; 최혜경, 2004; 윤선자, 2006; 조성수, 2008). 이는 일본의 ‘공인교(公認 敎) 정책’을 식민지 조선에 이식한 것이었다. 이에 따라 조선의 전통민족종교 및 신종교들은 종교 가 아닌 ‘유사종교’로 취급되며 철저한 탄압의 대상으로 전락했다(김순석, 2010). 이는 일제가 식 민통치에 저항하는 민족주의 세력을 억압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아울러 무당, 굿, 점술 등의 민간 토속신앙은 비합리적인 미신으로 치부되었다(윤승용, 1997: 22).

일제의 이러한 ‘종교공인’ 정책은 그 이후 우리나라 종교지형 및 종교정책의 중요한 근간을 이루 는 제도적 기초가 되었다. 한국사회의 종교적 중심부가 불교 ․ 개신교 ․ 천주교의 3강 구도로 형성된 것도, 또한 이 세 종교만이 ‘진짜 종교’이며 나머지는 ‘사이비 종교’, 혹은 아예 ‘종교가 아닌 것’이라 는 보편적 인식도 결국 일제의 공인교 정책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2. 개신교 편향적 종교정책의 제도화: 미군정기 및 이승만 정권

우리나라 종교정책의 기본 틀은 국가 형성기였던 미군정과 제1공화국 당시에 제도화되었다.

미군정은 일제의 공인교 정책을 그대로 유지하는 한편 특별히 개신교 정신에 입각한 건국을 시도 했다(박종주, 1994: 203; 조성수, 2008: 251-253).6) 미군정은 불교계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사찰 령을 그대로 유지했으며 전통종교 및 신흥종교에 대해서도 일제강점기와 마찬가지로 부정적 태도 를 견지했다. 반면, 크리스마스를 공휴일로 지정한 조치가 상징하듯 기독교에 대해서는 폭넓은 자 유와 다양한 특혜를 제공하는 등 사실상 유일한 공인교 지위를 부여했다(최신덕 ․ 노길명, 1979; 강 돈구, 1993; 강인철, 1995; 박승길, 1998; 김재득, 2004; 허명섭, 2004; 김수찬, 2005; 김범준, 2007;

강인철, 2009; 박명수, 2009; 이재헌, 2010a; 김광식, 2011). 요컨대 미군정기 종교정책은 일제의 공인교 정책 기조를 그대로 이어받는 동시에 기독교에 대한 편향성이라는 새로운 기조를 추가했 다. 그리고 이것이 그 이후 기독교에 대한 정부의 편파적 우대와 종교차별 시비라는 사회적 갈등의 씨앗이 되었던 것이다(박수호, 2009: 177).7)

한편 1948년 대한민국 제헌국회는 종교정책의 근본 원리로 ‘종교의 자유’와 ‘정교분리’라는 대 원칙을 헌법에 명기했다. 그럼에도 제 1공화국 종교정책의 근간에는 공인교주의에 입각한 종교/

유사종교의 양분법이 그대로 유지되었다(고병철, 2008: 192). 특히 개신교 장로였던 이승만 대통 령은 미군정의 기독교 편향적 종교정책을 계승하여 더욱 공고히 했다(강인철, 2009; 박수호, 2009:

178; 이덕주 ․ 장규식, 2009). 예를 들면 개신교와 천주교만 참여한 군종제도를 도입했으며, 기존 승려들이 담당하던 교도소의 형목을 개신교 목사들이 맡도록 바꾸었다. 또한 정부 인사에 있어서 도 타 종교에 비해 기독교인의 비율이 매우 높았다. 이 때문에 이승만 대통령이 “개신교를 ‘사실상 의 국가종교’로 만들어갔다”는 비난도 제기된다(노길명, 2002: 9).

6)

7)

이는 맥아더 사령관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미군정 관리가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는 점, 많은 미국인 선교사들이 미군정에 직간접 적으로 관여했다는 사실, 그리고 타 종교에 비해 국내 기독교 인사들 중 미국 유학파 출신이 많았던 사실과 깊은 연관이 있다.

우리나라 개신교가 1950년대 이후 빠른 속도로 성장한 이면에는 이 당시 기독교 편향적 정책들에 힘입은 바가 크다는 것이 종교 학자들의 대체적인 평가다(박승길, 1998; 강돈구, 2003).

(10)

173 제1공화국의 종교정책은 “기독교를 우대하는 수준을 넘어 다른 종교들에 대해서는 종교의 자 유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비판까지도 받는다(강돈구, 1993; 박수호, 2009: 178). 대표적인 사례가 불교에 대한 국가의 개입이었다. 이승만 정부는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사찰령을 그대로 유지하 면서 불교에 대한 통제를 강화했다. 특히 1954년 5월 이승만 대통령은 왜색불교 청산을 주문하는 소위 ‘정화유시(淨化諭示)’를 발표했는데, 이는 향후 정부가 불교계 내부 분쟁에 깊숙이 개입하는 계기가 되었다(강인철, 2000; 김광식, 2000a; 강석주․박경훈, 2002; 이재헌, 2010b). 당시 불교계는 일제 때 이식된 일본 불교의 유산인 대처승이 절대다수를 점하고 있었다. 그런데 200여 명에 불과 했던 비구측이 7000여 명의 주류 대처측을 내몰고 불교계 종권을 장악할 수 있었던 데에는 정부의 도움이 결정적이었다. 이때 촉발된 비구-대처 분쟁은 그 후 조계종과 태고종이 공식적으로 결별 하는 1970년까지 극심하게 지속되었다(대한불교조계종 포교원, 2011).

