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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반세기 동안 그린은 지켜냈지만 벨트효과는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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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IHS가 만난 사람 • 46

“지난 반세기 동안 그린은 지켜냈지만 벨트효과는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최상철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전 개발제한구역 제도개선협의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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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7호 2021 July

최상철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전 개발제한구역 제도개선협의회 위원장

따라 ‘구역불변의 원칙’을 깨고 ‘구역의 합리적 조정 · 활용’으로 전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번 호에서는 당시 ‘개발제한구역 제도개선협의회’의 위원장을 역임한 최상철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를 만나 개발제한구역의 최초 지정 당시의 상황과 조정정책 발표 배경을 비롯하여 향후 개발제 한구역 제도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들어본다.

김중은(이하 ‘김’)

1960년대 대도시 주변의 인구집중 현상으로 인한 도시 외곽의 무분별한

시가지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개발제한구역 제도가 도입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1971년 개 발제한구역 제도가 도입될 당시의 상황에 대해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최상철(이하 ‘최’) 1960~1970년대 쌀 부족 문제는 국가적인 이슈였습니다. 쌀 소비를 줄 이기 위해 잡곡밥이나 분식(粉食)을 장려하는 쌀 소비억제 정책과 더불어 쌀 생산량이 줄 어드는 것을 막기 위해 농지를 보전하는 정책도 병행해야 했습니다. 그 당시 서울 주변의 대규모 농지로는 김포평야, 마들평야(현재 노원구, 도봉구 일대)가 있었고, 지금은 대규모 아파트단지로 개발된 강남의 수서, 개포동, 대치동(당시 행정구역은 경기도 광주군) 일대 도 전부 우량농지였습니다. 서울의 인구가 계속 늘어나면서 이들 우량농지에까지 토지구 획 정리사업을 통해 단독주택이 들어서는 것을 막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농림부 차원에서 는 1972년에 제정된 「농지의 보전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따라 도시 외곽의 생산성이 높은 농지를 ‘절대농지’로 지정하여 보전하였고, 건설부 차원에서는 도시의 평면적 확산을 방지 하여 도시 주변의 농지를 보전하기 위해 1971년 개발제한구역 제도를 도입한 것입니다. 한 편, 도시의 확산 방지와 농지보호 목적과는 별개로 휴전선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의정부나 서울의 은평, 마곡지역 등은 안보를 위하여 개발제한구역을 지정하였습니다.

개발제한구역은 1971년 수도권을 시작으로 전국 14개 도시권에 지정되었습니다. 수도권 에 개발제한구역을 처음 지정할 때만 해도 이 제도를 바라보는 지방의 시각이 그리 나쁘지 만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전체 14개 도시권 중 10개 도시권에서 개발제한구역 지정을 요 청해 왔습니다. 개발제한구역 지정으로 인한 주민불편이나 토지소유자의 재산권 문제보다 는 도시의 무분별한 확산을 방지할 수 있는 제도라는 인식이 강했던 것 같습니다. 예를 들 인터뷰 김중은 국토연구원 연구위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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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당시 경북도지사는 시가지의 팽창으로 농지가 잠식되고 있으므 로 대구 주변의 개발제한구역을 확대 지정해달라고 요청했고, 춘천 의 경우에는 도시의 평면적인 확산 현상이 심하지 않은 상황인데도 개발제한구역의 지정을 요청했습니다. 공교롭게도 2000년대 초반 에 전면해제된 7개 중소도시권은 모두 해당 지역에서 지정을 원했던 곳들입니다.

개발제한구역 제도 도입 당시 일본과 영국의 제도를 벤치마킹한 것

으로 알고 있습니다.

최 1960년대 초 일본은 도시의 평면적 확장을 방지하고 농지를 보전 하기 위한 목적으로 영국의 ‘그린벨트(green belt)’ 제도 도입을 검토 했습니다. 1965년 일본과의 국교 정상화 이후 매년 우리나라 건설부 와 일본 건설청 간에 국제교류가 있었는데, 대도시 주변의 농지보전에 관해 논의하는 과정 에서 영국의 그린벨트 제도가 소개되었습니다.

