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상 개요
1. 배경
1948년 건국 이래 주변 아랍·회교 국가들과의 위협에 시달려 온 이스라엘에 게 있어서 이들 아랍·회교 국가들과의 관계 정상화를 통한 평화 및 안보 확 보는 이스라엘의 중요한 과제이며, 이집트(1979년) 및 요르단(1994년)과 각 각 평화조약을 맺는 성과를 올리기도 하였음.
그러나 여전히 대다수 아랍·회교 국가들과는 긴장 또는 적대관계에 있으며, 특히 불투명한 핵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이스라엘과 긴장관계에 있는 시리아 는 물론, 하마스 및 히즈불라 등 反이스라엘 테러조직을 지원하면서 ‘이스라 엘을 지도에서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란은 자국에 대한 최대 위협으로 간주되고 있음.
이러한 이스라엘-아랍 평화 달성을 위한 중요한 구성요소 중 하나가 이스라 엘-팔레스타인 간 평화협상임. 왜냐하면 많은 아랍·회교 국가들이 내세우는 이스라엘과의 평화의 선결조건 중 하나가 이스라엘 건국으로 시작된 이스라 엘-팔레스타인 분쟁의 해결이기 때문임.
2.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상을 보는 관점
가. 이스라엘
이스라엘-아랍 및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출발점을 1967년 6일 전쟁으 로 보고 있는 이스라엘 주류는 이스라엘에 대한 적대행위 중단의 대가로 이 스라엘이 6일 전쟁을 통하여 점령한 지역의 일부 통제권을 넘겨 주는 것을 평화협상의 핵심으로 보고 있음. 그러나 모든 점령지역을 이스라엘이 그대로 통치하는 大이스라엘(Greater Israel)을 지향하고, 팔레스타인측에 영토면에서 양보를 하더라도 가자지구(Gaza Strip)에 한정해야 한다는 강경파도 있음.
1993년 오슬로 협정(Oslo Accords) 및 2000년 캠프 데이비드 협상 이후 이 스라엘 지도부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 달성을 위하여 별도의 팔레스타 인 국가를 창설하는 방안(two state solution)을 수용 내지는 추진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음.
이스라엘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상이 지지부진한 이유가 ①팔레스타 인측의 과도한 요구와 ②계속되는 팔레스타인 테러세력의 이스라엘에 대한 테러공격 및 협상 파트너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테러세력에 대한 통제력 상실 또는 방조에 있다고 보고 있음. 특히 2007년 하마스가 팔레스타인 자 치정부를 축출하고 가자지구를 장악한 이후 이러한 관점이 강해지고 있음.
나. 팔레스타인
팔레스타인측은 1948년 팔레스타인 땅에 살던 팔레스타인인들을 몰아내고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을 건국한 것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출발점으로 보고 있음. 따라서 원래 야세르 아라파트(Yasser Arafat)를 필두로 하는 팔레 스타인 해방기구(PLO; Palestine Liberalization Organization)는 ①이스라엘을 없애고, ②이스라엘 때문에 팔레스타인 땅을 자의 또는 타의로 떠나게 된 팔 레스타인인들이 팔레스타인 땅에 재정착하는 것이 분쟁 해결인 것으로 보고 있었음.
그러나 상기와 같은 강경한 관점은 1960년대 후반부터 지속적으로 약해져 오늘날에는 이스라엘과의 협상 및 별도 팔레스타인 국가 창설(two state solution)을 추구하는 것이 주류임. 다만, 하마스 및 이슬라믹 지하드와 같은 극단세력 등은 여전히 이스라엘 말살과 같은 강경 주장을 펼치고 있음.
팔레스타인측은 평화협상이 지지부진한 이유가 이스라엘의 양보에 대한 인 색함에 있다고 보고 있음. 또한 팔레스타인측은 이스라엘의 각종 치안조치 (security measures)가 팔레스타인인들을 경제적·사회적으로 압박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이스라엘이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팔레스타인 국가 창설을 통한 평화 달성을 진지하게 추구하고 있는지에 대하여 끊임 없이 의심하고 있음.
다. 미국
조지 H. W. 부시에서 클린턴을 거쳐 현직 조지 W. 부시에 이르기까지 미국 대통령들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 달성을 위하여 이스라엘은 1967년 점 령한 지역의 일부를 포기해야 하며, 팔레스타인측은 테러리즘을 능동적으로 방지하고 이스라엘의 무조건적인 存立權(right to exist)을 인정해야 한다는 정 책을 견지하고 있음.
