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단고기위서론에 대한 비판적 고찰. (우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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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94 仙道文化 제 9 권. 에 있다. 僞書論者들은 뺷환단고기뺸에 보이는 몇몇 근대적 용어나, 일 부 비과학적인 기록을 근거로 신뢰성이 떨어지는 책이라고 주장한 다. 하지만 뺷환단고기뺸기록에 나타나는 일식 및 여타 천문학적 기록 과 근세에 발견된 유적, 유물에 근거한 뺷환단고기뺸 기록의 眞實性은 이 책의 내용이 전부 위작이라고 보기에는 큰 무리가 따른다는 것을 경고하고 있는 듯하다. 위작론자들이 주장하는 그 일부 내용들은 다 음과 같이 추측할 수 있다.즉 옛날에는 인쇄 또는 출판기술이 부족했 기 때문에 필사할 수밖에 없는데, 그러한 필사과정에서 일부 단어나 내용이 첨삭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따라서 극히 일부의 내용이 문제가 있다고 해서 뺷환단고기뺸전체 내용을 부정하는 것은 큰 오류를 범할 수 있으며, 진정한 학자의 자 세가 아니라고 본다. 문제가 될 만한 내용은 내용대로 연구하고, 객관 적으로 진실성이 높은 기록들은 전향적 자세로 깊이 연구해야 한다. 가뜩이나 史書의 절대 부족을 느끼는 작금의 현실에서 우리의 상 고사를 밝혀줄 수 있는 뺷환단고기뺸같은 책이 존재한다는 것에 감사 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 뺷환단고기뺸를 구성하는 「三聖紀」는 「조선왕조실록」 수서령에도 포함된 책이다. 일본의 사학자인 가지마 노보루는 뺷환단고기뺸가 일 본의 천황가의 뿌리를 밝혀줄 수 있는 귀한 책이라고 판단해서 1982 년 일찌감치 일본어 번역본을 출판했다. 우리의 역사와 고유한 사상 등이 주변국, 즉 중국과 일본에 의해서 왜곡되었다는 것은 이미 상식이다. 잊혀진 우리의 역사와 한민족 고 유의 전통사상을 밝혀줄 수 있는 책이 바로 뺷환단고기뺸라고 주장하 는 학자들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 길만이 우리의 진정한 역사와 고유한 사상 및 철학을 되찾을 수 있다고 본다. 주제어: 환단고기, 계연수, 위서론.
(3) 뺷환단고기뺸위서론에 대한 비판적 고찰ㆍ우대석 95. Ⅰ. 문제제기와 연구목적-서론 선도문화34)는 한민족 고유의 사유체계이며 전통철학의 중추적 역 할을 해왔다. 고조선이 패망하면서 중국의 도교, 불교 등이 빠르게 수입되었는데, 이로 인하여 선도문화는 크게 위축되었다. 그나마 고 려 말기까지는 명맥을 유지해 왔으나 조선건국 이후에 유교의 성리 학이 국가의 통치이념으로 자리 잡으면서 선도의 맥을 거의 사라지 는 듯 했다. 특히, 100여 년 전 일본의 식민지지배 때는 결정적으로 우리의 역사와 전통사상이 담긴 책들이 조직적으로 대부분 압수당하 고 말았다. 일제 시대 전인 조선시대에 왕명으로 3번에 걸친 수서령에 의해서 다량의 역사서와 고서들이 수거된 적이 있었다.35) 이러한 여러 가지 이유로, 선도문화의 기원을 전해주는 상고사 관련 책들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았는데, 1970년대 말(구체적으로는 1979년) 뺷환단고기뺸가 세상에 나오면서 큰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이 사서는 한국선도와 깊은 관련이 있는 뺷천부경뺸과 뺷삼일신고뺸전문이 실려 있 다. 또한 단군조선의 실체와 역대 47분의 단군이름이 실려 있을 뿐만 아니라, 단군조선 이전의 배달국과 환국의 역사까지 밝혀내고 있다. 더 나아가 그 당시의 문화와 사상뿐 아니라, 고조선의 영역 및 과 학수준까지 설명되어 있다. 뺷환단고기뺸는 1985년 가나출판사에서 김은수에 의해서 처음으로 34) 선도문화라고 하면 중국 도교문화의 신선술을 떠올리며 거기서 뿌리를 찾 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선도문화의 진정한 뿌리는 우리 한민족에게 있다. 전자가 신선도라면 후자는 신선술이다. 중국의 선도가 장생불사, 즉 죽지 않 고 오래 사는 것이 목적이라면 우리나라의 선도는 수련을 통하여 자기실체 를 깨닫고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며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데 있다. 이승 헌, 뺷한국인에게 고함뺸, 2006, 34쪽. 35) 세조, 예종, 성종 때 전국에 수서령을 내려서 우리나라 고서를 거두어 들였 다(네이버 백과사전)..
(4) 96 仙道文化 제 9 권. 주해본이 나오고, 이어1986년 임승국에 의해서 주해본 완본이 발간 되면서 대중들에게 대대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후에 뺷환단고 기뺸 진위여부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전 서울대 천문학과 교수가 뺷환단고기뺸와 뺷삼국사기뺸 등에 나타난 천문현상을 연구한 결 과 기록이 비교적 정확하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36) 하지만 일부 사학자들이 위서라고 주장하면서, 기존 사학계에서 부 정적인 반응을 보이기 시작하여 현재 정통 사학계에서는뺷환단고기뺸 를 정식 역사서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37) 이에 본 논문에서는 위서를 주장하는 사학자들의 근거와 논리를 검토하여 객관적인 증거로 인정할 수 있는지를 분석해 보고자 한다. 뺷환단고기뺸에 관심 있는 일부 학자와 국민들은, 위서를 주장하는 학 자들의 논리에 객관성이 희박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뺷환단고기뺸 내 용 중에 그 진실성과 가치를 인정할 부분은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본 연구논문은, 위서론의 내용과 그 배경들을 검토하여 위서 주장의 타당성 여부를 검토해 보고자 한다. 뺷환단고기뺸의 진실성이 일부라도 밝혀진다면 고조선과 우리 역사의 시원문제 등에 대한 실 마리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뺷환단고기뺸를 통하여 우리의 역사와 한민족의 전통사상이 새롭게 조명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것으로 기대한다.. 36) 박창범, 뺷하늘에 새긴 우리역사뺸, 서울: 김영사, 27-30쪽. 37) 뺷환단고기뺸위서론의 대표적인 학자는 성심여대 박광용교수, 이순근교수와 경희대 조인성교수, 서울대 노태돈교수, 이도학교수 등이며 작고한 분으로 는 이병도 전 서울대 교수, 송찬식 전 국민대교수 등이 있다. 뺷한단고기뺸위 서론을 적극 비판하는 교수는 박성수 전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총장, 송호수 개천대학장, 제주대 안창범교수, 국제대 고준환교수 국학연구소 김 동환 등이 있다. 조인성, 뺷단군학연구뺸 2호, 2003..
(5) 뺷환단고기뺸위서론에 대한 비판적 고찰ㆍ우대석 97. Ⅱ. 기존의 연구성과와 연구방법 뺷환단고기뺸에 대한 위서론 논쟁은 1977년 국민대학교 교수였던 송 찬식(1936∼1984)이 월간중앙을 통하여 뺷위서변뺸이라는 소논문을 게 재한 것이 공식적으로 위서론을 처음 제기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몇 몇 학자들이 위서론을 제기하였는데, 대표적인 위서론은 다음과 같다. 이름. 제목. 실린책. 연도. 송찬식. 뺷僞書辨뺸. 뺷월간중앙뺸. 1977년 9월호. 이도학. 在野史書 解題 뺷桓檀古記뺸. 뺷민족지성뺸. 1986년 11월호. 이순근. 뺷고조선 위치에 대한 제설의 검토뺸. 조인성. 뺷규원사화뺸와 뺷桓檀古記뺸. 뺷한국사시민강좌뺸 2집. 1988년. 뺷역사비평뺸. 1988년 겨울호. 뺷國史館論叢뺸제3집. 1989년. 뺷역사비평뺸10호. 1990년 가을호. 단군학회 학술회의 소책자. 1999년 전반기. 뺷환단고기뺸에 대한 몇 가지 소견」 단군학회 학술회의 뺷환단고기뺸의 사료적 검토 소책자. 1999년 전반기. 이순근 뺷고조선은 과연 만주에 있었는가뺸 조인성. 뺷한말 단군관계사서의 재검토- 뺷신단실기뺸뺷단기고사뺸 뺷환단고기뺸를 중심으로-뺸. 박광용 뺷대종교 관련문헌에 위작 많다뺸 조인성 이도학. 뺷성심여자대학교뺸 1987년 5월 15일. 「뺷환단고기뺸에 대한 몇 가지 의문」 뺷환단고기의 사료적 검토뺸. 이들이 주장하는 위서론의 주요근거는, 저술연대, 용어사용, 교리 체계, 서술논리상의 모순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38) 저술연대의 모순이란, 계연수가 뺷환단고기뺸를 1911년에 편찬했다 는 것이 신빙성이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1923년 중국 낙양에서 38) 이승호, 「한국선도문헌의 연구사 소고」, 뺷선도문화뺸6집, 국제뇌교육종합대 학원대학교, 2009, 333-349쪽..
