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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과 한국인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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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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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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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 집

강과 한국인의 삶

우리나라는 2만 7천여 개에 달하는 크고 작은 강이 실핏줄처럼 연결되어 있 는 강의 나라다. 조상들은 예로부터 강을 따라 정주세계를 형성해왔으며, 강 은 지역의 생활·문화·역사와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며 치수와 이수, 친수 등의 기능을 수행해오고 있다. 하지만 지난 반세기 도시화 및 공업화 과정에 서 우리는 강을 주로 경제적 목적으로 활용하면서 수질오염은 날로 심각해 졌다. 이에 1990년 이후 하천을 살리기 위한 노력이 활발히 추진되었다. 최 근 추진되고 있는 4대강 살리기 사업은 친수문화를 활성화시키고, 생태공간 을 회복하며, 지역산업을 활성화시키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이번호 특집에 서는 강 주변을 삶의 터전으로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고, 강의 혜택에 의존 해 발전해온 한국인의 삶을 돌아보고, 최근 강을 더욱 강답게 만들고자 하 는 노력을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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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과 한국의 역대 왕도

오순제|한국고대사연구소장

1

강과 고조선의 기원

세계4대문명의 발상지를 보면 나일강의 이집트, 티그리스강 과 유프라테스강의 메소포타미 아문명, 인더스강의 모헨조다 로와 하랍파, 황하강의 은허 등 인류 역사상 대부분 국가의 수 도는 강가에 임해 있다(오순제.

2008).

우리나라에서도 고조선이 패 수(浿水)라는 강가에 있었고, 고

조선을 멸망시키고 해모수가 세운 북부여는 눈강(嫩江)변에 자리 잡았으며, 그들 의 후예인 해부루의 동부여는 길림시의 송화강변 동단산성과 남성자성에 자리 잡 았고, 북부여를 멸망시킨 졸본부여는 환인의 혼강(渾江)변 오녀산성과 하고성자성 에 자리 잡았다.

이처럼 강에서는 인류에게 중요한 역사가 이루어졌다. 강 주변은 삶의 터전이 었고, 그로 말미암아 찬란한 문명을 꽃피우기도 하였다. 인구가 밀집되어 있는 까 닭에 국가창건의 기반이 되기도 하였다.

이 글에서는 강을 기반으로 형성된 우리나라 왕도와 역사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림 1> 송화강변 길림시의 동부여 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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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한의 50개국과 변한 12국, 진한 12국을 다스 렸던 맹주국인 목지국(目支國)의 수도는 직산과 익산으로 거론되어왔으나 익산은 백제 무왕의 고향으로 그가 별도로 사용했던 곳임이 밝혀졌 다. 필자는 백제문화연구회 한종섭 회장과 공동 조사를 통해 안성시 양성면 성하리에서 목지국 의 왕궁터를 발견하였는데(오순제. 2009), 이곳 의 서쪽 능선부에서 마한시대의 거대한 반제리 유적이 발굴되었다. 반제리유적은 만정리고인 돌, 승두리고인돌과 만정리토성, 퇴미산성, 무 한산성, 고성산성 등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왕 궁터 앞을 흐르는 강이 한천(漢川)이다. 한천 은 하늘의 왕궁터 옆을 흐르는 은하수인 천한 수(天漢水)에서 비롯된 것이며, 이 부근에는 은 하수를 뜻하는 미리내라는 지명이 남아 있다.

맥국(貊國)의 수도로 지목되어오던 소양강변 의 춘천시 발산리 일대에는 왕대, 맥뚝 등의 지 명이 남아 있지만 왕궁터를 찾지 못하고 있었는 데, 필자와 한종섭 회장이 공동조사로 왕대란 맥 국의 외성 제일 끝에 있는 망루였음을 밝히고 그 안쪽에서 내성과 왕궁터를 발견하였다. 그 뒤의 수리봉에는 산성이 남아 있어 피난성으로 쓰였 음을 알 수 있다. 이 부근에 흐르는 하천을 한 내(漢川)라고 부르며, 아침못(朝淵), 샘밭(泉 田) 등 물과 관련된 지명이 남아 있다.

