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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제국-신냉전 시대의 동아시아 평화에 대한 인문학적 접근 방안
-한국, 중국, 일본, 대만, 오키나와의 경우
식민지/제국-신냉전 시대의 동아시아 평화에 대한 인문학적 접근 방안-한국, 중국, 일본, 대만, 오키나와의 경우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인문정책연구총서 2016-11
━ 이혜진
식민지/제국-신냉전 시대의 동아시아 평화에 대한 인문학적 접근 방안
-한국, 중국, 일본, 대만, 오키나와의 경우
연구기관 연구책임자 공동연구원
세명대학교 이혜진 김성연
이 보고서는 경제․인문사회연구회 2016년도 인문정책연구사업의 일환으로 수행된 연구 과제 중 하나입니다.
이 보고서에 수록된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인 견해이며 경제․인문사회연구회의 공식적인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동아시아 평화문제를 고찰할 때 여전히 문제시되는 것은 식민지/제국이 갖고 있는 역사 적 공유경험, 그리고 그것이 현재의 정치적 기억으로 전유되어 이어져 오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21세기가 지향하는 동아시아 협력네트워크의 시도가 성공궤도에 진입하기 위 해서는 동아시아 국가들이 갖고 있는 공유기억과 각각 상이한 국민국가 정체성의 연원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가 병행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 연구는 제국 일본의 지배하 에 산출된 저항과 협력, 그리고 그것의 착종양상에 관해 조선, 대만, 만주, 오키나와를 둘러 싼 연쇄적 흐름을 비교 분석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이는 21세기 동아시아의 협력네트워크 의 구축에 대한 전망을 타진해보는 시론으로서의 의미가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전체적인 연구방법은 15년 전쟁기 제국 일본의 식민지 문학을 대상으로 삼아 아시아연 대의 문화기획이 피식민지 국가에 어떤 경험을 남겼는가를 추적하는 가운데 그것이 현재 동아시아 지역통합의 문제를 둘러싸고 어떤 방식으로 전유되고 있는가를 고찰해보았다. 또 한 조선, 대만, 중국, 오키나와의 ‘전후’와 미·소 중심의 냉전체제가 접속하면서 동아시아의
‘전후’가 각각 어떤 정신사를 구축해왔는지를 통시적 관점에서 분석해보았다. 본 연구의 궁 극적 목적은 동아시아 지역에서 강조되고 있는 경제·정치적 통합논리가 제국 일본의 동아 시아 담론과 어떤 방식으로 연속되고 단절되었는가를 고구함으로써 오늘날의 동아시아 관 계의 해법을 파악하고자 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 연구는 다음과 같은 잠정적인 정책적 대안을 도출했다.
첫째 파행적 냉전체제 속에서 자행된 전후의 국가폭력이 식민지-제국주의의 공통경험에 따른 피해자-가해자 의식을 기반으로 형성되었다는 점에서 동아시아 내부의 성찰과 화해에 근거한 상호이해의 실천을 이끌어내기 위한 총체적인 동아시아 공동연구의 필요성이 절실 히 요청된다.
둘째 정부와 민간 차원에서 일본이 동아시아 국가들과 함께 과거를 극복함으로써 공동의 미래를 창출해가야 함을 이해시키는 일환으로서 ‘동아시아 진실화해위원회’와 같은 총체적 인 운동으로 승화시켜가는 일이 필요하다.
셋째 현재 동아시아의 평화와 인권을 위한 각국 시민단체의 민간교류가 활발히 전개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종합적인 운동의 차원으로 고양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히 문제적 이다. 그런 점에서 민간교류의 협력을 지향함으로써 각 국가의 시민단체의 연대와 운동을 지원하는 국가적 지원과 노력이 필요한데, 그중에서도 특히 민주주의와 평화주의를 실천하 는 지역공동체의 모델을 마련하는 일이 중요하다.
넷째 제주4·3평화공원 – 타이페이2·28평화기념공원 – 오키나와평화기념공원 - 히로시마·
다섯째 탈식민·탈냉정·탈패권의 삼위일체라는 과제를 이론적·실천적으로 감당하는 자주 적 공간 확보를 위해 동남아시아를 시야에 넣는 연구와 실천이 필요하다. 이것은 ‘아세안 방식’(ASEAN way)을 통한 아세안+3협력체의 중추적 역할을 하는 동남아와 한국의 전략적 연대를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현재의 시점에서 중요하게 환기될 필요가 있다.
핵심어: 식민지, 제국, 신냉전, 동아시아, 평화, 인문학, 조선, 중국, 일본, 오키나와, 대만, 전후, 전전
1. 연구개요 ···1
1.1. 연구목적 ···1
1.2. 선행연구 ···3
1.3. 연구방법 ···7
2. 제국 일본과 식민지 조선 ···10
2.1. 제국 일본/식민지 조선-전후/해방의 사상 연쇄 ···10
2.2. 동아·대동아·동아시아: 탈아입구에서 대동아공영으로 ···16
2.2.1. 동아협동체 ···16
2.2.2. 대동아문학자대회 ···22
3. 전후 일본과 해방 이후의 한국 ···36
3.1. 냉전 아시아와 전후 일본: 평화주의·민주주의 ···36
3.2. 냉전 아시아와 해방 조선: 반공주의·민족주의 ···46
4. 제국 일본과 식민지 대만 ···62
4.1. 탈중화 아시아의 구상과 대만 ···62
4.2. 대만 동화정책의 양상과 모순 ···64
4.3. 대만 황민화정책과 황민문학 ···69
5.1. 전후 대만과 저항의 역사: 계엄령과 대만민주주의 ···73
5.2. 전후 오키나와의 재식민지화: 식민지에서 미군기지로 ···77
6. 결론 ···81
참고문헌···83
Abstract ···93
1. 연구개요
1.1 연구목적
현재 동북아시아에서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논리에 따라 국민경제의 경 계를 넘어 지역통합과 시장통합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의견들이 적극적으로 시 도되고 있다. 이때 한국, 중국, 일본은 상호간의 갈등을 감수하면서도 통합의 방 향으로 나아가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최근 한·중 FTA가 체 결되기도 했다. 일찍이 제국 일본과 식민지 조선 그리고 동아시아의 점령지 국 가들은 ‘전전―전시체제기―전후’의 연속적 흐름이라는 역사를 공유했던 바 있 다. 이러한 식민지/제국이라는 동아시아의 특수한 역사성에 대해 한국, 중국, 일 본, 대만, 오키나와는 자신이 처한 상황적 맥락과 이해관계에 따라 그것을 국가 의 결속력[nationalism]을 위해 또는 과거 청산의 기제로 이용해왔다.
다른 한편 일본의 패전 이후인 1959년 제국 일본의 ‘근대초극론’을 내재적으 로 비판한 다케우치 요시미(竹内好)에 이어 1972년 중일국교정상화 이후 새로운 의미에서의 ‘대동아공영권’의 실현을 주창했던 곤도 야스오(近藤康夫), 그리고 1970년대 전 세계 신좌파운동의 조류 속에서 ‘근대초극론’을 비판적으로 재검 토하면서 진정한 의미에서의 ‘동아신체제’를 호소했던 히로마쓰 와타루(廣松涉) 등 냉전체제를 중심으로 한 ‘전후’의 맥락에서 동아시아 연대의 새로운 바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문제의식은 당대 국제정세의 혼돈 속에서 심화되지 못 했고 또 근대 비판의 시도 역시 또 다시 동아시아 담론으로 흡수되어 버렸다.
이후 노무현 정권에서 동북아시아의 지역협력을 추진하자 일본의 하토야마(鳩 山由紀夫) 총리가 ‘동아시아공동체 구상’으로 응답했고, 또 현재의 박근혜 정부 역시 신뢰의 인프라를 통한 동북아평화협력 구상을 외교안보의 핵심정책으로 제안한 바 있다. 이렇듯 현재의 동북아시아 지역통합의 방향은 단선적인 정부 간 협력의 틀을 넘어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행위자(non-state actors)들이 협의 와 협력을 모색함으로써 새로운 동북아시대의 복합적인 협력네트워크를 지향 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의 실체가 모호하다는 비판은 여전히 유효하고, 또 그
모든 시도들의 좌절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동북아시아 국가들이 지닌 상이 한 정체성의 연원과 내·외부 갈등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가 병행되어야 할 것임 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 연구는 제국 일본의 지배 하에서 산출된 저항과 협력, 그리고 그것의 착종 양상에 관해 조선, 대만, 만주, 중국, 오키나와를 중심으로 한 일본어 문학을 비교·분석하고 나아가 21세기 포스트 동아시아의 지역통합에 대한 전망을 고찰해보는 데 목적이 있다.
