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에도 커다란 느티나무 한 그루 있으면 좋겠다. 그치?”
용인의 끄트머리 수지라는 낯선 동네로 이사 온 첫 해. 뿌연 흙먼지를 일으키며 질주하는 덤프 트럭을 피해 보도블록도 없는 갓길로 아슬아슬 유 모차를 끌고 갈 때면 매캐한 먼지에 눈도 못 뜨고 따라오는 큰 아이를 끌어당기며 혼잣말처럼 묻곤 했다. 번듯한 운동장이나 공원은커녕 아파트 건물 로 둘러싸인 네모난 하늘 밑에 손바닥만한 놀이터 가 전부인 동네 아이들을 만나면서, 어디든 한군 데 아이들이 맘껏 어울릴 공간이 있었으면 하고 바랐던 생각이 느티나무의 시작이었다.
느티나무에 대한 바람 - 도서관이다!
하지만‘아이들과 함께 하는 공동체 문화공간’이 란 구상만으로는 무엇부터 해야 할지 막막했다.
어린이나 청소년, 문화, 교육 같은 단어가 눈에 띄 면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자료를 모으고 시청과 읍사무소를 오가며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을 법한 부서를 찾아다녔다. 개발 바람이 한창이던 이곳에 서 단체도 아닌 개인에게 도움을 줄 곳은 어디에 도 없는 듯 보였지만, 책을 매개로 아이들과 주민 들을 만나고 공동체 문화활동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사립문고’라는 틀이 가능하다는 걸 알 게 되었다. 절차가 용이한 대신 어떠한 지원도 없 는 데다 아무리 작은 문고라도 도서관 역할을 하 려면 전문 지식과 경험이 있어야 한다는 것 또한 큰 과제였다. 다행히 준비과정에서 근처 강남대학
처음엔 그저 아이에게 책을 보여주러 도서관을 찾았던 사람들이 도우미로 나서 비싼 값을 치러도 얻기 힘든 훌륭한 프로그 램을 만들어내는 걸 보면서‘함께 할 공간만 있으면’능력을 발휘할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놀랍고도 행복한 기 분에 젖기도 하였다. 하지만 더 놀라운 건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아이들이었다. 어딘가 이웃의 손길이 필요한 아이들을 보 면서도 무얼 해줄지 몰라 망설였지만 하루하루 낯을 익히고 마음이 통하게 되면서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건 그리 많지 않다 는 걸, 그저 함께 있어주는 것이 우리의 몫이라는 걸 깨우쳐준 게 바로 아이들이었기 때문이다.
살 기 좋 은 우 리 동 네 · 2 5
작은 도서관에서 마을 공동체 문화를 일구는 사람들
- 경기도 용인시 수지읍 느티나무 도서관 -
박영숙|느티나무 도서관장
교의 문헌정보학과 동아리와 연결이 되어 도서관 업무에 대한 노하우를 채워갈 희망이 생겼고, 책 을 매개로 아이 키우는 사람들이 모이기만 하면 뭐든 도모할 힘이 생길 거란 믿음으로 도서관 만 들기의 첫 발을 떼었다.
볕이 잘 들고 반듯한 뜰도 있는 곳에 터를 마련 하고 싶었지만 개인의 힘으로 몇몇 지인들의 도움 만 받아 집 한 채를 장만할 만한 자금을 마련해야 했으니 아파트 상가의 작은 지하공간밖에 얻을 수 가 없었다. 지하실이지만 아이들이 편안하게 찾아 올 수 있도록 계단 한쪽엔 미끄럼틀을 만들고 벽 화를 그렸으며 바닥에 보일러를 깔고 아이들끼리 어울릴 골방도 만들었다. 가구공장을 찾아다니며 일일이 모서리를 깎고 아이들 키에 맞춰 책상과 서가도 만들었다. 젖도 안 뗀 작은 아이를 업은 채 도서관엔 들어갈 엄두도 못 내 번번이 대여섯 시 간씩 서점에 서서 책을 고르며 동네마다 아이들을 위한 도서관이 있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절실해지 기도 했다.