3. 종교에 대한 통제와 회유의 병행: 제3공화국 이후 군사정권 시기

제 3공화국 이후 군사정권은 종교를 복속시키기 위하여 강력한 통제와 회유책을 병행했다(노 길명, 2002; 박수호, 2009: 179). 예컨대 1962년 사찰령을 폐지하는 대신 불교재산관리법을 제정 하는 한편 향교재산법을 제정하여 불교․유교계의 재산권 행사에 대한 정부 개입을 강화했다. 이와 동시에 군사정권은 자신들의 취약한 정통성을 보완하기 위해 종교에 대한 회유를 계속했다. 이에 따라 각 종교계 주류는 정부에 순복․협력하면서 이득을 챙겼다. 예컨대 기독교의 경우, 대통령을 위한 국가조찬기도회를 매년 개최하는 한편 새마을 운동 등 정부시책에 적극 호응했다. 불교의 경 우, 1964년부터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바탕으로 역경사업이 시작되었고, 1968년에는 베트남 파병 을 계기로 불교계의 군종 참여가 이루어졌으며, 1975년에는 석가탄신일이 공휴일로 지정되었다 (박종주, 1994: 205).

박정희 정권은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으로부터 소외당하던 불교에 대하여 공인교적 대우를 강 화해주었다. 반면 기독교의 헤게모니는 상대적으로 줄어든 것으로 평가된다(박수호, 2009: 179).

박정희 정권은 민족적 주체성과 전통을 강조하면서도 무속 및 전통종교에 대해서는 근대화에 반 하는 미신으로 계속 통제했다. 이는 결국 주류 종교들의 공인교적 지위는 그대로 유지되었음을 의 미한다. 반면 전두환 정권은 헌법 개정을 통해 민족문화의 계승․발전을 강조하면서 무속과 전통종 교의 회복을 시도했다(박명수, 2010: 106). 그럼에도 무속이나 전통종교들이 결코 주류 종교들과 같은 지위를 획득한 것은 아니었다.

4. 종교에 대한 통제에서 지원으로: 민주화 이후

김영삼 정부 이후 민간 부문에 대한 국가의 권위주의적인 통제와 억압은 점차 희석되었다.

(11)

174

국가-종교 관계에 있어서도 “이전까지는 정치가 교회에 ‘협조’를 구하고 ‘동참’을 요구했다면, 이 제는 교회의 필요와 요구가 무엇인지 정치가 눈치를 살피게” 되었다(김지방, 2007: 62-63). 국가 의 통제에서 벗어난 종교계는 각자 자기 종교집단의 이해관계에 따라 각종 현안에 큰 목소리를 내 기 시작했다.8) 종교의 상징적 권위, 방대한 신자 규모, 그리고 사회 각 분야 상층부에 포진된 신도 들로 인해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종교는 “어떤 권력자도 쉽사리 통제할 수 없는 강력한 권력”으로 성장했다(강인철, 2006: 138).

이러한 추세를 반영하듯 민주화 이후 종교정책에 있어서는 각종 ‘지원’ 업무가 대부분을 차지 하게 되었다(고병철, 2008: 213; 고병철, 2011: 11). 예컨대 1962년의 불교재산관리법은 1987년 전통사찰보존법으로 바뀌었다가 2009년 3월에는 ‘전통사찰의 보존 및 지원에 관한 법률’로 개정 되었다. 또한 2002년 월드컵 대회를 계기로 시작된 템플스테이에 대한 정부 지원은 현재까지도 계 속되고 있다. 최근에는 지역 문화관광 자원 개발이라는 차원에서 대규모 종교행사에 대한 중앙 및 지방정부의 지원도 많아지고 있다(정명희, 2012).

현재 종무실의 업무는 주로 종교계에 대한 지원 위주로 진행되고 있다. 종무실에서 발표한 「예 산운용계획」을 보면, 종무행정의 방향으로 세 가지가 제시되어 있다. 첫째 ‘다종교 사회의 종교간 화합 및 이해 증진’, 둘째 ‘종교자원을 활용한 국민여가문화 확대’, 셋째 ‘전통 종교문화자원의 보 존 및 계승’이 그것이다. 종무실의 예산으로 운용되는 주요 사업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구성된다.

하나는 ‘종교문화활동에 대한 지원’이며, 다른 하나는 ‘종교문화기반 구축 및 보존에 대한 지원’이 다. <표 2>에서 보듯이 주로 종교적 하드웨어에 해당하는 기반 구축에 대한 지원의 비중이 절대 적으로 높다.