첫째, 조선, 대만, 만주, 중국, 오키나와의 전후 문학작품을 분석해봄으로써
‘전후-해방’ 시기 각 국가(지역)의 정체성 형성과정을 추적해보고자 한다.
둘째, 미·소 중심의 냉전체제와 조응하여 남북한 및 일본과 중국의 ‘전후’가 어떤 정신사를 구축해갔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펴보되, ‘전전-전후’의 급격한 단 절 양상 및 연속성의 측면을 조망해보고자 한다.
셋째, 1960-1970년대의 다케우치 요시미와 히로마쓰 와타루를 중심으로 한
‘근대초극론’, 즉 ‘전전-전후’의 일본사상사가 견인해 온 근대의 내재적 비판 양 상을 성찰적으로 고찰함과 동시에 ‘아시아’의 문제를 우회하는 일본 근대 비판 의 추이, 그리고 새로운 이론으로 부상한 한국의 근대화론이 어떤 담론의 추이 를 경유해왔는지에 대해 해명해보고자 한다.
넷째, 현재 국민국가의 경계를 넘어 국가·자본의 주도로 추진되고 있는 한·
중·일 동북아시아의 지역통합과 시장통합이라는 헤게모니의 재편과정이 아시 아연대론을 비롯한 과거의 동아시아 담론과 어떤 연속과 단절의 측면을 형성하 고 있는지에 대해 고구해보고자 한다.
여기서 먼저 ‘15년 전쟁기’(1931-1945) 제국 일본의 식민지문학을 1차 대상으 로 삼는 이유는 통상적인 일본어 문학과 달리 이 시기의 일본어 문학은 제국/식 민지의 문제와 착종된 근대 비판의 형태, 즉 정치적 편제와 문화적 변용, 그리 고 언어와 민족의 혼종성이 함의하고 있는 특수한 의미가 집약되어 있기 때문 이다. 더욱이 미국과 중국을 축으로 한 ‘신냉전시대(Bipolar system)’가 도래하고 국민국가 시스템의 붕괴를 예고하고 있는 다국적주의가 전 세계의 지배원리로 등장한 현재, 과거 ‘대동아공영’의 슬로건이었던 아시아 연대의 기획이 글로벌 화와 함께 동아시아 지역통합의 시도로 다시 호출되고 있다는 점은 본 연구의
문제의식에 시의성을 더해준다. 물론 현재의 시공간으로 회귀한 동아시아 지역 통합의 의도는 아시아 연대에 있다기보다 국익 중심의 논리, 즉 국가와 자본의 주도로 추진되는 국가 전략의 일환이다. 하지만 현재의 동아시아 담론을 이끌 고 있는 비판적 지성은 이러한 새로운 헤게모니 편성에 대해 여전히 무방비 상 태에 있고, 또 과거의 주술에서 여전히 해방되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한 원인 중의 하나는 ‘제국 일본’의 유산이라 할 수 있는 과거 식민 지 담론의 종합적인 지형도가 ‘전전-전후’의 연속과 단절의 선상에서 적극적으 로 논의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 본 연구의 근본적인 문제의식이다.
즉 지금까지 한국문학사에서 진행된 동아시아 담론은 근대 국민국가로서의 한국, 일본, 중국, 대만 등의 일국사에 초점을 맞추었던 탓에 일본의 식민지와 점령지를 포함한 ‘제국’의 경계가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는 혐의가 없지 않다.
따라서 신자유주의적 글로벌화를 슬로건으로 하는 현재의 시점에서는 일본의 구 식민지와 전후 냉전체제, 그리고 현재의 글로벌리제이션의 전망까지 시야에 넣은 ‘동아시아적 시좌’에서 연속과 단절에 대한 종합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 이 본 연구의 의도라 할 수 있는데, 그중에서도 전후 27년간 미국의 군정 하에 있었던 오키나와 지역은 이러한 문제의식의 시금석이 된다. 즉 새로운 동아시 아 연대의 조건이 막 싹을 틔운 현재, 일본의 식민지였던 조선, 대만과 만주 및 오키나와, 그리고 미국과 중국의 신냉전체제라는 헤게모니 재편과정 속에서 새 롭게 도래해야 할 아시아 연대란 과연 어떤 종류의 것이어야 하는지를 캐물어 야 할 중요한 국면에 접어든 것이다. 본 연구가 식민지/제국의 동아시아 문제의 인문학적 탐구에서 출발하여 신냉전시대 동아시아 평화에 대한 전망을 시도하 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1.2 선행연구
서구문명과 사상적 대립구도를 펼치고 있던 제국 일본의 자기완결적 서사인
‘세계사의 철학’이 태평양전쟁에 미친 영향력을 ‘동아/동아시아’라는 개념사로 고찰한 고야스 노부쿠니(子安宣邦)1)의 연구는 메이지(明治)와 쇼와(昭和) 일본의
사상논리를 역사적으로 탐구함과 동시에 현재 일본의 대외적 입장을 조망해보 는 데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주지하다시피 제국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패한 직후 천황의 인간선언에 이어 최강의 군사력을 자랑하던 군대를 해체하면 서 갑자기 전후 평화주의와 민주주의로 급격한 이데올로기 전환을 꾀했던 데는 냉전체제라는 이데올로기 대립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식민지를 거느렸던 제국 일본이 전후 평화주의라는 놀라울 만한 전환을 이룬 사실만 본다면 급격한 단 절로 파악될 수 있겠지만, 그것이 진행되는 과정에는 전전(戰前)의 사상이 은밀 하게 작동해왔다는 사실, 그것이 바로 전후 일본의 자기기만이었다는 것은 이 미 많은 연구자들의 공통의견이기도 하다.2) 예컨대 요시미 슌야(吉見俊哉)는 현 대 일본이라는 역사적 주체는 19세기 이후의 서구를 중심으로 한 세계시스템의 전개 속에서 역사적으로 구축되었고 또 그 이후에 팽창한 문화적·사회적 제도 를 통해 자신의 주체성을 보다 분명했다는 점을 공공연히 말해왔다. 또한 패전 이후 혹독한 국가적 위기를 겪으면서 이루어낸 전후고도성장기를 거쳐 1980년 대까지 일본은 국민국가로서의 통일적인 역사적 주체였고 또 현재까지 그런 존 재로 기능하고 있다고 말했다.3) 이런 점에서 ‘전전-전후’의 일본을 연속성의 관 점에서 살펴보는 일이란 식민지·점령지 국가들의 ‘전전-전후’를 동일한 판도에 놓고 ‘전전’의 공유된 역사적 기억과 ‘전후’의 완전히 분리된 역사 주체의 흐름
1) 고야스 노무쿠니 지음, 이승연 옮김, 동아 대동아 동아시아, 역사비평사, 2005.
2) 나카무라 마사노리 지음, 유재연 옮김, 일본전후사 1945-2005, 논형, 2006. ; 야마구치 지로·이시카와 마쓰미 지음, 박정진 옮김, 일본전후정치사: 일본 민주주의의 보수적 기원 과 전개, 후마니타스, 2006. ; 권혁태, 일본 전후의 붕괴, 제이앤씨, 2013. ; 오사와 마사 치 지음, 서동주 외 옮김, 전후 일본의 사상공간, 어문학사, 2010, ; 남기정 지음, 전후 일본 그리고 낯선 동아시아, 박문사, 2011. ; 다카하시 데쓰야 지음, 이규수 옮김, 일본의 전후책임을 묻는다, 역사비평사, 2000. ; 성기중, 「전후 대일 점령 개혁조처와 일본보수주 의」, 한국동북아논총 제22집, 2002. ; 박이진, 「탈냉전 이후 일본의 동아시아 담론」, 일 본문화연구 제58집, 2016. ; 김지연, 「전후 일본의 평화주의의 기원과 국체(國體) 수호」,
동양정치사상사 제2권 제2집, 2003. ; 성기중, 「일본 전후체제의 형성: 정치 및 사회·문 화적 개혁을 중심으로」, 한국동북아논총 제29집, 2003. ; 김준섭, 「전후 일본의 평화주의 에 관한 고찰」, 국제정치논총 제40권 제4호, 2000. ; 김지연, 「전후 일본 국가이념의 변 용」, 한국동양정치사상사연구 제3권 제2호, 2004. ; 박삼헌, 「전후 일본의 동아시아 담론 에 대한 비판적 고찰」, 일본학보 제99집, 2014.