2000년 2월 19일, 드디어 동네 아이들 손에 작
은 가위 하나씩 쥐어주고 테이프를 끊던 날. 별다 른 홍보도 못했는데 도서관이 대체 어떤 곳인지 잔뜩 호기심을 안고 찾아온 동네 아이들이 휑하던 지하실을 순식간에 활기찬 공간으로 바꾸었다.휑한 지하실을 마을 사랑방으로 만든 주인공들
3천 권에 달하는 책을 일일이 골라 분류하고, 등
록하고, 라벨을 붙이고, 내부 공사를 하고, 나름대 로 운영계획까지 세우며 6개월에 걸쳐 준비를 했 지만 막상 문을 열고나니 부족하고 바로잡아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도서관은 만들고 나 서부터 시작이라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보고 싶 은 책을 쉽게 찾고 좁은 공간을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찾아오는 사람들을 끊임 없이 살피면서 그 많은 책을 죄다 뽑아내 몇 차례 나 다시 분류하고 공간배치도 이리저리 바꿔야 했 다. 이렇다 할 모델이나 전문 지식 없이 시작한 일 이라 시행착오를 각오하긴 했지만, 밤을 새우다시 피 일에 쫓기다 보니 개관의 설렘도 잊은 채 앞으 로의 걱정으로 무력감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한 달도 채 안 되어 다시 기운을 얻게 해준 건 바로 이웃 사람들과 아이들이었다. 많은 일거리들이 오히려 도서관을 찾는 사람들에게 저 마다 주인이 될 기회를 만들어 준 것이다. 컴퓨터 앞에 선 채 책을 대출하는 엄마 등에 업혀 있던 아 이가 칭얼대기라도 하면 얼른 나서서 대신 자리를 지켜주는 사람, 도서관 문을 닫을 시간이 되면 으 레 군데군데 쌓인 책들을 정리해주는 사람, 말도 없이 빗자루며 걸레를 찾아들고 와서 청소를 해주 는 사람. 그렇게 책을 빌리러 왔다가 생각보다 많 은 일손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된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면서 개관한 지 한 달 만에 도우미회라는 이름의 자원봉사모임이 만들어졌다. 도우미회가
책을 읽거나 대출하는 사람들로 늘 북적대는 도서관 매달 한두 차례 다양한 주제로 강좌가 열린다
또래방 친구들 고사리 손으로 바느질을 해 오재미를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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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려지자 하고 싶은 일들도 늘어갔다. 아이들을 앉혀놓고 책을 읽어주는 사람, 일주일에 한 번씩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가르쳐주는 사람, 숨은 재 주를 살려 종이접기나 미술활동 시간을 마련해주 는 사람도 생겼고, 맛있는 간식거리를 챙겨와 나 눠주는 건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되었다. 누가 먼저 랄 것 없이 이웃과 나눌 자리를 만들어내는 사람 들의 마음씀씀이 차곡차곡 모여 도서관은 어느새 시골 마을의 느티나무 그늘처럼 이야기가 있고 만 남이 있는 사랑방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행복하려면
먼저 어른들이 행복해져야 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넉넉한 이해와 지지만 있었 던 건 아니다. 어린 나이부터 읽고 쓰는 건 물론 영어, 특별활동, 심지어 놀이까지 사교육에 매달 리는 현실에서 좋은 책을 갖춘 자유로운 환경만 만들어놓고 스스로 호기심을 키우며 세상을 배우 도록 기다리자는 것을 아직은 무모하게 여기는 사 람도 많았다. 그런 분위기가 만들어지려면 먼저 부모들의 태도가 달라져야 한다는 걸 확인하는 데 에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이가 책을 많이 읽어 글쓰기를 잘 하게 되고 창의력도 길러 경쟁 에서 앞설 지름길을 찾고 싶은 부모들은 그 당시 만 해도 사설 교육기관이 많이 들어서지 않았던 이 지역에서 도서관이 그 몫을 해주길 바랐다. 누
구나 평등하고 자유롭게 정보와 지식, 문화의 기 회를 누리도록 하는 게 도서관의 역할이지만, 아 직까지‘내 아이’만 생각하는 풍토는 도서관마저 사설문화센터처럼 바꿔놓을 수 있겠다는 긴장감 마저 들었다.