<표 2> 종무실 예산 운용 현황

민주화 이후 종교정책이 지원 위주로 재편된 사실은 예산 규모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나타났 다. 2004년 76억원이던 종무실 예산은 2013년에는 무려 608억원 규모로 세 배 넘게 증가했다.9) 8)

9) 문화체육관광부, 「예산·기금운용계획 개요」 각 연도 참고.

민주화의 진전에 따라 6공화국 이후 각 정부는 종무실 조직을 군사독재 시절의 산물로 여기고 이제는 불필요하다는 인식을 가지 고 있었다. 그러나 종무실 축소를 골자로 하는 조직개편안은 정부와의 대화 창구 강화를 요구하는 종교계의 반대 주장에 부딪쳐 번번이 무산되곤 했다(고병철, 2011: 27-28). 군사정권 시절에 종교 통제를 목적으로 만들어졌던 종무실 조직이 민주화 이후 오히 려 확대되어온 것은 정부에 대한 종교계의 요구와 영향력이 그만큼 커졌음을 보여준다.

구 분

종교화합과 교류지원 종교문화 활동 지원 전통종교문화유산보존 종교문화시설 건립

주: 1) 효율성 값을 나타고 ( )의 값은 순위를 나타냄.

2) 모형 1은 불변규모수익(CRS: constant returns to scale)을 가정한 CCR 모형이고 모형 2는 변동규모수익(various returns to scale)을 가정한 BCC 모형임.

3) 규모효율

2012 2013

* 자료: 문화체육관광부, 「예산・기금운용계획 개요」 각 연도.

종교문화 활동 및 보존지원 종교문화기반 구축

5,450 6,117 23,042 17,750

6,583 7,317 26,462 20,430 (단위: 백만원)

(12)

175 화부 전체 예산 대비로 보면 약 1.5%에서 5% 수준으로 크게 늘어난 것이다. 특히 2012년에는 전 년도 예산 226억원의 거의 두 배 가까운 524억원 규모로 갑작스럽게 증가하기도 했다. 당시 예산 증가분의 주된 용처는 전통사찰 보수정비(100억원)와 전통사찰 방재시스템 구축지원(100억원) 이었다. 이처럼 증가한 국가예산이 주류 종교에 집중되고 있다는 사실은 민주화 이후에도 공인교 정책이 여전히 건재함을 의미한다.

5. 갈등의 폭발과 종교정책의 변화: 2008 범불교도대회 이후

2008년 범불교도대회는 종교차별과 종교편향이라는 새로운 이슈의 공론화를 촉발시켰다(박 수호, 2009: 167). 불교계가 정부에 던진 메시지의 핵심은 ‘헌법의 정교분리 원칙을 파괴하는 종교 차별을 중지하라’는 것이었다(정웅기, 2010). 종무실 자료를 보면, 2008년 이전까지는 종교정책이

“종교의 자유와 그 한계를 규정하는 헌법정신에 충실해야” 함을 강조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우리 나라 종교정책은 종교에 관한 헌법의 2대 원리 중 ‘종교의 자유’만 강조했을 뿐 ‘정교분리’에 대해 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었다. 그러나 범불교도대회를 계기로 정교분리 원칙에 입각한 종교중립 의 무가 종교정책의 최대 화두로 부각되었다.

자칫 심각한 사회분열로 치달을 수도 있는 종교 갈등을 진정시키기 위해 정부는 매우 신속하 게 대응했다. 극도로 성난 불심을 달래기 위해 불교계의 요구를 즉각 수용했던 것이다. 당시 광우 병 파동으로 정부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극심한 상황에서 불교계와의 갈등마저 그대로 둔다면 걷 잡을 수 없는 혼란이 일어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범불교도대회 직후 공직자의 종교차별금지 및 종교중립 의무를 제도화하기 위한 일련의 조치 들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표 3>에서 보듯이 9월에 ‘국가공무원복무규정’이 개정되어 종교 차별 없는 공정한 직무수행 의무가 명시되었고, 11월에는 공무원행동강령에 종교차별 금지조항 이 신설되었다. 이듬해인 2009년 2월에는 ‘국가공무원법’과 ‘지방공무원법’에 각각 ‘종교중립의 의 무’ 조항이 신설되었다. 한편 2008년 10월에는 문화체육관광부에 ‘공직자 종교차별 신고센터’가 설치되었다. 아울러 공직자 종교중립을 위한 예방교육을 매년 실시하도록 하기 위해 「공직자 종교 중립 교육」, 「공직자 종교차별 예방업무 편람」 등 관련 교재와 동영상이 제작 ․ 배포되었다. 2010 년 12월 문화체육관광부 종무실이 발간한 「종무행정백서」에는 종무행정의 첫 번째 기본 방향으로

“종교 간 이해․ 협력을 통한 국민통합의 실현”이 천명되었다. 요컨대 “종교에 대해 지원하되 엄정 중립을 지킨다”는 것이 범불교도대회 이후 변화된 우리나라 종교정책의 핵심 원리이자 가장 중요 한 실천규범이라 할 수 있다.