3.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상 주요 현안/장애물
팔레스타인측 테러 및 이스라엘측 군사적 대응의 반복을 통한 양측간 감정적 앙금 및 상호불신
예루살렘 지위문제(양측 모두 首都로 주장하고 있으나, 현재 이스라엘 이 실효적으로 지배)
팔레스타인측 테러 및 폭력선동
이스라엘측 치안조치(팔레스타인인의 이동 제한 및 서안지구·가자지구 에 대한 물품 반출입 제한 등)에 따른 팔레스타인측 민생고
이스라엘 점령지역 및 점령지역내 유대인 정착촌 건설
팔레스타인 난민 귀환 문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가자지구에 대한 통제력 상실(하마스의 가자지 구 장악)
4.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상 흐름
가. 마드리드 평화회의 및 오슬로 협정(1991~1993년)
1991년 제1차 걸프전쟁 직후 미국의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은 “이스라엘과 그 인접국들 간의 양자 또는 다자 회담으로 이어나가기 위한 서론”으로서 스 페인 마드리드에서 이스라엘-아랍 분쟁 당사국 대표들이 회동하는 국제회의 를 소집함(Madrid Peace Conference). 회담은 워싱턴DC로 이어졌으나, 성과 는 거의 없었음. 다만,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간 접촉은 노르웨이가 주관하는 일련의 양자간 비밀협상으로 이어져 1993년 9월 오슬로 협정으로 결실을 맺 게 됨. 오슬로 협정(공식명칭 Declaration of Principles on Interim Self- Government Arrangements)은 안보리 결의 242호 및 338호에 근거한 팔레스 타인 국가 창설을 위하여 필요한 요소 및 조건을 협의하기 위한 계획을 담 고 있음.
1995년 오슬로 협정의 주역 중 한 명인 이츠하크 라빈(Yitzhak Rabin) 이스 라엘 총리가 암살된 이후 평화협상은 추진력을 잃어 가게 됨. 팔레스타인인 들이 생활여건 향상을 느끼지 못하고 유대인 정착촌은 철거되지 않고 오히 려 증가하는 가운데, 팔레스타인의 호전적 세력에 의한 산발적 자살 폭탄 테 러에 대하여 이스라엘이 군사적으로 대응하면서 평화 달성을 위한 여건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되었음.
나. 헤브론 협정 및 와이 리버 각서(1996~1999년)
1996년 5월 총선을 통하여 집권한 베냐민 네타냐후(Benjamin Netanyahu) 이 스라엘 총리는 ‘상호주의정책’을 도입, 아라파트가 이끄는 PLO가 이스라엘에 대한 폭력 선동 및 테러리즘에 대한 직간접적 지원을 중단하지 않는 한, 이 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상에 임하지 않을 것이라는 정책을 천명함. 이스라
엘측은 팔레스타인측이 이러한 조건을 부분적으로 충족한 것으로 판단한 후 헤브론 협정(Hebron Agreement) 및 와이 리버 각서(Wye River Memorandum) 을 체결·교환하였음.
1997년 1월 이스라엘과 PLO 간에 체결된 헤브론 협정(공식명칭 Protocol Concerning the Redeployment in Hebron)은 헤브론에 배치된 이스라엘 병력 을 1993년 오슬로 협정에 따라 재배치하는 문제 및 이에 따른 치안조치 등 을 다루고 있음.
미국 매릴랜드 와이 리버(Wye River)에서 협상하여 1998년 10월 클린턴 대 통령 입회하에 백악관에서 네타냐후 총리와 아라파트 의장이 서명하 와이 리버 각서는 서안지구 내 이스라엘 병력의 추가 재배치 및 관련 치안조치 문제를 다루고 있음. 이스라엘 국회(Knesset, 정원 120명)는 75-19로 동 각 서를 승인함.
다.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담(2000년)
2000년 빌 클린턴 대통령이 주선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정상회담에서 에후 드 바락(Ehud Barak) 이스라엘 총리는 아라파트 의장에게 ①이스라엘이 서안 지구의 95%, 가자지구 및 東예루살렘을 팔레스타인측에 넘기는 대신 ②서안 지구 유대인 정착민의 85%를 차지하는 69개 유대인 정착촌을 팔레스타인측 이 이스라엘에 양도하고, ③유대인 정착촌이 많은 서안지구 10% 지역에 대 하여 이스라엘이 항구적으로 “잠정적 통제권”을 갖도록 하는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음. 동 방안에 따르면 팔레스타인 통치지역이 이스라엘측 우회로(bypass roads) 및 검문소(checkpoints)로 인하여 분단되고 팔레스타인 난민의 귀환 및 정착이 곤란해질 것이라는 것이 팔레스타인측 주장임.