그래서 맨 먼저 시작한 활동이 어머니독서회였 다. 누구보다 훌륭하게 자식을 키우고 싶어하지만 학교와 가정 그 어디서도 부모역할에 대해 배운 적이 없는 사람들과 모임을 가져 이제라도 아이들 에게 좋은 책을 읽히고, 아이들이 어떤 존재인지 이해하며 건강한 인격체로 키울 방법을 함께 배워 보자는 것이었다. 아이들의 삶에 책읽기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어떤 독서환경을 만들어 줄 것 인지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한 어머니 독서모임을 통하여 차츰 도서관이 단지 책을 만나는 공간일 뿐 아니라 노력과 의지에 따라 풍성한 공동체 문 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확인해갈 수 있었다. 개관 4년째를 맞은 이제는 그동안 꾸준히 책을 함께 읽으며 일상을 나눠온 어머니독서회원들이 작지만 넉넉한 느티나무의 기둥 몫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이 작은 도서관을 늘 살아 움직이고 변화하며 사람들의 소통이 이어지는 역동적인 공간으로 만 들어낸 것은 순전히 그 소박한 부모들의 힘이 모 여 이뤄낸 결과다. 그렇게 큰 힘이 모일 수 있었던 건 우리 모두가‘조금씩 더 행복해지고 있는’자 신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 믿는다. 도서관
토요일마다 모이는 꼬마또래방에서 마을 식물을 보러 산책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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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구들이 모이기만 하면 빠지지 않는 이야기가 있 다. 전에는 경쟁 속에 아이 기르는 일이 힘들고 부 담스럽기만 해서 인생의 한 시기를 육아로 희생당 한다는 좌절과 고립감마저 느꼈었는데 아이들과 눈을 마주하고 마음을 읽으면서 비로소 생명을 키 우는 일의 가치를 찾을 수 있었다고, 자신에게나 가족에게나 너그러워지는 자신을 보면서 일상이 행복해지고 있다는 고백이다.
되로 주고 말로 받기
학교나 유치원의 일과가 끝나면 아예 가방을 멘 채 도서관으로 달려오는 아이들이 늘어갔다. 책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도서관을 놀이터처럼 누리면 서도 사진을 붙여 만들어준 회원카드는 목걸이를 만들어 걸고 다니며 누구보다 도서관의‘모범회 원’인 냥 자랑스러워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자 그 장난꾸러기들이 한두 권씩 책을 들고 와 읽어 달라고도 하고 자기들도 도우미를 하겠다며 조르 기도 했다. ‘잠잠 도우미’, ‘깜찍 도우미’, ‘신발 장 도우미’, ‘뭐든지 도우미’…, 갖가지 재미난 이 름을 붙인 명찰을 훈장처럼 달고 다니는 아이들과 함께 책에 스티커도 붙이고 서가정리 시합을 벌이 기도 했다. 그저 터를 만들고 문만 열어놓았을 뿐 인데 아이들은 어느새 이곳의 주인이 되어 제몫의 자리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하루를 온통 도서관에서 보내는 아이들을 데리
고 함께 할 몇 가지 프로그램을 계획하기로 했다.