(6) 98 仙道文化 제 9 권. 발견된 천남생묘지를 통해서 연개소문의 할아버지 子遊의 이름이 최 초로 세상에 알려졌는데, 그 子遊라는 이름이 뺷환단고기뺸에 있다는 것은 모순이라는 것이다. 용어사용의 모순이란, 인류, 전세계, 세계만방, 원시국가, 문명, 개 화, 남녀평등, 부권 등은 현대적인 용어이기 때문에 후세에 가필된 용어들이라는 것이다. 교리체계의 모순이란, 「단군세기」에 기독교적 삼위일체를 모방한 삼신일체의 논리가 나오는데 고려 공민왕 때 편찬된 「단군세기」에 기독교 교리가 들어있다는 것은 모순이라는 것이다. 서술논리상의 모순이란, 예를 들어서 다음과 같은 것이다. 단군조선이 47세 2096년 동안 지속되었다고 하는데 평균 재위기간 이 44.5세이다. 이 기간은 동양의 역대왕조 평균재위기간이 10년∼27 년 정도인데 역사적 통계수치와 비교해 볼 때 크게 틀린다는 것이다. 한편, 뺷환단고기뺸가 진실이라고 주장하는 전면적 옹호론자들 중 대표적인 학자는 박성수, 박병섭, 송호수, 임승국, 고준환 등이다. 이들의 연구논문 또는 저서는 아래와 같다. 이름. 제목. 실린책. 연도. 박병섭. 「고조선 누구의 나라인가」, 「고구려의 역년은 몇년인가」. 뺷고조선을 딛고서 포스트 고조선으로뺸. 2008년. 뺷선도문화뺸제6집. 2009년. 박병섭 「「삼성기전」 상하편에 숨겨진 사실들」 박병섭 박병훈. 「뺷환단고기뺸의 역사적 전승과정」. 한배달 2009년 후반기 학술회의 자료집. 2009년. 박성수. 「재야사서 어떻게 볼 것인가」. 뺷민족지성뺸. 1986년 11월호. 송호수. 「뺷환단고기뺸의 사료적 가치」, 뺷환단고기뺸의 사료적 검토」. 단군학회 1999년 전반기학술회의 자료집. 1999년. 임승국. 「뺷환단고기뺸ㆍ뺷규원사화뺸에 위작많다에 반박한다」. 뺷자유뺸. 1990년 11월. 이승호. 「한국 선도문헌의 연구사소고」. 뺷선도문화뺸제6집. 2009년.
(7) 뺷환단고기뺸위서론에 대한 비판적 고찰ㆍ우대석 99. 박병섭ㆍ박병훈은 뺷한서뺸, 뺷후한서뺸, 뺷삼국지뺸, 뺷사기뺸, 뺷삼국지뺸, 뺷위지동이전뺸 등의 중국사서와 뺷삼국유사뺸, 뺷제왕운기뺸, 뺷응제시주뺸, 뺷규원사화뺸, 뺷단기고사뺸 등 우리나라 사서의 기록과 뺷환단고기뺸의 기록을 비교 검토해서 뺷환단고기뺸 내용의 진실성을 연구하였다. 뺷환단고기뺸 내용이 우리나라 사서 및 중국사서 등의 내용에 숨겨진 의미와 잘 부합되는 부분이 많음을 증명했다. 특히 연대기록 등을 중점 적으로 검토하여 뺷환단고기뺸 기록의 정확성을 규명하려고 시도하였다. 뺷삼국유사뺸에 기록된 단군수명 1908년의 비밀이라든지, 「국강상광 개토경평안호태왕 비문」(이하 「호태왕 비문」이라 한다)에 있는 기록, 즉 광개토대왕이 17세손이라는 의문점에 대해서 뺷환단고기뺸와 뺷삼국 사기뺸 기록 등을 비교하여 진실을 규명하고 있다. 뺷삼국사기뺸에는 광 개토대왕이 13세손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에 대한 내용은 뒤에 자세 히 정리해 보기로 한다. 이외에도, 비교적 객관적인 입장에서 위서론을 비판하는 부류가 있는데, 박창범ㆍ나대일, 신원봉, 이상시, 민영현, 박정학 등이 있다. 이름. 제목. 실린책. 연도. 박창범 「단군조선시대 천문현상기록의 과학적 검증」 뺷한국상고사학보뺸14호 1993년 나대일 신원봉. 「뺷환단고기뺸의 고유사상문화론」. 이상시. 「단군실사에 관한 고증연구」. 민영현. 「철학사상으로 본 뺷환단고기뺸의 가치」. 박정학 「치우의 기록으로 본 뺷환단고기뺸의 역사성」. 뺷한국고유사상문화론뺸 2004년 뺷고려원뺸. 1990년. 뺷2009년 후반기 2009년 한배달 학술자료집뺸 뺷2009년 후반기 2009년 한배달 학술자료집뺸. 박창범ㆍ나대일은 뺷환단고기뺸에 기록된 천문현상, 특히 일식현상 등을 천문학적 방법으로 접근하여 기록의 진실성을 검증했다. 이상시는 뺷檀君實史에 관한 文獻考證뺸39)에서, 뺷환단고기뺸 중 특히 「.
(8) 100 仙道文化 제 9 권. 단군세기」에서 문제가 되는 부분이 많다고 지적했다.40) 그는, 후세에 가 필되어 다소 과장된 내용이 추가된 관계로 사료의 신뢰성에 문제가 되 고 있지만 뺷환단고기뺸를 위서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주장하고 있다. 나아 가 무수한 전화(戰禍)와 사서의 피탈, 그리고 금세기 일제의 사서수탈 등 으로 그 원본들이 소실되었기 때문에 이를 복원하는 과정에서 일부 역 사적 사실과 다른 내용이 뺷환단고기뺸에 추가되었을 수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41). 상세한 내용은 후에 정리해 보기로 한다.. 민영현은 뺷환단고기뺸는 역사서로서의 위서논란을 떠나서, 그 안에 내재한 한민족의 철학과 사상은 충분히 연구할 가치가 있다고 주장하 고 있다. 특히 뺷환단고기뺸는 「천부경」과 「삼일신고」 전문이 실려 있기 때문에 그 그것만으로도 철학적 가치가 충분하다고 주장하고 있다.42) 박정학은 치우천왕의 기록을 연구하여 뺷환단고기뺸 역사성에 대해 서 검증을 시도하였다.43) 이 외에도 신원봉은 뺷한국고유사상문화론뺸에서 여러 학자들의 주 장을 정리하였다. 그는 뺷환단고기뺸는 계연수가 쓴 것도 아니고 해학 이기가 감수한 것도 아니라고 주장했다. 즉 위작이지만 그 내용은 충 분히 연구할 가치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44). 이상 뺷환단고기뺸를 둘러싸고 전개된 진위논쟁의 연구성과를 간략 하게 고찰해 보았다. 위서론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주로 1980년대 1990년대에 관련논문 을 발표했다. 반면에 위서론 자체를 비판하는 학자, 즉 뺷환단고기뺸의 39) 이상시, 뺷檀君實史에 관한 文獻考證뺸, 가나출판사, 1987. 40) 신원봉, 앞의 책, 2004, 426쪽. 41) 신원봉, 앞의 책, 2004, 431쪽. 42) 민영현, 「철학사상으로 본 환단고기의 가치」, 뺷후반기 한배달 학술자료집뺸, 2009, 59쪽. 43) 박정학, 「치우천왕 기록으로 본 환단고기의 역사성」, 뺷후반기 한배달 학술자 료집뺸, 2009, 77쪽. 44) 신원봉, 앞의 책, 2004, 457쪽..
(9) 뺷환단고기뺸위서론에 대한 비판적 고찰ㆍ우대석 101. 진실성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최근까지 꾸준히 위서론에 비판적인 글 을 발표하고 있고, 관련 학술회의도 꾸준히 진행되어 왔다.45) 조인성 등 소위 위서론자들은 그 이후에 별다른 발표가 없으며 오히려 뺷환단 고기뺸의 일부내용이 연구가치가 있다고 입장을 수정하기도 하였다.46). Ⅲ. 뺷환단고기뺸의 체제와 판본문제 1. 뺷환단고기뺸의 체제 및 저자 뺷환단고기뺸는 안함로의 「삼성기」, 원동중의 「삼성기」, 행촌 이암의 「단군세기」, 휴애거사 범장의 「북부여기」, 일십당주인 이맥의 뺷태백. 일사뺸로 구성되어 있다. 뺷환단고기뺸에 대해서 현재까지 알려진 내용은, 계연수가 주도적으로 편저하고 이기가 감수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1978년 12월 발간된 뺷자 유뺸지 통권 78호에 기고한 글에서 이유립은 이기가 문하생인 계연수에 게 뺷환단고기뺸 편저를 부탁했다고 주장하고 있다.47) 뺷자유뺸지는 이유 립이 뺷환단고기뺸 등과 관련한 역사이야기 연재기사로 유명하다. 주목 할 것은, 뺷자유뺸지에 실린 글 속에는 뺷환단고기뺸 자체보다 뺷환단고기뺸 를 구성하고 있는 「단군세기」, 「태백일사」 등이 각권으로 소개되고 있 다는 점이다.48) 45) 국학원과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공동주최로 2010년 6월 26일 천안 국제뇌교 육종합대학원에서 “천손문화와 뺷환단고기뺸”라는 주제로 학술회의가 열렸다. 46) 박성수는, 2009년 12월 1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재출간 30년 뺷환단고기뺸” 라는 주제로 열린 (사)한배달 학술회의에서 “조인성이 뺷환단고기뺸의 내용이 일부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47) 박창암, 뺷자유뺸 통권 78호, 1978, 33-34쪽. 48) 박창암, 뺷자유뺸 통권 68호, 1978, 21⋅42쪽..