이 부근에는 천전리고인돌군이 있는데, 지금 은 4기만 남았지만 원래는 11기의 고인돌이 있 었다고 한다. 1호 고인돌은 전형적인 북방식 고 인돌로, 형태가 잘 유지되어 있다. 2호와 3호 고 인돌은 뚜껑돌만 땅 위로 드러나 있어 전체적인

구조를 살피기 힘들며, 4호 고인돌은 뚜껑돌 동 변의 일부가 절단되어 내려앉았으며 서쪽 장벽 석은 남아 있지 않다. 1967년 국립중앙박물관의 발굴 조사에서 돌화살촉, 관옥, 민무늬토기편이 출토되었다. 주위의 밭에서도 신석기시대의 빗 살무늬토기 구연부편이 발견되었는데, 이를 통 해 이 일대에는 청동기시대에 부족사회가 형성 되어 민무늬토기를 사용하며 강가에서 농경생활 을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국(濊國)의 도읍지는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그림 3> 한천변의 마한 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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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기막리 강릉운전면허시험장 부근으로, 사천천(沙川川)변에 있는 토석혼축성 안 에 있다. 그 뒤쪽의 운계봉에는 산성이 남아 있어 피난성으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2003년 이 부근에서 강원문화재연구소에 의해 발굴된 청동기시대의 방동리유적지는 총 3개의 지구에 걸쳐 주거지 47기, 원형 수혈유구 26기, 고분 2기, 토기가마 3기 등 80여 기의 유구가 발견되었다. 47기의 주거지 유적은 청동기시대의 주거지 41기와 삼 국시대의 주거지 6기로 구분되며, 주거지의 형태는 말각방형에 규모는 4~15m다. 특 히 세 번째 지구에서는 강원 지역 최초로 환호(環濠) 2기와 토기가마 3기가 발견되었 다. 환호 내부에서는 청동기시대의 점토대토기와 무문토기, 반월형석도 조각 등이 출 토되었다(지현병 외. 2007).

고구려의 왕도

환인의 혼강(渾江)변 오녀산성과 하고성자성에 자리 잡았던 졸본부 여의 수도를 주몽이 고구려를 세 우며 그대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제2대 유리왕 22년(AD 3)에 집안 의 압록강변 국내성과 환도산성으 로 천도하였다. 대무신왕은 송화강 변의 동부여와 대동강변의 낙랑국

을 점령하였는데, 동천왕과 고국원왕 당시 외적의 침입으로 수도인 국내성이 초토화 되자 남쪽 대동강변의 평양지역으로 잠시 천도하였다. 그 후 장수왕 15년(AD 427) 에는 평양의 대동강변 안학궁(安鶴宮)과 대성산성으로 천도하였는데, 안학궁 남쪽 대 동강변에서 당시 강을 건너 다녔던 나무다리유적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평원왕 28년 (AD 586)에는 대동강과 보통강(普通江) 사이에 외성, 중성, 내성, 북성로 나누어진 도시 전체를 하나의 나성(羅城)으로 둘러싼 현재의 평양성으로 옮겨 갔다.