마침 그 무렵 지역의 몇몇 교회와 단체에서 결식 아동 돕기 후원모임을 만드는 일에 동참하면서 단 지 아이들에게 급식만 지원할 것이 아니라 지속적 인 교육과 문화활동 기회를 만들어주자고 제안하 여 본격적인 방과 후 교실을 도서관에서 열게 되 었다. 대상이 된 아이들은 부모가 없거나 이혼 후 방치된 아이, 발달장애나 정서장애를 보이면서도 별다르게 특수교육을 받지 못하는 아이 등 하나같 이 어린 나이부터 감당하기 힘든 상처를 하나씩 안게 된 아이들이었다. 학교 급식이 없는 주말과 방학중엔 도서관에서 함께 식사도 하고 책읽기, 미술활동, 만들기, 나들이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가까운 농촌지역에서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오가며 아버지 역할을 해주신 목사님 덕에 언제라도 넉넉한 뜰과 자연이 살아 있는 그 작은 교회로 나들이도 갈 수 있었다. 봄이면 모심기, 가 을이면 벼 베기, 염색도 하고 짚을 꼬아 인형도 만 들었다. 곶감도 말리고, 계곡에서 물고기도 잡고 캠프도 열었다. 몇 달씩 사설 치료실이나 상담실 의 도움을 얻으면서도 좀처럼 아물지 않을 듯 큰 상처가 있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어렴풋이 자신 감을 얻기 시작한 아이들에게 특별한 기회를 만 들어주려고 작은 음악회를 열자 의젓하게 무대에 선 아이들은 겨우내 연습한 수화 노래와 핸드벨 공연으로 우리 모두에게 잊지 못할 감동을 선사 했다.
어린이날엔 김밥잔치를 열어 동네 아이들과 어른 모두 실컷 웃고 달린다 해마다 고기리 계곡을 찾아 아이들 손으로 모를 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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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그저 아이에게 책을 보여주러 도서관을 찾았던 사람들이 도우미로 나서 비싼 값을 치러도 얻기 힘든 훌륭한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는 걸 보면 서‘함께 할 공간만 있으면’능력을 발휘할 사람 들이 많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건 놀랍고도 행복한 일이었다. 하지만 더 놀라운 건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아이들이었다. 어딘가 이웃의 손길이 필요 한 아이들을 보면서도 무얼 해줄지 몰라 망설였지 만 하루하루 낯을 익히고 마음이 통하게 되면서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건 그리 많지 않다는 걸, 오 히려 뭔가 해주려는 욕심을 버리고 그저 함께 있 어주는 것이 우리의 몫이라는 걸 깨우쳐준 게 바 로 아이들이었기 때문이다. 어느 틈에 마음을 열 고 어둡던 얼굴의 그늘도 걷어내면서 우리 이웃에 대한 믿음과 함께 세상에 대한 믿음도 조금씩 얻 어가는 아이들은 우리의 작은 노력을 중요하고 의 미 있는 일로 만들어주었다. 도서관을 열고 첫 방 학을 보낸 뒤 우리가 확인한 건‘아이들은 되로 준 걸 말로 되돌려준다’는 진리였다.
함께 만들고 함께 누린 잔치 - 한여름 밤의 마을축제
매주 수요일 그림책을 한장 한장 사진에 담아 엄 마들이 직접 만든 슬라이드로 이야기극장을 열 때 면 꼬마 관객이 60~70명이나 찾아온다. 좁은 도 서관 바닥을 빽빽하게 메우고 앉은 모습을 볼 때
마다, 여름이 되면 저녁 무렵 슬리퍼를 신은 채 아 이들 손잡고 바람 쐬러 나온 이웃 사람들과 편안 히 앉아 영화 한 편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이 들곤 했다. 커다란 광목천 하나 스크린 삼아 걸 어놓으면 못할 것도 없지 않느냐며 팔 걷고 나선 사람들은 아예 제대로 잔치를 벌여보자며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마을축제’를 기획하기 시작했다.
사방이 빽빽한 아파트 숲에 그나마 남은 공터는 죄다 주차장이 되어버리는 개발지역에서 마을축 제라니. 하지만 그동안 이웃을 만나며 더불어 하 는 일의 맛을 알게 된 사람들에겐 서로에 대한 믿 음만으로도 그 기막힌 계획을‘저질러 버리기에’
충분했다.