(10) 102 仙道文化 제 9 권. 뺷환단고기뺸가 세상에 본격적으로 나온 시기는 1979년인데 그 전에 간행된 뺷자유뺸지에 뺷환단고기뺸 내용이 실렸다는 것은, 조병윤이 1979년 9월에 발행한 뺷환단고기뺸를 이유립이 오래 전부터 갖고 있었 거나 최소한 뺷환단고기뺸를 구성하는 네 가지 책의 기초사료를 가지 고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1960년대, 1970년대 및 1980년대 발행된 뺷자유뺸지는 경주 동국대 캠퍼스와 성우회 등에 많이 소장되어 있고 인터넷 고서점에서도 심 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예비역 장성 모임인 성우회에는 뺷자유뺸지가 거의 전부 보관되어 있다.. 「자유」지의 일부. 이유립이 기고한 글과 「환단고기」와 관련한 내용이 보인다.. 뺷환단고기뺸는 「삼성기상하」, 「단군세기」, 「북부여기」, 「태백일사」 를 하나로 묶은 합판본이다..
(11) 뺷환단고기뺸위서론에 대한 비판적 고찰ㆍ우대석 103. 계연수는 뺷환단고기뺸를 구성하고 있는 위의 네 책의 출현근거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계연수는 뺷환단고기뺸 서문에서 “이맥(1455∼1528)이 쓴 「태백일사뺸 는 이기에게서 얻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삼성기」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안함로의 「삼성기」와 평안도 태천에 사는 백관묵 진사의 「삼성 기」를 합쳐서 「삼성기전」을 만들었다고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행촌 이암이 쓴 「단군세기」는 태천의 백관묵 진사와 뱃골에 사는 이형식 진사에게서 얻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두 책은 글자 하나 다르지 않고 내용이 똑같다고 기록해 놓았다. 「북부여기」도 이형식 진사 집에서 나왔다고 주장하고 있다.49) 뺷환단고기뺸는 한국사의 상고 및 고대의 역사뿐만 아니라, 신앙, 풍 습, 정치, 경제, 예술, 철학에 대한 내용이 들어있다. 가장 분량이 많은 책은 뺷태백일사뺸인데 일십당 이맥(1455∼1528)이 지은 책이다. 이맥 은 「단군세기」를 쓴 행촌 이암의 현손이다. 「태백일사」는 뺷환단고기뺸 전체 분량의 60% 가까이 차지하고 있다. 이맥은 조선초 연산군 때 문 신이며 고성이씨의 13세손이다. 뺷천부경뺸과 뺷삼일신고뺸 전문이 실려 있고 뺷참전계경뺸에 대하여 대략적인 내용이 소개되어 있다. 이맥은 「태백일사」 발문에서 「태백일사」를 집필하게 된 연유를 간단하지만,. 비교적 소상하게 적어놓았다. 그 전문은 아래와 같다. “갑자년(1504년으로 추정)에 내가 괴산으로 귀양 가니 처지로는 마 땅히 근신해야 하지만 자못 심심하였다. 이에 집에 간직하여 둔 낡은 상자를 열어 역사서와 전기서 중에 근거될 만한 것과 평소 옛일을 잘 아는 여러 노인들에게 들은 것을 아울러 채록하였으나 책으로 만 들지는 못하였다. 그 후 16년 경진(1519년으로 추정)에 내가 찬수관 으로서 자못 내각의 秘書를 구하여 읽고 이에 앞서의 원고를 손질하 49) 北夫餘紀上下休崖居士范樟所撰也舊有以檀君世紀合編者得於朔州梨洞李進士 亨栻家檀君世紀與白進士所藏無一字異同今又有別本而行於世者此本內容自與 前書頗有所殊故更不及之也. 임승국, 뺷한단고기뺸, 2006, 10쪽 참조..
(12) 104 仙道文化 제 9 권. 여 차례를 따라 편찬하여 「태백일사」라 이름하였다. 그러나 감히 세 상에 알리지 못하고 이를 秘藏하여 문밖으로 내보내지 않은 것이다. 일십당 주인이 쓰다.”50) 찬수관이라는 직책에 있으면서, 조선왕조가 秘藏해 둔 책들을 볼 기 회가 있어서,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책들까지 참고로 해서 「태백일사」 를 지었다는 것이다. 이맥이 「태백일사」를 세상에 내놓지 못하고 秘藏 한 이유는,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살펴보면 미루어 알 수 있다. 세조 실록, 예종실록, 성종실록에 보면, 왕명으로 수서령을 내렸다. 수서령 이 내려진 고서들은, 뺷고조선비사뺸, 뺷표훈천사뺸, 뺷주남일사기뺸, 뺷표훈 천사뺸, 뺷고려팔관기뺸, 뺷대변설뺸, 뺷조대기뺸, 뺷통천록뺸, 뺷지공기뺸, 뺷삼성 밀기뺸, 뺷도증기뺸, 뺷진역유기뺸, 뺷지리성모뺸, 뺷통천록뺸, 뺷지화록뺸, 뺷도선 한도참기뺸, 뺷동천록뺸, 뺷마슬록뺸, 뺷호중록뺸 등이다. 수서령을 통해서 조선의 조정은, 위의 책들을 신고하지 않으면 참형 까지 처한다는 왕명을 내렸다. 이러한 왕명을 내린 진정한 이유는 정확 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 그런 것이 아닌가 추측 이 되고 있다. 만일 이맥의 발문이 사실이라면, 이맥은 죽음의 위협을 무릅쓰고 이 책을 사사로이 보관했다고 판단된다. 실제로 「태백일사」에 보면 수서령에 포함된 뺷표훈천사뺸, 뺷고려팔관기뺸, 뺷대변설뺸, 뺷조대기뺸 등이 언급되어 있다. 「태백일사」는, 「삼신오제본기」 「환국본기」 「신시본기」 「삼한관경. 본기」 「소도경전본훈」 「고구려국본기」 「대진국본기」 「고려국본기」 로 구성되어 있다. 「삼신오제본기」는 역사서라기보다는 성경의 창세기와 비슷한 성. 격의 기록이다. 즉, 인류 역사 이전의 천지창조이야기가 담겨 있다. 우주가 형상화되기 전과 형상화되는 과정을 기술하고 있다. 그리고 간단하지만 단군조선 시대까지 망라한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50) 임승국, 앞의 책, 340쪽..
(13) 뺷환단고기뺸위서론에 대한 비판적 고찰ㆍ우대석 105. 「환국본기」는 조대기를 인용하여, 배달국과 단군조선 시대 이전의. 역사인 환국 7대 3,301년의 역사를 기술하고 있다. 당시의 철학과 사 상도 설명하고 있다. 환국은, 당시 12개 나라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비리국ㆍ양운국ㆍ구막한국ㆍ구다천국ㆍ일군국ㆍ우루국ㆍ객현한국ㆍ 구모액국ㆍ매구여국ㆍ사납아국ㆍ선비이국ㆍ수밀이국이라 불렸다. 그 리고 통치자의 이름을 환인으로 기록하고 있다. 「신시본기」는 신시배달국의 역사서라는 의미이다. 환국을 거쳐 배. 달국이라는 나라가 환웅에 의해서 개국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神 市란 당시의 수도를 칭하는 것이다. 주목할 것은 중국의 시조로 알려. 진 복희와 신농이 신시배달국 출신이라는 기록이다. 여와의 이름도 보이며 치우천왕 관련기록도 보인다. 특히 황제헌원과 치우천왕과의 싸움이 상세히 기술되어 었다. 치우천왕과 황제헌원이 수십 차례 싸 웠다는 그 유명한 탁록대전도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중국 고대역사에 등장하는 소호금천, 공손헌원(황제헌원), 자부선인 등에 대한 기록도 보인다. 「삼한관경본기」는 단군조선 시대의 역사를 기술하고 있다. 삼한이. 란 3개의 한, 즉 3개 조선을 일컫는 말이다. 진한ㆍ마한ㆍ번한이 그 것이다. 이 세 나라가 후에 진조선ㆍ마조선ㆍ번조선으로 명칭이 바 뀐다. 내용 중에 단군조선 이전의 역사인 배달국의 치우천왕 등이 다 시 나오는데, 내용이 다소 뒤죽박죽되었다. 「소도경전본훈」에는 뺷천부경과 뺷삼일신고뺸 전문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뺷참전계경뺸이 일부 소개되어 있다. 「소도경전본훈」은 역사서 라기보다는 사상서에 가깝다. 「고구려국본기」, 「대진국본기」, 「고려국본기」는 각각 고구려, 대진. 국(발해)과 고려의 역사가 서술되어 있다. 특기할 것은, 고구려의 뿌리 를 해모수에서 찾고 있는데 해모수를 고주몽의 4대조로 기록하고 있 다. 대진국은 발해를 칭하는 것으로, 발해의 시조인 대조영의 아버지.