개발제한구역 제도는 우리보다도 먼저 일본에서 도입을 검토한 제도인데, 막상 일본은 토지소유자와 지방정부의 극심한 반대로 영구적으로 개발을 제한하는 개발제한구역 제도 를 도입하지 못했습니다. 그 대신 그린벨트와 목적은 같으나 10년마다 구역지정 여부를 재 검토하는 ‘시가화조정구역’ 제도를 도입하였습니다. 이 시가화조정구역 제도는 개발제한구 역 제도와 지정 목적은 같으나, 개발제한구역은 영구적인 개념이고 시가화조정구역은 한 시적인 개념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이 시가화조정구역도 개발제한구역이 도입된 후 10년이 지난 1981년에 「도시계획법」에 도입되어 같은 법령 안에 지정목적은 같으나 존 속기간이 다른 두 구역이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한편, 영국의 ‘그린벨트’ 제도도 농지보전을 위한 목적으로 도입되었습니다. 영국은 2차 세계대전까지만 해도 전 대륙에 걸쳐 있는 여러 식민지를 통해서 식량을 조달해 왔 기 때문에 본토에서의 식량 생산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이후 식민 지들이 독립하면서 본토에서 식량을 자급자족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에서 1942년 도시 주변의 농경지를 보전해야 한다는 ‘어스와트 보고서(Uthwatt Report)’

가 발표되었고, 이듬해 패트릭 애버크롬비(Patrick Abercrombie)가 ‘대런던계획(Greater London Plan)’을 통해 런던 주변의 그린벨트를 최초로 제안하기에 이릅니다. 1947년에는 그린벨트에 관한 내용이 포함된 「도시 및 농촌계획법(Town and Country Planning Act)」

이 개정되고, 1955년에 그린벨트 지정에 관한 내용이 훈령으로 구체화되어 런던 외 지방도 시에도 그린벨트가 지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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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 불구하고 1970년대 당시 정부의 비민주적인 구역 지정 절차나 과도한 행위제한으로 인 한 재산권 침해 문제 등이 여전히 제기되고 있습니다.

최 1971년 개발제한구역 지정작업은 3개월 동안 극비로 진행되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GPS도 없고 정확한 지도도 없었습니다. 항공사진도 일부 지역에 대해서만 군(軍)이 가지 고 있었는데 군사기밀로 분류되어 제공받을 수 없었습니다. 일반적으로 1만분의 1의 축척 을 가진 지도를 사용하면 연필선 굵기에 따라 5m 정도는 오차가 발생하기 마련입니다. 연 필자국이 어디를 지나느냐에 따라 어느 부분은 개발제한구역에 포함되고 어느 부분은 개발 제한구역이 아니게 되는 것이지요. 그로 인해 하나의 집인데도 둘로 나뉘어서 마당과 아래 채는 개발제한구역이고 위채는 개발제한구역이 아닌 집이 무려 1만 호가 넘게 발생했습니 다. 1만분의 1 축척지도를 사용하면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문제를 피하려면 적어도 3천분의 1 지도를 사용해야 합니다만, 그 당시 우리나라에는 그런 지도가 없었습니다. 1만 분의 1 지도에 비밀로 작업을 했기 때문에 개발제한구역이 집을 관통하거나 하나의 필지를 양분하여 지정되는 경우가 나타났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당시에는 개발제한구역에 불법행위를 한 사람들 모두 법적인 처벌 대상 이었습니다. 개발제한구역이 지정된 지역에는 초소를 만들어서 불법행위를 감시했습니다.

개발제한구역을 훼손하고 불법점용해서 교도소에 안 간 사람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하지 만 평생을 살아오던 집이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되어 반토막난 경우에는 일부를 해제해 주었습니다. 다만, 아들의 분가(分家)를 위

해 새로 집을 지어줄 경우에는 개발제한구역 을 해제해주지 않고 그 대신 새로 집을 지을 수 있는 권한을 주었습니다. 그게 바로 이 축권(移築權)입니다. 이 이축권은 시장에서 상당히 비싸게 거래되었습니다. 아무런 개 발행위도 할 수 없는 개발제한구역에서 집을 지을 수 있는 권한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이축권을 대규모 음식점들이 몇 백 평씩 사들여 개발제한구역 내에 ‘○○가 든’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영업을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개발제한구역 내에 ‘○○가

든’이라는 상호의 음식점이 많은 것입니다. 김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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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영국의 그린벨트가 ‘가든 시티(garden city)’ 개념에서 온 것이므로 잘못되었다고 볼 수는 없겠습니다(웃음).

별채가 다 허물어져가도 새로 집을 못 짓게 했습니다. 아무도 모를 것으로 생각하고 조금 씩 집을 넓힌 사람도 1년 전후 항공사진을 비 교해서 다른 부분이 나타나면 모두 법적으로 처벌했습니다. 그러나 정부청사나 공공건물 을 짓는 공공목적의 행위는 허용해주었습니 다. 정부는 마음대로 관공서를 지으면서 지정 이전부터 있던 집은 지붕 하나 못 고치게 하느냐는 주민들의 불만이 고조되자, 이축권이나 건축행위도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등 조금씩 행위완화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래도 구역불변 의 원칙은 지정 이후 20여 년간 계속해서 유지되었습니다.