백제의 왕도

백제는 초기에 하북위례성인 서울의 중랑천변 북한산 아래의 방학동토성에 온조 왕 원년(BC 18)에 자리를 잡았으나 북쪽의 낙랑국과 동북쪽의 맥국으로부터 끊 임없이 공격받자 18년(BC 5)에 한강 남쪽 남한산 아래 하남시 고골의 하남위례

<그림 4> 대동강과 고구려 왕도 안학궁성과 평양성

자료: 이만열. 1973. 한국사대계. 서울 : 삼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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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중국과 일본으로 떠났던 최대의 진성(津城) 이었다고 판단한다. 왜냐하면 이곳은 을축년 대 홍수 당시 북쪽 성벽이 날아가 버릴 정도의 상 습 침수지역으로 얼마 전에도 펌프장이 고장나 자 바로 침수되었던 곳이며, 고구려 광개토대왕 과 장수왕이 백제를 칠 때 본진을 설치한 아차산 성 바로 아래의 송파벌에 위치하고 있어 적군들 에게 훤히 들여다 보이고 도강한 적에게 포위되 기 쉬운 위치이기 때문이다.

그 후 근초고왕이 고구려 평양성을 공격하여 고국원왕을 죽이고 4국 중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 가 되었으나 대대적인 공격에 대비하여 26년(AD

의 아신왕이 항복하였고, 그 뒤를 이은 장수왕의 공격으로 475년에 개로왕이 전사당하자 문주왕 이 공주의 금강변 공산성(公山城)으로 천도하였 다. 그 후 고구려가 금강변의 강경지역으로 밀고 내려오자 성왕이 16년(AD 538)에 부여의 금강 변 부소산성(扶蘇山城)으로 옮겨 가게 되었다.

신라와 가야의 왕도

신라는 경주의 형산강변에 자리를 잡았는데, 서 쪽에 흐르는 형산강 상류를 서천(西川)이라 부 른다. 서천을 비롯하여 경주의 북쪽에 흐르는 북 천(北川), 경주의 남쪽에 흐르는 남천(南川) 등 3개의 하천이 서라벌(徐羅伐)이라는 옛 도시를 감싸고 흐른다.

남천변의 반월성(半月城)에 왕궁을 만들고 북천에 자리 잡은 이궁(離宮)까지 주작대로의 큰길을 만들었으며, 첨성대를 중심으로 고분군 과 안압지, 전랑지, 황룡사, 분황사 등을 만들었 다. 또한 남천변의 반월성에서 불교유적이 많은 남산(南山)으로 가는 길에 하천을 건널 수 있도 록 일정교(日精橋)와 월정교(月精橋)라는 돌다 리를 만들었다.

가야는 낙동강 물줄기를 따라 자리 잡은 나라로 상류로부터 함창의 고령가야, 성주의 성산가야, 고 령의 대가야, 창녕의 비화가야, 함안의 아라가야, 김해의 금관가야 등이 낙동강변에 자리를 잡았으 며, 고성의 소가야만 바닷가에 자리를 잡았다.

그중에서도 비화가야(非火伽倻)는 낙동강 이 휘돌아나가며 황강과 남강이 합수되는 창녕

<그림 5> 하남시 고골의 백제 하남위례성

<그림 6> 금강과 백제의 공산성(輕部慈恩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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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 있었다. 비화가야는 낙동강을 1차 방어선으로 하고 우포못, 번개못, 장 척못, 한못 등의 늪지를 2차 방어선으로 했으며, 왕궁의 뒤에는 화왕산성이 자 리 잡은 수중도시를 구축했다.

발해의 왕도

발해는 고구려의 유민들이 오동성인 돈화의 목단강(牧丹江)변 성산자산성에 대 조영이 698년에 세운 나라다. 그 후 742년에 해란강(海蘭江)변의 서고성인 서경 압록부로 천도하였다가 755년에 목단강변 발해진의 상경용천부로 옮겼다. 그러 다가 다시 785년에 두만강변의 팔련성인 동경용원부로 갔다가 794년에 목단강변 의 상경용천부로 옮긴 후 926년에 거란의 공격으로 최후를 맞이하였다.

가장 오랜 왕도였던 상경성(上京城)은 그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로 100만 명이 살았던 당나라의 장안성(長安城)과 맞먹는 크기를 가지고 있었기에 해동성 국(海東盛國)이라는 칭송을 받았다. 이곳 왕성의 뒤를 흐르는 목단강변에서는 당시 강을 건너다니던 칠공교(七孔橋)라는 다리유적이 발견되었다.