(14) 106 仙道文化 제 9 권. 가 대중상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말갈의 걸사비우과 거란의 이진영이 대조영과 합세했다는 기록도 흥미 있는 부분이다. 「고려국본기」에는 천복, 천수 등 고려의 연호가 기록되어 있고, 신성태왕, 경황제 등 제 후국이 아니라 황제 칭호를 썼다는 기록이 눈에 띈다. 「태백일사」 다음으로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것이 「단군세기」다. 1. 대 단군왕검부터 47대 고열가단군까지 47명의 단군이 2096년 동안 나라를 다스리면서 행하였던 주요치적을 서술하고 있다. 「단군세기」는 고려시대인 1363년(공민왕 12)에 행촌선생 문정공. 이암이 저술한 책으로 아사달에 도읍하여 ‘조선’이라는 나라 이름을 사용한 47대 단군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47대 단군의 재위기간 중에 주요사건을 편년체로 요약 정리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단군조선의 마지막 임금인 고열가단군이 계해 58년 (B.C 238년) 단군제위를 포기하고 입산수도한 뒤, 五加가 6년 동안 나라를 다스린 뒤 북부여에 흡수되었다는 기록이다. 기존의 역사서에 기록된 내용과 매우 상이함을 알 수 있다. 고조선 이 B.C 108년 위만조선이 한나라에 망했다는 기존의 국사교과서 내 용은, 뺷환단고기뺸에 나오는 삼조선 중에 번조선 역사의 기록으로 추 정된다. 「삼성기」는 신라의 승려인 안함로와 그리고 행적이 확실치 않은. 원동중이 쓴 것을 각각 상권과 하권으로 구분하여 합친 것으로, 환인 과 환웅, 단군시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는 우리 민족의 시발인 환국시대의 환인으로부터 7세 단인까지 3301년의 역사와 신시시대의 한웅으로부터 18세 단웅까지 1565년의 역사를 압축한 것이다. 하권 에는 신시 역대기가 있다. 「북부여기」는 고려 1363년 공민왕 12년에 행촌 이암이 찬술한 책. 이다. 상권은 1대 해모수로부터 4대까지 163년간 역사를 담고 있다. ‘하권’은 5대∼6대 51년간을 담고 있는데 5대는 북부여가 쇠하여지자.
(15) 뺷환단고기뺸위서론에 대한 비판적 고찰ㆍ우대석 107. 졸본으로 내려와 다시 즉위하고 동명이라고 하였다 하니 이가 곧 국 사학계에서 말하는 고구려 시조로 여겨진다. 이어 가섭원부여기는 시조 해부루로부터 108년간 3대를 거친 역사를 담고 있다.. 2. 뺷환단고기뺸 판본 비교 뺷환단고기뺸 판본은, 계연수 판본, 1949년 이유립이 오형기로 하여 금 정서(正書)시킨 판본, 조병윤의 1979년 오형기 복사판본, 이유립의 오자를 탈고판본 등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계연수 원본 은 현재 전해지고 있지 않다. 시중의 거의 보든 판본은 조병윤 판본 과 이유립 판본이다. 이중에서 주목받고 있는 이유립 판본은 100부 중에서 7부가 시중에 나왔고, 93부는 이유립이 보관하다가 분실했다 고 전해진다.51) 한뿌리출판사 권태흥은, 2004년에 이유립의 1979년 판본을 입수하여 시중에 대량으로 출판했다. 조병윤 판본은 100부 한 정 출판되었는데, 겉표지까지 흡사한 영인본도 최근에 출판되고 있 다. 이 외에도 뺷환단고기뺸 번역본이 시중에 다수 나와 있다. 현재 시 중에 존재하는 김은수가 1985년 최초로 발간한 이래, 임승국 번역본 (1986년), 이일봉의 번역본(1998년), 코리언북스의 단학회 번역본(2004 년), 고동영의 번역본(2005년) 등이 나와 있다. 한편 가지마 노보루는 일어 번역판 뺷환단고기뺸를 1982년에 출판했는데, 뺷환단고기뺸 한문원 본이 일어판 뒷부분에 그대로 실려 있다. 그리고 소화 57년에 출판했 다는 기록이 있다. 소화 57년은 1982년이다. 가지마 노보루의 뺷환단고기뺸에는 한민족의 단군의 가르침이 단군 교로 명기되어 있고, 일본 신교의 한 갈래로 묘사되어 있다. 이 일어 판에는 역사를 배달국-야마토일본-나라일본-헤이안시대 일본으 51) 2009년 6월 17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구 장항동 한뿌리출판사 사무실에서 권 태흥이 증언한 내용..
(16) 108 仙道文化 제 9 권. 로 번역 기술하고 있다. 이는 국내의 뺷환단고기뺸 내용인 한국시대- 배달국시대-단군조선시대-고구려-발해-고려의 역사를 왜곡시키 고 있다는 주장의 근거를 제공해 주고 있다.. 조병윤에 의해서 출판된 것으로 추정되는 1979년판 뺷환단고기뺸겉표지와 再版後識. 이유립 영인본 -한뿌리출판사. 이유립 영인본 목차. 조병윤 영인본 목차. 위의 사진을 보면 이유립이 고쳐서 출판했다는 판본목차와 조병윤 의 목차가 다르다. 이유립 속지 목차에는 <迦葉原夫餘紀>와 <休崖.
(17) 뺷환단고기뺸위서론에 대한 비판적 고찰ㆍ우대석 109. 居士 撰>이라는 목차가 조병윤 영인본 목차에는 보이지 않는다.. 2004년 한뿌리출판사에서 출판된 책은 이유립이 오형기의 필사본 을 오자를 수정해서 출판한 책이다. 여러 가지 증언과 기록을 종합해 보면, 뺷환단고기뺸의 판본은 8가지가 존재할 것으로 추정이 된다. ① 계연수가 편찬한 것(1898년, 「해동인물지」, 295쪽, 계연수항목. 「단군세기」 뺷태백유사뺸 등) ② 계연수가 직접 編著한 것.(原本이라 칭함)-30부 한정 발간 ③ 이유립이 오형기에게 필사하게 한 것(오형기 原本) ④ 오형기 영인본(조병윤 판본)-광오이해사 1979년 100부 한정판 ⑤ 조병윤 판본의 재영인본 ⑥ 오형기 필사본의 수정본(이유립 판본)-1983년 배달의숙 100부. 한정판 ⑦ 이유립 판본의 활자본(2004년 한뿌리출판사) ⑧ 가지마 노보루 판본(1982년 신국민사). 이를 종합적으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환단고기 5개 사서 소장자와 합본 과정 삼성기 상. 삼성기 하. 단군세기. 북부여기. 태백일사. 안함로. 원동중. 이암. 범장. 이맥. 계연수 집안에서 백관묵(평북 백관묵, 이형식 이형식(삭주 이기 (1898년 전해 내려옴 태천의 진사) (1898년 계연수 정리) 이동의 진사) 계연수 정리) 환단고기 8개 판본 계연수정리 1898년 해동인물지. 계연수 조병윤본의 가지마 배달의 배달의숙본 오형기본 조병윤 본 원본 재영인본 노보루본 숙본 의 활자본 1911년 30부. 1949년. 1979년 100부. 이유립이 오형기 분실 원본. 오형기 영인본. ?. 1982년 신국민사. 1983년 100부. 2004년. 이유립 한뿌리출판사 수정본.