3) 요시미 슌야 지음, 최종길 옮김, 포스트 전후사회, 어문학사, 2013, 252쪽.
을 함께 살펴봄으로써만 가능하다.
이와 함께 냉전체제 하의 오키나와 미군기지의 정치적·사회적 의미를 태평양 전쟁기 총동원체제의 연속적 차원에서 고찰한 연구들 역시 지역과 국민국가의 차원을 넘어 동아시아 전역에 파급된 현재적 문제들을 차례로 짚어나가고 있다 는 점에서 유효한 참조점을 제공해준다.4) 주지하다시피 오키나와의 미군문제 는 미군정 하 일본의 정치적 문제뿐만 아니라 1960년대 후반에 불거진 평화운 동과 연동된 민족주의, 그리고 여기서 파생된 전후 평화주의와 민주주의를 위 시한 시민운동, 환경이나 지역경제의 문제들과 밀접하게 연관된 대규모의 사안 이었고, 또 주한미군 주둔 및 기지문제와 관련하여 한국에 미친 미국의 영향과 도 중첩된 문제라는 점에서 중요한 시금석이 된다. 또한 최근에 불거진 중국의 동북공정 기획 관련 연구도 동아시아 전체의 현재성을 조망하는 데 중요한 기 여를 하고 있다.5) 이러한 연구들은 일본의 고토회복전략과 중국의 동북공정기 획을 비교하거나 중국의 인터넷 지도 현황 등을 분석하며 중국이 호출하는 ‘영 토의 기억’이 과거의 그것과 같이 동아시아의 헤게모니를 차지하기 위한 전략 임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최근의 북핵문제 역시 개별 국민국가의 도발이라기 보다는 동아시아 문제의 일환으로 파악하는 움직임도 등장했다.6) 탈냉전에 이
4) 고명철, 「오키나와에 대한 반식민주의로서 경계의 문학」, 탐라문화 제49호, 2015. ; 나미 히라 쓰네오(波平恒男), 「오키나와의 역사체험과 ‘비무(非武)의 평화’ 사상」, 아시아리뷰
제5권 제2호, 2016. ; 곽형덕, 「마타요시 에이키 문학에 나타난 “타자”와의 교섭 과정」, 탐 라문화 제49집, 2015. ; 정영신, 「오키나와의 기지화·군사화에 관한 연구」, 사회와 역사
제73집, 2007. ; 손지연, 「전후 오키나와(인)의 성찰적 자기서사 신의 섬(神島): ‘오키나와 전투’ 사유하는 방식」, 한림일본학 제27호, 2015. ; 도미야마 이치로, 「오키나와 전쟁 트 라우마와 냉전」, 한국학연구 제28집, 2012. ; 요나하준(與那覇潤), 「몇 가지의 ‘혁명'의 사 이에서」, 정치사상연구 제16권 제1호, 2010. ; 차옥숭, 「오키나와 전쟁의 국가폭력에 대한 분석」, 사회과학연구 제36권 제2호, 2010. ; 신주백, 「한국근현대사와 오키나와」, 한국민 족운동사연구 제50집, 2007. ; 임성모, 「제국의 교차로: 만주국·오키나와 비교 시설」, 동 아시아: 비교와 전망 제1집, 2003.
5) 나영주, 「‘동북공정’의 발전과정과 정치적 성격」, 민족연구 제13호, 2004. ; 전병곤, 「중 국 ‘동북공정’의 정치적 함의」, 중국연구 제38권, 2006. ; 홍성후, 「동북아 지정학의 부활 -일본: 일본, ‘적극적 평화주의’ 내세워 지역패권 추구」, 통일한국 제368호, 2014.
6) 김명섭, 「북핵문제와 동북아 6자회담의 지정학: 역사적 성찰과 전망」, 한국과 국제정치 (KWP) 제27권 제1호, 2011.
어 현재 미국과의 ‘신냉전’을 예고하고 있는 중국이 과거 제국 일본으로 인한 굴절된 역사의 기억을 극복하고 현재에 이르는 과정에 어떤 정신사를 형성했고 또 그것은 어떤 경험에서 비롯한 것인지를 밝히는 것 역시 이 연구의 시론적 의미로서 가치를 지닌다.7)
특히 문학의 경우 근대형성기에 집중되었던 국민국가 연구의 틀을 넘어서 전 후 동아시아 국가 담론, 로컬문학/소수자문학의 정체성 형성과정을 추적하려는 연구도 상당 부분 진행되었다.8) 이러한 연구들은 중일전쟁을 전후한 이른바
‘15년 전쟁기’에 피식민자들이 스스로를 소수자 문학으로 인식하는 맥락을 탐 구하거나, 전후 미군정기 등을 거치며 탈식민지를 범위로 하는 새로운 한국의 정체성이 구성되는 과정을 비롯하여 일본, 대만의 전후문학 형성기 등을 추적 한 연구도 함께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특히 식민지 말기의 한국과 대만의 비교 연구를 대만의 학자들과 공동연구를 진행한 전쟁이라는 문턱: 총 력전하 한국-타이완의 문화 구조9)는 이 연구의 초석이 될 만한 것으로 평가해 도 좋을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제국/식민지 연구는 주로 식민지 조선/제국 일본을 대상으로 한 연구가 중심이 되었고 또 다양한 방면에서의 제국 일본의
7) 김정수, 「탈/냉전 중국의 전쟁 기억과 민족서사의 곤경」, 중국소설논총 제46집, 2015. ; 이병한, 「신냉전사: 중국현대사의 새 영역」, 중국근현대사연구 제53집, 2012. ; 김옥준,
「탈냉전시대 중국의 동아시아 세력균형정책」, 중국학논총 제29집, 2010. ; 윤영덕, 「냉 전 후 중국-아세안 관계의 발전과 동아시아 지역협력」, 중국연구 제33집, 2004. ; 이정 남, 「탈냉전기 중국의 동북아평화구상」, 평화연구 제11권 제4호, 2003. ; 김미란, 「탈냉 전기 타이완의 ‘중국 상상’과 민족주의」, 중국현대문학 제60집, 2012. ; 윤영덕, 「탈냉전 후 중국과 아세안의 상호 전략과 그 영향」, 중국학논총 제18집, 2005. ; 장병옥, 「탈냉전 시기 아태지역의 전략국면과 미국-중국-일본의 삼각관계」, 중국연구 제33집, 2004. ; 김 태운, 「탈냉전 이후 동북아 국제질서의 특징」, 인문사회 21 제4집, 2013.
8) 한수영, 「전후세대의 문학과 언어적 정체성」, 대동문화연구 제58호, 2007. ; 황호덕, 「해 방과 개념, 맹세하는 육체의 언어들: 미군정기 한국의 언어정치학, 영문학도 시인들과 신 어사전을 중심으로」, 대동문화연구 제85호, 2014. ; 김재용, 「한국에서 읽는 오키나와 문 학」, 탐라문화 제49호, 2015. ; 김명인, 「민족문학론과 동아시아론의 비판적 검토」, 민 족문학사연구 제50집, 2012. ; 송인선, 「해방/패전 체험과 미(美·米) 점령기의 ‘영어’ 이야 기: 염상섭과 고지마 노부오의 소설을 중심으로」, 비교문학 제64집, 2014.
9) 한국-타이완 비교문화연구회 지음, 전쟁이라는 문턱: 총력전하 한국-타이완의 문화 구조, 그린비, 2010.
식민통치 연구가 진행되었음에도 대만과의 비교 연구는 여전히 소홀하기 때문 이다. 더욱이 전전에는 ‘무국가 민족’이었지만 전후에는 ‘분단체제’를 형성하게 된 조선에 비해, 대만은 민족 전체가 식민 상황에 편입된 것도 아니었고 또 국 가 체제로 포스트식민 상황에 처하게 된 적도 없다. 이 때문에 대만의 상황을 해석할 때 여전히 논란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들의 연구 역시 전후 의 대만까지는 다루지 못했다는 한계를 갖고 있는데, 이것은 전후 대만 연구 진 행이 여전히 소홀하다는 한국의 연구풍토를 집약해준다.