고려의 왕도

고려는 임진강과 예성강 사이의 개성에 태조 왕건이 919년에 자리를 잡았는데, 그 도시의 중앙에 사천(沙川)이 관통하여 남쪽으로 흘러 임진강으로 들어간다. 개경의

<그림 8> 수중도시인 창녕비화가야의 왕도

<그림 7> 낙동강과 가야연맹의 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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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국제 무역항으로 유명했다.

조선의 왕도

조선은 이성계가 1394년에 한강변의 한양에 자 리를 잡았는데, 양(陽)은 강의 북쪽에 있는 도 시에 붙이던 이름으로, 한양이란 한강의 북쪽 에 있는 도시라는 뜻이다. 이와 비슷한 이름으 로, 심수의 북쪽에 위치한 심양(瀋陽)과 낙수의 북쪽에 위치한 낙양(洛陽)이 있다.

한강의 북쪽에 자리 잡은 한양이라는 도시의 중심부에는 청계천이 관통해 흐르는데, 그 방향 이 서로 달라 S자 형태의 태극수(太極水)를 이룬 다. 또한 북에는 북악, 동으로는 낙산, 서로는 인 왕산, 남으로는 남산의 내사산(內四山)이 자리 잡 고 있고, 그 바깥으로는 북쪽에 북한산, 서쪽에 덕 양산, 동쪽에 아차산, 남쪽에 관악산의 외사산(外 四山)이 다시 감싸고 있는 천하의 명당이다.

한양은 선사시대에도 압록강과 두만강 쪽에서 흘러온 문화의 교차점이 된 매우 중요한 곳이고, 백제가 한성이라는 도읍을 정했던 고대의 도시 다. 고려시대에는 남경(南京)으로 불린 부수도였 으며, 조선왕조가 왕도로 삼아 한양이라 하였다.

맺음말

지금까지 살펴본 우리나라의 도읍지 대부분들은 강변의 물이 들지 않는 높은 둔덕에 자리 잡고 있 는데 그 배후에는 산성을 갖추고 있어 적이 쳐들 어올 경우 피난하였던 곳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들이 강변 부근에 자리 잡은 것은 적의 도강을 어 렵게 하는 해자(垓字)의 역할을 하고 각지에서 거 두어들인 물류들을 강을 통해 모으기 쉽기 때문 이며, 그 외에도 강물을 음용수와 농업용수, 놀이 공간으로 사용하여 그곳에 사는 도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평지성(平地城)과 산성(山城)이 결합된 형태 의 도읍은 고조선시대에 속하는 하가점문화에서 시작하여 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등에서 모두 나타나고 있으며, 특히 한성백제시대의 한 성, 웅진성, 사비성과 고구려의 장안성, 고려의 나 성, 조선의 한양도성 등은 도시 전체를 하나의 성 벽으로 둘러쌓는 나성(羅城)의 구조를 지니고 있 는 것이 특징이다. 이들 도시의 한복판에는 작은 하천이 흐르고 있으며 그 바깥쪽을 한강, 금강, 예 성강 등의 거대한 하천들이 두르고 있다.

참고문헌

민병하. 1973. 한국사대계 4-고려. 서울 : 삼진사.

오순제. 2008. “하천의 역사와 문화”. 하천과 문화 제4권 제4호. pp74-81.

. 2009. “하천의 역사와 전쟁”. 한국하천 콘텐츠개발연구. 국토해양 부 편. 경기 : 국토해양부.

이만열. 1973. 한국사대계 2-삼국. 서울 : 삼진사.

지현병·이건충·김민경·최영석. 2007. 江陵 芳洞里 遺蹟-강릉 과학일 반지방산업단지 조성지역. 강원 : 강원문화재연구소.

참조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