(18) 110 仙道文化 제 9 권. Ⅳ. 뺷환단고기뺸위서론 분석과 비판 위서론자와 이를 비판하는 眞書주장자들의 핵심쟁점을 몇 가지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이도학이 주장한 장수왕의 연호다. 장수왕의 ‘建興’ 연호는 1915년 충북 충주시 노은면에서 출토된 불상의 광배명에 기록되어 있 다. 그런데 장수왕 연호는 그 불상이 발견되기 이전에는 세상에 알려 진 적이 없는데, 뺷환단고기뺸에는 장수왕의 연호가 ‘建興’이라는 기록 이 있다. 이것을 위서론자와 진서론자는 서로 전혀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 위서론자들은, 장수왕의 연호가 1915년 불상이 발견되면서 세상에 처음 알려졌으므로 1911년에 편저되었다는 뺷환단고기뺸는 위서일 수 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반면에 진서임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1915년 에 세상에 최초로 알려진 불상의 광배명 기록, 즉 장수왕의 연호로 인하여 뺷환단고기뺸 내용이 정확함을 인정받았다는 주장이다. 어느 주장이 더 과학적인 판단일까? 기록을 믿어야 하지 않을까? 트로이 문명 유적지를 발견한 슐레이만처럼, 옛 기록이 증명된 예는 많다.52) 예를 들어 뺷삼국사기뺸「백제본기」에는뺵백제 무령왕의 휘가 사마이 며 서기 523년(계묘년) 5월에 붕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1971년 공주 에서 발굴된 무령왕릉의 誌石에서 뺷삼국사기뺸「백제본기」의 내용과 동일한 기록이 발견되었다. 장수왕의 연호와 연개소문의 할아버지 이름도 이와 같은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위에서 설명한 대로, 1915년에 발견된 불상의 광배경에 기록된 장수왕의 연호 ‘建興’과 천남생묘지의 기록으로 인하여 알려 52) 독일의 사업가였던 슐레이만은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의 기록을 진실로 믿고, 1870년경부터 트로이유적지를 파헤쳐 3천 년 전의 유적을 발견하였다. 이로 인하여 그 기록을 증명하였으며, 이 일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19) 뺷환단고기뺸위서론에 대한 비판적 고찰ㆍ우대석 111. 진 연개소문의 조부 ‘子遊’의 경우는, 뺷환단고기뺸 기록이 유물로 인하 여 진실임이 밝혀졌다고 판단해야 옳지 않을까? 따라서 저술연대의 모순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논쟁은, 眞書론자들 의 주장이 더 과학적이라고 할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박창범의 오성취루현상 재현은, 뺷환단고기뺸의 진실 성을 믿는 학자들에게 큰 힘을 실어준 사례였다. 그런데, 이 부분에 대해서 일부 비판적으로 보는 학자들은, 조선왕 조실록 등에 기록된 오성취루현상 재현기록을 바탕으로, 옛날에 그 러한 현상이 보였다는 기록을 조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치밀한 계산 에 의해서 이러한 기록조작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조작설은, 가능 성은 낮아 보이지만 현실적으로 실현가능한 일이이라고 한다. 천문 학적 현상기록을 조작했는지, 조작했다면 누가 어떻게 조작했는지, 그 러한 조작이 얼마나 현실적으로 가능한지를 파악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1900년대 초 뺷환단고기뺸를 편저한 계연수가 이러한 천문현 상을 조작할 수 있었을까? 계연수가 살았던 1900년대 초기에 이렇게 정확한 천문기록 조작이 가능했을까? 가능했다고 해도 쉽지는 않았 을 것이다. 왜냐하면 오성취루 현상은 겨우 평균 250년에 한 번씩 나 타나는 매우 드문 천문현상인데, 이 현상을 인위적으로 계산해서 재 현시기를 정확하게 맞추기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眞僞논쟁의 또 다른 쟁점은 교리체계다.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들. 어온 것이 길어야 300년도 안되는데, 뺷환단고기뺸에는 삼위일체니, 삼 신이니 영혼, 각혼, 생혼의 성삼품설이니 하는 기독교 교리에서나 볼 수 있는 용어가 발견되고 있다는 것이다. 위서론을 주장하는 학자들 은, 그러므로 뺷환단고기뺸는 기독교가 전래된 이후에 조작된 책이라 는 주장이다. 그러나 三神이니, 영혼이니 하는 단어는 이미 우리 민 족이 수천 년 전부터 써오던 단어다. 기독교 고유의 용어가 아니다. 영이나 혼 또는 삼신은 우리 고유의 문화적이 단어다..
(20) 112 仙道文化 제 9 권. 그리고 三神이나 영혼 등은 민간이나 불교나 도교 등 동양의 전통 사상 속에서 오랜 옛날부터 써오던 용어다.53) 임승국의 이러한 반박론에 대해, 위서론을 주장한 박광용 등은 더 이상의 답변이 아직 없다. 따라서 삼신, 영혼 등의 용어들이 근세기독교 전래 이래, 들어온 용어라는 주장은 무리다. 이 외에도 제9세 아술단군 원년(서기전 1985년)에 “두 개의 해가 동시에 솟아오르니 구경하는 사람이 담장과 같았다.”는 기록이 있는 데 과학적으로 타당성이 없다는 것이 위서론자들의 주장이다. 하지 만 이러한 옛기록은,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하면 전혀 타당성이 없는 주장이 아니다. 낮에 큰 별똥별, 즉 혜성이 하늘을 가로질러 갔을 수 도 있다. 것을 두 개의 해로 기록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제10세 노을단군 16년(서기전 1935년)에 “동문 밖의 육지가 출진하 고, 장백산에 누워있던 돌이 스스로 일어나고, 발해에 귀룡이 나타나 고 금덩어리가 나왔는데 그 수량이 11섬이나 되었다”는 기록이 있는 데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되는 기록이라는 주장인데, 한편으로 다르 게 생각하면 충분히 현실적으로 가능한 기록이다. 육지가 출진했다 는 기록은 대지진으로 바다가 육지가 된 증거는 많다. 물론 이러한 기록들은, 후세에 일부 내용이 가필되었을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 이상시는 위와 같은 지적을 다음과 같은 결 론을 내리고 있다. “「단군세기」가 편찬된 때(서기 1363년)로부터 뺷환단고기뺸로 인하 여 합편된 때인 1911년 8월까지 550여 년이 지났다. 다시 그 후에 복 간된 때인 1979년 8월(발행은 10월)까지 70년, 이 모두를 합하면 약 600년이 흐르는 동안 무수한 戰禍와 사서의 被奪 그리고 일제의 사 료압수 등으로 원본들이 소실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는 과정에서 일 53) 임체우, 앞의 책, 141-142쪽; 임승국, 「「환단고기ㆍ규원사화에 위작 많다」에 반박한다」, 뺷자유뺸 11월호, 1990, 123-124쪽..
(21) 뺷환단고기뺸위서론에 대한 비판적 고찰ㆍ우대석 113. 부 구전되는 내용이나 殘帙을 토대로 복간하는 과정에서 내용이 가 감되거나 삭필된 것으로 판단된다. 어느 부분은 과장되고 어느 부분 은 가필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뺷환단고기뺸를 위서라고 볼 수는 없고 원본과 내용이 많이 차이가 나므로 신뢰성이 문제될 뿐이다.” 이상시는 위와 같이 주장하면서 전면적인 위서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음을 명택히 밝혔다. 그는 1985년 10월 4일 조선일보에 자신이 조사한 총독부 관보내용 을 밝혔다(기사 참조).. 1985년 10월 4일자 조선일보 기사.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일본은 한민족 역사의 말살을 위하여 사서를 불태우거나 압수 하여 일본으로 가져갔다. 2) 그 수량은 51종 20여만 권에 달한다. 3) 상당수의 사서에 단군관련 기록이 있다..
(22) 114 仙道文化 제 9 권. 이상시의 이러한 주장과 발표와 흡사한 내용을 밝힌 사람이 또 있 다. 전 조선일보 기자출신인 서희건은 뺷읽어버린 역사를 찾아서뺸54) 를 통해서 일본이 우리나라 고서를 압수해서 불태웠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제는 1910년 11월 한일병탄 석 달이 채 되지 않은 시점부터 우리나라의 사서를 압수하기 시작했다. 제 1차 색출작업은 1910년 11 월부터 다음해 12월까지 약 1년 2개월 동안 계속되었다.55) 조선총독 부 관보를 근거로 해서 그 숫자와 종류를 밝힌 책이 있는데, 해방 후 출간된 뺷제헌국회사뺸와 문정창의 뺷군국일본조선 강점 36년사뺸가 그 것이다. 이들 책에 의하면 총 51종 20여만 권이라고 한다.56) 이상시 의 주장과 일치하는 내용이다. 서희건은 상기 뺷읽어버린 역사를 찾아 서뺸에서 일본의 역사왜곡을 자세하게 폭로하고 있다. 그의 주장에 의 하면 일본은 우리의 역사를 왜곡하기 위하여 치밀한 계략과 계획을 세워서 진행했다. 1922년 12월 총독부 훈령 제64호에 의거하여 조선 사편찬위원회 규정을 제정했다. 그 위원회의 위원장은 조선총독부 정무총감이었다.57) 이 조선사편수회의 활동이 미진하자 이번에는 격을 한층 높이기 위하여 1925년 6월 일황 칙령 제218호로 「조선사편찬위원회」를 「조 선사편수회」로 관제를 바꾸어 공포했다. 이때에는 참여인물을 대폭 늘렸다. 그 유명한 이완용 권중현 등이 고문으로 추대되었다. 조선사 편수회는 1938년까지 뺷朝鮮史뺸 35권(목록 및 색인 포함 37권)을 완성 해서 출판하였다. 이 뺷朝鮮史뺸내용에서 치명적으로 왜곡된 부분이 상고사 부분이다. 그들이 구분한 역사의 맨 윗부분이 <통일신라 이 전>이다. 35권 중에서 이 <통일신라 이전> 기록이 단 1권 732쪽으로 편성되어 있다. 고려시대 456년간의 기록 2,800여 쪽에 비하면 매우 54) 서희건, 뺷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뺸, 고려원, 1986. 55) 서희건, 앞의 책, 11쪽. 56) 서희건, 앞의 책, 11쪽. 57) 서희건, 앞의 책, 15쪽..