이와 같이 전전-전후 동아시아 정체성의 형성과정을 다룬 연구는 점차 비약 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정치적·경제적·문화적으로 다양하게 작동 하는 동아시아 국가 간의 긴장과 협력의 연원을 보다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위 해서는 동아시아의 각 국가들이 ‘제국(주의)’으로부터의 ‘해방’과 전전-전후를 거치며 어떤 동질적·이질적 경험을 하였는가를 종합적으로 파악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 연구는 동아시아 냉전체제가 조성될 무렵 국가권력 의 헤게모니를 강화하기 위해 호출되었던 각국의 ‘과거 기억’을 세밀하게 파악 하고, 이것이 현재의 신냉전체제 형성과정에서 어떤 방식으로 재생산되고 참조 되었는지에 대한 시좌에서 접근해볼 것이다.
1.3 연구방법
전후 동북아시아의 지정학적 내러티브가 조선의 ‘반도정치성’을 중심으로 하 여 일본의 ‘해양정치성’과 중국의 ‘대륙정치성’으로 변주됨과 동시에 전후의 민 족담론이 냉전체제의 이데올로기와 연동되면서 구축되었다는 사실은 현재의 시점에서 볼 때 매우 주목해야 할 사안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 연구는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진행하고자 한다.
첫째, 제국 일본의 식민지 일본어문학을 경험적인 분석도구로 삼음으로써
‘15년 전쟁기’ 식민지 문학연구의 보편적인 문제 틀과 종합적인 분석방법론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둘째, 과거 ‘대동아공영’의 논리를 제국 일본의 주변적 시각을 재검토해볼 필
요가 있다. 특히 ‘대동아전쟁’ 시기의 조선, 대만, 중국 점령지, 오키나와의 일본 어문학을 동시대적으로 검토함으로써 ‘대일본제국’의 사상편제 하에서 각 문화 의 방향전환과 전유의 시도 및 협력의 논리 등을 살펴보되, 각각의 비교를 통해 종합적 구성의 이론적 틀을 모색해볼 것이다.
셋째, 한국, 대만, 만주, 중국, 오키나와의 전후 문학작품의 분석을 통해 평화·
민주주의 개혁의 메커니즘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로 대변되는 세계시스템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복합적 동아시아 연대’라는 과제를 달성할 수 있는 가능성 이 현재의 동아시아 담론에 존재하고 있는지에 대해 검토해볼 것이다.
넷째, 글로벌시대의 신제국주의론과 신식민주의론을 동북아시아의 입지적인 측면에서 고찰해보고자 한다. 제국주의론은 언제나 식민지주의 문제와 함께 언 급된다. 일찍이 피터 두스(Peter Duus)가 제국 일본의 ‘대동아공영권’의 구상을
‘식민지 없는 제국주의’로 언명했거니와, 이에 대응하여 21세기 글로벌시대의 신식민지주의는 ‘식민지 없는 제국주의’의 특징을 내포하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주지하다시피 제국의 식민지주의는 ‘문명화의 사명’이라는 구 실을 근거로 추진되었고, 이때 ‘문명화’란 자본주의를 핵심으로 한다. 현재의 글로벌리제이션이 만약 제2의 식민지주의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세계 주변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구식민지가 다시 착취의 대상이 될 것이라는 점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신식민지의 경계는 더 이상 영토나 국경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정치·경제적인 구조 속에 자리 잡고 있다.10)
다섯째 전전―전시체제기―전후 동북아시아 질서의 작동방식을 살펴봄으로 써 각 국가질서의 개별적 특징을 비교하여 그것의 연속과 단절을 해명한 뒤 그 것을 현재적 맥락으로 전유함으로써 21세기형 동아시아의 사상사적 과제를 모 색해보고자 한다.
여기서의 출발은 일본의 ‘전후’와 한국의 ‘해방’이라는 기점에서 작동된 평화 주의·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한 내셔널 아이덴티티의 형성과정이 상호배타적인 입장을 견고히 하는 데 기여해왔다는 가설에서 출발하고자 한다. 일찍이 식민 지/제국주의의 문제가 특정의 역사적 맥락을 통해 피해자와 가해자라는 이분법
10) 니시카와 나가오 지음, 박미정 옮김, 신제국주의론, 일조각, 2009, 27쪽.
의 구도로 민족/국민의 감성을 자극하는 기제로 원용되었다면, ‘전후-해방’을 맞이하여 자주국가를 수립하는 과정에서 요구된 새로운 집단정체성의 구축과 정은 국가권력과 시민사회가 생산과 소비의 두 축을 형성하면서 과거의 기억을 그 사회가 지향하는 욕망에 따라 사회적 합의의 형태로 만들어가는 데 공모했 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동북아시아에 냉전체제가 조성될 무렵 각자 자국의 입장에서 과거의 기억을 호출하고 또 그것을 반복·재 생산함으로써 권력의 헤게모니를 강화해온 한국, 일본, 중국 국가권력 형성의 문제가 시민사회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대중적 민족주의와 착종되어 있다는 사 실을 암시한다. 특히 전후 질서의 재편과정이 미국과 소련 중심의 세계질서 구 축을 겨냥한 것이었다는 점은 전후 새로운 집단적 정체성의 수립과 함께 새롭 게 규정되어야 할 수많은 정치적 과제들이 반영되어 있음을 함의한다.11)
주지하다시피 오늘날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수행되고 있는 과제는 과거와 현 재를 연동시키면서 상호참조체계를 형성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동북아시아의 지역통합의 문제는 여전히 과거의 망령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여기에는 제 국 일본과 식민지―전후 일본과 식민지 내셔널 아이덴티티의 형성과정―미·소 중심의 냉전체제―미·중 중심의 신냉전체제로 이어지는 기억과 억압에 대한 문 제 군이 놓여 있으며, 이제 이것을 정면 돌파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시각이 팽 배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난제가 되었다. 더욱이 현재의 다문화주의, 공공성, 글리벌라이제이션 등에 수반한 내셔널 아이덴티티의 문제 군 역시 각각 주제는 달라 보이지만 식민지/제국 문제의 근저에 존재하고 있거 나 또는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방향을 찾는 시도라는 점에서 하나의 통일된 문 제영역을 형성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렇게 형성된 참조체계를 어떻게 실천적 작업으로 이어갈 것인가 가 중요한 현재적 사안으로 자리 잡게 된다. 따라서 동북아시아라는 장(場) 속 에서 각각의 역사와 주체에 새겨진 상흔을 재삼 성찰하는 일이란 냉전하의 분 단체제를 극복하고 새로운 연대의 가능성을 생산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 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는 동북아시아의 장 안에 자신을 위치시키고 과거의
11) 이혜진, 「전후-해방 정신의 계류점」, 한국문학과예술 제18집, 2016, 120-121쪽.
주술을 풀어가면서 새로운 관계성을 향한 실천으로 나아가는 일, 그것이 바로
‘포스트 동아시아’를 예비하는 올바른 태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2. 제국 일본과 식민지 조선
2.1 제국 일본/식민지 조선-전후/해방의 사상 연쇄
해방 이후 한국사회는 식민지에서 벗어나 단독성을 갖춘 국민국가를 체현하 는 과정에서 맨 얼굴을 한 민족문제와 혹독하게 대면했던 바 있다. 당시 첨예화 된 한국의 민족문제는 식민지 경험의 외상을 극복하는 강력한 수단이 되었지 만, 동시에 ‘민족’의 명분하에 수많은 가능성들을 차단했던 것도 사실이다. 거 기에는 일본으로부터 자립한 단독국가를 성립하기만 하면 만사형통이라는 하 나의 지배적 사고가 전제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해방 이래 약 70여 년간 형식적으로는 자립적 국가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21세기 글로 벌시대에도 국가와 민족의 문제를 여전히 인종의 수준에서 파악하는 무의식을 벗어버리지 못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고 말았다. 그런 가운데 한국의 급격한 다 문화사회로의 이행은 탈민족주의적 현상에 직면케 했고, 국민국가의 기반이 흔 들리는 장면을 목도하면서 오히려 민족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사고하는 역설적 현상을 노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12)
다른 한편 2차 대전 이후 식민지 국가들이 독립함과 동시에 ‘세계자본주의체 제’가 형성되면서 ‘하나의 세계 공간’이 표면화된 상황도 개별 국민국가의 민족 문제에 대한 재고를 부축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역사적 공유지반에 의해 구 성된 특수한 세계들의 구축, 즉 세계가 복수(複數)의 공영권으로 분류된다는 관
12) 이혜진, 「아시아/일본·식민지/제국의 온톨로기: ‘식민지 공공성’의 조선적 형식」, 한국문 학이론과비평 제62집, 2014, 270쪽.