(13)

176

<표 3> 공직자 종교차별 예방을 위한 법 규정 개정 내용

6. 우리나라 종교정책의 현황

우리나라 헌법에는 종교와 관련하여 세 가지 기본 원칙이 선언되어 있다. 종교로 인한 차별 금지(제11조 1항), 종교의 자유(제20조 1항), 그리고 국교의 불인정 및 종교와 정치의 분리(제20 조 2항)가 그것이다. 이 세 가지 원칙은 우리나라 종교정책이 반드시 준수해야 할 근본정신이라 고 할 수 있다.

중앙정부 차원에서 종교관련 행정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부서는 문화체육관광부 종무실이다.

정부수립 직후에는 문교부 문화국 교도과에서 종교 업무를 담당했으며, 그 후 1968년 문화공보부 문화국 산하 종무과가 정식으로 창설되었고, 1974년 종무담당관이 신설되었다. 1979년에 종무국 으로 승격되었다가 1982년에는 종무실로 확대 개편된 이후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현재 문화 체육관광부 종무실에는 실장 1명이 있고 그 아래 2명의 종무담당관이 있다.

종무실에서 그동안 공식적으로 천명했던 종교정책(종무행정)의 목표는 “건전한 종교문화를 정착시키고 종교가 지니는 본연의 사회적 역할을 다하도록 하여 종교의 긍정적 기능을 극대화하 고 부정적 작용을 최소화하는 것”이었다(문화체육관광부, 2007: 359). 또한 우리나라가 다종교 사 회라는 점에서 “종교 간 갈등을 사전에 예방하고 종교 간 화합을 이루도록 여건을 조성하여 국민통 합에 이바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종교행정의 역할”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2009년 「종무행 정백서」에는 “신앙의 자유를 보장하고, 사회 공익에 맞는 건강한 종교문화를 창달하며, 종교자원 을 국가의 발전전략과 조화시키고, 정체성을 가진 전통문화를 보존하는 데 기여”하는 것이라고 폭

법 령 법 령 내 용

제4조(친절·공정) ① 공무원은 공사를 분별하고 인권을 존중하며 친절하고 신속·정확하게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

② 공무원은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종교 등에 따른 차별 없이 공정하게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

제6조 (특혜의 배제) 공무원은 직무를 수행할 때 지연·혈연·학연·종교 등을 이유로 특정인에게 특혜를 주거나 특정인을 차별하여서는 아니된다.

* 자료: 문화체육관광부(2010: 47).

4조 2항 종교차별 금지조항 신설 (대통령령 제21021호, 2008. 09. 18.)

6조 종교차별 금지조항 신설 (대통령령 제21107호, 2008. 11. 05.)

개 선 사 항

국가공무원 복무규정

공무원 행동강령

제2조 (정의) ① “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 ”라 함은 합리적인 이유 없이 성별, 종교, 나이, 사회적 신분, 출신지역… (이하 생략)

제2조 1항 문구에‘종교’추가 (대통령령 2009. 02. 03.) 국가인권위원회법

제59조의 2 (종교중립의 의무)

① 공무원은 종교에 따른 차별 없이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

② 공무원은 소속 상관이 제1항에 위배되는 직무상 명령을 한 경우에는 이에 따르지 아니할 수 있다.

제51조의 2 (종교중립의 의무)

① 공무원은 종교에 따른 차별 없이 직무를 수행하여야 한다.

② 공무원은 소속 상관이 제1항에 위배되는 직무상 명령을 한 경우에는 이에 따르지 아니할 수 있다.

제59조의 2 종교중립의 의무 신설 (국가공무원법 제9419호, 2009. 02. 06. 일부 개정) 국가공무원법

지방공무원법

제51조의 2 종교중립의 의무 신설 (지방공무원법 제9420호, 2009. 02. 06. 일부 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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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 넓게 제시하고 있다(문화체육관광부, 2010: 11). 2012년에 발간한 「정책자료집」(문화체육관광 부, 2012: 239)에는 “종교간 화합과 나눔 문화의 확산을 통한 상생의 종교문화 창달”을, 그리고 문 화체육관광부 홈페이지에는 “종교 간 협력 및 연합활동 지원, 종교문화콘텐츠 개발, 종교시설의 문 화공간화 지원 등을 통해 종교 간 화합에 기여”하는 것이 종무행정의 목적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실제 시행되고 있는 종교 관련 정책과 제도는 사실 종무실의 종무행정 의 범위보다 훨씬 더 넓고 다양하다(강돈구, 2007: 152; 고병철, 2011: 11-18). 종교와 관련된 법 령들을 살펴보면 <표 4>에서 보듯이 군부대, 교정, 공무, 문화(재), 방송, 관세, 근로․생계, 세금 등 다양한 분야에서 종교가 연관되어 있다. 이는 우리나라 종교정책이 단지 종무실뿐 아니라 여러 유 관 부서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시행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즉, 종교가 다양한 국정 영역에서 정책수 립 및 집행에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표 4> 우리나라의 종교 관련 법령

V. 우리나라 종교정책에 대한 평가

1. 공인교주의

우리나라 종교정책의 근본적 특성은 ‘공인교주의’라고 할 수 있다(고병철, 2011: 23~25). 공 인교주의란 국가가 사실상 종교와 종교 아닌 것을 구분하고 공인된 종교에 대해서는 국가의 관리 아래 정책적 혜택을 지원하는 것을 말한다. 이와 관련하여 종무실에서도 “종교에 대한 양분법적 시 각”과 이를 근간으로 하는 “양분법적 지원”이 문제임을 인정하고 있다(문화체육관광부, 2010: 10).

