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승
(5) 隨筆
隨筆은 靑瓷 硯滴이다. 隨筆은 蘭이요, 鶴 이요, 淸楚하고 몸맵시 날렵한 女人이다.
隨筆은 그 女人이 걸어가는 숲속으로 난 平坦하고 고요한 길이다. 隨筆은 가로수 늘어진 페이브먼트가 될 수도 있다. 그러 나, 그 길은 깨끗하고 사람이 적게 다니는 住宅街에 있다.
隨筆은 靑春의 글은 아니요, 서른여섯 살 中年 고개를 넘어선 사람의 글이며, 情熱
이나 深奧한 知性을 內包한 文學이 아니요, 그저 隨筆家가 쓴 單純한 글이다. 隨筆은
興味는 주지마는 읽는 사람을 興奮시키지 는 아니한다. 隨筆은 마음의 散策이다. 그 속에는 人生의 香臭와 餘韻이 숨어 있는 것이다.
(皮千得, 『隨筆』)
(6) 질화로
돌이켜 우리 집은 어떠했던가? 나도 5,6세 때에는 書堂아이였 고 따라서 질火爐 위에서 나를 기다리는 어머니의 찌개 그릇 이 있었고, 舍廊에서는 밤마다 아버지의 담뱃대 터시는 소리 와 古書를 읽으시는 소리가 火爐를 둘러 끊임없이 들렸었다.
그러나 내가 다섯 살 되던 해에 그 소리는 舍廊에서 그쳤고, 따라서 바깥 火爐는 必要가 없어졌고, 하나 남은 안방의 火爐 곁에서 어머니는 나에게 大學을 口授하시게 되었다. 그러나 어머니마저 내가 열두 살 되던 해에 그 질火爐 옆을 길이 떠나 가시었다. 그리하여 書堂아이는 완전한 孤兒가 되어, 新式글을 배우러 예 마을을 떠나 東西로 漂舶하게 되었고, 火爐는 또다 시 찾을 수 없는 어머니의 사랑과 함께 永永 잃어버리고 말았 다.
(梁柱東, 『梁柱東全集』)
(7) 돌의 美學
돌의 맛- 그것도 落木寒天의 이끼 마른 瘦 石의 妙境을 모르고서는 東洋의 眞髓를 얻 었달 수가 없다. 옛 사람들의 마당귀에 작 은 바위를 옮겨다 놓고 물을 주어 이끼를 앉히는 거라든가, 흰 畵宣紙 위에 붓을 들 어 아주 省略되고 抽象된 氣骨이 凜然한 한 덩어리의 物體를 그려 놓고 이름하여 石壽圖라고 바라보고 좋아하던 일을 생각 하면 가슴이 흐뭇해진다.
無味한 속에서 最上의 美를 맛보고, 寂然 不動한 가운데서 雷聲霹靂을 듣기도 하고, 눈 감고 줄 없는 거문고를 타는 마음이 모 두 이 돌의 美學에 通해 있기 때문이다.
(趙芝薰, 『趙芝薰全集』)
(10) 一貫性에 關하여
우리는 明白한 目標가 있다. 안으로는 統一을 이룩하며, 밖으로는 世界에 雄飛해야 할 우리 들이다. 그것이 또한 諸君의 自己實現이기도 하다. 이렇듯 明明白白한 目標가 있는데도 彷 徨해야 할 것인가? 작은 生活 하나하나에도 敬虔한 態度로 臨하여 한 발씩 한 발씩 우리 들의 目標에 接近해가야 할 것이다.
(金珖燮, 『韓國名隨筆選』)
(8) 樹木頌
樹木은 山野나 僻地에만 흔한 것이 아니라, 都會와 邑市의 거리거리, 公廳과 旅舍와 民家 의 뜰마다 蕃盛하지 않는 데가 없다. 이렇게 現代 같은 文明의 暴威에도 排斥받지 않고, 都市의 市街와 廳舍, 閭閻집 마당에 繁榮, 茂 生하여 사람과 더불어 共存, 交換함은, 樹木이 우리에게 精神的인 慰安과 그윽한 즐거움과 기쁨과 希望과 利益을 줄지언정, 우리의 짐이 되고 걱정이 되는 일은 없기 때문일 것이다.
( 金東里, 『新韓國文學全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