념이 세계자본주의 시스템이라는 경제적 문맥에서 재구축되고 있는 것이다.13) 유럽연합은 그렇다 치더라도 과거 일본의 식민지를 경험했던 한국으로서는 현 재 대두되고 있는 ‘아시아 시대’라는 슬로건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을 수 없는 데, 이는 과거 일본이 아시아 국가들을 하나의 ‘공영권’으로 구성함으로써 서양 의 침략에 대한 아시아 민족의 해방과 공존공생을 주장했던 이른바 ‘대동아공 영권’의 잔상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14)
이러한 근대 국민국가 형성의 조류 속에서 우리는 상반된 두 가지의 아시아 담론과 조우한 바 있다. 하나는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정책으로 인해 전개된 ‘식 민주의적 아시아 구상’이고, 다른 하나는 민족해방과 사회주의운동을 중심으로 전개된 ‘아시아의 사회혁명’이 그것이다. 전자는 동양과 서양이라는 이원론적 대립구도에서 ‘아시아/동아’라는 개념 구축으로 이어졌고, 후자는 국제주의적 안목에서 식민지와 민족문제를 다루어야 한다는 당위로 이어졌다.15) 여기에는 필연적으로 서구 중심의 ‘근대 초극’이라는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이 개입될 수 밖에 없는데, 이러한 형국은 어쩐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형태로 하나의 총 체적 질서가 구축된 이래 새롭게 아시아의 지역통합이 모색되어가고 있는 점, 그리고 그러한 통합과정에서 요청되는 실천으로서의 다민족·다문화 담론과 같 은 현재의 국제정세와도 매우 닮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냉전체제에 서 궁극적으로 미국 자유주의의 승리를 승인한 후쿠야마(Francis Fukuyama)의
‘역사의 종언’이 자본-네이션-스테이트의 근본적인 변혁불가능성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그리고 더 이상 근대 주권국가로서의 한 국가의 경제와 국가체제를 신자유주의라는 세계시스템과 분리해서는 사고할 수 없게 되었다면 그것은 또 다른 형태의 제국주의적 재편을 예측케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즉 19세기 영국의 자유주의와 완전히 이질적인 1990년 이후 미국의 신자유주 의는 사실상 제국주의와 친연성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 새로운 형태의 제국주 의는 과거 서구열강에 의한 영토적 침략주의가 아니라 전 지구적 차원에서의
13) 가라타니 고진 지음, 조영일 옮김, 언어와 비극, 도서출판b, 2004, 386-387면.
14) 이혜진, 앞의 논문, 271쪽.
15) 왕후이 지음, 송인재 옮김, 아시아는 세계다, 글항아리, 2011, 33-34쪽.
자본주의 질서, 즉 세계자본주의 시스템으로 존재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 다.16) 1961년 다케우치 요시미가 ‘방법으로서의 아시아’를 제창했던 것은 패전 의 폐허를 딛고 또다시 진정한 일본적 주체형성의 과정을 거쳐보자는 자기비판 의 의미가 함의된 것이었다. 구체적으로 그것은 졸속으로 성취한 일본의 근대 화, 즉 메이지유신 이후 더 이상 서구를 기준으로 한 열등감에 의한 것이 아닌
‘아시아 내부’의 시선에서 냉철하게 비판해보자는 준열한 관점을 취한 것이었 다.17) 그렇다면 한국이 동아시아를 조망하는 관점, 즉 해방 이후 자립한 민족의 명분으로 자행해왔던 수많은 모순에서 비롯된 ‘오욕’에 대해서도 다케우치 요 시미의 견해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 과거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사실이 역사적 치욕이었다면 그것을 만회하기 위한 과정에서 한국 역시 거대한 모순을 노정해 왔기 때문이다. 이제 그러한 치욕을 겸허한 태도로 냉정히 응시하는 것이야말 로 ‘아시아 내부’에서 주체적 국가로서 행위할 수 있는 위치에 서도록 노력할 때이며, 그러한 태도는 곧 미래의 아시아적 주체로 자립하는 성숙한 자세이다.
일반적으로 일본의 ‘전후’는 평화주의, 고도성장, 보수-혁신의 균형, 미일동맹 (대미 의존)을 구성요소로 한다. 그리고 각각의 요소가 얽혀있지만 이를 큰 틀 에서 지탱해준 것이 냉전체제라는 점은 잘 알려져 있다. 가령 존 다우어(John W. Dower)가 패배를 껴안고(embracing defeat)(1999)에서도 이미 서술했지만, 일본의 ‘전후 번영’은 기본적으로 냉전체제의 산물이다.18) 포츠담선언(1945.
8.14.) 직후 총 11회에 걸친 일본 천황과 맥아더(Douglas MacArthur) 회담기록에 의하면, 천황은 스스로 전쟁책임을 인정하면서 자신에 관한 처우를 맥아더에게 맡긴다고 말했고, 이러한 ‘결단’에 맥아더도 감동했다는 미담이 전해졌다. 또한 냉전대립에서 천황은 공산주의의 위협에 대한 언급했고 또 일본의 안전보장에 미국이 적극적으로 관여해주기를 요청했다. 특히 마지막 회담에서 천황이 도쿄 재판에서 자신을 소추의 대상에서 제외시켜준 맥아더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는
16) 이혜진, 「제국의 형이상학과 식민지 공공성의 재구성」, 민족문화논총 제60집, 2015, 189-191쪽.
17) 이혜진, 위의 논문, 191-192쪽.
18) 권혁태, 일본 전후의 붕괴: 서브컬처 소비사회 그리고 세대, 제이앤씨, 2014, 17쪽.
것을 잊지 않았다는 장면을 상기해볼 때 일본의 전후 번영이 냉전체제의 산물 이었음은 더욱 명백해진다.19) 더욱이 패전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일본 중신과 군부의 관심사가 오직 ‘국체호지(國體護持)’에 있었다는 점, 즉 천황에게만 통치 권을 부여하는 정치체제를 그대로 유지해야 하는 점을 가장 중요한 노선으로 했다는 점에서 전후 일본의 내셔널리즘은 여전히 문제적이다.
태평양전쟁에서 패배한 일본은 역사상 최초로 외국 점령군의 지배를 받게 되 었다. 유럽의 패전국 독일이 연합군의 점령통치를 받게 된 것과 달리 아시아의 패전국 일본은 사실상 미국의 단독지배를 받았는데, 이는 포츠담선언에 의거하 여 일본 정치·사회구조의 전면개조가 강제되었다는 점에서 군대철수나 배상금 징수와 같은 과거의 점령형태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이었다. 미국의 대일본정책 은 ‘민주화’와 ‘비군사화’로 집약되었고, 그것은 1947년 5월 3일 20여 명의 미국 인에 의해 일주일 만에 만들어진 ‘평화헌법’으로 제도화되었다.20) 그럼에도 전 후 일본의 국가 이데올로기이자 ‘헌법 9조’로 대표되는 평화주의는 현재까지 일본정치의 골조를 이루어왔다. 일본의 전후개혁을 ‘GHQ 혁명’이라고도 부르 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헌법 9조’는 미국의 강요에 의한 것이었으므로 미국의 점령이 끝나면 일본의 신헌법도 폐기되리라는 예상과 달리, 그것은 일본 국민 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전후 일본의 정신사를 이끌어갔다.21) 요컨대 ‘전 후 이상주의’를 대변하는 일본의 평화주의·민주주의는 외교상의 대립상황 가운 데 천황제 군국주의의 철저한 배제를 강요받으면서 완전히 새로운 집단정체성 을 재건해가는 과정에서 등장했다는 점에서 일본 내셔널리즘의 문제를 필연적 으로 동반할 수밖에 없는 태생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예컨대 전후 일본이 전쟁 포기를 선언하고 평화를 실현하는 중립국임을 자처한다는 것 자체가 이상 주의임을 비판하면서 무력으로 지탱되는 평화주의란 환영에 불과하다고 주장 한 고사카 마사타카(高坂正尭)22)의 주장은 전후 일본의 평화주의·민주주의의 이
19) 이시카와 마스미 지음, 박정진 옮김, 일본전후정치사, 후마니타스, 2012, 36쪽.
20) 한정선, 「일본에서 민주주의의 형성과 변천: 전전 ‘민본주의’부터 전후 ‘민주주의’까지」,
역사와현실 제87집, 2013. 3, 117쪽.