영 역 법 령

<병역법 시행령> <육군본부 직제> <해군본부 직제> <공군본부 직제> <해병대사령부 직제>

<군에서의 형의 집행 및 군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과 <同 시행규칙> <군인복무규율> <군종장교 등의 선발에 관한 규칙> 등

* 자료: 고병철(2011: 12) 군부대

<교도관직무규칙> <보호소년 등의 처우에 관한 법률 시행령>과 <同 시행규칙>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과 <同 시행규칙> 등

<문화재보호법> <문화체육관광부와 그 소속기관 직제 시행규칙> <전통사찰의 보존 및 지원에 관한 법률> <향교재산법>과 <同 시행령> 등

<국가공무원법> <지방공무원법> 등 교정

공무 문화

<방송법 시행령> 등 방송

<관세법>과 <同 시행규칙> 등 관세

<고용정책 기본법> <국민기초생활 보장법> <근로복지기본법> <근로자직업능력 개발법> 등 근로・생계

<부가가치세법 시행령>과 <同 시행규칙> <부동산실권리자명의등기에관한법률시행령> <조세특례제한법>과 <同 시행령>

<지방세특례제한법>과 <同 시행령> 등 세금

<10・27법난 피해자의 명예회복 등에 과한 법률> <건전가정의례준칙> <자연공원법>과 <同 시행령> <산림문화・휴양에 관한 법률 시행령> 등 기타

(15)

178

강인철(2010)은 공인교주의에 입각한 우리나라 종교정책의 특성을‘특혜격차(privilege gap)’라는 개념을 통해 해석한다. 특혜격차란 특정 집단이 사회 내 다른 집단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특혜 혹은 의무면제를 제공받는 상황을 의미한다. 한국 사회에서 종교정책과 관련된 특혜격 차를 보여주는 몇 가지 대표적 사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납세는 국민의 4대 의무의 하나임에도 정부수립 이후부터 지금까지 종교 성직자들에 대해서는 과세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 국교는 인정되지 않는다는 헌법규정임에도 크리스마스와 석가탄신일이라는 기독교와 불교의 종교적 기념일이 국정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다.

^법무부는 재소자의 교정 ․ 교화를 명분으로, 그리고 국방부는 장병의 정서안정 ․ 인성함양을 명분으로 ‘1인 1종교 갖기 운동’을 시행해오고 있다.

^군대에는 특정 종교(개신교 ․ 천주교 ․ 불교 ․ 원불교)만을 위한 군종제도가 있다.10) ^국장(國葬)을 거행할 때는 불교, 개신교, 천주교 성직자들이 차례로 각자의 종교적 장례의식을 집행한다.

^불교 경전의 한글 국역을 위해 국가 예산이 지원되었는가 하면 수많은 전통 사찰의 유지 ․ 보수를 위한 비용 역시 국가 예산으로 지원해주고 있다.

^ 교회, 성당, 사찰 등 종교단체에 대해서는 세법상 다양한 혜택이 부여되어 있다.11)

2. 이중특혜격차

공인교주의에 근거한 특혜격차는 이중적 차원에서 존재한다. 첫 번째는 종교와 세속 집단 사 이에 존재하는 차별적 대우이며, 두 번째는 종교집단 간에 존재하는 권력과 특혜의 격차다. 즉, 종 교가 비종교에 비해, 그리고 종교 내부적으로는 3대 주류 종교가 비주류 종교들에 비해 월등히 큰 혜택을 누리고 있다는 것이다. 건국 이후 현재까지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이 성직자의 소득에 대 해 과세하지 않는 관행은 첫 번째 특혜격차의 대표적인 사례다.12) 또한 정교분리 국가임에도 중앙 및 지방정부에 종무 담당부서가 존재하는 것 자체가 종교에 대한 특별대우가 아닐 수 없다. 종교 10)

11)

12)

군종제도는 제1공화국 당시 개신교와 천주교를 대상으로 군종장교를 선발하면서 시작되었고 제3공화국 때 불교도 참여하게 되 었다. 1970년부터 군종 참여를 요구해온 원불교는 소수종교 군내 진입을 명분으로 2007년에 최초로 군종장교 1명을 배정받았으 며, 2011년에 또 한 명이 추가되었다(국방부, 2008).

재산압류 금지, 법인세 감면, 고유목적사업 준비금의 손금산입, 기부금의 손비처리, 이자소득의과세표준신고특례 및 납부, 부 가가치세 면제, 특별소비세 면제, 주세 면제, 관세 감면, 상속세 면제, 취득세 비과세, 등록세 비과세, 면허세 비과세, 주민세 비 과세, 재산세 비과세, 농지세 비과세, 사업소세 비과세(문화관광부, 2006: 331).