(23) 뺷환단고기뺸위서론에 대한 비판적 고찰ㆍ우대석 115. 빈약한 기록이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반만년이라고 하는데, 약 3천 년의 역사(단군조선∼삼국시대)를 35권의 조선사 중에서 단 1권의 역 사로 편찬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조선 사편수회를 통해서 일본은 적극적으로 역사를 조작, 왜곡하였다.58) 심지어는 삼국유사의 글자까지 조작하면서 역사를 왜곡하였는데, 최 남선이 조선사편수회 회의에서 이를 강력히 비판하면서 「賤人의 妄 筆」이라고 울분을 터뜨린 것은 유명한 사건이다.59). 최남선은, 당초에 조선사편수회 일에 참여할 생각이 없었으나, 일 본의 갖은 회유와 협박으로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일 본의 삼국유사 조작 등을 신랄하게 비판하였다고 서희건은 주장하고 있다.60) 즉, 조선사편수회의 촉탁위원으로 조선사편찬 및 왜곡에 앞장섰던 대표적인 인물 이마니시 류(今西龍)는 1512년 경주부윤 이계복이 중간 한 삼국유사 정덕본을 影印하면서 뺷단군고기뺸에 나오는 「昔有桓國」을 「昔有桓因」으로 조작, 개찬하여 1921년 경도제대 영인본을 출판하였다.. 이러한 조작은 그의 박사학위논문 뺷檀君考뺸에서 단군신화설을 뒷 받침하는 자료로 악용되었다.61) 경도제대 영인본은 현재 동국대학교 58) 일제강점기인 1916년 1월 중추원 산하 조선반도사편찬위원회로 발족하여 1922년 12월 조선총독부 산하 조선사편찬위원회로 바뀌었다. 설치배경은 일 본민족의 우위성을 고취하고 왜곡된 역사교육을 통해 한민족의 민족의식을 약화 내지는 배제시키고자함이었다. 그후 더욱 권위있는 기구로 만들고자 1925년 6월 일왕칙령으로 조선사편수회로 명칭을 바꾸고 독립된관청으로 격상되면서 조직이 확대개편되었다. 1925년 10월 8일 제 1회 위원회를 개최 하여 자료와 사서의 강제수색 및 압수하기로 결정하고 전국의 도.군.경찰서 등 관청을 동원하여 수많은 고사서를 약탈하였는데, 1910년 11월부터 1937 년까지 27년간 51종 20여만 권을 약탈하였다. 두산백과사전, 중앙일보 1999 년 12월 6일, 김국진 기자. 59) 서희건, 앞의 책, 35쪽. 60) 서희건, 앞의 책, 35쪽. 61) 서희건, 앞의 책, 35쪽..
(24) 116 仙道文化 제 9 권. 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옛날에 桓國이 있었다”는 내용을 桓因 이라는 한 사람으로 바꾸어, 고조선의 입국사실의 신빙성을 깎아 버 리고 환인과 환웅 등을 신화적 존재로 조작하였다.. 1512년에 발행된 뺷삼국유사뺸 정덕본 (석유환국(昔有桓國)이라는 글씨가 보인다). 1921년 일본 경도제대에서 발행된뺷삼국유사뺸 (석유환인(昔有桓因)이라는 글씨가 보인다).
(25) 뺷환단고기뺸위서론에 대한 비판적 고찰ㆍ우대석 117. 그러나 일본 역시 1902년에 발행한 도쿄대 발행본에도 ‘昔有桓國’ 이라고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다. 박창범도 위서론에 대해서 비판적인 연구를 내놓았다. 박창범과 나대일은, 뺷단군조선시대 천문현상기록의 과학적 검증뺸62) 이라는 글 을 통하여 「단군세기」와 뺷단기고사뺸에 나오는 12가지의 천문현상을 검증결과를 발표하였다. 슈퍼컴퓨터를 이용한 이 검증방법은 매우 과학적이고, 객관적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특히, 일식현상과 같은 천 문현상은 조작하거나 은폐할 수 없으며, 수만 년이 지나도 그대로 재 현 가능한 자연현상이다. 그러므로 고서에 있는 천문현상기록의 검 증을 통하여 그 사서기록의 신뢰성을 가늠할 수 있는 것이다. 박창범 은 10번의 일식현상과 1번의 5행성 결집기록(소위 五星聚婁 현상), 그리고 1번의 조수간만의 차이현상 기록을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검증하였다. 그 결과, 5개의 별(목성, 화성, 토성, 금성, 수성)이 일직 선으로 한 곳에 모였다는 「단군세기」 천문기록이 우연히 맞을 확률 이 0.7%라는 것이다. 「단군세기」 기록에 보면 13세 흘달단군 50년(무 진년) 즉 서기전 1733년에 다섯 별이 누숙의 자리에 모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 현상을 검증한 결과, 실제로 서기전 1734년에 서쪽 하늘에 다섯 개의 별이 초승달과 함께 10도 이내로 모였다는 것을 검증하였 다. 3,700년 이상의 세월로 보아서 1년의 차이가 나는 것은 거의 정 확하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기록은 그 당시 누군가가 하늘을 보고 천문현상을 정확하게 기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63) 박창범은 조수현상의 기록도 검증해 보았다. 뺷환단고기뺸 중의 「단 군세기」에 보면 “29대 마휴단군 9년에 남해의 조수가 석 자가 물러 났다”는 기록이 있다. 이것을 해와 달의 위치를 계산하여 지구에 미 친 조석력을 200년간 계산한 결과, 「단군세기」의 기록보다(서기전 62) 박창범⋅나대일, 「단군조선시대 천문현상기록의 과학적 검증」, 뺷한국상고사 학보뺸 제14호, 1993. 63) 박창범, 뺷하늘에 새긴 우리역사뺸, 김영사, 2002, 27-29쪽..
(26) 118 仙道文化 제 9 권. 935년) 4년 후인 서기전 931년에 가장 큰 조석력이 발생하였음을 밝 혔다.64) 이러한 자연현상기록이 이 정도의 차이로 우연히 기록될 확 률은 4%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Ⅴ. 뺷眞書論뺸의 비판적 검토 이도학도 다음과 같은 내용을 바탕으로 뺷환단고기뺸 내용이 진실임 을 주장하고 있다. 첫째, 「태백일사」「고구려국본기」에 나오는 장수왕의 연호 ‘建興’ 문제다.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1915년 충북 충주시 노은면에서 출토 된 불상의 光背名에 ‘建興五年歲在丙辰’이라는 명문이 있는데 광개토 대왕 비문에 따르면 장수왕 5년이 바로 병진년이다. 따라서 「태백일 사」에 기록된 장수왕의 연호가 사실임이 밝혀져, 뺷환단고기뺸의 진실 성이 높아졌다는 주장이다. 둘째, 「태백일사」에는 연개소문의 할아버지 이름이 ‘子遊’라고 되 어 있는데 1923년 중국 낙양의 북망산에서 출토된 연개소문의 아들, 천남생의 묘지에 연개소문의 할아버지를 ‘子遊’라고 명기하고 있어, 뺷태백일사뺸의 진가가 드러났다고 주장하고 있다. 셋째, 「태백일사」에는 현재 ‘타이’라고 불리는 아유타국과 백제 상 인이 교역한 기록이 있다. 이는 뺷일본서기뺸에, 백제가 현재의 캄보디 아인 부남국과 교역했다는 기록과 일치한다. 그러므로 「태백일사」의 내용에 진실성이 있다. 뺷환단고기뺸가 위서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의 논리 중에서 청동기시 대와 관련된 이론이 있다. 위서론의 대표적인 학자인 조인성도 이 주 장을 펴고 있다.65) 즉, 뺷환단고기뺸「삼성기」에는 고조선의 건국에 앞 64) 박창범, 같은 책, 31-32쪽..
(27) 뺷환단고기뺸위서론에 대한 비판적 고찰ㆍ우대석 119. 서 桓因의 환국시대(7대 3,301년 혹은 6대 3,182년)와 그를 이은 환웅 의 신시배달국시대(18대 1,565년)가 설정되어 있다. 이 기록으로 보면 우리의 역사는 기원전 7천년, 지금으로부터 9천 년 전에 국가가 출현 했고 남북 5만 리, 동서 2만 리의 대제국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문 화 역시 신시배달국시대에 이미 철기시대에 들어섰다는 것이다. 그 러나 이러한 기록이 현재 역사학의 상식과 매우 동떨어진 기록이라 는 주장이다. 청동기시대에 국가가 들어섰다는 것은 세계사의 상식 이며 한반도의 청동기시대는 기원전 10세기를 못 올라간다는 것이 조인성의 주장이다. 그러나 최근 한반도 내에서 기원전 10세기를 훨씬 뛰어넘는 청동 기 유물이 쏟아져 나오고 있기 때문에 조인성의 주장은 타당성을 얻 지 못하고 있다. 100년, 200백년이 아니라 1천 년 가까이 올라가는 청동기유물이 곳곳에서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66) 성삼제는 뺷고조 선 사라진 역사뺸에서 이러한 내용을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아래 자 료는 강릉과 속초 지방에서 발굴된 청동기유물의 방사성탄소 측정연 대를 정리한 자료다. 따라서 한반도에서 10세기경에 청동기시대가 시작되었고 국가가 형성된 것으로 보아야 하며 이러한 사실과 많이 빗나가는 기록이 있 는 뺷환단고기뺸는 위서일 수밖에 없다는 조인성의 주장은 신뢰성이 크게 떨어진다고 볼 수 있다. 반면에 단군조선 시대 이전에 배달국, 환국이 있었다는 뺷환단고기뺸의 기록은 신뢰성이 높아지는 증거들이 라고 판단할 수 있다.. 65) 조인성, 「뺷환단고기뺸에 대한 몇 가지 의문」, 뺷단군학회 1999년 전반기 학술회의 자료집뺸, 1999. 66) 성삼제, 뺷고조선 사라진 역사뺸, 동아일보사, 2005, 46쪽..