마을축제를 하기로 결정하고 준비를 시작하면 서부터는 하루하루가 그대로 축제였다. 애초에 영화 한 편 함께 보자고 시작했었지만 연극 동아 리와 수화 동아리도 무대에 세우고 아파트 담장 에 그림책 포스터 전시회도 열자고, 딱지치기며 제기차기 같은 놀이마당도 해보자고, 땀 흘린 아 이들 시원하게 마실 미숫가루나 솜사탕 같은 먹 을거리로 잔치분위기도 돋궈보자는 등의 아이디 어가 한 가지씩 보태졌다. 천을 떠다 바느질을 하 고 그림을 그려 무대 막이랑 연극 의상까지 만드 느라 아이들도, 엄마들도 분주해지자 아빠 도우 미들도 망치랑 톱을 들고 나서 번듯한 무대까지 만들어졌다.
플래카드를 걸고 일일이 누가 준비했는지도 모
마을축제. 7백 명 가량이 운동장을 가득 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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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는 푸짐한 떡이며, 김밥, 미숫가루가 그득한 항 아리, 지글지글 파전 부치는 냄새로 잔치마당이 열리고 그림책 등장인물로 분장한 아이들이 솜사 탕이랑 풍선을 하나씩 받아들고 놀이마당을 누비 며 축제가 시작되자 별다르게 홍보도 못 했는데 7 백 명 가까운 사람이 모였다. 그랬었구나. 몇 해를 옆집에 살아도 이름도 모른다는 아파트촌이지만 사람들 마음속엔 이렇게 함께 어울리고픈 바람이 간절했구나, 잊은 줄만 알았던 흥이 살아있었구나 하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마을사람들과 신명나 는 하루를 보낸 아이들이 다음에 어른이 되어‘마 을’이나‘이웃’이란 단어를 들을 때 바로 이 날을 떠올리지 않을까 생각하니 그대로 가슴이 가득해 졌다.
연극에 참여했던 아이들과 뒤풀이로 떡볶이 잔 치를 벌인 자리에서 한 5학년 여자 아이가 했던 말은 지금도 생각만 하면 눈물을 참을 수 없게 만 든다. “내 속에 용기가 생겼어요.”아버지는 이름 도 몰라 어머니 성을 붙여 이름을 짓고 지금까지 주민등록조차 제대로 못한 채 비닐하우스에 살고 있는 아이. 3년 전까지만 해도 그 아이가 웃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내내 돌덩이처럼 가슴 한 구석을 막고 있었는데, 이제 그 작고 까무잡잡한 얼굴을 뒤덮고 있던 앞머리도 자르고 귀걸이를 사달라고 조를 만큼 달라진 그 아이의 한 마디는 우리 모두에게 말로 할 수 없는 감동으로‘더불어 살아야 하는’분명한 이유를 알
게 해 주었다.
주인과 손님이 따로 없는 마을 공동체 공간으로
몇 차례 큰 행사를 치르면서 더욱 가까워지고 함 께라면 뭐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이곳 식구들은 이제 좀더 효율적으로 역할을 나눠 안 정된 틀을 만드는 일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도 서관이 평등과 공공성의 토대를 갖추려면, 정부 나 지자체의 지원을 가능하게 만들 제도적 장치 도 필요하고 민간에서도 활발한 참여와 발전된 기부문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지난 가을 70명에 달하는 도우미들의 명단을 작 성해 자원봉사단체로 등록을 했고 올봄엔 도서관 운영위원회와 사무국을 구성한 뒤 법인등록을 준 비하고 있다. 더 이상 몇몇 개인의 힘에 크게 의 존하지 않고 차츰 그 몫을 나누는 노력을 계속해
10년, 아니 100년이 흐른 뒤에도 이 작은 도서관
이 누군가에 의해 보일 듯, 말 듯 마을 공동체의 중심으로 자리를 지키게 만드는 것. 그 간절한 바 람을 실현하기 위해 지금 느티나무 식구들은 조 용하지만 힘찬 발돋움을 하고 있다.작은 음악회에서 수화 노래로 감동을 전해준 아이들 도우미들이 손수 만든 무대에서 신나게 공연하는 연극 동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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