종교인 과세 문제에 관하여 1992년 국세청은 “성직자의 자율에 맡긴다”며 강제 징수할 의사가 없음을 천명한 바 있다. 이 문 제로 국세청장이 직무유기와 직권남용으로 고발되었으나 당시 검찰은 “종교인에 대한 과세가 명문화되어 있지 않고, 건국 이 후 성직자에게 과세하지 않은 관행 등에 비추어 비과세한 것을 국세청장의 고의적 직무태만으로 볼 수 없다”며 무혐의 처리 했다(허원,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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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 가 기득권 세력으로서 “과도하리만큼 많은 혜택을 누려왔다”는 것은 여러 종교학자들이 누차 지 적한 바다(강돈구, 2008: 18).

두 번째, 종교집단 간의 특혜격차는 다시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종교적 중심부를 구 성하는 불교 ․ 개신교 ․ 천주교와 나머지 주변부 종교들 사이의 엄청난 특혜격차다. 이는 사실상 국 가가 인정한 종교만 정식 종교로 대우해주는 ‘공인교 정책’이 아닐 수 없다(고병철, 2011: 23). 예 컨대 크리스마스와 석가탄신일이 국가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는 것, 국장(國葬) 때 3대 종교만 제 의를 집전하는 것, 군종장교 파송이 불교 ․ 개신교 ․ 천주교 ․ 원불교에게만 허용되어 있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또한 2005~2008년 종교별 문화 활동에 대한 정부의 지원 건수를 보면 불교가 약 40%, 개 신교가 약 21%를 차지한 반면 민족종교는 10%, 유교는 3%에 불과하다(정명희, 2012: 250).13) 다른 하나는 종교시장을 독과점하는 중심부 종교들 사이의 특혜 격차다. 예를 들어 종교별 군 종장교 분포를 보면 2010년의 경우 총 502명 중 개신교가 절반이 넘는 267명(53.2%)이었고, 불 교 138명(27.5%), 천주교 92명, 그리고 원불교는 1명이었다(국민일보, 2010. 8. 13.). 반면 2006

~2010년 사이에 이루어진 지원 예산을 보면 기독교는 약 52억원이었음에 비해 불교는 무려 965 억원으로 거의 스무 배나 많은 수준이었다(신재식, 2011).

3. 상존하는 종교 갈등의 개연성

공인교주의와 이중특혜격차에 기초한 종교정책의 문제점은 사회적으로 심각한 종교 갈등을 촉발시킬 위험성이 매우 높다는 데 있다. 종교 갈등은 인간 내면의 신성한 믿음 간의 충돌이라는 점에서 한번 발생하면 타협과 조정이 매우 어렵다. 인류 역사는 종교 갈등이 끔찍한 테러와 전쟁으 로까지 이어진 사례들로 넘쳐난다. 그러므로 종교정책이 종교 갈등을 예방 ․ 치유하지는 못할망정 그 도화선이 된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범불교도대회 이후 제도화된 공무원의 종교차별금지는 우리나라 종교정 책의 진일보한 개선이라 평가할 만하다. 정부 및 공직자의 종교편향(으로 보이는) 행태는 종교 간 갈등을 유발시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종교차별이라는 하나의 특정 사안에 국한 된 부분적 정책수정이었을 뿐 종교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검토를 통한 전면적 재정비는 아니었다.

우리나라 종교정책레짐의 핵심인 공인교주의와 이중특혜격차는 아무런 비판도 받지 않고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국가 지원으로 인한 특혜가 존재하는 한 그 배분을 둘러싸고 갈등이 벌어지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사실 범불교도대회 이후로도 정부의 기독교 편향 자세에 대한 불교계의 공격은 계속되었다(헌 법파괴 ․ 종교편향 종식 범불교대책위원회, 2009). 반면 기독교계에서는 실제 정부 지원금이 대부 13) 종교 문화 활동에 대한 정부지원의 불균형은 근본적으로 종교별 교세의 현저한 차이에서 비롯된다고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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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 불교에 배정되고 있음을 근거로 오히려 불교 편향적 문화관광정책이 문제라며 비판하고 있다(

박명수, 2010). 최근 국고 지원금의 배분을 둘러싸고 격화되는 불교와 개신교의 논쟁은 “특권적 종 교시장” 내부에서 “국가가 제공하는 특혜의 차등적 배분”을 놓고 주류 종교 사이에 갈등이 발생한 것이다(강인철, 2010: 195; 「시사저널」, 1099호, 2010. 11. 10.).

그뿐 아니라 특혜 자체의 정당성에 관한 종교계와 비종교계 사이의 갈등도 문제가 된다. 최근 잠시 논란이 재연되었던 성직자 비과세 문제가 그 대표적 예다. 또한 2007년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 당시, 소말리아 해적선의 한국 원양어선 납치 때에 비해 국가의 관심과 재정 지출이 너무 과 대했다는 일부 반 개신교 여론도 종교와 비종교 간 갈등의 하나였다.14) 결국 현재의 종교정책 체제 아래에서는 종교적 갈등이 심각한 사회적 위기로 비화될 개연성이 상존하는 것이다.