21) 이혜진, 「전후-해방 정신의 계류점」, 한국문학과예술 제18집, 2016, 122-123쪽.
22) 高坂正尭, 「現實主義者の平和論」, 北岡伸一 編, 前後日本外交論集, 中央公論社, 1995, 208쪽.
율배반적 성격을 잘 대변해준다.23)
한편 ‘무정책의 시대’로 표상되는 한국의 1950년대와 국가주의적 경제성장의 시대로 표상되는 1960년대, 그리고 이 두 시기를 양분하는 제2공화국(1960.6.15.
-1961.5.16.)이 ‘미완의 시기’로 간주되고 있는 만큼, 한국전쟁 이후 남한의 국가 재건정책은 ‘민족’보다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을 최우선시 함으로 써 새로운 이념을 강조해갔다는 점에서 전후 일본과 연관해서 볼 때 매우 주목 되는 바가 있다. 주지하다시피 냉전체제에서 한국의 반공주의는 북한에 대응하 면서 국내동조세력에 대한 배제를 중심기조로 삼음으로써 북한에 대한 우위를 점하기 위한 군사력 증강을 용인하는 국가 중심의 신념을 외연으로 한 것이었 다. 즉 해방에 이어 북한과 전쟁에 돌입한 한국은 외부의 적, 그리고 외부와 내 통한 내부의 적을 ‘공공의 적’으로 간주하고 그것을 준별하고 배제함으로써 내 부를 동일화해가는 전략, 이른바 ‘아이덴티티의 정치학’을 통해 미국을 중심축 으로 체제존립의 근거로 삼았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24) “이 전쟁(한국전쟁-인 용자)은 멸공성전(滅共聖戰)이다. 공산침략자=적색제국주의자를 완전히 격멸해 서 우리 민족, 우리 국가, 우리 국토를 완전히 통일하고 우리 자손만대의 번영 과 행복을 도모하며 자유주의 원칙을 수호하는 동시에 전 인류의 영구적 평화 를 보장하기 위해서”25) 싸워야 할 것을 주장한 사학자 이병도의 논리가 당시의 시대정신을 대변했던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26)
이와 함께 미군정체제에서 민족주의 계열인 임정그룹이 남한사회를 주도해 감에 따라 ‘공산주의=반민족’은 해방 직후 한국의 내셔널 아이덴티티의 등식을 주조해갔다. 더욱이 ‘반탁정국’에서 소련의 ‘찬탁’ 결정은 반민족의 결정적인 증좌로 활용되었고, 남한은 그것을 반공민족주의의 아이덴티티를 전면에 내세 우는 계기로 삼았다. 그런 점에서 탁치파동은 ‘민족’에 뿌리를 둔 한국의 국민 정체성을 ‘이념’에 뿌리를 둔 국민 정체성으로 대체하게 한 중요한 계기가 되었
23) 이혜진, 앞의 논문, 123-124쪽.
24) 남기정, 「냉전 이데올로기의 구조화와 내셔널 아이덴티티의 형성의 상관관계: 한일비교」,
한국문화 제41집, 2008, 226쪽.
25) 「좌담회: 사상운동의 회고와 전망」, 사상, 1952년 10월호.
26) 이혜진, 앞의 논문, 124-125쪽.
다. 또한 이승만 정권의 반공 이데올로기는 전멸시켜야 할 타자로서의 공산주 의 이미지를 상상적으로 구축했고, 그 과정에서 용공 : 반공의 이념적 기준은 대 한민국 네이션의 정통성을 구성하는 1차적 의미를 획득하게 되었다. 이로써 ‘반 공’을 ‘국시(國是)의 제1의’로 삼은 남한정부의 반공주의는 국가 지배이데올로 기로만 머물지 않고 제주 4·3사건과 여순사건 등을 통해 국민의식으로 내면화 됨으로써 내셔널 아이덴티티를 구조화하는 과정을 밟아나갔다.27) 그리고 그것 은 한반도의 이념분단을 경험하면서 보다 강고한 민족의식과 국가 정체성 간의 괴리를 형성해갔다. 즉 대한민국 헌법 제4조에 명시된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 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조항의 내용과 달리, 현실의 대한민국이란 38선 이남지역에서만 승인된 합법정부만을 가리킨다는 사실은 이상과 실제의 간극 을 어떻게 국민에게 납득시킬 것인가 하는 중요한 문제를 발생시켰다.28)
이렇듯 전후-해방 시기 일본과 한국은 냉전체제에 조응하여 각자 유리한 입 지에서 이념적으로 대응하면서 국가 재건과 새로운 국민 정체성의 모색과정을 운용해가는 가운데 수많은 자기모순을 노정해갔다. 특히 전후-해방의 긴박한 분위기가 서서히 안정기에 이르자 식민지 국민과 패전국 국민이 갖는 공통적 원체험으로서의 제국-식민지-전쟁이 과거에 대한 노스텔지어를 불러일으키면 서 ‘회한의 공동체’를 형성해간 저간의 사정은 어쩌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기 도 했다. 가령 일본 ‘전후정신’의 기원으로 간주되는 ‘평화문제담화회’를 비롯 하여 반전평화사상의 확립을 통한 자기반성과 실천을 모색해가는 무리들이 생 겨나고, 또 과거의 군국주의에 대항하는 근거로서 민주주의의 공고화를 천명하 는 등 일본의 전후 평화주의가 점차 선진문명 국가의 도의적 이념으로 자리 매 김 되는가 하면, 하루 빨리 열등한 식민지 민족성을 탈피함으로써 반만년 역사 에 뿌리를 둔 우수한 국민으로의 변신을 꿈꿨던 한국의 내셔널 아이덴티티는 각각 어떤 한 시점에서 해결되지 못한 채 그대로 봉인되어버린 지점이 공통적 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가토 노리히로는 이것을 ‘비틀림’이라는 용 어에 기대어 이러한 착종의 논리를 집중적으로 해명한 바 있는데, 그에 따르면
27) 남기정, 앞의 논문, 227-229쪽 참조.
28) 이하나, 「1950-1960년대 재건 담론의 의미와 지향」, 동방학지 제151집, 2010. 9, 396쪽.
과거가 함의하고 있는 ‘오욕의 직시’를 회피한 채 재빠르게 자신의 구미에 맞는 결론을 채택해버림으로써 전쟁에 대한 죄의식을 완화시켜버렸다는 데 전후 평 화주의자들의 자기기만이 놓여 있다.29) 전전의 군국주의가 전후 민주주의로
‘둔갑’하는 과정에는 내셔널리즘의 개입과 함께 부정해야 할 역사를 과거에 봉 인해버림으로써 결국 사죄의 문제를 회피해버렸다는 것이 가토 노리히로의 견 해인데, 이러한 사실은 1960년대 후반 안보투쟁 시기 전공투(全共闘) 학생들이 전후 일본의 평화주의를 국가권력과의 야합을 통한 전쟁 추인의 기제라고 평가 절하하면서 전후 민주주의를 타락과 부패의 상징으로 간주했던 이유가 되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해방 이후의 한국은 이념적으로는 미국 중심체제를 표방함 으로써 북한을 독립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대척적인 위치에 자리 매김 했다. 그 럼에도 동포의 비극에 대한 동정과 비난을 끊임없이 반복하면서 각각 상이한 내셔널 아이덴티티를 향하도록 등 떠미는 관계를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다는 점 에서 어떤 ‘비틀림’의 존재가 감지된다는 생각은 비단 필자만의 것은 아닐 것이 다. 이렇게 볼 때 한국의 해방-냉전을 둘러싼 문제영역은 근대 한국의 정신사적 과제를 함의하고 있다는 점을 특별히 강조할 필요가 있다.30)
2.2 동아·대동아·동아시아: 탈아입구(脫亞入歐)에서 대동아공영으로
2.2.1 동아협동체론
러일전쟁(1904)과 메이지 천황의 죽음(1912.7.30)이 메이지시대를 종언하고 다이쇼시대로 이행했던 것처럼, 일련의 전쟁을 거치면서 완성된 쇼와 전기는
‘제1차 세계대전의 전후 시대’로 의식되면서 비로소 세계의 ‘동시성’을 사유하 기 시작한 시대이다. 또한 이 시기는 마르크스주의가 패배하면서 일종의 포스 트모더니즘과 ‘일본 회귀’가 출현하고, ‘일본낭만파’가 전면에 등장한 시기이기
29) 가또오 노리히로 지음, 사죄와 망언 사이에서, 창작과비평사, 1998, 209쪽. ; 이혜진, 앞의 논문, 125-126쪽.