1970년대 최초 지정 이래 줄곧 ‘구역불변의 원칙’을 지켜오던 개발제한구역 정책은 1998

년 김대중 정부의 개발제한구역 조정 정책을 계기로 전환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당시 정부는 개발제한구역 조정을 위해 건설교통부장관 직속으로 ‘개발제한구역 제도개선협의회’를 두어 제도개선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토록 하는데요, 교수님께서는 이 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으셨 습니다. 그 당시 상황에 대한 간략한 회고를 부탁드립니다.

최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 DJP연합으로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었습니다. 그 후 이정무 건설교통부 장관이 취임하자마자 1998년 4월에 개발제한구역 조정을 위한 협 의회(정식 명칙은 ‘개발제한구역 제도개선협의회’)를 만들었습니다. 위원회는 총 23명으로 구성되었는데 공무원은 물론 환경단체, 언론, 연구소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참여하였 습니다. 그중 제가 위원장을 맡게 되었고, 그해 11월까지 7개월 동안 치열하게 제도개선방 안을 논의하였습니다. 논의 결과는 1998년 11월 25일 ‘개발제한구역 제도개선시안’이라는 이름으로 발표되었습니다. 주요 결론 중에 하나는 개발제한구역이 지정되어 있는 14개 도 시권 중 제도의 존속 필요성이 낮은 7개 중소도시권은 전면 해제, 인구 100만 명 이상의 7개 대도시권은 존치한 상태에서 ‘환경평가’를 실시해서 일부를 해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논의 과정에서 울산과 마산 · 창원 · 진해(현재 통합 창원시)도 전면 해제를 검토하였으나 인구가 100만 명 이상이어서 개발제한구역을 유지하기로 하였습니다.

위원회가 발표한 제도개선시안에 대한 후속조치로 국토연구원을 중심으로 한 환경평가 연구가 시작되었으며, 1998년 12월에는 영국의 도시 · 농촌계획협회(TCPA)에 제도개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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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원회의 활동과 별개로 진행된 사항이었습니다. 하지만, 위원회가 제시한 구역조정 원칙 을 정당화하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지난 반세기 동안의 개발제한구역 정책에 대한 공과를 간략히 평가해 주시고,

앞으로도 제도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어떠한 점이 보완되어야 할지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 습니다.

최 지난 반세기 동안의 개발제한구역 정책은 한마디로 평가하자면, ‘그린(green)은 지켜 냈지만 벨트(belt)의 효과는 없었다’입니다. 수도권의 경우 도시가 비대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개발제한구역을 지정했지만 수도권으로의 인구유입을 막지 못했습니다. 우리 몸에 비유하자면 살을 빼기 위해 ‘벨트’를 조였지만(개발제한구역 지정) 먹는 양(수도권으로 유 입되는 인구)은 줄이지 못해 체중관리에 실패한 격입니다. 결과적으로 ‘벨트’ 바깥쪽으로 살이 삐져나온(벨트 안쪽의 서울의 인구는 정체 · 유지되었으나 벨트 바깥쪽의 경기도 인 구는 오히려 늘어나는) 형국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개발제한구역을 지정하지 않았다면 이들 지역까지 모두 집들로 뒤덮였을 겁니 다. 1990년대 후반 개발제한구역의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조정작업을 위해 개발제한구역 토지에 대한 ‘환경평가’를 실시하여 보전가치가 높은 지역은 원칙적으로 해제해서 개발하 는 것을 불허하였습니다. 그리고 개발가능한 지역은 ‘광역도시계획’을 수립하여 ‘선계획- 후개발’이라는 원칙하에 해제하여 이용토록 하였습니다. 수도권 개발제한구역은 단지 서 울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서울 주변에 포도송이처럼 붙어 있는 성남, 남양주, 화성, 하남, 구리와 같은 주변지역에 대한 종합적인 고려가 필요했습니다. 부산도 행정구역을 접하고 있는 양산, 김해는 물론 마산-창원-진해, 울산까지도 다 연계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지역 에 대해 ‘광역도시계획’, ‘환경평가’ 제도를 도입하여 개발제한구역을 조정한 것은 잘한 일 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개발제한구역이 영구적으로 보존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직접 땅을 사들여야 합니 다. 당장은 못 사더라도 10년, 20년을 내다보고 매입계획을 수립해야 합니다. 국가가 직접 토지를 소유한 상태에서 떳떳하게 도시정책이나 주택정책에 따라 조금씩 해제해 가면서 주택을 공급하거나 공공의 목적으로 이용해야 합니다. 앞으로도 개발제한구역 제도가 지 속적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국민적 공감대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저는 국토연구원이 중 심이 되어 그 역할을 담당해줄 것이라 믿습니다.

참조

관련 문서