(28) 120 仙道文化 제 9 권 유 적. 측정값. 교정연대(2편차). 측정기관. 강릉 교동 1호주거지. 3390±60. 기원전 1878-1521. 국립문화재연구소. 강릉 교동 1호주거지. 3100±50. 기원전 1492-1219. 국립문화재연구소. 강릉 교동 1호주거지. 3230±50. 기원전 1676-1408. 국립문화재연구소. 속초 조양동 5호주거지. 2820±60. 기원전 1206-830. 국립문화재연구소. 강릉 방내리 3호주거지. 2930±50. 기원전 1365-944. 국립문화재연구소. 강릉 방내리 4호주거지. 2400±50. 기원전 761-388. 국립문화재연구소. 강릉 방내리 1호주거지. 2650±170. 기원전 1258-392. 국립문화재연구소. 강릉 방내리 2호주거지. 2710±110. 기원전 1187-549. 국립문화재연구소. 최근 확인된 청동기시대 유적 탄소연대(자료제공: 강릉대학교 박물관. 뺷환단고기뺸 내용의 진실성을 검증한 또 다른 방법은, 중국측 사료 와 비교 검토하는 것이다. 최근 박정학은 2009년 후반기 한배달 학술회의에서 중국측 사서에 기록된 치우의 기록하여, 뺷환단고기뺸에 기록된 내용과 비교하여 공 통점을 찾아내서 진실성을 검증하였다. 첫째, 중국 측 사료에는, 2698년부터 2599년까지 100년을 치우의 재위기간으로 보고 있는데, 뺷환단고기뺸에는 2707년부터 2599년까지 109년간 재위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거의 내용이 일치한다. 둘째, 중국기록에 나오는 당시의 전쟁무기의 종류와 뺷환단고기뺸에 나오는 치우시대의 무기 명칭이 동일한 것이 많다. 刀, 戟, 大弩, 銅 頭鐵額 등이 그것이다.. 셋째, 치우가 군대를 만들고 훈련시켰으며, 70여회를 싸웠다는 등 상당히 오랫동안 전쟁을 치렀다는 내용이 중국사서와 뺷환단고기뺸에 공통적으로 들어있다. 넷째, 치우가 전쟁을 치르면서 비와 구름을 부렸다는 내용도 공통 점이다..
(29) 뺷환단고기뺸위서론에 대한 비판적 고찰ㆍ우대석 121. 다섯째, 죽은 후에 치우기라는 혜성모양의 별이 되어 전쟁을 미리 예견해 주었다는 기록도 공통적인 기록이다. 여섯째, 치우가 활동했던 지명이 중국의 옛 기록과 뺷환단고기뺸기 록이 동일하다. 갈로산, 탁록, 옹호산, 회대, 판천 등이 그것이다. 이 지명은 지금도 중국에 일부 남아있다. 박정학은, 중국 측 사서로 뺷史 記뺸, 뺷後漢書뺸, 뺷管子뺸, 뺷述異記뺸, 뺷太平御覽뺸, 뺷山海經뺸, 뺷周禮注疎뺸. 등을 예로 들었다.67) 많은 문헌연구와 중국 및 기존의 다른 사서와의 비교연구를 통해 서 과학적인 증거를 제시하면서 眞書論을 주장한 사람이 박병섭이 다. ‘연구성과와 연구방법’ 부분에서 언급했던 내용을 다시 한 번 정 리하면 다음과 같다. 박병섭이 밝혀낸 부분은, 뺷삼국유사뺸에 기록된 단군수명 1908년의 비밀이다. 박병섭은 이 숫자를 뺷환단고기뺸 내용과 비교 검토하여 아 래와 같이 해석을 하고 있다. 단군수명 1908년은 단군왕검이 개국한 B.C 2333년부터 대부여로 개칭한 44대 구물임금이 즉위한 B.C 425년까지를 의미한다고 주장하 고 있다. 즉 2333년에서 425년을 빼면 정확하게 1908년이다. 단군조선이 국 가명을 대부여로 개칭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뺷환단고기뺸 기록에 의하 면, 우화충이 반란을 일으키자 43대 물리단군이 군사를 보내었으나 물리치 지 못하고, 측근 궁인들과 함께 종묘와사직의 신주를 받들고 배를 띄워 해 두로 내려간 지 얼마 안되어 붕하였다. 이에 욕살 구물이 난을 평정하고 나 서 여러 장수들의 추대를 받아서 즉위하는데, 나라 이름을 대부여로 고치고 삼한을 삼조선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삼한을 삼조선으로 개칭하 67) 박정학, 「치우천왕의 기록으로 본 환단고기의 역사성」, 뺷한배달 2009 후반기 학술회의 자료집뺸, 87쪽..
(30) 122 仙道文化 제 9 권 고, 삼조선이 비록 단군을 받들기는 했으나, 和戰, 즉 싸우거나 협상하는 권 한이 단군에게만 있지 않았다.68). 결국 단군의 절대권력이 종지부를 찍었다는 의미다. 그래서 뺷삼국 유사뺸에는 단군조선 개국인 B.C 2333년부터 대부여로 바꾼 해 즉, B.C 425년까지 단군수명을 1908년으로 기록했다는 것이 박병섭⋅박 병훈의 주장이다. 이 주장은 과학적인 해석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이 논리는, 뺷환단고기뺸와 뺷삼국유사뺸를 동시에 비교검토하지 않으면 나 올 수 없는 해석이기 때문에 뺷환단고기뺸 기록의 진실성을 증명하는 근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다만, 뺷삼국유사뺸 등에 단군조선 건국연 대가 기원전 2333년으로 기록되어 있지 않다. 뺷동국통감뺸에만 기록 되어 있는데 이것도 중국 당요의 건국년을 甲辰年, 단군의 즉위를 唐 堯 25년 戊辰年으로 계산해서 나온 연대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검토. 의 여지가 남아있다. 박병섭은, 또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 비문」(이하 「호태왕비문」 이라 한다)의 기록과 뺷환단고기뺸 및 뺷삼국사기뺸의 기록의 비교 검토 해서 역사적 사실의 진위를 밝혔다. 즉, 「호태왕비문」에 보면 광개토대왕이 17세손이라는 기록이 있다. 이 기록을 박병섭은, 여러 정황으로 보아 북부여를 세운 해모수로부 터 17세손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그런데 뺷삼국사기뺸 기록을 보면 고 주몽으로부터 13세손이다. 19대 왕에서 6번의 형제상속 또는 종손상 속을 제외하면 주몽의 13세손이다.69) 이는 「호태왕 비문」의 기록과 일치하지 않는다. 그런데 뺷환단고기뺸 기록에 의하면, 고구려의 시조인 고주몽은 북부여로부터 나왔고 북부 여를 건국한 자는 해모수인데, 해모수로부터 주몽까지는 4대(1대 해모 수, 2대 고진, 고진의 아들, 고진의 손자 불리지)이다.70) 68) 단학회연구부, 앞의 책, 68-69쪽. 69) 박병섭, 뺷고조선을 딛고서 포스트 고조선으로뺸, 창과 거울, 2008, 138쪽..
(31) 뺷환단고기뺸위서론에 대한 비판적 고찰ㆍ우대석 123. 따라서 고주몽까지 4대, 고주몽으로부터 광개토대왕까지 13대를 합하면 17세손이 되는 것이다. 「호태왕비문」의 기록과 뺷환단고기뺸의 기록이 일치함을 보여주고 있다. 박병섭이 시도한 또 다른 연구방법 중에 하나는, 다른 학자의 주장과 뺷환단고기뺸 내용의 비교 검토다. 박병섭은 윤내현의 연구성과와 뺷환단 고기뺸의 내용을 비교해서 뺷환단고기뺸의 진실성을 규명했다. 전문적인 강단 사학자인 윤내현은 그의 연구성과를 뺷고조선연구뺸 라는 책으로 정리해서 출판했는데, 뺷환단고기뺸를 전혀 사료로 이용 하지 않고 우리의 고대사를 규명했다. 즉, 고고학적 유물과 중국의 기록을 참고해서 우리의 고대사를 연구했는데, 그 책에 나와 있는 낙 랑에 대한 기록이 뺷환단고기뺸 기록과 부합한다.71) 뺷환단고기뺸에 의하면, 낙랑과 관련한 기록이 두 군데 나오는데, 그 하나는 한사군 이전에 최씨 낙랑이다.72) 즉, 임신 원년(기원전 169년) 정월 낙랑왕 최숭이 곡식 300섬을 바쳤다는 기록이 있고, 대무신열제 20년(기원후 37년)에 낙랑국을 습격하여 멸하였다는 기록이 있다.73) 이것은 윤내현이 뺷고조선연구뺸와 뺷한국고대사신론뺸에서 전개한 ‘난 하 유역의 한사군의 낙랑과 한반도 대동강가의 낙랑’이라는 두 개의 낙랑론과 정확하게 부합한다.74) 박병섭은 또, 중국사서의 기록 및 김부식의 뺷삼국사기뺸 기록과 뺷환 단고기뺸 기록을 비교 검토하여 뺷환단고기뺸의 내용을 검증하였는데, 고구려 900년설이 그것이다. 예를 들어 중국사서 중의 하나인 뺷신당서뺸에는 당의 시어사 가언 충이 뺷고려비기뺸를 인용하여 ‘고구려는 900년을 넘지 못하고 80 먹은 70) 임승국, 앞의 책, 259쪽. 71) 박병섭, 앞의 책, 316쪽. 72) 임승국, 앞의 책, 131쪽; 단학회연구부, 앞의 책, 81쪽. 73) 임승국, 앞의 책, 259쪽; 단학회연구부, 앞의 책, 494쪽. 74) 박병섭, 앞의 책, 316쪽..