30) 이혜진, 앞의 논문, 127-128쪽.
도 하다. 나중에 ‘근대의 초극’으로 명명된 일본의 자족적인 ‘세계사의 철학’이 실질적인 징후를 드러낸 것도 바로 이 시기다. 일본의 문예평론가 히라노 켄(平 野謙)이 쇼와 10년 전후를 특별히 중시했던 것도 바로 이러한 점 때문이다. 요컨 대 “마르크스주의적인 것과 자유주의적인 것, 사회주의적인 것과 혁명적인 것, 프롤레타리아적인 것과 진보적인 것의 제휴”가 빚어낸 문제들과 함께 “순문학 적인 것과 통속소설적인 것의 통일·분리를 둘러싼 흐름”이 착종된 쇼와 전기의 풍경은 “모두들 결사적이었지만, 자기가 서 있는 지점이 전체 속에서 어떤 위치 에 있었는지 분명치 않은 채 서로 필사적으로 주장하거나 논쟁해야만 했던 형 국”31)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바로 다케우치 요시미가 말한 ‘근대 일본의 아포리아’가 노출되는 계기가 되었다.32)
이렇게 일본이 내세운 서양 중심의 일원론적 세계사를 대신하는 ‘대동아공 영’은 중국에게는 ‘서양으로부터의 동양 해방’이었고, 조선에게는 ‘황국신민화’
라는 유기체적 공동체를 표방한 ‘동아신질서’의 이념으로 표상되었다. 제국 일 본의 ‘세계사의 철학’이란 비서구 세계를 식민지화한 근대 유럽이 ‘세계사’의 단독주체로 자리 매김 된 이래, 제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유럽이 몰락한 뒤 필 연적으로 비서구 세계가 대두할 것이라는 구상, 즉 다원적 세계를 주창한 일본 적 자기인식이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때의 ‘세계사’란 “자기완결적 고립체 계”로서의 유럽사라는 지리적 공간의 역사가 아니라 그동안 비주류로 간주되었 던 동양적 “구조의 역사, 통일의 역사”33)를 가리킨다. 여기에는 유럽중심주의의 일원적 세계관의 부정과 함께 19세기적 서구의 근대를 초극하는 사상형성의 의 도가 내포된 것이었다. 그러나 중일전쟁이 항일노선을 취한 중국 국민정부와의 장기지구전으로 치닫고, 식민지 조선이 대륙병참기지의 역할을 떠맡은 상황에 서 일본에서 발화된 ‘동아의 통일’은 식민지인들에게 기만적인 이데올로기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식민지 민족문제에 대해 가장 먼저 날카로운 의견을 개 진한 것은 바로 미키 기요시(三木淸)였다.34)
31) 平野謙, 「社会主義リアリズム論爭」, 文学·昭和十年前後, 文藝春秋, 1972, 154쪽.
32) 이혜진, 「서인식의 역사철학과 쇼와비평의 문제들」, 한민족문화연구 제37집, 2011, 8쪽.
33) 鈴木成高, ランケと世界史學, 弘文堂書房, 昭和16年, 124쪽.
일본이 나아갈 길은 세계사의 공도(公道)가 아니면 안 된다. 그 길은 세계사 의 움직임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날 것이다. (중략) 세계사적 관점이라는 것은 세계를 우선 하나의 전체로 생각하고 그 안에서 각국을 생각하는 것이 며, 각국의 나아갈 길은 세계사의 공도로써 결정되지 않으면 안 된다. 예컨 대 일본의 장래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관계를 갖는 일지문제의 경우에도 세 계사적 관점에서 보지 않으면 안 된다.35)
서양으로부터 독립한 ‘동양’이 세계사적 주체로서의 의의를 확립한다 하더라 도 그것이 각 민족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제국 일본적 동양’으로 수렴되는 것에 대한 우려를 표시한 미키 기요시의 발언에 조선의 지식인들이 공명했던 것은 일견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가령 마르크스주의자였던 김명식은 “동방적인 것과 서구적인 것과를 분별하는 것보다 시대적으로 초지역적의 의식을 발견”36) 해야 할 것을 주장했으며, ‘내선일체론’자인 인정식도 “조선인으로 하여금 일본 제국의 대륙정책에 백-퍼센트의 성의와 정열을 가지고 협동케 하기 위해서는 내지인과 동등한 국민적 의무를 다하게 한 후 내지인과 동등한 정치적 자격 을”37) 부여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반해 서인식은 일본에서 발화된 ‘동아협동체 론’이 중국의 강경항일노선의 장기화에 직면함에 따라 일본과 중국의 화해 및 제휴를 지향하기 위해 제국주의 정책을 궤도 수정한 것이라는 점을 간파하고 있었으며, 따라서 그것은 동아시아 각국의 정치·문화의 독립성을 인정함과 동 시에 식민지 지배형식을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노에(近衛文麿) 내각의 씽크탱크(thinktank)인 ‘쇼와연구회(昭和硏究會)’의 혁 신 지식인들이 제기한 ‘동아협동체론’의 시초는 식민지와 제국주의의 대립을 극복하고 각 민족이 자주 협동함으로써 새로운 동아시아의 지역질서 형성을 도 모하기 위한 일종의 ‘전시변혁론’(米谷匡史)이었다. 따라서 처음 ‘동아협동체론’
은 일본의 사회대중당과 사회주의 세력의 지지를 받았다. 이와 함께 중국의 민
34) 이혜진, 앞의 논문, 16쪽.
35) 三木淸, 「世界史の公道」, 三木淸全集13, 岩波書店, 1966, 402쪽, 406쪽.
36) 김명식, 「東亞協同體와 朝鮮-建設意識과 大陸進出」, 三千里, 1939. 1, 51쪽.
37) 인정식, 「東亞協同體와 朝鮮-東亞의 再編成과 朝鮮人」, 三千里, 1939. 1, 60쪽.
족문제에 직면하면서부터는 일본 제국주의의 내부적인 자기비판과 사회주의적 동아시아 형성을 지향한 논의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에 따라 총력전하에서 통제경제로 전환된 것을 계기로 하여 어쩌면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수정되면서 사회주의로 전환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제기되기도 했다.38) 요컨대 애 초에 ‘동아협동체론’은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국가권력의 내부에서 현실적 인 저항의 시도로서 제기되었던 것이다. 이렇듯 초기의 ‘동아협동체론’은 동아 시아의 민족과 국가를 초월하여 아시아 해방과 연대를 실현하는 광역권의 이념 적 비전으로 제시되었다는 점에서 ‘내지연장주의(內地延長主義)’로 대표되는 여 타의 동화주의와는 전혀 다른 특질을 지닌 것이었다.39)
조선에서 ‘동아협동체론’은 황민화정책이 강화되는 가운데 ‘내선일체론’과 함께 진행되었다. 일본 제국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일환으로서의 일본·중국의 제휴라는 미래적 전망 속에서 일본의 식민지였던 조선으로서는 민족을 초월한
‘내선일체’ 논의가 고조되는 가운데 제국주의/식민지의 관계를 어떻게 재구축 할 것인가의 문제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조선의 타자성을 자각하 는 일에 다름 아니었다. 가령 혈통적 ‘동조동근(同祖同根)’을 전제로 하는 ‘일선 동조론(日鮮同祖論)’은 언어와 풍속이 다른 조선의 타자성을 삭제함으로서 손쉽 게 ‘황민’으로 수렴되는 일방적이고도 비합리적인 논리였다. 반면에 ‘협동’의 논리는 각 민족의 타자성을 서로 상대적으로 인정하는 연대의 방식인 만큼 그 것은 자율적이고 자각적인 결합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때 박치우는 “피와 흙”
을 기조로 하는 “비합리주의”적 연대가 아니라 “구미 제국주의로부터의 공동방 호라는” ‘동양적 운명공동체’를 제기함으로써 타자성에 대한 상호 인정을 문제 삼았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피나 흙의 숙명에 비긴다면 운명 개념은 훨신 더 융통성을 가진 것이여서, 당면의 문제인 일지 관계에 비취어 보더래도 가령 구미 제국주의로부터의
38) 이혜진, 앞의 논문, 17-18쪽.