VI. 바람직한 종교정책을 위한 제언

1. 종교 문제에 관한 사회적 공론의 활성화

한국 종교정책의 공인교주의 및 이중특혜격차의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그에 관한 공개적이고 명시적인 논의 자체가 부재하다는 데 있다. 사실 종교와 관련된 각종 정책들은 우리 나라 헌법 정신에 비추어볼 때 합리적 명분도 약하며 그렇다고 사회적 공론화를 거쳐 합의된 것 도 아니다(송기춘, 2006; 문화체육관광부, 2010: 12). 정부 역시 이에 대한 명확한 근거를 밝힌 적 이 없다.

우리나라 행정에서 종교적 특혜 격차는 분명 존재하지만 그 정당성과 필요성에 대한 논리적 설명이 제시된 적은 없다. 애당초 종교정책 자체가 그 필요성, 목적, 범위, 한계 등에 대한 치열한 고민 없이 “근본적으로 정치에 종교를 어떻게 하면 이용할 것인가”(강돈구, 2003: 78)라는 정치적 필요에 의해 출발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종교 자체에 대한 논의를 금기시하는 [한국사회의] 경 향” 때문에 종교정책이 “공공의 토론 영역에서 벗어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한국문화정책개발 원, 1997: 8). 즉, 공적 담론의 부재 속에서 그저 묵인된 채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향후 바람직한 종교정책의 모색을 위해서는 소수 종교계 인사들만이 아니라 사회 각 분야 전문가들이 폭넓게 참여하는 정책토론회의 활성화가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특히 종교 갈등 14)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를 둘러싼 반개신교 담론과 갈등에 대한 분석은 최우영(2009) 참조. 당시 인터넷에는 탈레반에 피랍된

샘물교회 신도들을‘귀족 일등국민’, 소말리아 무장해적들에게 납치되었던 선원들을 ‘천민 하류국민’으로 비유하며 정부의 차 별적 접근을 비난하는 글이 많이 올랐다. 다음 게시 글들을 참고할 것.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003&articleId=324454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003&articleId=339339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0&articleId=399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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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 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종교에 대한 특권적 혜택의 정당성에 대한 근본적인 논의가 필 요하다(박명수, 2009).

2. 종교정책의 투명성과 중립성

종교 편향 시비로 인한 갈등을 사전에 예방하려면 정부의 철저한 중립적 자세가 필요하다. 정 부의 종교 중립을 대외적으로 확인시켜줄 수 있는 길은 절차적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고병 철(2011: 26)은 우리나라 종교정책이 공인교정책에서 탈피하여 종교에 대한 정책적 평등을 실현 하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에서 ‘투명성과 개방성’을 제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종교정책의 수립과 집행 과정에서 투명성과 개방성이 결여된다면 자칫 의도치 않게 종교편향 ․ 종교차별 시비를 불러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특혜 배분과 관련된 종교 갈등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정부지원사업의 선정에 있어 종교 라는 요소를 분리하여 배제시킬 필요가 있다. 종교계에 대한 수많은 지원사업 중에서 순수한 종교 활동적 성격이 강한 것들은 당연히 정부의 지원 대상에서 제외시켜야 한다.15) 국가의 예산지원사 업이라면 마땅히 ‘일정한 사회문화적 효과와 의미를 갖는 활동인지’를 최우선적 기준으로 고려해 야 하기 때문이다(문화체육관광부, 2010: 95).

하지만 이른바 ‘순수 종교 활동’과 사회문화적 의미가 있는 ‘종교문화 활동’을 구분한다는 것 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예컨대 전통사찰의 유지 ․ 보수를 위한 국고지원사업의 경우, 문화재 보 존을 위한 정당한 문화정책이라 할 수도 있지만 불교 재산에 대한 편파적 지원이라고 비판할 수 도 있다. 또한 템플스테이 지원에 대해서도 기독교계에서는 불교에 대한 명백한 특혜라고 비판하 는 반면, 정부와 불교계에서는 전통문화자원을 활용한 관광사업이라고 옹호한다(안국진 ․ 유요한, 2010: 200). 혹자의 관점에서는 종교문화사업이 다른 이의 시각에서는 순전히 종교 활동으로 보 일 수도 있다. 따라서 결정 과정에서 아무리 투명성과 중립성을 강조한다고 해도 갈등의 소지는 여 전히 남을 수밖에 없다(박명수, 2010; 백종구, 2010; 이은선, 2010).