(32) 124 仙道文化 제 9 권. 당의 장수에게 망한다’고 말한 기록이 있다. 역시 김부식은 뺷삼국사 기뺸에서 ‘당의 가언충이 고구려는 漢대로부터 나라를 가져 오늘날 900년이 되었다고 하는데, 이는 잘못이다’라고 지적했다. 뺷신당서뺸의 고구려 연수 900년설은 이후에 뺷삼국사기뺸 기록을 불신하는 학자들 에 의해서 주목받아왔다.75) 그런데 뺷환단고기뺸「북부여기」에는 ‘기원 전 232년에 해모수가 공화정치를 철폐하고 만백성의 추대에 의해 단 군이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76) 이 기록을 기준으로 하면, 고구려는 기원 후 668년에 멸망했으므로 고구려는 정확하게 900년의 역사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고구려 역사 900년의 미스터리는, 중국의 사서 와 뺷삼국사기뺸의 기록, 뺷환단고기뺸의 기록을 비교하면 명확하게 풀 린다.. Ⅵ. 맺음말 뺷환단고기뺸의 진위논쟁은 지금도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뺷환단고 기뺸와 마찬가지로 위서시비에 몰려있던 대표적인 사서 뺷규원사화뺸가 여러 학자들의 오랜 연구와 확인 끝에 서서히 위서의 굴레가 벗겨지 고 사서로서 인정받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77) 마찬가지로, 뺷환단고 기뺸 또한 위서논쟁으로부터 벗어나 점차 그 가치가 재조명되고 있다.78) 물론 위서론자들이 주장하는 근대용어가 사용되고 있다는 문제점 은 설득력이 있는 지적이다. 즉 후세에 필사과정에서 가필된 부분이 있을 수 있다는 주장을 일부 인정해야 한다. 위서론자들이 지적했던 75) 박병섭, 앞의 책, 151쪽. 76) 임승국, 잎의 책, 126쪽; 단학회연구부, 위의 책 243쪽. 77) 임채우, 「선도사서 뺷규원사화뺸 해제」, 뺷선도문화뺸 제6집, 2009, 144쪽 참조.. 78) 2009년 12월 1일 서울 역사박물관에서 사단법인 한배달 주최로 “재출간 30 년, 뺷환단고기뺸재조명”이라는 학술회의가 열렸다..
(33) 뺷환단고기뺸위서론에 대한 비판적 고찰ㆍ우대석 125. 용어들이 ‘世界萬邦’, ‘原始國家’, ‘文明’, ‘萬國博覽會’ 등이다. 뺷환단고기뺸의 용어사용에 일부 문제점이 있을 수 있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일부 용어상의 문제가 뺷환단고기뺸 전체를 위작으로 단정 짓게 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뺷환단고기뺸에 대한 논쟁중의 하나는, 그 원본이 있지 않다는 점에 있다. 하지만 이유립씨가 편집한 원본이 발견된다고 해도 뺷환단고기뺸 의 위서논쟁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다음 단계는, 뺷환 단고기뺸를 구성하고 있는 네 책, 즉 「삼성기」, 「단군세기」, 「북부여기」, 「태백일사」의 원본문제가 또 다시 대두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뺷환단고기뺸의 또 다른 원본인 이 네 책의 원본이 세상에 나오지 않는 한, 논쟁이 끝나지 않을 수 있다. 과연 원본이 있어야 역사를 인정할 수 있는가? 현재 우리나라의 사서 중의 사서인 뺷삼국사기뺸는 김부식이 직접 쓴 원본이 아니다. 김 부식은 1145년 고려 인종 23년에 왕명을 받아 뺷삼국사기뺸를 편찬했 는데, 현존하는 뺷삼국사기뺸는 1573년에 간행된 것이다. 이는 최초의 편찬시기로부터 400여 년이 지난 뒤의 간행본이다. 이뿐만 아니라 김 부식이 뺷삼국사기뺸 자체를 편찬할 당시 역시 이미 삼국시대 초기로 부터 무려 1천 년이나 지난 시기다. 그러면 뺷환단고기뺸를 위서로 주장하는 그러한 서지학적 기준으로 볼 때 1573년에 간행된 뺷삼국사기뺸 판본을 인정할 수 있을까? 중국 의 뺷史記뺸나 뺷漢書뺸도 마찬가지다. 더구나 뺷史記뺸나 뺷漢書뺸에 등장 하고 있는 三皇五帝說은 중국인 스스로도 漢나라 때 위작된 설이라 는 것을 인정하고 있지만, 누구도 뺷史記뺸와 뺷漢書뺸를 위서라고 폄하 하지는 않는다. 어쨌든 우리의 뺷삼국사기뺸건 중국의 뺷史記뺸건 뺷환단고기뺸와 같은 기준으로 위서 여부를 따진다면 문제의 소지가 많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기준을 가지고 역사를 파헤치고 인정해야 한다면 우리가 인정.
(34) 126 仙道文化 제 9 권. 할 수 있는 역사는 거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역사를 바로 세우고 새롭게 가다듬는 바람직한 방 향은, 古代史書의 진위 여부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그 사 서 안에 기록된 구체적 내용이 얼마나 정확한가를 하나하나 따지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하겠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뺷환단고기뺸에 나타 난 천문관측기록의 사실성을 검증한 연구는, 우리에게 고대사를 연 구하는 모범적 사례가 된다고 할 것이다. 이러한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연구를 통해 뺷환단고기뺸 안에 기록된 내용 중에서 진실성이 증명된 부분은 과감히 수용해야 하며, 부족한 우리의 고대사상 연구에 적극 활용해서 잊혀졌던 우리의 고대사와 고유사상을 회복하고 국학을 정립해야 할 것이다..
(35) 뺷환단고기뺸위서론에 대한 비판적 고찰ㆍ우대석 127. 【참고문헌】. 박창범, 뺷하늘에 새긴 우리역사뺸, 김영사, 2002. 박병섭, 뺷고조선을 딛고서 포스트 고조선으로뺸, 창과 거울, 2008. 임승국, 뺷한단고기뺸, 정신세계사, 2006. 이일봉, 뺷실증 한단고기뺸, 정신세계사, 2000. 서희건, 뺷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1뺸, 고려원, 1986. 서희건, 뺷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2뺸, 고려원, 1989. 서희건, 뺷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3뺸, 고려원, 1989. 이승헌, 뺷천지인뺸, 한문화, 1998. 박성수, 뺷단군문화기행뺸, 서원, 2000. 최태영, 뺷한국고대사를 생각한다뺸, 눈빛, 2002. 이승헌, 뺷한국인에게 고함뺸, 한문화, 2001. 노태돈, 뺷단군과 고조선사뺸, 사계절, 2000. 고준환, 뺷하나되는 한국사뺸, 한국교육진흥재단, 2002. 일연, 뺷삼국유사뺸, 교토대 출판사, 1921. 북애자, 고동영 옮김, 뺷규원사화뺸, 한뿌리, 1986. 대야발, 고동영 옮김, 뺷단기고사뺸, 한뿌리, 1986. 김교헌,이민수 옮김, 뺷신단실기뺸, 한뿌리, 1986. 박병식, 최봉렬 옮김, 뺷한국상고사뺸, 교보문고, 1994. 정연종, 뺷한글은 단군이 만들었다뺸, 죠이정 인터내셔널, 1996. 송호수, 뺷한민족 뿌리사상뺸, 기린원, 1989. 송호정, 뺷한국 고대사 속의 고조선사뺸, 푸른역사, 2003. 최태영, 뺷인간단군을 찾아서뺸, 학고재, 2000. 최태영, 뺷한국고대사를 생각한다뺸, 눈빛, 2002. 성창호, 뺷해동인물지 乾 坤뺸, 회상사, 1969. 윤내현, 뺷우리고대사 상상에서 현실로뺸, 지식산업사, 2003. 복기대, 뺷요서지역의 청동기시대 문화연구뺸, 백산자료원, 2002. 이병도, 뺷한국사대관뺸, 삼성문화사, 1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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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疾病으로 인해 나타나는 인체의 현상, 즉 증상들은 블랙박스와 같이 겉으로 드러나는 형태만 보여줄 뿐 그 내부는 다양하고 복잡한 과정을 거쳐 밖으로 나타나게 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