39) 米谷匡史, アジア/日本, 岩波書店, 2006, 129-132쪽. ; 가라타니 고진 지음, 조영일 옮김,
역사와 반복, 도서출판b, 2008, 56쪽.
공동방호라는 이 같은 공통된 운명관을 사이에 넣는다면 피와 흙의 비합리 주의로서는 풀래도 풀 수 없는 여러 가지의 이론적 난점에 대답할 길이 열 릴 것이다. (중략) 운명의 동일성을 매개로 한 결합이라는 것은 매개되는 양 극이 타자라는 것을 전제로 해서만 가능한 그러한 결합이다. 절대의 타자로 서 자기를 정립하면서도 타자가 기실은 타자가 아니고 자기라는 것을 참으 로 느끼지 않는다면 이 같은 고도의 결합은 불가능할 것이다. 이 의미에서 이 결합은 글ㅅ자 그대로의 자각적 결합이 아니면 아니 된다. 혈통과 언어와 풍속을 달리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개의 확고한 결합을 이룬다는 것 은 이 같은 고도의 자각을 거치지 않고서는 생각할 수가 없는 일이다.40)
혈통과 풍토의 유사성을 동원하여 타자성을 부인하는 ‘협동체’의 구상을 ‘비 합리주의’로 치부하면서 ‘협동’하는 구성원들이 동등한 위치에서 ‘공동의 운명’
을 지향해야 한다는 박치우의 발언에는 일본발 아시아 연대에 대한 비판적 계 기가 담겨 있다. 박치우가 굳이 ‘운명의 동일성’을 전제한 자율적 합일을 지향 한 것은 특수를 방어하는 입장, 이를 테면 그것은 조선의 운명을 지켜내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고 할 수 있다. 조선은 처음부터 일본의 ‘제국헌법’이 적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내지’와는 본질적으로 구별되는 이법(異法) 지역이었다. 이것은 만인에게 동등하게 유효한 입법이라는 권위에 따라 이민족을 통치할 수 있었던 로마공화국의 그것과는 질을 달리한다. 더욱이 서인식은 ‘피와 흙’이라는 자연 적 생명원리에 의거한 연대이념이 선택의지에 입각해 있는 근대 시민사회의 완 성태인 ‘이익사회(Gesellschaft)’에서는 도저히 구성될 수 없는 개념이라는 사실 을 인식하고 있었다.41) 그런 점에서 서인식과 박치우는 자신의 발화의 위치에 대해 철저히 자각적이었으며, 이것은 글쓰기(writing) 행위의 불가능성을 등에 업고 말하는 문학적 자세의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파시즘이란 국가사회주의가 아니라 내셔널한 사회주의이다. 그것은 자본주 의와 사회주의에 대항하고 그것들을 넘어서는 열쇠를 네이션에서 발견한다는 점에서 ‘상상의 공동체’(Benedict Anderson)에 지나지 않는다.42) 이렇게 볼 때 서
40) 박치우, 「東亜協同体論의 一省察」, 人文評論, 1940. 7, 20쪽.
41) 서인식, 「文化의 類型과 段階」, 歷史와 文化, 學藝社, 1939, 308-312쪽.
인식은 일본이 식민지 조선을 ‘동아협동체’의 한 구성원으로 호명할 때 그것이 서구의 자본주의와 소련의 공산주의를 지양하는 제3의 원리로서의 전체주의·
파시즘로 귀결될 것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서인 식이 일본의 절박한 과제에 대한 응답의 형태로 제출한 ‘동아협동체론’을 결국
“가상적 체제”43)라고 규정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44) 따라서 제국 일본의 의도가 현실에서 구현된다 하더라도 결국 ‘개체적 多’(식민지 민족)는 ‘전체적 一’(제국 일본)로 수렴됨으로써 모든 특수성과 정치성이 탈각될 것임은 분명한 일이다. 이것은 그야말로 ‘식민지 없는 제국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서인식이 주장한 ‘세계성의 세계’란 ‘개체적 多’가 갖고 있는 각각의 고유한 문화를 형성·
발전시킴으로써 궁극적으로 ‘세계문화’가 형성되는 것이다. 그것이 실현될 때 야말로 다양한 ‘세계’의 중심이 도처에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多가 그대로 하나이며 하나이 그대로 多가 될 수 있는 문화이념에 도달할 수 있다”45)는 것이다.
그러나 서인식이 특별히 ‘중심이 없는 세계’를 언급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궁 극적으로 일본을 향한 직접적인 요망의 시도라고 하기는 어렵다. ‘동아협동체’
는 ‘동아의 맹주’를 자처한 일본 자본주의가 일만지(日滿支) 경제블록을 구성하 는 가운데 제시된 ‘아시아의 해방’이자 ‘동양의 통일’을 목표로 한 것이었으며, 동시에 그것은 중국의 저항에 부딪히면서 공산주의와의 대결 구도를 극복하는 과정으로서의 의의를 지닌 것이기도 했다. 일본의 ‘총력전체제’ 속에서 산출된
‘동아협동체론’에 은폐되어 있던 이러한 정치적 모순을 많은 지식인들이 직시 하고 있었다.46)
42) 가라타니 고진 지음, 조영일 옮김, 네이션과 미학, 도서출판b, 2009, 27-28쪽.
43) 서인식, 「東亞協同體」, 人文評論, 1939. 10, 107쪽.
44) 이혜진, 앞의 논문, 19-21쪽.
45) 서인식, 「文化의 類型과 段階」, 歷史와 文化, 學藝社, 1939, 313쪽.
46) 이혜진, 앞의 논문, 23-24쪽.
2.2.2 대동아문학자대회47)
주지하다시피 일제 말기에 일본은 “서양에 의존하지 않는 안전보장의 새로 운 방법, 서양에 굴종하지 않고 일본의 지위를 승인하는 방법, 일본의 이익과 일본의 정의 관념을 일치시키는 국제적 권력행사의 정당한 방식에 대한 새로운 규정을 탐색”48)하면서 아시아 국가들과 연대하는 ‘대동아공영권’을 구상했다.
이것은 19세기 말 “마음으로부터 동방의 악우(惡友)를 사절”49)하고 서양의 문명 을 수용함으로써 서구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 ‘탈아입구(脫亞入歐)’를 선언했던 일본이 ‘아시아로의 회귀’로 방향전환을 단행한 결과였다. 다시 말해 절대적인 동경과 모방의 대상이었던 서양이 돌연 대결의 대상으로 급변하게 되 자 일본의 세계사관적 지평을 전환한 것인데, 이런 점에서 ‘대동아공영’은 ① 서구의 근대를 초극한다는 사명과 ② 아시아에서의 지도권을 주장하는 일본 대 외관의 원리적 배리가 현재까지도 아포리아로 남게 된 원인을 제공한 셈이 되 었다. 따라서 ‘아시아주의’의 선구적 형태라 할 수 있는 ‘대동아공영’은 아시아 민족의 연대가 시도된 최초의 사례였다는 점에서 이 문제는 과거 일본의 식민 지였던 조선과 대만, 반식민지 상태였던 중국, 그리고 명목상의 독립이 허용되 었던 버마와 필리핀, 군정통치를 받았던 인도네시아와 같은 동남아시아 지역에 서의 다차원적인 접근이 요구된다.
이와 관련하여 태평양전쟁의 한가운데 동아시아의 문인들은 지리적 운명 공 동체로서의 ‘대동아문학’의 가능성을 타진했던 바 있다. 1942년 11월, 1943년 8 월, 1944년 11월 세 차례에 걸쳐 일본, 중국, 조선, 만주, 몽골 문학자들이의 국 제적 회합이었던 이른바 ‘대동아문학자대회’가 그것이다. ‘대동아문학자대회’
는 시기적으로나 내용상 ‘근대의 초극론’과도 매우 밀접하게 연동되어 있지만,
‘근대의 초극’ 좌담회가 일본 최고의 엘리트들로 구성된 스마트한 외관을 취했
47) 이 챕터는 이혜진, 「문인동원의 병참학: 아시아·태평양전쟁 하의 ‘대동아문학자대회’를 중심으로」, 아태연구 제20권 제3호, 2013을 재편집한 것이므로 따로 쪽수 표기를 하지 않는다.
48) Berger, Gordon, 「アジア新秩序の夢: 大東亞共榮圈構想の諸相」, 佐藤誠三郞·デインクマン編.
近代日本の對外態度, 東京大學出版部, 1974, 197쪽.
49) 福澤諭吉, 「脫亞論」, 時事新報, 1885. 3.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