3. 공인교주의의 철폐

우리나라 종교정책이 공인교주의와 이중특혜격차를 근간으로 삼고 있는 한 종교 갈등의 개 연성은 상존할 수밖에 없다. 지원사업 위주의 종교정책은 필연적으로 제도종교 위주로 이루어지 는 한계가 있을 뿐 아니라 선정 기준의 객관성과 결과의 타당성을 확보하기도 매우 어렵다(문화체 육관광부, 2010: 94). 그렇기 때문에 종교적 특혜가 존재하는 한 종교와 종교 간, 그리고 종교와 비 15) 종무실 예산 중, 예컨대 2012년 세계불교도우의회(WFB) 한국대회 개최지원비 10억원, 2013년 세계교회협의회(WCC) 제10차

총회개최 준비지원비 20억원 등은 종교단체 내부 행사에 대한 국고 지원이라는 점에서 문제의 소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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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간 배분의 형평성을 둘러싼 갈등은 결코 피할 수 없다. 즉, 현재와 같은 종교정책은 공익증진 이라는 본연의 목적 달성은커녕 분쟁과 갈등의 소지만 제공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적 영역에서 종교 갈등의 여지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종교적 차 별금지 및 정책과정의 투명성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사실 가장 효과적인 방 안은 지극히 단순하다. 특혜 배분을 둘러싼 차별 시비와 갈등을 예방하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특혜 자체를 없애는 것이다. 즉, 공인교주의를 완전히 철폐하고 한국사회에 현존하는 모든 종교적 이중 특혜격차를 제거하는 것이다. 어떤 종교는 다른 종교보다 더 많은 특혜를 제공받는 식의 종교정책 에서는 갈등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특혜 배분의 형평성과 차별이 종교 갈등의 단초가 된다면 ‘배 분 꺼리’ 자체를 없애는 것이 종교 갈등의 근원을 차단하는 길이 될 수 있다.

물론 건국 이후 오랜 세월에 걸쳐 고착된 종교에 대한 지원체계를 단번에 철폐한다는 것은 현 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다. 또한 종교가 우리 사회와 개인에게 미친 긍정적 기능들도 분명 인정 할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 일부 논자들은 문화예술이나 교육과 같이 ‘가치재(merit good)’ 관점에 서 종교에 대한 국가의 적극적 지원을 요구하기도 한다. 예컨대 김종서(1986: 141)는 종교가 그저 개인적 여가선용이나 불안해소책 정도가 아닌 “국민적 자본(national capital)으로서 적극적 정책 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피력했다. 하지만 종교의 사회적 공헌과 순기능을 인정한다고 해도 종 교가 모든 사람들에게 본질적으로 유익한 가치재라는 주장을 전면 수용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 뿐 아니라 정부의 종교계 지원은 “소위 ‘종교와 정치’ 유착의 제도적 고리가 될 위험성”이 높다(강 돈구, 2008: 14). 국가의 지원이 자칫 종교의 세속화와 타락을 부채질하는 유혹으로 작용할 수 있 다는 말이다. 따라서 종교의 타락을 막고 건강한 성장을 돕기 위해서라도 세속적인 지원과 특혜는 철폐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VII. 맺는 말

종교는 문화와 밀접한 연관관계가 있다. 따라서 종교정책은 넓은 의미에서 문화정책의 한 부 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경우, 종교정책 담당부서인 종무실이 문화정책의 주무 기관인 문화체육관광부 소속으로 되어 있다.

우리나라 종교정책은 한국사회의 역사적 궤도 속에서 빚어진 산물이다. 애당초 합리적 분석 이나 사회적 공론화를 거치기보다는 그때그때 정치적 맥락에 따라 변화되어왔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의 공인교정책으로 시작된 한국 종교정책은 군사정권과 민주화시기를 거치면서 이제는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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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 교에 대한 국가 지원과 혜택만 남은 형국이다. 현재와 같은 종교정책으로는 공익 증진이라는 본연 의 책무를 감당하기 어렵다. 오히려 종교 갈등의 소지를 제공함으로써 사회적 대립과 분열을 초 래할 위험이 크다.

장기적 안목에서 바람직한 종교정책의 방향은 공인교주의 및 이중특혜격차의 철폐라 할 수 있다. 이는 우리 헌법이 천명한 ‘정교분리’ 원칙을 정직하게 시행하는 길이기도 하다. 사실 공 인교정책은 치욕스러운 일제의 잔재다. 과거 조선총독부가 효과적인 식민지 지배를 위해 도입했 던 제도가 그 이후 정치적 필요에 의해 유지되면서 지금까지도 알게 모르게 남아 있는 것이다. 민 주주의 세속국가에서 국가가 직접 종교와 종교 아닌 것을 구분하여 다르게 대우한다는 것은 정교 분리 정신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심각한 월권이다. 그뿐 아니라 국가의 지원과 혜택은 종교를 세 속화시키는 치명적인 독약이 되기 쉽다. 따라서 공인교주의 철폐는 종교 갈등의 효과적인 예방책 일 뿐 아니라 그동안 왜곡되었던 헌법 정신을 바로잡는 동시에 종교의 건강한 성장을 돕는 바람 직한 길인 것이다.

이 논문에서는 주로 종교 갈등 차원에서 우리나라 종교정책의 문제점 및 개선 방향에 대해 거 시적으로 고찰했다. 그러다 보니 세부적인 문제들과 그 구체적인 해결 방안에 대해서는 논의가 부 족하다는 한계를 자인할 수밖에 없다. 이 논문을 디딤돌 삼아 향후 우리 사회 종교 갈등의 유형화 및 사례분석, 갈등유형별 해결방안의 탐색, 그리고 공인교주의 및 이중특혜격차 해소를 위한 세부 방안 모색 등의 정책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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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