아라파트 의장은 이스라엘측 제안을 거부하고, 대안을 제시하라는 클린턴 대 통령의 압력에도 끝까지 굴하지 않아 결국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담은 무위 로 끝나게 되었음. 2001년 1월 이집트 타바(Taba) 회담에서 이스라엘측은
“이스라엘측 잠정 통제지역”을 제거한 地圖案을 제시, 팔레스타인측은 이를 협상 재개의 출발점으로 수용하였으나, 바락 총리하에서 추가협상이 이루어 지지 않는 가운데 2001년 2월 右派인 리쿠드(Likud)당 아리엘 샤론(Ariel Sharon) 후보가 이스라엘 총리로 선출되었음.
라. 베이루트 정상회담(2002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진화계획을 제시하기 위하여 2002년 3월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개최된 정상회담에서 아랍권은 1967년 7월 4일 경계선으로의 복귀와 이스라엘-아랍 관계 정상화 및 집단적 평화조약을 교환하는 종합적인
평화안을 제시하였음(Arab Peace Initiative).
시몬 페레스(Shimon Peres) 이스라엘 외무장관은 아랍권의 평화안을 환영하 면서도 평화안의 구체적 내용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측이 직접 협의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테러행위를 종식시켜야 한다 는 입장을 밝힘. 그러나 실상은 아랍권의 평화안 내용 중 1967년 경계선으 로의 완전철수 및 팔레스타인 난민 귀환권 인정을 이스라엘측이 수용할 준 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임.
마. 평화 로드맵(2002~2003년)
2002년 7월 미국, EU, 러시아 및 UN의 주요 4자(Quartet)는 팔레스타인 독 립국가 창설을 포함한 평화 로드맵(a road map for peace)의 원칙 개요를 확 립, 마흐무드 압바스(Mahmoud Abbas; 일명 아부 마젠(Abu Mazen)) 현 자치 정부 수반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첫 총리로 임명된 후인 2003년 4월 로 드맵을 발표하였음. (그 동안 미국과 이스라엘은 야세르 아라파트 수반과의 협상을 거부하고 협상의 파트너로서 팔레스타인 총리직 신설을 요구)
로드맵은 이스라엘 및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각각 독립적으로 행동을 취할 것과 양자간 핵심쟁점(난민 귀환권, 예루살렘 지위 등)은 양자간 신뢰가 조 성될 때까지 처리를 뒤로 미룰 것을 제시함. 로드맵은 팔레스타인측에 대하 여 ①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을 행사 또는 계획하는 개인 및 집단의 체포·단속 에서 가시적 성과를 올리고, ②재건될 자치정부 보안기구가 對테러조치 및 테러리스트 기반 발본색원 작전을 지속적·집중적·효과적으로 실시할 것을 요 구함. 한편, 로드맵은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①2001년 3월 이후에 건설된 정 착촌의 해체, ②정착촌 건설 중단, ③2000년 9월 28일 이후 점령한 팔레스타 인 지역내 이스라엘군 철수, ④통행금지 해제 및 ⑤사람과 물자 이동에 대한 제약 완화를 요구함.
그러나 이스라엘 및 팔레스타인측 모두 로드맵 요구사항을 충족시키지 못하 고 있는 상황임. 이스라엘은 2001년 3월 이후 건설된 정착촌의 극히 일부만 해체하였으며, 오히려 정착촌을 신설·확장하였음. 이스라엘은 軍民 모두 2005년 8월 가자지구로부터 완전히 철수하였으며, 가자지구내 유대인 정착 촌도 해체하였음. 그러나 여전히 이스라엘은 對테러 작전 수행을 위하여 팔 레스타인측 통제지역에 수시로 군 병력을 투입하고 있음. 팔레스타인측도 팔 레스타인인의 對이스라엘 폭력행위를 효과적으로 억제하지 못하고 있는데, 팔레스타인측은 이스라엘군에 의한 군사작전 계속을 이유로 들고 있으나, 故 아라파트 수반 계열인 파타(Fatah)派가 이끄는 압바스 수반의 팔레스타인 자 치정부가 하마스, 이슬라믹 지하드 등 對이스라엘 강경노선을 주장하는 팔레 스타인 무장세력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한 것도 큰 이유임.
바. 아나폴리스 평화회의(2007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종식 노력에 미온적이던 미국의 부시 행정부는 2007년 입장을 선회, 당사자간 대화 주선에 적극적으로 임하게 되었으며, 2007년 11월 미국 매릴랜드주 아나폴리스(Annapolis)의 해군사관학교에서 미 국,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외에 EU, UN, 러시아, 중국, 아랍연맹 국 가들이 참석하는 중동평화회의를 개최함.
아나폴리스 평화회의의 가장 큰 성과는 이스라엘 및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양측이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을 통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양국체제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종식의 종착점임을 처음으로 공식문서로 확인한 점임. 끝.
<도면상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변천사>
<1923년 영국 위임통치령> <1947년 UN 분리선>
<1949-1967년 정전선> <1967년 6일전쟁 직후>
<현재 이스라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